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어드 머니 돈이 진화한다 - 계층 화폐로 살펴본 금, 달러, 비트코인, 디지털 화폐의 미래
닉 바티아 지음, 정성환 옮김 / 심플라이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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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교환의 편의성을 위해 여러 화폐를 개발해 사용했다. 조개껍데기에 말린 생선, 거대한 돌, 금과 은, 동전, 지폐, 지금의 암호화폐가 그렇다. 그리고 이 화폐는 피라미드식 계층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위로 갈수록 가장 가치의 근원이라 할 수 있으며 상환의 위험이 없다. 그리고 아래에 위치한 화폐일수록 상환의 위험이 있고, 그 가치가 위의 화폐에 근거한다. 

 인간은 지역마다 각기 다른 물질을 화폐로 사용했지만 결국은 공통적으로 화폐로 인정된 것은 금은 같은 귀금속이다. 귀금속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휴대가 용이하고 여러 개로 쪼갤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귀금속을 바탕으로 동전이 만들어 졌는데 동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희귀하면서도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하고, 대체 및 교환이 가능하며, 분할이 가능하고, 주조 방식이 복잡해 위조가 어렵다는 것이다. 위의 특징들은 희귀하여 가치를 높이고, 오래 보존되어 가지를 저장하고 교환을 편리하게 한다. 즉, 교환과 가치저장이라는 화폐 본연의 역할에 적합한 것이다. 

 로마의 데나리우스는 최초의 국제통화다. 2세시경 무게 3.4g에 은을 80% 함유했다. 하지만 시대가 갈수록 화폐의 은 함유량은 감소한다. 아무래도 제국은 전쟁이나 국가 운영에 돈을 발행해야 하고 그 때마다 위정자들은 공짜로 제국의 돈을 찍어내고 싶은 욕망에 빠졌을 것이며 그 방안이 바로 은을 줄여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데나리우스의 신뢰를 떨어뜨려 물가를 증폭시켰으며 곧 사회불안으로 이어져 제국의 붕괴를 낳았다. 

 중세에 이르러서는 로마 같은 통일 제국이 없기에 유럽의 각 지역은 각자 화폐를 발행했다. 그래서 주화의 종류가 매우 다양했으며 동전마다 귀금속의 함량이 달라 교환의 문제로 인해 화폐 유통 속도가 매우 더뎠다. 여기에 동전화폐는 무거운 물질이기에 운반의 위험이 있었다. 즉, 먼 지역간 대금 결제가 매우 느렸고 위험 부담이 컸다. 그래서 당장 결제보다는 이후에 대금 결제를 약속하는 지연 결제가 발달하는데 이것이 환어음이다.

 이 환어음은 글자 그대로 대금 결제를 약속한 것이기에 대금을 받지 못하는 부도의 위험성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동전이 아닌 환어음이 유통되기에 통화의 탄력성을 높였다 .그리고 이 환어음은 최초의 계층화폐가 된다. 즉, 동전-메디치은행가-환어음의 구조였다.

 이런 계층화폐의 특징은 그 아래 단계의 화폐에 규율적 제약을 가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 화폐는 발행자의 발권력 남용이라는 위험에 노출된다. 신용이 확대되면 두 번째 계층화폐는 커지며 통화피라미드가 확장한다. 하지만 신용이 줄어들면 두 번째 계층화폐는 크게 축소되고 사람들은 첫번째 화폐를 향해 달려간다.

 두번째 계층 화폐는 각 지역이나 국가마다 양식과 형태가 다르다는게 문제다. 지금의 현대국가들의 지폐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 이것을 거래하는 전통시장이 당연히 생겨난다. 1531년 안트베르펜에서 정기 거래소가 생겨나며 금융시장이 탄생한다. 이 거래소에서 처음으로 현금에 대한 인식이 귀금속에서 종이로 변환된다. 즉, 지연결제, 재무상태표 기반의 회계방식, 종이 화폐의 3가지 요소가 모두 출현한 것이다. 안트베르펜 거래소에서는 환어음을 현금으로 바꾸는데 한 달이 소요되었다. 한 달 이전에 바꾸는 경우 할인 개념이 적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그날그날의 화폐가치가 시간으로 표시되었다. 즉, 최초로 종이화폐의 가격이 탄생했다. 

 그리고 안트베르펜에서는 약속 어음이 탄생한다. 이전의 증서는 수취인을 특정하였다. 때문에 발행인과 수취인 간의 사용만이 가능했지만 약속 어음은 수취인이 명기되지 않아 증서를 넘기기만 하면 누구나 수취인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두 번째 계층화폐가 활성화하자 국가가 이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네덜란드는 국가에서 발행한 두 번째 계층화폐만을 사용하도록 법률로 강제한다. 네덜란드는 독립전쟁 기간 스벤더 강을 봉쇄하였는데 이로 인해 안트베르펜이 쇠퇴하고 그 자리를 네덜란드 중앙은행이 차지한다. 이것은 길더를 표준화폐로 삼아 모든 예금자가 무료로 즉시 결제하는 시스템을 마련한다. 암스테르담 중앙은행은 모든 민간 금융업자의 귀금속을 강제로 예치하였는데 그 대신 예금증서를 민간업자에게 내주었다. 네덜란드가 유럽 경제의 중심지가 되자 자본이 밀려든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예금을 예치한 내부자간 이체를 즉시 가능하게 한다. 매우 혁신적인 방식으로 이제 더 이상 증서나 주화의 교환이 필요 없어진다. 이렇게 암스테르담 은행은 세계최초의 중앙은행이 된다. 자금거래의 최종정산, 예금자간 이체와 결제가 기반 업무였고 거래의 중앙집중화로 은행 고객간의 거래 감시가 가능해졌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설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인도회사에 자금을 대출하고 복식부기의 표준 관행에 따라 대출금을 자산으로 기재한다. 이는 예금자의 예금으로 동인도 회사에 신용을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암스테르담 은행은 첫 번째 계층 화폐로의 태환을 중지하여 귀금속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음을 입증한다. 이것은 당시 암스테르담 은행이 항상 적절한 지급준비금을 보유하고 소유한 귀금속을 터무니 없이 초과한 예금증서 발행을 하지 않아서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공개시작 조작도 처음으로 행한다. 발행한 예금증서가 원활히 거래되도록 금융 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을 준 것이다. 가령 예금증서의 수요 증가로 가치가 증가하면 시장에 보유한 예금증서를 팔고, 반대로 수요가 감소하며 귀금속을 팔아 예금증서를 사들여 공급량을 줄인 것이다. 

