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삶 - 개정판 문학동네 플레이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5년 정도 전에 영화 '친구'가 제법 인기가 있었다. 결이 전혀 다른 공부 잘하는 검사친구와 조폭친구, 그리고 같은 조폭 똘마니 친구가 서로 우정을 나눴고, 남자의 자존심으로 서로를 죽이면서도 친구로 남는 그런 내용이다. 남자라고 다 그런 내용을 다 공감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라면 대충 그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있다. 하지만 여자라면 어떨까란 생각은 든다. 그리고 남자가 이 책 '최선의 삶'을 보면 아마 비슷한 이유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내가 그랬으니까. 

 이 책은 놀랍게도 일탈을 해버린 가출 여중생의 내용을 다룬다. 시기는 처음엔 90년대가 아닌가 싶었는데 아마 2000년대 후반 정도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 내용을 보면서 시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는데 책의 공간적 배경은 대전이다. 내용에 대전 지하철이 완공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대전 지하철의 완공이 2000년대 후반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강, 아람, 소영이다. 셋은 대전의 신도시에 생긴 전민중학교에 다닌다. 원래 여긴 농촌 같은 곳이었는데 다들 알다시피 대덕연구단지 같은게 생기면서 도시가 되어 비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생겨난 중학교다. 그래서 셋은 친구지만 출신 성분이란게 다르다. 그래서 묘한 관계다. 강은 외부인이다. 원래 바깥 사람인데 부모가 자식 잘 되라고 위장 전입을 시켜 전민중으로 보냈다. 아람은 원래 이 지역 사람이지만 외부인 같은 내부인이다. 부모가 원래 농촌 사람인데 같지가 동네가 도시가 되어버린 격이다. 소영이 외부인인데 진정한 내부인 격이다. 부모가 연구원이다. 

 하여튼 이들인 친구다. 그리고 셋은 학교를 다니며 흡연을 하고 술집을 전전하고 일탈을 버린다. 안주시킬 돈이 없어 안주를 만들어 먹는 것을 나무라는 술집 주인을 오히려 미성년을 받았다며 경찰에 신고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다 돈을 모아 서울로 가출해버린다. 대전에서는 잘 나가는 이들이었지만 서울에선 지하철조차 처음타보는 촌것들이었다. 서울에선 처음엔 이 아파트 저 아파트 계단을 전전하며 밤을 지새웠고, 화장실에서 씻었다. 낮이면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아저씨들을 꼬드겨 같이 술을 먹고 돈을 뜯어 모텔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몸도 버리기 시작한다. 특히 아람이 몸을 마구 굴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소영이 바지를 사려 신용카드를 쓰게 되자 위치를 부모에게 발각될게 두려워 셋을 청주로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보증금 얻는 방을 얻게 되며 모텔 생활을 하지 않게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강을 횟집에서 소영을 베이커리에서, 아람을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람이 술집에서 벌어오는 돈이 훨씬 많았다. 아람이 밤늦게 까지 일하게 되며 소영과 강은 같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다소 야릇한 관계가 된다. 셋의 가출은 소영이 마침내 핸드폰을 켜서 위치가 노출되고 귀가하게 되며 끝난다.

 셋은 학교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러면서 우정이 깨어진다. 아람과 소영 간이 묘한 역학 관계가 생겨난다. 아람은 두루 인기가 있었다. 소영은 키가 컸고 많이 예뻤다. 아람은 뭔가 소영이 불편했고, 소영을 따돌리기 시작했다. 강은 여기서 아무래도 좋았지만 아람을 따라간다. 다른 아이들도 아람의 편에 붙는다. 그러면서 모두가 소영을 피해다닌다. 그러다 소영의 위치를 알려주는 소위 GPS 역할을 하던 아이가 소영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한다. 

 소영은 갈수록 날카롭게 변해갔고, 다른 아이들과도 싸운다. 소영은 무자비했고 그 아이에게는 이겨서도 져서도 안됐다. 이기면 무자비한 보복이 따랐고, 지면 종처럼 당하고 살아야 했다. 놀랍게도 다음 차례는 강이였다. 강은 이 상황이 너무 불편했고 아람에게 예전처럼 돌아가면 안되겠나고 말했다. 아람은 그 말은 소영에게 했고, 소영은 강을 찾아와 괴롭히기 시작했다. 결국 둘은 싸우게 되었다. 강은 지지 않고 싸웠고 심지어 이기기도 했지만 강은 이겨서도 져서도 안된다는걸 알고 있었다. 소영은 강에게 무릎끓는걸 제안한다. 그만하고 싶었던 강은 그만 그렇게 하고 만다. 소영은 잔인하게도 그 순간 용서하지 않고 돌로 강의 머리는 쳐내린다. 그리고 아람이 대신 맞는다. 

 그 사건 이후 두려웠던 강이 이 사실을 부모에게 말해 소영은 학교에서 강을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게 된다. 강은 너무 비겁한 자신이 너무 괴로워져 칼을 하나 산다. 그리고 그 후 이것을 가방에 넣고 다니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꺼내진 못한다. 그리고 아람과 다시 가출을 한다. 둘은 비키니를 입고 일하는 가게에서 수년 간 일하며 많은 돈을 번다. 그리고 같이 스페인의 그라나다로 여행을 가기로 약속하고 같이 바니 문신을 새긴다. 하지만 어느 날 아람은 아무말 없이 강을 떠난다. 

