모아놓으니 정말 전통인것만 같다.


악마에게 뭔가를 파는 건 독일의 전통이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았고 페터 슐레밀은 회색 옷의 남자에게 그림자를 팔았으며 프라하의 대학생은 스카피넬리라는 이름의 노인에게 거울 속의 자기 자신을 팔았다. 팀 탈러는 마악 (악마?)남작에게 웃음을 판다.

거래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파우스트는 영혼을 팔고 젊음을받았다. 그는 평생 공부만 한 노학자였다. 페터 슐레밀은 끊임없이돈이 나오는 행운의 자루를 받았는데, 영혼을 주면 그림자를 돌려주겠다는 악마의 두 번째 제안은 거절했다. 프라하의 대학생 역시금이 나오는 가방을 받았지만 사실 사기나 다름없었다. 

자취방에서 대충 아무거나 골라 가겠다던 노인(= 악마)이 거울에 비친 대학생의 모습을 날름 챙겨버린 것이다. 팀 탈러는 어떤 내기에서도 이길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악마와 거래‘ 부문 최연소 기록을 갖게 되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① 파우스트 : 영혼 → 젊음
② 페터 슐레밀 : 그림자 → 돈이 나오는 자루
③ 프라하의 대학생 : 거울 속 자신 → 금이 나오는 가방
④팀 탈러 : 웃음 → 어떤 내기에서도 이길 수 있는 능력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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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1 11:05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러시아 전통은 보드카 마시고 횡설수설 하면서 사고치기, 그리고 결투하기 일까요? ㅎㅎ
이 책 정말 재미있어 보여요^^

미미 2021-06-01 11:20   좋아요 4 | URL
저자 금정연은 서평가인데 5년간 이곳저곳에 올린 서평을 모아 낸 책이예요ㅋㅋ노트 옆에 두고 끌리는 책들 적으면서 보고있어요^^*

새파랑 2021-06-01 11:55   좋아요 4 | URL
미미님도 4년후에 서평책 내실수도 있겠네요^^

미미 2021-06-01 11:59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 내시면 저도 도전할께요!!(따라쟁이 인증)ㅋㅋㅋㅋ

scott 2021-06-02 00:53   좋아요 2 | URL
두분 책
사전 예약
(╭☞•̀ o•́)╭☞

페넬로페 2021-06-01 11:2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정말 으스스한데요~~
열린책들 ‘파우스트‘의 역자해설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동안 방황한다라고 했고 파우스트는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으로 남는다고 설명했는데 전 무엇을 바쳐 노력해야하는지 생각해 볼께요^^

미미 2021-06-01 11:30   좋아요 6 | URL
저는 파우스트부터 읽어봐야겠어요!ㅋㅋㅋ 말씀하신 역자해설도 궁금해요. 음..노력하는 동안 방황한다. 굳이 악마와 거래하지 않아도
끝없는 질문에, 혼란스러운게 인생인듯 해요. 철학적이네요!^^*

바람돌이 2021-06-01 11:2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모르던 책, 또는 관심없었었는데 급관심이 생기게 만드는 글 너무 좋아요. 미미님 때문에 저 이 책 읽고 싶은 마음이 막막 생겨나요. ^^

미미 2021-06-01 11:33   좋아요 5 | URL
거창한거 없이 투덜투덜 이런저런 생각,경험을 책 이야기와 버무렸는데 여기저기에서 키득대다 똭~오다 소소한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책이예요!
제가 감정과잉임을 잊으심 안돼요!ㅋㅋㅋㅋㅋ

mini74 2021-06-01 17: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미미님이 정리해 놓은 걸 보니 정말 무슨 전통같네요 ㅎㅎ 저는 금값도 올랐다니 소소하게 그림자 반만 팔면 안될까요 ㅎㅎ

미미 2021-06-01 17:58   좋아요 2 | URL
음 괜찮은데요?😆 금말고 비트코인으로 받으심 투자가치가 높을듯합니다ㅋㅋㅋ

붕붕툐툐 2021-06-01 20: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저도 뭘 팔 수 있을지 생각부터 하는 거 보면 자낳괴...ㅋㅋㅋㅋㅋ

미미 2021-06-01 21:46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자낳괴 뭔지 찾아봤어요!
 

