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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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수학과 과학이 잘 안되어 문과를 선택하고 대학도 그렇게 진학한 전형적인 문과생이다. 그런 내가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 사람 때문이다. 한 사람은 장대익 교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브라이언 그린이다. 장대익 교수의 '다윈의 서재'를 보며 진화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브라이언 그린의 '멀티 유니버스'를 보며 우주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문과생으로 철학과 사회과학, 인류사 등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것들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진리를 말해주기 때문이라 믿었기 때문인데 놀랍게도 진화론과 우주론은 역시 당연히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고 보다 진리에 다가가고 있었다. 같은 이유로 하나 더 좋아하게 된 분야는 지리학인데 이 지구의 땅덩어리가 만들어낸 지형적 제약과 지정학, 기후 등으로 한 지역의 운명이 상당히 좌우되는게 무척 근원적인 설명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근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를 낸 후 부쩍 세계 여러 지성들에 의한 인류사 책이 많아 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무래도 하라리가 자신만의 식견을 조금 보태 인류의 발전사를 설명한 것이 자극이 된듯 하다. 그래서 우주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인 브라이언 그린도 자신의 전공을 발판삼아 인류사를 아니 더 크게 우주사를 설명한다.

 제목은 거창하게 엔드 오브 타임, 즉 시간의 끝으로 인류의 발전사를 아득히 넘어선 느낌이 든다. 하여튼 브라이언 그린이 책에서 주요 우주사의 흐름에 대한 중심개념으로 잡은 것은 열역한 2법칙이다. 잘 알려진 엔트로피다. 이유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빅뱅 이래로 모든 우주의 만물은 무질서상태로 소모, 퇴화, 쇠퇴한다. 어찌보면 빅뱅 이전은 매우 좁은 범위에 고도의 물질과 에너지가 뭉쳐있는 상당한 질서상태였고, 빅뱅이후는 이것이 완전히 무너져 무한한 우주공간을 이 물질과 에너지로 균일하게 채워나가는 상황 같기도 하다. 잘 뭉친 먹한 방울이 거대한 종이에 떨어지고 균일하게 번져나가며 점점 흩어지고 희미해져 아예 색을 잃어나가는 과정 같다. 실제로 우리가 체험하는 자연상태도 열역학2법칙을 따르기에 빅뱅 이후 엔트로피를 높여가며 물질과 에너지가 퍼져나가는 것은 당연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직 과학은 왜 우주에 열역학 2법칙이 작용하는지 설명하진 못한다. 왜가 아닌 어떻게만 아는 상황인 것이다. 

 하여튼 브라이언 그린은 엔트로피를 좀 다르게 본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로 정의되는 편인데 브라이언 그린은 여기에 통계를 들이댄다. 엄청나게 많은 구슬이 바닥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 구슬 한개한개의 위치를 바꾸면 이는 분명 바뀐 것이지만 실제로 변화는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구슬은 열과 행을 맞추어 같은 간격으로 질서정연히 있는 상태라면 하나를 다른곳으로 바꾸면 큰 변화가 감지된다. 때문에 브라이언 그린은 엔트로피는 그룹의 크기, 즉 구별되지 않는 멤버의 수와 같다고 말한다. 무질서한 구슬 그룹은 한 두개를 바꾸어도 크게 구별이 안되지만 질서있는 구슬 그룹은 바꿀수 있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 그래서 무질서한 쪽은 엔트로피가 낮고, 질서가 있는 쪽은 엔트로피가 높다. 

