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의 잭 설산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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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소설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다만 협박이 있는데 스키장에 폭파물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범인은 스키장 측에 3천만엔의 금액을 요구한다. 스키장 측은 고민을 한다. 경찰에 알리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랬다간 이제 막 시작한 시즌을 통째로 날릴 우려가 있었다. 이미지도 훼손되어 다시 정상화되기까지 얼마나 시일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범인에게 돈을 보낸다. 그리고 범인은 폭파물의 정확한 위치 대신 슬로프 중 안전한 곳 일부를 알려주기만 한다. 그리고 더 정확한 위치를 위해 또 다른 3천만엔을 요구한다. 그리고 스키장 안전 요원인 패트롤 중 일부가 돈을 범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윽고 이들은 범인을 압박하고 추적하는 시도도 한다.

 스키장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매입 시부터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지역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당시 지역에서 전체 매입을 요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구매한 곳이었다. 그리고 작년에 그 지역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난다. 한 가족의 어머니가 스키를 타다, 스노보드를 타던 사람들의 엣지에 경동맥이 잘려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이다. 여기는 호쿠게쓰 지역인데 스키장은 수익성이 낮던 이 지역을 사건을 핑계삼아 폐쇄한다.

 하지만 호쿠게쓰 지역의 마을 사람들과 가게들은 이 조치로 더욱 상황이 어려워진다. 안 그래도 장사가 안되던 판국에 더 어려워 진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동계스포츠 인구는 정점을 찍고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스키인구는 지구 온난화로 영업일수가 줄어들고, 다양한 레져거리가 국내외에 생겨나고, 무엇보다 이 위험한 스포츠를 즐길 젊은 세대의 감소로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한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상황이기도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스키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스키장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여러 개 되기 때문이다. 물론 스키장이 배경이라고 해서 더 재밌는건 아니다. 나 같은 경우 이쪽 분야에 전혀 아는 바가 없는데 그래서 오히려 이해가 안가는 면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소설은 이 호쿠게쓰 지역과 스키장의 경영난, 어려워진 지역의 사정이 맞물려 사건이 형성되고 굴러간다. 초반부터 다소 예측이 되는 측면이 있었는데, 그래도 볼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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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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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워서 계속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보고 있다. 책은 읽고 싶고, 머리는 많이 쓰고 싶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을 때 추리 소설은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 이번 책도 별 생각 없이 잡았는데 책이 나온 시점이 10년도 더 전이었다. 다만 한국에 최근 출간되었을 뿐이다. 책의 형식도 독특했다. 단편 모음집이다. 그런데 그 단편 하나하나가 모두 소설가와 관련한 일이다. 그래서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한 이야기는 출판사의 편집자 4인이 한 유명 작가의 초대를 받으며 시작된다. 이들은 같은 차로 소설가의 집으로 향한다. 소설가는 이들 4인에게 거의 모두 출간을 어느 정도 허락한 상태인데 안 그래도 출판업계가 어려워 편집자들은 애가 탄다. 집에 도착하자 작가의 나이 어린 비서가 이들은 맞이한다. 작가의 아내는 최근 죽었다. 작가는 자신이 쓴 소설의 대목을 던지며 범인을 추리해내라고 한다. 시간은 겨우 하루다. 그 안에 맞춰야만 작가의 새 추리 소설 출간이 가능해진다. 물론 결론은 어이없게 이어진다.

 다른 이야기는 고령화와 관련한다. 또 한 편집자가 추리 소설 작가를 만난다. 작가는 90대로 워낙 고령이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기 시작했고, 과거 형성되었던 종이 책 독자들이 그대로 고령이 되었다. 작가 역시 새롭게 공급되지 않아 그 전의 작가들이 고령이 되어서도 활약하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90대 작가가 아직도 추리 소설을 쓰고 있다. 편집자는 그의 글을 받자 기가 막힌다. 배경도 너무 옛날인데다 작가가 치매라도 왔는지 내용이 도무지 뒤죽 박죽이고 엉망이다. 편집자는 이런 노환 작가의 글을 받아 거의 본인이 다시쓰다 싶이 한다. 이런 세태가 무척 아쉬운 편집자는 본인 역시 남들이 일선에 있기는 늙었다 타박하는 70대란게 반전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마치 지금의 인공지능 사태를 예견한 듯한 글이다. 한 추리 소설 비평가가 있다. 그는 많은 소설을 읽고 비평을 해야 한다. 생활을 위해서는 많은 글을 읽어야 하는데 이게 버겁다. 그러던 그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기계를 소개한다. 이 기계는 소설을 순식간에 읽고 내용을 요약 정리해줬다. 이것만 보고 비평을 써도 무척 편안해졌다. 여기까진 무료였다. 그러자 판매원은 다시 찾아와 이젠 아예 비평까지 써주는 업그레이드 버전을 추천한다. 이건 제법 비쌌다. 하지만 한 번 맛을 들이자 헤어 날 올 수 없었다. 그렇게 편하게 비평을 쓰던 그에게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출판계 관련자가 다른 사람의 비평이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한 것. 그는 대충 둘러댔으나 그 역시 같은 기계를 구입한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금과 관련한 이야기도 재밌었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던 소설가가 특별한 한 해 대박 작품을 터뜨려 제법 괜찮은 소득을 얻었다. 문제는 그 동안 생각지 못했던 세금이다. 번 돈을 마구 썼지만 소득이 커져서 세금도 만만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세금을 공제 처리 하기 위해 세무사 친구와 상담한다. 친구가 제시한 답은 공제처리 되기 위해서는 산 물건이나 여행이 모두 소설에 등장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 때부터 그의 소설은 배경과 쓸데없는 장면이 마구잡이로 등장하며 기상천외해진다.