 그리고 1964년 잉글랜드 은행이 설립한다. 암스테르담 은행을 모방했지만 화폐발행권을 독점하지 않았다. 영국의 파운드 스털링은 1158년 헨리왕이 순도 92.5%의 은화를 도입한 후 영국의 통화가 되었다. 영국은행이 구축한 화폐 계층은 다음과 같다. 금과 영국국채-잉글랜드 은행-잉글랜드 은행 예금과 은행권-민간-예금과 환어음이다. 잉글랜드 은행은 초기 11년마다 재인가 되는 형식이었기에 자신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입증하려 하였고 그 결과 재인가마다 가치가 폭등한다. 1844년 결국 영구지위를 획득하고 1946년에서야 영국정부가 지분을 전량인수하여 국유화된다. 

 미국은 1900년에서야 금본위제를 채택한다. 남북전쟁으로 그린백을 발행하다가 결국 1달러를 1.5G의 순금과 고정한다. 20세기 초반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대 지진이 일어나 영국의 보험사들은 미국에 대량의 보상금을 지급한다. 이로 인해 영국은 대량의 부 유출로 환율방어를 위해 금리를 2.5%나 인상해버린다. 그러나 미국은 자본이탈로 경제위기를 겪게 된다. 예금자들의 뱅크런이 일어났는데 당시 미국은 중앙은행이 없었기에 민간 은행의 거물 jp모건이 이를 해결한다. 결국 1913년 연방은행법이 통과되어 연방준비제도가 생겨난다. 

 연준은 두 번째 계층화폐를 발행한다. 그리고 민간은행이 발급하던 화폐가 제3 계층 화폐가 된다. 미정부는 연준에 은행업 감독 체제를 확립한다. 은행설립인가 독점권두 부여한다. 다만 연준은 두번째 계층화폐 발행을 위해선 부채 중 최소 35%에 해당하는 금을 준비해야만 했다. 연준은 설립 보유 금이 자산의 84%였으나 지금은 1%미만이다. 초기 연준은 미국채도 보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1차대전으로 인해 미국채를 보유하기 시작했고 미국채가 금과 더불어 1계층 화폐가 된다. 그리고 금과 미국채-연준-지급준비금과 은행권-민간은행-예금의 피라미드가 완성된다. 

 미국은 경제공황으로 강한 자금 공급이 필요했으나 언급한 35% 지급준비금 규정으로 인해 충분한 2번째 계층 화폐를 공급할 수 없었다. 이것으로 인해 금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다. 1933년 루즈벨트는 행정명령으로 모든 금화, 금괴, 금 보관증을 정부에 강제로 넘기게 한다. 그리고 1934년 미국은 금준비법으로 달러를 평가절하해 온스당 금가격을 20.67$에서 35$로 69.3%나 인상해버린다. 1935년 뱅크런을 막고자 은행법으로 연방예금보험공사를 설립하여 모든 예금을 보증하는 fdic보험을 만든다. 

 파운드 스털링은 1931년 금본위제의 폐지로 기축통화 자리를 잃는다. 그리고 1944년 브레턴 우즈체제로 세계 지도자들은 모든 화폐의 가치를 달러에 고정하여 자신들의 화폐를 제3 계층화폐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금과 미국국채-연준-미달러-가격-다른 국가의 화폐라는 피라미드가 성립한 것이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 막대한 이득을 얻는다. 하지만 문제가 곧 생겨난다. 언급한 법으로 인해 미국 시민은 금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외국시민들은 보유한 달러로 금태환이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금이 점차 해외로 유출하여 비축 금이 줄어 고정가격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에 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이기에 이를 비축하였는데 이는 달러 강세를 불러와 미국의 근원적 무역 불균형을 야기했다. 

 그리고 역외달러인 유로달러가 출현한다. 2차대전을 위한 전쟁 금융과 이후의 유럽 재건은 모두 미달러로 조달되었다. 그리고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자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달러 수요가 폭증하였는데 유럽의 이자가 더 높다보니 사람들은 보유한 달러 예금을 유럽 은행에 안치한다. 이 큰 규모의 달러 예금을 근간으로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발행하는 달러가 유로 달러다.

 1971년이 되자 미국은 금 태환을 중지한다. 베트남전의 여파다. 1973년엔 자유변동환율제 실시로 브레튼우즈체제는 깨어진다. 이렇게 금이 퇴장하면서 달러는 족쇄가 사라져서 무제한 발행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미국채는 연준의 재무상태표에서 지배적인 자산이 되었다. 그러자 민간이 미국채를 사서 국채 레포달러의 형태로 다른 유형의 달러를 발간하게 된다. 2차 대전의 대량 미국채 발행은 이를 크게 부추겼고 달러은행은 국채시장의 건전한 작동과 국채거래를 책임지는 은행이 되었다. 이들은 환매조건부채권으로 담보대출시장을 활용한다.환매조건부채권은 레포라하는데 돈을 빌리는 사람이 만기일에 원금과 이자를 내고 해당 미국채를 재매입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달러를 공급하는 지경에 이르자 연준은 중앙은행의 고유역할인 화폐의 공급조절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준은 단기 금리를 조절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화폐의 공급량을 조절한다. 

