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처한 교회음악 - 기독교인을 위한 필독서 101
프랭크갤럭 외 지음, 홍성수 옮김 / 두풍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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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음악)가 젊은이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음악이 주는 메시지의 가치기준과 메시지의 성격이 반복을 거듭하면서

젊은이의 마음은 감동받기 쉬운 상태가 될 것이다.

하루에 여섯 시간씩 강력하면서도 감정적인 음악의 매개체에 노출됨으로써

그 메시지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의 마음을 채울 것이고

그들의 삶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 요약 。。。。。。。                     

 

     저자는 현대의 교회음악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전제 아래 책의 내용을 진행시킨다. 구체적으로 그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는 ‘록 음악을 교회음악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록 음악’이라는 수단 자체에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사용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떤 노래가 주는 영향력에 있어서 그 가사보다는 음악 자체(멜로디와 리듬)가 더 큰 영향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록 음악의 경우에는 그 음악 자체에 그리스도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관능성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어떤 식으로 그것을 바꾸어도 교회 안에서는 사용하기에 어렵다는 것이다.

 

 

. 감상평 。。。。。。。                   

 

     어떤 것들을 대할 때, 그 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경향성’까지도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기본적인 전제에는 동의한다. 때로는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내용보다 그 이면에 숨겨진 내용이 더 큰 영향을 끼치는 법이니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하루에 여섯 시간씩 강력하면서도 감정적인 음악의 매개체에 노출됨으로써 그 메시지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의 마음을 채울 것이고 그들의 삶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저자들(이 책은 공저로 되어 있다)은 록음악에 대해 매우 경계하는 입장을 취한다. ‘위험에 처한 교회음악’이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 책의 제목은, 그런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저자들이 보는 ‘위험’은 록음악이 교회음악 안으로 들어오는 현상을 말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록 음악이 가지고 있는 ‘관능성’ 때문이다. 저자는 ‘어떤 감정은 악하다’는 전제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악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 역시 악하며, 록음악이 그런 기능을 하므로 그것은 악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삼단논법을 사용해 자신의 주장을 매우 확고한 것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저자의 이런 주장은 매우 극단적인 반문화적 견해나, 혹은 엘리트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분하고 전자만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를 즐겨하던 고전문화 이론가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선 저자의 논지의 핵심적인 전제인 ‘어떤 감정은 악하다’는 문장은 과연 옳을까? 이 문장은 ‘어떤 감정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감정 중 본질적으로 악한 감정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어떤 감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절치 못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분노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분노조차도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할 수는 없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악을 ‘미워하고’, 사탄을 ‘대적하라’고 강하게 권하고 있다. 즉, 분노와 같은 파괴적 감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적절한 방향을 향해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악을 향해 있을 때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관건은 ‘구조’가 아닌 ‘방향’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오류는 어떤 음악의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때문에 특정 장르, 특정한 비트, 특정한 악기와 기구들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선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성경의 진술과는 모순된다. 성경의 내용에 충실하게 말하자면,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 악하지는 않으며, 다만 인간의 타락과 그 영향력으로 인해 그것의 방향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은 그것들을 비난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본래의 형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나는 록 음악 자체가, 그것에 사용되는 악기나 특정한 리듬, 또는 전자적으로 소리를 변형, 증폭시키는 어떤 기구 자체가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무시하는 주장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내 생각이 기존에 나와 있는 모든 록 음악을 교회 안에서 노래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록음악이 태생적으로 6, 70년 대 영국과 미국의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마약과 같은 향정신성 약물들, 극단적인 체제의 부정, 변태적인 섹스나 인간관계 등의 요소들을 안고 성장해 온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그런 흐름을 그대로 이어 받아 자신이 만든 음악에 그런 변태적이거나 건전치 못한 사상들을 섞어 짜 내려간 노래들이 많고, 이런 것들은 분명히 경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방향의 문제이지 본질이나 구조의 문제는 아니다.

 

     록 음악 안에 있는 타락의 요소들을 제거하고 정련 시키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멀리하고 매장시키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개인적으로는 록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록 음악에 관한 변론 아닌 변론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바르게 회복시키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꽤 극단적이라는 것을 의식했는지, ‘그리스도인들도 비종교적이면서 훌륭한 음악은 들을 수도 있고 또 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덧붙인다. 하지만 이 역시도 이원론적인 태도가 묻어 있는 진술이다. 사실 인간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는 그 자신의 종교적 신앙이 함께 나타난다. 특별히 예술과 관련된 부분에는 이러한 경향이 좀 더 분명하고 강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비종교적인’ 무엇을 상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문제 이외에, 현대의 교회 음악이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적, 인간 중심적 경향에 대한 지적은 매우 날카롭고 타당하다. 또, 매체 자체의 본질적인 악함이 아니라 작곡자의 경향성에 대한 비판 부분은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책의 구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이 책은 구체적인 추론 과정은 그다지 드러나지 않고, 대부분 단언과 유리한 어구들(성경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만 나열하는 모습이다. 사실 이 책의 논리적인 연결은 최초에 등장한 몇 문장의 삼단논법이 거의 전부이다. 썩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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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컴 X vs. 마틴 루터 킹 - 다르지만 같은 길 1
제임스 H. 콘 지음, 정철수 옮김 / 갑인공방(갑인미디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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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어떻게 해서 백인들은 기독교도임을 공언하면서도