 분량을 늘리는 소설 부분도 그렇다. 한 소설가가 원고지 800매 분량의 소설을 집필한다. 그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소설을 그에게 중요했다. 그러자 편집자는 이 소설을 1000매도 아니고 무려 2000매 분량으로 늘리자고 한다. 작가는 불가능하다 생각했지만 그가 방향을 알려주자 이게 가능해진다. 등장인물이나 배경에 대한 쓸데없는 살을 붙이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면 소설이 늘어진다고 싫어했지만 이미 독자들은 같은 값이라면 긴 소설을 선호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소설을 늘리고 그 덕에 제법 책이 팔리게 된다. 기가 막힌 상황이었지만 서점에 나가보니 정말 다른 소설들도 그런 식으로 글밥을 늘린 상태였고, 자신은 오히려 책이 얇은 형편이었다. 원래도로 800매자리 책이었다면 주목조차 받지 못한 지경이었다.

 이렇게 책은 소설가만이 경험하고 알고, 상상할 수 있을 만한 단편으로 구성된다. 그것만의 독특한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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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 인공지능 신화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마크 그레이엄.제임스 멀둔.캘럼 캔트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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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이 열풍이다. 이것이 세상을 크게 바꿀 것은 이미 자명해보이고, 다만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이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각종 기기와, 클라우드의 의존해 구현되기에 뭔가 공중에 붕 떠서 작동하는 느낌이다. 물론 인공지능 외에도 다른 디지털 도구들도 그러한 그낌을 준다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탄생하고, 유지되고, 잘 기능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기반과 그것을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요소는 필수적이지만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유튜브를 하면서 누가 그것을 검수하는 사람과 데이터센터와 인터넷 망과, 전력망과 프로그래머를 생각할까?

 책은 제목처럼 인공지능 역시 결국 사람과 물리적 기반에 의존함을 드러내며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전근대 혹은 식민시기에 만들어진 시스템에 의해 착취당하고 고통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인공지능 책이라기 보다는 사회시스템을 드러내는 책이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추출기계에 가깝다고 본다. 생겨나고, 제대로 작동하고, 유지되려면 막대한 자본과 권력, 천연자원, 노동, 데이터, 집단 지성이라는 인적, 물적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사람이 만든 것인 만큼 아직까지 사람의 정치경제 시스템에 기반하며, 데이터를 분류, 차별하고, 예측하는 모든 과정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권력 구조를 반영한다. 이런 관점에서 인공지능은 결국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들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을 개발한 빅테크들은 인공지능의 가능성과 편의성만 강조하지만 그 아래에는 물리적 기반과 노동이 숨겨져있다. 

 인공지능의 개발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위 빅테크들만 이것을 할 수 있다. 상당한 규모의 데이터 센터가 필요한데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데이터 센터의 절반 이상을 단 3개 기업이 보유한다. 현재 인공지능 기업들은 라이센서 판매, 구독, 기존 서비스에 인공지능 통합, 인공지능 임대 서비스로 수익을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그 위력으로 인해 플랫폼과는 다르게 국가의 전략 자산으로 인식된다. 인공지능 개발에 이렇게 막대한 돈이 들다보니 인공지능의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역시 약탈적이고 불공정하며 무역협정을 통해 자원을 수탈한 신식민주의의 모습을 띤다. 

 인공지능 산업을 글로벌 디지털 분업체계를 갖춘다. 고임금의 안정적 직업은 미국 등 선진사회에 분포하며 저임금의 불안정하고 위험한 작업은 남반구의 저개발국가에 집중된다. 그 대표가 데이터 주석 센터의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노동은 철저히 감시 및 통제당하며, 고용은 단기간으로 불안정하고, 급여는 하는 일의 가치에 비해 매우 적다. 그리고 데이터 주석 노동은 대개 하청의 하청으로 이뤄진다. 빅테크가 일을 의뢰하고 받은 곳이 또 의뢰하고 다시 의뢰하는 형식이다. 그 과정에서 사측이 이득을 봐야하니 결국 노동자에게 가는 몫이 줄어들게 된다. 

 이들은 데이터 주석 노동자를 감시하는데 대개 하나의 팀을 구성하고 그 팀의 리더가 각 구성원의 작업속도와 작업의 질을 감시한다. 작업의 질이 좋지 못하거나 속도가 늦으면 즉시 호출되고, 급여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프리카의 데이터 주석 노동자들은 주 최소 45시간을 일하는데 감시당하기에 극도로 집중해서 일하게 되며 그럼에도 임금은 한달에 200달러, 시급1.16달러 정도를 번다. 작업에 대해서는 95%의 정확도를 요구한다. 

 인공지능의 훈련 시간의 80%가 데이터 주석작업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이들의 노동은 인공지능의 탄생과 품질에 결정적이다. 데이터 주석 시장은 규모가 상당한데 2022년 22억 2천만 달러였고 매년30%씩 성장중이다. 하지만 이런 기여에도 데이터 주석노동자들은 노동권, 병가, 연금 같은 사회안전망이 전무하다. 독립계약자로 대개 시간당 2달러 남짓의 급여를 받으며 언급한 것처럼 기관 관계자들이 노동결과물이 만족하지 못하면 무보수다. 성과의 30%가 대개 무보수로 진행된다. 