 거액의 자금은 지폐보관이 용이하지 않다. 은행 예치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국제적 부는 미 채권을 구입하는 것이 방법이긴 하나 약간의 변동성이 있다. 그래서 등장한 최고의 방법이 MMF다. 미 MMF는 안정성을 최우선시한다. 미단기국채와 우량채권에만 투자하며 운영수익을 배당으로 지급한다. 펀드의 안정성을 위해 투자채권의 평균 만기도 60일 미만이다. 그리고 동일기관에도 5%이하만 투자한다. 주당 1$유지를 위해 초과 이익을 모두 배당해버린다. 그러다 보니 전세계 투자은행이 초과 현금이 발생하면 MMF로 자금을 이체한다. 다국적 기업도 기업어음시장에서 MMF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파생상품은 증권으로 간주되지 않는 금융계약이다. 스톡옵션, 선물거래, 금리스왑등이 있다. 1998년만해도 미국채 총 발행액이 3조$였고, 파생상품도 규모가 같았지만 2007년에 이르러서는 미국채 총 발행액이 4조$인 반면 파생상품은 무려 11$조 달러에 달하게 된다. 그러다 2007년 8월 리보가 0.12%상승한다. 이것은 프랑스 BNP파리바은행이 특정파생상품의 평가를 기피하여 미주택대출에 관련 금융상품 보유 펀드의 현금인출을 전면동결하며 벌어졌다. 이로 인해 경제위기가 시작되고 은행의 무제한 자금 대출의 시대가 종료된다. 결국 연준은 역외 시스템에 유동성 공급을 위해 유럽중앙은행과 스위스 국립은행의 외환스왑을 도입한다. 연준의 역할이 국외로 넓어진 것이다. 

 2008경제위기로 MMF가 주당가격은 0.97로 고시한다. 1달러가 무너진 셈이다. 이는 원금보장의 문제가 일어난 것으로 연준은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구제금융조치를 실시한다. 그래서 MMF에서의 자금이탈을 막는다. 연준이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은 미국채를 대량으로 매수하여 막대한 준비금을 시스템을 넣는 형식이다. 

 지난 10여년의 경제위기는 달러시스템의 취약성에도 달러가 오히려 통화시스템에 깊숙히 자리잡았다. 이것의 대안으로 새로운 첫번째 계층 화폐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이 비트코인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디지털화폐를 준비중이다. 이것을 준비하는 경우 연준은 민간은행 도매화퍠가 아닌 직접 소매화폐를 민간에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새로운 계층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비트코인-중앙은행과 민간-디지털화폐, 비트코인예금, 스테이블코인-은행-소매 스테이블 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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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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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초반 공산권이 무너지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한 서구 진영의 승리가 눈앞에 보이면서 세계는 가까운 시일 내에 모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뒤덮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계를 뒤덮은 것은 자본주의 하나 뿐이다. 권위주의 정권은 자본주의 하나만 취사 선택했고 민주주의는 시늉만 냈을 뿐이다. 그리고 굳건해 보이던 서구 진영에서도 이 자본주의로 인해 민주주의가 크게 쇠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후유증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구축되며 서구사회의 중산층은 제조업 일자리를 잃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극우주의적인 포퓰리스트들이 각 서구사회에서 득세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이탈리아나 미국의 경우처럼 정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들의 자양분은 소위 말하는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다. 불우한 처지에 놓인 이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찾기 시작했는데 극우주의자들이 제공한 혐오의 대상이 그 사회 내의 소수자, 이민자, 이들을 품고자 하는 좌파엘리트와 사법기구들이었던 것이다. 

 책 '혐오사회'는 이런 움직임이 아직은 발흥기로 보였던 2016년의 책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문제는 오히려 악화했다. 책은 혐오의 근원과 그 근거 없음을 보이는데 주력한다. 저자가 독일인이고 성소수자인만큼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많다.

 혐오와 증오는 개인적인 것이거나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 단순실수나 궁지에 몰려 나오는 막연한 감정이 아니며 특정 이데올로기에 따라 집단적으로 형성된 감정이다. 즉, 미리 정해진 양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혐오나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연상과 이미지가 범주화 되어 있으며 이를 평가하는 인식틀이 있고 오래도록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지는 방식으로 훈련 및 양성된 것이기에 느닷없이 폭발하는 것이 아니다. 

 혐오와 증오는 매우 협소한 시각을 갖고 있다. 혐오와 증오의 대상에 대해서는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다양성이 모조리 제거된다. 그저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는 상상력의 축소로 이어지는데 그로 인해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감정 이입의 여지가 크게 사라진다. 이런 증오와 혐오의 대상은 그저 무슬람이나 이주자, 흑인, 성소수자에 대한 좋지 못한 관념의 틀에 끼워 맞춰져 그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상실한다. 남게 되는 것은 이들에 대한 만들어진 묘사화 평가에만 의존한 축소된 사고 뿐이다. 이로 인해 혐오와 증오가 가능해진다. 

 이런 인식 패턴은 새롭거나 독창적인 것은 아니며 많은 역사적 선례를 갖고 있다. 이렇게 혐오로 구성된 세계에서는 유희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은 없다. 모든 사건은 모종의 의미와 의심스러운 배후가 있으며 외도가 있는 것으로 치부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자신들의 집단을 해하려는 음모로 해석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몰락과 억압에 대한 구태의연한 옛 이야기를 끌어와 극적으로 표현해 배경으로 깔아두고 그 앞에서 자신들의 사명을 특별히 중대하고 운명적인 것으로 표현된다. 

 이들의 세계는 매우 이분법적으로 자신들이 축소되거나 죽어가는 국가의 시민이며 다른 한 쪽은 자신들의 멸망을 적극적으로 추전히고 있는 사람들이 된다. 그래서 그들을 적으로 삼게 되며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신념과 관념에 대한 외부의 의식과 비판은 결코 논의에 대상이 되지 않는 모순을 보인다. 이런 비판은 유일하고 진실한 투쟁을 이끌어가는 사람에 대한 검열과 억압, 조롱으로 치부된다. 

