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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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엔 대충 1000권 책이 있다. 결혼하고 집이 생기고 서가도 하나 둘 들여놓으면서 마구 채워넣었다. 그 땐 빈 서가를 채울 욕심에 책 구매에 돈도 많이 썼지만, 막상 책을 고르는 눈은 사실 별로 없었다. 그저 신간이라면 마구 샀던 것 같다. 그러다 서가가 다 들어차고, 마누라 눈치도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심지어 이삿짐 센터 눈치도 보이기 시작했다. 짐도 별로 없는 집인데 책 땜에 이사 단가가 높아지곤 했다. 사실 내가 들어보아도 책은 제법 무겁다. 특히, 한국책은. 그래서 전자책으로 눈을 돌렸다. 크레마란 것도 사고 가상의 서가에 책을 채워넣었다. 이것도 첨엔 꽤 재밌었다. 근데 불만족스러웠다. 보고 싶은 책이 다 전자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가격이란것도 생각보다 싸지 않았다. 초기엔 반값도 많이했고 쿠폰도 많았는데 다 사라졌다. 거기에 무엇보다 인간동물의 소유욕을 제대로 채워줄 물성이 부족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욕심인게 냉정하게 마음 먹고 헤아려보니 천 권의 책 중 막상 내가 읽은 책이 겨우 60-70%에 불과했다는 것이다.(물론 중고로 처분한 것도 제법 되지 그것까지 넣으면 비굴하게 수치를 3-4%는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지라 다행히 장르에 따른 차별은 없었다. 전자책도 비슷했다. 전자책은 한번 보면 집중적으로 보지만 안보기 시작하면 계속 종이책만 보다보니 이런일이 생겼다. 있던걸 소비해야한다는 마음이 드는데 그래도 신상이 계속 나오니 유혹을 떨쳐내기 쉽지 않다. 마누라가 서가 수를 제한하지 않았다면, 집이 저택마냥 컸다면 이 소유욕을 계속되었을 것 같다.

 하여튼 이 책 작가수업도 오래묶은 책을 꺼낸 것이다. 이유는 재고를 처리해야하는데 일단 쉬워보여서랄까. 책은 무려 2010년 출간이다. 그것도 오래되었다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사실 이 책은 아득히 오래전체 출간된 것이었다. 타자기가 나오는데 타자기 욕을 한다. 글을 원고지에 조용히 써나가야하는데 타자기의 기계소리와 당기는 소리 그 기계음이 글쓰기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컨디션과 기분전환, 여러 가지 이유로 타자기가 두 대는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은 기계라는 요소만 고려한다면 1980년대까지만 유효한 것이다. 

 물론 글쓰기엔 시대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을테니 제법 쓸만한 소리도 있었다. 진정한 독창성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에서만 나온다는 것. 봉준호 감독이 가장 세계적인게 가장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다. 그래서 모든 소설은 결국 자전적일 수 밖에 없는데 거기서 자신의 경험을 끊임없이 형상화하고 재결합해 꽤 긴 분량의 훌륭한 책을 이야기로 객관화해내는게 좋은 작가가 된다.

