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 노년내과 의사가 알려주는 감속노화 실천법
정희원 지음 / 한빛라이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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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수명 한계는 120세 정도로 추정된다. 지난 100년간 꾸준한 평균수명의 향상에도 최고령자가 이것을 넘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나이 근처까지 사는 사람의 수가 꾸준히 늘고 있을 뿐이다. 한국도 장수국가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소득이 올라간 만큼 노인이 오래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사는 것은 모두의 소망이 되었다. 책은 바로 이 천천히 건강하게 늙어 죽음으로 이어지는 쇠퇴와 의존, 고통의 시간을 짧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1. 노화란

 먼저 노쇠지수란게 있다. 이는 질병유무, 신체기능, 인지기능, 우울감 등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는 요소를 측정해 몸의 고장유무를 파악하는 것이다. 대중 100개의 측정 요소 중 10개가 문제가 있다면 노쇠지수가 0.1이 된다. 상당히 진행된 노쇠지수는 0.25정도다. 생물학적 큰 변화 시점은 34세, 60세, 78세에 찾아오는데 바로 78세가 노쇠지수 0.25에 해당한다. 

 노쇠지수가 0.15이하면 건강하고 노화의 징후가 없다고 본다. 0.15-0.25면 넓은 의미의 노쇠에 해당하고 허리가 굽고 걷는 속도가 늦어진다. 0.25이상이면 상당히 진행된 노쇠로 집안일이나 식사 준비등이 어려워 자립을 못한다. 

 워렌 샌더슨 등은 건강수명의 증가와 사회구조의 변화로 기대 여명이 15년 남은 시점을 노인으로 본다. 1991년 기대여명 15년 시점은 65세고, 2021년은 72세, 2030년은 77세로 예상된다.

 노인의 정의는 유전자와 환경이 시간의 흐름과 상호작용하여 세포, 조직, 기관, 개체에 일으키는 구조와 기능의 변화다. 대개 근력과 신체기능이 정점에 달하는 30세 이후부터 노화가 시작된다고 본

다.

 노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인정받기 위한 핵심 특징 조건은 3가지다. 먼저 정상적인 노화과정에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실험적으로 활성화하면 노화가 가속화되야 하며 역으로 비활성화하면 노화가 지연되거나 건강수명이 증가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을 유전적 불안정성, 텔로미어의 길이 감소, 미토콘드리아 기능 이상, 세포노화, 줄기세포고갈, 세포내 통신 변화 등이다. 

 이 노화는 개인마다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을 생물학적 나이라고 한다. 생물학적 나이 측정법은 후성유전학 나이로 DNA의 분자적 변화를 이용해 측정한다. 유전자를 변하지 않지만 환경에 따라 유전자에 붙은 메틸기가 생겨나는데 이것이 후성유전학 표지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이것 외에도 얼굴사진, 흉부엑스레이, 뇌MRI등도 생물학적 나이 측정의 방법이다. 

 7만 8천의 캐나다 인구 대상 연구에 따르면 흡연, 신체활동, 음주, 식사의 4가지 요인에 따라 20세 기대여명에서 추정해보면 남자의 경우 16.8년 여자의 경우 18.9년의 수명차이를 보였다.최근 미국 성인 72만 대상 연구에서는 낮은 신체활동, 마약중독, 흡연, 스트레스, 과음, 나쁜 식사, 나쁜 위생, 부족한 사회관계의 8가지 요소는 40세를 기점으로 남성 24년, 여성 24년의 수명차를 보이는 요인이었다. 

 대사과정에 따라 인생은 3시기로 구분된다.

 성장발달의 청소년기로 대개 30대 초반까지다. 성장과 생식으로 기본보다 많은 외부 에너지가 필요하다. 다음은 30대 중반에서 초기 노년기까지다. 이 시기는 호르몬이 줄고 기초대사량이 떨어지나 식습관은 그대로여서 과잉대사로 인한 비만이 오기 쉽다. 이 시기의 대사과잉의 총합이 곧 노화 가속압력이 된다. 노화과학자들은 대사적 과잉의 총합을 견디느라 활성화한 인슐린이 결국 노화 정도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은 초기 노년기 이후다. 만성질환이 축적하고, 소화기능과 관절기능이 모두 떨어지고 만성염증에 시달린다. 근육은 충분한 혈중 아미노산 수치와 적절한 운동이 있어도 근육을 잘 합성하지 못하는 동화저항에 시달린다. 그래서 이 시기는 충분한 운동과 단백질공급, 신체, 인지, 사회적 활동이다. 


2. 저속노화 식단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살면서 먹은 모든 것이 분자생물학적 매커니즘을 통해 혈관의 노화정도나 인슐린저항성 정도, 만성염증의 정도를 결정한다. 과당한 포함한 단순당은 탄수화물을 에너지로 쓰기 위한 분해과정인 해당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몸의 대사율이 저하되고 지방저장을 촉진한다. 그리고 술은 분해과정에서 몸에 염증을 생성한다. 그리고 단순당과 지방성격을 갖고 있어 대사증후군을 악화시킨다. 술은 근육생성을 방해하는 동화저항도 일으킨다. 

 저자는 3가지 식단을 제시한다. 이화적 식단, 체성분 전환 식단, 동화적 식단이다. 이화적 식단은 체중과 지방을 줄이는 식단으로 저탄수화물, 고단백질, 적정 지방 섭취 식단이다. 체성분 전환 식단은 체지방은 낮추고 근육을 늘리는 소위 마른 비만용이다. 탄단지를 4:3:3으로 섭취하고 고단백 식사를 하되 혈당변화를 최소화한다. 동화적 식단은 체중과 근육을 모두 늘리는 소위 마른 사람을 위한 것으로 고탄수, 고단백, 적정 지방섭취다.  

 저자는 3차원 절식을 제안한다. 1단계는 단순당과 정제곡물의 최소화다. 인간은 탄수화물을 3단계로 처리한다. 근육과 간에 글리코겐 저장이다. 그리고 지방에 저장하며 마지막은 간 이외의 지방세포나 지방물방울에 저장하는 것이다. 근육의 저장은 느리고 총량도 적다. 과거 단순당이 적은 수렵시대는 이 정도로 괜찮았으나 최근의 음식을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인슐린이 분비되고 이것이 급격히 혈당강하를 시키나 그래서 허기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더 먹게되는데 이것이 반복되어 인슐린저항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많이 먹어 생긴 지방세포는 염증물질을 분비해 인슐린 저항성을 더욱 높인다. 

 인슐린은 물과 소금을 붙잡아 오후에 몸을 붓게 한다. 자려고 누우면 부종이 몸위로 올라가 코골이의 원인이 되고 그 결과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 수면의 질 부족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이는 다시 인슐린 저항성을 높인다. 

 3차원 절식의 2단계는 먹는 시간의 제한이다. 소위 간헐적 단식이다. 금식 기간이 길어지면 자가 포식 기전이 활성화해 세포 내의 잘못된 단백질을 제거해 에너지로 삼는다. 저자는 16새간 금식, 8시간 식사를 추천한다. 저녁 식사 후 다음 날 점심까지 금식하는 것으로 아침엔 물과 열량이 없는 차만 마신다. 다만 MCT오일이 지방을 없애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체중과 근육량 증가가 필요한 마른 사람, 그리고 노년기의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3차원 절식의 3단계는 몸에 맞는 열량 섭취다. 열량은 기초 대사량을 계산한 후 자신의 활동량을 여기에 추가한다. 이렇게 계산한 필요 열량에서 20%정도를 덜어내고 식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먹느냐도 중요하다. 저자는 MIND 식단을 추천한다. 이는 녹색 잎 채소는 주당 6회 이상, 녹색 잎 외 채소는 매일 1회 이상, 베리류는 주당 2회 이상, 견과류는 주당 5회 이상, 올리브 오일은 기름 요리에 사용하고, 통곡물은 매일 3회분 이상, 생선류는 주 1회 이상, 콩류는 주 4회 이상, 가금류는 주 2회 이상이다. 이 식단은 한식의 식단과 상당히 유사하다. 한국은 스트레스가 높고, 운동량이 적고, 수면시간도 짧지만 그럼에도 수명이 높은 것은 식단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3. 그외의 건강관리하기

 우리나라는 주치의 제도가 없고 세분화한 진료과가 있다. 그렇다 보니 과마다 다른 과에서 처방한 약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서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저자는 이 경우 먹는 약의 목록을 기억하고, 약으로 새로운 증상을 다스리기보다는 생활습관을 개선하며, 약 복용후 인지, 신체기능이 떨어지면 약의 부작용을 의심하고, 복약지도를 잘 받고, 국민건강보험 공단이 하는 다제약물 관리사업에 참여하고, 노쇠하지 않는 몸을 만들 것을 권한다. 

 그리고 운동이 중요하다. 가장 기본은 걷기다. 수렵시절 인간은 하루 15-20km를 걷거나 뛰었다. 하지만 현대 한국인의 평균 하루 걸음은 5000보다. 고작 4km에 불과하다. 미국 벤터빌트 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하루 걸음이 1천보 증가할 때마다 고혈압, 위식도 역류, 우울증, 비만, 수면무호흡의 위험이 10%씩 감소했다. 하지만 무조건 많이 걷는게 능사는 아니다. 걷기의 효과는 8천보에서 1만보까지 위험을 완화하지만 그 이상은 완화정도가 매우 낮다. 

 이외에도 잘 앉고, 잘 걷는 자세도 중요하다. 척추에 무리가 가는 자세는 몸의 이동능력을 상실시켜 삶의 질은 물론 노화를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30세 이후로 매년 근육은 1% 정도 감소하지만 와병하면 하루에 1%씩 근육이 줄어든다. 

 그래서 근육도 무척 중요하다. 저자는 코어와 둔근을 강조하는데 그것에 관련되는 운동법도 상세하게 제시한다. 결국 움직이는게 중요한데 매일 7-8천보를 걷고, 중고강도 운동을 주2-3회 실천하며, 주 2회 이상 전신근력운동을 하고, 코어둔근운동은 매일 10-15분 실시하고, 매일 태극권, 요가, 기공운동을 10-20분하고, 스트레칭을 매일 10-20분 하는 것을 추천한다.

 수면도 중요하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스트레스 호로몬이 증가하고 판단력, 집중력이 감소하며, 식욕이 증가하고, 혈당변동성이 악화되어 인슐린 분비가 증가한다. 이것은 낮시간 다리 부종이 되고 잘때 코골이와 잦은 배뇨의 원인이 되어 수면의 질을 더욱 떨어뜨린다. 이게 수면의 악순환이다. 수면은 글림프시스템이 작동되 자는동안 치매의 원이이 되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한다. 그리고 렘수면기간동안 낮동안의 주요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한다. 그래서 수면시간은 중요하다. 6시간 수면은 7시간 수면보다 치매진단가능성이 무려 30%나 높다. 

 치매를 막기 위해서는 인지능력을 높여 놓는 것이 중요하다. 평생 다양한 방법으로 몸과 머리를 사용하여 인지기능을 향상시키면 추후 상당한 아밀로이드 병변의 폭풍이 와도 어느 정도 버틸수 있다. 평소 근육량과 체력을 향상시켜놓은 자가 암에 잘 버티는 것과 유사하다. 댄스는 이런면에서 매우 좋다. 인지, 사회, 신체 기능을 모두 향상하기 때문이다.

 건강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서 질병이 완치된 건강한 수명 1년은 5000만원 정도의 돈에 해당한다. 이는 그 사람이 벌수 있는 평균적인 돈이나 1년 수명 연장에 사용하기를 희망하는 돈 정도를 반영한 수치다. 그것이 20년이면 무려 10억원이다. 그 만큼 건강이 노년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건강은 유전자가 20-30%이고 나머지는 환경과 운에 달렸다. 그만큼 개인의 저속노화 실천이 중요하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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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개정판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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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는 제목이 멋지고 현대적인 만큼, 최근 책이라 생각했지만 개정을 거듭하며 오래 살아 남은 책이다. 작가는 최순우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분이다. 그런데 이분이 사망한 것이 무려 30년전인 1984년이고 책이 나온 시점은 1994년이다. 추측해보면, 작가가 돌아가시고 그 분이 평소 여기저기 써 놓은 글을 후대들이 엮어 책으로 발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술은 변화무쌍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눈에는 오래도록 공감이 가기도 하는 것 같다. 많은 글이 84년 이전의 것일텐데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으니 말이다.