 그리고 이 엔트로피는 우리의 시간관념과도 일치한다. 물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시간은 비가역적이지 않다. 그들이 연구한 어떤 방정식에 의해서도 시간은 한방향으로 흐르지 않으며 반대로 흐르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시간은 실제 비가역적이다. 이는 엔트로피 때문인데 빅뱅이후 시간과 공간이 생겨나며 엔트로피가 낮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양자역학에 의해 물질과 에너지는 엔트로피가 높은 방향으로 흐를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희박한 확률이며 무한한 시간속에서 일어날수도 있지만 거의 일어날수 없다.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엔트로피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보게되며 이로인해 시간은 비가역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완벽하게 설계된 미적인 건축물이 오랜 세월이지나 방치되면 파괴되어 흙으로 돌아갈뿐이지 다시 성이 되진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보다는 엔트로피의 차이를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엔트로피는 압력과 온도, 공간과 관련한다. 같은 수의 분자가 좁은 영역에 빽빽히 모이면 엔트로피는 낮다. 반대로 넓은 영역에 퍼져있다면 엔트로피는 높다. 온도가 높아지면 분자의 운동이 빨라져 분자속도가 높아지므로 엔트로피가 높고, 낮은 온도에선 분자의 운동이 느려 엔트로피가 낮다. 압력은 분자수와 관계하는데 분자수가 적으면 압력은 낮고 엔트로피가 낮다. 하지만 분자수가 많으면 압력은 높아지고 엔트로피는 높아진다. 즉, 정리하면 분자수가 적고, 온도가 낮으며, 점유공간의 부피가 적으면 엔트로피는 낮다. 반면 분자수가 많고, 온도가 높으며, 점유공간의 부피가 크다면 엔트로피는 높다. 그리고 엔트로피는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변화해나가며 그러기 위해 흐른다. 엔트로피는 흐름으로 결국 이동이 필요한데 그 이동방법이 바로 열의 흐름이다. 열을 흡수한다는 것은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이고 이는 분자수의 운동속도를 증가시켜 결국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이처럼 엔트로피는 빅뱅이후부터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증거가 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그것을 보고 사고를 하는 인간 같은 생물들이다. 이들은 고도의 질서를 가진 존재로 엔트로피가 매우 낮은 존재다. 엔트로피가 높게만 흘러가는 우주에서 어떻게 이런 존재들이 생겨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이것은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배하는 것이 아닌가? 브라이언 그린은 아니라고 답한다. 엔트로피는 국소적으로는 감소할 수 있지만 이것이 전체적으로 더 큰 증가를 불어온다면 이것은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질서를 만들어내는 이런 지역은 주변 환경에 엔트로프를 증가시키는 열과 폐기물을 꾸준히 만들어내어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엔트로피 총량을 증가시킨다. 우리 같은 생물체만 봐도 그렇다. 생물은 고도의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열과 폐기물을 꾸준하게 방출하여 주변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때문에 엔트로피가 국소적으로 높은 지역은 오히려 우주 전체를 고엔트로피로 이끌고 가는 촉매작용을 한다. 

 국소적으로 엔트로피를 낮추면서 항성과 행성 그리고 생명이 생겨난 이유를 살피려면 빅뱅으로 돌아가야 한다. 중력은 대개 당기는 힘이지만 공간에 유주연료라는 특별한 물질이 가득차 있고 이들이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고르게 퍼지면 밀어내는 중력이 발생한다. 지름이 무려 1/10억*10억*10억m의 작은 영역에 에너지 장이 형성되고 균일하면 밀어내는 그 힘이 폭발적으로 작용하는데 이것이 빅뱅이다. 빅뱅이전 초기우주는 극도로 혼란하고 역동적이어서 균일하기가 매우 힘들었는데 오랜 기다림속에서 언젠간 발생할 이 극히 적은 확률의 일은 결국 일어났다. 

 빅뱅직후 1/10억*10억*10억 초 사이에 밀어내는 중력으로 극히 작았던 영역이 지금의 관측 가능한 우주만큼 커졌다. 여전히 인플라톤 장은 극도로 불안했는데 이 인플라톤 장이 터져서 에너지가 입자로 변화하였고 이들이 서로 빠르게 반응하여 오늘날의 양성자, 중성자, 전자를 형성한다. 그리고 인플라톤의 양자요동으로 균일한 우주에서 순간적으로 입자의 밀도차가 발생하는 지역이 발생하였고 여기서 당기는 중력이 발생하여 서로 뭉쳐 더욱 강력한 중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수억년이 지난후 입자들은 충분히 모여 핵반응을 일으키는 상태에 이른다.

 향후 은하를 이룰만큼 충분히 커진 지역에서는 중심부가 수축하여 핵반응으로 강한 열이 차가운 변두리로 뿜어져 나오게 된다. 하지만 열을 흡수한 주변부는 열의 흡수로 공간이 팽창하여 오히려 다 차가워지게 된다. 즉, 중심부의 엔트로피 감소보다 주변부의 엔트로피 증가가 더욱 커 열역학2법칙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힘이 중력과 핵력이다. 중력으로 물질과 에너지가 퍼지고 밀도차로 물질과 에너지가 뭉친다. 중력으로 인해 핵력이 발생할 만큼의 상황이 되고 핵력에 의한 핵분열에 의해 수축이 멈추고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열과 빛이 방출된다. 즉, 엔트로피가 다른 공간으로 이전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브라이언 그린은 책에서 중력과 핵력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구조체의 근원이라 말한다. 

