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구조론 - 아름다운 지구를 보는 새로운 눈
김경렬 지음 / 생각의힘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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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교 시절 판구조론을 배운 적이 있다. 베게너가 만든 것으로 우리 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 매우 조금 씩이지만 움직인단 이론이다. 지금은 무척 당연하게 생각되는 판 구조론은 사실 이론으로 확립되는데 오랜 기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지구 내부에 대해서 알지 못했으며 이 거대한 구조물인 지각이 움직인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광범위한 증거가 쌓이고 나서야 판구조론은 정설이 된다.

 베게너는 독일의 기상학자로 판구조론을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연안은 생김새가 마치 퍼즐의 조각처럼 상당히 유사했고 실제로 특이한 지질학적 구조나 동식물들의 화석이 공통적으로 등장했다. 또한 일부 대륙의 지층에서만 나타나는 극단적인 기후 변화의 증거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었다. 베게너의 주장은 일축되었는데 그가 1차대전의 전범 국인 독일 출신인데다 감히 기상학자인 주제에 지질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도무지 전문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엔 지구 내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의 내부는 서로 관통된 공동들이 산재해 있는 고체 정도로 여겼다. 이 관통된 공동은 두 가지 종류로 한 종류는 비어 있거나 부분적으로 물이 차 있고, 광활한 지하의 강이나 바다를 엮은 거대한 연결망이다. 다른 하나는 바로 여기에 물 대신 뜨거운 물과 용암이 자리한다. 세계의 기후는 바로 이 공동에 뭐가 흐르냐에 따라 갈리는데 화산이 많고 뜨거운 지역은 용암이 서늘하고 축축한 지역은 물이 아래에 있다고 생각했다. 당대의 소설 해저 2만리 같은 소설은 바로 이런 당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후 몇 가지 발견이 일어난다. 우선 지구의 질량이다. 지구의 질량을 1799년 캐번디시가 마침내 측정하였는데 이로 인해 지구 내부의 물질 추정이 가능해졌다. 부피는 익히 알고 있었으니 질량만 구하면 밀도는 자연히 나오는 것이었다. 지구의 무게는 6조kg의 1조배에 달했는데 지구의 부피를 감안하면 지구의 밀도는 5.24g/cm3여야 했다. 지표의 암석대는 겨우 2.5-3에 불과했기에 그러면 지구 내부는 밀도가 거의 8-10에 달해야 했다. 이러려면 지구 내부의 물질은 마땅히 액체나 금속이었어야 했으나 당대의 학자들은 액체의 고체는 압축될 수 없다고 믿었기에 놀랍게도 지구 내부는 기체가 초고압으로 압축되었다고 생각했다.

 다음의 발견은 지진파다. 지진파는 p파, s파, 표면파가 있다. 언급한 순으로 도착하는데 이외에도 이들은 지나는 물체에 따라 속도가 바뀌거나 아예 지나가질 못한다. 이로 인해 지구 내부에 대한 추정이 가능해졌고, 핵의 크기도 알게 되었다. 핵의 반지름은 2900km정도이며 외핵은 액체, 내핵은 고체임을 밝히게 되었다.

 또 다른 발견은 대서양 해령의 확장이다. 해저소나의 개발 등으로 이 시기엔 해저의 지도 작성이 가능해졌다. 해저의 지형은 통념과 다르게 지상과 다를 바 없었다. 대서양 중앙해령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암석의 자기층이 좌우가 대칭이었다. 지구 자기장은 주기적으로 극이 바뀌며 이로 인해 암석이 매번 반대 방향으로 자화된다. 그런데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암석대가 심지어 자화 방향까지 같았던 것이다. 이는 대서양해령을 중심으로 해저가 좌우로 확장됨을 말해주는 결정적 증거였다. 학자들은 지각의 아래 부분도 매우 단단할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이런 발견들을 토대로 지각 바로 아래층이 연약권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1960년대 들어 판 구조론은 확립된다. 우선 지구의 약 100km 두께의 표층은 해저산맥, 해구 등을 경계로 하는 10여개 조각으로 나뉘어 지며 이들은 상대적으로 운동을 한다. 그리고 판의 경계는 지질적으로 불안정하기에 여기서 지진이 발생한다가 된다. 판의 생성과 소멸은 주로 해양 지각에서 일어난다. 증거로는 우선 해양지각의 퇴적물 양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해양지각이 매우 오랜 기간 존속되었으면 퇴적물의 양이 상당해야하지만 의외로 축적량이 적다. 또한 해양지각은 암석이 어리다. 가장 오래된 해양지각의 암석이 1억년 수준인데 육상에선 40억년 짜리도 있다. 해양지각이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지점이라는 증거다.

 판의 경계는 3가지로 발산형과 수렴형, 변환단층형이 있다. 발산형은 지각이 생성되는 곳으로 대서양 해령과 동아프리카 지구대가 있다. 수렴형은 판이 서로 부딪혀 소멸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또 세 종류가 있다. 우선 해양판끼리 부딪히는 경우로 양자가 밀도가 비슷하여 한 쪽이 앞서가는 해양판 밑으로 섭입한다. 해구가 생성되고 해구 앞에는 화산섬이 생성된다. 마리아나 제도나 일본, 사이판이다. 해양판과 대륙판이 부딪히는 경우 해양판이 무거워 섭입하고 대륙은 그 위로 솟아로른다. 그래서 앞바다엔 해구가 생기고 대륙쪽은 높아지는데 안데스 산맥과 그 앞의 칠레 해구가 여기 해당한다. 대륙판끼리 부딪히는 경우는 둘다 가벼와 가라앉지 않고 주름이 생기며 밀착한다. 인도와 아시아가 충돌한 히말라야 산맥, 티베트 고원, 과거 남중국과 북중국의 통일로 생긴 중국대륙이 여기 해당한다. 