 책은 꽤 두껍고 한 사람이 쓴 것이지만 모음 글이기에 체계적이진 않다. 다만 도자기, 회화, 공예 등으로 묶고 시기 순으로 제시하여 의도치 않은 체계와 흐름을 맛볼 수 있다. 인상 깊었던 부분만 정리해본다.

 탈놀이가 끝나면 원래 그 해에 지었던 탈들은 모두 불에 태웠다고 한다. 옛 사람들의 눈에는 신이 붙었음직한 탈이 모두 타는게 더 마음이 개운했을 것이란게 저자 생각이다. 안동하회마을은 고려 중엽까지는 허씨문중, 그 후에는 안씨, 조선초에는 유씨 문중이 살았ㄷ다. 그 중 허씨문중이 하회탈의 유래와 관련한다. 허씨문중의 허도령은 꿈속에서 하회탈을 만들라는 신탁을 받았다. 그는 목욕재계하고 금줄을 두른 후 작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오랜 작업 기간에 그를 사모하던 처자가 참지 못하고 그를 엿보고 만다. 부정이 탄 허도령은 작업 중 피를 토하며 죽는다. 그는 마지막 탈인 이매탈을 만들 고 있었는데 턱부분을 완성하지 못한지라 하회탈 중 이매탈만이 턱이 없다. 

 하회탈은 모두 12개다. 각씨, 중, 초랭이, 양반, 선비, 이매, 부네, 백정, 할미. 떠달이. 별채, 총각이다. 떡달이, 별채, 총각 3개탈은 일제시대 일본에 반출된 긋 하고 현재 남은 것은 양반과 각시탈이다. 

 한국의 전통 난방 방식은 구들이다. 이중 온돌은 아궁이에서 뗀 불이 일단 하층 구들장을 직접 가열하고 그 불기운이 세분되어서 다시 상층 구들 고래를 간접적으로 구석구석 덥혀 방바닥이 고르게 데워지는 것이다. 이것을 더 합리화한 것이 탕방이다. 탕방은 아궁이에서 뗀 불이 우선 크고 둥근 하층 구들장에 받쳐서 팔방으로 분산되어 상층고래로 올라간다. 상층고래는 중앙부를 기점으로 방사선상으로 구축된 구들 고래를 통하면서 방을 덥히고 이 열은 다시 방 네 벽 변두리를 일주해서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이러한 이중구들이나 탕방구들의 장점은 혼구들처럼 아래목만 필요이상으로 뜨거운 것이 아니라 방바닥 전체를 일정한 온도로 고르게 난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층 구들장이 오래도록 열을 갖고 있기에 좀처럼 식지 않는 다는 것이다. 

 보통 민가의 구들은 사오년에 한 번씩은 장판을 교체한다. 장판은 벽을 다시 하고 새장판을 한다. 새 벽을 바르고 이것이 마르면 피지나 백지로 초배를 한 다음 튼튼한 대접을 엎어놓고 방바닥을 고루 문질러 미끈하게 다듬는다. 그 위에 다시 창호지를 두어겹 발라서 바탕을 희게 한 다음 들기름을 먹인 두터운 유삼지 각장을 보기 좋게 붙이는 것이다. 이것들이 과거 한국의 집에서 볼 수 있었떤 노란 장판이다. 이 장판 위에 큰댐을 하고 다시 이것이 마른 다음 마른 걸레질을 수없이 하면 윤이나게 된다. 

 회화부분에서는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의 작품과 설명이 순서대로 나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정선이다. 그가 그린 진경산수화는 매우 인상적이다. 어떤 것들은 산세화 수풀이 부드럽게 나오면서도 어떤 것들은 매우 날카롭고 인상적이다. 진경산수화는 역사시간에 마치 실제 경치를 그린 것처럼 나오지만 사실은 화가가 한국의 산세를 중시하되 실제처럼 마음의 것을 그린 것이다. 서양식으로 따지면 인상주의랄까. 이 세 사람은 시대를 거듭하며 일종의 시대적 흐름을 보여준다. 그림은 점차 부드러워지는 경향을 보이고 무엇보다 소재의 차이가 있다. 정선은 그래도 조선 사대부가 그려야 할 것에 얽매여 있다면 김홍도에 이어 신윤복으로 갈 수록 그 경계는 거의 사라진다. 신윤복은 남여간의 사랑과 바람피는 장면, 그리고 여인들을 많이 그렸다.

 도자기의 발전도 눈에 띈다. 삼국시대의 토우와 토기 수준이 고려시대에 이르러 찬란한 청자로 피어난다. 고려 중엽에는 청자의 색은 매우 밝았고, 초기엔 백토를 발라 그림을 그리다 독자적 상감기법이 등장한다. 고려의 청자는 후기로 갈수록 색이 탁해지다 분청사기로 탈바꿈한다. 분청사기는 글자 그대로 청자에 흰 분을 칠해 푸른스름한 흰색을 띄는 자기다. 그러던 것이 조선의 백자로 이어지며 희고희던 백자가 푸른 그림을 갖게 되는 청화백자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의 도자기는 중국과 일본의 것들과 다르게 한 가지 색을 고집하고 절제하여 화려한 그림과 색채를 갖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만의 미다.

 책을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책은 초기엔 흑백이었던 것 같은데 현대인 지금은 모든 작품이 크고 컬러다. 저자는 아무래도 글을 1970년대에 주로 썼을 만큼 당시 한국이 가난하고 인지도가 낮은 나라라 가진 문화적 풍모와 수준에 비해 중일만큼 국제적 인정을 받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가진 것이 훌륭한 것을 알기에 절대 주눅들어 있지 않다. 저자가 오래도록 살아 문화적으로 융성하고 자부심이 넘치는 지금의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었다는 생각이 좀 든다. 물론 그가 근무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파괴되고 거듭나 새로지어진 모습도 놀라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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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책임 - 한홍구 역사논설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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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한국 정치가 매우 암울한 시절에 나온 책이다. 10년 정도 전으로 당시 대통령은 탄핵 당한 박근혜였고,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고, 통진당이 해산되었으며 국정 농단 사건은 아직 일어나기 전의 상황이다. 저자 한홍구는 역사가로 세월호 사건과 통진당 해산을 바라보며 한국 보수에 대한 논의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가 보기에 친일반공세력으로 시작하여 독재정권과 결탁한 한국 보수의 탄생은 소위 세월호 사건과 통진당 해산 사건의 원인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는 이런 시선으로 한국 보수가 과거 친일세력에서 한국 전쟁을 이용해 반공세력으로 탈바꿈하고 이후 독재정권과 결탁하여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해 왔는지 조목조목 서술한다. 그리고 이들이 매우 무책임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보수에겐 뼈아프겠지만 작금의 현실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보수정권이 배출한 대통령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박근혜-윤석렬이다. 김영삼을 제외한다면 이들에겐 모두 공통점이 있다. (사실 김영삼은 오랜 야권인사로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보수쪽에 붙었기에 정통 보수 세력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여튼 이들의 공통점은 범법자라는 것이다. 노태우 이전은 독재자 및 그 협력자로 헌정 질서를 부정선거, 쿠데타 등으로 파괴했고 노태우 이후로는 모두 징역 10년 이상의 중범죄를 저질렀다. 보수 세력에서 이런 대통령들만이 배출된다는 것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적어도 그 정당에 민주주의를 중시하고 수호하려는 철학과 시스템이 부재하다고 봐야 한다. 책에 나온 그들의 역사로 들어가 보자.


1. 한국 전쟁

 광복 후 반민특위가 구성되어 친일파를 때려 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선택을 받은 이승만은 이런 친일 세력을 자신의 정권 파트너로 선택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어떤 정당성도 없고 지탄을 받는 상황이었지만 한국전쟁이 벌어지며 상황은 급변한다. 이들은 이 전쟁을 이용해 적극적인 반공세력으로 변모하면서 자신들의 신분을 세탁할 기회로 사용한다. 민족반역자에서 민족 영웅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개전하자 국군은 형편없이 밀리면서도 거짓 승전보를 전한다. 그리고 이승만은 무려 대구까지 피신하면서도 마치 자신은 서울에 있는 것 같은 방송을 녹음한다. 상당수 시민들이 이것을 믿고 피란하지 않았다 서울에 묶이게 되다. 당시 서울시민은 무려 100만이었다. 국군은 역사교과서에도 나오는 것처럼 자신들의 주요 인사들이 피신하자 사람들이 건너고 있음에도 한강 인도교를 폭파한다. 수백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승만 정권은 비난일 일자 명령을 따랐을 뿐인 대령 최창식을 처형한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수복까지 2주가 걸렸다. 핵심 친북세력은 모두 서울을 뜨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도망갔던 도강파는 어쩔수 없이 남았던 잔류파를 부역자로 몰아 처벌한다. 이런 부역자 처벌은 일부 극우세력에 좋은 기회였다. 살인, 고문, 재산약탈, 부녀자 겁탈이 자행되었다. 한국 경찰사 제 2권에 따르면 인민군 치하 3개월 간 부역자 검거 15만 3825명, 자수 39만 7090명으로 총 55만이 부역자 처지가 되었다. 이들과 그 가족은 이후 두고두고 연좌제의 굴레에서 고통받게 된다. 부역자 처벌에 앞장선 것은 친일민족반역자에서 애국 반공투사로 변신한 김창룡, 원용덕, 노덕술 같은 이들이었다.

 집권층은 한국 전쟁에서 적들이 물러간 후 부역자 처벌에만 열을 올렸지 정작 전쟁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그의 큰 아들을 한국 전쟁에 참전시켰다 잃었다. 그 아들의 무덤은 북한에 있는데 수만의 중국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는데 그 아들만 귀환시킬 수 없단 이유였다. 또한 미국장성의 아들 중 한국전에 참전한 자는 145명으로 이들 중 무려 35명이 전사했다. 어떤 특권도 없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전쟁 당시 대한민국 장관이나 국회의원, 고위 장성의 참전하여 군인으로 아들이 사망했다는 이렇다할 자료는 없다. 


2. 간첩 사건

 독재정권은 정당성이 없기에 태생적으로 취약하며 자주 흔들린다. 그 때마다 전가의 보도로 휘두른 것이 반공몰이였고 그 수단이 간첩 조작 사건이었다. 한국 전쟁 이후 방첩당국이 적발한 간첩은 무려 4500명이다. 

 한국전쟁 이후 실제 대남 간첩은 많았다. 북한의 직파 간첩은 1950년대 90.9%, 1960년대 75.9%, 1970년대 42.1%, 1980년대 27.9%로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지만 전쟁 직후엔 상당히 많았다. 1970년 이후에는 간첩의 수는 상당히 줄었는데 여기엔 이유가 있다. 1950년대만 해도 국경은 허술했고, 남북한의 차이가 그다지 심하지 않고 지역마다 피란민과 다른 지역의 사람이 섞여 외부인이 쉽사리 의심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년대가 달라지면 상황은 상당히 달라진다. 남북한의 차이가 책으로 배우기 어려울 만큼 커졌고, 지역사회는 안정되어 외부인은 쉽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간첩은 교육엔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이렇게 쉽게 적발이 되며 그 효율성은 떨어져갔다. 북한이 간첩을 줄이게 된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남한의 상황은 반대였다. 1950-60년대 대량이 남파간첩이 들어서며 방첩조직은 크게 비대화하였다. 이들은 조직의 유지를 위해 간첩이 필요했으며 정권은 안정을 위해 간첩이 필요했다. 양쪽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주요 시국마다 간첩사건은 조작된다. 1950-60년대의 간첩은 진짜 간첩이었던 반면 1970-80년대가 되자 간첩은 재일동포나 납북어부, 월북자 가족등의 조작하기 쉬운 사회적 약자가 간첩이 된다. 1990년대에는 통일운동에 관심이 많은 운동권 출신 그리고 이후에는 탈북자가 간첩 조작의 대상이 된다. 