 데이터 주석 노동에는 높은 수준의 언어 능력이 필요치 않기에 쉽게 아웃소싱된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로 간혹 문제가 발생한다. 데이터 주석 노동자들은 단결하고 항의하기가 쉽지 않다. 데이터 노동이란것 자체가 최근에 생겨나 일반 생산직들이 사무직이나 기능직, 프래랜선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고 노동조합도 없으며, 무엇보다 빅테크가 생산기지를 쉽게 옮겨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노동자에는 데이터 검수자도 있다. 전 세계의 플랫폼에는 다양한 영상과 사진이 실시간으로 엄청나게 올라온다. 이들 중에는 살인, 강간, 폭력, 범죄, 선정적 요소 등 공익에 부합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다. 일반인들은 이를 플랫폼에 머무면서도 쉽게 볼 수가 없는데 이런 일을 데이터 검수자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역시 데이터 주석노동자 못지 않게 감시당하며 엄청난 강도로 그것들을 본다. 하지만 검열 데이터 중 사람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것이 많기에 문제가 있다. 이들은 큰 충격을 받으면서도 일을 쉼없이 수행해야 하며, 감당하기 어려울 시 비전문상담가인 팀내 상담가랑 그것도 자신의 휴식시간을 할애하며 상담받는 것이 고작이다. 

 인공지능에는 막대한 물리적 기반이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데이터 센터다. 고속광섬유 케이블이 들어서면서 유럽에서 아이슬란드가 데이터 센터의 최적지로 주목받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 데이터 센터가 과열되어 화재로 이어지기 쉼상이기에 날씨가 서늘한 아이슬란드가 유리한 것이다. 여기에 데이터 센터는 운영비의 40%가 냉각비다. 그렇기에 비용절감효과도 상당하다. 또한 아이슬란드는 100%재생에너지를 사용하기에 re100의 준수에도 용이하다. 아이슬란드는 자국 전력의 30%는 지열발전 70%는 수력으로 해결한다. 여기에 정치적으로 안정되었고, 자국민의 능숙한 영어와 고학력도 장점이다. 

 데이터 센터는 막대한 물도 사용한다. 이 역시 냉각 때문이다. 하루 최대 1700만 리터의 물을 소모하는데 이는 인구 5만명 규모 도시의 하루 사용규모와 같다. 데이터 센터는 큰 땅과 막대한 양의 자원을 요구하고 소모하지만 고용유발 효과는 거의 없어 지역 사회의 기여도 많지 않다. 

 인공지능은 학습을 위한 데이터를 마구 잡이로 수집했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인간 창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했다. 이에 예술가 3명은 인공지능의 저작권 침해 혐의를 제기하며 미드저니에 소송을 걸었다. 또한 2023년 1만 1500명의 시나리오 작가를 대표하는 헐리우드 작가노조와 16만 배우 및 미디어 종사자를 대표하는 배우 노조는 인공지능 사용문제를 핵심쟁점으로 내세우며 대규모 파업을 단행했다. 기업들은 비용절감을 목표로 직원이나 프리랜서의 업무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려고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창작자의 일자리나 임금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많은 예술가나 창작가들은 초기 인정받기 전까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며 자신들의 권리를 계약회사에 쉽게 주장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이들의 처지는 더욱 곤궁해질 것이며 인공지능과 그 회사에게 자신들의 권리도 잘 주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은 회사의 노동자를 감시하는 도구다. 아마존의 스카우트는 연간 5천억 달러 매출의 아마존의 전체를 관리한다. 4가지 핵심기능이 있는데 수요예측, 주문처리계획수립, 전체주문처리, 네트워크 관리다. 이 시스템은 지식과 의사결정권한을 고위 관리자와 시스템 자체에 집중하게 하여 노동자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업무숙련도는 낮추고 노동강도는 높인다. 

 아마존은 자신들의 감시, 관리 시스템을 물류투자로 포장한다. 인공지능의 결정을 고도로 정교한 기술적 판단으로 보이게 만들고 시스템에 사회적 신뢰를 주기 위해서다. 이는 경영자, 투자자, 정책 당국자의 지지를 얻어내겠지만 노동자의 순응유도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런 아마존의 인공지능도 결국 아마존의 노동자와 인프라에 의존한다. 그 지능은 수백만의 창고노동자와 배송기사들의 노동활동에서 추출된다. 

 2020년 이후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직장 내 감시 기술을 폭발적으로 확산했다. 많은 기업들이 노동자의 업무 전반에 걸쳐 거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한다. 하지만 정작 직원은 자신이 감시당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기업은 알고리즘으로 노동자의 행동패턴에 대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감시기술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중이다. 초기에는 운송와 배달, 돌봄서비스의 긱워커가 대상이었지만 이젠 전방위가 될 것이다. 이런 감시도구는 노동자의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인공지능 예측기능과 결합하여 관리자의 노동통제를 더욱 정밀하게 할 것이다. 

 이런 모든 인공지능의 개발과 그 방향은 실리콘 벨리의 소수의 의해 좌우되는게 더 문제다. 그 파급력이 전방위적인데도 선출직이나 사회적 공론 없이 독단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실리콘 벨리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실리콘 벨리는 오랫동안 자유지상주의 세계관과 신자유주의에 입각해왔다. 구체적으로는 좌파의 낭만주의와 개인주의, 보수주의의 반정부성과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신념이다. 

