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 페르시아 왕후 에스더의 비밀 일기
진저 가렛 지음, 김윤창 옮김 / 베이스캠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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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게 여러분의 힘이나 돈을 보태려 하지 마세요.
내게 여러분의 연약함을 보태세요.
여러분이 기도와 고통으로 나를 하나님께 인도한다면,
나는 금지된 일이라 할지라도 왕에게 갈 거예요.
죽게 된다면 죽는 거죠.



. 줄거리 。。。。。。。                                

   주인공인 에스더는 바벨론에 의해 나라를 잃은 유대인 소녀다.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의 도시들로 강제이주를 당했고, 얼마 후 그들을 지배하는 나라는 바벨론에서 페르시아로 바뀐다.

   에스더는 혼란 중에 부모를 잃고 사촌인 모르드개의 가게에서 일을 하며 산다. 그 곳에서 만난 키루스라는 청년과 사랑에 빠진 에스더는, 그와의 결혼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설렘 중에 보낸다. 하지만 키루스의 아버지는 더 많은 권력과 지참금을 줄 수 있는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원했고, 비열하게도 마침 새로운 왕후를 뽑기 위해 제국 전역에 내려진 황제의 간택령에 에스더를 넘긴다.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왕의 하렘에 들어가 일 년 동안 왕의 부름을 위해 준비를 시작하게 된 에스더. 그녀는 수 백 명의 다른 경쟁자들을 이기고 왕후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그리고 서서히 그녀의 지척까지 영향을 끼치는 음모의 손길은...



. 감상평 。。。。。。。                                

   구약성경 '에스더'의 이야기를 현대식으로 꾸며 놓은 소설이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큰 플롯 구조는 모두 에스더서의 것을 따라가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책의 앞에 삽입되어 있는 이야기 - 고대의 에스더의 비밀 일기가 발견되어 출판 준비 중이라는 신문 기사 -다. 과연 그 기사 형식의 글이 진실인지, 그리고 이 책이 그 '비밀 일기'를 토대로 만든 것인지, 결정적으로 그 '비밀 일기'가 진짜 에스더의 글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아무튼 그 내용은 이 책에 대한 확실한 흥미를 제공해 준다. 어쩌면 움베르토 에코가 잘 써먹었던 '진실과 상상을 섞어 글쓰기'(소위 팩션이라고 부르는)의 일환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작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에스더의 시점에서 그가 겪어야 했던 여러 일들을, 과연 그가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였을 지를 제법 개연성 있게 적어 내려가고 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몸을 섞어야 하는 운명적 사건에 대한 에스더의 번뇌, 그리고 왕실에서 벌어지는 암투(사실 이 부분은 약간 약하긴 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미련 등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 수 있을 만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들어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읽어내려 갈 수 있다.



   성경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이야기로 잘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성경 하면 일단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소설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흔히 역사 드라마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와 같은 문제가 여기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에스더서에 대해 다 알게 되었다는 오류에 빠지면 안 된다. 성경 자체가 담고 있는 본문의 의미, 문맥, 구조적 특징 등이 많이 훼손될 여지가 있기 때문인데, 이는 본문의 의미를 담고 있는 중요한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내용이 지나치게 현대적인 감이 없지 않다는 점도 약간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특별히 여성에 대한 시각은 흐릿하게나마 페미니즘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크게 우려가 되는 정도는 아니다.)



   몇 가지 조심스럽게 보아야 할 점을 충분히 숙지하고 읽어나간다면, 매우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이런 책과 같은 시도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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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폴 투르니에 지음 / IVP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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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사람과 싸우는 사람은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생활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렇게 해서 가정과 사회의 관계에서 희생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은

독립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주어지지 않는 독립을 얻게 된다. 