 항생과 행성이 생겨났으니 이젠 생명이 생겨날 차례다. 원자는 에너지가 낮은 위치부터 전자를 배치한다. 여기가 다 차야 다음 위치에 전자를 배치하는데 1층엔 2개, 2층엔 8개, 3층엔 18개인 식이다. 원자는 각 층아 다 차거나 아예 비어야만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원자는 항상 각 층의 전자가 모자라거나 남아 불안한 상태가 되며 이로 인해 서로 전자를 주고 받아 결합하여 분자를 형성한다. 이 과정이 화학반응이다. 

 물분자는 산소원자는 1층엔 2개 2층엔 6개의 전자가 자리하여 2층에 2개가 모자란다. 반면 수소는 1층에 1개만 있다. 산소원자는 수소원자 두 개와 결합하여 전자 2개를 얻으며 수소는 전자 각각 한개씩 잃게 된다. 서로 안정화되는게 이 화학반응의 결과 생겨난게 물이다. 물은 전기적으로는 중성이나 가운데 산소에 양쪽 끝에 수소를 한 개씩 두어 산소쪽은 음극을 수소쪽은 양극을 띠어 각각 다른 전하를 끓어당긴다. 때문에 물질이 물과 닿으면 각각 그 부분으로 전자를 빼앗겨 분해된다. 물이 물질을 녹이고 포획하는 능력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물은 생명활동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생명은 주변환경에서 에너지를 흡수하여 질서정연한 구조를 유지하고 저품질의 에너지를 외부로 방출한다. 입자들도 그러한데 불규칙한 입자는 외부에너지를 흡수하면 질서 정연한 배열로 바뀐다. 그리고 향후 유입되는 에너지는 현재의 배열을 유지하거나 질서를 더 높이는데 사용되며, 역시 이 과정에서 저품질의 에너지를 외부로 방출한다. 이를 소산적 적응이라 하는데 이것이 최초 생명체 탄생과 관련한다. 핵력과 중력으로 항성이 에너지를 방출하고 행성의 분자가 이를 받아들여 질서를 형성하여 점점 복잡한 구조를 띠어가기 때문이다. 복잡한 구조의 물질은 어쩌다 RNA를 형성했을 것이고 이 RNA 분자는 복제능력을 갖고 있어 다른 분자들을 제끼고 지구상에 가득하게 된다. RNA분자가 복제되던 중 자외선이나 다른 요인으로 변이가 일어나게 되고 이 변형RNA가 일부 아미노산을 사슬처럼 연결해 최초의 단백질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단백질은 촉매작용을 하므로 RNA의 복제효율을 더욱 향상시켰고 더욱 번성한다. 그러다 RNA가 더욱 빈번해지게 되고 2개의 RNA가 엃히는 변이가 일어나 최초의 DNA가 형성된다. DNA는 두 개의 사슬이 견고히 얽혀있어 RNA보다 더욱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복제가 가능하다. 그리고 RNA는 지금처럼 복제과정에서 서서히 소외되어 다른 역할을 갖게 된다. 그리고 DNA 분자주머니가 형성되어 세포벽의 작용을 하게되어 복제는 더욱 안정성을 띠게 된다. 이후의 과정은 우리가 아는 진화론에 의지하게 된다. 

 이 부분부터 브라이언 그린은 인간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진화론자나 다른 인류학자들이 다룬 것에 비해 크게 차별성은 없지만 몇 가지 독특한 부분이 있었다. 먼저, 자유의지다. 인간은 현실세계를 살아가며 이것이 자신의 생각과 욕망, 그리고 결정이 반영된 행동을 통해서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리학적 입장에서는 고도의 질서를 갖춘 것일뿐 인간 역시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입자의 집합일 뿐이다. 즉, 인간의 자유의지는 물리법칙의 결과일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은 물리법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의 거대한 내부조직이 고도의 질서를 갖춰 나로 하여금 자유롭게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해방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변화는 결국 입자의 형태 변화다. 인간 몸의 입자는 매순간마다 특별한 형태로 바뀌는데 내부나 외부에서 특별한 경험을 쌓을때마다 배열상태가 조금씩 달라지며 이것으로 인해 향후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것이 입자의 규모에서 학습이 된다. 애매한 말이지만 결국 정리하면 자유의지란 것은 추상적이고 영혼같은 것이 아니라 철저히 물리법칙의 입각해 입자의 질서형태를 바꾸는 것이고 인간 자신은 고도의 질서를 갖춘 존재로 입자배열을 바꾸어나갈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입자를 바꿀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자유의지라고 생각한다는게 아닐런지.

