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아우슈비츠 이야기
아네트 비비오르카 지음, 최용찬 옮김 / 난장이 / 2009년 9월
품절


우리는 옷과 신발과 머리카락까지도 빼앗겼다. 그들은 우리의 이름마저도 앗아갈 것이다. 내 자신이 과거에 누구였는지를 잊지않으려면, 우리는 스스로 내부에서 그 힘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에서 이름이 아닌 그 무언가라도 남아있도록 안간힘을 써야 한다.-24~25쪽

모든 것은 너희들의 유언을 후세에 전해주는 사람들, 즉 이 시대의 역사를 쓰게 될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살해된 민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는, 결국 살인자들이 살해된 민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 일뿐이다. 그래서 만약 살인자들이 승리하게 된다면, 그들이 이 전쟁의 역사를 쓰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가 학살된 이 사건이 도리어 세계 역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 중 하나로 표현될 것이고, 앞으로의 세대는 그러한 십자군 기사들의 용기를 가리게 될 것이다. 그들의 모든 말은 복음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폴란드 유대인이나 바르샤바 게토, 마이다네크의 게토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세계의 기억을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결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68~69쪽

많은 역사가들은 폭력이 도처에서 자행되고 죽음이 일상사가 된 전쟁이라는 맥락에서만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단다. 어떤 역사가들은 인간이란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배척당하고 싶지 않아서, 가령 겁쟁이가 안 되려고 하기 때문에 집단 대학살에 동참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 또 다른 사람들은 권위에 대한 복종으로 그것을 설명하기 도 해.-72쪽

그런데 엄마, 독일인들이 모두 죽이려고 달려들 만큼 유대인들이 무슨 짓을 한 건가요?

아무 짓도 안했단다. 어떤 사람이 희생될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이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질문을 하곤 하지. 이로써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했음에 틀림없다고 사람들은 간주하는 거지. 그리고 희생자 자신이 아무런 한 일이 없는데도 마치 책임이 있는 양 느끼게 되는 묘한 경우도 종종 있단다. 성폭행의 희생자가 된 여성의 경우에 그런 경향이 곧잘 나타나지. 어떤 이들은 그들에게 닥친 일에 대해서 그들 자신도 다소간 책임이 있다고 믿거든. 그러나 나치들은 실제로 유대인이 비난 받을 짓을 해서 비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저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였어.-107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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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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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는 가끔 홍콩이 지나치게 생생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생명력이 너무 넘쳐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어디에나 벌레가 기어다녔고, 언던에는 들개가 있었, 모기는 맹렬하게 번식했다. 사람들은 산 한복판에 길을 내고 빌딩을 세웠지만, 자연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다.-73쪽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다. 디너파티에서 누군가가 비평을 하자 그 말에 대해 완벽하고 날카로운, 심지어 도발적이기까지 한 대답을 생각해내고는, 숨을 들이쉰 뒤 그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결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그런 순간에 클레어는 변화의 가능성을 감지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했던 것을 삼켜버렸고, 변화할 수도 있었던 또 다른 클레어의 모습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116쪽

이곳 수용소에는 색깔이라곤 전혀 없다. 옷은 이미 오래전에 남아 회색이 되었고, 음식도 모두 한 가지 색이며-접시 위에는 희미한 갈색 진흙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건물은 콘크리트이다. 윌은 붉은색, 자홍색, 해바라기의 노란색, 생생한 녹색을 그리워한다. 회색과 갈색에서 벗어나 얻는 유일한 위안은 가끔 청아한 푸른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과 청록색으로 물결치는 바다뿐이다.-237쪽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파티에서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좋은 상대 이상으로 생각해준 사람도 없었고. 그런 건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일이지. 안그래? 하지만 당신은 나를 사랑했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준 거야. 그리고 그게 진실로 느껴졌어. -3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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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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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거스 씨가 결코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그가 나를 대장간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더라면, 차라리 그랬더라면 비록 만족하진 못했어도 이보다는 행복했으리라!-131쪽

눈앞에 닥친 죽음은 무서웠다. 하지만 죽고 난 뒤 사람들에게 잘못 기억되리라는 두려움은 죽음보다도 훨씬 더 무서웠다. -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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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2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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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이렇게 정지되어 있지만 않았다면, 모든 물건들이 이렇게 창백하니 퇴색한 상태로 정지되어 있지만 않았다면, 푹 꺼지고 쭈그러든 육체 위의 그 빛바랜 신부 옷조차도 그토록 시체 위의 수의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며 그 긴 면사포조차도 그토록 시체 싸는 천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113쪽