 강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소영이 사는 아파트를 찾아간다. 그리고 아무 의미 없이 계속 가지고 다니던 칼을 갖고 간다. 소영은 놀랍게도 예전 그 아파트에 여전히 살고 있었다. 여전히 예뻤고 키는 더 큰 것 같았다. 소영은 연예인이 되어 있었고 여전히 강을 무시하고 있었다. 칼을 든 강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고 강이 팔을 찔렀음에도 더 찔러 보라고 도발했다. 결국 강의 칼이 소영의 목을 향한다.

 이 소설은 저자가 10년 가까이 학창시절에 생각해내고 가슴에 묻어둔 것이라고 한다. 처음 읽었을 땐 이건 경험담이라 생각했는데 묻어든 것이라면 학창시절의 여러 응어리를 상상으로 풀어낸게 아닐까 생각한다. 친구와의 갈등, 나보다 아름다운 친구에 대한 열등감, 무서운 친구에 대한 공포, 학업에 대한 중압감, 억업적이고 학업만 강조하는 교사에 대한 불신이나 불만, 친구와의 우정,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불만, 다양한 친구들과의 만남, 여자 친구들 특유의 집단 형성 등 이런 저자의 10대 시절 특유의 경험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것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실에서 바로 쓰는 캔바/캔바AI로 수업디자인하기 - 캔바 핵심 기능 익히기/다양한 캔바 활용법/바로 적용할 수 있는 수업 활용 사례
안익재 지음 / 앤써북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캔바를 처음 접한 건 4-5년 정도로 기억한다. 사실 처음 썼던 것은 미리캔버스였다. 미리캔버스는 국산 사이트였고 무료였고 참 쓰기 좋았다. 그런데 어느 덧 주변에 미리캔버스 대신 호주산인 캔바를 쓰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캔바가 완전히 대세가 되고 말았다. 요즘 캔바를 TV 광고도 제법 많이 할 정도로 일반 사용자도 많아지고 있다. 왜 우리는 하드웨어는 되는데 소프트웨어는 안되는지 고민이 깊어지는 부분이다.

 이는 분명 한국인에게 부족한 창의성과 개방성 및 협업에서의 약점과 관련한다고 믿는다. 한국은 교육현장에서는 물론이고 직장에서까지 창의성과 개방성 및 협업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다. 교육은 답이 정해져 있고 분위기는 경쟁적이고 억압적이며 직장은 그런게 더 심하다. 소프트웨어는 필연적으로 사용자에게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사용환경과 다른 사람과 협력할 수 있는 기능을 부여해야한다. 그런데 한국인은 그런 경험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그런걸 못 만드는게 아닌가 싶다. 나도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서 그런지 어른이 다 되어서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텅빈 구글이나 협업 및 창의적 환경을 제공하는 외국 소프트웨어를 처음 써 봤을 땐 뭔가 문화적으로 많이 불편했었다. 이건 무언가 꽉 차 있는 한국의 네어비나 한국의 한글 문서와는 분명 뭔가 달랐다. 

 하여튼 이번에 본 책은 교육현장에서도 많이 활용하는 캔바에 대한 책이다. 캔바는 무료 기능도 많지만 유료 버전인 프로를 활용하면 더 좋은 기능을 많이 활용할 수 있다. 고맙게도 캔바는 교육자에게 무료로 프로기능을 제공한다. 그리고 교사가 인증을 받으면 학생에게도 프로기능이 무료로 제공된다. 방법은 좌측 하단의 계정-요금제-교육용을 클릭하고 교사 배너에서 인증받기를 클릭한 후, 이름과 학교를 입력한다. 그리고 여기에 재직 증명서를 제출하는데 나이스-인사기록-증명서 신청에서 제출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학생을 초대한다. 역시 좌측하단의 계정-사용자 초대-공유링크, 코드, 또는 구글클래스룸을 운영중이라면 쉽게 초대가 가능하다.

 캔바를 운영하면서 학생에게 과제를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수합하는 방법은 3가지다. 하나는 교사 보내기다. 학생이 초대된 후, 학생은 그 상태로 캔바에게 과제를 수행하다보면 상단에 자신이 수애하는 과제에서 교사 보내기 기능이 있다. 그걸 누르면 교사에게 과제가 발송된다. 그러면 선생님이 학생 과제를 검토하고 편집을 해줄 수 있다. 다만 이렇게 하면 주제별로 과제가 모아지지 않는 단점이 있다. 

 다른 방법은 배정 기능이다. 교사는 계정-설정-수업-수업만들기를 통해 수업을 만들 수 있다. 그러면 과제를 생성할 수 있는데 이러면 과제를 배정할 수 있다. 그러면 학생은 과제를 배정받고 교사는 학생이 하는 과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편집도 지원할 수 있다. 