 변환 단층형은 발산형 경계와 그 반대편의 수렴형 경계가 하나의 판을 만들려면 이들을 연결시켜 주는 경계가 필요한데 바로 여기 해당한다. 이 부분은 바로 인접한 두 판이 서로 수평적으로 미끄러지는 곳인데 미 서부 연안의 샌안드레아스 단층이 여기 해당한다. 이 변환 단층은 대개 버티다 100년 정도 주기로 미끄러지며 그 간의 스트레스를 발산해 지진을 일으킨다. 

 사실 지구의 껍데기인 판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은 지구 내부에 있다. 지구 내부엔 상당한 열이 축적되어 있는데 우선 방사성 물질의 붕괴에서 오는 열과 지구 생성 초기 수많은 운석에 충돌하면 발생한 열이 내부에 갇혀있다. 이 초창기의 열은 암석대에 섞여 있던 니켈이나 철등을 거대한 열로 녹였고 유동성이 확보되자 이들 금속은 중력에 의해 핵으로 스며들었다. 관측결과 지구 내부에는 거대한 2-3개의 상승류가 존재하며 이들은 판을 움직이는 중요한 힘으로 작용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구 내부와 외부의 열 차이에 의한 대류다. 그 매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우선 고온의 외핵이 핵-맨틀 경계부의 맨틀 물질 일부를 가열하여 상승류를 형성한다. 이들이 지표에 도달하면 하와이 제도 같은 화산 섬이 형성된다. 핸-맨틀 경계부의 넓은 면이 가열되면 중심부 물질이 상승하기 시작하며 거대한 원통형의 통로가 생성된다. 많은 물질이 상승하면 거대한 상승류가 생겨나고 이들은 상부 맨틀 및 하부 맨틀의 경계면(670km)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이 때 경계면의 위아래의 압력 차이로 스피넬 구조에서 감람석 구조로 바뀐다. 이들은 대개 경계면을 따라 수평으로 퍼지면서 가지를 치며 상승하여 약 100km두께의 판의 하부에 도달한다. 이들이 판을 뚫고 지표면까지 나오게 되면 아프리카 열곡대 같은 열점이 되며, 판에 균열을 내어 올라와 해양저 산맥과 같은 확장 축을 이룬다. 해양저의 확장축으로 상부 맨틀의 물질이 계속 올라오며 해양지각을 덮어 나가며 옆으로 확장한다. 오랜 기간 해양지각은 서서히 식어가며 밀도가 높아져 가라앉으며 섭입하게 된다. 이들은 무려 상하부 맨틀의 경계로 까지 내려가 다시 옆으로 퍼진다. 위에서는 계속해서 물질이 내려오는데 그러면서 덩어리가 매우 커진다. 이 압력으로 덩어리의 감람석은 다시 스피넬 구조로 바뀌게 되며 더욱 무거워지면 하부 맨틀의 바닥까지 떨어지게 된다. 이 거대한 무게의 하강류가 그 강대한 압력으로 액체인 외부 맨틀을 강타하게 되고 액체의 특성상 그 받은 압력은 다른 곳을 자극하여 솟구치게 된다. 즉, 다시 거대한 상승류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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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2-25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0억년이라니... 상상이 안 됩니다요. 즐거운 성탄절 보내십시오.^^

닷슈 2023-12-26 10:11   좋아요 1 | URL
40억년이면 아마 지구에 대규모로 운석이 충돌하던 시점의 종료와 대충 맞물릴 것 같습니다. 하여튼 상상이 안가는 세월이죠. 연말 잘 보내십시오.
 
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 - 뇌과학과 성선택으로 풀어본 성적 미학의 탄생
마이클 라이언 지음, 박단비 옮김 / 빈티지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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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의 추동력은 환경 압박과 성 경쟁이다. 산업 시대 영국에서 대기가 스모그로 뒤덮이자 그을린 나무의 색과 비슷한 회색 나방이 우세종이 된 것은 환경 압박에 대한 진화다. 반면 유지비만 많이 들고 비행 및 생존 등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수컷 공작의 화려한 날개는 성 경쟁의 산물이다. 성선택은 이처럼 개체의 생존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기에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에겐 상당한 고민이었다. 물론 그는 이를 과학적으로 인정하고 분석한 성선택에 관한 책을 펴냈다. 책 '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는 이 성선택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재밌게도 오히려 환경압박보다 성선택이 더 큰 진화요인이라 주장한다. 

 성선택이 이뤄지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생물종이 당연히 유성생식을 해야한다. 그리고  번식 때 성비율의 균형이 무너저야 한다. 그래야 성경쟁을 하고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생물은 암수 성비가 비슷하지만  번식 때는 성비율의 균형은 대개 무너진다. 이는 수컷은 거의 항상 생식이 가능하지만 암컷은 수정이 이뤄지면 상당기간 생식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식을 원하는 수컷은 항상 많지만 그것에 응해줄 암컷의 수가 적기에 성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설사 암컷의 수가 수컷과 1:1대응이 되거나 암컷이 많은 경우라도 상당수 종의 강력한 수컷들은 많은 수의 암컷을 독차지해 다른 수컷의 짝짓기를 방해한다. 때문에 그런 종의 수컷들은 늘 암컷 부족과 경쟁에 시달린다. 다른 전제는 이 성 경쟁에서 미적인 요소를 인식할 감각 기관과 그를 바탕으로 이를 미로 인식한 암컷의 두뇌발달, 그리고 암컷이 미적인 것으로 수컷의 행동이나 신체요소, 혹은 그의 확장형의 발현이다.   