 간첩조작 사건에는 검사와 경찰, 사법부의 협조가 잇따랐다. 일반형사사건은 경찰10일 검찰은 20일 수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간첩사건에는 내란죄나 외환죄에도 없는 특별형사소송규정이 국보법에 적용되어 경찰이나 안기부 20일 검찰30-50일 합법 구금이 가능했고 이 기간 고문이 자행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상당기간 구금하고 실제로는 서류를 합법적으로 조작했다. 

 또한 비밀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부분의 간첩은 누구나 아는 사회적 사안을 누설한 거승로 기밀누설죄를 적용받았는데 1997년에서야 헌재가 비공지성과 실질비성을 갖춰야 한다고 엄격히 규정하기 전까지 비밀을 이현령비현령수준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4차선이라더라 짜장면이 싸고 맛있다라는 말까지 기밀이었다. 

 고문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마치 중세의 마녀사냥처럼 간첩사건에서는 자백이 증거의 왕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간첩사건은 재일동포 관련 경우 외국과 관련이 있었는데 이 경우 영사의 증명이 또 다른 증거의 왕이었다. 영사는 형사 업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음에도 희안하게 그러했다. 당시의 법관들은 이 모든 정황을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지만 그들 역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증거미비에도 많은 억울한 이들을 간첩으로 판결했다.


3. 진보적인 제헌헌법

 남한의 제헌헌법은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매우 진보적이다. 제헌헌법 18조는 노동자의 권리규정이다. 기존의 노동 3법외에도 4번째 권리로 이익 균점의 권리를 보장했다. 이는 기업 운영이 이득을 기업인 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나눠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렇게 진보적인 제헌헌법은 당시 좌파나 중도층이 만든 것이 아닌 이승만을 비롯한 보수 우경세력이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것이다. 제헌헌법 84조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저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 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한다. 경제적 자유는 위의 이념실현을 위해 제한되는 것이었다. 제헌헌법 85조는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을 국유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87조는 중요하나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서을 가진 기업은 공영이나 국유로 한다는 규정이다. 이는 사실상 국가사회주의를 표방한 것이다.

 여기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있다. 일단 광복 당시 한반도 내의 사업시설을 포함한 자본의 94%가 일제가 남긴 적산이었다. 이를 특정 집단이나 기업에 불하하는 것은 민중의 적대감을 유발하는 것이었고 마땅히 조선 사람 전체의 소유가 되어야 했다. 다음은 당시만 해도 한국이 농업국가로 자본이나 기득계층이 이렇다할 산업 기반이 없었기에 대부분의 산업이 국유화되어야 그들이 마땅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북한의 상황이다. 북한은 남한보다 먼저 더 강한 토기개혁에 앞장섰다. 그렇기에 남한에서도 지주 계층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체제유지를 위해 강제 토지수용을 통한 토지개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4. 전시작전권

 한국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넘었고 한국의 국력과 국방력이 세계적 수준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한국의 전시작전권은 미군에 있다. 그래서 수도방위사령부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대가 한미연합사령부의 통제를 받는다. 

 한국이 작전권의 통제를 받은 것은 광복군 때부터다. 당시 광복군은 중국에서 활동하며 중국의 제약과 지원을 받았다. 중국정부는 이른 바 한국광복군 9개 행동준승을 제정하여 광복군에 중국군사위원회의 통할, 지위를 받으며 임시정부가 아닌 중국 최고 통수부의 유일한 군령을 받아야 한다고 통보한다. 임시정부는 궁색한 상황에 이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으나 강한 내부 반발에 부딪힌다. 그리고 3년에 걸친 교섭 끝에 중국 정부는 1944년 9월 마침내 9개 준승 폐기를 결정한다.

 전작권 이양 논의는 베트남 전쟁에서도 있었다. 당시 파월 사령관이었던 채명신은 베트남 전쟁이 패배할 전쟁이란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한국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미국의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전 지휘권을 강하게 요구한다. 당시 한국군 이외의 다른 우방국이 작전권이 있었기에 한국이 미국의 용병부대라고 국제적 비난을 받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남베트남군조자 작전권이 있었기에 이런 요구가 관철될 수 있었다. 

 주월군이 작전권을 획득하자 한국군도 전작권을 요구한다. 특히 한국의 전작권은 한국 전쟁 당시 국회비준 조차 없이 이승만의 편지 한장으로 이양된 상태였기에 법적 문제도 있었다. 1976년 미국의 카터가 당선되자 주한미군 철수가 가시화 한다. 중공이 유엔 상임이사국이 되자 평화분위기가 조성되며 미군은 한국에 더 이상 유엔사령부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대신 설치된 것이 한미연합사령부다. 

 전시작전권은 미 오마바 정부 때 양도받는 것이 시대적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이를 포기했고, 이제는 미중 갈등이 장기화하며 시대적으로 양도받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하고 말았다. 이번 윤석렬의 친위 쿠데타에서 미국은 자신들에게 사전통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상한 상황이다. 비록 불법적 반란이긴 하나 이것이 다른 나라에 미리 보고하고 간섭까지 당할 상황일까. 미국이 이렇게 대놓고 짜증을 낼 수 있는 이유는 전작권때문이다. 한국군의 움직임은 전작권이 미국에 있기에 그들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한국보수는 박근혜 탄핵 때 결국 그 강을 건너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탄핵 동조세력과 탄핵 반대 세력 중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탄핵 반대세력이었다. 이 때 한국보수는 체질개선을 하지 못했고 그것이 이어져 지금의 비극으로 이어졌단 생각이다 이번에도 대통령 탄핵을 두고 보수는 갈라질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보수 지지층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이번엔 올바른 보수 세력을 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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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넥서스란 용어는 오래 전에 한국 사회를 강타한 게임스타크래프트 프로토스 종족의 본부기지 이름으로 처음 접했다. 그 후로 이 단어를 처음 보는 것 같다. 다른 종족인 저그는 생물학적 생산, 인간인 테란은 공장에서 기계적 생산이나 훈련을 하여 유닛을 공급한다. 하지만 프로토스는 개념자체가 다른데 그들은 본성에서 종족을 소환하는게 유닛 공급의 방법이다. 그래서 기지 이름이 연결점을 뜻하는 넥서스다. 

 유발하라리는 많은 책을 펴냈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다. 사람들은 그의 대표작은 사피엔스로 생각하지만 난 호모데우스로 본다. 사피엔스는 인류문명사를 독특한 시각으로 잘 조합한 책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급의 파급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사피엔스는 인간의 문명사의 원동력을 종교, 민족신화, 화폐, 민주주의, 전체주의 등의 허구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능력으로 보았다. 이런 허구를 창안하고 같이 믿는 힘이 있었기에, 가족 혈연의 소규모 집단으 넘어서 거대한 규모의 결속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협력과 응집으로 문명과 기술의 발달이 이뤄질 수 있었고 그것이 현대 국가로 뭉쳐있는 지금의 우리 모습이다.

 호모데우스는 그를 넘어서 막 도래한 4차산업혁명기술의 시작을 보며 인간의 미래에 대해 우려한 책이다. 역시 허구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문명사를 개관하면서도 그는 인간의 미래를 우려한다. 곧 자신들이 과거라면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할 만큼 강한 힘을 4차산업혁명으로 인해 인간이 획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허구를 통한 협력성은 강하지만 인간은 협력의 대상을 자신들이 만든 허구와 생물학적 근연성으로 쉽게 제한한다. 그래서 자신의 힘이 강해질 경우 그 파괴력을 협력을 통해 잘 제어하지 못하는데 그런 인간의 파괴잠재성이 더욱 높이기에 그의 걱정이 커진 듯 하다. 그리고 같은 논의가 좀 더 정리되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으로 이어진다. 여기선 해결방안이 나온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것이 책 '넥서스'다. 넥서스는 언급한 것처럼 연결점을 뜻한다. 하라리의 이전 책들과 논의가 이어지는데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를 전파되기 위해서 그것들을 전달할 연결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한 때는 구어였고, 필사 문자였으며, 인쇄술을 통한 매체였고, 정보통신기술이 되었으며 곧 새로운 차원의 인공지능 컴퓨터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리고 이런 연결점의 변화에 따라 인류문명은 그 확장이 가능할 수 있었으며 파괴력 역시 강해질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 책의 골자는 이런 인류문명사를 연결점과 그 흐름의 관점에서 다시 개관한 후, 미래에 등장할 수단에 대한 우려와 걱정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된다.  

 인간은 네트워크의 구축으로 막대한 힘을 얻을 수 있으나 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 때문에 힘을 지혜롭게 사용하기 어렵다. 그리고 정보는 이 네트워크를 결속시키는 접착제다. 정보는 사실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신, 마법, 이데올로기 등의 허구, 환상, 집단 망상은 모두 정보이며 이것을 연결점을 통해 퍼뜨려 인간의 집단 네트워크가 구축, 유지된다. 물론 인간 개개인은 진실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규모 인간 협력 네트워크는 반드시 환상에 의존한다. 첨단을 추구하는 과학자나 수학자, 그리고 사회의 비리를 까발리는 언론인등도 국가, 사회에 소속되고 그 체제를 부정하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순진한 정보관을 우려한다. 순진한 정보관이란 정보의 양이 충분히 많으면 결국 진실로 이어지고 지신이 다시 힘과 지혜로 이어진다는 생각이다. 이런 순진한 정보관은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을 정당화한다. 순진한 정보관은 정보를 현실을 재현하려는 시도로 본다. 물론 순진한 정보관도 오정보와 허위정보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정보가 충분히 많아지면 자연히 인간이 합리적이기에 이런 것들이 구축되어 진실에 도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보는 진실과 딱히 관련이 없다. 정보가 역사상 한 일은 실존한느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며 별개의 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연인이든 제국이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즉, 정보의 결정적인 특징은 재현이 아니라 연결이 된다. 정보란 서로 다른 지점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무엇이라는개 사실 더 정확한 개념일 것이다. 따라서 정보는 어떤 무언가를 알릴 필요가 없다. 실제 인간의 정보는 그런 역할을 한다. 별자리 운세라는 정보는 별에 대한 어떤 객관적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그저 연인이나 운세를 요하는 사람들을 묶을 뿐이다. 그리고 군가라는 정보 역시 군에 대한 진실을 알리지 않고 그저 군의 결속력이란걸 강화하여 네트워크의 힘을 강하게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국가나 종교의 상징 음악은 그것의 본질을 전혀 알리지 않으며 그 허구에 의해 결속된 사람들을 더욱 강하게 연결할 뿐이다. 

 물론 정보는 어느 정도 진실을 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정보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연결기능이기에 결국 정확하지 않고 완전 허구인 정보라도 네트워크 연결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것이 종교의 경전이다. 그것들은 인간과 지구 및 우주의 기원, 이주, 감염병 등에 대해 현실을 거의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억의 인간을 연결한다. 


1. 인간의 과거 연결 수단-이야기

 약 7천년 정도 전에 호모사피엔스 무리는 협력하는 전례없는 능력을 취득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허구적 이야기라는 수단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현실을 적당히 반영하거나 전혀 반영하지 않는 이야기를 말하고, 믿고, 감동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적 지도자나 그를 따른 개인도 이야기로 연결된다. 지도자에 대한 정교한 이야기는 종교나 국가, 조직이 모두 갖고 있으며 그 구성원은 그런 이야기를 믿고 따르며 그와 연결된다. 브랜드도 특정 종류의 이야기다. 브랜드는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갖고 있으며 심지어 품질과 전혀 관련이 없기도 하다. 소비자들은 그것을 듣고 믿으면서 그 상품에 이끌린다. 그래서 이야기는 실제와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만 해도 지난 대선에서 각 후보에게 부여된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그 중 한 쪽을 믿으며 그 후보에 이끌려 결정을 했다. 하지만 지금시점에 그 이야기가 얼마나 호황된 거짓이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야기는 생물학적 유대관계의 지연확장수단이다. 이야기는 낯선 사람을 서로 가족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실제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예수를 모든 인류의 부모로 묘사하여 수십억의 사람들에게 유대감을 주어 연결한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서로를 형제자매로 부르며 공동의 가족 기억을 갖게 한다. 