 다음으로 재밌는 것은 종교에 대한 생각이다. 브라이언 그린은 종교적 믿음이 생존경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이토록 광범위하게 퍼진 이유를 집단에 대한 감시기능에서 찾았다. 집단이 커지면서 협동과 규칙준수를 직접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믿음과 신뢰가 구축될만한 범위가 180명정도인데 소속된 사회의 크기가 이를 아득히 넘어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종교가 작용할 여지가 생긴다. 집단의 규율을 위반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에 의해 항상 감시받고 있다는 종교의 기능은 많은 사람들의 범법행위를 자제하게 하고 보지 못한 사람을 믿고 협력할수 있게 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범법행위가 줄어들고, 가십에 오르내리를 횟수가 줄며, 집단 추방가능성이 적어지고 이를 통해 번식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적응력은 세대를 지나면 강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예술에 대한 견해도 재밌었다. 강한 능력을 선천적으로 갖춘 개체는 생존에 유리하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 이것이 훈련이라는 후천적 노력에 의해 상당 부분 획득이 가능하다. 훈련은 힘든 과정인데 적응력을 높이는 것인 만큼 마땅히 이를 독려하기 위한 즐거움같은 자기강화적 피드백이 생겨났을 가능성이 높다. 스티븐 핑커는 예술이 언젠가부터 이 자기강화적 피드백 회로에서 벗어나서 단지 독립적으로 괘락 중추를 자극하는 행위가 되었을 것으로 주장한다. 이는 예술이 인간의 적응력을 딱히 높이지 못함에도 이렇게 퍼져있는 것을 잘 설명한다. 물론 예술을 짝짓기와 관련되어 설명하는 이론도 있다. 그리고 예술이 혁신적 사고를 촉진하고, 사회적 결속력을 다지는등 적응력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음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 맞는 말인 것 같은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이 없다는게 아쉽다. 

 그렇다면 인간 이후 생명체가 번성한 고도의 질서의 끝은 어떻게 될까. 우주공간의 팽창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는 암흑에너지의 척력이 질서를 갖춘 은하단들의 인력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만약 밀어내는 힘이 점점 강력해진다면 200억년후면 은하단은 해체되고 10억년후면 은하수의 별이 흩어지며 6천만년후면 행성들이 태양에서 멀이지고, 몇개월후면 밀어내는 중력이 분자단위까지 작용해 별과 행성이 폭발하게 된다. 30분후면 개체를 구성하는 입자조차 분해된다. 사실상 질서를 갖춘 생명체의 끝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고는 남을 수도 있다. 다만 사고체 역시 엔트로피가 낮은 존재이므로 무언가를 생각해내려면 주변에서 에너지를 추출해야하고, 추출한 열은 나중에 방출할 열보다 적거나 최소한 같아야 한다. 즉, 계속 생각하려면 저엔트로피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다만 우주가 팽창하여 에너지와 물질이 넓게 퍼져 매우 희박해서 에너지를 구하기 힘든 경우가 된다면 사고체는 이에 대비하여 사고를 매우 느리게 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거나 겨울잠 같은 휴식을 갖는 형태로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사고를 지속하는게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 사고의 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지겠지만 우주의 시간 단위에서 이 정도 느림은 충분히 문제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사고 역시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우주가 가속팽창하여 상당히 커지면 결국 엔트로피가 매우 커져 사고체 자체가 유지된다 하더라도 열배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브라이언 그린은 10의 50승 년정도의 시간이면 사고가 종말 할 것으로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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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이미지]

선행이 대개 선행을 부르고, 악행은 대개 악행을 불러오는 것처럼, 차별은 차별을 부른다. 군대에서 느끼던 미스테리가 있었다. 군을 필한 다른 남성들도 느끼는 것이지만 이등병 일병 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괴롭히던 선임병을 정작 훗날 자신이 그 위치가 되면 놀랍도록 닮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은 개인이 그 조직의 문제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히 괴로워만 하다 결국 그 조직의 문제 구조 자체를 내면화하여 오히려 지지하게 됨으로써 발생한다. 