 언급한 것처럼 저자는 성선택이 더 강한 진화의 추동력이라 주장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도킨스가 말한 것처럼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유전자의 전달을 위해 생성된 생존기계이기 때문이다. 결국 생존의 목적인 번식이고, 결국 길게 생존을 하는 이유는 번식의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차례의 번식기회를 갖기 위해서다.

 저자는 파나마 운하의 퉁가라개구리를 연구했다. 봄만 되면 개구리는 밤에 시끄럽게 울어대는데 이는 번식을 위한 구애의 수단이다. 수컷은 암컷에게 자신의 정체와 위치, 짝짓기 준비 정도를 알려주기 위해 노래한다. 성적 아름다움은 개체의 형질과 그를 인식하는 감각기관과 두뇌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퉁가라 개구리는 소리를 내고 그것은 두 종류이다. 단순음성은 '퉁'소리와 복합음성인 '퉁+그륵'소리다. 그리고 복합음성이 더욱 내기 어렵고 비용이 요구되기에 암컷 퉁가라는 이를 더 선호한다. 울음의 지속시간과 여기에 들이는 에너지는 10%더 늘리면 수컷의 매력도는 무려 50%나 상승한다. 암컷은 소리의 크기로 수컷의 크기도 판별하는데 이는 크기가 클수록 대개 발음기관도 커져 소리가 크고 낮아지기 때문이다. 퉁가라 개구리가 크면 몇 가지 이점이 있는데 일단 크기는 수컷의 건강과 좋은 발달을 하는 유전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퉁가라개구리는 수컷이 암컷의 등에 올라타 교미를 하는데 이 때 수컷이 커야만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 암컷은 단 한 번의 실패로 무려 6개월 후를 기약해야 하기에 이는 상당한 비용부담일 수 있다. 

 그리고 수컷의 울음은 두 가지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우선 대사량의 증가다. 울음을 내면 수컷은 에너지 소비가 무려 250%폭증한다. 그리고 이 비용은 복합울음을수록 더욱 증가하기에 수컷은 복합울음이 효과적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가급적 기피하고 단순울음을 내려고 한다. 또 다른 비용은 천적에게로의 위치 노출이다. 박쥐는 대개 개구리의 가음영역을 듣지 못하지만 파나마의 일부 박쥐는 놀랍게도 구애 울음을 탐지하도록 진화했다. 그래서 울음은 커질수록 암컷과 더불어 천적에게도 자신의 위치는 노출된다. 수컷의 저음은 박쥐에게 덜 감청되는데 그래서 저음은 더 선호될지도 모른다.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에게 있어 이종교배는 반드시 피해야할 최악의 선택이다. 다른 종과의 교미는 에너지는 그대로 소비하지만 후세가 태어나지 않거나 태어나도 불임이거나 기형등 약체로 태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때문에 대부분의 종에서 구애자들은 선택자에게 자신의 종 정체성을 확실하게 알리는 특징을 선호한다. 그래서 우리가 듣기에 다 비슷해 보이는 개구리들의 소리는 각각의 종에게 다 다르게 들린다. 그래서 암컷의 두뇌는 청각, 의사결정, 행동출력 체계까지 전체 신경 회로가 암컷으로 하여금 동물의 음성을 가장 매력적이고 성적으로 아름답게 느끼게 편향을 일으킨다. 어쩌면 최초의 성적 구애는 종구분을 위함에서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동물의 성적 미학은 다음의 두 규칙이 절대적이다. 우선 동종의 짝을 구분하여 찾기, 그리고 그 동종의 개체 중 더 우월한 짝을 찾기가 된다. 동물의 성적 미학 차이는 감각기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당연히 상대방이 감지하지 못하는 모든 행위와 신체적 특징은 무의미 하기 때문이다. 암컷 개구리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목청 껏 낼수도 없겠지만 내어서 무엇하겠는가. 그리고 이는 대부분의 동물의 감각기관의 기능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모든 동물의 감각기관은 자신의 생존에 적합한 정보를 얻고 해석하게끔 진화한다. 우린 가끔 모든 정보를 수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비용적으로도 너무 큰 문제를 일으키고 두뇌가 처리하지도 못한다. 정보가 너무 많이 들어올수록 뇌의 처리 효율이 큰 폭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각기관은 일부 필요한 정보만을 수용하게끔 설계된다. 또한 감각 경로는 이걸로도 부족해 온갖 신호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뇌에 도달하기 전에 필터링한다. 

 동물은 상대방의 미를 감지하기 위해서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학자들에게 어려운 부분이기도 한데 미를 발현하고 감지하는 유전자는 당연히 하나가 아니며 여러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모든 동물 및 인간의 성적 두뇌가 처리해야 하는 갖아 중요한 과업은 서로 다른 감각에서 오는 자극을 하나로 모아 통합한 다음 이것을 통해 새로운 배우자 감이 나의 성적 미학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일이 된다. 

 구애를 하는 입장에서 상대방의 뇌를 자극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어려운 점은 한 종의 구애행동은 대개 무척이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퉁가라 개구리만 해도 비슷한 주파수의 단순울음이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행동을 무의미하게 처리해버리는 뇌의 습성상 자극적일 수 없다. 때문에 수컷들은 이 지루함을 방지하기 위해 성적 미학을 복잡하게 진화시킨다. 퉁가라 개구리의 복합음성이 그러한 대표적 예다. 하지만 이는 많은 비용과 위험을 초래하기에 수컷은 무조건적으로 복합음성을 내기보다는 상대적인 전략을 취한다. 경쟁 수컷이 많으면 복합울음의 빈도를 높이고 적으면 하지 않는 식이다. 이런 절대적 차이보다 상대적 비율로 우위를 점하려는 행동을 베버의 법칙이라 하며 이는 과도한 성적 미 진화의 브레이크로 작용한다. 

