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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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자주 즐겨 보지 않는 편이고(거의 독서가 어려운 상황에서 스트레스 해소용이다), 읽고나면 빠르게 소비하듯 중고로 판매하는 편이다. 뭔가 남지 않는다는 느낌에 그런 편인데 간혹 남기고 싶은 소설도 있곤 하다. 오래전 읽었던 천명관의 고래(책을 좀처럼 보지 않는 우리 아내도 이걸 한숨에 읽었으며 무려 3번을 봤다), 그리고 (작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과학소설이었던 '멀리가는 이야기', 2차원 세계를 재밌게 다룬 '플랫'이란 소설이 그랬다. 이번엔 '디디의 우산'을 읽었는데 이것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소설엔 매력이 있다. 표현력이 부족한 내가 말하기 어려운 득톡한 분위기와 문체와 그에 따른 인물 표현력, 머릿속에 풍경을 나도 모르게 그리게하는 묘사력, 그리고 사회를 교묘히 다루는 솜씨다. 연작소설이라 표지에 써있기에 이전 작과 연결이 되나 싶어 처음엔 아차싶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책에 있는 두 개의 소설이 접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연작인듯하다. 접점은 사회적 사건들이다. 박근혜의 탄핵, 세월호 사건, 명박산성 등 지난 민주주의 파괴의 10년이 두 소설의 접점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티를 전혀 내지 않으며 실제로고 그렇지만 그냥 보면 이 책은 사회적 사건을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더욱 매력이 있었다.

 디디의 우산은 제목이 좀 그랬다. 난 왠지 한국이나 일본 소설에서 자국인을 영어명칭으로 표현하는게 맘에 들지 않는다. 굳이 그럴필요가 있을까? 독특한 인물 표현과 다른 느낌을 주는 효과는 충분해 보이지만 정작 서구인들이 이런 방법을 좀처럼 쓰지 않는다는 면에서 그들 중심적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 워낙 매력적이라 이런 생각은 곧 사라졌고, dd는 정감있게 느껴졌다. 

 소설 dd의 우산엔 서툰 솜씨로 가족을 힘들게한 아버지를 둔 d라는 남자와 어려서 그와 학교에 남아 낙뢰가 떨어진 사건을 함께한 dd란 여자가 나온다. 둘은 동창회서 만나 끌리고 함께 동거한다. 결혼은 아니었다. d는 시끄러운 목공소에서 자랐고, 가난했으며 소음에 시달리며 살았다. 민감해져서인지 둔감해져서인지 자꾸 사물에서 온도가 느껴졌고, 그게 싫었다. 하지만 dd를 다시 만나고서 그런건 아무렇지 않아졌다. 

 둘다 돈이 없기에 강서구의 목2동 반지하 빌라에 자리잡았다. 서로의 직장과 동등한 거리. 창밖으론 주인집 할매가 키우는 화단과 양귀비가 보였고, 하필 그 창가가 응달인지라 동네 할매들이 연인의 창가에 상시 모여 수다를 떨었다. 그들은 그게 미안했는지 떡이며 식혜며 먹을걸 주곤했다. 달착지근한 연애소설을 기대했거만 불과 십여페이지만에 퇴근길에 dd는 죽어버린다. 버스사고였는데 하필 정말 운이 없어 창밖으로 dd는 튕겨나갔다. d는 폐인처럼 몇달을 월세도 내지 않은체 방안에만 칩거한다. 그리고 그토록 사랑했을터인데 dd의 짐도 모두 그녀의 가족에게 보낸다. 그리고 세운상가 인근에서 택배일을 시작한다.

 남들이 며칠이면 떨어져나가는 일을 하며 d는 생기를 찾아간다. 그리고 쇠락한 세운상가에 전축수리점에서 백만원자리 전축을 사 dd가 즐겨든던 LP판을 듣곤한다. 그것도 자기가 사는 고시원에서. 소설은 전반적으로 d가 일과 dd가 듣던 음반을 통해 치유되어가는 과정이 나온다. 인물의 심리묘사가 독특한데, 무척 만연체로 묘사하며 실제로 사람이 그렇듯이 심리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왔다갔다하며 모순된다. 이런 면에 소설을 좀 읽기 힘들게 만들면서도 재밌는 부분이었다.

 연작으로 나오는 다음 소설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다. 이번엔 서수경과 김소영, 김소리, 정진원이 나온다. 시점은 김소영이고 서수경과 김소영은 오래전 중학교부터 알던 사이로 육상대회서 만났다. 그리고 대학에서 운동권활동을 하며 둘은 서로 만나고 이끌려 동거인이 된다. 김소리는 김소영의 여동생이고 정진원은 김소리의 아들, 즉 김소영의 조카다.

 김소영의 시점이면서도 동생을 김소영, 다섯살 배기 조카를 진원이도 아닌 정진영, 연인을 서수경이라 표현하면서부터 독특함이 느껴진다. 인물 표현과 심리묘사는 디디의 우산과 매우 다르다. 순차적이며 쉽게 파악된다. 하지만 사회적 사건이 많고 둘은 이 사건에 항상 참여하고 공감하고 담백하게 분노하며 이를 다루는 점이 차이점이다. 