 작금의 혐오, 증오를 조장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동질적인 것, 본원적인 것, 순수한 것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동질적 국가와 국민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국민은 소위 현대국가 성립 시기에 형성된 자유롭고 평등한 인민이 아니다. 이런 헌법적이고 공통의 행동에 기반하는 것 보다는 정확한 기원과 근거를 알 수 없는 종족 및 민족으로 협소히 이해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믿음은 일종의 건국신화를 주장하는 이야기에 뿌리를 둔다. 그것을 과거지향적인 것으로 사회가 같은 가치와 관습의 지배를 받았던 과거를 생각하고 그 때가 더 참되고, 옳고, 진정하다고 생각한다. 

 성별과 관련하여 본연의 특성이 있다는 생각은 기독교의 상상력을 통해 전승되었고 신의 뜻이라는 표상과 결부한다. 하지만 본연성과 본원성, 순수성은 그 근거가 사실상 매우 빈약하다. 트랜스인이란 타고난 외적 성장과 호르몬의 범위가 본인이 몸소 느끼는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 또는 할당된 소속 성별이 본인이 느끼는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이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장벽은 매우 높다. 외적인 성별동화 외에도 행정적, 재정적, 정신의학적, 법정 장애물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조금 이상하다. 일반인들은 자신의 존재와 성적정체성을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트랜스인들은 그 모든 것을 인정받기 위해 그 이유를 대야 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설명하고 정당화할 의무가 없다. 독일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성전환법에 의해 자신이 성전환자임을 여러 차례의 감정을 통해 입증받아야 한다. 저자는 이것을 감정이 아닌 신청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IS는 증오와 혐오로 가득찬 집단이다. 놀랍게도 이들에게서 눈에 띄는 것은 평등주의다. IS 지하드에 가담하라는 선전 선동을 하면서도 국적이나 신분, 인종도 가리지 않는다 .그저 알 바그다디가 선전한 교리에 충성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유를 주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 위의 군림을 약속하며 그 안에서는 절대적 위계 관계가 존재하고, 일절의 자유없이 충성해야 한다. 즉, IS는 경계를 없애는 동시에 경계를 긋고, 포용하는 동시에 배제하는 존재다. 이런 모순된 포용성이 자기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역사적 과업에도 동참하지 못하는 유럽의 무슬림에 소구력을 갖는다. 하지만 막상 IS에 들어가게 되면 반개인적이고 권위적인 곳에 속하게 되며 모든 개인의 고유함은 허용되지 않는다. 

 일견 IS는 무슬림 난민들이 유럽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무슬림 난민에 대한 공정한 대우와 포용적 환영, 유럽에서의 실질적 기회 제공은 오히려 IS에게 상당한 위협이 된다. 

 저자는 이런 일련의 증오와 혐오를 조장하는 곳에 같은 형식의 증오와 폭력을 분출하기 그것이 일어난 곳과 구조를 찾아서 경제, 사회적으로 개입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모든 인간은 보편적 우리에 공통으로 소속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고유한 개인으로서의 유일무이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회에는 복수성이 중요하다. 이것인 개인이나 집단의 자유를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를 허용함으로써 자유를 보장한다. 증오와 혐오를 조장하는 이들은 동질적이고 본원적이고 순수한 집단을 추구하고 그것이 더 큰 보호와 안정을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이질적인 것을 배제하기에 안정성을 해치고 보호를 해주지 않는다. 물론 세속주의 민주주의가 모든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종교적 도그마나 그것으로 인해 인권을 해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개별적인 다름을 허용하기에 논란이 일어나기 쉽지만 이로 인해 공적 논쟁이 많아지고 이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과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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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그림과 편지들 - 세상에서 나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 내 동생 테오에게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이승재 옮김 / 더모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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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고흐는 그 유명세에 비해 살아 생전 단 한 점의 그림 밖에 팔지 못했다. 물론 주변의 예술가나 지인들은 그의 그림을 꽤 원하기도 하고 얻어가기도 했지만 세속적 인기는 없었던 셈이다. 판매에 성공한 유일한 그림은 '붉은 포도밭'이다. 그의 대표작은 아닌 셈이다.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반 고흐만이 아니다. 당시의 '인상주의' 화풍은 지금이야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당시엔 매우 새로운 시도로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시대를 앞서간 셈이다.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와 상당히 많은 서신을 주고 받았다. 그래서 다른 화가들에 비해 우리는 그의 실존적 어려움과 고민, 인간 됨에 대해 다소 살펴볼 수 있다. 

 동생 테오는 평소 심장에 지병을 갖고 있었는데 형의 죽음이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고흐가 죽고나서 고작 반 년만에 자녀와 아내를 두고 죽고 만다. 고흐의 동생 테오의 서신은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던 테오의 아내가 대량으로 발견하고 이에 큰 감명을 받고 세상에 공개하며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고흐의 집안은 괜찮은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목회자였고 큰 아버지는 유럽 여기저기에 지점을 둔 화랑을 하고 있었다. 고흐의 아버지는 고흐를 목회자로 만들거나 세속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여러 노력을 하고 학교에도 보내봤지만 민감하고 감수성이 있는 고흐의 영혼은 그것에 걸맞지 않았다. 고흐는 큰 아버지가 운영하던 구필화랑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인상주의 화풍을 접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27살이라는 지금으로 봐도 매우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결국 화가가 된 그를 집안에서는 어떻게든 정착을 시키기 위해 안트베르펜의 미술학교로 보내기도 했으나 고흐가 전형적 교육과정과 그림 그리는 방법을 거부하면서 이조차도 무산된다. 동생 테오 역시 집안의 화랑을 물려받아 일을 한다. 그리고 테오는 제법 돈을 벌었는데 이것이 고흐의 물질적 기반이 된다.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돈이 아니었다면 평생 그림을 한 점 밖에 팔지 못하는 비인기 아마추어 작가인 고흐가 그렇게 많은 작품을 남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재 세계인은 고흐의 작품에 대해 동생 테오에게 상당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빚은 무엇보다도 고흐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앞 부분은 항상 이전에 돈을 보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염치없게도 다시 돈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점철된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이 점점 발전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도와 노력으로 곧 그림이 팔릴 것이라는 망상에 가까운 기대도 보인다. 