 성적 미학은 감각기관을 자극한다. 그리고 동물의 감각탐지는 크게 시각, 청각, 후각이 있다. 공작의 화려한 날개나 큰 덩치, 뿔등은 시각적 요소다. 구리고 새의 울음소리, 인간의 노래, 통가라 개구리의 울음을 청각을 자극한다. 다만 시각과 청각은 쾌감센터로 보내지기전 두뇌 하부의 중계국을 거쳐 더 많은 처리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후각은 다르다. 후각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쾌감센터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물들은 시각과 청각 정보가 보내주는 미에 대해서는 계산하고 고민하나 후각정보에 대해서는 본능적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즉, 효과가 가장 직접적이고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서로의 우월한 유전자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 유전자가 발현된 간접적인 모습을 보게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잘 탐지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후각에 의해서다. 인간의 몸에는 주조직적합성 복합체(MHC)라는 것이 있다. 이는 우리 면역 반응에서 기능을 하는 유전자 집합이다. 이들은 병원체나 기생충과 같은 이질적 형태의 세포를 식별하고 그것들이 확인되면 신체에 경고를 보내 t세포로 하여금 침입에 맞서게 하는 것이다. 

 MHC 유전자가 엄청나게 다양한 적군과 아군을 정확히 구분하려면 변이를 아주 잘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척추동물에게서는 MHC가 가장 변이를 많이 하며 상대방이 자신과 상이한 MHC를 가질 수록 자녀의 변이가 심해져 면역력이 강해지게 된다. 그리고 MHC보유 동물들은 바로 상대방의 체취로 이 MHC를 감지한다. 

 한 티셔츠 실험에서 남성들은 거의 3-4일간 씻지 않은 상태로 티셔츠를 입었다. 그들의 채취가 충분히 밴 티셔츠의 냄새를 여성들에게 맡게하였는데 여성들은 이 실험에서 자신과 상이한 MHC유형의 남성 채취를 더 매력적으로 느꼈다. 때문에 MHC차이로 인한 성적 매력도의 차이는 다른 성적 미학과는 다르게 매우 상대적인 요소가 된다. 나에겐 좋은 것이 남에게는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동물의 성적 미학에는 시간과 기회도 하나의 중대한 변수로 작용한다. 동물에게 상대방을 탐지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의 성적 미학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기준도 까다롭다. 하지만 시간과 기회가 없다면 그것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기준도 한없이 낮아지게 된다. 이는 매우 당연한 것으로 번식의 기회를 아예 상실하는 것 보다는 미덥지 못하더라도 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이다. 퉁가라 개구리 암컷은 한번 번식 기회를 놓치면 무려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기에 고르고 고르다 결국 어려우면 주변의 아무 수컷이나 잡게 되는게 결국 이득이 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한 실험에서 술집에서 이성에게 매기는 점수 실험을 실시하였는데 초반에는 정상적이던 점수가 술집 마감시간이 높을 수록 치솟았다. 기회도 중요해서 남성은 가임기인 여성의 사진을 더 매력적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여성 자신도 가임기에 더 톤이 높고 매력적이며 여성스럽게 목소리가 변화한다. 또한 여성은 가임기일수록 다른 여성의 매력을 더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금전적 보상도 공유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여성은 남성과 다르게 폐경하면 생식능력이 사라진다. 때문에 여성은 남성보다 마감시간 효과가 이르게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여성은 중년이 되어 갈수록 섹스에 대해 더 많은 환상을 갖게 되고 실제로 더 많은 남성과 섹스한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성적 미학에는 배우자 선택 복제효과도 있다. 모든 암컷과 수컷에게는 배우자는 잘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유전자의 전달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엔 자신만의 검증과 성적 미학 기준도 중요하게 자리하지만 다른 개체의 선택도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할 수 있다. 때문에 한 수컷이 다른 암컷에게 선택된다면 또는 심지어 많은 암컷에게 선택된다면 이는 일반 암컷의 눈에 매우 매력적인 요소로 자리하게 된다. 그래서 암컷들은 또래의 선택을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는 매우 특이하게도 다른 종과 섹스하는 모습을 보아도 작용한다. 세일핀 수컷은 아마존 암컷과도 어울린다. 물론 둘은 비슷한 부류지만 엄연히 다른 종으로 세일핀 수컷은 아마존 암컷과 교미해도 자식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일핀 수컷은 당연히 세일핀 암컷과 어울리는 빈도가 훨씬 높긴 해도 적지 않은 빈도로 의도적으로 아마존 암컷을 노리기도 하는데 이는 명백히 배우자 복제 효과를 노리는 행동이다. 실제로 세일핀 암컷들은 아마존 암컷과 어울리는 세일핀 수컷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아름다운 형질과 그를 선호하는 미학이 짝을 이루는 방식을 정리하면 세 가지다.

 기존의 형질이 선택자에게 이익을 주어 선택자들이 그에 대한 선호를 진화시키는 경우다. 가령 수컷 사슴의 작은 뿔이 육식동물에 대한 대항력을 높여 종의 생존을 높이는데 기여한다면 이를 암컷이 성적 미학으로 인지해 더욱 폭발적으로 진화하는 형태다. 두 번째는 형질과 선호가 동시에 진화하는 것이다. 어떤 종에서 갑작스레 새로운 형질이 나타났는데 이럴 선호하는 암컷의 선호도 같이 나타나 이 형질이 진화하는 경우다. 세 번째는 어떤 형질이 진화할 때 그것이 숨겨진 선호를 이용하여 즉각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경우다. 한 물고기 종은 꼬리 지느러미 부분에 긴 형태의 검 모양을 선호하여 수컷의 꼬리 지느러미에 긴 검 모양의 줄무늬가 진화했다. 반면 근연종은 그런 모습이 수컷에게 나타나지 않았었는데 실험자가 한 수컷에게 그런 모양의 줄무늬를 부착하자 암컷들에게 큰 선호를 받게 되는 경우다. 이는 숨겨진 선호로 우연히 한 수컷이 그런 형질을 나타내게 되면 급격히 선호를 받아 진화하게 된다.