 극단적 개인주의와 기술낙관주의가 있었으나 성차별과 기후위기 등으로 2010년대 들어서는 새로운 감시시스템, 기술독점, 알고리즘으로 차별이 커지고 정치가 양극단화하자 각 계로부터 명확한 정치적 입장을 요구받게 되었다. 그래서 진보나 보수의 입장을 표명하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은 창업자 중심사고를 갖는다. 이는 기업에 민주주의가 없고 자신이 옳다는 독단적 사고와 결정이다. 그럴만도 한게 물려 받은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맨땅에서 기업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이 선출직 정치인보다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세상이 발전하고 있으며 여기에 자신이 혁신적 역할을 한다고 여긴다. 이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과 자기 선의 확신이 있고 민주적 투표와 공공정책은 걸림돌일 뿐이다. 

 이런 인공지능의 등장과 함께 노동자가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은 3가지가 있다. 연대행동과 초국적 연합, 초국적 노동조합이다. 그래야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가치와 착취 정도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며 연대를 통해 구분되고 분할됨을 피하여 테크 기업에 타격을 주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노동조합과 노동자 조직의 집단적 힘을 강화하고, 시민사회가 조직적으로 기업을 견제하고 책임을 물으며 엄격한 규제를 도입하고, 노동자들이 기업을 직접 소유하고 경영참여를 구조적으로 보장하며, 기업을 넘어서 전체시스템의 불평등과 부정에 맞설 필요가 있다.

 첨단 인공지능 시대 역시 그것이 산업사회처럼 인간의 착취와 감시에 이용되며, 인적물적 조건에 기반하고, 사회적으로 감시와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공감하는 바가 크지만 책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인공지능은 국가의 전략 자산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치열한 패권경쟁에서 그 폐해보다는 개발에 앞장서게 될 것이 세계적 흐름이다. 저자의 생각이 현실성 있게 진행될 가능성이 낮아보여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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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퍼레이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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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 소설을 딱히 선호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나만의 인공지능이 가까운 미래에 등장해 나를 나보다 더 잘 분석해주는 시기가 온다면 '주인님은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할 게 분명하다. 1년 중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일과 가정 생활이 힘들고 더불어 취미인 책 읽기도 같이 힘들어지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면 회복을 위해 소설을 보곤 하는데 이런 경우 거의 추리 소설을 골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년은 아니지만 2-3년에 한 번 정도는 만나는 작가인 것 같다.

 추리 소설은 늘 두껍지만 막상 그 세계에 빠져들면 그야말로 완독은 그야말로 순삭이다. 추리소설은 무엇보다 재밌고,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하며, 살인 사건이라는 사람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고, 그 사건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유라는 것이 붙기 때문이다. 특히 살인의 피해자나 가해자는 둘 중 하나가 악인인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든 그들이 벌을 받게 되는 과정 또한 사람의 감정을 해소해주는 것 같다.

 침묵의 퍼레이드 역시 살인 사건으로 시작한다. 한 마을의 식당을 운영하는 가족에게는 사오리란 딸이 있었다. 큰 딸이었고, 재능이 뛰어나 마을의 전문가에게 훈련 받으며 프로 가수로의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이 나면 가게 일을 돕던 그 큰 딸이 어느 날 실종된다. 3년의 시간이 흘러 가족이 이 일에서 회복하려는 무렵, 큰 딸의 사체가 발견된다.

 사체는 마을과 꽤 멀리 떨어졌고, 가족 및 사오리와도 어떤 연고도 없는 지역의 한 집에서 발견되었다. 그 집에서는 한 노파가 죽은지 6년이나 지난 시점에 같이 발견되었고, 사오리는 그 집의 아래에 묻혀있었다. 노파의 아들이었고, 한 때 가족의 식당에 방문해 사오리에게 추파를 던졌던 기분나쁜 사내 하스누마 간이치가 용의자로 떠오른다. 모든 정황이 그가 범인임을 가리켰다.

 게다가 하스누마 간이치가 살인사건에 연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사건 23년전 당시 12살이던 모토하시 유나의 살인사건 용의자였다. 그 당시에도 모든 정황이 그가 범인임을 가르켰지만 하스누마는 경찰의 모진 심문을 이겨내고 묵비권으로 일관하며 무제를 얻어낸다. 결정적 한방을 날릴 직접적 증거나 목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스누마는 이번 사오리 사건에서도 풀려났고 놀랍게도 사오리의 마을로 돌아온다. 경악한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강한 증오를 품는다. 그리고 며칠 후 하스누마가 사망하여 발견된다. 그는 질식사했지만 방안에 누워있는 상태였고 어떤 저항흔도 없었다. 게다가 하스누마에 원한을 가질만한 거의 모든 이들이 알리바이를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물리학자 유가와가 등장한다. 그는 경찰인 구사나기를 도와 사건의 전무를 파악하고 추리를 한다.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 이런 인물이 등장한 적을 본 적이 없어서 물리학자가 갑작스레 사건에 돌입해 뛰어난 통찰력을 보이고 셜록 홈즈처럼 구는 것이 좀 당황스러웠는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번작까지 9번의 책에서 그를 등장시켜서 사건을 해결시켰던 것 같다. 책의 광고에 등장하는 갈릴레오 시리즈는 아마 이걸 의미하는 것 같다.