 

 

 

. 요약                                                   

 

        현대인들이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도 고독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현대인들의 고독의 원인으로 ‘의회의 정신’, ‘독립의 정신’, ‘소유의 정신’, ‘정당한 요구의 정신’을 꼽는다. 각각은 흔히 매우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정신으로,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히 요구되는 행위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당연하고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것들’에 있었다. 의회의 정신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이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관계를 경쟁으로 바꿔버렸고, 독립의 정신은 마땅히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야할 인간을 혼자 사는 것이 당연한 존재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소유의 정신은 더 많이 갖고 지배하는 것만이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게 만들었고, 정당한 요구의 정신은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리스도의 정신인 ‘진정한 친교’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기독교적 사랑에 근거한 친교의 정신만이 현대인들의 정신에 뿌리박고 있는 고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 감상평                                            

 

        내과 의사이자 정신 의학자라는 저자의 이력, 여기에 자신을 철저한 그리스도인으로 여긴다는 점이 더해지면서 이 책의 독특한 특징이 만들어진다. 게다가 저자는 현대의 민주국가로서는 독특한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하는 스위스라는 나라의 사람이다. 이 점은 책의 곳곳에서 저자만이 생각할 수 있는 예들의 원천이 되고 있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서 문제의 원인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책의 내용을 진행한다. 정신과 의사만이 가질 수 있는, 많은 실제 사례들을 접할 수 있다는 특권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실제 예들은 저자의 주장을 한층 더 강화시켜주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단순히 심리학적인 면으로만 문제를 다루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단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문제에도 그리스도인답게 접근하고 있다는 말이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들은 대부분 성경적이며, 따라서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고독이라는 병을 치료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저자가 생각하는 ‘기독교적’ 해결책이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모두 적용되기에는 약간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카톨릭과 개신교의 모든 교파를 아우르는 그의 에큐메니컬 한 태도와, 명상의 효과에 대한 지나친 신뢰 등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런 몇몇 부분들을 주의해서 읽는다면, 이 책은 오늘날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인간의 고립문제, 개인화, 전체와 어울리지 못하는 부적응 문제들에 대한 기독교적인 한 좋은 대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관계’(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부부나 연인관계 등)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또 굳이 드러나는 관계에 있어서의 어려움이 없더라도, 어차피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라는 생각을 한다면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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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생활 윤리 현대인을 위한 신학총서 8
신국원 지음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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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의 지도하에 제네바의 건물들을 세울 때,

이 건물들이 세상의 어느 건물보다 더 든든해야 그들의 신앙의 진실성이 인증된다고 생각하여

재삼재사 확인하고 조이는 자세로 건축했다고 한다.

 

 

. 요약 。。。。。。。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윤리적 과제들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우선 기독교 윤리가 가지는 특성과 그것의 필요성에 대해 논증한 뒤,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탐구해 나가고 있다.


        총회에서 평신도들을 위해 펴낸 책으로, 분량도 그리 많지 않으며, 특별히 어려운 신학적 개념이나 용어도 나오지 않아 쉽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책이다.


        

 

 

. 감상평 。。。。。。。                                               

 

        얼마 전 발표된 한국종교현황실태조사에서 기독교인의 숫자가 대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나온 뒤, 교계의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한 것이 실제의 삶에서의 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 책이 비록 그런 보고의 결과로 나온 책은 아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상당히 필요한 책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은 윤리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정의와 필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이미 이 분야에 상당한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는 저자의 경력이 잘 드러난다. 또, 개인윤리나 사회윤리 중 어느 것 하나에만 치우치지 않고 양쪽 모두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은 또 하나의 장점이다.

 

        다만 매우 넓은 분야를 몇 페이지의 지면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깊이가 부족한 것은 이 책의 단점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다루지 못하고 원론적인 차원에서 방향만을 제시해 주고 있을 뿐이다. 이 점은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실제적인 도움을 받고자 책을 편 사람들에게는 약간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한다면 엄청나게 두꺼워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되고 말았으리라. 표지판에는 지나치게 많은 글씨가 필요 없는 법이기도 하다. 이 책은 기독교인들에게 분명히 윤리가 필요하다는 것과, 어떤 방향으로 사는 것이 기독교인답게 사는 것인지에 대해 좋은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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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깨어짐 - 거룩한 삶의 신학 시리즈 1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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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참회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경험은 참된 ‘신앙 감정’이 아닙니다.

 



 


. 요약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우리가 여전히 자기에 대한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자기에 대한 사랑, 자기에 대한 만족감, 충분히 잘 하고 있다는, 그리고 잘 할 수 있다는 헛된 긍정의 힘. 이 모든 것이 신자를 신자로서 살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들이다.