 작가에겐 네 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글쓰기 자체의 어려움과 한 책 작가, 가뭄에 콩 나듯 쓰는 작가, 기복이 심한 작가다. 이건 현대에도 완전히 유효한듯 하다. 작가들은 한 번의 등단이 너무 어려우니 첫 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기화해버리는 듯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있다. 한 책 작가나 가뭄에 콩 나듯 쓰는 작가가 그러할 것이다. 장강민 작가도 당선합격계급에서 첫 작이 매우 훌륭하더라도 다음 작이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진정한 작가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무의식과 의식을 잘 활용하는 이중적 삶이 필요하다고 한다. 무의식은 작가의 감수성과 창작의 원천, 천진함의 근원이고 이를 시대와 사회에 맞추어 어른스럽고, 분별력 있으며 절제와 공정함으로 밀어넣는 것이 의식의 역할이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무의식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 감정, 사건, 장면, 성격과 관계의 의미를 모두 불러내서 글로 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의식은 그런 무의식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자료를 관리하고 통합 추려내는 역할을 해야한다. 예를 들어 무의식이 작가에게 전형적인 인물, 전형적인 장면, 전형적인 감정반응등 모든 종류의 전형을 제시하면 의식이 그 가운데 예술 소재로 삼기에 너무 개인적이거나 너무 보편적인 것을 쳐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단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내면 의식을 이를 철저히 분석하고 곁가지를 쳐내고, 다듬고, 내용을 보강하고, 눈길을 끄는 요소를 덧붙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의식이 이야기를 최종통합한다.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글을 만들고 싶은 욕망에 많은 글을 보고 읽고 쓰고 들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책은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 말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너무 많은 말에 둘러싸여 살다보니 자기만의 호흡은 무엇이고 자신에게 진정한 흡입력을 갖는 주제가 무엇인지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참모습을 알아야 한다. 삶의 중요한 문제 대부분에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한다면 솔직하고 독창적이며 독특한 이야기를 구성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힘들게 이야기를 구성했어도 자신은 아직 글을 객관적으로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글을 완성한 후 당분간은 글을 한 쪽으로 밀쳐두고 관심을 다른데로 돌려야하며, 기력이 회복되고 긴장이 풀린 후에 마음이 초연해지만 다시 자신의 글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전엔 보지 못한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작가의 재능이 다소 노력과는 관계 없어 보이는 무의식에만 의존한다면 작가는 타고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책은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되기엔 충분한 재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다만 차이는 이러한 재능을 활용하는 방법을 모른 다는 것이다. 즉, 재능은 느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활용법이 늘어나는 것이며, 보통의 사람이 가진 재능의 양이 평생을 다 쓰더라도 쓰지 못할 만큼 양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작가가 되거나 글을 써보려고 제대로 마음먹어 본적이 없기에 이런 류의 책은 사실 개인적으로 크게 다가오진 않는다. 하지만 막상 그런 마음을 언젠가 먹게 될지도 모른다면 참 어려운 일일듯하다. 강원국은 한 주제에 대해 자신이 막힘없이 열 시간은 떠들 준비가 되어야 책을 쓸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한텐 그런 주제가 없다. 그리고 그럴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 같다. 작가가 된다는건 참 힘든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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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0 1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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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0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0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 에게해에서 만난 인류의 스승 클래식 클라우드 9
조대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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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아테네 하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떠오른다. 소크라테스는 자연철학 중심이던 그리스 철학을 인간중심으로 되돌려 놓았으며 플라톤은 그런 스승을 죽인 아테네의 현실정치가 싫어 그 해결을 위해 이데아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스승을 역시 존경하면서도 정반대로 물질세계로 되돌아갔다.

 이런 기초적 사실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아테네 사람이고 그 지역의 중심인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의 변경인이었다. 그는 그리스 세계에서 아주 변방인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워낙 변방인지라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전쟁이라는 큰 전화도 피해간 지역이었다. 물론 페르시아 전쟁때는 상대편이 그냥 비껴진군했고,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선 적당히 중립을 지킨 것이 덕이긴 했지만 역시 중요한 지역은 아니었기에 이런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집안은 마케도니아 왕가와 각별한 사이였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가 유서 깊은 의사 집안인데다 마케도니아의 왕인 아뮌타스 3세의 궁정의사이자 친구였다. 아뮌타스3세는 필립포스2세의 아버지로 즉,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할아버지다. 당시 그리스는 도시 국가의 황혼기였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은 끝났지만 전후에도 확실한 지배세력이 없어 서로 간의 갈등이 심했다. 이런 틈바구니를 마케도니아가 치고 들어온 것이다. 그리스 인들은 처음 마케도니아를 미개지역으로 무시했지만 그들의 군사적 행보에 공포를 느끼며 아테네는 반마케도니아 정서를 갖게 된다. 물론 친마케도니아 파도 있긴 했다.

 이런 분위기이니 그리스 아테네 사람도 아니고, 중심이 되는 폴리스 출신은 더욱 아니며, 친마케도니아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서 변경인으로 살아갈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학교인 리케이온도 그래서인지 아테네 바깥쪽에 위치했다.

 아테네인들은 이런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중적 태도로 대했다. 마케도니아에 박살난 테베처럼 자신들이 망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준 것에 대해 감사해하면서도 반마케도니아 정서로 인해 경계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도 유언이나 여러 기록에서 아테네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원히 존재하는 천체와는 달리 식물과 동물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고 보았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식물과 동물이 천체에 비해 고결함이 떨어지는 존재라 생각지는 않았다. 그저 양자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았을 뿐이다. 이러한 자연적 실체의 복합성과 가변성은 대상의 고유한 존재 방식을 나타낸다고 보았는데 여기서 그의 4원인설이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설은 변화하는 동물이나 식물, 사람이 만들어낸 물체등에 해당한다. 질료와 형상, 작용인과 목적이 4원인이다. 질료는 물체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형상은 그 물체를 형상하는 원리이며, 작용인은 그 물체를 만든 것, 목적은 물체가 생겨난 이유나 원인이다. 집을 예로 든다면 집의 질료는 집의 건축 자재다. 목재, 콘크리트, 유리, 벽지등일 것이다. 형상은 집의 구조와 기능이다. 작용인은 집을 지은 건축가가 되며 목적은 집의 존재 원인인 편안한이나 거주, 안전등이 된다. 