 이런 이야기 이전엔 두 가지 현실이 존재했다. 하나는 객관적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주관적 현실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것을 넘어서 상호주관적 현실을 창조한다. 인간이 만든 신화, 법, 신, 화폐, 제도 같은 것들이 서로가 연결되어 믿는 상호주관적 현실이다. 상호주관적 현실은 상대방이 믿지 않으면 바로 깨진다. 중세 유럽의 독실한 기독교는 그 지역에서만 의미가 있는 상호주관적 현실이며 해당국가의 건국신화도 그 나라안에서만 의미가 있다. 화폐 역시 화폐가 통용되는 지역에서만 의미가 있다. 이처럼 상호주관적 현실은 서로에게 말하는 이야기 속에 존재하며 정보를 교환할 때 생겨난다. 

 이처럼 이야기는 가짜 기억을 심고 허구적 관계를 형성하고 그것이 창조한 상호주관적 현실은 창조하는 것을 통해 대규모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것은 힘의 균형을 바꾼다. 이런 이야기가 창조한 상호주관적 현실을 통해 인간은 본능적 혈연관계를 넘어서 대규모의 부족을 형성한다. 이런 부족네트워크는 전쟁, 기아 시 개인이 겪는 위험을 분산하고 최소화하여 적응도를 높이고, 기술이나 문화등도 빠르게 전파하게 한다. 

 이런 인간의 이야기는 또 다른 장점도 있다. 서로 대화를 통해 각 측이 믿는 이야기를 바꾸거나 쌍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분쟁을 피하고 평화를 지킬 수도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게 고려거란전쟁의 서희와 소손녕의 대담이다. 서희는 이야기를 교묘하게 비틀어 고려와 송에 대해 거란이 갖고 있던 이야기를 바꾸어내어 일시적 평화를 유지하고 고려가 대비할 시간을 벌어낼 수 있었다. 

 이야기는 대개 허구이나 허구이기에 갖는 큰 이점이 두 가지 있다. 우선 허구는 간단하게 만들 수 있지만 진실은 대체로 복잡하여 인간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진실은 고통, 불편한 경우가 많지만 허구는 편하게 짓기 나름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진실을 담은 이야기보단 허구를 담은 이야기에 더 쉽게 경도된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정치체제는 결국 허구에 기반한다. 하지만 어떤 체제는 자신들이 허구인 것을 알기에 그것을 인정하지만 어떤 체제는 그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양자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정치체제는 어느 정도 진실을 반영하고 그것에 맞게 수정해야 발전해나가며 나아갈 수있는데 허구를 인정하고 오류를 수정하고자 하는 쪽은 그것에 적합하다. 하지만 그런 오류가능성의 인정은 사회의 질서를 흐트리기도 한다. 때문에 인간의 정보 네트워크가 성공하려면 진실발견과 질서유지라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야한다. 그래서 인간 네트워크는 역사상 두 가지 기술을 개발했다. 하나는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정보처리이며 하나는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강력한 사회질서유지를 위한 정보활동이다. 

 두 과정은 자주 충돌한다. 실제 많은 과거 인간의 네트워크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혹은 권력자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진실을 은폐한다. 과거 교회는 진화론을 부정했다. 그것의 인정은 교회의 이야기 근간을 흔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정보네트워크의 역사는 진실로 향하는 승리의 진군이라기보다는 진실과 질서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줄타기에 가까웠으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2.인간의 과거 연결 수단-목록

 하지만 모든 네트워크는 이야기만으로 유지가 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항상 와전의 우려가 크고, 상호간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래서 네트워크가 클수록 그 유지를 위해서는 다른 연결수단인 목록이 필요하다. 이 목록은 정보의 저장, 수집, 처리를 위한 것이다. 목록의 문제점은 그것이인간 뇌와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 뇌는 이야기를 기억하기에 적합하다.

책 '나라는 착각'은 인간의 기억을 다룬다. 인간은 나를 구성하기 위해 기억이 필요한데 인간은 뇌의 용량한계로 사건을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건을 인과적으로 일부만 축약해 재구성한 것이 이야기다. 이는 놀라운 압축기억 수단으로 인간을 이야기를 잘 구성하고,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야기가 아닌 것은 관심도 끌지 못하며 잘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것이 목록의 문제점이다. 

 하지만 문서는 인간 기억의 한계를 돌파하여 상호주관적 현실을 더욱 길고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그리고 문서는 검색이라는 문제를 야기시킨다. 너무 많은 목록이 생성되다 보니 이것은 찾기 위해 검색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런 검색의 문제를 관료제로 해결한다. 관료제는 어원자체가 책상에 의한 통치라는 뜻을 갖는다. 

 실제 관료제는 책상이 있다. 그리고 관료제는 세상을 서랍으로 나누고 어떤 문제가 어떤 서랍에 들어가는지를 파악해 검색문제를 해결한다. 현재 지금의 관료제는 업무분장을 통해 검색문제를 해결한다. 그래서 우리는 동사무소에가서 윗 팻말을 보고 자기 일이 어디 해당하는지 검색하고 일을 본다. 그리고 이 서랍을 나누는 기준 역시 상호주관적 현실이다. 관료들은 현실을 경직된 서랍으로 나누는데 급급하여 자신들의 행동이 미칠 광범위한 영향을 고려하지 못한다. 좁은 목표만 추구하는 것이다. 실제 산업부는 산업의 진흥에 주목하지 환경영향을 잘 고려하지 않으며, 시민 입장에선 폭설시 모든 도로의 눈이 치워져야 하나 관료제에 의해 나뉜 구역에 따라 어디는 제설이 되어 있고 어디는 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에 실제 이상적으로 다양한 문제와 측면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려면 관료 조직의 분업을 초월 폐기해야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이는 학문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각 대학은 철저히 학부, 학과로 나눠져 있으며 깊이 들어갈수록 자기 분야에만 천착해 다른 현실을 거의 알거나 고려하지 못한다. 

 목록의 등장 후 관료제는 신화와 더불어 대규모 네트워크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이 된다. 하지만 양자를 대하는 인간의 마음은 다르다. 신화는 이야기고 인간 본성을 자극하기에 매력적이나 관료제는 어렵고 복잡하여 의심을 사게 한다. 하여튼 관료제가 있는 네트워크 사회는 인간과 문서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존하며 문서는 인간에게 다른 종류의 문서들과 상호작용을 맺게 강요하기도 한다. 이처럼 문서가 많은 사회적 사슬을 잇는 중요한 연결수단이 되면서 문서에 상당한 힘이 부여된다. 그렇다 보니 난해한 논리를 다루는 문서를 다루는 전문가가 권력을 갖게 된다. 회계사, 행정가, 변호사 등이다. 

 관료제의 등장 후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워지면서 사회는 더욱 견고해진다. 이야기의 허점을 이해하거 파악하는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복잡한 문서는 일단 문자를 해독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복잡한 체계를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은 관료제로 인해 정부권력에 영향을 미치거나 그것을 회피하는게 더욱 어려워졌다.  


3. 연결수단 변화와 종교

 종교는 신에게 초인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모든 종교의 중심을 이런 초인적 정당성과 완전한 연결이 자리한다. 그래서 경전을 공부하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직접 종교를 창시하거나 신을 자칭한 인물들인 인간이기에 모두 생물학적으로 사라진다. 그러므로 완전한 연결은 사실 이후 다른 인간들에 의해 대리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류가 생겨났다

 종교는 이 문제를 우회하기 위해 신의 전령임을 자처하는 사람을 심사하는 기관을 만든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인간으로 신의 말을 위조할 수 있고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기에 문제를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야기에서 문서로 넘어간다. 고정된 텍스트를 발명한 것이고 이게 경전이다. 책으로 인해 더 이상 인간사제들은 신의 말을 조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텍스트에도 문제는 있었다. 인간은 신을 직접 만날 수 없고, 종교창시자들도 사라졌기에 그 흔적들만 여러 책과 구전으로 남아 있는데 이중 어떤 것을 신의 말씀으로 정련하느냐였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인간의 의도에 의해 어떤 것들은 배제되었고 어떤 것들은 선택되어 경전의 일부가 되었다.

 문서인 경전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바로 해석의 문제였다. 텍스트는 당연히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하며 함축적이다. 그리고 텍스트를 만들 당시와 이후의 시대사회적 환경이 매우 변모하였기에 해석의 문제가 생겨난다. 그래서 공은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간다. 결국 기관의 인간 지도자들이 이를 해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석의 제각각은 또 다른 혼란을 낳았기에 사람들은 경전을 해석한 경전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해석경전도 또 다시 해석이 필요했기에 이런 악순환을 해결되지 않고 반복될 수 밖에 없었다. 

 하여튼 경전은 탄생하였고 그 경전의 옳고 그름을 해석하는 것이 기관인 교회였으며 각 지역의 교회들은 해석의 권한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이것이 심해질 경우 종교는 분리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유대교와 기독교는 분리되었고, 기독교는 다시 동서방으로 갈렸으며 서방의 기독교는 다시 구교와 신교로 갈리게 된다. 루터와 칼뱅의 후계자들은 사람들과 경전 사이에서 오류를 범하는 인간기관의 개입을 불신했다. 그들을 그래서 오류없는 텍스트인 경전으로 돌아갔지만 결국 텍스트를 해석하고 심판하는 기관인 교회를 만든다. 같아진 셈이다. 

 중세유럽에서 경전은 큰 의미를 갖고 있었지만 생산성의 미흡으로 그 자체로 귀했다. 당시 책은 필사로 생산했는데 그 속도가 매우 느렸다. 중세유럽인은 기독교가 만들어낸 강력한 정보 생태계에 갇혀 있었고 그 텍스트들이 그들의 일상생활, 생각, 감정을 빚었다. 1000년 간 필사한 책이 약 1100만부였다. 하지만 인쇄술이 개발된 46년간인 1454-1500년 사이 책은 1200만부가 발간된다.

 인쇄술은 과학혁명의 근간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인쇄술은 그것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전부는 아니다. 인쇄술은 마녀사냥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사실 중세 대부분 마녀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 1420-1430년 알프스 지역의 한 성직자들이 기독교 종교와 지역전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추출한 요소들을 궁합해 마법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창안한다. 그들은 마녀를 사회의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했다.

 그 결과 1428-1436년 서부 알프스 발레 지역에서 최초의 대규모 마녀사냥과 마녀 재판이 실현되었다. 1485년 하인리히 크라머가 마냐사냥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지역교회당국에 의해 제동이 걸렸고 그러자 '마녀의 망치'라는 책을 출간한다. 초기교회는 크라머에 무관심했다. 하지만 마녀의 망치가 인쇄술로 인해 널리 출간되고 인기를 얻자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책은 인간 마음 속의 두려움, 난교, 식인, 아동살해, 사람의 음모라는 선정적 요소가 있어 인기가 있었다. 결국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1500년 크라머는 교황의 대리인이 되고만다. 16-17세기 무려 4-5만의 사람들이 마녀로 고발되어 고문과 처형을 당한다. 사람들은 광란속에 희박한 증거로 타인을 마녀로 몰았다. 여기에는 타인의 재산에 대한 탐욕, 개인적 원한, 정치, 사회적 이득이 자리했다. 마녀라 자백하면 즉각 처형을 당했고 부인하면 자백할때까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어떻게든 죽는 셈인데 그리되면 그의 재산은 고발자, 처형자, 성직자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후 수백년 간 마녀는 확고한 상호주관적 현실로 자리한다. 관련된 허위 정보가 넘쳐나게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이 정보를 환상으로 치부하기 매우 어려워졌다. 실제 마녀는 존재하지도 본 사람도 없는데도 말이다. 


4. 자정기관과 과학기술

 마녀의 경우는 정보 연결 수단의 발달로 정보의 양과 유통속도가 많아지면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순진한 정보관으로 설명할 수 없다. 사람들이 스스로 오류를 찾아내어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신화에 가깝다. 진실이 승리하려면 반드시 균형추를 진실 쪽으로 기울일 수 있는 큐레이션 기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기관이 존재한 것이 과학분야다.