 고흐는 특유의 임파스토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는 그림에 유화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형식으로 고흐는 색을 섞기도 했지만 혼합하려는 두 색을 가깝게 두텁게 칠해 혼합효과를 내기도 했다. 임파스토 기법으로 그의 그림은 강한 질감과 두터운 느낌, 강렬한 색조, 깊은 공간감과 입체감을 준다. 하지만 이 기법은 필연적으로 물감을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었고 고흐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했다. 그럼에도 고흐는 이 기법을 고수하고 대부분의 작품이 이 방법을 사용한다. 

 고흐는 자신처럼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들을 위한 하나의 예술 공동체를 구상했다. 그들이 한 장소에 모여 같이 작업하고, 게중에 운 좋고 당대의 인정을 받는 작가가 얻는 수익을 어려움을 겪는 작가를 위해 사용하고 그런 어려움을 겪는 작가가 성장해 다시 공동체에 기여하는 그런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구상도 망상에 가까워 친구인 고갱 하나를 영입하는데도 실패한다. 고갱도 고흐 만큼은 아니지만 당시에 그림이 잘 팔리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는데 동생 테오의 경제적 유인책으로 고흐와 합류했다가 고흐의 민감함과 예술적 지향성의 다름. 그리고 프랑스 아를에 대한 실망으로 가까운 시일에 고흐를 떠나버린다.

 고흐는 고갱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동생의 결혼으로 경제적 지원이 감소하거나 끊어질 것에 대한 염려로 상당한 정신적 불안을 보인다. 지역 주민과 집주인은 그런 고흐를 정신병자로 여겼고, 그는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모처럼 꾸며 놓고 오래도록 그림 작업을 했던 아를의 하숙방에서도 쫓겨난다. 고흐는 잠시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병원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바깥에서 총상을 입는다. 그는 처음엔 괜찮은 듯 보였으나 갑작스레 상황이 악화되어 이틀 만에 사망하고 만다.  

 고흐의 삶은 전체적으로 매우 불행했다. 아버지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림을 그린 사촌형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으며 동생 테오조차 형의 그림이 팔릴만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0년의 시간을 그리며 단 한 점의 그림도 팔리지 않았으니 형에 대한 애정과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쳐도 충분히 그럴만하다. 여기에 동시대의 예술가들 역시 그의 그림에 주목하지 않았다. 연애사도 불운해 고백하는 사람마다 집안의 반대, 혹은 이미 연인이 있거나, 아니면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평생 독신이었다. 이런 모든 악조건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려낸게 그에겐 하나의 해방구이자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지금 그의 그림 하나하나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매우 비싸게 팔리는 현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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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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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의식이 있고 그것에 기반한 자유 의지가 있다고 굳건히 믿는다. 그리고 인간의 많은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시스템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기반한다. 하지만 실제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무의식이 처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도 모르는 행동을 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그런 짓을 했다고 말하곤 한다. 실제 생명과 관련한 모든 기초 대사 작용이 무의식의 차원에서 작동하며 일반 행동의 다수도 그러하다. 걸으며 어떻게 걷는지 의식이 일일이 관여하지 않으며 이는 글씨를 쓸 때도 스마트폰을 할 때도, 식사를 할 때도 자전거를 탈 때도, 운전하며 집으로 갈 때도 그러하다. 뇌는 평소에 정보를 수집하여 행동 방향을 적절히 조정해 놓는데 이게 완료된 경우 의식은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책은 인간의 이런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한 국가의 신문에 비교한다. 국가의 많은 일은 매우 복잡하게 나눠져있고 각각이 연관되어 있지만 따로 움직이며 정부의 상층부가 무언가 일어난 것을 알아차릴 즘이면 이미 행동은 이뤄진 후다. 인간의 의식은 바로 이런 국가의 상층부에 해당한다. 전체에 관여하려 하지만 대부분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고 대부분의 것을 사후적으로 알게 된다. 

 인간의 뇌는 바깥세계의 데이터를 성공적으로 가지고 와서 해석해야 한다. 인간은 바깥의 데이터를 잘 보고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전기 화학 신호에 불과하다. 뇌가 이거를 해석해 그것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리고 바깥은 감지하는 인간의 감각기관은 문제도 많다. 눈은 맹점이 있다. 그래서 한쪽 눈만 갖고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던 물체가 맹점에 위치하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물체가 사라져도 놀랍게도 그 주변 배경을 그대로 보인다. 안보임에도 뇌가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다. 인간은 맹점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데 양눈의 맹점 위치가 달라 서로 겹치지 않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사람은 처음부터 보지는 못한다. 시신경을 통해 뇌로가는 무의미한 신호를 의미를 갖게 뇌가 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랍게도 평생을 보지 못하다고 수술 및 이식을 통해 처음으로 바깥 세계를 보는 사람은 초기에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자신의 뇌가 아직 보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부의 감각데이터를 내부에 데이터를 생성하지 못한다. 다만 조정할 뿐이다 1911년 고양이의 다리 감각 신경을 끊어도 고양이는 걷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는 평소 고양이가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통상적 외부감각을 이용해 걷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는 뇌회로가 감각기관-신경-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뇌전역에는 감각기관에서 뇌를 향해 정보를 앞으로 보내는 회로만큼이나 많은 반대 방향의 피드백이 있다. 이것을 순환이라 하며 고리가 많다고 한다. 고리가 많다는 것은 뇌가 감각기관의 정보 입력전 예측을 통해 감각 전달 속도보다 일을 빠르게 수행함을 의미한다. 즉, 뇌는 특정한 것을 해석하거나 예상하는 방법을 학습하며 대부분의 일을 감각기관의 보내주는 정보에 의지하지 않고 그것보다 빠르게 해석하여 처리한다는 것이다. 