 군에서는 윗선이 일선 병사의 노동을 착취하고 그를 위해 인격을 말살하며 수단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병사전체를 괴롭히기보다는 바로 윗선을 괴롭힌다. 그 윗선 역시 마찬가지로 아래 전체를 피곤하게 다루기보다는 바로 아랫선을 괴롭히며 이 과정은 최하단까지 전달된다. 물론 민주사회로 접어든지 한참임에도 많은 희생을 젊은 남성에 강요하는 한국의 군대를 과감히 모병제로 전환하거나 병사를 막사에 가두지 말고 출퇴근을 시키거나 최저급여조차 제대로 주자는 여론은 아직도 과반을 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개인이 군을 구조적으로 어찌하기는 힘들고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그 악순환을 적어도 나에서는 끝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막아준 나의 아랫선이 훗날 적어도 자기가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런 한국군대 같은 차별, 아니 더한 차별이 1960년대 미국에도 있었다. 사실 미국의 인종차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과거, 특히 미국 남부의 모습은 사실 매우 추악하다. 책 '헬프'를 보면서 이러한 차별의 극렬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저자가 책에서 충분히 의도한 것처럼 이런 차별은 여러 층위를 띤다. 

 책 헬프의 배경은 1960년대 초반 미국 남부 미시시피로 매우 더운 지역이고 오래전부터 농장지역으로 남북전쟁의 상흔이 아직 남아있으며 그 상징물도 남아있는 지역이다. 사람들은 대개 농업에 종사하고 흑인들도 많이 거주하며 남북전쟁때처럼 이 지역의 흑인들이 여전히 극심한 차별과 위협속에 살고 있다. 책의 배경은 구체적으로 미시시피주의 잭슨 시인데 잭슨 시장은 기가막히게도 흑인과 백인더러 '평등하되 분리한다'.라는 말도 안되는 기치를 내건다. 

 이 잭슨에서 차별은 여러 층위를 갖는다. 가장 최상위층엔 당연히 백인 남성이 있다. 이들은 바깥일을 하고 가정에 아내를 두며 아내는 무조건 아이를 많이 낳고, 대개 전업주부로 경제활동을 하거나 직업을 갖기 않는다. 여자들도 대학을 가지만 대부분 재학중에 남자를 만나 졸업과 취업을 하지 않고 결혼한다. 어찌보면 대학은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 가는 장소에 불과해보인다. 그들은 20대 초반에 결혼하며 집에서 안주인 노릇을 받지만 이렇게 집안에만 갇혀 가계를 운영하며 남편의 성공만을 뒷바라지 하는 차별을 겪는다. 

 그리고 이 안주인 백인 여성은 흑인 가정부를 차별한다. 백인 여성은 흑인 가정부 덕에 아이를 많이 낳아도 육아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집안의 청소와 요리, 심지어 장보기까지 모든 살림이 흑인 가정부의 몫이다. 아이가 아기때부터 기고, 일어서며, 기저귀를 떼고, 이유식을 먹는 모든 일을 흑인 가정부가 한다. 백인 안주인은 그저 아이를 가끔 혼내거나 교육적 지도를 하거나 옷등을 사주고 학교를 보낼 뿐이다. 그래서 많은 백인 아기들은 흑인 가정부를 먼저 엄마라고 부른다. 서로가 매우 곤란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흑인 가정부를 엄마처럼 따른던 백인 아기들은 이상스럽게도 모두 커서 자신의 부모와 똑같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된다. 

 흑인 가정부는 집으로 돌아가 흑인 남편에게도 차별받는다. 흑인 남편은 자신의 아내 흑인 가정부처럼 차별받는 처지지만 집에서는 가부장적 남편으로 모든 육아와 살림을 자신처럼 일하는 또는 심지어 돈을 더 많이 벌어오기도 하는 아내에게 전가한다.  

