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 법과 정의에 대한 9가지 근원적 질문들
폴커 키츠 지음, 배명자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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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독일 헌법과 법을 기반으로 2차대전 직후 정도부터 현대까지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독일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어떠한 법리적인 판단을 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표현과 예술의 자유, 개인의 자유권, 동물의 권리, 동성애등 민감하고 재밌는 주제에 대해 법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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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당당 한국사 -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한국사 베스트 25장면
이덕일 지음 / 아라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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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인물과 전쟁, 문화재, 과학문화유산을 모두 합쳐 25개로 선정해 쓴 책이다. 어렵지 않고 쉬워서 학생들도 읽을 만하며 역사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보기에도 좋아보인다. 역사의 조예가 있으신 분이라면 쉽고 빠르게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인물편의 이정기와 흑치상지편이 좀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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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 용, 사무라이를 꺾다 1928~1945
권성욱 지음 / 미지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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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은 중국이 일본과 2차대전에 자신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전쟁이다. 하지만 만주사변과 상하이 사변, 그리고 본격적인 전쟁이 38년에 시작했기에 오히려 조금더 다른 전쟁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이 전쟁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기도 하다. 2차대전에 유럽에서의 전쟁이 주로 유명하고, 아시아에서는 미국과 일본과의 전쟁만이 알려져 있지만 중일전쟁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영향력과 한 축을 담당했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책은 엄청 두껍다. 이 많은 일본군과 중국군의 주요 지휘관들과 전쟁의 개관과 뒷배경을 모두 파악하고 서술하느라 저자가 엄청난 고생을 했음을 짐작할수 있다. 쓸데없는 내용을 지리하게 써놨나 싶기도 했는데 읽어보니 마땅히 빠뜨릴 만한 것도 없다. 물론 상세히 쓰시기는 했다. 읽으며 3가지 정도를 얻은 것 같다. 좀처럼 익숙치 않은 중국의 주요 성의 위치와 도시 등의 지리적 감각, 무능하고 부패하여 항일전쟁은 물론 국공내전에서도 참패한 장개석 국민당 정권에 대한 재인식, 중일전쟁의 2차대전에서의 영향력이다.

 중국 신해혁명으로 청왕조가 무너지고 기대했던 위안스카이와 그가 이끄는 북양군의 이탈로 국민정부는 곧 내전에 돌입한다. 난징정부는 세력을 규합해 북양정권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위안스카이는 반란으로 황제자리에 오르지만 시대착오적 행각을 일삼아서 지지기반을 빠르게 잃어갔고, 곧 죽는다. 중국은 역사상 늘 그렇듯 중앙정부가 무너지면 곧바로 지방군벌들이 날뛰는데 위안스카이가 죽은 당시가 그러했다. 이들은 중국 북경을 놓고 다투었는데 당시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지휘관 장제스는 돋보였다. 장제스는 만주의 군벌은 장쭤린을 전쟁에서 이겼는데 당시 만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일본은 장쭤린이 친일적 성향을 보이지 않자 그가 탄 열차를 폭파하여 암살한다. 일본은 우두머리가 없는 무주공산을 노린 셈인데 그의 아들 장쉐량이 의외로 만주의 지배권을 빠르게 장악하며 이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 장쉐량은 두고두고 장제스의 발목을 잡는다.

 만주는 당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한반도를 장악한 일본은 이를 호시탐탐노리고 있었다. 일본은 늘 그렇듯 트집을 잡아 기습 공격하였고 장쉐량의 동북군은 지리멸령하게 무너진다. 물론 동북군의 수가 일본군을 압도하여 충분한 반격과 재정비의 기회가 있었지만 일본이 만주 전체를 노리는게 아니라 무언가를 원한다고만 생각했던 장쉐량은 본격적인 반격을 주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그의 주력은 화북의 북경일대를 장제스와 다른군벌에게서 방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으므로 전력이 분산되 있었다. 결국 뒤늦게 장쉐량은 일본의 침략의도를 알았지만 때는 늦으리였다. 만주를 손쉽게 장악한 일본은 푸이를 압세워 만주국을 세운다.

