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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ㅣ 미네르바의 올빼미 4
잉에 아이허 숄 지음, 유미영 옮김, 정종훈 그림 / 푸른나무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말하고 쓴 것,
그것은 바로 많은 독일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에요.
단지 그들은 입 밖에 내서 말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랍니다.”
요약 。。。。。。。
히틀러 치하의 나찌 독일이라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투쟁했던 한 남매의 이야기를 기록한 이야기다. 저자인 잉에 숄은 자신의 두 동생인 한스와 조피의 이야기를 과장되지 않은 문체로 차분히 적어 내려간다.
1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독일 국민들은, 무능한 정부에 실망을 하고, 그들이 당하고 있는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을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강력한 정부를 갈망한다. 그렇게 탄생한 정부가 바로 히틀러 정부다.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 사람들은 히틀러를 보며 그런 기대를 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시대가 잘못 흘러가는 것을 눈치 챘다. 한스 숄은 그런 인물 중 한명이다. 어렸을 때부터 히틀러의 전체주의가 어떻게 개인의 인격을 말살하고, 획일을 강요하는지, 인간의 자유가 어떻게 억압되는지를 체험한 그는 대학생이 된 이제, 당당히 반체제 운동을 벌이는 투사가 된다.
사실 그가 한 일은 무력투쟁이나 테러, 요인암살과 같은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런 분야에 관해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한 의과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리 많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그가 한 것은 체제가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이었다. 물론 직접 나서서 군중 앞에서 외친 것은 아니었고,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거나, 한 밤중을 틈타 도시의 벽에 크게 ‘자유’를 쓴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불법적인 정부는 단지 ‘진실’만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협을 느끼는 법, 히틀러의 친위대는 한스와 그의 동생과 동료들을 체포했고, 역시나 불법적인 재판을 통해 그들을 살해하고 만다.
감상평 。。。。。。。
히틀러라는 한 사람의 미치광이로 인해 시작된 전쟁은 수 백 만 명의 사상사와 상상할 수 없는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남겼다. 독일은 전후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했고, 오랫동안 전쟁을 일으킨 나라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살아야만 했다. 어쩌면 그것은 오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국가가 치러야할 당연한 대가일 수도 있다.
그것은 단지 히틀러라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에게 정권을 맡긴 독일국민 전체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독일은 적어도 표면적으로 볼 때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것 같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나라, 유대인 대학살을 사죄하기 위한 기념관을 국가에서 운영하는 나라, 나찌의 상징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범죄가 되는 나라, 이런 나라가 독일이다.
떳떳하지 못한, 그래서 한 편으로는 숨기거나 왜곡시키고 싶은 유혹도 들 만한 과거지만, 그들은 결코 묻어두지 않는다. 이 책도 그런 일환이다. 다만 이 책에서는 단지 부끄러운 과거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작지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과거가 있음을 보여준다. ‘백장미단’이라는 이름으로 나찌의 반인륜적이고 불법적인 정권에 대항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내용 말이다.
이런 책을 독일 중 고등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독일이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결코 그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에 대한 저항이야말로 진정으로 자랑스러운 일임을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우리 옆에 있는 섬나라와는 어쩌면 이렇게 천지차이일까. 식민지배가 조선의 경제를 발전시켰고, 위안부는 없었다고, 매년 패전기념일이 되면 최고 통치권자가 A급 전범들을 참배하러 가는 나라. 이게 일본이라는 비정상적인 나라의 현실이다. 어디 일본뿐이랴. 불법적으로 정권을 탈취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억누르며 독재정치를 했던 전직 대통령, 쿠데타를 일으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전직 대통령을 찬양하며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우리나라에는 버젓이 살아 있다. 아니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목소리를 높여대지 않는다.
이야말로 히틀러 정권이 1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쓰러진 독일경제를 되살린 현명한 통치자였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책을 읽고 나면 독일의 철저한 자기반성의 모습과 일본과 한국의 극우파들의 후안무치한 두꺼운 얼굴이 대조되어 씁쓸한 기분마저 든다.
우리나라의 중 고등학생들에게도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책. 생각보다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