"조금 비참한 게 영혼에는 좋아요."
ㅡ세스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 P57

결론부터 말하자면, 항간에 떠도는 지옥이란 바로 이 세계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태어나 죽을 때까지 지옥에서 살아갈 운명에 처해 있다.
ㅡ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 P71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목차는 이렇다.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
가족, 이제 해산하자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
신 따위, 개나 줘라
언제까지 멍청하게 앉아만 있을 건가
애절한 사랑 따위, 같잖다.
- P73

말이란 본디 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사는 것은 다른 문제다.  - P75

우리는 모든 연필 촉에 수반되는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받아들이는 법을, 그러면서도 이상적인 형태를 향해 계속 정진해야 한다.
세상일은 어찌될지 모른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각자가 놓인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잘 생각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으며 그러면서도 현 상황을 개선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것이다.
ㅡ 데이비드 리스 《연필 깎기의 정석》 - P77

"문학이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불안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ㅡ안토니오 타부키 <레퀴엠> - P121

이탈리아의 소설가 안토니오 타부키의 짧은 소설 《레퀴엠>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는 생각했다. 그자는 이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생각했다. 그를 ‘그자‘라고 부르면 안 된다. 그는 위대한 시인, 아마도이십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 그는 오래전에 죽었다. 나는 그를 존경하며, 아니 온전히 복종하며 대해야 한다. 하지만 이내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15쪽) - P122

파일럿의 가장 큰 불안은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알코올을 많이 하는 사람의 가장 큰 불안은알코올 중독자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일럿은 실제로 비행기를 추락시킴으로써, 알코올을 많이 하는 사람은 실제로 알코올 중독자가 됨으로써 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라카미 류,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 권남희 옮김, 창공사, 260쪽) - P126

특별한 존재와 평범한 존재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존재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관계다. 남에게는 평범한 존재가 내게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존재가 나와 맺고 있는 관계 때문이다. 평범한 존재는 나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특별해진다
ㅡ장유승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 P135

당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글을 쓸 때 당신에게 고함을 지르는내면의 편집자일지도 모른다. 그 목소리를 꺼두라. 스스로에게 심술궂게 행동할 자유를 주라.
ㅡ 제임스 스콧 벨 소설쓰기의 모든 것) - P143

당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글을 쓸 때‘ 당신에게 고함을 지르는 내면의 편집자일지도 모른다. 그 목소리를 꺼두라. 스스로에게심술궂게 행동할 자유를 주라, 일단 쓰고, 나중에 다듬어라. 이것이 창작의 황금률이다. 

ㅡ(제임스 스콧 벨, 
<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 05 고쳐쓰기> 34쪽) - P144

내가 담배와 술을, 그래, 술과 담배를 끊는다면, 난 책 한 권쯤 쓸수 있을 거야. 여러 권도 쓸 수 있겠지만 어쩌면 단 한 권이 될 거야. 난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나.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
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ㅡ아고타 크리스토프<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 P148

지금 제겐 정말이지 꼭 한 가지 야심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이지요.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하게 말입니다. 물론 이것도 역시 오만이겠지요. 그러나 저는 지금 너무나 지쳐 있고 너무나 헐벗은 상태라서 이 오만이 제게는 유일한 보호장치인 것 같습니다. 삶에 대하여 아무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따지려고 들기 전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요. 한사코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자 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낫습니다. 특히 저처럼자신을 별로 잘 알지 못하는 경우는 특히 그렇습니다.