 마지막 방법은 프로젝트 폴더다. 캔바와 좌측 사이드바에 프로젝트를 클릭하면 새항목 추가하기가 있고 폴더를 클릭하고 폴더 이름을 눌러 폴더를 만든다. 그리고 공유되지 않음을 누르고 편집가능을 누른다. 그러면 학생들이 공유하는 폴더가 생기는데 여기를 통해 과제를 공유하고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캔바는 다양한 기능이 있다. 프레젠테이션에을 활성화한 상태에서 타이머를 켤 수 있고, 매직 단축기를 누르면 흐르기, 조용히, 커튼의 기능이 있다. 그리고 라이브 세션 기능이 있는데 그러면 프레젠테이션 상태에서 대화형 질문 입력등이 가능하다. 

 캔바에는 다양한 AI 기능이 있다. AI 기능은 학생이 이럴 때 부터 통제 없이 사용하면 성장을 저해할 수 있기에 기본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다만 교사가 계정-설정-사용권한-Magic 및 AI-허용하고 싶은 AI-모든 사람으로 권한을 허용해 줄 수 있다. 

 캔바의 Magic studio는 배경 제거 기능과 배경 생성 기능을 제공한다. 배경 생성을 해주는 경우 프롬프트 입력으로 원하는 배경을 입력할 수 있다. Magic grab은 사진을 검색 후 추출을 원하는 대상을 선택하여 배경과 그 이미지를 분리하며 양쪽을 따로 사용하는게 가능하다. Magic edit는 편집 영역을 브러쉬로 선택한 후 편집 내용에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새로운 내용을 생성해 준다. 가령 칠판이 있는 사진을 찾은 후 칠판을 브러쉬로 고르고 거기에 내용을 프롬프트로 입력하면 그런 사진이 생성된다. Magic expand는 어떤 사진이 있는데 좀 작다 싶은 경우 이걸 선택하면 사진을 인공지능이 자연스럽게 확장해주는 기능이다. 

 Mockups는 재밌는 기능이다. 좌측 앱에서 Mockups를 검색하고 클릭한다. 미술 시간에 학생 그림이나 시화, 로고 등을 나만의 제품으로 만들고 싶을 때가 있는 데 그럴 때 쓰기 좋은 기능이다. 이런 걸 먼거 그린 후, 사진으로 찍어서 캔바에 업로드 해 놓는다. 그런 다음 이것을 캔바에서 제공하는 캔이나, 티셔츠, 머그컵 등에 Mcokups를 통해 자연스럽게 입힐 수 있다. 

 앱-framemaker를 통해 나만의 프레임을 만들 수 있고, sketch to life는 내가 사물을 묘사하고, 그것에 대한 내용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분석 후 이미지를 적절히 생성해주는 기능이다. 앱-amimeify는 사진을 업로드 하면 그것을 만화로 바꿔주는 기능이다. 앱-Giphy는 관련된 내용을 입력하면 다양한 이미지가 캔바내에서 뜨는데 그것들과 관련한 이미지를 여러개 입력하면 연속해서 그것들을 Gif움짤로 바꿔주는 기능이다. 마지막으로 앱-productphotos는 학생들이 미술시간에 만든 작품을 업로드하면 보정 작업을 해서 마치 촬영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것처럼 좋은 결과물로 만들어주는 작업이다.

 책을 통해 캔바가 갖고 있는 많은 기능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래서 캔바캔바하는구나라는 점을 알 수 있었고, 그런데도 이걸 쓰지 않는 많은 사람들도 있다라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좋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TF 투자의 모든 것 - 배당수익과 주가수익 다 잡는 제2의 소득 파이프라인
문일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존 보글은 ETF의 창시자다. 그는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 최대 인덱스 펀드 운용사인 뱅가드 그룹을 1974년 세웠다. 그리고 1975년 최초의 인엑스 펀드 뱅가드 500을 출시한다. 이는 개별 종목의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하고 오직 시장 리스크만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고민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자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써도 갑작스런 전쟁이나 천재지변, 코로나 등 시장 자체의 거시적인 리스크는 피할 수 없다. 이것이 시장의 리스크다. 이것만 안고 가자는 것이다. 

 국내에도 ETF가 대중화하여 어느 덧 종류만 1000개를 넘어섰고 규모만 200조 이상이다. ETF의 수수료는 보통 0.5%로 일반 펀드(1-3%)의 절반 수준이다. ETF가 이렇게 많아지면서 자산운영사간 경쟁이 극에 달하면서 ETF의 수수료는 점차 하향추세다. 하지만 지나친 보수 인하는 수익성을 악화시켜 운용품질을 악화시킬수 있다. 그리고 국민연금도 주식시장의 투자자가 되면서 금융당국의 ETF 관리는 강화되고 있다.