 이 4원인설은 과거에 만든 그럴듯한 비과학적 설명으로만 여겨졌지만 책의 저자는 현대과학과 상당히 합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생명을 예로 든다면 생명의 질료는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된다. 형상은 물체를 발생시키고 분화시키는 설계도인 DNA가 되며 작용인은 부모가 된다. 그리고 목적인 생존과 번식이 된다. 어느 정도 현대생물학과 진화론을 설명할 수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경우 여성의 생리혈이 질료가 되며 남성의 정액에 드러있는 프네우마란게 로고스에 따라 인체를 발생시키는 작용인이 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인간과 물체가 생겨나는 원인에 대해서 파악했다면 살아가는 목적인 행복이 다음차례였다. 그리고 그 행복을 구현하는 방법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윤리학, 국가의 차원에서는 정치학의 문제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이성에 의한 보편타당한 도덕 법칙을 찾는 것이 아닌 덕에 기초한 덕 윤리학이다. 인간으로써 적절히 살기 위한 여러 덕목이 있고 이런 덕목을 적절히 지켜나가는 것이 중용이다. 이 윤리학은 저절로 정치학과 연결되는데 개인의 중용이라는 것이 개인 스스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누가 무엇을 지배하는지에 따라 왕정과 참주정, 귀족정, 과두정, 혼합정과 민주정으로 분류하였고 어느 것을 특별히 옹호하지는 않았다. 다만 집단지성을 강조하였고 그러면서도 집단의 선택이 때론 파멸적 광기로 치달을 수 있음도 지적했다. 그렇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혼합정치의 운영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그가 참고한 솔론처럼 모든 시민에게 민회와 재판에 참여할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제한하는 견해를 옹호했다. 

 책을 보면서 어설프게 알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삶에 대해 아주 조금 더 알게 된 느낌이다. 저자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그리스를 직접 방문해 주요 사진을 수록하며 그의 시선을 따라가는 부분도 좋았고, 설명과 삶이 적당이 실려 있어 가벼워 좋았다. 물론 저자가 진화생물학과 진화론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자꾸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불편한 부분이기도 했다. 

 지금의 그리스는 무척 힘든 시기라고 한다. 2001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이후 주력산업이 완전히 무너졌다. 관광산업과 일차산업에만 의지하고 있는데 국제무역질서에서 그렇듯 일차산업에 의존하는 국가는 싼 가격을 강요받고 이차산업이 강한 나라의 공산품을 비싼 가격에 사야 한다. 그리스의 상황이 딱 그러하다. 그래서 유럽연합 탈퇴를 원하는 국민들이 많은데 상위 소수의 기득권층이 연합유지상황에서 이득을 보고 있어 그 해결이 정치적으로 쉽지 않다고 한다. 과거 철학자들이 돌아와도 쉽게 해결되지 못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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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소셜 - 사피엔스에 새겨진 ‘초사회성’의 비밀
장대익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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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윈의 식탁 시리즈로 유명한 장대익 교수의 책이다. 사놓고 오랫동안 쟁여놓았다. 제목처럼 인간의 사회성에 주목해 왜 인간이 사회성을 갖추게 되었고, 그 부작용과 앞으로의 사회성에 대해 논한다. 저자는 동물의 사회성과 구분해 인간의 발전한 사회성을 초사회성으로 명명한다. 인간은 고난도의 공감이 가능하고 지식전수와 협력, 신뢰와 배려, 마음읽기,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초사회성은 문명이 커지면서 역설적으로 차별, 집단 따돌림, 편견, 동조, 불평등의 기원이기도 하다. 