ㅡ1933년, 알베르 카뮈가 
장 그르니에에게 (26쪽) - P166

카뮈는 언제나 스승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조언을 구했고, 그의 의견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카뮈 그르니에 서한집》을 통해 <이방인>, 《시지프 신화》, <칼리굴라 >등의 초기작품을 비롯한 카뮈의 작업에 대한 그르니에의 꼼꼼한 비평 (때로는첨삭)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비평집이 아니고, 전기도,
그렇다고 소설도 아니기에 우리가 각각의 편지에서 느낄 수 있는것은 우선 그들 생활의 냄새입니다 ㅡ2차 세계대전 동안 겪어야했던 식량난(카뮈는 직접 채취한 버섯을 가루로 만들어 그르니에에게 보내기도 합니다),... - P168

며칠 전에 어떤 경관이 제 자동차를 세우더니 제게 무슨 글을 쓰느냐고 묻더군요(제 직업이 운전면허증에 기록되어 있었으니까요). 

전"소설을 씁니다" 하고 간단히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강조하듯 다시묻는 거예요. "애정소설입니까, 아니면 탐정소설입니까" 라고요.
마치 그 둘 사이에 중간은 없다는 듯이!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반반이죠, 뭐."

곧 다시 뵙겠습니다. 자주, 아주 자주 선생님을 생각하곤 합니다. 늘 같은 마음으로 말입니다.
선생님과 가족 분들의 건강을 빌며,
ㅡ알베르 카뮈1959년 12월 28일, 
알베르 카뮈가 장 그르니에에게 (360쪽)

(ㅠㅇㅠ)....이 책 읽음 이 대목읽고 울컥할수 있습니다. 이유는 책 속에ㅠ - P171

좋은 선생도 없고 선생 운도 없는 당신에게

누구에게나 좋은 선생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ㅡ우치다 타츠루 <스승은 있다> - P175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서평을 읽겠지만, 진정으로 글을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서평을 읽을 시간이 없어요."

ㅡ 파리 리뷰 <작가란 무엇인가>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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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망가져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방치하는 게 아니라 자질구레한 일들을 방치해서 일상이 망가진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야 하는 나이 - P23

심란해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뒤져 그들의 첫 문장을 살펴본다. 정영문("어쩌면 나는 처음에 개구리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볼라뇨( 내장(內陽) 사실주의에 동참하지않겠느냐는 친절한 제안을 받았다."), 부코스키(쉰 살이고, 여자와 잠을 같이 잔 지 4년도 넘었을 때였다."), 브라우티건("워터멜론 슈가에서는 여러가지 일들이 다시, 또다시 행해졌다."), 챈들러("10월 중순 오전 열한시경이었다."), 김승옥 "오늘 아침에도 그는 설사기 때문에 일찍 잠이 깨었다.")…..

심란함은, 물론,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나는 새삼 가시질‘이라는 표현의 묘함을 생각한다. 내 생각에 이것은 높임말이다. 해당 문장의 문법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진리가 놓여 있다. : 우리는 심란함‘에 함부로 대들면 안 된다. 그보다는 비위를 맞춰드려야 한다). 

아무리 허기와 숙취, 불면과 불안, 비문학적인 사회에 대한 저주로 시간을 보낸다 해도 가시지 않을 심란함(님)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 P33

프루스트를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프루스트를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
다만 끝까지 읽은 사람이 극히 적을 뿐이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면, 1권의 66 쪽에 나오는,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책을 덮으려는 무렵에 등장하는 홍차와 마들렌 때문이다. "그런 - P40

우리는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ㅡ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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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6-01 0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책을 덮으려는 무렵에 등장하는 홍차와 마들렌 때문...]
꼭 ,그렇지는 않은뎅 ㅎㅎㅎㅎ

낼 미미님 모닝 홍차와 마들렌
요기 차려 놓고 감~
   ∧∧
  (*✪ω✪)
  _| ⊃/(___
/ └-(____☕🍪/
 ̄ ̄ ̄ ̄ ̄ ̄ ̄