 책은 성적 선택과 이를 위한 성미학에 대한 재미난 지식과 원리가 가득하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예가 많기를 기대했는데 애초에 실험에 적합하지 않고 상당히 많은 요소가 성적 미학으로 자리잡고 있는 인간인지로 기초적인 내용외에도 대개 동물의 내용인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척이나 재미있게 볼만한 책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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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지음 / 퍼블리온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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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설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재밌었다. 주제도 그렇고, 이야기도 그러하며 만들어낸 세계도 완성도가 이전보다 더욱 높아졌다. 전작 '지구 끝의 온실'도 환경과 관련한 주제였지만 이 책도 사실상 그렇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환경파괴를 만들어낸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듯 하기도 하다.

 현대 인간 사회는 개별자로서의 인간 존재와 협력자로서의 인간 존재 중 사실상 전자가 승리한 상태다. 서구 문명은 인간을 독립적 이성을 갖춘 존재로 인식하여 자연환경과 분리시켰고, 그들의 과학 역시 그러한 전제조건과 분리되고 독립적이라 생각하는 실험 속에서 발달했다. 반면 다른 지역은 좀 더 주변 환경과 스스로의 문명을 강하게 결속시키는 형태로 존재하곤 했다. 

 하지만 서구 문명의 이룩한 과학 기술이 더 강력했기에 이들은 다른 문명을 침탈했고, 각성한 다른 문명은 서구를 지난 200년간 추종했다. 그래서 지금 거의 모든 인간은 개별자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환경을 이용한다. 그 결과 인간의 개체수는 상당히 늘어났지만 다른 생물들은 설자리를 잃었고 엄청난 환경파괴와 가해자인 인간 자신도 위협을 느낄정도로 온난화로 인해 지구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반면 가해자인 인간은 자신의 이런 가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인 온난화가 자신을 침탈하자 그제서야 미온치 않게 반응하는 형국이다. 이러서는 안된지 않을까, 인간 자체의 인식과 정체성이 협력자로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작가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책의 세계는 암울하다. 언제인지 모를 근미래 우주로부터 일종의 균류로 추정되는 것들이 지구로 침투한다. 이들은 우주를 떠돌면서 그 행성에 자신들을 뿌리내는 종 같은데 균류들이 그렇듯 제한없이 세균이나 바이러스보다도 무섭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침투한다. 침투된 생명체들은 변이를 일으켰다. 특히 인간은 자아를 잃고 광폭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우주 균류들, 아니 범람체라 부르는 이것들이 내뿜는 포자롤 광증 아포라 부르면 두려워한다.

 결국 인간은 이상하게도 범람체들이 침투하지 않는 지하(오히려 좋아할 법한 장소인데)에 몇몇 기지를 건설해 간신히 문명을 유지해나간다. 하지만 지하도 아니아. 환기구나, 통로 등 갖가지 경로로 범람체는 침투해왔고, 그 결과 지하기지는 몇몇 구역을 상실하곤 했다. 그리고 기계는 범람체의 확산을 막기 위해 광증아포에 침투되 광증을 보이는 이들을 실시간으로 체포하는 구금 기계가 돌아다니고 있다. 

 주인공은 태린이라는 여자아이다. 광증에 지나칠 정도로 강한 저항성을 보이는 태린의 꿈은 파견자이다. 파견자는 책 제목이기도 한데 이들이 하는 일은 그 위험한 지상으로 나아가 범람체를 채집하고, 인간의 영역을 늘리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일이 위험한 만큼 이들에게 높은 지위와 보수가 따랐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태린이 파견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은 이제프 파로딘의 존재때문이다. 그녀는 제1의 파견자로 태린이 어릴 적 보살펴주고 지상에 대한 꿈을 심어준 소위 멘토 이기 때문이다.

 태린은 파견자 시험에 임한다. 하지만 이즈음 태린에게 이상증세게 나타나는데 난데 없이 무슨 소리가 뇌리에 울리는 것이었다. 태린은 시험 중 이 존재로 인해 패닉에 빠져 이론 시험을 망치고 만다. 하지만 태린은 뇌리의 존재에게 이름을 붙이고 대화를 시작하며 그와 소통한다. 그리고 그를 이용해 가장 어려운 실전 시험을 1등으로 통과한다. 하지만 태린은 자신이 솔이라 명명한 이 존재에 의해 실전시험에서 포집한 위험한 범람체를 지하도시 한복판에서 풀어버리는 범죄를 범하고 만다. 

 그로 인해 태린은 추방의 위기에 놓이나 이제프가 나서 태린은 파견자로 임명하고 가장 위험한 실전임무에 투입하는 조건으로 그를 구한다. 그렇게 태린은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향하고 범람체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그를 다루는 과정으로 치닿는다. 

 작가가 내놓는 결말은 좀 재밌기도 하고 고민스럽다. 어쩌면 그런 선택이 개별자로 변해버린 인간을 치유할 유일한 방법같기도 하다. 무척 재밌는 소설로 두껍지만 높은 가독성으로 빠르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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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역사는 독특한 점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왕조의 수명이 유독 길다는 것이다. 신빙성이 부족하지만 고조선은 거의 2천년, 고구려, 백제 700년 정도, 신라는 900년, 발해 200년, 고려 500년, 조선 500년이다. 중국은 거의 대부분의 왕조가 200-300년 정도의 수명을 보인다. 한국은 이에 비하면 무척이나 긴 편이다. 고작 200년이었던 발해의 수명이 상당히 의례적으로 느껴진다.