이들은 아내를 폭행하기도 하는데 영화 컬러 퍼플에서는 자신의 친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우리 골드버그가 아이를 둘이나 낳게 된다. 그는 어리고 가난했으며 백인과 흑인 남편에 의한 폭력과 차별이 만연한 이 나라에서 도무지 아이들을 키울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백인 목사 부부에 의해 아프리카로 떠나게 된다. 우피골드버그는 마치 아버지처럼 자신의 동생을 넘보는 대니글로버와 대신 결혼한다. 그리고 동생은 피신시킨다. 그렇게 남편에게 차별받고 폭행당하며 살던 그녀는 말년이 되어서야 아프리카에서 자유롭게 자유민으로 자란 자신의 아이들 그리고 동생 네티와 재회한다. 컬러퍼플엔 백인들이 흑인을 괴롭히는 장면이 좀처럼 나오지 않지만 백인들에게 파생되어 흑인들 스스로가 서로를 차별하는 끔찍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책 헬프에서는 독특한 백인 여성 유지니아가 등장한다. 그녀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고 대학도 졸업했으며 감히 일자리를 갖고자 한다. 그런 그녀이니 흑인 가정부들과 통할 수 있었다. 어릴적 유지니아를 키워준 흑인 가정부의 역할도 컸다. 그리고 미스 셀리아가 있다. 미스 셀리아는 잭슨시의 여성중 우두머리 격인 미스 힐리의 전 남자친구와 결혼하면서 잭슨에 정착하게 되었다. 원래 타향사람인데다 힐리에게 찍힌 상태이기에 사실상 왕따상태다. 이런 사회에서 이단아 같은 미스 셀리아도 유지니아 처럼 가정부에게 스스럼 없이 다가가고 친구처럼 지낸다. 사회의 지배적 차별 구조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백인 여성들은 모든 살림과 육아를 흑인 가정부에게 맡기고 자신들을 놀면서 담배를 피우고 카드놀이를 즐기며, 이런 저런 모임을 운영한다. 재밌게도 그들은 아프리카 흑인 아이들을 돕은 자선 후원회도 운영하는데 자신들의 옆에 있는 가정부는 같은 흑인으로 보이지 않았던 듯 하다. 이런 흑인 가정부들에 관심을 갖던 유지니아는 뉴욕의 한 여성 편집장에게 그들의 삶을 책으로 내는 것을 제안한다. 

 이 제안에 편집장이 관심을 가지며 유지니아와 잭슨 시의 흑인 가정부들과의 밀회가 시작되다. 이 밀회는 매우 위험하다. 아직 잭슨시는 인종차별이 만연한 지역으로 백인 안주인에게 찍힌 흑인 가정부는 금새 소문이 나 잭슨 시내에서 다시 일자리를 갖기 어려운 지경에 놓인다. 이 불똥은 남편과 자식들에게 튀어 그들 역시 실직하게 되며 폭행의 대상이 된다. 책에 등장하는 이웃을 잘 돕던 건실한 흑인 청년은 단지 분리 표시가 되어 있지 않던 백인 화장실을 이용했다 집단 린치를 당해 실명한다. 물론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이런 위험한 곳에서 그들은 인터뷰를 통해 그리고 자신의 글을 유지니아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통해 책을 써낸다. 

 물론 그들은 책을 익명으로 써내고 진실이 알려져도 자신들이 무사할만한 장치도 책에 넣지만 곧 잭슨 시내의 백인 안주인들은 이 책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임을 알게 된다. 화가난 미스힐리는 흑인 가정부 에이블린을 공격해 친구가 그를 결국 해고하게 만든다. 

이 장면은 영화로 만들어진 책 헬프에서 에이블린이 해고되는 장면이다. 에이블린은 해고되면서도 백인 아이에게 자존감을 심어준다. 어쩌면 이런 자존감을 가진 아이가 먼 훗날 자라나 자신의 부모같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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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 로저스는 유명한 투자가로 두 가지 언급으로 한국인의 마음을 샀다. 우선 한국의 숙적 일본의 경제를 매우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이미 물러난 아베의 정책을 상당히 비판했다는점(실제로 그는 일본에 투자했던 모든 것을 처분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 특히 통일 한국의 미래를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책의 수준은 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는데 로저스의 언급이 좀 있고, 그게 추상적이고 내용이 좀 모자라서인지 출판사에서 북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상황을 채워넣은 것이었다. 원래 재작년 정도 따끈할때 보려했는데 출판한지 2년이 지난 시점이라 아직 트럼프 당선을 예측하고, 이후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점도 좀 아쉽다. 그래도 얻는 것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책 내내 로저스는 북한에 대해 매우 투자하고 싶어하는데 미국의 경제재제를 받는 북한이라는 국가에 미국국적자가 투자를 하는 것은 불법이라 하고 있지 못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될때 북한에서 발행한 금화와 은화를 투자했는데 아주 거금은 아니었다. 북한에 투자하라면서 정작 본인도 방법이 없으니 한국인이 읽어도 북한에 투자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중국에 꽌시로 연결된 믿을 만한 다리라도 있다면 모를까. 