 인간이 사회성을 갖게된 생물학적 기반은 거울신경세포다. 인간이 남의 행동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내가 실제로 그 행동을 할때 내 뇌속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매커니즘이다. 거울신경세포계는 남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기 전에 이미 내 뇌속에서 저절로 작동하는 공감회로다. 거울신경세포가 생겨난 것은 집단 생활때문이다. 집단 생활은 식량의 확보, 안전의 확보, 짝의 확보등 여러가지 일을 효율적으로 해결해준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라는 문제가 발생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거울신경세포다. 

 인간의 뇌는 침팬지의 3.5배에 달하는데 공교롭게도 인간이 이루는 집단의 크기가 바로 침팬지의 3-4배정도이다. 집단의 크기로 인한 관계의 증가가 거울신경세포 뿐만 아니라 인간 두뇌 크기와도 관련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공감은 선천적이지만 후천적이기도 하다. 다양성으로 인간의 공감능력을 높일 수 있다. 주변에 다양한 사람이 살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 공감의 대상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인 항상 같은 공간(아파트, 학교), 같은 교육제도, 남북갈등으로 인한 생각의 좁힘으로 인해 이런 다양성이 부족해진다. 공감을 키울만한 다양성이 부족한 환경인 것이다.

 옥시토신은 모성을 증가시키는 호르몬으로 정서사회문제를 겪는 아이들을 위한 옥시토신 스프레이까지 나온 상태다. 실제 옥시토신은 장기적인 짝 결속과 부모와 아이간의 애착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한 실험에서는 결혼 서약후 신랑과 신부, 그리고  그 가족들의 옥시토신 변화를 측정했다. 결혼 후 신부와 그 어머니는 약 25%정도의 옥시토신 수치증가를 보였다. 하지만 신랑은 옥시토신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신랑의 아버지는 소폭 상승했지만 신랑은 오히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90%나 증가했다. 결혼이 신부에게는 장기적인 애착의 약속을 신랑에게는 그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여러사람에게 드러내는 자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옥시토신은 친족간의 애착만 증가시키는게 아니다. 가족 뿐만 아니라 사회성도 증가시키며 특히 내집단의 선호성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반대로 옥시토신은 외집단에 대한 폄훼를 증가시킨다. 즉, 옥시토신은 내집단이나 가족 및 친족의 결속은 강화하나 외집단에 대해서는 폐쇄성을 증가시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아이에게 함부러 뿌리기전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인간에겐 이타성이 있다. 이타성은 포괄적합도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책에선 경쟁적 이타성을 강조한다. 이타성이란 친사회적 또는 이타적으로 보이려는 노력을 통해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 경쟁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사례는 인류역사에서 여러 번 드러났으며 지금도 진행중이다. 인간의 SNS행위는 많은 비용이 수반되는 행위인데 이는 현대판 지위를 얻기 위한 경쟁적 이타성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기부 역시 평판 구매의 한 행위로 보이는데 그래서 기부나 친환경 제품을 팔려면 유명인이나 CEO가 그것을 소비한다고 광고하고, 기금을 냈다는 분명한 표식을 만들어야 하며, 오히려 비싸다면 성공적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공감능력이다. 인간은 동물에 대해 공감하는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실험결과 대체로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이 농업종사자보다 동물에 대한 공감이 컸다. 아무래도 농업종사자들이 동물과 가까이 있긴 하지만 애완용보다는 고기나, 식량등으로 수단적으로 대하는 면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남자보다는 여자가 동물에 대한 공감이 더 컸다. 인간은 인간과 유사할수록 동물에 대한 공감이 커졌는데 이는 인간이 외집단보다는 내집단에 더 큰 공감을 보이는 것으 생각한다면 당연해 보인다. 연령도 변인이었는데 같은 사안에 대해서 노인이나 성인보다는 어린아이에 더 큰 공감을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인간의 사춘기정도에 머무른 공감능력이 미래 인공지능이나 로봇에게도 가능하고 보았다. 실제로 미국의 한 로봇업체는 4족보행 빅도그와 인간형 로봇에 대한 영상을 올렸다. 취지는 인간형 로봇과 4족보행 로봇의 기동 안정성을 광고하려는 의도였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빅도그의 경우 주변의 사람이 계속 발길질을 하였고 인간형 로봇의 경우 일을 수행하는 것을 계속 방해했다. 양자는 동물도 인간도 아님에도 사람들에게 큰 동정을 불러일으켰다. 어쩌면 개와, 그리고 인간의 비슷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로봇도 인공지능도 충분히 인간 공감의 동심원에 들어갈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방해요소도 있다. 불쾌의 골짜기다. 인간을 어설프게 닮으면 호감도가 올라가도 갑자기 하락하는 국면인데 이를 극복한다면 충분히 공감의 대상이 될수 있다는 것이다. 