아이들이 누구한테 양육을 받든지 간에 아이들이 존재하는 조그만 세계에서, 부당한 처사만큼 아이들에게 예민하게 인식되고 세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다. 아이에게 가해지는 가해지는 부당한 처사가 그저 조그만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작은 존재이고 아이의 세계도 작다. 그리고 그런 작은 세계에서 아이의 흔들목마는 비율로 칠 때, 우락부락한 아일랜드 사냥개만큼이나 커다랗고 높이 솟은 존재로 보이는 법이다.-118쪽

그날은 나에게 잊지 못할 중대한 날이었다. 그날은 나에게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느 누구의 인생이든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에서 어느 선택된 하루가 빠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인생의 진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그대 독자여,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라. 철과 금, 가시와 꽃으로 된, 현재의 그 긴 쇠사슬이 당신에게 결코 묶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잊지 못할 중대한 날에 그 첫 고리가 형성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135쪽

마을은 아주 평화롭고 고요했으며, 엷은 안개가 마치 나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장엄하게 걷히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참으로 천진난만하고 작은 존재로 살아왔는데, 이제 저 너머 세상은 참으로 너무나 알지 못하는 드넓은 곳이었다.-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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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1
안애경 지음 / 나무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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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핀란드 친구와의 산책길에서 난 아주 예쁜 들꽃 하나를 발견하고 주저 없이 꺾어 든 적이 있다. 옆에서 함께 걷던 친구가 나의 돌출 행동에 놀라며 물었다. "왜 꽃을 꺾어?" "예쁘니까." "예쁘니까 그 자리에 놓아 두어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지!"
이날 느낀 나의 부끄러움은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게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자연 그대로가 아름답다는 사실에 눈을 뜨기시작했다. 어디에든 그 풍토에 맞는 아름다움이 있고 그 풍토에서 생겨난 문화와 예술, 디자인이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자연환경이 다음 세대에 물려줄 유산임을 인식하며 살아간다. 자연은 인간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엄격하게 지킨다. 그 원칙만큼은 온 세상 사람들이 디자인을 생각할 때 함께 공유해야 할 일이 아닐까?
-8쪽

빛은 감정이다.

빛에 감정이 있다.
그래서 빛은 사람을 움직인다.-34쪽

이 세상에 물질이 부족해서 받는 고통은 없을 것이다. 단지 마음이 부족할 뿐이다.-74쪽

"공공장소는 다양한 성격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찾는 장소입니다. 일단 누구에게나 안정적인 이미지로서 존재해야 하고 편안함을 주어야 합니다.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시설물은 색상도 대중을 고려해서 너무 두드러지지 않는 녹색과, 회색톤, 그리고 갈색 혹은 나무빛깔의 자연색으로 제한한다는 것이 핀란드 공공디자인의 기본 원칙입니다."
(중략)
공공장소의 디자인은 공통적으로 다수를 배려한다는 원칙과 기능을 우선시하는 평등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152쪽

도시계획이란 무언가를 채워 놓는 것만이 아니라 시민을 위해서 어딘가를 어떻게 비워두어야 하는 지를 명확하게 판단하는 일을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169쪽

나는 지금, 노동으로 어려웠던 생활을 빛나는 희망으로 스오하시킨 당시 사람들을 상상한다. 자연과 벗하며 노동의 대가를 스스로 확인하며 살아갔던 그들의 안목과 이들에게 자유로운 공간을 허락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그 자유 안에서 꽃피운 어떤 질서는 지금,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인간의 질서는 자유 안에서 스스로 꽃핀다는 사실에 눈뜨는 시간이다. -218쪽

물질보다는 정신과 마음을 우선으로 하는 풍토를 가진 문화에서는 겉모습이 중요하지 않다. 겉모습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 인간의 평등함은 나이나 지위를 넘어서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에 도달한다.-284쪽

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은 사람 사이를 더욱 안전한 거리감으로 지켜준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은 신뢰의 공간이고 정신적 안정을 갖는 공간이며, 마음을 담은 공간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 깨어졌을 때 사람들은 불안정해지기 시작하며 집중력을 잃는다.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마음을 다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내가 공감하는 핀란드 사람들의 공간 개념은 그래서 서로 침묵하는 시간을 유지한다. 사람들이 침묵의 공간을 두고 그 안에 자신을 자유롭게 내버려 두는 시간을 서로 인정한다.-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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