새파랑 2021-06-01 06:36   좋아요 2 | URL
오늘은 꼭 홍차와 마들렌을 사먹어야 겠어요^^

미미 2021-06-01 07:42   좋아요 2 | URL
막상 읽어보면 저 문장 외에도 아름다운 문장들이 수두룩ㅋㅋㅋㅋ마들렌이 입안에서 살살 녹아요!ㅋㅋ잘 먹을께요!☆♪♡₍๐•ᴗ•๐₎♡
 

햇빛 속머리 위 약 50미터쯤 되는 곳에서 별로 분명하지는 않지만 뭔가 인간의 얼굴과도 흡사한 존재를 실은 두 개의 반짝거리는커다란 강철 날개를 보았다. 처음으로 반인반신을 본 그리스인처럼 나 또한 감동했다. 눈물도 흘렸다. 

소음이 바로 내 머리 위에서 왔다는 걸 인지한 순간 — 비행기가 아직 드물 때였다. — 내가 처음으로 보려고 하는 것이 비행기라는 생각에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신문에서 감동적인 말을 기대할 때처럼, 울음을 터뜨리기 위해 비행기의 모습이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비행사는 가는길을 망설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앞에 ㅡ습관이 나를 포로로 하지 않는다면 내 앞에도 ㅡ모든 공간의 길, 삶의 길이 열려 있음을 느꼈다. 

그는 조금 더 멀리 날더니 몇 초 동안 바다위를 활주하면서 갑자기 결심한 듯, 중력과는 반대되는 어떤힘에 끌린 듯, 마치 자기 나라에 돌아가려는 듯, 금빛 날개를 가볍게 움직이면서 하늘을 향해 곧바로 돌진했다. - P314

* "일하시오, 일하시오, 내 친애하는 친구여, 유명해지시오. 그대는 할 수 있습니다. 미래는 그대의 것입니다." 퐁탄이 샤토브리앙에게 1798년에 보낸 편지의한 구절로, 샤토브리앙이 『무덤 너머의 회고록』에서 인용했다. 퐁탄(Louis deFontanes, 1757~1821) 후작은 미미한 작가로, 공포 정치 후 런던에서의 망명 시절 동안 샤토브리앙과 친교를 나누었다.(소돔」, 폴리오, 615쪽 참조.) - P319

암소 몇 마리만이 울음소리를 내며 바다를 바라보기 위해밖에 남아 있었고, 몇몇 소들은 인간에게 더 관심이 있는지 우리가 탄 마차 쪽으로 주의를 돌렸다. 어느 화가만이 좁은 언덕 위에 이젤을 세우고 이 거대한 고요와 가라앉은 빛을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쩌면 암소들은 무의식적으로, 또 무보수로 화가의 모델로 쓰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귀가한 후에도, 그들의 관조하는 모습과 고독한 존재감이 그 나름대로 저녁이 발산하는 강력한 휴식의 느낌을 주는 데 기여했으니 말이다.  - P322

나는 내 삶이이렇게 세 개의 도면 위에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다중적인 양상에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가 한순간 과거의 인간이 될 때, 다시 말해 오래전부터 자신의 모습인 자아와는 다른인간이 될 때, 우리의 감수성은 더 이상 습관에 의해 약해지지않고, 아주 작은 충격에도 강렬한 인상을 받으면서 이전의 인상들을 모두 희미하게 만들며, 또 그런 강렬함 때문에 술에 취한 사람이 느끼는 일시적인 흥분과 더불어 그 인상들에 빠져든다.  - P323

그사이 나는 남작이 손에 들고 있는 발자크의 책을 바라보았다.
그 책은 첫해에 그가 내게 빌려주었던 베르고트의 책처럼 그저 우연히 구입한 종이 표지의 책이 아니었다. 