        이에 저자는 분명한 ‘자기 깨어짐’이 있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인간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부패해 있는지, 인간에게 있는 죄의 본질과 결과를 올바로 직면할 때에야 자신에 대한 신뢰와 만족, 헛된 긍정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자기 자신을 심판하고 처벌함으로써, 온전히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기 위한 의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거스틴, 칼빈, 청교도 신학을 그대로 이어가는 듯한 문체와 내용전개 방식으로, 저자는 때로는 우직하게, 또 다른 곳에서는 간절하게, 자기 깨어짐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 감상평                                                               

        대충 읽어서는 도저히 이해도 가지 않고, 재미 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지루한 책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신자 안에 있는 자기 사랑과 자기 깨어짐의 본질과 그 과정에 대한 면밀한 분석적인 설명들은 이 책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나도 책을 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중간에 다른 많은 책들을 읽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 자체에 담긴 내용이 편하게 술술 넘어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다른 책에 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당신은 좋다.’, ‘당신은 충분히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라고 긍정적인 자의식을 심어주려고 한다. 이런 경향이 기독교계에 까지 들어와 『긍정의 힘』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사람들의 정신을 빼 놓는다. 분명히 비기독교적이며, 반성경적인 내용임에도, 그런 세속 심리학에서나 통할 법한 내용들이 성경의 이름을 빙자해, 하나님을 빙자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이런 시끄러운 세상에 조용하게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은 도저히 가망이 없는 존재이며,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만이 진정한 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을 설파한다. 이 능력은 내가 필요한 집과 차와 직장, 승진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죽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세상을 이기는 힘’이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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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텔레비전
퀀틴 슐츠 / IVP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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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텔레비전을 그냥 보라’고 부르심 받지 않았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예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탁월한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또 꼼꼼히 챙겨 시청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 요약                                               

 

        기독교 세계관으로 텔레비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가정에서 텔레비전은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으로 취급받고 있을 정도이다. 아무리 가난한 판자촌이라고 하더라도, 또는 낙도, 오지라고 하더라도 텔레비전 한 대 씩은 필수적으로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널리 퍼져서 매우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매체임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지, 그것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즐기면 될 뿐이라는 생각들이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지 않다. 그 것이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위험한 태도이다.

 

 

 

        저자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속성과 그것에 대해 진지하지 않은 접근을 할 경우 왜 위험한지에 대해, 매우 논리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텔레비전에 관한 논란과 그 것이 가지는 위험성을, 4장부터 7장까지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비판적 자세에 관해, 그리고 8장에서는 텔레비전을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인 지침들이 실려 있다.



 

. 감상평                                            

 

        생각했던 것보다 훌륭한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단순한 비판이나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접근을 통해, 텔레비전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하나님의 영역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하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꽤나 잘난 척 하는 현대인들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면서 어떤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텔레비전 시청이 아닐까? 저자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은 무슨 목적을 가지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바라본다. 그것도 한 손에는 리모컨을 들고 수 십 개의 채널을 쉴 새 없이 돌리면서 말이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의 경우 시청률이 40% 이상을 넘기도 한다니, 우리나라로 치면 한 2,000만이 되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비슷한 자세로(눕거나, 어딘가에 기대서), 작고 번쩍이며 시끄러운 상자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끔찍하다. 도시 전체가 좀비로 변해버린 괴기 영화를 보는 듯.

 

        그렇게까지 해서 보는 내용이 훌륭하고 깊이가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내 주위만 돌아봐도 나 말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재미있다고 보는 사람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교육적 특성을 생각한다면.. 에휴.

 

 

 

        상당히 좋은 책이다. 거의 만점을 주고 싶을 정도. 특히 책의 처음 몇 장과 마지막 장은 매우 인상적이다. 다만 책에 등장하는 예가 모두 미국 프로그램이어서 한국 독자들이 읽기에는 약간 현실감이나 박진감이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또, 내용상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선지식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책을 읽는 데 약간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하면서도, 한국의 프로그램들의 실정에 맞는 텔레비전 비평서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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