 일본의 야욕은 끝이 없어 만주국의 점령이후에도 화북지방을 계속도발하고 마침내는 상하이 사변까지 일으킨다. 당시 상하이에는 주요 열강의 조계가 있어 일본으로서는 상당히 무모한 도발이었지만 일본은 이를 강행한다. 책에서도 주로 지적하지만 당시 일본은 군부를 행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형태로 일본의 2차대전과 중일전쟁의 많은 도발에는 현장지휘관들의 무모한 야심과 독선에 의한 것이 많았다. 상하이 사변에서 국민당정부는 좀 소극적이었는데 공산당과의 전쟁, 그리고 일본과의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수도 난징에 대한 방어 등 복잡한 상황이었다. 결국 장제스는 중앙군을 투입하지만 상황은 어려웠고, 일본과 타협한다. 장제스는 많은 비난을 받지만 당분간 일본과의 전쟁을 억제하면서 안을 정비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상하이 사변 이후 장제스는 늘 말썽이던 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하고, 지방군벌들을 복속시키는등 자신의 정권을 강화해나간다. 만주사변과 상하이 사변에서 알수 있듯 당시 중국군의 전력은 형편없었으므로 독일과의 교류를 통해 군사협력을 없고 군대를 강화시켜나갔다. 독일은 당시 주요 자원들에 대한 해외의존이 필요했는데 영국 프랑스에 견제당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주요 자원수입원이 되어주었다.

 시간이 흘러 1937년 일본은 본격적인 중일전쟁을 시작한다. 만류하는 일본내 정치인도 있었으나 일본 군벌에 의해 암살되거나 실각하기 일쑤였다. 천황과 일본의 정치권은 무모한 일본 관동군의 행태에 패망까지 질질 끌려다니기만 했다. 관동군은 만주국에 주둔하는 군대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의 동쪽에 있다하여 관동군이라고 한다.

 일본군은 장쉐량이 지키던 북경과 텐진지역을 손쉽게 점령해나갔으며 화북 지역 전역을 점령해나간다. 중국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으며 아직도 각 성의 지방군벌들은 자신의 전력을 소모시키지 않기 위해 전쟁에 소극적이었다. 게다가 장제스의 중앙군과 지방군은 원래 세력이 달라 군복이 다른 경우도 많았고, 수장이 다르다보니 지휘계통의 문제 언어의 문제, 무장정도의 차이등 병력만 많았지 전투에 지장이 되는 문제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명령에 의해 자리를 지켜야 할 부대가 마음대로 퇴각하여 측면이나 후방을 돌파당하기 일쑤였고, 지방군벌들은 싸우려는 의지도 부족했다.

 상당히 빠른 시간에 중국은 화북일대를 상실했으며 수도 난징이 점령당해 그 악명높은 난징대학살이 일어난다. 난징을 상실한 국민정부는 수도를 우한에서 충칭을 옮겼지만 일본군은 우한일대에도 대대적인 공세를 취해 점령한다. 거기에 중국의 동남해안 일대 도시를 점령하여 철광석은 풍부하지만 그외에 많은 물자를 헤외에 의존하던 국민당 정부의 숨통을 조여나간다. 하지만 매번 중국군은 영토를 상실해나가면서도 끈질기게 저항하여 일본군에도 적잖은 피해를 주고 있었으며 현장지휘관들의 독선과 무능, 중국군을 얕보는 경향, 병참등의 문제로 일본군의 피로도 만만치 않게 누적되어 간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린다. 자원을 외존하던 미국과의 교류가 끊어졌고 국 영토가 드넓었지만 정작 일본이 필요로 하는 석유와 고무등의 자원은 동남아에 풍부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선 중국 최남단의 하이난 섬을 점령하는데 이로 인해 열강들을 일본에 긴장하고 견제하기 시작한다. 늘 그렇듯 기습으로 일본은 아시아 주요국과 섬들을 손쉽게 점령해나간다. 주요 아시아 식민지에 주둔한 유럽군대들은 당시 본국이 독일과의 전쟁으로 힘을 쓸수 없었고, 군대의 상당수도 식민지인으로 구성되어 이렇다할 전투력이 없는 상태였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령사이에 끼어 완충지로 독립을 유지하던 태국은 일본군이 다가오자 그들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하여 간신히 독립을 유지한다. 일본군의 통행과 철도 및 공항건설 시설이용등 적잖은 주권침해였다. 이로 인해 태국에서 버마를 연결하는 죽음의 철도가 일본에 의해 완공되었으며 우기에 시작한 공사로 공사기간중 현지인 7천명이 사망한다.