 하여튼 책은 그의 뛰어난 추리를 바탕으로 경찰이 하나하나 증거를 수집하고 용의자를 심문하며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다만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악인이고 가해자가 선한 보통사람들이라 사건의 전개가 다소 재미나게 그려진다. 책은 두껍지만 하루 만에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밌다. 갈릴레오 시리즈를 알게 된게 무척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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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지각 변동 - 트럼프가 흔드는 세계 경제, 어디로 가는가
박종훈 지음 / 글로퍼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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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보니 생각보다 박종훈 전 기자님의 책을 적지 않게 보았다.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가 첫 번째 였던 것 같고, '지상 최대의 경제사기극, 세대전쟁', '부의 골든 타임', '트럼프 2.0시대'를 읽었다. 모두 재밌는 책이었고, 이중 '트럼프2.0시대'와, '부의 골든 타임'이 기억에 남는다. 작가는 트럼프 2.0을 내고 격변하는 흐름에 맞춰 또 다시 세계경제지각변동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작가님의 책은 가독성이 매우 높고, 맥락을 잘 짚을 수 있게 돕는 느낌이다. 한 마디로 쉽게 읽을 수 있고 남는 것이 많은 가성비가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1. 미국과 트럼프

 현재 전 세계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있다. 유럽연합에서 가장 우수한 독일조차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권력 공백이 일어났다. 프랑스는 하원이 정부를 불신임했고, 오스트리아와 벨기에는 연정구성에 실패했다. 루마니아는 대통령이 탄핵 직전 자진 하야해버렸다. 이런 경제 성장의 둔화는 사회불안과 불만을 낳고, 포퓰리즘 세력들은 이를 반대편과 외국의 탓으로 돌려 극심한 내부 갈등을 야기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정권을 찬탈하여 독재를 획책한다.

 이런 저성장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생산성 향상 속도의 둔화다. 인간 경제의 생산성은 1920-1970년대 가장 높았다. 당시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혁신 제품이 거의 모두 등장했다. 이후는 사실상 약간의 개선이 이뤄졌을 뿐이다. 2010년대 이후의 IT혁명은 생각보다 생산성을 높이지 못했고, 재편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2020년대의 AI혁명은 아직 초기이고, 소수의 기업만 혜택을 보고 있으며, 오히려 일자리 상실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인구의 고령화다. 유럽은 2008-2024년 GDP가 17%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미국은 99%늘어났다. 이는 유럽의 고령화가 주 원인이다. 1970년대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과 여성의 사회진출로 출산율이 낮았고, 유럽은 보수적 분위기와 강한 사회보장제도로 출산률인 높았다. 하지만 1980년대 미국은 경제가 부활하고, 히스패닉이 유입하고, 기독교가 강해지면서 출산률이 올라갔다. 하지만 유럽은 베이비붐세대가 중장년층이 되어 청년 복지가 약해졌고 출산기피가 일어났다. 이들은 성인이 된 지금 미국은 노동력과 소비가 팽창했고, 유럽은 반대로 노동력과 소비가 감소하고, 세수가 줄고, 노인복지 부담은 커졌다. 

 경제위기가 오면 대개 주가는 조정을 받고, 실물경제는 위축된 후 시간이 지나며 살아난다. 하지만 미국은 2000년대 들어 양적완화로 이를 인위적으로 해결했다. 양적완화 이후 주가는 V자 반등을 한다. 하지만 이 양적완화는 강한 인플레이션을 가져와 바이든은 연준의 금리인하를 통한 양적완화 대신 재정을 푼다. 양적완화는 증시를 부양하고, 자산을 급등시키지만 재정은 돈이 서민으로 가 실물경기를 활성화한다. 하지만 문제는 국가 재정이 악화한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재정을 늘리며 3-12개월짜리 초단기 국채를 발행했는데 이것이 2025년말 대거 상환을 앞두고 있다.

 미국의 오랜 양적완화는 양극화를 불러왔다. 1990년 하위90%의 순자산은 40%, 상위10%의 순자산은 22.5%였다. 하지만 2015년 둘은 처음으로 역전되었다. 경제적 양극화는 정치적 양극화도 동반했다. 1994년 공화당 지지자중 강한 보수는 64%였고 민주당 지지자 중 강한 진보는 70%였다. 하지만 2014년 이 수치는 92%와 94%로 크게 양극화하였다. 

 이런 양극화로 바이든은 재정정책을 썼다. 그는 연소득 2억 2천만원 이하의 부부에게 1인당 200만원을 지급했고, 실업자와 자영업자를 크게 지원했다. 규모는 무려 1조 9천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초당적 인프라 법안으로 1조 2천억 달러를 도로, 교통, 항만 건설에 사용했고 7390억 달러 규모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도입했다. 이는 효과가 있었다. 바이든 재임기간 하위 90%의 순자산은 2020년 31.2%에서 2022년 34.2%로 늘어났다. 하지만 부작용이 컸다. 인플레이션과 천문학적 부채, 거대한 빚으로 미래 세대에 부담을 안긴 점이다. 그리고 바이든의 뒤를 이은 트럼프는 이런 미국의 경제적 문제를 다른 나라에 대한 약탈로 해결해려 한다. 