 먼 미래에 과연 사람이 아톰같은 로봇을 공감하여 공존하는 시대를 열어갈지 아니면 차별하여 매트릭스 같은 세계를 만들어갈지 궁금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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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작품을 만났다 낭독극이 피었다
박지희.차성욱 지음 / 휴먼에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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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교육이 들어서면서 확실히 볼 만한 교육학 책이 많아졌다. 아마도 교육을 하는 방법이 교과서에만 갇혀있다 교사의 자율성과 다양성이 허용되어 여러 가지 시도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물이 누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디지털 활용 교육이 교육현장에 도입되며 그 활용이 많아 진것도 한 축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역사가 조금은 오래된 온책읽기도 그렇다. 최근 책들을 보면 여러 교육적 시도는 인상적이지만 교육에 대한 시선의 깊이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이 책의 저자가 아이들과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을 매우 깊어 무척 인상적이었다. 

 가령 많은 교육현장에서 책을 읽히고자 하는 것은 책 읽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인데 저자는 책을 읽는 순간에 다양한 것을 체험하고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게 하면 아이들이 책을 계속 읽게 된다는 식이다. 아무래도 한 차원 높은 생각이다. 

 저자는 공부란 몸과 삶으로 배우고 익혀서 어떤 능력을 키워나가 결국 그 능력을 활용해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교과서 속 지식 몇 가지 보다는 그것을 통해서 사물의 현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문제해결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나와 사물, 나와 사람간의 관계를 깨닫는게 결국 공부가 된다. 

 온작품 읽기에 대해서도 가르치는 것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사가 읽어주는 것을 중시한다. 온책읽기에서 같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따로 혼자 읽거나 모둠별로 읽을 경우 읽기 능력이 우수한 몇몇 아이들에게만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때문에 오랜 시간을 들여 같이 읽어야만 모든 아이들에게 의미가 생겨난다. 특히, 아이들은 긴 호흡의 이야기의 발단 부분에 몰입이 어려운데 같이 읽기는 이 몰입을 도와준다. 빨리 읽는 아이들이 이 느리게 같이 읽기를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미리 읽은 아이도 맥락을 읽고 늘 새롭게 읽기에 괜찮았다고 한다. 어릴땐 같은 것을 계속보아도 늘 새로운 법이다.

 같이 읽기가 또 좋은 점은 글자를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해방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글자를 읽는 것자체가 힘들어 내용파악이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편하게 들으면서 내용파악을 하게 되고 여유가 생겨나다보니 세세하기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하게 되고, 시야도 넓어져 그림이나 삽화도 자세히 보는 효과도 생긴다. 

 저자는 어린 시절에만 배울 수 있는 것이 힘이 약한 존재에 대한 감정이입이라고 주장하며 감정에 대한 수업도 강조한다. 아침마다 하는 나의 감정읽기라는 방법이 있는데 공책 반쪽 정도의 노트를 준비하고 아침마다 자신의 감정을 돌아 본 후, 공책에 핵심감정을 쓰고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써보는 활동이다. 감정사전활동은 그날 자신 안에 가장 많이 머무른 감정을 쓰고 어울리는 동시를 찾아 베끼는 활동이다. 그리고 서로하는 감정 읽기는 동시집 50권을 배치하고 지금 자신의 감정과 비슷한 감정의 시를 동시집에서 찾는 활동이다. 