 이는 운동경기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축구에서 골키퍼는 과학적으로 패널티킥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 공을 눈으로 보고 이것이 신경을 통해 뇌로와서 해석되고 다시 뇌에서 손과 발로 움직임을 명령하는 시간보다 빠르게 공이 골네트에 꽂힌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투수의 빠른 공은 이미 타자의 뇌와 신경 처리 속도를 압도한다. 그럼에도 골키퍼는 공을 막고 숙련된 타자는 적어도 4번 중 1번은 공을 쳐낸다. 이는 뇌가 고리의 형태로 일을 예측하여 처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뇌는 인간이 특정 조건에서 어떤 행동을 수행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내부적으로 시뮬레이션을 한다. 뇌의 피질은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자신의 예측을 시상으로 오히려 보내고 시상은 눈을 통한 정보와 예측 사이의 차이를 보고할 뿐이며 뇌가 이것을 조정한다. 그래서 실제로 시각피질에서 시상으로 향하는 섬유조직의 반대의 10배나 된다. 즉, 인간의 뇌는 감각기관에 수동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얻은 데이터로 학습 및 조정을 하고 이후엔 자동적으로 움직이며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모니터링만 하며 차이가 있는 경우에 조정하는 것이다. 

 뇌는 시간 감각도 예측한다. 이는 시간은 매우 실시간으로 빠르게 지나가지만 뇌의 처리와 신경의 속도가 느리다는데 기인한다. 뇌의 신호는 구리 전기신호의 수백만분의 1에 불가하다. 그래서 인간의 뇌가 조정하지 않으면 인간의 행동은 후행적이 된다. 특히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시각과 청각은 정보는 처리 신경이 다르기에 사실상 동시적임에도 뇌에서 처리 속도도 다르다. 그런데 뇌는 이를 동시로 처리한다. 즉, 인간의 시간 감각은 뇌에서 적극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무의식이 하는 것이 많다면 대체 의식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생물은 생존을 위해 바깥 세계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대처한다. 그리고 효율적인 방안은 바로 외부에서 패턴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 패턴이 매우 안정적이고 영구적이라 생각되면 그것은 유전자에 반영되어 다음 세대에서 영구적으로 기능한다. 이것이 본능이다. 이런 본능은 전문화되고 최적화 된 것으로 매우 빠르게 속도로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패턴화할 수는 없다. 세계는 안정적인 동시에 변화 무쌍하기 때문이다. 이를 처리하기 위한 것이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의식은 기존의 패턴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새로운 과제가 등장했을 때 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이를 학습하고 뇌는 그 처리방안을 배운다. 그리고 이것이 해결되면 이 과제 역시 자동화되며 매우 빠르게 처리되고 이후 드는 에너지가 최소화된다. 자전거 타기를 처음 배우면 이는 걷기와 전혀 다른 비패턴화된 과제다. 그래서 이를 수행하는데 의식이 상당히 관여하며 뇌가 이를 충분히 학습하면 이후 패턴화되어 자동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의식을 통해 이런 학습을 잘 하는 것이 곧 지능이다.  

 인간은 감각의 해석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이미 기존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화되어 있다. 여성호르몬은 여성의 입술을 도톰이 하고, 허리가 가늘고, 엉덩이를 풍만하게 한다. 남성호르몬은 남성의 근육을 늘리고 어깨를 넓히며 턱이 도드라지고 코를 크게 한다. 그리소 반대 성들은 이런 이성을 아름답다고 느낀다. 인간 여성은 배란기에 가까울수록 남성에게 아름답게 보인다. 피부가 더 밝아지고 귀와 젖가슴의 대칭성이 강화한다. 그래서 한 연구에 의하면 멕시코의 스트립댄서들은 배란기에 수입이 평소의 두 배에 달했다. 남성들이 이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생리 기간엔 수입이 반토막 난다. 

 바소프레신은 측촤핵에서 수용체의 결합하여 암컷과 연관한 즐거운 감정을 조절한다. 이것이 일부일처제와 관련한다. 유전자 조작으로 바소프레신 수치를 늘리면 생물이 일부일처 경향을 갖는다. 인간도 Rs3 33 유전자가 많을 수록 바소프레신이 뇌에 미치는 영향이 감소했다. 

 민스키는 인간의 마음이 여러 파트로 나눠져 분업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경쟁한다. 인간은 한 번에 하나의 결정과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밤 낮은 시간에 잔업을 하다 잠이 드려고 한다. 그런데 배가 고프다. 이 경우 인간은 건강하게 잠들 것과 허기 사이에 고민한다. 이처럼 뇌안의 여러 파벌은 자신들의 시스템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 경쟁한다. 즉, 뇌는 의식과 무의식이 기본이지만 이 안에 여러개의 서브루틴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진화상 당연해 보인다. 생물은 생성된 후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하나하나 자동처리시스템, 즉 서브루틴을 축적해 왔을 것이다. 이것이 수십억년의 진화과정에서 이후 생물에 유전자를 통해 계승되었을 것이기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 서브루틴은 결정 과정에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서로 중복되는 일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는 하나의 큰 장점이다. 하나가 망가져도 다른 하나의 서브루틴이 이를 대체해여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망자 중 생존에 정상이었음에도 부검과정에서 알츠하이머로 뇌가 엉망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서브루틴이 뇌의 다른 기능 영역이 인지 예비능으로 작용한 결과다. 

 결국 뇌는 의식으로 패턴을 찾으려고 한다. 과제를 해결하여 신경회로 안에 빠르고 효율적인 대처 프로그램을 구축하려하기 때문이다. 생물의 많은 행동은 특정한 입력 정보에 적절한 결과를 출력해주는 청사진이다. 의식은 이런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제어하고 제어권을 널리 분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특정한 수준의 복잡성을 갖춘 자동 서브루틴 시스테에서 각각의 서브루틴은 서로 대화를 주고 받고, 자원을 분배하고 제어권을 할당받아야 하는데 여기에 의식이라는 고급매커니즘이 필요한 것이다. 