 가장 최근의 왕조는 역시 조선과 고려다. 둘 다 강역이 한반도 정도로 만주 지역을 상실한 왕조였고 역사도 500년 정도로 비슷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거의 조선에만 머물러 있다. 대부분의 사극이나 영화, 책 등의 저작물은 고려가 아니라 조선이 주제다. 이유는 아무래도 두 가지 일 듯 하다. 아무래도 시기적으로 훨씬 가까워 관심과 공감이 가고(조선은 가깝게는 100년에서 멀면 500년 전이지만 고려는 여기에 500년을 더 멀리 해야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는 막강한 기록물 덕분에 창작물로 다루기 무척 편하기 때문이다. 

 역사에 관한 책을 조금 보았지만 고려 관련 저작물이 적어서 인지 나도 고려에 관해 본 책은 위 6권 정도가 전부다. 물론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공영방송에서 고려-거란 전쟁이 인기 속에 방영 중이기에 박시백의 고려사를 오늘 들춰보았다. 박시백은 조선왕조실록도 거의 10년 동안 그렸는데 기록이 풍부해서 1권 당 거의 왕 1명에 해당하는 분량이었다. 하지만 이번 고려사는 역시 기록이 부족해서 딱 5권으로 끝나는 듯 하다. 4권까지의 내용이 원갑섭기이니 아마도 5권이 마지막일 것이다.

 고려는 조선과 제법 다르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고, 유지기간 내내 중원이 안정되었기에 철저히 사대할 수 밖에 없었다. 신분제는 고려보다 발전했고 능력주의 국가였지만 지나친 유학에 대한 신봉이 자주성과 스스로의 발전, 국제관계에서의 뒤쳐짐을 낳았다. 특히, 근대 들어 해양세력의 대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중국에만 의지한 나머지 임진왜란을 겪고 급기야는 일본에 의해 망국하고 말았다. 

 고려는 불교국가다. 물론 이는 신앙과 기복의 측면이고 통치이념은 조선 만큼은 아니지만 유학에 의지했다. 유지 기간 내내 중국이 안정되지 못했기에 자주성은 조선보다 강했지만 강한 북방왕조에 의해 끊임없이 침략당했다. 그래서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국시에 걸맞지 못하게 만주로의 진출을 커녕 내내 방어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다. 골품제와 매달렸던 신라에 달리 과거제를 도입하여 신분제가 진일보 하였다.

 박시백의 고려왕조 실록은 역시 태조부터 시작한다. 태조 왕건은 뛰어난 능력으로 통일을 이뤄낸다. 견훤은 강대한 적이었는데 태조는 구 신라 세력과 호족 세력에 유화책을 견훤은 강경책을 펼쳤다. 이것이 차이가 되어 태조에겐 여러 세력이 귀순해왔고, 견훤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견훤은 후계구도에 실패하고 큰 아들 신검의 쿠데타로 실각하며 통일이 이뤄진다 견훤이 후계를 제대로 세우거나 집안 단속 잘하기, 혹은 신라 세력에 유화책을 썼다면 통일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태조의 이런 유화책은 통일엔 성공적이었지만 고려 초기에 적잖은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태조는 호족의 기득권을 모두 보장하고, 왕씨성을 남발했으며, 많은 호족 딸을 부인으로 삼는다. 그렇다보니 2대 임금 혜종, 3대 정종이 정치적 격랑에 휘말려 빠르게 승하한다. 아마도 암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4대 광종이 강한 힘으로 노비안검법등을 시행하고 호족 세력을 숙청하기 시작하자 안정을 찾는다. 고려 초기엔 중국의 정세가 흔들려 많은 중국, 발해, 여진, 거란 귀화인이 고려로 들어온다. 고려는 이들은 잘 받아들여 국력을 강화한다. 

 고려는 성종대에 이르러 상당히 안정된다. 하지만 거란이 침공한다. 이들은 북방을 평정하고, 송을 치려했는데 그려려면 후방의 고려를 평정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고려 조정은 거란에 적대적이었고 쉽게 호응하지 않았다. 이에 3차례에 걸친 침입이 이뤄지나 고려의 군사력은 막강했다. 거란은 진군할 때 마다 고려의 여러 성을 점령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진군해도 후방이 불안했고, 늘 늘 이로 인해 급습을 받거나 격퇴되었다. 3차침입에선 강감찬에 의해 귀주에서 10여만이 섬멸된다. 이 사건 이후 거란과 고려의 관계는 안정된다. 고려는 거란의 연호를 써주며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었고 거란 역시 고려의 매운 맛을 본 후 더이상 침공하지 않는다

 이후 준동한 것은 여진이었다. 윤관과 척준경을 필두로 이들을 어렵사리 제압하고 동북 9성을 쌓지만 워낙 성간 거리가 멀고 변방이라 관리가 어려웠다. 여기에 거란 전쟁으로 국력이 크게 소모된 상태였다. 결국 여진의 요청에 고려조정은 9성을 내준다. 20만 대군이 수년에 걸쳐 어렵게 얻어낸 땅이었다. 여진은 이후 거란을 멸하고 금을 세운다. 하지만 금은 요처럼 고려에 고압적이었으나 침공하지 않았다. 고려의 강성함, 그리고 여진황제의 조상이 고려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따른다. 하여튼 고려는 거의 100여년간 모처럼의 평화를 누린다

 하지만 평화는 내부에서 깨어진다. 어리석은 임금 의종이 즉위하는데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고 방탕했다. 고려판 연산군이랄까. 그는 재위 20년이 넘어 무신 정변에 의해 실각한다. 이후 고려는 난장판이 되는데 정중부, 경대승, 이의방, 이의민 등 집권자가 계속해서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이 난장판은 최충헌이 최씨무신정권 시대를 열며 안정된다. 최충헌은 정치적 감각이 있어 정국을 안정시키고 자신의 입맛대로 정부제체를 조직하고 세대를 넘어서는 장기집권 시대를 열게 된다.