 공통점은 이들 역시 디디의 우산에서처럼 강서구에 거주한다는 점이고 세운상가라는 공간을 앞소설과 공유한다는 것과 박근혜 탄핵이라는 큰 사건을 다룬다는 점이다.

 분위기가 제법 다른 다 연작소설을 교묘하게 이은 점이 이 책의 재미였다. 둘다 분위기와 느낌이 무척 독특하다는 면도 재미다. 책의 굿즈로 책에도 잘 나오지 않는 d의 선곡음악 cd가 담겨있었는데 비오는 날 이 책과 더불어 다시 읽는다면 많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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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02-22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저는 최근에 a부터 h까지 등장하는 소설을 읽었는데 뭔가 몰입이 안되는 느낌이더라구요. 지금 읽고 있는데, d와 dd를 어떤 이름으로 치환할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카알벨루치 2019-02-22 14:27   좋아요 2 | URL
dd는 <아무도 아닌>에서 나왔죠 ~지금 읽는중인데 팍팍 진도가 안나가는군요 ㅎ

닷슈 2019-02-22 14:30   좋아요 2 | URL
저도 읽으며 같은 고민을 했죠

카알벨루치 2019-02-22 14:33   좋아요 2 | URL
작가가 몰입 안되게 만들어놓았네요 고얀 황정은님! 미워할 수 없는!!!ㅜㅜㅋ

닷슈 2019-02-22 14:39   좋아요 1 | URL
네 몰입이 안되는 면이 있어요

뒷북소녀 2019-02-22 14:41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 어쩐지. 낯설지 않다 했어요. 저도 아무도 아닌 읽었는데 도통 기억이ㅠㅠ

카알벨루치 2019-02-22 14:46   좋아요 1 | URL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는 어쩔수 없는 부분이니 여기저기 산재할수도 있다 싶습니다 더군다나 이전의 쓴 소설을 토대로 한 소설이니 더 그러할듯 싶기도...암튼 작가들은 다들 대단한듯 합니다요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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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역사가 제법 길기도 하지만, 우리완 다르게 상당히 많은 수와 왕조들이 자주 명멸해갔다. 한국에선 통일왕조가, 혹은 분열상황에서도 서로 간의 균형이 500년 정도는 가는 반면 중국은 그 기간이 이삼백년 정도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여기엔 아무래도 이렇다할 지리적 방어선이 없는 기름진 중원을 침탈해오는 유목세력들의 꾸준함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장성도 만들었을 것이다. 별 쓸모는 없었지만.

 이 책은 그렇게 많은 왕조가 명멸한 중국의 여섯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도 여러 왕조가 도읍으로 삼은 도시가 있듯, 중국도 역시 그러하다. 여섯개의 도시는 장안, 뤄양, 카이펑, 항저우, 난징, 베이징이다.

 

1. 장안

 장안은 한자 뜻 그대로 길게 오래도록 평안한 곳이라는 의미이다. 왕조가 오래도록 평화롭게 지속되는 염원이 담겼다 할 수 있다. 장안은 중국인들이 중원이라고 일컫는 황하 중상류 지역에 위치하며 이곳은 강으로 둘러쌓여 교통의 요지이면서 방어가 유리하고 여러곳으로 접근하기 쉬운 천혜의 장소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초기 국가들과 문명은 여기서 발생했으며 그래서인지 역대왕조가 가장 많이 도읍한 곳이기도 하다.

 중국의 고대국가인 하, 상, 주, 전국시대의 진, 한, 수, 당이 모두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다. 장안성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국제적 성격이 강했던 전성기 당의 수도로서의 장안이다. 워낙 대단해 발해와 일본의 왕조가 장안을 본따 그들의 수도를 건설했다. 전성기 장안의 인구는 무려 백만에 달했으며 크기는 동서로 9.7km 남북으로는 8.5km의 장방형으로 당시 서양 최고의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의 무려 7배에 달하는 크기였다.

 장안에는 방이라는 폐쇄공간이 있었는데 이것들이 108개가 장안성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도시의 가운데는 황제가 다니는 주작대로가 있었으며 주작대로를 기점으로 동시와 서시로 나뉘었다. 도성의 동서남북에는 각각 3개의 문이 있었는데 천지인을 뜻했다. 도성내부에는 방 사이로 9개의 길이 있었는데 고래로 중국은 우리가 전토를 팔도로 나누는 것처럼 땅을 구주로 나누는 전통이 있었으며 이는 그를 의미한다. 거기에 방은 13줄로 배열되었는데 이는 12달과 윤달을 의미하며, 황성 남쪽에 있던 4개의 방은 4계절을 의미한다. 이처럼 장안은 중국 전체와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는 표현하려는듯 철학적으로 완벽한 도시였다.