 근대 초기 유럽에는 그런 큐레이션 기관과 토대가 있었다. 과학혁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큐레이션 기관들은 대학 안팎의 학자들과 연구자들을 연결하여 유럽전체, 세계를 잇는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과학기관의 권위는 무오류가 아니라 바로 기관자체의 오류를 찾아내 고치는 강력한 자정장치에서 나온다. 

 물론 과학도 오류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다수의 연구에 의해 정설로 정해진 패러다임은 상당한 권위와 저항을 갖는다. 때문에 오류, 즉 새로운 학설을 찾아낸 사람의 이론은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진화론이나 판구조론, 양자역학은 당대 최고의 권위자들에 거부되었고 상당시간 조롱받았다. 하지만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그것이 지지받기 시작하면 기존의 패러다임은 부서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는데 이것을 잘 드러낸 책이 그 유명한 '과학혁명의 구조'다.

 과학은 이처럼 무오류성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오류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서 시작한다. 과학기관은 종교나 다른 기관과는 다르게 중대한 실수나 오류가 일어나는 경우 기관의 책임을 기꺼이 시인하고 수정한다. 


5. 전체주의 네트워크와 민주주의 네트워크

 인간의 정치체제는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로 크게 민주정치체제와 전체주의정치체제로 구분된다. 민주국가는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시민의 인권과 민주적 질서를 보장하는 체제이고 전체주의는 파시즘이든 독재국가든 일인이나 소수에 정치권력체제가 집중된 체제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갖는다.

 전체주의의 네트워크는 독재적 정보네트워크로 고도로 집중화되어 있다. 중앙에 무제한적 권력이 있고, 모든 정보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중앙으로 몰려든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무오류성이 자리한다. 실제로 오류가 발생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중앙의 결정에 도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독립적인 권력 허브를 위협으로 간주하여 무력화한다. 그래서 독재정보네트워크는 강력한 자정장치가 없는 중앙 집중화한 정보 네트워크다.

 반면 민주주의는 강력한 자정장치가 있는 분산된 정보 네트워크다. 민주주의 네트워크는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선거와 언론의 자유, 3권 분립이 실행된다. 민주정부는 의료, 교육, 복지, 치안, 군사등의 사업을 실행한다. 하지만 이들이 국민의 삶에 필요이상 개입하려면 반드시 적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계엄의 요건과 절차가 엄격한 것이다. 

 독재는 중앙정부 허브가 모든 것을 지시하는 네트워크이며 민주주의는 다양한 정보 사이의 노트가 지속적인 대화를 하는 네트워크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인기 없는 소수를 죽이기로 결정하는 제도가 아니며 중앙권력에 제한이 있다. 그래서 강압적인 정치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전복시키기 위해 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자정장치의 공격이다. 여기에는 언론과 법원, 국회 등의 다른 권력기관들이 해당한다. 그래서 전두환 계엄군이 언론과 법원, 국회의 장악부터 시작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전복한 지도자들은 희안하게도 선거는 폐지하지 않는다. 사실상 모든 것을 장악한 상태에서 의례적으로 그것을 남겨두어 자신의 정치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북한, 러시아에서도 선거는 이뤄진다. 그들은 선거에서 일단 승리하면 무제한적 권력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정부권력을 어떤 식으로든 견제하려는 시도를 비민주적으로 본다. 

 민주주의는 대개 다수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진 않는다. 모두가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배앗길 수 없는 특정 자유들을 모두에게 보장한다. 그것은 두 가지로 인권과 시민권이다. 인권은 생명권, 노동권, 사생활, 이동, 종교의 자유등이다. 시민권은 선거권, 언론출판학문의 자유, 정치적 자유 등이다. 이 인권과 시민권 모두 상호주관적 현실이다. 그리고 선거는 진실을 밝히는 방법이 아니라 그저 상충되는 욕구들을 조정하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방안이다. 그래서 선거는 민주 정부 뿐만 아니라 독재정부도 낳는다. 

 그래도 선거는 오류를 수정하는 중요한 수단이기에 민주정부는 선거에서 진실의 왜곡과 숨김을 없애려한다. 그리고 진실의 보장방법으로 학술기관, 언론, 사법부의 자정기능,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독립적 기관을 여럿두어 견제하게 한다. 


6. 포퓰리스트의 등장

하지만 이런 민주국가에서도 최근 포퓰리스트들이 등장해 정권을 차지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주료 권력기관은 대개 거대 관료조직이다. 사람들은 의회, 법원, 신문, 대학이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포퓰리스트들은 이점을 파고들어 이런 기관들이 국민을 속이고 음모를 꾸며 권력을 차지하는 집단이라고 공격한다. 이들은 민중을 호도해 이런 자정기관을 해체한 후 권력을 독점하려고 한다. 포퓰리스트들은 정당한 정치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함녀서도 한 정당이나 한 지도자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견제를 용서하지 않는 모순된 결론에 도달한다. 

 그들은 자신만이 정당하고 국민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기에 나머지는 모두 불순세력, 반국가세력이 된다. 그래서 국민으로 하여금 그런 국민의 적들이 국민을 속여 거짓 투표를 하게 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진짜 국민은 하나의 의사를 갖고 있으며 그 의사를 대변하는 것도 오직 자기뿐이라 생각한다. 반대세력이 자신 못지 않은 지지와 세력을 갖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국민의 힘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민주주의를 유명무실하게 하고 독재정권의 수립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포퓰리스트는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세계 각국에서 먹히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터키의 에르도안, 브라질의 보우소나르, 필리핀 마르쿠스 등이 그렇다. 이런 이유는 포퓰리즘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모든 상호작용을 건력투쟁으로 환원하여 아무리 복잡한 사건에 대해서도 쉬운 해석을 제공한다. 또한 이런 권력투쟁 해석은 완전한 설명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7.연결수단 편천과 네트워크의 변화

 과거 석기민주주의시대에는 선거, 법원, 언론 같은 자정장치가 없었다. 하지만 정보네트워크가 분산되어 있어 자체 자정기회가 충분했다. 무리가 수십에서 수백에 불과해 모든 구성원이 정보를 공유했다. 최고 지도자는 있어도 매우 제한적 권력을 가졌고 이렇다할 경제수단도 갖지 못했다. 

 하지만 농업혁명으로 문자가 발명되며 관료조직이 등장한다. 정보흐름을 중앙에 집중시키기는 쉬운 반면 민주적 대화는 유지되지 않았다. 전제군주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관료와 기록생산소, 상비군에 의존해 주요 경제적 자원과 소유권, 세금, 외교, 정치, 정보를 독점한다. 

 민주적 대화에는 조건이 있다. 우선 대화를 나눌 사람이 가청 범위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화 당사자들이 주제에 대해서 기초적 이해가 있어야 한다. 현대국가는 이를 언론과 교육이 담당한다. 그리고 작은 석기 사회는 언론과 교육이 없어도 사회가 작아서 이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농경제국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사람은 많고 영역은 넓으며 문해력은 낮았다. 하지만 대규모 농경제국 네트워크 연결에 제한이 있었기에 중앙은 전제적이었지만 네트워크가 잘 연결되지 않은 지역에선 민주적 관리가 가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쇄술이 등장하자 1567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1579년 네덜란드 공화국의 실현이 가능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왕을 선출하고, 선출직 의회가 법률을 승인하고 지지했다. 세금, 외교에 관해서는 왕의 제안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시민은 종교집회의 자유가 있었다. 하지만 규모가 방대하여 붕괴한다. 반면 소규모의 네덜란드는 지역이 긴밀히 연결하여, 더 나은 정보, 의사소통, 교육시스템이 있었고 정기신문을 발간해 전국에 유통했다. 신문은 정기 발행 소책자로 강한 자정기능을 갖는다. 

 신문은 정보에 밝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대중을 탄생시킨다. 신문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해 신문 편찬자가 정치지도자가 되기도 했다. 신문은 저지대의 연합, 브리튼 제도 연합 왕국, 미국같은 근대 초기 민주국가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당시 신문은 가판대도 없고, 말로 배송하여 이동속도가 느렸고, 연간 구독료가 웬만한 노동자의 주급과 비슷할 정도로 비쌌다. 

 19-20세기 들어 산업혁명으로 전신, 전화, 텔레비전, 라디오, 기차, 증기선, 비행기 등 새로운 통신 운송 기술이 잇따라 등장하며 대중매체의 힘이 크게 강화한다. 전파 속도의 증가로 20세기 중반 대규모의 인구가 흩어진 상태에서 서로 연결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런 현대의 정보기술은 민주국가뿐만 아니라 전체주의 정권도 출현시킨다. 

 과거의 독재자들은 제국 전체의 주민 통제가 불가능했다. 자신 주변과 군을 통제하는 것이 전부이고 중요했다. 전체주의 체제는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여 정권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정보 채널을 경계한다. 전체주의 정권의 신조는 사람들이 만나 정보를 교환하는 곳에 반드시 정권의 감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래서 대규모의 정부군과 전국적인 당조직, 비밀경찰등을 마련한다.

 중앙집중한 전체주의 네트워크는 극도로 질서정연하다는 장점을 갖는다 그리고 소수가 결정하기에 결정이 신속하며 가차 없다. 하지만 네트워크 내에서 일어난 나쁜 소식을 두려워서 상관에게 숨기거나 공식채널을 막는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그렇다. 그리고 이들은 사람들을 숙청의 공포로 물아넣어 몰개성한 비주체로 만든다. 스탈린은 정권을 잡고 나서 초기에 주체적인 장교들을 모두 숙청했는데 그 결과 2차 대전 초기 소련은 참패한다. 군의 주도성과 개성이 사라졌고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움직였다 숙청을 당할 것을 걱정한 장교들이 부적절한 상부의 명령만을 따랐기 때문이다. 참패 후 스탈린을 깨달음을 얻고 군의 주도성을 회복하고 서방과 동맹한다. 물론 이후엔 다시 숙청이 따랐다. 

 1960년이 되자 서구와 소비에트는 대조적 길을 걷는다. 당시 민주주의 진영은 혼란에 빠진다. 정보의 자유가 확산하고 각종 검열과 차별이 완화하면서 사회 전반에서 욕구가 분출했기 때문이다. 소외 집단이 더 쉽게 조직하고 공론장에 참여하며 정치적 요구를 하였다. 그 결과 사회질서를 크게 흔들린다. 하지만 소비에트 진영은 억압으로 질서정연했다. 

 그 결과 20년 후 무너진 것은 전체주의 진영이었다. 탈식민화, 세계화, 기술발전, 성역할의 변화로 급속한 경제적, 사회적, 지정학적 변화가 있었으나 고령 정치인이 가득한 모스크바는 이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민주주의는 역사의 승자가 되었던 것 같지만 이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정보혁명이 일어나며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새로운 대결의 장을 맞이한 것이다. 


8. 컴퓨터의 발전과 미래의 네트워크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민주주의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한다. 이제 인간은 디지털 신화 제작자, 디지털 관료가 될 컴퓨터와 대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아이디어를 생성할 수 있다. 이는 스스로 목표를 추구하고 결정할 수 있는 단계로 이미 어느 정도 왔고 나아가고 있는데 이는 인간 역사상 네트워크의 기본 구조를 완전히 변화시키게 된다.

 지금까지 네트워크는 수단이 무엇이든 인간이 그것을 사용하는 능동적 주체로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니다. 또한 컴퓨터는 점토판, 종이, 라디오와 달리 단지 연결 매체이자 수단이 아니며 자신이 스스로 네트워크의 완전한 구성원이다. 그리고 컴퓨터는 무한히 연결되고 인간보다 상호 주관적 현실을 더 잘 이해한다. 

 그리고 컴퓨터는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였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의 생성과, 과학이론, 기술도구, 정치선언문, 종교 신화까지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인간은 그 동안 자신이 생성한 문화라는 고치안에 갇혀서 문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현상을 경험해왔다. 하지만 이 문화 자체를 컴퓨터가 생성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인간이 그 안에서 나름의 현실을 경험할 날이 가까워졌다. 