 최충헌의 아들 최우, 그리고 최항, 최의까지의 시대다. 그리고 이 최씨 집권 시기에 원이 일어선다. 초기 고려는 원, 거란과 협력하여 금의 잔당을 토벌하는 등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원은 고려에 슬슬 무리한 요구를 시작한다. 이에 원 사신 저고여가 살해당하고 이를 빌미로 고려를 침공한다. 고려는 최씨무신정권으로 인해 상당히 국력이 약화된 상태였다. 여기에 원은 사상 최강의 군대로 고려는 전역이 초토화된다. 고려 조정은 사신을 달래어 몇 차례 원의 군대를 물리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최우에 의해 강화도로 천도한다. 최우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선 원에 반드시 저항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최우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고 육지를 버리면서 백성들은 생지옥에 빠지게 된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식량이 부족했고 고려의 전술은 청야전술로 삶의 터전도 버려야 했다. 각지에서 살육 약탈이 일어났고, 원으로 끌려간 고려 백성만 수십만이었다. 이 기간은 거의 40년에 달하는데 어쩌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피해는 이 때에 비하면 오히려 약했을 거란 생각마저 든다. 

 최씨 정권이 최의 때에 끝나면서 강화가 이뤄진다. 고려 원종은 이후 황제가 되는 쿠빌라이이 잘 항복하면서 그의 관심을 산다. 그래서 고려는 작은 나라임에도 오래 버텼고 무엇보다도 항복을 잘 했기에 국력에 비해 상당한 대접을 받는다. 쿠빌라이는 원종의 요구를 많이 들어주었지만 남송과 일본의 점령에 집착한다. 남송은 정복하지만 일본 원정은 태풍에 의해 계속 실패한다. 고려는 배를 만들고 병사를 보내는등 시달리자만 쿠빌라이가 죽고나서는 이 문제가 끝난다.

 고려는 제법 대접을 받았지만 원의 제후국으로 상당한 간섭을 받았다. 이전에 양계 지역이었던 곳들이 쌍성총관부와 동녕부로 원의 영토로 전락하고 삼별초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탐라도 빼앗긴다. 고려의 왕들은 원의 공주와 혼인하였고 어려서 원에서 자라나게 된다. 고려는 이전까지 중국의 왕조들에게 제후국을 칭하면서도 사실상 황제에 해당하는 정부조직과 칭호를 사용해왔는데 이게 모두 불가능해진다. 또한 왕은 원에 친히 입조하였고 원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왕이 교체되는 일도 많았다. 이러다보니 고려가 아닌 원에 충성하고 배신하는 자들이 많았다.

 원은 고려에 처녀를 요구하기도 하였으며 환관을 요구하기도 했다. 고려는 이 때만 해도 조정에서 거세된 환관이 없었는데 원의 요구에 의해 환관과 처녀는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들 처녀와 환관이 원에서 처신이 좋았고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고려 여인들과 환관들이 원제국 내에서 상당한 권력을 차지하는 일이 발생했으며 이에 고려에서는 딸과 자식을 환관으로 만들어 원으로 자발적으로 보내는 일도 성행하게 된다. 

 책의 4권까지의 내용은 원간섭기 까지다. 이후 원이 무너지며 공민왕이 들어서고 고려의 마지막 개혁이 실패하며 조선으로 넘어가는 내용이 5권의 내용이 될 듯하다. 아무래도 조선왕조실록의 1권과 상당히 겹치게 될 듯한데 고려의 입장에서 망국을 자세히 서술하면서 차별성을 두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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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보호자의 돌봄 아래서 시작한다. 이 때 보호자인 부모는 내가 무한한 돌봄과 보호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자식에게 무척이나 절대적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그런 부모의 그늘은 정신적으로도 깊게 남아서 거의 평생을 간다. 그래서 사람은 다 늙은이가 되어서도 죽는 순간 부모를 찾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의 부모가 언젠가는 돌아가시리라는 걸 염두에 둔다. 하지만 이는 다소 막연한 생각에 불과해서, 막상 상황이 닥치면 모든 것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실제로 오래도록 부모의 절대적 돌봄을 받다가 갑작스레 거꾸로 돌봄을 주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자식들은 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부모에 대한 돌봄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식에 대한 돌봄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는 자식이 정상적으로 태어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자식이 장애인으로 태어나거나 장애인이 되어 더욱 많은 돌봄을 요구하는 상태가 되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책' 다시 만날 때까지'와 '내 인생의 무지갯 빛 스승', '자폐 아빠와 아들의 작은 승리'는 장애인 자식을 만나 자식의 인생을 산산히 갉아넣어가며 버티고 또 버티는 부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자신의 생애를 거의 포기하면서도 자식을 놓치 못하고, 그리고 그러면서 자식과 더불어 자신의 매우 어려운 새 인생을 그려나간다. 

 돌봄 문제는 고령화가 전 세계에서 가장 심한 한국사회에서 가까운 시일내에 가장 커다란 사회 문제로 대두할 것이 분명하다.(여기에 한국은 그 적은 출산률 속에서도 상당한 비중으로 선천적 장애아들이 태어나고 있다.) 책 '일하는 딸들'에서는 이런 부모 돌봄 문제에 관한 책이다. 책에는 세계 최고 선진국이지만 복지에서만큼은 소홀한 미국답게 저자 자신이 돌봄을 직접 해결하고 고민해야할 여러 문제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소회가 담겨 있다. 