 하지만 문제도 많았다. 일단 도시가 너무 폐쇄적이었다. 장안은 상당한 크기였지만 웅장한 성벽에 둘러쌓여 도시와 확장에 문제가 많았다. 또한 장안 내부의 방들도 폐쇄적이었다. 성도 아니면서 각 방들은 높은 담장에 둘러쌓여있었다. 밤이면 각 방은 문을 닫고 도시경비대가 순찰을 돌았다. 주작대로를 중심으로 동시엔 고관대작과 귀족이 거주하는 반면 서시는 외국상인들와 평민들이 살았다. 공간적으로 분리된 셈이다. 이로 인해 당의 장안에는 대부분의 백성이 세들어 살았으며 당의 국운이 기울었을 댄 가난함이 이루말하기 힘들정도였다고 한다.

 

2. 뤄양

우리가 낙양으로 알고 있는 도시다. 한자로 양은 강의 북쪽을 의미하므로 뤄양은 낙하의 북쪽에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한양도 한강의 북쪽이란 뜻이다. 뤄양은 동주, 후한, 조위, 서진, 북위, 수, 당, 후량, 후당의 아홉왕조가 도읍한 곳으로 장안 만큼은 아니지만 만만치 않은 위용을 자랑한다.

 뤄양은 장안에 비해 뚜렷한 장점이 있었는데 장안이 기후가 건조해 농사가 잘 되지 않아 식량수급에 문제가 많았던 반면 뤄양은 식량 공급이 매우 원활했다는 점이다. 이는 기후탓도 있지만 좀더 하류에 위치하고 낙하의 존재로 조운에 매우 유리했기 때문이다. 특히, 수나라때 대운하가 건설된 이후로는 뤄양은 조운의 중심지로 사용되어 매우 많은 곡식창고가 건설되었다.

 

3. 카이펑

 카이펑은 후량, 후진, 후한, 후주, 송이 도읍한 도시다. 카이펑은 장안이나 뤄양에 비해선 좀 덜알려진 편인데 아무래도 중국 왕조중 군사적인 면에서 가장 맥을 못춘 송왕조의 도읍이어서가 아닌가 싶다. 카이펑은 주변 지세가 낮고, 주변에 이렇다할 산 하나 없어 방어에 매우 취약했다. 하지만 이를 만회할 만한 장점이 있었는데 바로 드넓은 평지와 더불어 주변 수로가 도시에 촘촘히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중국의 왕조들은 카이펑 인근에 인공운하인 변하를 건설하고 황하와 회하를 연결하는 수상교통의 요지를 건설했다.

 카이펑은 주변하천이 많고 지세가 낮아 교통엔 유리했지만 이로 인해 수공을 자주당했다. 카이펑은 점령한 적들은 대부분 변하를 막아 물을 모아 터뜨리는 형태로 카이펑을 침수시켜 점령하는 방법을 자주 택했다. 역설적으로 이는 방어에도 사용된 적이 있는데 중일전쟁시절 일본군의 진군을 막기위해 변하주변의 제방을 국민들군이 터뜨린적이 있다고 한다.

 카이펑은 수도로 삼은 송을 세운것은 조광윤이다. 그는 조선의 이성계가 고려의 장수였던 것처럼 후주의 신하였다. 후주의 7살황제 공제가 다스리던 시절 갑자기 북방의 요가 후주를 침입한단 소문이 들렸고 이에 절도사 조광윤은 대군을 이끌고 출정한다. 원정중 천막에서 잠든 조광윤이 일어나자 자신의 몸엔 어느새 황포가 덮여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이에 조광윤은 천명을 깨닫고 회군하여 왕위를 찬탈한다. 우리의 위화도 회군과 참 많이 비슷하다.

 조광윤은 북벌을 하기 보다는 보다 쉬운 남쪽의 왕조들을 먼저 정벌하였으며 사대부를 중시하였다. 조선과 많이 비슷한 점인데 조선의 성리학의 토대인 주자학인 송대에 발전하였기 때문인듯 하다. 그래서인지 송의 황궁은 중국의 매우 화려한 다른 궁에 비해 매우 적은 규모였다. 또한 송은 백성을 위한 복지제도가 발전하고, 상업이 발전하는등 현대적 관점에서 상당히 선진적인 국가를 건설했다. 당의 장안과는 다르게 폐쇄적인 방도 없었으며 야간 통금도 없었다. 하지만 북벌을 결국 해내지 못한 점과 문치주의로 군사력이 약해 결국 금에 의해 남으로 쫓겨나 남송이 되며 원의 쿠빌라이에 멸망당하고 만다.

 나라의 근본인 같은 성리학이어서인지 백성을 위하는 민본정치를 이념으로 삼고, 집권층이 사대부로 검약하고 군사력도 약해 외침에 크게 당했다는 점에서 송과 조선은 상당히 비슷했다.

 

4. 항저우와 난징

 항저우는 금에 카이펑을 잃은 송이 도읍한 곳이다. 유명한 중국음식인 동파육이 기원한 곳이고 상당히 유명한 자연환경과 문화가 가득했다. 책을 읽다보니 중국의 지배자들은 강남의 높은 문화수준와 생산력, 자연환경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정작 이곳은 도읍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북방왕조의 침입에 의해 마지 못해 도망간 경우거나 왕조자체가 이곳에서 창업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아무래도 문화의 중심과 한족의 정통성이 중원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난징은 베이징과 더불어 '경'을 유지하는 곳이다. 북경과 남경인 것이다. 오와 동진, 송, 제, 양, 진의 육조가 도읍하였다. 특히, 난징은 명의 초기 수도였는데 명을 세운 주원장이 수도로 삼았다. 주원장의 본명은 주중팔이었는데 주살안다는 의미의 주와 원나라의 원을 써서 원을 멸하는 인물이라는 뜻을 가진 주원장으로 개명하였고 이를 이루어낸다.