 1981년 이후 40년간 미국을 포함한 선진세계에서 인플레이션은 없었다. 이는 세계화와 팍스아메리카나 때문이다. 냉전 때만해도 1세계는 3세계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었다. 정치적 불안으로 언제든지 공산화가 가능했고 이는 큰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전 이후 미국 1극 체제가 되며 이 문제가 해소되었다. 전 세계의 생산비는 크게 절감되었고, 원자재 가격도 거의 오르지 않았다. 때문에 지폐를 마구 찍어내는 양적완화에도 인플레는 없었고 자산 가격 상승과 양극화만 일어났다. 하지만 결국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서 각국의 중앙은행은 예전처럼 쉽게 양적완화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향후 세계경제의 큰 변수는 금리다.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는 1980년 연 15.8%였다. 이후 40년간 하락세로 2020년 연 0.5%까지 떨어진다. 하지만 인플레로 2023년 5%로 최고를 찍는다. 2024년엔 놀랍게도 연준의 금리인하에도 국채 금리가 상승했다. 이는 세계화의 붕괴와 물가상승때문이었다. 그간 국채금리는 처음엔 일본, 다음은 중국의 거대한 저축으로 돈의 공급이 과잉이면서 가능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이제 끝이 났다. 

 향후 국채 금리는 올라갈 개연성이 높다. 문제는 각국이 갚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저성장에 고령화이기에 세수가 부족하다. 복지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들은 국채 이자를 갚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재정을 과감히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회의 많은 복지 수준을 후퇴시키고, 거센 저항을 낳는다. 때문에 미래를 보고 자신의 현 인기를 포기하면서 이를 감행할 민주정부는 생각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가장 안전 자산으로 꼽혀왔던 미국채도 위험자산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우선 이자비용이 국방비를 넘어섰다. 이는 역사적으로 제국의 주요 쇠퇴 신호 중 하나이다. 그리고 미국채의 만기가 2025년에 대거 모여 있다는 점이다. 이는 바이든 때 재무장관 옐런의 작품이다. 미국은 이 단기채를 장기로 전환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를 받아줄 MMF나 Repo자금이 바닥났다는 점이다. 그리고 금리 상승이다. 미국은 재정적자가 엄청나 2025년에 11조 달러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의 국채 등장은 금리 상승의 강력한 압박이 된다. 이는 국가의 상환을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가게와 기업의 대출도 어렵게 하여 실물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미국은 이런 현상이 매우 낯설다. 그간 세계 경제위기에서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 상당한 이점을 누려왔다.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다른 나라들은 국채 금리가 올라가 국채를 발행하기 힘들지만 미국은 공포에 질린 국제자금의 미국으로 흘러들어가 미국채 구매 수요가 높아져 오히려 낮은 금리로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다. 이 공식이 끝이 난 것이다. 심지어 2025년 4월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미국은 금리가 크게 오르고 달러가치가 떨어지는 후진국형 모습을 보였다. 이는 인플레이션 우려와 미국채의 발행규모가 미국내의 자금을 한참 넘어선 점, 그리고 트럼프 스스로 미국의 신뢰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연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나 연준이 금리를 인하해도 시중 금리는 더 이상 낮아지지 않는다. 때문에 시장금리를 내리려면 물가를 잡고 국채발행을 감소해야 한다. 그리고 대외신인도도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물가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 세금을 올려야 하나 대규모 감세안을 통과시켰고, 여기저기 공공기관의 직원과 예산안을 감축하지만 미국의 재정적자에 비하면 쥐꼬리에 불과하다. 

 이것에 대한 트럼프의 해결방안은 관세다. 상호관세의 목적은 무역수지 적자 해소, 제조업 부활과 일자리 증가, 미중 패권 전쟁 대비, 추가 세수 확보, 타국을 겁박해 미국채를 헐값에 넘기기, 관세를 무기로 달러 약세 유도, 달러 패권 강화다. 그리고 달러 약세 유도와 달러 패권 강화는 그 자체로 서로 모순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지난 4월 막상 상호관세를 부과하자 미국채 투매현상이 일어난 것처럼 관세를 통한 문제 해결은 매우 어렵다. 