 ETF투자자 입장에서 보통 비용으로 보수율을 본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치루게 되는 총 비용은 운용보수, 기타비용, 매매중개 수수료를 모두 합한 금액이다. 국내상장 ETF의 경우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서비스에서 펀드공시에 들어가 펀드별 보수 비용이 비교 가능하다. 해외상장 ETF는 ETF닷컴이나 ETF체크에서 확인가능하다. 국내처럼 보수율과 총비용률이 다른 경우는 거의 없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지는 ETF의 경우에는 유동성 체크가 중요하다. 적어도 시가총액과 순자산총액(AUM)이 1000억이 넘어야 자산을 원한는 시간에 원하는 가격에 팔 수 있다. ETF에서 AUM은 ETF포트폴리오에 포함된 총투자자산가치를 포함한다. 이러한 AUM은 ETF의 규모, 인기도, 잠재적유동성을 의미한다. ETF의 수익률이 높아도 유동성이 낮으면 그 가격에 팔기 어려워 현금이 급한 경우 손절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2025년 정부는 세수부족으로 1월 외국납부세액공제를 갑작스레 시행했다. 이전에는 해외주식형 펀드에 대해 해당국가에 배당소득세를 내면 과세 당국이 이중 과세를 방지하기 위해 이를 환급해주고 나중에 과세하는 과세이연효과를 투자자는 누릴수 있었다. 이를 통해 분배금이 복리로 증가하고 연금을 받을 때 한자리 수로 세금을 내는 혜택이 주어졌다. 하지만 이 절차가 사라져 15% 원천징수가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절세계좌에 미국 지수 추종 ETF에 투자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편이다. 

 해외 ETF를 국내상품으로 사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낮에 매매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미국 주식에 밤에 거래할 수 밖에 없지만 이것은 국내 것이기에 낮에 거래가 가능하다. ETF는 거래가 없는 경우 ETF추종 기본지수와 상품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 특히 국내와 거래 시간이 다른 미국 지수 추종 ETF일 수록 그렇다. 거래부족 현상을 보완하기 위해 ETF에는 유동성 공급자 LP가 붙는다. LP는 늘 일정 물량을 사고 파는데 전날 미ETF가 1%하락한다면 다음 날 추종 한국 ETF도 1%하락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시간 차로 인해 그 사이에 갑작스레 호재가 터진다면 하락하지 않고 상승한다. 하지만 물량을 그 사이 확보한 LP는 그로 인해 차익을 얻게 된다. 매일 의미 없이 물량을 사고 팔며 거래세를 쓰게되고 노동을 하게 되는 것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한국 예탁 결제원은 세이브로라는 플랫폼을 만들어 서학개미가 많이 매수하거나 매도한 종목을 게시한다. 2025년 4월 11일 기준 매수 top5는 테슬라, 엔비디아, 애플, 팔란티어, 마이크로소프트다. 가장 많이 보유한 ETF는 놀랍게도 TQQQ다. 이는 나스닥 100지수를 무려 3배 추종하는 레버리지 지수다. 이런 상품은 정상적으로는 초과수익 창출이 되지 않기에 선물옵션거래를 활용한다. 미국조차 이를 매우 위험하게 여기기에 더이상 3배 추종 레버리지는 출시가 허용되지 않는다. 국내는 2배레버리지 상품만 허용된다. 

 미국의 소비재 기업은 주가가 상승할 때는 꾸준히 상승하고 하락할 때는 하방이 강해 잘 급락하지 않는다. 2020-2025년 대표 기업 코스트코는 주가가 240%, 월마트는 130% 상승했다. 빅테크인 애플이 174%, 구글이 131% 성장한 것이 뒤지지 않는다. XLP와 VDC는 미소비재 비중이 높은 ETF다. 코스트코는 우리나라 마트들이 최대한의 마진율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게 15%의 마진율만 고수한다. 그 이상을 추구하면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대신 비싼 연회비를 받는다. 연회비는 모든 기업의 이상향이다. 안정적 수익구조이기 때문이다. 국내기준 코스트코의 연회비는 연간 4만원 이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회원들이 이를 감수하는 것은 그만큼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코스트코는 품목당 판매 브랜드 수가 적다. 자신들이 사전 검수해 믿을 만한 것들만 추려놔 소비자들이 하나하나 골라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코스트코는 주주들의 천국으로 20년간 배당금을 인상했다. 최근 10년 기준 연평균 배당금성장률이 12.6%다. 배당수익률은 1%정도지만 주가 성장률은 감안하면 투자가치는 충분하다. 

 월마트는 매장이 창고형이다. 전세계 상장사중 가장 많은 200만을 고용한다. 급여가 낮지만 많은 직원이 애사심을 갖는다. 이는 직원에 급여로 주식을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매장 관리자는 2만 달러 상당의 월마트 주식을 받는다. 그렇기에 월마트 직원들은 월마트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회사 주식을 보유하는 기회로 삼는다. 그렇다보니 월마트의 주가를 하락할때마다 직원들의 강력한 매수세로 인해 강한 상승압력을 받는다. 

 미국주식시장에는 독일과 이탈리아 지수를 추종하는 ETF가 있다. EWG와 EWI다. EWG는 독일 것으로 독일의 삼성전자인 SAP와 지멘스, 라인메탈, 알리안츠를 종목으로 투자한다. EWI는 이탈리아의 은행과 방위산업에 주로 투자한다. 각각 독일 60종목, 이탈리아 38종목에 투자하고 실부담비용률은 0.5%정도다.