 주원장은 난징에 도성을 쌓고 13개의 문을 만들었는데 남쪽은 남두육성을 본따 북쪽은 북두칠성을 따라 만들었다. 남두육성은 삶은 관장하고 북두칠성은 죽음을 관장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삶전체를 관장한다는 뜻으로 도시를 만든듯 하다.

 난징은 매우 좋은 도시였지만 중국전체를 다스리기엔 무리가 있는 도시였다. 이에 주원장은 다른 지역으로 천도하고자 했지만 죽어 뜻을 이루지 못한다. 명은 지금의 북경으로 천도하는데 이는 주원장의 아들 주체가 왕위를 찬탈하였고, 연왕이었던 주체가 자신의 근거지로 수도를 옮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체는 조선의 이방원과 상당히 유사하다. 서열도 각각 넷째와 다섯째이며, 엄청난 견제를 받았으며 동생으로부터 나라를 빼았았다는 점도 같다. 이런 주체를 견제하기 위해 주원장은 공신세력을 엄청나게 숙청하였는데 이로 인해 정작 황태손을 지킬 세력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5. 베이징

 지금의 중국 수도인 베이징은 명, 원, 청등 가장 최근이면서도 굴직한 왕조들이 도읍한 곳이다. 그리고 명을 제외한다면 주로 유목 정복왕조가 도읍한 곳이기도 하다. 여기엔 이유가 있는데 베이징은 바로 남쪽의 농경과 북쪽의 유목의 점이지대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을 따라 중국의 만리장성은 15인치 등우선과 거의 일치한다. 15인지는 연간 강수량 381mm로 농경의 한계지대이다.

 따라서 베이징은 유목민족이 자신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농경민족인 한족은 지배관리하는 최적이자 한계지역이 된다. 베이징은 대부분의 도읍이 장방형인것과는 다르게 요철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베이징이 발전하면서 남부지역의 인구가 늘자 외성을 더 크게 축조하게 되었는데 남쪽부터 시작하여 그 쪽은 크게 짓고 도중에 비용이 모자로 역지로 연결하다보니 남쪽만 커졌기 때문이다.

 만리장성은 중국인에게는 하나의 큰 상징이자 자부심이며 한계이다. 그만큼 역설적인 곳인데 진시황이 처음 축조한 이유가 통일된 중국을 하나라 묶고 정립한 세력을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며 더불어 북방으로부터의 방어를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장성은 그후로 계속 중국의 확장과 고립 및 공포와 폐쇄성의 양면을 갖는다. 장성은 수세시엔 방어와 폐쇄의 역할을 공세시엔 확장의 그 지역의 식민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공세인 요즘은 장성을 함부로 한반도 북쪽까지 연장하려는 속셈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책에 기대한 건 중국의 여섯도읍지와 수도로서의 지리적 이점등을 알고 싶어서였지만 사실 이 부분은 책의 일부이고 대부분이 역사적 문화적, 관련 인물 내용들이다. 중국의 역사를 좀더 알게 된 면도 있지만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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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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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대한 서양미술사 중 근대 작가의 삶과 작품, 그들의 세계관을 담아낸 책이다. 매우 쉽게 썼고 사생활 비중과 그것이 작품세계에 미친 영향을 많이 담아냈기에 매우 쉽게 읽을 수 있는 편이다. 가벼운 듯 하지만 나름 깊이가 있고, 작가의 상상도 제법 재미를 준다.