 서브루틴 시스템은 일종의 자동화한 좀비 시스템에 가깝다. 이것이 많으면 많은 행동에서 높은 효율이 가능하지만 뜻밖의 과제에 대처하는 인지적 유연성이 부족해진다. 상당수 동물은 좀비 시스템이 많은 쪽에 가깝다. 다양한 과제에 대처하기 위한 높은 수준의 인지유연성을 보이는 것은 거의 인간이 유일하다. 그것은 많은 이득을 주지만 수많은 학습을 위한 장기간의 육아기간과 성년으로의 오랜 기간을 비용으로 요구한다 즉, 인간은 다른 동물만큼 많은 서브루틴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의식이라는 비용이 높은 인지적 유연성을 갖고 성년이 되기까지 수많은 비패턴화 과제를 학습한다는 의미다. 

 이런 의식하에 저자는 인공지능 개발이 성공하려면 다양한 세부과제를 해결하는 서브루틴을 만들고 이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 짐작하다. 이미 생성형 인공지능은 적대적으로 서로 학습하기도 한다.

 인간의 이런 의식과 무의식의 문제는 사법시스템과도 관련한다. 사법시스템은 인간의 의식과 자유의지에 기반한다. 하지만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상당한 행동은 좀비시스템, 즉 무의식에 근거하여 작동한다. 실제로 이런 인간의 행동에 대한 과학적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법시스템은 이럴 반영해왔다. 중세였으면 악마의 소행으로 밝혀졌을 여러 정신이상 증세는 최근 무죄의 근거가 된다. 사법시스템은 이미 사람의 의도와 의지를 형량에 반영한다.

 때문에 기술이 발전할 수록 기질적으로 특정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밝혀질 것이며 이를 더 많은 변호사들이 생물학적 감경사유로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미래 지향적 사법 시스템은 범죄 행동을 일종의 질병으로 보고 생물학적 지식을 개별화된 재활에 활용할 것이다. 행동이 교정가능할 때만 그에 걸맞는 벌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어려운 높은 공격성과 공감의 부족, 충동조절의 부족은 격리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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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역사 - 당신이 몰랐던 동유럽의 대국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와타나베 가츠요시 지음, 서민교.정애영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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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에 대해 떠오르는 것은 독특한 흰색과 적색 두 줄무늬 국기와, 바르샤바, 게토, 유대인, 바웬사, 2002 월드컵 한국의 역사적 첫 승 상대, 최근 한국의 주요 무기 수출국이라는 점이다. 

 폴란드는 이미 유럽연합과 나토의 가맹국이며 유럽연합에 많은 노동력을 수출하고 있다. 면적은 31만km2이고 인구는 3784만으로 면적에 비해서는 다소 적은 편이다. 다만 이 인구의 절반 이상이 35세 이하여서 경제 잠재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발등이 불이 떨어진 상태로 가성비 좋은 한국산 무기를 마구 사들이는 등 국방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그럴만도 한 것이 폴란드의 역사는 곧 외국의 침략과 그것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동부유럽의 드넓은 평원에 위치한다. 이렇다할 자연 장애물이 전혀 없기에 외세로 진출하기도 좋지만 의지할만한 방어수단도 전무하다. 여기에 서쪽에는 독일, 동쪽에는 러시아가 자리한다. 양강에 끼인 셈이며 실제 폴란드는 역사상 이들이 흥기하면 바로 어려운 형국에 처했다.  

 폴란드의 역사는 대충 10세기 정도에 시작한다. 카지미에시 3세가 왕국의 중흥기를 이끌었으며 리투아니아와 연합하여 한 때 대 제국을 이루었다. 러시아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빌뉴스, 우크라이나 키예프도 그들의 영토였다. 하지만 프로이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가 대제국으로 일어서면서 사정이 바뀐다. 이전 스웨덴 과의 경쟁도 국력을 소진시켰다. 

 결국 폴란드는 1772년 러시아에 항복한다. 그리고 1차 폴란드 분할이 이뤄지는데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가 이 땅을 나눠가졌고 가장 큰 지분은 러시아 몫이었다. 폴란드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에 영향을 받아 1788-1792년 4년 국회를 개최한다. 중세귀족인 아우구스트와 슐라흐타의 권한을 제한하고, 시민의 토지소유와 고위 관직 진출을 가능하게 했지만 농민에 대한 권한을 보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폴란드 내의 기득권층이 당연히 이 법안에 반대하고 러시아의 군사개입을 요구하여 4년 국회는 좌절된다. 그리고 이는 어이없게도 1793년 2차 분할로 이어진다. 이번엔 오스트리아가 빠지고 러시아와 프로이센이 폴란드를 분할한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승리하자 1809년 바르샤바 공국이 탄생한다. 바르샤바 공국은 나폴레옹에 충성하여 그의 러시아 원정에 무려 10만의 병력을 파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나폴레옹이 패배하여 공국은 소멸한다. 그리고 폴란드의 일부영토에서 러시아 황제를 통치자로 하는 폴란드 왕국이 들어선다. 

 폴란드는 프랑스 7월 혁명을 틈타 독립을 다시 선언하고 11월에 봉기하나 결국 러시아에 패퇴한다. 러시아는 살벌한 보복정책을 벌여 주모자를 처형, 유배시키고 영지와 재산을 몰수하고, 대학을 폐쇠한다. 이 때의 탄압으로 무려 1만명의 폴란드인이 해외로 망명한다. 1861년 다시 이 11월 봉기를 기념하는 데모가 바르샤바에서 열렸으나 러시아의 봉기로 5명이 사망한다. 이 사망에 대한 추모집회가 열렸으나 러시아는 당시 크림전쟁의 패배와 농노 해방으로 정신이 없는지라 이를 묵인한다. 하지만 결국 사태가 심각해지자 강경진압하고 계엄령을 선포한다. 

 폴란드는 1863년 붉은 색당 지도부가 임시국민 정부를 선언한다. 하지만 흰색당은 이를 경계하여 합류하지 않다 나중에 동참하게 된다. 양당은 결국 임시정부의 주도권을 두고 다투다 분열하고 이로 인해 임시정부는 실패한다. 이것의 실패 후 폴란드인들은 독립을 조기시도와 무장독립투쟁보다는 자신들의 경제,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는 추세로 돌아선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와 퀴리부인이 등장한 시기도 이 때다. 