 해안과 동남아를 통한 자원루트가 막히기 시작하자 중국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주요 열강의 지원을 기대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장제스는 오랜 고립에서 희망을 찾고자 했지만 연합군에게 중국은 상당히 부차적인 장소에 불과했으며 미국역시 침공은 일본에게서 받고 공세는 독일에 취하는 자세를 보인다. 더군다나 섬멸직전의 상황에서 일본과의 전쟁으로 국공합작을 한 공산군은 일본과의 전면전을 피하고 일본군의 세력이 닿지 않는 화북일대에서 자신들의 근거지를 널혀나가 장제스를 더욱 골치아프게 했다.

 당시 미국이 파견한 미군 지휘관은 스틸월이었는데 버마에 파견된 그는 일본군에 버마를 잃고 이를 탈환하기 위해 노력중이었다. 스틸웰은 미국의 협력을 대가로 장제스에 정예군을 요청하고 전력이 모자란 장제스는 이에 응한다. 하지만 스틸웰의 무능으로 버마는 일본에 점령되고 장제스는 정예병의 상당수를 잃는다. 일본군은 화남에서도 대공세를 이어 3차례나 방어하였던 창사와 형양비행장, 동남아 주용 교역의 창구인 난닝을 차례로 잃어가며 영토가 반으로 쪼개진다.

 이처럼 1944년까지만 해도 중국의 상황은 매우 어려웠지만 연합국의 전세는 극도로 전환되어 43년에는 이탈리아가 항복하여 독일에 선전포고 하고 독일 역시 항복한다. 독일의 항복에는 미국의 가세도 있지만 소련과의 동부전선이 무너진게 큰 역할을 하였는데 소련은 2차 대전중 일본 관동군의 시베리아 침입을 우려해 독일과의 서부전선에 계속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무려 70만의 극동군을 주둔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과의 전쟁교착으로 일본 관동권의 전력이 투입되자 스탈린은 일본의 침공이 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과감하게 극동권을 서부전전에 투입하여 전황을 뒤집을수 있었다.

 결국 독일이 항복하고 일본은 손쉽게 점령한 섬과 아시아 여러나라들을 빠르게 잃어갔다. 특히 섬하나하나를 지키고자 병력을 분산하였는데 이로인해 병참의 문제와 함께 각 군대가 손쉽게 각개격파당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결국 핵 두발로 일본은 항복한다.

 문제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데 아직도 중국내에는 무려 300만에 달하는 일본군과 일본인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본군 세력을 무장해제하고 사용하는데 국민당과 공산군은 치열하게 경쟁한다. 공산군은 화북 세력을 기반으로 빠르게 만주와 화북지역을 장악하였는데 이는 소련군이 전쟁 말미에 빠르게 만주지역을 장악했기데 가능했다. 이로 인해 공산군은 장제스와 일국을 양자강을 경계로 이분하자는 주장까지 할수 있는 위치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전쟁이 끝나자마자 국공내전이 발생하였으며 일본과의 오랜 침략으로 전력에 큰 손실을 입은 국민당 군은 각지에서 대패한다. 거기에 장제스는 일본과의 항전과정에서 전략적 외교를 통해 시간을 벌고자 일본과의 여러 협상에서 저자세를 보이곤 했는데 그것이 발목이 되어 민심을 많이 상실한 상태였으며 일본군의 무장해제 과정과 각 지역의 탈환과정에서 각 지휘관들의 부패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결국 중국은 공산화 되었고 장제스 정권은 타이완으로 탈출한다. 중일전쟁중 국민당 정권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지원을 인색했던 미국은 아시아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국공내전은 여러 부작용을 갖고 왔다. 우선 독일처럼 연합군은 일본은 분할점령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동과 북쪽 지역을 소련과 중국이 점령하고 나머지 지역을 영국과 일본이 점령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맥아더의 강력한 반대와 국공내전으로 무산되고 분할점령은 엉뚱하게도 한반도가 당하게 된다. 거기에 일본과의 배상협상에서 일본측은 승전국인 중국에 막대한 피해 배상을 각오하였지만 타이완으로 쫓겨난 장제스는 국제사회에서 빠르게 인정받기 위해 손쉽게 포기하였으며 공산당 역시 고립을 우려해 이를 빠르게 포기하였다. 친일 부역자에 대한 처리도 국공내전으로 어려웠다. 당장의 전쟁으로 이들을 심판하기 어려웠고, 전쟁에 활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경우처럼 이들의 사회중심지위에 올라 호령하는 일은 없었다.