 항상 미술가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못하는 편인데. 왜인지 생각해보니 그들의 얼굴을 모르는 것도 제법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다. 미술책들은 무척이나 작가들의 작품을 상세히 다루고 컬러도판을 아낌없이 실으면서도 이상스레 정작 작가의 얼굴엔 무관심했다. 그런데 이책엔 매 작가의 사진얼굴이 나온다. 사진 발명이 일어난 근대 작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상외로 괴팍할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얼굴은 평범하다 못해 잘생기기까지 했다. 물론 현상도가 떨어지고 사진자체가 작으며 주름과 세월을 잡아내지 못하는 흑백사진이란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여튼, 사진은 그들의 얼굴만 잘 나오게 한건 아니다. 그들의 작품세계도 변화시켰는데 신이 만든 세계에 대한 모사, 그리고 종교적, 신화적, 정치적 인물과 사건 대한 포장이 작품의 목적이었던 것이 사진의 등장으로 작가 주관의 세계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사진이야말로 최고의 모사가 가능하니 더이상은 모사로는 승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기 근대작가들의 작품은 매우 실험적이고 파괴적이며 독특하다. 그러니 오늘날에도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런지. 책에 등장하는 뭉크, 고흐, 프리다칼로, 에곤 실레, 클림트, 드가, 고갱은 자신의 주관에 의해 세계를 매우 독특하게 그림과 색상으로 표현했다. 거기엔 평소 그림의 대상이 되지 않던 계층과 사물을 표현하는 방식도 포함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상주의를 본격적으로 연 인물인 마네로 이어진다. 마네는 풀밭위의 점심과, 올랭피아로 전통을 철저히 파괴한다. 그의 영향을 받아 모네는 더 나아가 빛에 주목한다. 빛이 사물의 인상과 모습을 만들어낸 찰나를 기록한 건초더미 3연작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렇게 개인적이고 순간적이며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찰나와 변화에 몰두하던 인상주의에 제동을 건 것이 세잔이다. 세잔은 인상주의가 사물의 윤곽을 흐리고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인상주의의 뜻은 존중하되 그 표현방식을 달리했다. 사물의 진정한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인데 그 방식으로 그는 색상과 형태를 택한다. 그래서 세존은 입체주의와 색채를 드러내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세잔에 영향을 받아 등장한게 피카소와 마티스다. 책은 피카소 편에 마티스를 같이 다루는데 둘은 라이벌이었다. 나이는 마티스가 훨씬 많았으며 입체주의 대가로 이미 파리에서 인정받고 있었지만 젊고 야망찬 피카소는 마티스의 입체주의를 빠르게 따라가며 야생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를 훔쳐 먼저 작품화하기까지 한다. 좌절한 마티스는 수십년간 고전하지만 스페인의 문양과 색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피카소와 다시 경쟁한다. 말년 둘은 서로 화해하고 서로의 작품은 서로의 색깔이 묻어나는 묘한 지경에 이른다. 입체의 피카소는 문양과 색상을 마티스는 입체를 쫓는 식이다.

 인상주의에 마무리를 찍은(?)것은 마르셀 뒤샹이다. 샘으로 유명한 그는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생을 작품화 하려 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상주의든 입체주의든 야수파든 모두 회화라는 틀에 갇혀있던 미술계에 뒤샹은 과감히 오브제란 개념을 새로 던진다. 그는 샘작품을 여러개 제작해서 팔기까지 했다. 스스로가 스타가 되고 작품을 양산해 팔아내는 이 방식은 미국의 팝아트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한다. 실제 훗날 앤디워홀이 딱 그렇게 한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재밌다. 대입초년생이나 이웃들에게 선물용으로 좋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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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시대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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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알고 있는 대로 박노자는 독특한 면을 갖고 있다. 특이한 정체성과는 다르게 러시아 출신이고, 한국에서 오래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으나, 정작 사는 곳과 근무지는 노르웨이다. 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해 한국이름도 있는데, 러시아 사람이란 뜻으로 '노자'다. 한자로 러시아가 '노'이니 노를 쓰고, 사람이나 아들이란 뜻으로 '자'를 쓴 것이다.

 이렇게 독특하다보니 시각도 남다르다. 한국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외국인만한 객관자가 될수 없는 없는데 그는 이런게 가능하면서도 외국인이 놓치는 한국만의 정체성과 문화에 대한 이해도 상당히 갖고 있다. 즉,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이해와 관찰이 가능하달까? 거기에 러시아와 노르웨이에 대한 경험으로 상호 비교가 가능하니 날카로운 통찰과 시사점 제공도 가능하다.

 이번 책도 그랬다. 전에 읽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연장선인데 이번엔 모음글을 엮을 책이다. 전작은 박근혜 치하에서 나온만큼 상당히 절망적이고 어조가 강했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정말 말이 안되는 일만 사라졌을 뿐이지 나라의 근본 문제는 여전해 책에서는 여전히 문제의식이 강하다. 대통령만 조금 나아졌을 뿐 바뀐것은 많지 않으며 변화의 속도와 깊이는 약하다는게 그의 전반적 평이다.  

 책 제목은 전환의 시대인데 그가 말하는 전환은 3가지로 '탈분단', '탈군사', '탈자본'이다. 전환을 필요로 한단 이야기는 박노자가 보기에 이 세 가지 것들이 한국사회의 근원적 문제라고 보고 있다는 뜻이다. 우선 탈분단으로 그는 통일이란 말이 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오래된 진영의 논리이고 북측을 동등한 파트너이자 주체로 생각하는 느낌이 약하기 때문이다. 탈분단이 필요한 이유는 우선 분단이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양측의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의무라는 이유로 정당한 대가없이 긴 기간 군복무를 해야한다. 거기에 국방비로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한국의 국방비는 GDP대비 상당한 수준이며 매번 국방비리와 주요구매처가 미국이라는 점에서 효율적 집행도 안되는 편이다. 이 비용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경제협력으로 썼다면 진작에 평화는 구축되었을 거라는게 박노자의 생각이다. 북측입장에서 생각하는 것도 재밌다. 북측입장에서 보면 적국인 한국과 미국의 전력은 막강하기 그지 없다. 한국하나만 보더라도 자신들의 수십배에 달하는 경제력과 기술력을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군사력도 상당하다. 거기에 러시아와 중국이 떨어져나간 자신들과는 달리 여전히 세계 최강국의 군사가 주둔하고 있다. 가히 위협적이라 할 수 있으며 북의 핵무장도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이해한다.