 실제 북한에 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로 이미 상당부분을 투자를 한 상태다. 주로 광물을 구매하고 항구이용권리를 구매한 것인데 한국과 북한이 향후 통일을 하게 된다면 분단상황에서 북한이 경제제재로 인해 헐값에 넘긴 여러 이권이 분명 문제가 될 것이다. 과감하게 무효화 하거나 아니면 주변국들이 통일에 찬성하게 하기 위해 조건부로 보장해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북한엔 이미 시장과 사기업이 많은데 이들은 90년대 사실상 배급경제가 종식되면서 자연스레 생겨났다. 시장은 배급의 끝으로 인해 그리고 사기업은 관청이나 기관이 스스로 운영능력이 없어 업무를 부과함으로써 생겨났다. 이들은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로 부흥했다가 2007년 철퇴를 맞고 쇠퇴하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며 다시 활성화하고 있다. 북한은 2007년 경제와 관련하여 한 차례 내홍이 있었는데 점점 커져가는 시장세력에 대해 당권 세력들이 반격을 가한 형국으로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당시 당은 화폐개혁을 단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 사람에게 하루에 일정한도내로만 구화폐를 신 화폐로 교환해줘 사실상 북한 돈을 쥐고 있던 시장주의자를 붕괴시켰다. 하지만 이로 인해 유통화폐가 감소하고 물가 환율이 폭등하여 당시 기획자가 처형되는등 부작용이 컸던 사례였다.

 하여튼 이 일을 계기로 당국에선 경제를 함부로 조절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시장주의자들을 북한 화폐를 불신하게 되었다. 이후 달러 경제가 활성화 되어 전문가들은 북한을 사실상 달러경제권으로 본다. 실제 북한에서는 5만달러 이상의 달러화를 가진 사람이 무려 25만에 달한다. 100만달러 이상은 5천명으로 매우 적다. 5만달러면 웬만한 한국인의 연봉수준인데 북한의 경제수준을 감안하면 제법 부를 축적한 사람의 수가 매우 많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책은 북한의 막대한 지하자원, 그리고 우수한 수준의 노동력을 강조한다. 동독과도 비교하는데 동독을 통일당시 동구권이 함께 붕괴하며 상당히 불안하면서도 경쟁적인 분위기에 노출되었다. 동독과 동구권 국가들은 인프라의 부족으로 많은 투자가 필요했지만 서로 동시에 투자를 요구하면서 경쟁이 붙어 서구권으로부터 투자를 얻기 힘들었다. 게다가 동독은 주변이 불안해 안정적인 성장도 힘들었다. 하지만 북한은 반대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수준으로 인프라가 절박하지 않아 투자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에 주변에 남한과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등 투자를 할만한 나라도 많고 안정되어 있다. 때문에 북한은 경제가 발전하기에 용이하다. 

 위치도 완벽하다. 짐 로저서는 북한의 나진항이 향후 싱가포르를 능가할 만한 위치로고 본다. 나진항은 중국 동북2성이 동해로 가기위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이고 육로로는 시베리아 철도를 거쳐 유럽으로 직결된다. 한국은 러시아의 가스가 필요한데 북한을 통한 육로로 파이프를 연결하면 3자가 모두 이득을 본다. 한국은 천연가스를 보다 저렴하게 구매하는 통로가 생겨나며 러시아는 판매로가 주로 유럽인 천연가스 수출의 다변화를 꾀할수 있으며 북한은 파이프 연결 수수료로 연간 1억달러를 챙길수 있다. 북한의 연간 총 수출액이 30억 달러에 불과하기에 매우 유의미한 금액이 아닐수 없다. 