 앞으로의 미래네트워크는 인간-컴퓨터, 컴퓨터-컴퓨터 두 가지 사슬이 생겨난다. 2022년 4월 세계 외환시장 하루 평균 거래량은 하루 평균 7조 5천억 달러에 달한다. 그런데 이 거래의 70%를 컴퓨터끼리 거래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진화하는 생물이며 본질적으로 유전물질전달을 위한 생존 및 번식을 위해 포식, 섹스, 동기 간 경쟁, 삼각관계 같은 것에 집착한다.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 역시 유기적인 생화학 과정의 산물로 유전적 프로그램을 돌파할 수 없다. 하지만 컴퓨터는 전혀 다르다. 컴퓨터는 이런 한계가 없으며 진화속도도 매우 빠르다. 하라리는 컴퓨터가 초지능을 갖추고 행성규모로 확자하고 아원자 수준으로 축소되고 은하적 시공간을 넘나들 때까지 고작 수백년이면 충분하리라 보고 있다. 

 컴퓨터가 만들어낸 네트워크는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정보 대 정보 모델을 따르는 거래가 많아 질수록 정보경제는 성장하고 화폐경제는 위축되며 결국 돈이라는 개념 자체가 의문시 된다. 많은 것들이 정보의 관점에서 값이 매겨지고 화폐의 관점에서 무효가 되면 개인과 법인의 부는 결국 그들이 보유한 화폐가 아닌 정보로 평가된다. 이런 상황은 조세 제도에 큰 타격을 준다. 세금의 목적은 부의 재분배인데 데이터 기반 경제에서는 돈에 과세할 경우 데이터로 부를 축적한 쪽은 오히려 과세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국에서 여러 플랫폼 기업은 정보를 이용해 돈을 벌지만 이렇다할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인간 지도자들은 역사상 네트워크 안의 모든 사람들을 통제하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선 그 사람들에 대한 데이터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분석해 패턴을 찾아야 한다. 인간에겐 그것이 불가능했지만 컴퓨터는 그것을 가장 잘 한다. 현재 인간은 선진국에서 24시간 감시되는 것이 가능하다. 사방에 깔린 cctv, 자신이 족쇄로 갖고 있는 스마트 단말기, 위성 등으로 인해 그러하다. 특히 시민들은 스마트폰에 대가까지 지불해가며 자발적 감시를 허용하고 있다. 컴퓨터의 생물학적 지식이 증가하면 인간의 신체내부감시도 진가를 발휘하가 된다. 이미 눈동자의 감시만으로 특정 사안에 대해서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상당부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실시간으로 개인을 감시하고 이는 사회신용시스템으로 연결된다. 사회신용시스템은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점수로 평가하여 평점을 내고 그 것이 다시 그 사람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가령 점수가 높은 사람이 보험료를 낮게 내고 취업과 진학에 유리하다면 그것은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 이는 인간의 사생활을 없애고 인생을 끝없는 감시와 경쟁의 전장으로 바꾸게 된다. 이런 평판 경쟁은 중요하기에 스트레스가 극심해진다. 인간의 삶의 질이 크게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네트워크의 변화는 인간 본성의 자극이다. 현존하는 앱이나 플랫폼은 사용자의 참여시간으로 부를 얻게 된다. 그렇게에 그것들의 목적인 사용자를 최대한 오래 붙잡아두게 하는 것이고 그럴만한 것을 컴퓨터는 알아내 알고리즘으로 그것을 제공한다. 

 책 '도둑 맞은 집중력'은 그것을 잘 조명한 책이다. sns알고리즘은 사용자를 오래 붙잡기 위해 가격한 내용을 우선시하여 제공한다. 그리고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은 이를 역으로 학습하여 과격한 내용을 제작한다. 기업가들은 이런 문제를 인간의 본성의 문제로 전가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책 '도둑맞은 집중력'은 이런 플랫폼의 일정연령 이하 사용금지나 , 공공앱으로의 전환을 방법으로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하라리가 지적하는 미래 네트워크의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정렬 문제다. 정렬 문제란 목표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이나 전술을 일치시키는 문제다. 인간이 사용하는 컴퓨터는 이런 정렬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한 공장에서 목표를 클립 생산을 최대화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컴퓨터는 이것의 실현을 위해 세계 전지역을 점령하여 모든 자원을 클립 생산에 지중시켰다. 그 결과 클립생산은 최대화 되었지만 목표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실현이 된 셈이다.  

 이처럼 컴퓨터는 지나치게 강력하기에 정렬이 어긋날 경우 파급효과가 엄청난 문제가 있다 또한 유기체가 아니기에 인간이 마련한 방어책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고, 인간이 오정렬한 목표를 설정하는 실수를 범해도 그것을 알아차리거나 설명을 요청할 가능성도 낮다. 정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컴퓨터를 만들 대 궁극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컴퓨터가 이를 자의로 변경, 부여하지 못하게 하면 되나 목표라는 것은 자체가 함축적이고 포괄적이기에 사실상 그것이 불가능하다. 

 

9. 해결방안은

 인간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부패와 오류로부터 자유로운 무오류를 꿈꾸어왔다. 그래서 이야기를 믿지 못해 책을 만들었으나 해석의 문제가 발생해 다시 인간 기관을 만들었고 거기서 다시 오류화 해석이 필요성이 제기되는 무한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오류는 늘 완전히 없앨 수 없기에 그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지적하는 기관의 존재가 중요하다. 때문에 미래 컴퓨터 시대에는 모든 알고리즘이 학습해야 할 첫 번째는 바로 자신이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이에 대응하는 인간이 실행하는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미래에도 네트워크의 건강을 위해 네 가지가 유지되어야 한다. 하나는 선의다. 개인의 정보가 그 개개인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도록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분권화이며 세 번째는 상호주의로 이것은 개인에 대한 감시가 강하다면 그 개인을 감시하는 컴퓨터나 기업, 정부도 강하게 감시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감시시스템에 항상 변화와 휴식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기술을 개발하든 인간은 알고리즘을 감시하고 승인 여부를 결정할 관료기관을 유지해야 한다. 이 알고리즘 심사, 규제 기관은 분석에 그치지 않고 밝혀낸 사실을 사람들이 이해할수 있는 이야기로 번역해 알려야 한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네트워크에 인간이상으로 참여하여 대화하여 공론을 조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2022년 트위트 게시물의 20%이상이 봇이 생성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인간의 허위정보는 비교적 허위로 잘 판정하는 반면 봇이 생성한 허위 정보는 허위로 잘 판단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알고리즘은 미래에 공론장을 지배하여 인간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인조인간을 공론장에 투여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또한 공개토론의 콘텐츠를 선별하고 관리하는 일도 감독받지 않는 알고리즘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기업은 알고리즘이 콘텐츠 선별에 사용하는 원칙도 반드시 공개해야한다. 

 그리고 국제협력도 필수적이다. 컴퓨터는 전체주의 정권에도 하나의 도전 과제다. 모든 정보와 권력을 한 곳에 집중하는 전체주의 정권은 인공지능 시대에 체제가 이점이 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독재정권들도 정렬문제를 똑같이 겪게 되며 그들은 하나의 권력을 지나치게 신뢰하기에 그 독재의 위치를 컴퓨터가 대체할 가능성도 높다. 그렇기에 전체주의 정권의 소수 지배자들도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상당히 조심해서 인공지능을 다뤄야 한다. 

 미래는 데이터의 시대로 데이터를 장악한 데이터 제국은 사람들의 관심을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나라를 데이터 식민지로 장악할 수 도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수입된 데이터가 데이터 제국주의의 허브로 흡수되고 있으며 그들은 이 허브에서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최상의 알고리즘을 생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데이터 식민지에 수출한다. 과거 산업시대와 다르게 세계의 알고리즘은 하나의 허브에 집중될 수 있다. 그렇기에 미래 데이터 시대에는 개발도상국이나 가난한 나라들에게 기회가 더욱 적게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가난하기에 자국의 노동력을 디지털에 숙련된 노동력으로 바꾸기도 쉽지 않다. 

 현재 세계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실리콘 장막을 치고 있다. 이것이 고착되면 기술 뿐만 아니라 문화적 가치, 사회 규범, 정치구조에서도 점점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수 세기동안의 수렴의 시대에서 다시 분기의 시대로 접어든 느낌이다. 그리고 양진영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사이버전쟁일 가능성이 높다. 사이버전쟁은 철의 장막 시대의 핵전쟁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이버 무기는 핵무기보다 용도가 사회 전방위에 사용가능할 만큼 넒다. 그리고 그 공격대상이 민과 군을 넘나들어 사실상 전체다 

 다행히 인간은 동질성이 없어도 협력이 가능하다. 때문에 어렵겠지만 양진영은 미래 정보네트워크 시대에서 인공지능을 통제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 질서를 구축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는게 저자의 희망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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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4-12-10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넥서스애서 그나마 미국 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는 하라리의 결론에 충격받았습니다. ㅠㅠ 그래서 앞으로 AI 방향도 그쪽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ㅠㅠ
 
금리의 역습 - 금리는 어떻게 부의 질서를 뒤흔드는가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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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들어 금리는 철저히 외면 받았다. 저금리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가 상승률이나 경제 성장률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금리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일본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이론상 도무지 불가능해보이는 마이너스 금리마저 있었을 정도였다. 사람들에겐 나날이 폭등하고 자산을 불려주는 주식, 코인, 금, 부동산, 펀드 같은 것들이 훨씬 주 관심사였다. 도무지 어디 어디가 금리를 얼마나 더 주니 하는 이야기는 부모님 세대의 일인 것만 같았다. 돈도 마구잡이로 빌렸다. 금리가 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부채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상 최대 수준이다.  

 그러다 조금 반전이 일어났다. 코로나 19 이후, 미중 경제 전쟁과 러-우 전쟁 등으로 공급망에 차질을 빚자 세계적인 물가 상승이 있었던 것이다. 물가가 심상치 않자 미국은 매우 오래 간 만에 금리를 크게 인상했다. 물론 그 올린 금리라 봤자 종국에는 5%정도 였다. 하지만 그 정도 수치는 다른 여타 자산들의 가치를 깎아 내렸기에 모처럼 금리는 다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책 '금리의 역사'는 금리의 개념과 탄생, 역사적 역할을 살펴보고 지금의 경제를 꼬집는 내용이다. 


1. 금리란 대체 무엇일까?

 지금은 금리를 당연시 여기며 그 수치 정도가 문제지만 오래 전에 금리는 동아시아나 서아시아에서 하나의 금기였다. 이는 경제적인 측면보다 도덕적 잣대를 우선시 한 것으로 하나의 죄악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돈을 빌려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선 빌려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그런 측면에서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 대한 대가인 금리는 실질적 필요성에 의해 점차 받아 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 

 금리는 여러 가지 정의가 있다. 우선 절제에 대한 보상이란 생각이다. 그리고 레버리지의 비용이자 리스크의 대가로 보기도 한다. 또한 자연성장의 관점에서 금리를 보기도 한다. 자연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시간이 지나면 열매가 더 생겨나고 동물도 새끼를 낳는다. 즉, 지금의 토끼 두 마리가 가까운 미래에 새끼를 쳐서 서너마리가 될 수 있는 것인데 금리는 그런 미래에 대한 대가다. 실제로 고대세계에서 금리는 출산이나 동물의 새끼를 어원으로 갖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금리는 대부자에 대한 혜택의 나눔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대출한 사람이 그 돈으로 이익을 얻었다면 마땅히 그 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빌려준 사람과 나눠야 한다는 자연스런 생각에서다. 

 현대의 금리는 이런 개념들을 어느 정도 모두 포괄하고 있다. 현대의 통화정책 입안자들은 금리를 주로 소비자 물가를 조절하는 수단 정도로 파악한다. 이런 관점이기에 디플레를 막기 위한 마이너스 금리나 제로금리도 시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금리는 외환에서 나라 간 오가는 자본 흐름의 균형을 맞춰주기도 하며 책의 주장에 의하면 소득과 부의 분배에 큰 영향을 미친다.


2. 고대의 금리

 금리의 역사는 화폐보다 오래되었다. 화폐보다 물물교환이 먼저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뭔가를 서로 빌리는 일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빌려주는 것에 대한 대가는 자연스럽게 생겼을 것이다. 태초의 이자다. 