 중국내의 일본인들의 운명도 기구했다. 소련에 점령당한 만주지역의 100만가량의 일본군과 일본인들은 약탈과 강간 살해의 대상이었으며 시베리아로 끌려가 상당기간 노역에 동원되었다. 중국내에 300만 정도의 일본인은 100만가량이 본국으로 송환되었지만 나머지는 국공전쟁에 동원되기 도 하고 어려 가지 이유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전쟁의 대가를 가혹하게 치른 셈이었다.

 이처럼 중일전쟁은 2차세계대전에 미친 영향력, 그리고 공산당의 세력확산의 기회로 향후 중국이 공산화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 상당히 의미있는 전쟁이었다. 한반도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쳤음에도 이런 중요한 전쟁이 잘 다루어지지 않고 잊혀져 있는 것이 무척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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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6-09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고 있는데 책 재밌네요.ㅎㅎㅎㅎ
 
[전자책] 돈 되는 소형 부동산은 따로 있다
최윤성 지음 / 원앤원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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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아파트 다세대주택, 오피스텔, 상가에 대한 투자책. 사례보다는 왜 어떻게 에 대한 것이 조금더 많이 나온 것이 장점. 대출에서 방빼기를 피한 대출 방법이 나오는데 그 부분이 처음 안 것이어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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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과 제왕 - 문화인류학 3부작 넥스트 3
마빈 해리스 / 한길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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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빈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은 꽤 유명하다. 몇년 전 돌아가신 지인이 추천해준 책인데, 그 당시 사놓고 쟁여만 놓고 있었다. 책도 좀 오래돼 보이고 문화인류학이라는 것이 그닥. 한물간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휴가철을 맞아 일주간 매일 반나절 정도 나만의 시간이 생기는 행운덕에 그동안 구매만 했던 책들을 본격 소비하고 있다. 모처럼 소비가 구매를 초월하고 있다. 그러다가 서재 제일 아랫칸에 묻힌 이녀석을 발견했다. 이녀석을 본건 사실 우연이 아니다. 지인이 죽고나서도 꽤 오랜기간 가상공간에 여러 흔적이 있었는데 며칠전 우연히 지워진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보였을 것이다. 

 책은 놀라웠다. 책의 출간 시점이 94년인만큼 97년 정도인 총균쇠를 앞선다. 그게 아니었음 총균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책으로 오인했겠지만 사실은 당연히 반대다. 어찌보면 총균쇠는 이 책을 다양한 사례와 균 정도를 보충하고 좀더 전시대를 자세히 보며 자신만의 의견을 강하게 보충한 책에 불과할지도 모를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지리학계의 도킨스인 셈이다. 

 문화인류학이라고는 하지만 기실 이 책은 지리책에 가깝다. 상당히 지리적 결정론적 관점에서 쓴 책이다. 그 문화라는 것이 철저히 지리로 인한 생산력과 기후, 동물 및 생태계군에 절대적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도 문화보다는 그를 파생한 지리 이야기가 대다수다. 해리스는 공식을 보이는데 처음 정착지에서 생식압력(인구증가압력)이 생겨나고 이를 위해 생산력을 증가하기 위한 노력이 일어나며 이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된다. 그러면 이를 극복할 새로운 생산양식이 출현하여 문명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다. 해리스는 이를 문화유물로적 결정론이라고 했으며(지리적 환원로이나 지리적 결정론이 더 잘어울리는데......) 이래 놓고서도 애써 자신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창의력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쨌든 책은 수렵시대부터 농경의 시작, 원시국가, 전쟁, 식인, 자본주의의 탄생과 그 한계를 다룬다. 인류역사 전체를 다룬 셈이고 시기순으로 다루었음에도 좀 시기마다 도약하는 듯한 모습과 주제별로 다룬 면이 있어 통사적인 느낌은 의외로 별로 없다.