 보통 주식은 성장과 분산이 같이 가기 어렵다는게 상식이다. 그래서 배당주와 성장주는 다르다. 그런데 이것을 양립시키는 ETF가 DIVO다. DIVO는 분산투자 원칙을 따르는 ETF이면서 고수익 고배당을 추구한다. DIVO는 2020-2025년 주가수익률 40%를 달성했다. 그러면서 최근 1년 기준 배당수익률도 5%를 달성했다. 최근 1년 배당수익 5%, 주가수익7%를 합해 연 12%의 총수익률을 보였다. 그리고 DIVO는 배당을 월지급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ETF는 진화를 거듭한다. 1세대는 단순히 지수를 추종했다. 이후 2세대는 반도체나 자율주행처럼 테마형이었다. 3세대는 현금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고배당이 주류였다. 4세대는 DIVO처럼 기본 월배당이면서 높은 주가수익률, 높은 배당률에 주가안정성까지 4박자를 모두 갖춘 형태다. DIVO는 ETF 구성 및 운영에서 먼저 배당이 뛰어난 대형주를 선정한다. 이후 업종 비중을 결정하고 여기서 20-25종목을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단계로 개별 종목의 옵션 매도를 결정한다. 여기서 배당금이 마련된다.  

 미증시에 상장하려면 직접 IPO를 하거나 미국주식예탁증서(ADR)형태로 우회상장하는 방법이 있다. 대만의 TSMC의 시가총액과 주가가 삼전과 하이닉스에 비해 놓은 것이 실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미국 증시에 상장되어 있는 이유가 크다. 한국증시는 최근 많이 오르긴 했지만 PER이 많이 낮다. 최근 SK하이닉스가 일부 주식을 ADR 형태로 올리는 방법을 검토한다는 기사가 나긴 했다. ADR은 미 현지은행이 중국 등 외국기업으로부터 예탁 받은 증권을 담보로 발행한 증서다. 정식 상장은 아니지만 일부를 미증시에 거래하게 하는 것으로 일부를 우회하여 상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랭클린 익스프레스 - 길고 쓸모 있는 인생의 비밀을 찾아 떠난 여행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전 유행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저자가 비슷한 개념으로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란 책을 냈다. 한국에서 스크라테스 익스프레스가 크게 인기를 끌었는지 서문에 한국독자를 위한 글을 좀 썼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가 인기를 끈 것은 아마 제목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도 그 책의 제목에 끌려서 그것을 봤었다. 물론 책은 실망스러웠다. 이 책도 사실 같은 부류라 생각되어 보지 않으려 했지만 우리 독서토론회 책이라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다. 책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보단 좀 나았지만 볼만한 책은 아니란 생각이다. 조금 얻게 된 점은 벤자민 프랭클린에 대한 인물에 대해 약간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었단 점이다.

 각 나라는 화폐에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의 도안을 넣는다. 국방, 문화, 예술, 과학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한국은 이순신, 이이, 이황, 세종, 신사임당이 들어간다. 시기상 모두 조선시대에 편중된다. 그리고 이순신을 제외하면 이이, 이황은 유학자다. 물론 세종은 종합적 인물이다. 신사임당은 최고가액에 들어갈만한 인물인지 논란의 여지가 많다. 

 하여튼 미국에는 1$, 2$, 5$, 10$, 20$, 50$, 100$ 지폐를 발행하는데 이 중 대통령이 아닌 인물이 도안으로 사용되는 것은 10달러와 100달러 두 경우 뿐이고 이 중 무려 최고가액인 100달러에 벤자민 프랭클린의 도안이 사용된다. 그만큼 이 사람은 미국 역사에 중요한 인물이다. 책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는 저자가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따라 다니며 그의 탄생부터 평생의 공간과 주요 사건을 탐색하며 단상을 쓴 책이다.

 나는 벤자민 프랭클린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가 미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이고 연으로 번개 실험을 할 정도의 과학자라 상당한 교육을 받은 인텔리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의외로 그의 가방끈이 상당히 짧다란걸 알 수 있었다. 그가 교육을 받은 겨우 10세까지였다. 이는 그의 집안이 가난해서도 그가 공부를 못해서도 아니였다. 벤자민의 집은 영국에서 건너온 귀족 집안은 아니었어도 가난한 집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벤자민은 타고난 성품이 실용적이고 종교에 관해 상당히 회의적이었는데 그것이 그의 아버지를 거슬리게 했었던 것 같다. 저자는 그것이 그의 학업 중단의 주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것은 주요 성직자로 나가는 것이었는데 벤자민의 아버지가 보았을때 그것은 아들의 성미로 보았을 때 가망없는 것이거나 오히려 위험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대신 벤자민은 책을 사랑했기에 그것을 통해 꾸준히 학습했고 다양한 사람과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워나갔다. 당시에는 책이 귀했던 시기였기에 평균적인 지식인의 집에는 10권 정도의 장서가 집에 있었는데 벤자민 프랭클린 사망 당시게 그의 집에는 무려 4276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 당시 미국에서 최대의 개인 장서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젊어서 한 때 채식주의를 고집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돈을 아껴서 책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의 권유로 보스턴에서 형 제임스의 제자로 들어가 도제관계가 된다. 즉, 인쇄공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형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당시 도제 관계는 엄격했다. 7년간의 관계는 사실상 법적 계약에 가까웠다. 벤자민은 당시 어린 나이에 다른 필명으로 글을 기고하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이것을 형 제임스에게 들키고 만다. 이것을 괘씸하게 여김 형과 마찰이 생기고 벤자민을 형과 다툼끝에 뉴욕을 거쳐 필라델피아로 떠난다.