 고대메소포타미아에서는 채권, 채무자, 대출금, 상환기한, 이자 내역을 적은 점토판이 다량 존재했다. 계약의 이행과 동시에 채무의 증거인 점토판은 파괴되었기에 오늘날 남아 있는 것들은 채무 이행이 되지 않은 것들이라 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용대출은 매우 많았고 이유도 다양했다. 그 지역은 부족한 원자재가 많아서 삼나무, 대리석, 구리, 석고 등을 수입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대출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자를 계산하려면 시간과 가치가 표준화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자 계산이 되기 때문이다. 수메르 달력은 한 달 30일, 1년 12개월이었다. 그래서 시간, 거리, 무게, 돈과 이자는 모두 60을 기준으로 측정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복리도 개발했다. 복리로 인해 채무자는 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는 당시 지역의 사회 문제였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새로운 정부들이 들어서면서 부채를 탕감해주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 

 기원전 1750년 함무라비는 관례적인 이자율을 역사상 최초로 법문화한다. 은대출의 경우 최고 이자율을 20%, 보리는 33.33%로 정한 것이다. 다만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기에 일부 대부업자들은 짧은 기간에 최고 이자율을 적용하는 편법을 부릴 수 있었다. 

 고대 세계의 금리는 지금처럼 변화무쌍하지 않았다. 오랜 기간 고정이었다. 경제요인보다는 측정기준에 얽매였기 때문이다. 60진법을 쓰는 바빌로니아는 매달 60분의 1, 10진법인 그리스는 연10%, 12진법의 로마는 12분의 1인 8.33%를 이자율로 정했다. 

 실제 국제결제은행은 지난 100년 간의 금리는 저축이나 투자 같은 경제적 요인보다는 금본위제, 금환본위제, 브레턴우즈체제 같은 통화체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했다.금리는 고대 세계 건, 그 이후 이건 경제성장과 상관관계가 별로 없었다. 기원 후 1000년 간 세계 경제는 연간 0.01%성장했다. 하지만 그 기간 금리는 무려 6-12%에 달했다. 그리고 금리는 인구와도 상관이 없다. 인구가 증가하면 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금리가 증가할 것 같지만 역사적 연구는 인구증가와 금리는 오히려 반대방향이었음을 보여준다. 

 고대 세계의 금리는 정치와 관련이 깊었다. 금리는 대개 문명의 진로를 따라 U자형이었다. 문명이 막 시작한 후 번창할 때는 하락했다가 쇠락하여 멸망하게 되면 급상승하는 형국이다.


3. 중세의 금리, 시간과 이자의 결합

  이자는 필요와 탐욕의 결합이었다. 이자는 문명초기부터 있었는데 이는 자본이 항상 부족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들은 대출이자는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원을 분배했다. 자본이 산업이나 무역, 생산에 묶여 있을 때 이자는 생산에 사용된 시간과 관련이 깊었다.    

 중세가 되어 시계가 개발되자 시간의 세속화가 시작디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시간의 상업적 중요성이 부각된다. 효율적인 화폐공급에 새로운 금융관행이 더해지면서 중세부터 금리가 하락한다. 1200년대 이탈리아 북부의 금리는 20%였으나 르네상스 때가 되자 제노바는 7%, 베니치아는 5%까지 하락한다. 

 시간에 가치가 부여되고 개인의 소유물이라는 관념이 확산하며 고리대금을 도덕적으로 금지하는 성직자들의 제재는 거의 유명무실해진다. 상인이 대출로 이득을 얻는다면 대출자가 그 이익의일부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즉, 이자에는 대부자를 손해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기게 되었다. 

 이처럼 이자와 시간이 관련되자 이자란 시간에 따른 화폐 가치의 차이로 현재 소비가 미래소비로 교환되는 비율이란 생각이 생겨났다. 이자가 돈의 시간적 가치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실제 이자율은 사람의 시간 선호도를 반영한다. 노인은 소득이 더 이상 늘지 않기에 시간선호도가 낮고 대출도 잘 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령화 국가에서는 대출수요가 적이 금리가 낮다. 미래의 만족은 언제나 현재의 만족과 비교해 값이 할인된다. 이자는 특정 양의 가치를 특정 시간 동안 사용한 가격이 된다. 이로 인해 돈의 시간 가치인 이자는 가치 평가의 핵심이 된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투자는 수익률이 투자자들의 시간선호와 최소한 같을 때 이뤄질 수 있게 된다.  


4. 금리의 영향

 이상적인 금리는 다음과 같다. 상품처럼 시장에서 자유롭게 빌려주고 빌리는 개인이 정하는 이자율이다. 지나치게 많이 빌리거나 적게 저축하지 않은 자본을 반드시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이자율이다. 토지와 자산의 가치를 정확히 부여하는 이자율이고, 저축자들에게 공정한 수익을 제공하고 은행가와 금융계에는 보조금을 줄 정도로 낮지 않으며 차입자에게 지나친 고통을 주지 않는 이자율이다. 

 지나치게 높은 금리는 기업의 투자를 줄인다. 채권자는 채무자를 희생시켜 부당이득을 얻는다. 자본가치가 떨어지고 노동자는 실직하며 경기가 침체한다. 채권수익률이 국민소득을 웃돌면 기존 부채가 부담스러워지고 파산이 시작된다.

 반면 지나치게 낮은 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자산가격에 거품이 생기고, 대출이 급증하며, 금융이 노력을 밀어내고 저축이 붕괴한다. 은행에 돈이 쌓여 유통속도를 늦추어 오히려 디플레를 유발하기도 한다. 초저금리는 생산성 증가를 낮추고, 자산가격을 부풀리며, 부채 수준을 높이고 저축률을 하락시키고 저축에 불충분한 수익을 주어 불평등을 확대시키고 금융취약성을 높인다. 


5. 저금리로 인한 금융 붕괴의 역사

 로는 프랑스에서 미시시피 주식회사의 주식을 액면가 500리브르로 발행한다. 그리고 처음 몇 년간 회사의 주가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 로는 발행가능한 돈의 양에 대한 제한을 철폐하다. 그러자 1719년 1년 간 주가는 20배가 상승한다. 풀린 돈은 광란의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는데 물가지수가 2배 상승하고, 지폐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자 돈이 해외로 유출되어 버린다. 로는 여기서 돈을 더 찍어내어 문제를 해결하느냐 아니면 회수하느냐의 갈림길에서 돈의 회수를 선택한다. 주가는 결국 붕괴되고 90%를 폭락 후에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1826년에도 심각한 금융위기가 있었다. 남미 신생 독립국들은 금광을 비롯한 여러 투기 산업을 위해 발행한 채권투기 열풍이 일었다. 그 배경에는 금리하락이 있었다. 1825년 이전 런던으로 막대한 금이 유입되었다. 재무장관 윌리엄 로빈슨은 수익률 하락을 이용하여 미지급 정부부채를 더 낮은 수익률의 새로운 채권으로 전환한다. 금리의 감소로 고객들은 예금을 인출해 합자회사투자나 형편없는 담보로 건설업자에 직접 대츨한다. 전국에 은행이 증가했고 낮은 금리로 안전한 투자처를 빼앗긴 사람들이 해외 증권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러다 1825년 12월 런던에 맹목적 공포가 일어나 신용이 고갈하게 된다. 

 

6. 새로운 경제 질서의 탄생

 19-20세기 초반의 금본위제에서는 금은 이자율 조정 역할에 충실했다. 경제 과열로 총지출과 투자가 소득과 저축을 초과하면 금이 국외로 유출되었다. 그러면 금보유고 확보를 위해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하여 사태를 되돌렸다. 반면 금보유고가 충분하고 경기가 부진하면 저금리를 유지했다. 그래서 금본위제에서는 유통되는 신용의 규제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하지만 1914년 1차대전으로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대부분 금지급을 중지한다. 결국 1922년 금본위제를 수정하여 중앙은행이 보유한 정부증권이 금과 더불어 준비금으로 수용된다. 이것이 금환본위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금리는 국제적인 금의 흐름과 무관하게 되었다. 

 금환본위제로 인해 각국의 중앙은행 총재들은 처음으로 적극적인 통화정책의 구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금리설정이 정치화한 것이다. 새로운 금융질서는 금의 절약과 소비자 물가의 하락 예방이 목표였다. 디플레이션의 회피가 주 목적인 것이다. 

 1920년대 미통화정책의 목표 중 하나는 농업 사이클로 인한 계절적 금리 변동의 억제였다. 특정 시기에 대출 수요가 몰려 돈이 고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개입은 이자율을 낮춰 투자붐을 낳아 광란의 20년대 거품으로 이어진다. 1920년대 미국의 경제는 연 8% 성장했지만 금리는 과도하게 낮아 경제성장률의 절반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행히 경제성장으로 대출공급이 늘어나 생산성 향상으로 인플레이션은 억제되었다. 하지만 투기가 과잉되어 초고층건물과 폰지사기가 성행한다. 주식시장에도 돈이 쏟아져 들어와 주가도 폭등했다. 

 미국의 상대적으로 나은 이자율로 인해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그리고 외국인의 미수출상품 소비로 미국의 거품을 더욱 커지게 되었다. 그러다 연준은 1928년 할인율을 3.5%에서 5%로 인상한다. 이 긴축이 국제 자본 흐름을 돌려 미투자자들이 유럽에서 대출을 하게 되었다. 유럽의 미국산 상품 수입이 감소하고 신용공급이 감소하여 미경제가 위축해 붕괴가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월가의 투기 광풍에 겁이 난 연준의 긴축통화정책이 급격한 경기침체를 유도한 것이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까지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통제되고 있었다. 경제는 탄탄대로로 제 2의 경제 대국이었다. 일본 GDP는 1980년대까지 매년 5%성장했다. 1987년 협정으로 달러 약세를 위해 할인율을 전후 최저치인 2.5%까지 내렸다. 그리고 1987년 글로벌 증시 폭락으로 일본은 내수 진작과 세계경제성장을 목표로 신용조건을 크게 완화한다. 금리가 실제 성장률보다 낮게 유지되자 통화공급과 대출, 기업투자가 급증한다. 그리고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물가상승이 일어난다. 1989년 일본 중앙은행 총재인 미에노 야스시는 거품을 끄기로 결정한다. 그는 그해 3차례 할인율을 인상한다. 그러자 경기가 급격히 둔화한다. 그는 6%까지 올렸던 할인율을 1995년 다시 0.5%로 내리나 경제의 활력은 사라진 후였다. 

 1995년 이후 일본 경제는 부동산 가치하락, 부실대출을 한 허약한 은행, 자본 수익 감소, 과도한 레버리지 차이으로 기업의 부채 부담을 줄이려던 지속적 디플레이션에 짓눌리게 된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실책은 공통점이 있다. 양국 모두 처음엔 낮은 물가상승률에 경제가 탄탄했다. 물가안정에만 관심을 두고 강력한 신용성장과 투기에 무관심했다. 자국의 인플레를 통제한 상황에서 국제협력을 위해 국내통화정책을 조정했다가 호황 말기 거품이 지나치게 심해졌고 이를 통제하려고 금리인상을 단행한다. 그리고 거품 경제 붕괴 후 디플레이션을 방치한다. 

 

7. 미연준의 정책 전환

 미국은 1970년대 후반까지 인플레이션의 통제가 어려웠다. 경제성장 둔화로 사회가 불안정했고 스태그 플레이션에 빠져있었다. 1979년 말 카터는 폴볼커를 연준의장으로 임명하고 그는 통화공급량을 줄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했다. 그의 체제하에서 연방기금금리는 10%에서 19%까지 상승했다. 장기국채는 15%수익률이었다. 하지만 이후 미국경제는 살아날 수 있었다.

 1987년 주식시장의 붕괴 이후 볼커의 뒤를 이은 그린스펀은 연방기금금리를 인하하며 유동성 홍수로 위기에 대응한다. 그리고 이후 연준은 은행 차입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에서 방향을 전환해 금리 자체를 목표로 삼기 시작한다. 통화정책은 이제 눈앞의 인플레이션만 통제 수단으로 다루었다.그린스펀 풋이란 용어가 있는데 이는 주식 시장이 하락할 때마다 연준이 개입한다는 월가의 불문율이다.