여전히 흑인들을 노예로 소유하거나 교회와 사회에서 분리시킬 수 있었는가?

이는 흑인 기독교도들에게는 심각한 오류요, 역설이었다.

 
 

. 요약 。。。。。。。                      

 

     제목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책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으로 평생을 동료 흑인들의 권리를 위해 살다 간 두 사람이지만, 제목에도 나타나듯(vs.), 두 사람의 일생은 많은 부분에서 대조적이었다. 이 책은 그들의 삶에 나타난 대조점들을 중심으로 살피면서, 그들의 사상의 중심을 살피고 있다.

 

     이 두 사람을 극명하게 대조시키는 것은 사람들이 그들을 부르는 별명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람들은 마틴을 ‘꿈꾸는 자’라고 불렀고, 맬컴은 ‘사악한 검둥이’라고 불렀다. 1장과 2장은 이 두 사람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룬다. 3장부터 6장까지는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미국 내 흑인운동의 양 갈래의 투쟁을 다룬다. 마틴 루터 킹을 중심으로 한 통합주의자(흑인과 백인의)들과 맬컴 엑스를 중심으로 한 흑인민족주의자들이 그것이다. 필연적으로 마틴은 비폭력을 중심으로 한 투쟁을, 맬컴은 방어를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게 된다.

 

     7장과 8장은 두 사람의 마지막을 그리는 장들이다. 흑인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목적은 같았지만, 서로 다른 방법을 취했던 두 사람. 하지만 의외로 평생 동안 두 사람은 부딪히지 않았다. 오히려 생의 말기에 다다랐을 때 두 사람은 진심으로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게 되었고, 서로의 입장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함께 투쟁을 펼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이런 기대는 두 사람 모두 암살로 급작스럽게 생을 마감하게 되면서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9장은 이제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며, 두 사람이 걸어온 투쟁을 요약하는 장이고, 10장에서는 두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를 지적한다. 11장은 이상의 내용을 통해 오늘날 계승해야 할 부분들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 감상평 。。。。。。。                    

 

     처음 생각과는 달리 제법 학술적인 냄새가 풍기는 책이었다. 마틴 루터 킹과 관련된 책은 두 권 정도 읽은 경험이 있지만, 대개 그의 연설이나 설교집이어서 한 인물을 종합적으로 살피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또, 말컴 엑스에 관한 내용도 매우 자극적으로 편집된 어떤 책의 한 챕터를 통해서만 가볍게 접했던 터라, 이 책은 이 두 인물에 대한 나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줄만한 책이었다.

 


     책을 통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두 사람의 ‘행동’이었다. 둘은 도서관이나 강의실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만 반복하지 않았으며,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믿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이 말을 한 대로 살았고, 때문에 그들이 갖는 힘은 결코 작지 않을 수 있었다. 또, 철저한 도덕성은 그들이 가진 큰 자산이었다. 누구도 그들을 도덕적 이유로 비난할 수가 없었기에,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과연 어떤 요건들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열매는 없이 잎만 무성한 나무들처럼 말만 하고 행동은 없는, 거기에 도덕적인 결함들까지 엄청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과 얼마나 비교가 되는가.

     한편 그들의 그러한 삶에 종교적 신념이 끼친 큰 영향도 주목할 만하다. 마틴은 기독교, 맬컴은 이슬람교라는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단지 ‘배경’으로의 역할만을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대하는 자세에 핵심적인 기능을 했다. “하나님이 홀로 모든 것을 다 하시지는 않습니다. 방관하는 교회는 정말 위험한 교회입니다.”라는 마틴의 말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많은 관심과 그에 뒤따르는 실천들, 그리고 훌륭한 리더가 갖춰야 할 여러 조건들 등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들이라 하겠다. 또,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이분법적인 대결구도가 아니라, 미국 흑인운동이라는 큰 조류 안에 있는 두 흐름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점 등은 이 책이 갖는 독특한 공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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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 세이비어교회
유성준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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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큰 규모는 실제로 효과를 반감시킵니다.