 1860-1880년대 폴란드는 기본적으로 농업국이었지만 공업화가 진전한다. 그래서 노동운동도 활발해졌는데 1892년 우치에서 왕국 최초의 총파업이 이뤄졌다. 1893년 사회민주당이 결성되었고 당시의 중심활동가가 유명한 로자 룩셈부르크이다.

 폴란드의 독립 기회는 1차대전으로 찾아왔다. 러시아와 독일 모두 폴란드의 도움을 원했으나 폴란드는 양자 모두 신뢰하지 않았다. 결국 독일이 패배하자 1918년 임시정부가 들어서고 123년 만의 독립이 이뤄진다. 서부는 포즈난, 실롱스크 접경지대가 국경이 되었고 동부는 그단스크와 발트해로 이어지는 폴란드 회랑이 설치되어 동프로이센이 독일 본국과 분리되었다. 

 독립한지 얼마니지나 않아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전쟁이 일어난다. 피우수트스키는 주변국과 연방을 구성해 러시아에 대응하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연합국은 폴란드-러시아 국경을 커즌선으로 정하려 하였으나 피우수트스키가 이에 승복하지 않았다. 결국 1920년 리가 조약으로 전쟁이 끝나고 폴란드는 39만km2의 영토와 인구 2700만을 가진 나라로 완전 독립하게 된다. 피우수트스키는 독재자였으나 파시스트가 아닌 민족주의자였다. 오늘날에는 폴란드 건국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폴란드는 농업국이었지만 대공황 시절 실업률이 40%에 달할 정도로 경제가 흔들린다. 폴란드의 외교는 기본적으로 친 프랑스였지만 독일과 소련에 대해서는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 즉, 거리를 두고 양쪽 어디에도 힘을 실지 않았다. 1932년 피우수트스키가 사망하자 폴란드 외교상 유제프는 친독일 외교를 전개하고 독일,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한다. 독일의 유럽 침략을 염두해둔 무리한 요구를 모두 거절한다. 결국 1939년 9월 1일 그단스크를 친선방문한 독일 순양함 홀슈타인 호가 기습공격을 감행해 2차 대전이 발발한다. 독일은 폴란드의 전력의 2배이상으로 손쉽게 폴란드를 점령한다. 

 소련은 사전에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비밀의정서를 통해 독일과 폴란드 분할을 결정한다. 그래서 독일의 폴란드 점령후 폴란드는 리투아니아 지역을 소련에 빼앗기고 결국 독립 20년만에 다시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비운을 겪는다. 나치 독일은 폴란드는 단순 노동담당국으로 전락시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지식 계급이 박해의 대상이었고, 중등교육 이상의 기관은 폐쇠되었다. 점령 당시 폴란드의 유태인 인구는 전체의 9.7%인 350만에 달했다. 독일에 의해 폴란드에만 400개의 게토가 설치되고 하루 184kcal의 비인간적 배급을 실시해 그들을 영양실조로 사망하게 하였다. 무려 50만 이상이 게토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련은 점령 후 무려 1백만 이상의 폴란드 인을 시베리아 등지로 강제 이송하였다.

 1944년 8월 1일 독일에 대한 바르샤바 봉기가 일어난다. 이는 바르샤바를 소련이 들어오기 이전에 해방해 소련으로부터 독자적인 입장에서 그들을 맞이하고자 하는 계획이었다. 2달간의 봉기로 20만이 사상하였고 결국 독일이 승리한다. 여기엔 사전에 소련과의 협의가 부족하였고 애초에 반소련입장이었기에 소련이 비협조적이었으며 영미도 방관한 측면이 있었다. 전투의 장기화로 국내군에 대한 시민의 비판이 거셌고, 망명정부에 대한 여론도 악화한다.

 1945년 얄타회담에서 폴란드 문제는 연합국의 가장 큰 이슈였다. 동부국경은 과거의 커즌선을 따른다는데 이견이 없었지만 서쪽국경이 문제였다. 얄타회담 이후 소련은 자신을 적대하는 폴란드 내의 모든 세력과 조직을 탄압한다. 1946년 국민투표가 소련의 주도하에 이뤄졌는데 상원의 폐지와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농지개혁, 오데르-나이세르 강을 서부국경으로 할지에 대한 투표였다. 모두 대찬성으로 나와서 조치가 취해졌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당시 투표결과 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폴란드의 영토는 러시아의 입김에 의해 동부는 러시아 쪽에 상당히 상실하고 서쪽으로 독일을 잠식하는 형태로 구성된다. 즉, 나라전체가 역사상 처음으로 서부로 크게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이후 1978년 폴란드의 요한 바오로 2세가 무려 455년만의 이탈리아 지역 이외의 추기경이 교황이 되었다. 폴란드는 이렇다 동구권의 일원으로 바르샤바 조약 기구에 코메콘에 기압힌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동구권이 경제적으로 흔들리며 변화가 일어난다. 1980년대에 당국은 갑작스럽게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식육의 가격을 인상하였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이런 전반적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파업과 쟁의가 증가하였고 1989년 노동운동가 바웬사가 대통령이 된다. 

 폴란드는 이렇게 반세기만에 권위주의적 사회주의 정부에서 벗어났지만 현재 자유와 역행하고 있다. 현재의 폴란드는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약화하고, 언론의 독립성이 약하며, 이민과 난민의 수용에 소극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국와 아일랜드를 포함한 유럽 연합의 선진국가에 많은 노동력을 파견하고 있어 그들의 송금액이 나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자국의 이주 노동자가 많은 만큼 자국의 노동자가 그 지역에서 피해를 입고 차별받는 것에 대해서는 난리를 치면서 폴란드 자국에 들어온 우크라이나 및 다른 동구권과 중동지역의 노동자에 대한 차별에서는 눈을 감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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