 다음은 '탈군사'이다. 박노자는 이전 저작부터 한국의 군사문화가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것을 의아해하며 문제시했다. 그리고 그는 한국사회의 갑질 문화도 이 군사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한다. 한국이 군사화 된 것은 사실 분단때문인데 이승만 정권이 미국의 의존하고 냉전의 전초기가 된 것이 그 시초로 볼 수 있다. 한국은 냉전의 대리전을 통해 지독히 가난함에도 대병을 유지해야하는 군사국가가 된다. 이로 인해 한국의 인구대비 군사의 숫자는 세계최고 수준에 달하며 이로 인해 상당수 한국민들이 업악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를 상당기간 거치며 내면화하게 된다. 또한 외세에 의존한 정부역시 이로 인해 상당히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갑질 문화를 내포하게 되었으며 이들의 수혜를 받아 각종 특혜로 성장한 대기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 사전에도 없어 한국어 발음으로 표기할 수 밖에 없는 갑질문화가 한국사회 널리 퍼졌있다는게 박노자의 생각이다.

 마지막은 '탈자본'이다. 한국은 상당히 신자유주의에 친화적인 국가다. 돈이 많이 들고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어리석은 정치인이 있지만 여전히 한국의 gdp 대비 복지예산편중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거기에 최근의 모 드라마에서 잘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인적재생산은 철저히 부모계층의 자본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엄청난게 오른 집값과 부동산 값은 물론이고 엄연한 계약관계임에도 사용자와 노동자와의 갑을관계는 자본의 폐해를 매우 잘 보여준다. 박노자는 적어도 인간의 최소생존조건인 교육, 의료, 주거에 있어서는 자본에 모든 걸 맡겨놓아서는 안된다고 본다. 질도 그다지 좋지 않은 교육을 학벌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는 대학, 지불능력이 없는 환자는 진료하지 않는 병원, 집값을 올리는 토건세력과 있는데로 상인을 쥐어짜는 건물주역시 모두 적폐로 본다.

 그럼 이런 꽉막힌 현실의 해결책은 대체 무엇일까? 박노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약자층의 연대다. 노동조합이나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약자들이 뭉치고 연대해서 저항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학벌이나 명문대학은 사라지고 모두가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병력은 모병제로 충원되어 규모는 10만정도에 불과해지고, 무상치료와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람들 모두가 쉽게 거주할 수 있으며, 평화체제가 정착되어 누구나 평양이나 원산에 쉽게 다녀올수 있는 나라가 될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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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2-09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목조목 잘 정리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흐흑.. 박노자가 제시한 해결책은 조금 답답해 보이고 과연 그런 날이 올지 참 멀게만 느껴지네요. ㅠ.ㅠ

닷슈 2019-02-09 23:30   좋아요 1 | URL
저도 참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그럴수 있다면 의외로 쉽게 될수도 있긴한데 마중물을 주거나 불붙이는게 참 지난하게 느껴집니다. 책에서 박노자는 착취당하는 시민들의 분노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는 것 같았습니다.

cyrus 2019-02-10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연대’를 주장하면 결집력이 생길 수 없어요. 연대하는 세력이 모두 같은 마음, 같은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없거든요.

닷슈 2019-02-10 20:17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잘 뭉쳐지지 않고 기득권층에 이이제이 당하는 측면도 크죠. 하지만 공통점도 크다고 봅니다. 최순실 게이트도 어이없게도 ‘학벌‘이라는 것의 공정성을 건드린게 도화선이 된 만큼 모든 걸 포괄하지도 못하는 어이없는 무언가가 결집과 혁명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입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등장으로 케인즈 주의가 한계에 부딪힌 후 경제 패러다임은 신자유주의로 넘어갔다. 이후 세계 경제는 가난한 나라건 부자 나라 건 할 것 없이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리게 되었다. 빈부격차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능력에 따른 정당한 차별의 결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여기엔 굳이 사회적 차원이 아닌 개인적 차원만 보더라도 자신의 태생적 능력과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사회적 지위로 인한 출발점 차이, 거기에 생산수단을 갖추고 있느냐 아니냐등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많은 것들이 작용한다. 그래서 어찌보면 빈부격차는 애초에 공정하지 못한 게임이면 결국 강자에 의한 '약탈'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의 생산성 증가로 이룬 공통의 부를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부가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빈부격차는 상대적 박탈감 등 여러가지 갈등을 일으키며 심해지면 사회의 정치 경제 체제가 붕괴하며 새로운 체제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는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던 일이다.