 그린스펀의 뒤를 이어 2002년 버냉키가 취임한다. 그는 디플레이션에 대해 선제적 공격을 주장한다. 2003년 봄 연준의 지급금리가 1%로 인하되었고 이지머니의 시대를 알리게 되었다.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통제되었다. 선진국 전역이 2000년대 초반 낮은 물가상승과 완만한 경기침체를 겪었는데 이를 대안정기라 부른다. 

 하지만 위기는 누적되고 있었는데 2006년 BIS의 수석 경제학자 윌리엄 화이트는 '물가안정만으로 충분한가'라는 논문에서 물가 안정만으로는 거시적인 경제 혼란을 회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하이테크처럼 생산성 향상에서 발생하는 좋은 디플레이션과 신용 붕괴에 의한 나쁜 디플레이션을 구분하였다. 

 결국 이런 경고가 무시되어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미국에서 발생한다. 미국에서 발행한 부실한 모기지 증권을 유럽이 대량으로 사고 이것이 부실화하면서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1990년대 부터 세계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목표를 정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근거 없이 2000년대 들어 그것은 2%로 정해지고 이 수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딱히 근거가 없는 이런 기계적 설정은 단기주의, 관료주의로의 자원 전환, 리스크 회피, 정당하지 못한 보상, 창의성과 혁신을 억압한다. 2%타케팅은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극도로 낮추고, 투기적인 차입과 리스크를 감수하게 하였다. 수입가격이 하락하면 중앙은행 총재들은 일반 물가 수준이 하락하지 않도록 의료, 교육, 건설 같은 비무역 상품의 가격을 부풀려야 했다. 

 결국 2008-2009년의 대침체 이후 5년이 지난 2014년에도 미국의 생산성 성장률은 역사상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게 되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를 세속적 정체라 부르기 시작했다. 세속적 정체는 미국와 유럽의 인구 증가세가 둔화하여 노동력이 고령화하고 신기술이 기존 기술보다 투자를  덜 요구하여 기존 기술보다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세계가 글로벌 과잉저축으로 인해 금리가 내려간다는 것에서 정체의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실질경제를 살피면 세속적 정체이론은 힘을 잃는다. 오히려 세속적 정체 내러티브는 경제학자들이 저축, 인구, 투자의 실질 요인에서 경제의 원인을 찾고 통화와 금융요인은 간과하게 만든다. 


8. 부채사이클과 창조적 파괴

 2013년부터 BIS 통화경제부장을 역임한 보리스는 금융시스템이 자원배분에 그치지 않고 구매력까지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보리스는 이자율이 실질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흄의 주장을 입증하고자 역사적 자료를 찾았지만 연구결과 금리와 저축, 투자, 이익, 인구와의 관련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BIS는 금리는 통화체제의 영향을 받는다고 결론내렸다. 

 BIS는 이자를 레버리지 가격으로 정의 내렸다. 그리고 부채 수퍼사이클을 제시했다. 금리가 내리면 부채가 급증한다. 그리고 더 많은 부채는 상환의 어려움 혹은 자산 가격등의 폭등으로 더 낮은 금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부채는 더욱 많아지게 된다. 이렇게 경제가 일단 부채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금리 인상이 사회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에 금리 인상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것이 초 저금리 정착의 원인이고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계의 현실이다. 

 저금리에는 자산가격이 폭등하고 그 중 하나인 부동산이 폭등해 건설로 자금이 몰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건설업은 생산성 향상에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실좀비기업이 급증한다. 좀비기업은 낮은 신용으로 연명하는 기업으로 생산성 향상에 거의 기여하지 않으며 자원을 차지해 경제의 효율적 자원 배분도 막는다.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를 주장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가 낡고 비효율적인 것을 대체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자가 가장 유능한 고용주와 가장 좋은 과정을 채택하고 덜 유능한 고용주와 나쁜 과정의 제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이자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에서 효율성을 추진하는 힘이고 투자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공황도 창조적 파괴를 촉진한다. 미국의 대공황은 산업수준을 고통이었으나 산업수준 전반을 향상시킨 사건으로 이후 미국의 생산성은 크게 향상된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저금리로 생산성 성장이 붕괴한다. 미국의 연간 생산성 증가율은 0.5%로 20년 전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그 이면에는 좀비기업이 자리한다. 이들은 경제전반에 생산과잉과 낮은 수익률을 퍼뜨린다. 그래서 새로운 기업의 진입이 줄어든다. 또한 신기술의 혜택이 그로 인해 감소하기까지 한다. 

 또한 사모펀드도 문제다. 이자는 금융비용의 대분을 차지한다. 저금리는 이지머니를 낳고 기업합병과 레버리지 매수가 성행한다. 그 결과 2018년 사모펀드는 1조달러에 달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들은 금융붕괴의 화약고이기도 하면서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사모펀드는 수익을 빠르게 얻기 위해 단기적 안목에 집착해 회사를 사자마자 쥐어짠다. 장기적 기업 운영이나 사업전략은 그들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저금리는 기업자체의 화력도 떨어뜨린다. 21세기 미국의 부채비용은 자본비용보다 낮게 유지되었다. 이러한 펀딩갭은 자사주 매입을 부추겼다. 기업이 자금을 기업발전에 투자하지 않고 자사주 매입에 쓰게 되면 주가가 상승하게 된다. 그러면 경영진과 회사는 단기적으로 큰 이득을 취한다. 하지만 그 기업자체는 실질적으로 어떤 이익의 향상이나 비전, 기술개발, 연구개발도 없게 된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 결과 지난 16년간 미국의 가장 큰 상장 기업을은 총이익의 절반 이상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다. 

 이런 초저금리로 금융은 결과적으로 실물 경제를 몰아내고 있다. 대출 대부분이 부동산이나 좀비기업, 자사주매입에 사용되고 기업의 효율성 개선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제조업과 연구개발이 필요한 사업은 오히려 당장의 수익성이 낮아 대출에 굶주리게 된다. 

 

9. 금융억압과 불평등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보다 낮은 단기금리의 유지를 금융억압이라 한다. 미국은 저축률이 낮은 국가로 금융억압으로 인한 불만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저금리는 자산가격을 상승시키는데 문제는 이것이 실제로 나라를 부유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는 주가가 하락하면 시총 수십조가 증발했다 표현하는데 이는 가상의 심리적 돈에 가깝다. 일부 상승기에 자산을 판매하는 자산가가 거액의 자본이득을 얻을 뿐이다. 투자자 전체가 이런 거액의 자본이득을 얻는건 불가능하다. 모두 거액에 파려는 순간 자산가치는 폭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돈은 이익이 낮은 투자수익을 보이게 된다. 

 연금업계는 정부채권과 기타우량채권에 투자한다. 금융위기 이후 채권의 수익률이 크게 하락해 연금소득도 동반 하락했다. 2016년 미공공기관의 연금적자는 3조 달러였다. 연금적자의 팽창원인은 금리하락이다. 연금적자는 큰 구름이 되어 수조 달러의 지방채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모든 확정 급여연금은 더 이상 신규가입자를 받지 않는다. 모든 연금 상품은 혜택이 적은 상품으로 대체중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올릴 수도 없다. 연금적자가 커서 금리 상승은 연금업계에 상당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늘어나 연금은 진퇴양난이다. 

 이지머니 시대는 불평등의 시대다. 1987-2013 전세계 억만 장자는 10배 증가했고, 이들의 전 세계 자산 점유율은 4배 늘었다. 2015년 세계 총재산의 절반을 고작 62명이 차지했다. 2018년 미국의 실업률은 반 세기만에 하락했다. 하지만 내용이 좋지 못하다. 저임금 일자리가 고임금 일자리보다 두 배 넘게 상승하며 달성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반면 의료비를 포함한 기타 생활비가 물가상승으로 빠르게 오르고 있다. 

 자산가격과 저금리로 젋은 세대는 주택구매를 못하고 있다. 2018년 미국 주택 구매자의 평균 연령은 무려 46세였다. 역사상 최고령이다. 주택은 선진국에서 빠르게 전문직의 전유물화하고 있다. 그리고 주택 가격상승으로 새로운 일을 위해 이사하는 노동자의 수가 줄어 들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사업 비용이 오르고 내부 이주가 줄면서 수도권은 밀폐형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출산하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학자금, 미미한 소득 증가, 과도한 부동산 가격으로 가정꾸리기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영국의 출산율은 부동산 가격고 반비례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10. 새로운 불평등 공식

 토마 피케티는 불평등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입장을 거부하고 근본적 법칙을 제시했다. 그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큰 경우 불평등이 심화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책은 이를 반박한다. 불평등의 철칙은 반대로 자본수익률(금리, 이익, 임대, 배당 등)이 경제성장률보다 작을 때 일어난다. 그리고 이는 금융억압과 같다. 

 중국은 금융억압을 실시했다. 자본을 국내에 묶어 저금을 통제했고, 가계는 몇몇 대형 은행에 예금을 예치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금리가 경제성장률보다 작아 은행은 막대한 이익을 보장받고, 정부가 통제하는 기업이 저금리로 혜택을 얻었다. 가정이 피해자가 된다. 중국은 수출을 위해 위안화의 절상을 막고자 위안화를 팔고 달러를 매입했다. 이런 미증권의 대량 매입은 미국의 장기금리의 하방압력이 되었다.

 금융억압으로 중국의 은행과 기업은 연간 GDP의 3-8%의 부를 차지한다. 그리고 금융억압이 신용성장을 자극한다. 2008년 위기에 4조위안을 은행에서 조달하여 대규모 부양정책을 펼친다. 2009년 신용은 GDP의 30%에 달한다. 이 막대한 자금으로 거대 국영기업들은 과잉생산을하여 대규모 미분양 유령도시를 건설한다. 

 중국의 부동산 가치는 2016년 43조 달러라 GDP의 4배다. 중국은 도시외에도 인프라도 과도하게 건설했으며 각종 산업에도 과도한 투자를 실행했다. 그 결과 좀비기업이 크게 늘어 2016년 국제통화기금은 중국 11개 성에서 3500개의 좀비기업을 확인했다. 중국의 경제는 부채로 가득하여 은행시스템의 부채는 경제규모의 3배에 달한다. 2012년 이후 총부채상환비용이 경제성장을 넘어섰다. 즉, 성장으로 부채탕감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부실채권은 탕감되지 않는다. 국유자산 관리회사에서 이 부채를 액면가로 판매한다. 그리고 이 회사들은 국영은행에서 인수한 10년물 채권을 발행하여 대금을 지급한다. 사실상 지급 불가능한 단기채권을 장기부채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채로 인해 항상 저금리가 필요해진다. 

 서구에서도 금융억압은 자행되었다. 서구는 전후 인플레가 두 자리수임에도 국채수익률을 낮게 유지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며 부채가 탕감되는데 서구 국가들은 이런 식으로 전쟁의 빚은 제거했다. 오랜 양적완화로 정부와 각 지방의 부채가 많아지자 금리가 조금만 상승해도 큰 문제가 되었다. 때문에 금융억압은 정치의 필수조건이 되어 버렸다. 

 신용은 놀랍게도 민간이 아닌 정부가 창출하고 조정한다. 신자유주의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지금의 머니 마켓은 국채로 가득한 정부한정 펀드로 가득하다. 중앙은행은 단기 이자를 설정하여 장기금리를 조정하고 경제전망의 신용 배당에도 관여하고, 국가 신용의 최후의 중재자다. 그리고 유럽의 중앙은행은 원내의 특정 국가를 지원할지 말지도 결정한다. 사실상 권력이 선출직에서 비선출직 경제전문관료로 넘어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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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4-12-03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이너스 금리는 이론상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론상 명목금리가 아무리 높아도 인플레이션율이 높으면 충분히 가능하지요.

북다이제스터 2024-12-03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금리가 있는 사회가 이상한 사회고 금리가 전혀 없는 사회가 진정 바람직한 사회라고 하던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