 수렵시대에는 인류는 평방마일당 2-3인의 인구밀도를 유지했다. 그 이상이면 생산력 저하가 급격히 오기 때문인데 마땅한 인구조절 방법이 없던 시기 해결책은 노인 살해 및 영아 살해였다. 당시 평균수명이 30세정도였고, 여성의 가임기시작부터 그 나이까지 생존하면 8회 정도의 임신이 가능하다. 절반정도의 아이가 여러 이유로 초기에 자연사해도 위의 인구밀도를 유지하려면 출산율이 2정도여야 한다. 그러면 2-3명정도를 살해할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영아 살해는 수렵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 이르기직전까지 암묵적으로 꾸준히 유지되며 주로 여아에 집중된다. 해리스는 그 증거로 각 시대마다 인구밀도 과잉으로 인한 생산력 위기시에 등장하는 비 정상적 성비를 보여준다. 남아선호가 한창이던 20세기 말의 한국의 저리가라 할정도이며 1자녀 정책으로 남아를 선호하는 중국역시 명암을 못내밀 정도다. 이런 수렵인들에게도 나름의 인구조절 피임법이 있었는데 자로 수유기간을 길게 갖는것과 단백질 위주의 식습관이다. 이는 출산후 생리를 현저히 늦춘다

 재밌는건 수렵시기라고 해서 인간에게 농경시대의 특징은 가축화와 재배기술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이미 사람은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었고, 정식 농경까지는 아니지만 농경기술을 적지 않게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발현하지 않은 것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직 충분히 많은 수의 잡아먹을 동물과 식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결핍이 기술의 발전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빙하기의 끝으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

 BC 1만3천년경 온난화로 동물의 터전인 목초지가 대규모로 사라지고 숲이 등장하게 된다. 게다가 인간이 수렵기간동안 상당수의 대형동물을 절멸시킨 상황이어서 상황은 설상가상이었다. 자연히 인간의 식생활은 토끼나 사슴따위의 전에는 눈여겨 보지도 않던 작은 동물로 향하게 되었으면 조개류나 물고기도 주요 식량원이 되었다. 거기에 식물재배에도 노력을 기울여 농경이 시작되었고 육식위주의 오랜 식습관에서 채식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게 되었다. 아마 온난화로 식물을 매우 잘 자랐을 것이다. 

 동물이 귀해짐에 따라 농경과 더불어 가축화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염소나 소등의 가축들이 다행스럽게도 인간이 먹지 않는 식물의 다른 부위를 먹기에 무리없이 가능했다. 불행히도 아메리카는 구대륙보다 더 빠르게 대형동물이 절멸하여 딱히 가축화할 동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에 구대륙만큼 농경에 적합한 식물도 많지 않았다. 총균쇠에 나온 것처럼 이 커다란 차이는 향후 더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다. 왜냐하면 가축은 생산력증강과 단백질 공급은 물론이요 힘쓰는 동물로 사용한 경우, 바퀴나 축, 도르레등 기술발전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에서도 발견된 바퀴가 고작 애들 장난감으로만 쓰인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해리스는 이런 가축화를 전무후무한 동물 보호운동이라 했는데 정말 기가막힌 표현이었다. 

 농경이 시작됨에 따라 수렵채집인들에게 가능했던 피임법은 사용이 불가해졌고, 인구증가와 이를 위한 생산증강활동으로의 농경과 가축화는 삼림을 파괴하고 토양을 산성화 시키며 가축을 통한 질병까지 불러왔다. 농경시대의 전쟁은 이 해결책중 하나라고 저자는 말한다.

 전쟁의 기원은 조금 다르다. 원리는 비슷하지만. 과거 국가 시스템이 전무하고 영토개념이 없던 시기 전쟁은 인근 부족을 쫓아내어 인근 배후 지역에 무인지대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무인지대는 생태계의 보고로 향후 생산활동에 필요한 농물과 식물보호 역할을 하였다. 전쟁의 다른 이유는 인구조절기능이다. 전쟁에서는 주로 남자가 죽지만 사실 남자의 살해를 통한 인구조절효과는 매우 일시적이다. 실제로 한국전쟁이나 세계2차대전후 세계 각국은 베이비붐을 통해 빠른 속도로 인구를 수년안에 회복한다. 하지만 몇세대 걸리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여성의 살해다. 남성은 수가 적더라도 여러 여성을 상대함으로 인해 인구조절에 기능이 없지만 여성의 경우는 다르다. 인구의 수는 여성의 수만큼 늘수가 있다. 때문에 초기 인류의 전쟁에서 인구조절은 여아살해에 초점이 이루어졌고, 전쟁을 통해 남성을 중시하게 되는 남성위주의 문화를 통해 남아선호를 통한 일상적 여아살해기능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리스는 원시국가의 기원을 태평양지역 부족의 빅맨에서 찾고 있다. 빅맨은 부족 전체를 돌보고시혜적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이는 재산상 빅맨에게 상당한 마이너스인데 이들 빅맨과 그 추종자들은 그럼에도 그 존경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행한다. 하지만 집약적 농업과 곡물이 대량수확되면서 이들 초기 지도자들은 상설 군대의 유지와 생산수단으로의 접근권을 제한할 권력을 갖게되며 본격적인 지배자로 올라선다. 이들 초기국가는 인구밀도가 과해지면서 분리되는 다른 촌락에 대해 재분배 기능을 제공하는 조건 혹은 패한 다른 촌락에 대해 추방대신 복종을 요구하며 성장해나간다. 초기 중심국가 주변에는 제2기 국가들이 들어서는데 이들은 초기국가에 대한 군사적 방어의 필요성과 초기 국가의 부로 인핸 무역 및 그 약탈을 위해 발생한다. 