그것은 오히려 반문화적이기 때문에

깊이를 가지고 문화로의 중독을 거부하고

진정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는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세이비어교회는 숫자를 통해서 오는 힘의 유혹을 의도적으로 거부합니다."

 

 

. 요약 。。。。。。。              

 

     대형 교회가 곧 좋은 교회로 여겨지고 있는 요즘, 이런 추세와는 정반대로 나가는 교회 공동체가 하나 있다. 바로 ‘세이비어 교회’이다. 세이비어 교회는 작다. 교인으로 등록된 사람이 고작 수십 명(지금은 좀 더 늘어났을지 모르겠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작은 교회가 다른 수 천, 수만의 교인들이 모여 있는 교회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세이비어 교회만의 철저한 훈련과 올바른 비전의 제시가 이 놀라운 일을 일으킨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세이비어 교회를 탐방한 저자가 그 교회에서 받은 감동을 나누고, 교회의 몇 가지 사역들을 소개함으로써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종의 교훈을 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자원봉사자들이 무보수로 매년 7,000시간씩 봉사를 함으로써 운영되는 무료 병원인 ‘콜롬비아 로드 진료소’, 노숙자들을 돌보고 보듬어주기 위해 세운 ‘그리스도의 집’, 마약과 알콜 중독자들을 위한 ‘사마리아인의 집’, 인근의 낡은 아파트 두 동을 구입해 집이 없는 이웃들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보급하기 시작해 이제는 수십 동의 아파트를 사용할 수 있게 발전한 ‘희년 주거사역’. 빈민지역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한 ‘만나 주거사역’ 등, 이름만 들어도 크고 놀라운 일들을 어떻게 그 작은 공동체가 추진하고 있었을까를 설명하는 1장과 2장이 지난 후, 저자는 잠시 논의를 밖으로 돌려서 교회사 속에서 나타난 공동체 운동의 흐름을 살피며 세이비어 교회와 같은 시도가 역사적으로 반복적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준다.(3장) 4장부터 6장까지는 저자가 받은 감동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바람직한 교회관을 제시하고자 한다.

 

 

 

. 감상평 。。。。。。。          

 

     오랜만에 멋진 교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소위 ‘성공하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교인 숫자가 많이 늘고, 큰 건물을 지은 교회들을 소개하는 책은 많지만, 정작 성경에 나온 정신과 비전에 충실한 교회를 소개하는 책은 생각보다 드문 것이 현실인데, 이 책은 달랐다.

 

     세이비어 교회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깊은 인상을 준 것은, 교회의 외형보다 본질에 충실하고자 애쓰는 모습이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되고자 노력을 안하는 수준이 아닌, 아예 사람이 늘어나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고든 코스비 목사의 생각은 약간 충격적이기까지 했다.(물론 나는 교인이 늘어나는 현상 자체까지를 부정적으로는 보지는 않는다.)

     또 한 가지를 꼽는다면 세이비어 교회의 폭넓은 사역이다. ‘나눔과 섬김’이라는 비전 아래 이루어지는 여러 사역들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이 세상에 실현하는 현장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이비어 교회와 같은 시도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크게 고무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세이비어 교회 자체에 대해서는 많은 도전을 주는 책이지만, 책 자체로서의 구성이라는 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세이비어 교회의 사역들을 설명하는 책인가, 아니면 세이비어 교회에 관한 저자의 감상을 쓴 책인가. 저자는 이 책의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책을 만들고 있다. 세이비어 교회의 사역에 관한 설명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저자의 감동과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교회의 인물들의 자서전에 자신의 자서전을 끼워 넣기도 한다. 때문에 책의 흐름이 자주 끊어지는 듯 한 느낌이고, 책이 좀 가벼워 보이기도 한다.

     두 번째로 교회사에 관한 저자의 사관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감리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저자이기 때문에 감리교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까지는 뭐라 하기 어렵지만(사실 감리교가 영국사회에 일으킨 혁명적인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고대의 몬타누스와 같은 인물까지 호의적으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책이 설명하는 내용은 참 좋지만, 저자의 약간은 성가신 개입이 몰입을 살짝 방해하는 책. 과유불급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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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타락 구속 - 20주년 확대개정판
알버트 월터스.마이클 고힌 지음, 양성만.홍병룡 옮김 / IVP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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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오랫동안 고대했던 그 나라의 도래에 관한 것을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또한 그 나라가 도래했음을 증시하는 것이었다.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특히 행하시는 예수님은 그 자체가 바로 그 나라의 도래에 대한 증거였다.