 미국도 고령화가 심각하긴 매한가지다. 인구 3억 4천만 미국 인구중 매일 1만의 미국이 65세가 된다. 2050년이면 이 고령층이 지금의 2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현재 170만명인 돌봄 제공자는 2030년엔는 무려 570만에서 66만에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정에서 수행하는 재가 돌봄 서비스는 대부분 건강보험이나 저소득층 의료 보호예산으로 제공되는데 두 곳 모두 벌써 재정압박상태라 향후의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고령하가 덜한 미국이 이럴진데 노인인구만 급격히 늘어날 한국은 어떨지 상상이 어렵다. 

 결국 이런 국가재정과 사회안전망의 빈큼은 가족의 무보수 노동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에서 무보수로 노인이나 18세 이상 장애인을 돌보는 미국인은 무려 4400만 이상이다. 이들은 대개 여성이고 40대 후반이다. 최근 남성 가족 돌봄 제공자도 늘고 있지만 아직 여성에 비하면 적다. 돌봄 제공자의 역할은 평균 4.6년이다. 그리고 이들이 돌봄에 투여하는 시간 주당 평균 24.4시간이다. 이 무보수 돌봄 노동자는 갑작스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돌봄에는 의료, 법률, 금융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돌봐야 하니 당연히 의료상식이 요구되고, 부모가 온정신이 아니거나 거동이 되지 않으면 당연히 법률적 대리와 금융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도움을 주는 곳은 공식적으로 거의 없다. 그렇다보니 돌봄 제공자들은 22%가 이로 인해 건강의 악화를 느끼게 된다. 

 이런 과도한 돌봄 업무로 돌봄 제공자의 70%는 자신의 직장 업무를 조정하게 된다. 그들은 부담이 적은 업무를 택하고 무급휴직을 하며, 조기 퇴직하기도 한다. 그런데 돌봄 노동자의 상당수가 40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40대는 인생 그 어느 순간보다도 가장 돈을 많이 필요로 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런 일의 감축으로 인해 이들은 많은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 소득이 줄고 각종 직장 보험혜택도 줄기 때문이다. 

 돌봄은 끝을 알 수 있는 것와 아닌 것이 있다. 끝을 알 수 있는 돌봄은 노령화한 부모가 암 등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수년 내에 죽음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이며, 끝을 알 수 없는 돌봄은 자신보다도 어린 장애자식 돌봄이나 부모인 경우, 노화, 뇌졸중, 치매 등으로 인한 경우로 스스로 아무것도 할수 없어 돌봄이 필요하지만 당장 돌아가실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다. 양자의 차이는 매우 크다. 전자는 그래도 힘들지만 끝이 보이기에 버텨내게 되지만 후자는 정말로 언제까지 내가 이일을 해야하는지 가늠하기 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년기 가족을 돌보는 평균기간은 4년이지만 무려 15%가 10년 이상 이일을 수행하게 된다. 

 이런 어려운 돌봄을 해결하려면 사회적 노력과 개인적 노력 양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미국은 무급휴직을 허용하지 않는 몇 안되는 나라다. 사회적으로 이 가치를 인정하려 노력해야 한다. 미국에서 가족 돌봄 노동자는 무급으로 연간 무려 370억 시간을 사용한다. 최저시급으로 계산해도 무려 4700억달러의 비용이다. 그리고 미국의 기업은 기업에서 일하는 개인의 연간 돌봄 제공으로 생산성 손실이 무려 171억에서 336억 달러에 이른다. 때문에 현명한 기업 관리자라면 돌봄 제공 직원을 지원하여 이들이 생산성 손실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책에는 사회적 지원이 워낙 미비해서 그런지 개인적 방책을 강조한다. 개인이 돌봄에 실패하는 것은 대부분 사회가 돌봄을 강하게 요구하고 그것에 대해서 이타적 이미지 심지어 축복이라 칭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압박과 기대에 개인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 하나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다. 그 개인은 자신의 삶은 살아가는 사람이고 부모이자, 직장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돌보고, 여기에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저자는 돌봄 노동자는 자신의 삶과 돌봄 사이에 정확한 경계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다음의 4가지 질문을 강조한다.

 1.우선 부모님에 대해 내가 아는 어떤 정보가 의사 결정에 유용한가. 

 2.부모님이 살아온 방식을 바탕으로 볼 때 갖아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3.부모님께 최선이라 판단되는 것은 무엇인가?

 4.돌봄제공자로서 내게 최선이라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부모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 신호를 늦게 볼 수록 사태는 악화하고 돌봄의 강도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미개봉상태로 쌓은 우편물들, 잦은 부모의 넘어짐, 식사 생활의 변화(갑작스레 요리를 하지 않고, 유통기한 지난 음식이 냉장고에 있거나 냉장고거 텅비어 있음), 기억력의 감퇴, 정돈이 안된 상태, 운전 능력의 저하다. 이는 부모가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적 능력, 인지적 능력이 감퇴되었음을 보이는 징후다. 

 저자는 더불어 돌봄 노동자이자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권리장전을 제시한다. 

 당신은 당신의 삶의 권리가 있다.

 당신은 경계를 설정한 권리가 있다.

 당신은 생활비를 벌 권리가 있다.

 당신은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당신은 건강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당신은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로 지닐 권리가 있다.


 한국은 저출산에 급격히 고령화하고 있다. 수십년 내로 65세 이상 인구는 넘쳐나고 이를 돌볼 가족 돌봄 노동자마저도 현격히 줄어들 것이다. 여기에 한국은 노인 빈곤률이 세계 최고이고 국민 연금등의 사회 안전망도 형편없다. 이런 상황에 평균 수명은 세계 5위 안에 든다. 적은 가족 돌봄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뒤로하고 부모의 부양에 뛰어들게 될 가능성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높은 것이다. 아직 여유가 있을 때 이를 개인에게 맡기지만 말고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놔야 할 것이다. 부모 돌봄에 매달리게 될 젊은이가 출산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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