 트럼프는 상호관세의 이유로 미국의 대규모 무역 적자를 예로 들며 자신들이 착취당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는 미국의 선택이었다. 미국의 제조업은 1980년대부터 경쟁력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클린턴은 이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선택은 제조업을 버리고 금융과 신기술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 가장 결정적 행위는 중국의 WTO 가입 승인이었다. 이후 미국은 무역 수지 적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미국이 원하는 것처럼 무역 수지 흑자로 돌아서게 되면 다른 나라들은 달러 공급 부족으로 외환위기에 취약하게 된다. 과거 아시아 외환위기로 인해 세계 각국은 다소 병적으로 달러 외환을 보유하였고, 현금을 갖고 있는 것은 비효율적이라 미 국채를 구입하였다. 덕분에 미국은 저금리로 국채 발행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달러 외환을 보유한 나라는 막대한 국가의 부를 창고에 사실상 쌓아둠으로써 자본흐름이 저해되고, 소비와 경제가 감소한다. 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저렴하게 국채를 발행했고 타국의 달러 보유로 인한 미경제가치 이상의 달러 강세로 저가로 마음껏 소비활동을 할 수 있었다. 즉, 무역 적자는 미국이 득보다는 실이었던 셈이다. 흑자로 돌아서면 다른 나라의 외환보유는 줄고, 미국채 구매도 줄며, 미국채 금리로 이어지고, 달러와 약세로 물가가 상승하고, 소비가 줄어드는 등 미 경제는 적자는 다소 해소될지언정 더 큰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제조업을 다시 살리려고 한다. 여기엔 나름 이유가 있다. 우선 미중 경쟁이다. 제조업은 전쟁에서 매우 중요하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패권국이 된데는 미국의 막강한 제조업이 기반이었다. 2030년 중국의 세계 제조업 비중은 45%에 달한다. 하지만 미국은 11%, 한국은 4%, 대만은 2%, 일본은 10%, 독일은 7%로 자신과 우방을 모두 합쳐도 중국에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미국의 주요 첨단 전략 자산의 부품도 대개 중국산에 의존 중이다. 이래선 전쟁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중산층의 임금 상승으로 이들의 고급 일자리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인공지능이 미국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상호관세를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려 하지만 막상 약점이 많다. 트럼프는 동맹을 우선 자극하고 있는데 이 경우 동맹이 보복과 신뢰의 상실로 미국채를 투매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과거 중국이 미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었으나 트럼프 1기 이후로 그 양을 절반으로 줄인 상태다. 현재 갖아 큰 채권자를 서방이다. 이들이 보유한 미국채의 규모는 무려 3조달러다. 이를 투매하면 미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채권 가격하락으로 미 경제는 붕괴한다.

 그리고 미국산 제품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2025년 3월 테슬라의 유럽 내 신차 판매량은 44%나 감소했다. 2024년 캐나다는 미국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라였지만 2025년 4-9월 미항공편 예약이 70%나 감소했다. 

 관세는 미국내에서 지역별 계층별 편익도 다르다. 우선 가장 큰 수혜자는 고작 1300만의 제조업 근로자들이 될 예정이다. 하지만 관세부여로 인한 수입 물가 상승으로 나머지 3억 4천만 미국인은 구매력이 감소하게 된다. 특히 하층일수록 그렇다. 상호 관세 부여시 미소득 하위 50%의 가처분 소득은 4%가 감소하지만 상위 10%는 1.6%만 감소한다. 3배의 차이다. 

 그리고 관세는 미국의 핵심 빅테크에게도 좋지 못하다. 이들은 첨단 기술과 인공지능은 철저히 물리적 자산에 기반한다. 데이터센터나 전력, 희토류 등이다. 하지만 상호관세는 이들의 수입단가를 크게 올린다. 실제로 MS는 트럼프로 상호관세 카드를 만지작 거리자 3개의 대규모 데이터 센터 건설을 철회하여 미 증시에 큰 타격을 주었다. 

 트럼프는 1기 때 미국내 중국계 과학 인재를 대규모로 사찰했다. 미국의 과학기술 발전은 해외인재가 주축이다. 미국의 박사급 STEM분야 인재중 외국 출생자 비율은 43%나 된다. 이중 인도 출신이 29%, 중국 출신은 12%다. 트럼프는 대규모로 이들을 사찰하였지만 기소는 고작 28건이었고, 유죄는 8건이며 그마저도 대개 횡령이고 스파이 혐의는 4건에 불과했다. 몇 마리 파리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운 격이다. 트럼프에 실망한 중국 인력들은 대거 귀국한다. 마침 트럼프 1기 압박으로 인해 첨단 기술을 갈망하던 중국에게 이들은 단비였다. 중국은 귀국 인재에 최고 500만 위안의 정착금과 최고 2억 위안의 연구자금을 지원했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중국의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기술의 혁명을 일궈낸 핵심인재다. 

 트럼프는 제조업엔 관심이 크지만 자신들의 가장 큰 강점은 첨단 기술에 인색하다. 그는 미 국립보건원의 외부 연구지원비를 15%나 삭감했다. 40억 달러다. 미국립 보건원은 바이오 기술의 산실이다. 2023년에 1500개의 바이오 테크가 여기서 파생된 기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미대학과 연구소의 기초 연구예산 25%를 책임지는 국립과학재단의 예산도 대폭 삭감했다. 연구진이 대거 이탈했고 이들 중 많은 이가 경쟁국으로 향했다. 

 트럼프는 상호관세를 무기로 타국의 대기업들에게 생산 기지 이전을 종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우선 트럼프의 짧은 임기다. 그는 한 번 대통령을 했기에 남은 임기는 3년이다. 여기에 중간 하원 선거에서 패배하거나, 레임덕이 올 경우, 그의 정책은 공염불이다. 그걸 믿고 그의 임기 이상이 소요되는 공장건설을 함부로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미국은 생산기지로 매우 부적합하다. 일단 인건비가 매우 높으며, 노동법과 환경법이 강해 제약이 많으며 미 지역 사회의 입김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상호 관세로 인해 수입 단가의 상승으로 건설비가 크게 증가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은 경기 침체의 가능성이 있고, 공급망과 벨류체인에서도 약점이 커서 이점이 별로 없다. 노동력의 비숙련성도 문제다. 