 통일 한국은 인구 8천만에 강력한 군사력과 매우 유리한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저렴한 노동력과 우수한 자본과 기술, 막대한 자원이 결합하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남한은 현재 심각한 저출순과 고령화, 젊은 계층의 취업난으로 성장한계에 부딪히고 있지만 통일이 이루어지면 적어도 십수년간 북한에 대규모 건설과 투자가 일어나고 강한 상호 교류로 이런 문제가 일거에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통일 후 사회가 안정되면 십수년후 다시 이런 문제는 불거질 것이다. 하여튼 그래서 로저스는 북한에 그리고 통일 한국에 투자하라고 한다. 남한에 사는 한국민으로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고민해봐야할 날이 빠르게 왔으면 한다. 무슨 근거인지 로저스는 2020년대 말이면 한반도에 평화가 올거라고 한다. 기대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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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처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동성 그림,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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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로 유명한 파올로 코엘류의 책. 궁도를 익히고 그것에서 얻은 깨달음을 인생사와 관련하여 썼다. 뭔기 기예를 익히는 것은 정신적인 것을 요구하니 이런 것도 가능한듯 하다. 전작이 서사가 있어 그런줄 알았는데 서사는 없고 인생에 대한 언급으로 채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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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수다
전김해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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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보는 전김해 작가의 책이다. 저번에 본 책은 '사자와 쥐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는데 이번에도 어김 없이 사자가 등장한다. 아마도 사자는 작가의 페르소나인 듯 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사자라는 생물이 가진 두 가지 상반된 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자는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이며 암사자 무리를 이끌지만, 사실상 혼자 다니는 외로운 존재이며, 언제든지 다른 젊고 강한 외부의 숫사자에 의해 쫓겨날수 있는 불안한 처지에 있다. 이런 사자의 특성 때문에 작가는 사자를 선호하는게 아닐까.

 전김해 작가의 책을 보면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림이 재밌다. 전작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좀처럼 같은 사자를 그리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사자는 갈기나 표정, 형태, 크기가 제각각인데 이런 면도 재밌다. 같은 것을 매번 다양하게 그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 만해도 그렇다. 매번 완전히 다른 장르의 다양한 책을 보려고 하지만 책을 보고 써놓은 나의 글을 보면 나라는 개체를 거쳤기에 하나 같이 똑같다. 무척 아쉬운 부분인데, 때문에 작가가 다른 내용의 글과 그에 맞는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려내는건 쉽지 않았을 것이고 대단해 보이는 부분이다.

 '사자와 수다'에서는 사자의 상반된 특성처럼 인생의 여러 모순되는 장면을 통해 삶에서의 나름의 의미를 찾은 작가의 생각을 드러낸다. 책은 시나 단편처럼 짧은 글로 이루어지는데 '아버지와 아들1'에서는 강하고 위대한 아버지 사자를 닮으려는 아들에게 '나처럼 되지 말고 진정한 너가 되어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반대로 아버지와 아들2에서는 아들을 좀처럼 못 놔주는 과잉보호 사자에게 신이 아들을 과감히 내려놓으라고 자신은 그렇게 해서 아들을 한번도 잃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서로 상반되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말하는 연작이어서 재밌었다. 

 '슬픔이의 슬픔'이란 이야기도 좋았다. 큰 기와집 처마 밑에서 작은 슬픔이들이 울며 슬퍼하고 있었는데 왜 그러냐고 사자가 묻자 이 집이 부적을 붙여놓으며 슬픔들을 받아들이지 않아서라고 하였다. 사자는 집안 사람들을 오만하다고 비웃으며 마침 큰 슬픔이 지나가자 집안의 오만한 것들을 한방에 날려버리라고 한다. 하지만 큰 슬픔은 이들이 작은 슬픔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집이 한방에 무너질수 있고 자신들의 일을 집을 무너뜨리는게 아니고 연약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 말한다. 인간에게 실패와 세상사로 인한 슬픔이 그를 무너뜨리기보다는 딛고 일어서고 웬만한 역경을 견디게끔 단련시켜주는 존재라는 이야기다. 

 책을 두껍지 않지만 이솝이야기처럼 큰 5개의 주제아래 여러 이야기가 얽혀있다. 상당히 신박한 것도 다소 평범한 것도 있으며 이야기에 맞춰 다양한 그림들도 있다. 그림은 모두 흑백이고 대부분 거친 펜이나 연필로 그린 듯하다. 무거우면서도 다소 가볍게 생각하고 그림을 같이 그려내며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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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9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
( ̳• · • ̳)
/ づ🌖

닷슈 2021-09-19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추석잘보내세요 스콧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