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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 - 바이러스 · 종교 · 진화
방영미 지음 / 파람북 / 2020년 9월
평점 :
꽤 오래 존경해온 종교학자의 성씨가 '방'이다. 그 분의 글을 읽자면, 문장이 연결되는 행간에서 그 분의 지성, 품격, 무엇보다 종교학자로의 겸허한 태도를 느낄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분의 글을 읽으며 한 없이 작아진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의 저자도 공교롭게도 '방'씨 성을 가졌고, 그것을 책날개 소개란에서 꽤 어필한다. 방영미 작가는 "자기격리의 달인, 자달 방 박사"로 소개된다. 자달 방영미도 종교학 박사이며 현재 "종교모두까기"라는 팟방 운영자라고 소개된다.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가! 혹시 팔로우업 할 종교학자 리스트에 '방 박사'가 한 분 더 추가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그래서 [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를 풍선처럼 부푼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혹스럽게도 이 분의 언어는 내게 친숙한 종교학자들의 호흡이나 조심성(?)을 담고 있지 않다. "코로나19 이전이나 이후나 한결같이 제도화된 종교를 모두 까고 있다"는 출판사측의 소개글처럼 "까대고" 또 "까대고" "조롱하고" "전복하고" "뱉어내고" "구태를 뒤흔들고 폐부를 드러내고" "독설하고" "싸잡아 까대고 또 까대고"
요즘엔 이렇게 시원 사이다의 까대는 글들이 독자들에게 더 어필하나보다. 하지만 종교학자 특유의 치우치지 않으려 균형잡는 언어에 익숙한 나로서는 생경하고 거친 언어가 버거웠다.
작가 방영미 박사가 "까대는" 것은 종교이다. 그런데 여기서 '종교'는 종교학에서 이야기하는 넓은 범주의 의미가 아니라 '제도화된 종교'를 말한다. 인용한 아래 문장들에서 방영미 박사의 종교 개념을 유추할 수 있다.
자달 방영미 박사는 "모든 종교 까대기"에 주력해왔다는데, 그 중에서 내가 보기엔 기독교 까대기에 가장 공을 들이는 듯 하다. 전광훈 목사, 이만희 등 실명이 수차례 등장하며 그 "까대는" 수위도 상당하다. 다시 인용해 본다.
"한국교회의 초고속성장 배경에서 부흥사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중략)...교회가 이를 묵인하고 심지어 이용하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제 한국교회는 가뜩이나 추락중이었는데, 전광훈이라는 망가진 날개로 수직 낙하의 가속도가 붙었다(21)."
"이단 신천지의 교주면서 어쩜 그렇게나 카리스마라곤 1그램도 없이 나타났을까?...(중략)....90세(1931년) 촌부의 날것을 그대로 드러냈을까? 그 아흔의 노인네(이만희)는 귀도 잘 안들리는지 눈앞의 기자들 질문을 직접 받지 못해.....(이하 생략) (22)."
- "누구나 (교회가) 돈 때문에 현장 예배를 고집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27)"
"불교 천주교가 특별히 잘 해서가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해서 칭찬받는 것이다. 개신교가 워낙 사고를 크게 쳐주니 번번히 상대적으로 교양 있어 보인다(28)"
어쩌면 독자로서 나의 불편감은 "점잖은 척"의 이중성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 읽으며 전체적인 기조에서는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으니까. 다만, 그것을 드러내는 언어가 자극적이고 공격적이며 종교학을 연마해온 전문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거친 분노에 지배당하는 인상을 받아서 힘들었다. 자달 방박사가 이 책을 펴낸 이유는 다음의 문장에서 직접 드러난다.
방영미 박사는 종교학을 깊이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 학문연마 과정에서 얻은 것을 대중과 나누고 싶다는 호의를 드러냈다. 동시에 제도권 종교뿐 아니라 기존 종교학의 프레임과 관점 자체에도 강한 의문을 제기하던데, 예를 들면 '상대주의'라는 태도에 대한 호된 비판이 그것이다. 방영미 박사는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상대주의 개념 폐기를 주장하는 듯 하다. 언행일치라고, [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에서 판단중지, 상대주의의 호흡정지를 잘 느끼지 못했다.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개념 상대주의, 나는 대체 누가 이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기준 없는 상대주의란 애초 성립하지 않으며, 기준을 정하는 순간 저울질이 되므로 상대주의가 아니다. 정말 이용당하기 쉬운 개념이 아닌가? (44)"
흥미로운 점은 '상대주의' 개념이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 태도일 뿐이기에 사람들을 호도하기 쉽다 매도하면서도 코즈모폴리티즘 개념을 적극 옹호한다. 게다가 그 옹호의 근거를 차근차근 읽어보면, 결국 상대주의의 태도와 뿌리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로서 나는 멍해진다. "내 안의 완고함이 다양성과 상이성을 열등한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는지(129)"를 성찰하는 태도야 말로 상대주의적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방영미 박사님께 강의를 들으며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