 이런 국가의 성장을 이야기하던 해리스는 갑작스레 아즈텍의 식인문화로 향한다. 구세계의 주요 종교와 문화 및 관습들은 대개 식인을 금기시한다. 물론 다른 문화권에서도 일부 허용되던 적도 있다. 하지만 아즈텍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권장된 곳은 없다. 해리스는 정말 놀랍게도 이를 가축화할만한 동물이 부족하여 만성적 단백질 부족에 시달리던 아즈텍의 자연환경에서 찾는다. 아즈텍의 신들은 인간의 피와 심장에 굶주려 있는데 피라미드위에서 산체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낸후, 신관들은 이 시신을 피라미드 아래로 굴린다. 문제는 이 시신이 아래쪽의 사람들에게 고기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물론 해리스는 아즈텍에서 포로로 잡아 인신공양에 사용된 사람의 숫자가 전체 사람들에게 충분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만한 수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람고기는 비싼법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수는 하위관리와 일부백성에게 지급되 단백질 부족으로 인한 반란을 막는 정도로는 충분하다고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아즈텍에도 칠면조와 개라는 고기가 있긴 했지만 칠면조는 사람이 먹는 곡물의 낟알을 먹으며 개는 고기를 먹는다. 때문에 단백질 공급원으로 매우 부적격이었기에 왕이나 일부 신관만이 사치스럽게 즐겼다. 또한 적절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만한 리마나 기니피그를 가진 잉카문명에 식인습관이 없었던 것도 이를 어느정도 뒷받침한다. 

 그 다음엔 정확히 반대로 고기를 안먹는 쪽으로 간다. 바로 중동지역의 돼지금기와 인도의 소금기다. 농경이 심화되며 전세계 문화권은 늘 먹던 고기를 금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는 인구밀도가 증가함에 따라 재배지가 넓어지고 이에따라 가죽을 위한 유휴지가 부족해졌기때문이다. 게다가 가축은 노동력제공, 비료 공급, 섬유질 공급등 쓰임새가 많았다. 때문에 고기는 모두의 음식에서 사치품이 되어갔으며 종교차원에서 육식을 금지하는 교리가 생겨나게 된다. 

 돼지는 고기공급원으로서의 가치는 매우 높지만 젖을 제공하지도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힘든 동물이다. 따라서 사치품이 되어갔다. 특히나 돼지는 스스로 열을 발산하지 못해 습기가 많은 지역을 선호하는데 사막지역인 중동에서는 정말 쥐약인 셈이다. 거기에 돼지는 자연상태에서 돼지감자, 과일, 견과류등 비싼것만을 먹어치우니 자연스레 중동지역에서는 돼지에 대한 혐오감을 발달시키고 금기시하게 되었다. 

 소는 정확히 반대다 소의 금기는 신성화로 나타났다. 돼지는 필요없음에 소는 너무나 필요했음에 나타난 현상이다. 인도 갠지스 강 유역의 인구밀도는 매우 조밀했다. 거기에 여건상 관개수로가 매우 약하다보니 변덕이 심한 몬순의 강우량에 지역전체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때문에 농경이 매우 중요해졌는데 소의 노동력이 더욱 절실해질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재밌는건 암소의 신성화다. 수소는 노동력의 제공으로 가정에서 사육되지만 암소는 방목한다. 하지만 일상에선 크게 필요치 않은 암소도 기근이 심하여 노동력이 더욱 절실해지거나 수소의 재생산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보호받는 수소에 비해 일상에서는 보호하지 않은 암소를 신성으로 보호했다는 것이 해리스의 견해다. 