 당시만 해도 필라델피아는 매우 작은 도시였다. 그는 형과의 도제계약을 깼기에 체포될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젋었던 그는 거기서 인쇄공으로 일한다. 젊었던 그는 자리를 잡는 듯 했으나 그곳 총독의 권유로 런던으로 향한다. 런던에서 그는 커피하우스를 경험한다. 커피하우스는 당시 새롭고 흥미진진한 발상이 떠오르고 최신의 뉴스가 모이는 곳이었다. 그는 여기서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고 성장하여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는다. 프랭키라는 아이였는데 천연두로 어려서 죽고 만다. 벤자민은 당시 조잡한 천연두 예방접종에 긍정적이었는데 아이에게 이것을 접종하는 것을 주저했던 것을 평생 후회한다. 당시는 계몽주의 시대로 아마추어의 시대이기도했다. 당대의 놀라운 과학적 발견은 대개 벤자민 프랭클린처럼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아마추어에 의해 이뤄졌다. 당시 미국은 식민지이자 변방의 후진국으로 과학장비가 크게 부족했는데 벤자민은 영국에서 쌓은 네트워크로 인해 실험도구와 최신 전기 관련 문헌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전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금의 전기배터리, 양과 음, 양극, 음극, 전도체, 축전기, 충전, 방전의 용어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그는 전하가 새로운 물질의 생성이 아닌 전류의 재분배로 일어나는 것이고 전기가 늘 만물에 존재한다는 것을 통찰했다. 또한 전하량이 보존되고 전기는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흩어질 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전기가 통하는 뾰족한 물질이 전기를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관찰을 통해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미 전역에서 늘 일어나는 번개에 의한 피해를 줄이는 피뢰침을 창안했다. 그는 피뢰침의 발명 그리고 연을 통해 번개를 끌어들이는 실험으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전기를 향한 그의 이러한 놀라운 통찰과 호기심은 딱 6년간 만 지속되었다. 아쉬운 순간인데 그의 정신적 에너지가 공공 분야로 향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미국에는 공공병원과 의사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대학을 나온 사람도 인구의 10%에 불과했다. 당시 보스톤을 찾은 스코틀랜드 의사 윌리엄 더글러스는 북미의 의료계에 대해 질병보다 의사가 더 위험하다고 평할 정도였다. 벤자민의 의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타고난 통찰력으로 납 중독 이론을 세우고, 일반 감기이론을 정립했고 천연두 예방접종을 홍보하고 전기치료와 음악 치료를 시도했다. 그는 환기와 규칙적 운동이 대중화하기전에 이미 그 효과를 신봉하고 실천했다. 그래서 84세까지 장수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펜실베니아 의회에 공공병원 건립을 주장하며 자신이 기부금을 모아오면 그만큼 기부할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무려 2700파운드를 모아와 의회가 어쩔수 없이 그 이상을 기부하게 만들어 버렸다. 결국 펜실베니아 병원이 1752년 2월 11일 건립된다. 

 그는 이후 50이 넘어 런던으로 간다. 이후 런던에서 상류층과 교류를 맺으며 식민지 체신부 장관으로 오래 생활하지만 식민지와 본국의 관계가 악화하며 그의 말년도 좋지 않아진다. 68세가 되자 그는 영국 고위 관료가 모인 앞에서 투계장에서 공개 모욕을 당한다. 그리고 체신장관 대리 자리에서도 쫓겨나고 아내 데보라의 건강이 악화한다. 그는 마지막까지 영국과의 타협을 시도하나 결국 돌이킬수 없는 길을 갔음을 깨닫고 귀국한다.

 1775년 귀국하자 전쟁은 이미 발발한 상태였다. 식민지인들은 저항투사로 귀국한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하지만 15년이나 영국에 체류한 그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미국은 그를 체신장관에 임명했다. 벤은 미국의 화폐 도안을 디자인했고 전쟁에 필요한 화약을 만들기 위한 질석 생산을 가속화했다. 에세이와 노래를 만들어 영국군을 조롱하고 경험이 부족한 독립군을 격려하기도 했다. 반면 벤의 아들 윌리엄을 아버지와 다르게 끝까지 영국왕에 충성하며 뉴저지와 총독으로 남아 아버지를 곤란하게 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주요 업적의 하나로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한다. 토마스 제퍼슨은 이를 종교적 권위에 기대어 작성했다. 그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신성하고 부인할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인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고 썼는데 벤자민이 여기서 신성하고 부인할 수 없는 이라는 부분을 자명한으로 수정했다. 종교적 부분을 이성으로 바꾼 것이다. 