 저자는 학교에서 최고의 복지란 바로 수업이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급식을 주고 방과후를 해주고 돌봄을 해주고 여러 가지 학습준비물을 준비해주는 등 매우 다양한 복지 지원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복지는 수업이라는 것이다. 수업에서 소외되는 것을 외면하면서 다른 것에 대해 지원하는 것 자체게 어불성설이라는 말인데 정말 뼈아프게 다가오는 말이었다. 분명 아이들에게는 모든 수업이 내게 의미가 있고, 앎과 깨달음이 있으며,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알아갈 수 있게 되는게 최고의 복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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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듯이 쓴다 - 강원국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
강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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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국의 글쓰기'를 작년에 보았다. 무척 인상적이었다. 큰 기대 안한 책이었는데 글쓰기에 대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말하기 책이다. 물론 쓰기에 대한 책인데 쓰기를 말하기처럼 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때문에 제목이 '나는 말하듯이 쓴다'이다. 매일 출퇴근하며 듣는 KBS라디오프로그램 중간 자투리 시간에 강원국씨가 나와서 말하기에 대한 내용을 주제별로 짤막하게 설명하는데, 그때 들은 내용 중 일부가 이 책에 등장해 다시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책에는 글쓰기 뿐만 아니라 직장생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오랜 경험과 생각도 녹아들어 있어 재밌었다. 가령 부하는 다섯 수준이라는데 상사가 말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쓰는 사람, 상사가 말하는 것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사람, 상사가 말하는 것의 의중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 상사의 말과 겨루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 합의안을 도출하는 사람, 상사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다. 이중 내가 어디에 들어갈까 고민해 봤는데 아무래도 상황에 딸 3-5의 스펙트럼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은 근원적으로 자신을 인정받고 동의받고 싶어하지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 존재라 3-5는 힘든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비판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 강원국은 비판하더라도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틀렸다가 아니라 나와 다르다로 접근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주장을 밝히고,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를 말한 후, 내 주장의 약점이나 단점을 고백하고, 상대의 주장을 소개하며, 상대의 주장을 평가하고, 나와 상대의 주장을 절충하여 결론을 내는 글쓰기가 좋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은 토론 상황에서도 중요하다. 토론은 우선 여러 이점이 있는데 다양한 생각이 섞여 창조가 발생하고 복합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위기의 징후를 포착하고 예방한다. 또한 내 생각을 여러 사람에게 검증받고 참여의식, 책임의식이 생겨나며 중지를 모으고 공감대를 형성하여 합의와 통합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토론이 긍정적이려면 무엇보다도 상대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강원국은 항상 상대방이 나보다 나은 의견을 가졌다고 생각할 때 토론은 보다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고 말한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회의에 대한 의견도 인상 깊었다. 한국의 모든 조직들은 아마도 회의를 할텐데 실제 회의의 정의에 걸맞는 행위가 이뤄지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회의는 주재자 빼곤 거의 모두가 싫어할텐데 아마도 많은 시간 소모와 에너지 소모, 그에 비해 낮은 생산효과, 무엇보다도 수평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회의는 참가인원*업무단가(시간당 급여)*희의시간이라는 큰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회의는 효율적이어야하고 생산적이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회의의 요건은 이렇다.

 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전 연락과 준비는 충분한가

 제 시각에 시작했는가

 제 시각에 끝났는가

 회의 시간은 적절했는가

 꼭 필요한 사람만 참석했는가

 전원이 발언했는가

 회의의 목적은 달성되었는가

 결정사항을 실행할 방법과 주체가 정해졌는가

 회의록을 공유했는가

 이 회의가 반드시 다음에도 꼭 필요한가


이 요건을 내 직장에서의 통상적 회의와 비교해보니 캄캄했다. 간신히 1-2개만 충족하는 수준이다. 아마도 한국 직장에서의 회의 대부분이 5개 미만 정도만 충족하지 않을까. 우린 정말 거대한 시간낭비를 하는게 아닐까.


 직장 생활의 절반은 상사다. 상사로 인한 괴롭힘은 군대에서 끝인줄 알았것만 직장은 더하다. 그래서 상사와의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 이는 나의 능력과는 별개인 듯 하다. 이유는 충분한데 관계가 좋아야만 상사의 의견이 나에게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다. 관계가 나쁘면 상사에게 내 생각을 전할 기회도 없어지게 되며 그런 기회가 없으면 상사는 내 생각에 익숙치 않으니 거부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사 이외에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한데, 좋은 관계를 만드는 말하기 방법으로 장점을 말하기, 차이점보다 공통점에 주목하기, 원인을 추궁하기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하기, 빼기보다는 더하기,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욕심부리지 않기, 유식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성격 좋은 사람이 되기이다. 이중에 몇 개나 잘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니 암담하다. 

 마지막으로 강원국이 모셨던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다. 김대중 대통령은 위기에 봉착할때 세 가지를 생각했다고 한다. 우선 이 시련은 영원하지도 않고 모든 것은 언젠간 지나간다이다. 그리고 그 끝이 왔을 때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시련에서 자기 파괴적이거나 무너지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은 그 위기에서 기회를 찾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위기에 지도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를 말했다고 한다. 우선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지 않는 다는 것, 그리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자 불을 끄는데 급급해 후일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문제를 만드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 위기를 부풀리지 않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정치권에서 이것들을 잘 지키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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