 

 

     

. 요약 。。。。。。。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이 책은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설명하는 책이다. 목차를 보면 대략 내용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데, 저자는 우선 ‘세계관’이란 무엇인지를 논하고(1장), 이어서 세계관적인 질문들에 대한 기독교적인 답변을 한다. 저자는 특별히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세 가지 주제들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을 설명하고(2-4장), 5장에서는 그 실제적인 적용을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여준다.

  

 

   

. 감상평 。。。。。。。                    

 

     기독교 세계관의 고전 가운데 한 권이다.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진지하게 따져보지 않는 ‘세계관’이라는 주제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첫 번째 유익이다.

 

     특별히 ‘구조와 방향의 구분’이라는 한 장(章)을 할애해, 기독교 세계관의 직접적인 적용의 예를 다루고 있는데, 비교적 초기에 쓰인 이 책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매우 탁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워낙에 익숙해서 잘 아는 사람을 소개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까? 거의 일 년 간 세계관에 대해 공부하고 나름대로의 연구를 지속해 온 내게 이 책은 참 익숙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그래서 아주 오래 전부터 알아왔던 책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도리어 이 책의 면면에 대한 분석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사실 책의 비중 상 진작 읽었어야 했다)

 

     논리적으로 잘 짜인 순서대로,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을 쉽게 제시하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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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 페르시아 왕후 에스더의 비밀 일기
진저 가렛 지음, 김윤창 옮김 / 베이스캠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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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여러분의 힘이나 돈을 보태려 하지 마세요.
내게 여러분의 연약함을 보태세요.
여러분이 기도와 고통으로 나를 하나님께 인도한다면,
나는 금지된 일이라 할지라도 왕에게 갈 거예요.
죽게 된다면 죽는 거죠.



. 줄거리 。。。。。。。                                

   주인공인 에스더는 바벨론에 의해 나라를 잃은 유대인 소녀다.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의 도시들로 강제이주를 당했고, 얼마 후 그들을 지배하는 나라는 바벨론에서 페르시아로 바뀐다.

   에스더는 혼란 중에 부모를 잃고 사촌인 모르드개의 가게에서 일을 하며 산다. 그 곳에서 만난 키루스라는 청년과 사랑에 빠진 에스더는, 그와의 결혼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설렘 중에 보낸다. 하지만 키루스의 아버지는 더 많은 권력과 지참금을 줄 수 있는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원했고, 비열하게도 마침 새로운 왕후를 뽑기 위해 제국 전역에 내려진 황제의 간택령에 에스더를 넘긴다.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왕의 하렘에 들어가 일 년 동안 왕의 부름을 위해 준비를 시작하게 된 에스더. 그녀는 수 백 명의 다른 경쟁자들을 이기고 왕후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그리고 서서히 그녀의 지척까지 영향을 끼치는 음모의 손길은...



. 감상평 。。。。。。。                                

   구약성경 '에스더'의 이야기를 현대식으로 꾸며 놓은 소설이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큰 플롯 구조는 모두 에스더서의 것을 따라가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책의 앞에 삽입되어 있는 이야기 - 고대의 에스더의 비밀 일기가 발견되어 출판 준비 중이라는 신문 기사 -다. 과연 그 기사 형식의 글이 진실인지, 그리고 이 책이 그 '비밀 일기'를 토대로 만든 것인지, 결정적으로 그 '비밀 일기'가 진짜 에스더의 글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아무튼 그 내용은 이 책에 대한 확실한 흥미를 제공해 준다. 어쩌면 움베르토 에코가 잘 써먹었던 '진실과 상상을 섞어 글쓰기'(소위 팩션이라고 부르는)의 일환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작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에스더의 시점에서 그가 겪어야 했던 여러 일들을, 과연 그가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였을 지를 제법 개연성 있게 적어 내려가고 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몸을 섞어야 하는 운명적 사건에 대한 에스더의 번뇌, 그리고 왕실에서 벌어지는 암투(사실 이 부분은 약간 약하긴 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미련 등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 수 있을 만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들어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읽어내려 갈 수 있다.



   성경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이야기로 잘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성경 하면 일단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소설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흔히 역사 드라마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와 같은 문제가 여기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에스더서에 대해 다 알게 되었다는 오류에 빠지면 안 된다. 성경 자체가 담고 있는 본문의 의미, 문맥, 구조적 특징 등이 많이 훼손될 여지가 있기 때문인데, 이는 본문의 의미를 담고 있는 중요한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내용이 지나치게 현대적인 감이 없지 않다는 점도 약간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특별히 여성에 대한 시각은 흐릿하게나마 페미니즘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크게 우려가 되는 정도는 아니다.)



   몇 가지 조심스럽게 보아야 할 점을 충분히 숙지하고 읽어나간다면, 매우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이런 책과 같은 시도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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