 한편 미 정부는 벤자민 프랭클린을 프랑스에 외교관으로 파견한다. 당시 프랑스는 7년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하여 여력이 없었지만 영국에 원한이 깊었다. 프랑스의 봉불루아르는 필라델피아를 방문하여 미국을 탐색하였는데 그는 미국이 형편없었음에도 본국에 그들의 전력을 과대평가하여 보고하였다. 결국 프랑스는 조심스레 미국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벤은 프랑스에 방문한다. 설득은 쉽지 않았다. 지난 세기 프랑스는 식민지를 두고 영국과 4차례나 전쟁을 벌였고 루이 16세는 더 이상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여기에 영국 외교관들은 미국이 오합지졸이라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고 실제 미국은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이상하게도 프랑스내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의 인기가 상당히 높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워싱턴 장군이 전세를 역전시켜 전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1777년 12월 4일 미국이 새러토가에서 대승을 거두어 8천명의 영국군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분위기가 바뀐다.

 프랑스는 이것을 기점으로 전폭지지를 하기 시작한다. 프랑스는 벤자민과 2개의 조약을 맺고 대출과 증여 형태로 무려 4800만 리브로(지금 가치로 14억 달러)이상을 원조한다. 여기에 프랑스 군함과 병사를 직접 파견한다. 이런 지원을 얻은 결과 미국은 독립 전쟁에서 승리한다.

 결국 벤자민이 프랑스에 체류한 상태에서 미국은 영국의 독립협상을 맺게된다. 협상은 매우 지리했다. 영국은 패배했음에도 조약에 쉽게 응하지 않아 2년간 협상이 이뤄진다. 여기서도 벤은 강한 압박에도 침착하게 협상에 응해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낸다. 결국 미국은 서쪽 경계를 미시시피강 유역까지 얻게 된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거의 일평생 노예 소유주이자 노예 거래로 이득을 취했다. 물론 그는 노예를 많이 거느리지는 않았다. 겨우 7명 정도를 거느린 것으로 추정된다. 토머스 제퍼슨이 수백을 거느린 것과 비교하면 아주 적다. 게다가 그는 만년에 더 이상 노예를 소유하지 않았고, 조심스레 노예제 폐지론으로 기울었으며 죽기직전에는 노예제를 적극 반대했다. 그는 84세까지 장수했고, 쓸모있는 긴 삶을 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창비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공감하는 동물이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많다. 공감은 기본적으로 유전적으로 나와 가까울수록 강하게 나타나고, 정서상 또는 이해관계가 나와 비슷해도 강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친구나 나의 직장동료, 사업 파트너, 전우, 같은 마을 사람들, 넓게는 직장, 학교, 고향, 같은 종교, 국가 순으로 공감은 퍼질 수 있다. 그렇기에 공감은 편향적이고 한계가 분명하다. 

 이처럼 인간의 공감능력은 그 범위가 좁고 편향적이기에 우리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사회의 전체적인 고통을 줄여나가려면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간신히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고 그 불의를 줄여나가기 위한 사회적 합의나 정치권에 대한 압박이란 걸 할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당하는 불의와 힘든 것에 대해서는 매우 잘 안다. 하지만 바로 옆자리의 사람이 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놀라울 만치 잘 모른다. 심지어 같은 직장의 약간 다른 부서에서도 말이다. 서로가 그런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잘 알아 갈 때 사회는 조금 더 살만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노회찬 재단에서 엮어 낸 것이다.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을 통해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여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의 폭을 조금 넓힐 수 있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을 몇 개 정리해봤다.

 해녀는 7-8미터 이상 잠수가 가능한 사람을 상군, 5미터 정도 잠수하는 사람을 중군, 그 이하를 하군으로 분류한다. 보통 오래 물질을 하다보면 상군이 되고 아무래도 그들이 소출도 낫다. 하지만 상군은 반드시 하군의 살림을 챙긴다. 그러는 이유는 상군도 나이가 들면 언젠가 하군으로 전락하기 때문이고 아직은 어린 하군도 언젠간 중군이 되고 상군이 되는 날이 오기 때문이다. 해녀는 반드시 둘이 같이 작업한다. 하나라도 더 잡으려다 사고가 나기도 하고, 바다물이 휩쓸리기도, 커다란 모자반에 길을 잃기도 하는 등 위험이 도사리기 때문이다. 십수년전만 해도 제주 해역에 커다란 모자반과 수풀로 가득했고 많은 것을 바다가 내주었다. 지금은 온난화로 바다숲은 사라지고 만지는 돌마다 부서지는 지경이다.

 교통리포터는 아침 7시에 방송국에 도착해 15분 간격으로 교통정보와 기상정보를 전달한다. 낮 1시를 전후하여 저녁 근무자와 교대한다. 이들은 휴무를 제외하고 한달 20일을 출근한다. 하루 6시간 정도를 근무한다. 급여는 한 달 130-160만원 정도로 최저급여수준이다. 경력이 쌓여도 이 급여는 유지된다. 프리랜서라서다. 퇴사율은 매우 높다. 여기에 결혼하고 출산하면 대부분 권고 퇴사가 수순이다. 