 하지만 이런 소의 신성화의 경우 소를 사용한 다른 몬순 아시아 지역에서는 어째서 소의 신성화가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해리스는 중국의 예를 든다. 중국에서도 역시 소는 농경을 위해 귀한 동물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지금도 그렇지만 인도와 인구는 비슷하면서도 몇배에 달하는 영토를 갖는다. 거기에 농경생산성도 인도의 두배에 달해 소에 대한 의존도가 인도에 비해 낮았다. 게다가 다른 가축을 위한 땅 및 기후조건도 좋아 굳이 소의 신성시까지 갈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부분은 자본주의외 의회민주주의다. 해리스는 왜 이 것이 세계 다른 지역이 아닌 알프스 이북의 북유럽에서만 등장할수 있었는지를 살핀다. 우선 아시아지역을 살피는데 인도및 중국 지역의 문명을 비트포겔의 개념을 빌려 수력사회로 간주한다. 수력사회는 문명이 주로 건조 및 반건조지역에 위치에 하천의 물을 끌어다쓰는 평원과 계곡에 발달한 사회를 말한다. 이 사회에서는 생식압력에 대처하고자 필연적으로 수리시설의 강화가 필요하며 이는 이를 관리하기 위한 강력한 관료제를 동반한다. 수력사회에서 왕조의 순환은 다음과 같다. 초기 왕조는 치수-관개생산양식을 회복하거나 개선한다. 이로 인해 인구가 다시 조밀해지며 생산력을 한계에 도달한다. 그리고 왕조의 지속에 따라 이를 해결해야할 관료조직 역시 부패해지며 생산력이 더욱 떨어져 일반 백성은 극빈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새로운 패권을 다툴 반란 혹은 외부 침입이 일어나고 그 결과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여 이 쳇바퀴를 다시 돌리게 된다. 

 이런 수력사회는 관개의존성으로 인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전제체제를 갖게되며 국가가 대내적 수탈 대외적 수탈, 공공기관을 통해 국내의 모든 재산을 통제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생기기 매우 어려운 여건에 놓이게 된다.

 반면 알프스 이북의 기후는 겨울의 많은 강설량과 봄비로 연간 충분한 습기가 공급된다. 게다가 이렇다할  큰 강도 존재하지 않아 강 주변에 문명이 집중하는 수력사회에 적합치 않다. 이로 인해 인구가 전역에 분산되며 문명이 지방 분권적 경향을 갖게 된다. 국가형성 이후에도 이런 경향이 이어져 로마제국이 붕괴하고 중세장원경제체제하에서도 왕과는 별도로 장원경제가 돌아갔다. 생산수단에 대한 확실한 접근제한권을 갖고 있던 수력사회와는 달리 유럽지역을 왕이 이렇다할 칼자루를 갖지 못했던 셈이다. 

 이런 장원경제는 점차 붕괴되기 시작하는데 해리스의 공식처럼 장원경제체제의 생산력이 인구밀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자연스런 여아조절로 성비가 130대 100에 달할정도로 인구조절에 들어가지만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장원의 생산성에 관심이 많은 영주와 농민들은 수입원 보충 수단으로 양모를 얻기 위한 양치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양을 위한 목초지가 재배지를 집어삼키면서 농민의 토지는 감소하였으며 땅을 잃은 농민들은 빈민화 하거나 먹고 살기 위해 발달하고 있는 도시노동자로 변모한다. 이는 도시노동자의 임금을 극적으로 저하시키는 효과를 낳아 제조업이 발달하는 최저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되었으며 자본주의 체제는 개인의 부 축적을 방해하던 여러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제약을 풀어헤침으로써 역사상 최고의 생산력 약진을 가져온 제도로 해리스는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해리스는 화석연료에 의지한 지금의 생산력이 화석연료의 고갈 및 생태계 파괴로 인해 다른 문명들처럼 곧 생산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한다. 책을 쓴 시점이 94년이니 그럴만도 한데 무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화석연료에 충분히 의존하고 아직 그 고갈에 큰 신경을 안쓰고 있으며 환경을 더욱 크게 파괴되었지만 매우 더워진 지구에서 그럭저럭 버티며 4차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인류를 보면 저자가 어떤 혜안과 반응을 보일지 자못궁금하다. 하긴 당시만 해도 지구온난화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본격화되고 심각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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