 과거엔 주요 생산수단이 땅이었으니 땅의 소유 여부가 곧 빈부격차였다. 남경태는 그의 책 '역사'에서 우리나라나 중국의 역사흐름을 이 땅의 소유여부와 수취체제의 건정성에 따라 살펴보았다. 그에 따라면 통일신라나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은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한 사회 붕괴와 재건의 연속에 불과하다. 일단 한 왕조가 새로 들어서면 비교적 우호적이고 공평하며 건전한 토지 체계가 확립되고 이에 수혜를 보는 새로운 계층이 들어선다. 그리고 이들은 초기에 진취적이고 비교적 합리적이다. 이로 인해 나라의 부가 증가하고 왕국은 곧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대를 지나며 수취체계에 틈을 노려 토지의 병합이나 약탈이 일어나고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와 욕심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진다. 견디지 못한 피지배층의 불만과 반란이 곧곧에서 일어나고 나라가 약해져 외침도 잦아진다. 그리고 반세력들을 규합하는 새로운 세력이 일어나 정권을 무너뜨린다. 새로운 왕조의 탄생인 것이다. 그리고 이 왕조는 그래도 이전보다는 조금 더 좋아진 새로운 토지체계를 세운다. 그리고 반란에 공을 세운 진취적이고 합리적인 새로운 지도층이 수혜를 보고 성장하며 백성도 좋아한다. 이후 시기가 지나면 쳇바퀴처럼 반복인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생산수단이 땅에서 자본이나 노동으로 이동한 이후 빈부격차는 통화로 인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다룬 책이 '인플레이션'과 '거대한 약탈'이다. 미국은 1971년 33달러당 1온스의 금으로 고정되어 있던 자신들의 태환화폐를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자로 인해 하루아침에 불태환 지폐로 바꿔버렸다. 이는 공교롭게도 신자유주의 시점과 맞물려 각국의 중앙은행은 국채나 채권을 파는 형태로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낼수 있게 되었다.

 이 돈을 받아 각국의 상업은행들은 겨우 2%미만의 지급준비율로 담보대출을 마구잡이로 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실물의 가치는 엄청나게 올라가고 종이돈의 가치는 대거 하락했다. 지난 100년간 달러의 가치는 무려 96%나 상실되었다고 한다. 마구잡이 대출로 경제는 부동산 위기로 이어졌고, 파생상품등을 통해 묻지마 투자를 행한 금융기업들이 대거 무너졌다. 하지만 이들을 살린 것은 사람들의 세금인 공적자금이었으며 정부는 공적자금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세금을 올리기 까지 한다. 이익은 사유화하되 손실은 사회화하는 것이다. 결국 일반 시민들은 부동산의 지나친 폭등이나 하락으로 재산의 직접적 혹은 상대적 손실은 입고, 세금을 뜯겼으며 생산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통화로 급여를 받아 저절로 약탈을 당한 셈인 것이다.

 

 

 

 

 

 

 

 

 

 

 하지만 약탈은 통화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땅과 집을 통해서도 약탈은 이루어졌다. 책 땅과 집값의 경제학은 그것을 다룬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는 아메리카 토착민 부족의 한 추장이 땅을 팔 것을 요구한 백인들에게 보낸 답서가 나온다. 내용은 땅이란게 나도 쓰고 다른 부족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동물과 자연이 공유하는 것인데 어찌 팔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내게 아닌데 어떻게 파냐는 말이다. 과거 인구가 적어 땅이 좀 널려 있긴 했지만 인류역사에서 오래도록 땅은 이처럼 공유지의 개념이었다. 물론 땅을 점유하거나 이용하는 등의 권리(경작권이나 수취권)등은 옛부터 있었지만 지금처럼 철저히 배타적인 소유권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경제학은 생긴 이래로 여러가지 이론을 만들고 발달을 해왔지만 유독 땅과 집에는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책의 저자는 바로 이런 경제학의 패착이 지금의 약탈경제를 불러온 주 이유라고 보고 있다. 즉, 지금의 빈부격차를 강화해나가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성이 꾸준히 올라감에도 경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집과 땅에서 비롯된다라고 보는 것이다.

 책은 이를 논증하기 위해 우선 땅과 집의 과거를 살핀다. 그리고 책에서 다루는 사례는 유럽이며 그 중에서도 영국이다. (읽다보니 한국과 너무나 비슷해 놀랐다) 다른 유럽국가처럼 영국역시 봉건사회에서는 땅의 대부분을 왕과 귀족, 교회가 소유했다. 그러던 것이 르네상스와 민주주의 혁명, 산업혁명등이 어우러지며 땅의 소유권이 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는 중상류층이로 이전되게 된다. 토지에 대한 소유개념은 토지에 대한 안정적인 확보가 필요했던 이들 계층의 요구에 맞게 발생했다.

 초기의 토지소유권은 이처럼 긍정적으로 작용해 새로운 계층이 등장하고 이들이 경제를 발전시켜나가며 인권의 개념이 태동하는데도 일조하는등 긍정적인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곧 이들은 새로운 가진자로 등장하여 토지를 대규모로 병합하거나 소유하는등 부작용을 발생시키기 시작했다. 이에 고전경제학에서는 경제의 3가지 요소로 노동, 자본, 토지를 포함시키며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와 개발로 인한 토지의 가치상승에 주목했다.