그 책은 그의장서 중 하나로 "나는 샤를뤼스 남작에게 속하느니."란 명구나, 때로는 그런 명구 대신 게르망트의 학구적인 취향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가 항상 전쟁만 하는 것은 아니다. (In proeliisnon semper.)",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Non sinelabore.)" 같은 명구가 쓰여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곧 모렐을기쁘게 하기 위해 이 명구가 다른 명구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될것이다.  - P330

*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즉 "크세주?(Que sais-je?)"는 몽테뉴의 명구로『레몽 스봉의 변호』(1588)의 부록에서 설명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정면에 새겨져 있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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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31 1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샤토브리앙! 스테이크 맛나는 안심살 구이가
갑자기 생각 ㅎㅎㅎ
미미님은 벌써 잃시찾의 구름위를 활공중이쉼 ~٩ʕ◕౪◕ʔو

미미 2021-05-31 16:26   좋아요 2 | URL
아~‘구름위를 활공‘ 프루스트 감상에 더없이 적합한 표현이네요~♡
{´◕ ◡ ◕`}♡주석도 훌륭해서 작품 읽는 재미가 배가 되요ㅋㅋㅋㅋ👍

새파랑 2021-05-31 2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뒤로 갈수록 내용이 더 심오해지는거 같아요. 하지만 문장은 여전하네요. 암소의 감정까지 표현하다니 ^^

미미 2021-05-31 22:57   좋아요 2 | URL
저 조금전에 ‘잡담‘에 관해 읽었는데 모든 게 이런 식이니 계속 감탄 연발입니다. 보는 만큼 쓴다는 말을 엇그제 김영하작가님의 (예전) 팟케스트에서 들었는데 그걸 증명하는 프루스트~♡
 

아 이 대목 읽고 웃다가 침까지 흘..죄송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수면의 관계에 대한 임상실험 결과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있다. 최근에 읽은 《소설가의 일 》프롤로그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김연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완독한다는 신년 계획을 세우고 매일 자기 전에‘ 10 페이지를 읽겠다고 결심하지만 3월 4일까지 그가 읽은 건 고작 1권의 47 페이지였다고 고백하며 이렇게 탄식한다. "빌어먹을 저녁식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는 프루스트의 원고를 거절함으로써 문학사에 영원한 놀림거리로 남은 어느 편집자의 편지를 소개하기도 하는데, 꼭 내가 쓴 편지인줄 알았다. 
"친애하는 동료여, 제가 아둔패기라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봐도,
주인공이 잠들기 전에 침대 위에서 뒤척이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 서른 페이지나 필요한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 P39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3권에는 프루스트를 읽다 잠든 우리를 위로하는 내용이 있다.
은신처에 피신해 있는 여주인공 아오마메와 그녀의 뒤를 봐주는 과묵한 남자 다마루의 대화.
식료품과 일용품의 전달 방법을 진지하게 설명하던 다마루가 뜬금없이 묻는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어때?" 

갑자기 교양을 시험당한 아오마메는 되묻는다.
 "당신은 읽었어요?" 그러자 다마루가 담담하게 말한다. "아니, 나는 교도소에도 간 적이 없고, 어딘가에 오래 은신할 일도 없었어. 그런 기회라도 갖지 않는 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들 하더군" 

이어지는 대화는 점입가경이다. "주위에 누군가 다 읽은 사람이 있었어요?" "교도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 내 주위에없는 건 아닌데, 다들 프루스트에 흥미를 가질 만한 타입이 아니었어." 그러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지 못했다고 해서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건 감옥에 가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 P40

그렇다면 이토록 읽기 어려운 작품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고전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탈로 칼비노가 정의한 것처럼,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 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고,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하기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보다더 적절한 책은 없다.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 아니다

☆프루스트를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프루스트를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
다만 끝까지 읽은 사람이 극히 적을 뿐이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면, 1권의 66 쪽에 나오는,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책을 덮으려는 무렵에 등장하는 홍차와 마들렌 때문이다.  - P4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속 ‘홍차와 마들렌‘

"그런데 과자 부스러기가 섞여 있는 한 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나는 소스라쳤다, 나의 몸 안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깨닫고, 뭐라고 형용키 어려운 감미로운 쾌감이, 외따로,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솟아나 나를 휩쓸었다."