 트럼프는 동맹을 가장 만만한 상대로 보고 그 약탈에 주력한다. 이는 동맹들이 가진 공통적 약점 때문이다. 우선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다. 한국은 19%, 유럽연합은 18%, 일본은 17%, 대만은 29%다. 그리고 이들은 미국에 안보도 의존한다. 나토가 있고 미국은 한일에 주둔해 있으며 대만도 중국으로 인해 미국의 방어가 절실하다. 그리고 에너지 부족이다. 특히, 유럽 연합은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로 인해 미국 알래스카에 에너지를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미국이 오래도록 구축했던 소프트파워를 버리고 하드파워에 의존하려 한다.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미국이 퍼뜨린 민주주의, 문화적 매력, 그리고 경제력으로 인해 세계의 핵심 인재를 흡수하고, 그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미국에 우호적인 정책을 자발적으로 펴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하드파워는 힘으로 몰아붙이는 것이고 소프트파워를 파괴한다. 미국이 하드파워의 파트너로 고른 것이 러시아다. 그래서 트럼프는 러시아에 우호적이다. 러시아는 막강한 군사력과 에너지 식량이 있다. 

 트럼프는 그린란드도 노린다. 그는 그린란드와 캐나다가 공공연히 미국의 주로 편입되어야 한다고 말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온난화로 인해 그린란드의 동토가 녹으면 그 안에 막대한 자원과 희토류가 사용가능해진다. 그리고 온난화로 북극항로가 사용이 가능해지는데 그린란드와 캐나다를 북서항로와 북동항로를 틀어막는 위치다.  


2. 중국과 시진핑

 총부양비는 14세 이하 65세 이상의 비생산인구를 15-64세 이하의 생산인구로 나눈 것이다. 총부양비가 40이면 100명의 생산인구가 40명의 비생산인구를 부양한다는 의미다. 1970년 중국의 총부양비는 무려 80이었다. 인구 폭증기간으로 어린 세대가 많아서다. 미국은 당시 60이었다. 2005-2015년 중국의 총 부양비는 40이하였고 미국은 50이상이었다. 중국은 이 기간 폭발적으로 성장하다. 하지만 2026년 중국은 40을 돌파했고, 2037년이면 50을, 2076년이면 100을 돌파한다. 미국은 2076년에도 71에 불과하다. 총부양비 역전이 일어나는 추세인 것이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성장률 둔화로 이어진다. 생산가능인구 1%의 감소는 잠재성장률을 0.3-0.5%감소시킨다. 중국은 인구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출산장려정책, 빚을 통한 투자로 과잉생산, 과잉생산 물건을 타국에 밀어내기를 실천 중이다.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성공적이지 못하다. 

 중국의 과잉생산은 정부의 천문학적 재정 보조금과 국영은행의 초저금리 대출로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중국내 수요를 한참 넘어선 것으로 가격 덤핑으로 물건을 해외로 밀어냈다. 이것이 타국의 산업 기반을 흔들자 여러 나라들이 중국의 압박에도 무역장벽을 세워 이를 막아내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설비가동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가격하락으로 디플레이션이 만연해 소비촉진도 어렵다. 

 중국은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와 양적완화로 지난 10년간 부동산 가격이 5배나 폭증했다. 이는 청년을 좌절하게 만들어 출산과 결혼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중국은 다행히 방향타를 돌렸다. 2022년부터 부동산 버블을 인위적으로 꺼뜨려 가격은 30%나 내렸다. 그리고 이들은 이 자금을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구투자비로 돌렸다. 무려 22조다. 중국은 이 돈을 인공지능 인프라 구축에 쓰고 1700개의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지원했다. 이는 순작용을 일으켜 미중 전쟁 후 중국을 이탈했던 국제 투자자금이 중국의 성과를 눈여겨 보고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 2025년 중국은 인공지능 투자에 2천억 달러를 투입할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인 2022년 한국의 정권과 중앙은행은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금리상승으로 정상화되던 부동산 가격을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강제로 내리고, 정책으로 부양했다. 때문에 한국의 자금은 더욱 부동산으로 몰리게 되었다. 큰 실기였다. 하지만 그 부동산 가격마저도 국제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하락했다. 같은 기간 환율이 크게 상승하며 실질 가치가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것 이상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쟁력을 망치는 주범은 거의 모든 시중 자금을 흡수하는 부동산으로의 투자가 1번이다. 이는 비생산적인 부분에 많은 국가의 돈을 묻히게 하여 자본 흐름을 저해하고, 내수를 망가뜨리며, 가계의 부채를 증가시키고, 자산 양극화로 청년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만들어 인구의 증가를 막는다.

  또 다른 주범은 의대 선호현상이다. 중국의 인재들은 모두 공대계열을 선호하며 그곳에 가서 자신의 성공과 나라의 발전을 목표로 삼는다. 한국 역시 70-80년대만 해도 그러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한국의 인재들은 현재 모두 의대를 선호한다. 의대 입시반은 넘쳐날 지언정, 한국형 챗지피티 반 같은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소중한 직업이지만 국가의 생산력을 직접적으로 거의 증가시키지 못한다. 지난 일년 간 의료 마비로 많은 사회적 손실이 있었지만 그것이 국가의 경제성장이나 GDP를 의미 있는 수치로 갉아먹었다는 기사는 단 한 줄도 본 적이 없다. 빠른 시일 내에 의사 증원을 통해 의사의 과도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의사 수 부족을 해결하여 지방과 전국적인 국민의료환경을 개선하고, 의사 공급 증가로 상대적으로 과도한 의사 소득을 정상화시켜 한국 내 인재의 의대 집중을 해소해야 한다. 또한 반대로 이공계열에 대한 지원과 경제적 보상을 병행하여 인재를 국가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향하게 끔 재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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