 그래서 등장한게 토지가치세란 개념이다. 토지가치세는 주변의 개발로 토지의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 이에 대해 과세하는 개념이다. 이는 매우 도덕적이면서 합당했는데 사실 개발이라는 것이 토지주인의 노력이라기 보다는 사회기반시설이 들어서는 등 국가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토지가치세는 실현되지 못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산업혁명 이후 토지의 사용이 농업생산에서 산업자본의 생산현장으로 용도가 변경되고, 토지가치세를 주장하던 경제학파가 유럽의 사회주의자들과 연합에 정략적으로 실패하였다. 거기에 신고전경제학이 대두하면서 땅을 자본에 포함시키는등 경제의 주요 생산과 분배이론에서 땅과 지대의 역할이 과소평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각국의 정부는 땅과 부동산에 과세하기 보다는 소득과 지출에 과세를 하기 시작했으며 이 같은 흐름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 영국정부는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이 끝나며 참전군인들과 공습으로 대규모로 파괴된 국토와 엉망이 된 민간경제사정으로 인해 대규모의 공영주택을 건설하게 된다. 이 때만해도 나라의 주택 정책은 국가위주의 공급형태였다. 이때부터 1970년대까지 집과 땅의 가격은 사회의 생산성 증가로 거의 동일한 정도로만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후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은행 금융이 다양화하면서 사태는 급변한다.

 영국의 대처는 부동산을 공급하는 것에서 수요를 창출하는 것으로 정책을 급 선회한다. 저가주택이나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보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집을 사게 도와주는 정책이다. 이를 통해 민영주택이 대규모로 개발되었고 사람들에게는 주택보유를 위한 대출의 편의성을 돕는 정책과 주택 보유시의 각종 감면정책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30%정도에 불과하던 영국의 자가보유율은 21세기 초반 60%까지 치솟았으며 쉬운 대출로 자금을 풀리자 집과 땅의 가격도 급등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너도나도 사용가치보다는 재산의 증식수단으로 주택을 보유하기를 원하였고 이로 인해 가격은 더욱 오르게된다.

 이렇게 되면 집을 갖지 못한 상당수의 사람들을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집이 없으므로 집을 통한 담보가 어려우며 이미 집값이 상당히높아져 결국 주택을 사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들에게 남은 선택은 임대뿐인데 높아진 집값으로 인해 임대료도 상당히 비싸진다. 이래저래 갈곳이 없게 되는 셈이며 이들이 사회의 생산성을 높여 얻어진 부가 집과 땅값의 증가로 약탈되는 셈이다.

 책은 21세기 들어 오래도록 생산성은 계속 증가하여 경제가 성장함에도 일반 시민들의 부가 증가하지 않고 오래도록 선진국 경제가 저성장의 국면에 빠진 원인도 집과 땅값의 급증에서 찾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은행은 사회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기업에 대출하기보다는 주택담보대출에 열을 올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혁신과 생산성이 하락하며 고용역시 줄어든다. 또한 가계에서도 자신들의 자산중 상당수를 부동산에 몰아넣음으로써 가처분소득이 크게 줄어 소비여력이 감소한다. 즉, 기업과 가계가 모두 어려움에 처해 기술혁신과 과학의 발달로 생산성이 증가하여 경제가 꾸준히 성장함에도 고용과 소비가 모두 부진한 불황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즉, 부동산 가격의 급증이 사회생산성의 증가로 이룩한 부를 약탈해가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런 암울한 진단을 마친 후 책은 몇 가지 해결책도 제시한다. 토지를 사적으로 놔두기보다는 싱가포르처럼 공유화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땅의 90%가 국유지로 기업과 가계는 국가로부터 토지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대여한다. 때문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사회기반 시설로 토지의 가치가 증가하더라도 이는 고스란히 국유화되어 다른 곳에 투자된다.

 토지의 국유화나 공유화가 어려운 곳에는 랜드풀링 같은 기법도 추천한다. 이는 기반시설을 구축한뒤 남은 땅을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방식인데 이 때 땅주인은 본래 자기토지보다 적은 땅을 돌려받게 된다. 하지만 개발효과로 이미 땅값이 크게 오른만큼 그는 이득을 보았기에 별 불만이 없이 이와 같은 방식을 수용한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회적 주택이다. 공영주택, 임대주택의 건설 역시 추천하며 개발이익 환수제 같은 방식 역시 다룬다.

 마지막으로 독톡한 방식은 금융의 변화였다. 현재의 금융은 트랜잭션 뱅킹 모형인데 이는 대출결정이 중앙집권적으로 이루어지고 자동화된 신용평가 방식을 갖춰져있다. 분기별로 높은 자기자본 수익을 요구하기에 담보가 확실한 대출을 선호한다. 즉, 지금의 주택담보형태에 적합한 금융방식이다. 책은 여기서 관계형 금융으로의 전환을 추천한다. 이 방식은 지역주민이나 기업이 소유한 협동조합이나 공영저축은행이다. 이들은 기업대출에 주력하고 담보요건이 까다롭지 않아 대출의 의사결정이 지점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즉, 대출시 담보보다는 관계에 주력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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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1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명절연휴 즐겁게 보내시고 맛난거 많이 드시고 늘 평온한 나날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