 놀랍게도 상담사는 하나로 대표되는 국가자격증이 없다. 그렇다 보니 그에 따르는 법적 의무나 권한이 없다. 그래서 자신들을 보호할만한 법적 근거도 없다. 급여도 적다. 상담사는 대개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지만 연봉 3천 이상을 보장할만한 자리도 마땅치 않으며 열정페이를 강요하거나 봉사를 강요하는 곳도 적지 않으며 그걸 미덕으로 여기는 풍토도 많다.

 문래동은 원래 공장지대였다. 그곳의 공장 대부분은 1인 기업 또는 가족 경영이다. 각 공정을 전문처리하는 공장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소재에서 최종 완성품이 원스톱으로 문래동에서 처리가 가능하다. 한 때 3천개가 넘는 업체가 있었지만 지금은 1천개 정도가 남아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많은 업체가 떠나갔다. 지금은 예술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한 때 공존을 하는 듯 했다. 낮에는 철공인, 밤에는 예술인의 형식이다. 하지만 결국 공인들이 떠나는 것으로 귀결되는 듯 하다.

 양봉가는 5-6월 2달을 위해 나머지 10개월을 준비한다. 양봉을 하다보면 요일 감각이 사라지고 해요일과 바람요일 비요일로 요일을 구분한다. 해요일은 일하는 날이고, 바람요일은 바람에 시설이 망가지거나 벌통이 망가지는 걸 관리하는 날, 비요일은 쉬는 날이다. 비요일에 바람이 많이 불면 최악이다. 비맞으며 바람요일처럼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월동기에는 좀 쉬지만 보온에 신경을 써야한다. 아침이면 보온덮개를 걷어 꿀벌 나들문을 개방하고 해가지면 다시 덮는다. 월동기에도 바람 요일에는 비상한 관리가 필요하다. 

 안마는 타인의 몸을 돌보는 일이지만 정작 자신의 몸은 등한시하게 되는 노동이다. 안마사의 급여는 시간을 얼마나 투여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므로 쉬기가 어렵다. 손님은 규칙적이지 않다. 없으면 없고 많으면 많다. 그렇기에 노동 시간을 지키기가 어려운 직종이다. 안마사는 시각장애인이 많고 그들이 가질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기도 하다. 법적으로 안마사를 시각장애인이 독점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생존권에 대한 침해이다.

 세탁소는 돈을 버는 직업은 못된다. 월세로 대개 수입의 절반이 나가고 10-20%로는 각종 약품과 세제, 옷걸이 비용에 소요된다. 나머지 수입은 생활비로 사용된다. 즉, 그냥 유지하면 사는 업종이다. 세탁소를 가보면 어느 집이나 그렇듯 옷의 홍수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세탁소를 하다보면 손님이 옷을 맡기고 차츰 찾아기자 않는 사람들이 생겨나서 그렇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선금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간호사는 WHO에서 발암물질로 지정한 교대근무를 하면서 수맣은 감염물질에 노출되며 근무한다. 휴식시간은 당연히 보장되지 않고 장시간 서 있기에 하지정맥류가 걸리기 쉽고 화장실도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리기 쉽다. 식사가 불규칙하고 잠을 잘 자지 못해 위염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무거운 환자와 짐을 드는 일이 잦아 근골격계 질환도 많다. 여기에 환자의 치매와 섬망증상으로 위험 상황에 노출되기도 한다. 간호사는 폭행과 폭언, 성희롱에 쉽게 노출된다. 근무 환경이 이러면 자주 쉬기라도 해야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간호사는 여유인력이 전혀 없다. 내가 쉬면 쉬고 있는 다른 간호사가 휴일을 반납하고 나와야 한다. 그래서 병가를 내지 못한다.

 현 의료보험 시스템은 일부 질병군의 포괄수가제(미리 정해진 일정액의 진료비를 지불)제외하고 대부분의 의료 행위에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의료 행위별 수가를 정해 진료비를 지불)한다. 그런데 문제를 간호사의 의료 행위에 대해서는 수가를 거의 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병원입장에서는 간호사의 의료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게 되니 간호사를 쓰면 쓸수록 적자를 보게 된다. 그래서 병원은 간호사를 최소로 배치하게 된다. 간호대학은 많아서 매년 간호인력은 쏟아진다. 사실 그러면 자리가 모자라야 하는데 자리는 넘쳐난다. 기존 인력이 모두 힘들어서 그만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엔 매번 젊은 간호사가 자리한다. 이들이 어느 정도 버티다 나이가 들면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그래서 우리 나라 병원엔 나이들고 경력있는 간호사가 남아있지 못한다. 

 여기에 대형병원은 비용문제로 정규직 의사도 충분히 확보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들의 업무가 비정규직 의사인 인턴에게 넘어간다. 그러면 인턴의 업무는 간호사에게 넘어간다. 때로는 임상병리사, 방사선사의 업무도 간호사에게 넘어간다. 그래서 간호사 본연의 업무인 간호 업무가 환자의 보호자에게 부과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환자 보호자가 환자를 간호하거나 간병인이 따로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