기억을 통해 삶을, 나아가 세계 자체를 되찾으려는 아름답고도 절망적인 프루스트의 시도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한다. 

"이제야 우리들의 꽃이란 꽃은 모조리, 스완 씨의 정원의 꽃이란 꽃은 모조리, 비본 내의 수련화 마을의 선량한 사람들과 그들의 조촐한 집들과 성당과 온 콩브레와 그 근방,그러한 모든 것이 형태를 갖추고 뿌리를 내려, 마을과 정원과 더불어 나의 찻잔에서 나왔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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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5-31 12:00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ㅋ 저도 김연수 저 글 읽고 엄청 웃었어요. 저기다 덧붙이길 내 잃어버린 시간도 못 찾았는데 남의 잃어버린 시간까지 찾아야하냐며...포기 이유를...ㅋ

미미 2021-05-31 12:02   좋아요 5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아 ㅋㅋ웃프네요! 김연수작가님에 급호감이 갑니다ㅋㅋ

coolcat329 2021-05-31 12:03   좋아요 6 | URL
<소설가의 일> 산문집에 나옵니다.ㅋ
이 책 재밌어요.

미미 2021-05-31 12:14   좋아요 5 | URL
그 책이군요! 바로 담았어요ㅋㅋㅋㅋ여기 써 있는데도 프루스트 땜 몰랐네요!

scott 2021-05-31 15:53   좋아요 2 | URL
김연수 작가님 산문은 진심 꿀잼 (◍•ڡ•◍)❤

페넬로페 2021-05-31 12:0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소설가의 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 읽고 싶어요 ㅠㅠ
밤에 자기 전에 10페이지라도 읽고 싶은 책이 넘 많아요 ㅎㅎ~~

미미 2021-05-31 12:08   좋아요 6 | URL
아 이 책 재밌어요! 지금 40페이진데 몇번 뿜었어요ㅋㅋㅋㅋ그쵸! 저도 이책 저책 반찬 먹듯 조금씩 맛보고 싶은 책들 많음요ㅋㅋㅋ

페넬로페 2021-05-31 12:20   좋아요 6 | URL
지금 문자 왔어요
도서관에서 따끈한 희망도서 3권 찾아가라고요~~
도서관 가면 미미님 올려주신 책도 빌릴것 같은데 ㅠㅠ
북플에 들어오지 말아야 하나봐요^^

미미 2021-05-31 12:28   좋아요 6 | URL
저도 매일 그러면서 들어와요ㅋㅋㅋㅋ희망도서 신청하신것 구매됐군요!! 축하드려요~♡ (매번 다른 신청자와 중복되어 탈락한 사람ㅋㅋ)

scott 2021-05-31 15:52   좋아요 4 | URL
안됨!!요
페넬로페님 안계시는
북플은,,,,,
이리도 시스템이 기이하게 굴라고도
플친님들때문에 24시간 클릭하는뎅 (>_<。)💦

행복한책읽기 2021-05-31 12:4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 넘넘 재밌습니다. <프루스트 읽기를 때려치운 작가들>이란 제목으로 책 나와도 되겠어요. 근데 저 1Q84 읽었는데, 것도 대따 흥미롭게 읽었는데, 저 대사는 전혀 기억 나지 않는다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러 가야 할까요 ㅋㅋㅋ

미미 2021-05-31 12:52   좋아요 5 | URL
그렇네요!ㅋㅋㅋ저도 <1Q84>읽었는데 저 두 화자는 기억나는데 저 대사는 넘 새로워요ㅋㅋㅋㅋ

scott 2021-05-31 15:51   좋아요 5 | URL
<프루스트 읽기를 때려치운 작가들>
요! 테마 좋습니다
이 기회에 작가들 커밍아웃 우르륵 ㅎㅎㅎ

그레이스 2021-05-31 14: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조이스도 추가! 율리시즈ㅎㅎ
그래도 둘다 일글꼬에요.

미미 2021-05-31 14:32   좋아요 5 | URL
그렇죠 조이스!!! 그레이스님이 다 보실꺼라 저는 믿슙니당~♡ㅋㅋㅋㅋ

scott 2021-05-31 15:50   좋아요 4 | URL
저도 믿습니돵!!٩(*˙︶˙*)۶

공쟝쟝 2021-05-31 14: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금며드셨다...*

미미 2021-05-31 14:37   좋아요 5 | URL
앗ㅋㅋㅋㅋㅋ티를 너무 냈나요?ㅋㅋㅋ

새파랑 2021-05-31 14:5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 1Q84에 저 내용 기억나요. ㅋ 1Q84 완전 짱 좋음. 제일 많이 읽은 책이었던거 같아요ㅋ
밑줄 그은 문장 완전 재미있고 극공감 가네요 ^^ 미미님은 끝까지 읽으실거 같아요~!

미미 2021-05-31 15:17   좋아요 6 | URL
여러번 읽으셨나봐요! 저는 아오마메 캐릭터가 특히 좋았어요~♡ 새파랑님 계속 같이 뛰어주시면 저도 완독가야죠! 읽는 분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도 같구요. 올해 완독을 꿈꾸며ㅋㅋ😆👍

scott 2021-05-31 20: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처럼 읽다가 포기 하다가 완독 하지도 못한 작가분들이 계시다니!!ㅎㅎ
작가님들은 엄청난 속도로 폭풍 완독 할 줄 알았는뎅 ㅎㅎㅎ
연수 작가님 넘 솔직하고 인간적이 신데요
전 처음에 잃시 찾 야심차게 한달에 한권 완독 목표 세웠다고
1-2-3권만 거의 십몇년째 왕복中ㅎㅎㅎ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 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고,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하기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보다더 적절한 책은 없다.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 아니다.]
ᖗ( ᐛ )ᖘ
오늘의 밑줄 쫘악

미미 2021-05-31 16:04   좋아요 4 | URL
저도 작가님들이라면 왠지 꿀꺽꿀꺽 잘 소화하실줄 알았는데 위안이 됐어요ㅋㅋㅋㅋㅋ그래도 역시 어느정도 읽어보니 한 번만 볼 내용은 아닌것 확실합니다!ㅋㅋ♡⁽⁽ଘ(。•ө•。)ଓ⁾⁾♡

그레이스 2021-05-31 1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약도서 대출하러 갔다가 이책도 함께 데리고왔어요~~

미미 2021-05-31 18:12   좋아요 3 | URL
오 빠르시네요👍 함께 읽는거 신나욤ㅋㅋㅋ✧*。(◍˃̵ᗜ˂̵◍)ॱ◌̥*⃝̣ ⋆♡

붕붕툐툐 2021-05-31 22: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미미님 올려주신 발췌글 보고 빵빵 터지네용~ 바로 다음 빌릴 책으로 찜!!ㅎㅎ

미미 2021-05-31 21:41   좋아요 5 | URL
재밌죠?ㅋㅋㅋㅋ웃다가 침흘렸...;;정도니 말이지요ㅋㅋ강추합니다!👍👍

독서괭 2021-05-31 22: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정말 위로가 되네요~~ 저도 저책 읽어봐야겠어요!!

미미 2021-05-31 22:28   좋아요 3 | URL
그쵸?!! 프루스트 읽다가 몇번 졸았는데 정상 인증받은 기분이예요ㅋㅋㅋㅋㅋ

mini74 2021-06-01 17: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 이야기인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ㅎㅎ

미미 2021-06-01 17:59   좋아요 1 | URL
정말 다행이죠?ㅋㅋ미니님도 정상!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