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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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5월 9일인 어제는 날이 무척 좋았다. 어버이날 답지 않았던 8일과 7일의 날씨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마도 원인과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둘 다 강한 바람이다. 어제는 인천 송도에 가야했다. 느즈막하게 결혼하게 된 동생의 상견례 때문이다. 반드시 가야하고 늦지 않아야 하는 만남이니 걱정이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이 강원도 원주라서다. 

 원주에 살게 되면서 이곳 저곳 가보았지만 인천은 처음이었다. 운전하면 막히지 않을까? 차는 있나? 몇 주전부터 걱정만 하고 좀처럼 계획을 수립하지 않던 내게 아내가 직접 고속버스편과 시간을 알아봐주었다. 가는 표는 현장구매만 가능했지만 돌아오는 표는 예매가 가능해 예매해주었다. 보통 서울을 운전해서 차로 갔던 경험해 비출때 원주에서 인천까지는 그래도 3시간은 걸릴거란 생각이 들었다. 인천은 먼 곳 아닌가. 거기에 송도는 더욱 끝이니까. 

 그래서 소일거리가 필요했다. 보통 지식으로 꽉 찬 책들은 노트 필기하면서 보는 편이니 제외되었다. 그래서 그럴 필요가 없는 집에 몇 안되는 소설을 출발을 앞두고 부랴부랴 골랐다.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가 보였다. 사놓고 무려 10년 가까이 안보고 있는 책이다.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빨리 나가지 못하고 책이나 고르고 있는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아내의 잔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차 싶어 얼릉 고르고 집을 나섰다. 당행히 인천가는 차엔 빈 자리가 많았고, 성공적으로 한적한 자리에 착석하여 벨트까지 멘후 주변에 누가 있는지를 잠시 살핀 뒤 책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웬 걸 시작이 이상하다. 에코 책이 전반적으로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너무 이상했다. 앞부분이 너무 비어있게 이야기기 시작되었다. 이건 뭘까 싶어 불길한 마음에 책의 앞부분을 보니 '프라하의 묘지 2'라고 적혀있었다. 1권이 아닌 2권을 가져온 것이었다. 이것도 색다른 경험이려니 하고 그냥 2권부터 볼까하다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길이 열렸다. 나에겐 가상의 책장이 있다는 사실이 떠오를 것이다. 스마폰을 꺼내 전자책 서재를 열었다. 처음엔 계획대로 문학을 보려고 했는데 마구 넘기다 보니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가 보였다. 프라하의 묘지 만큼은 아니지만 이 역시 오랜기간 묵혀놓은 책이었다. 그래서 버스에서 이 책을 보기 시작했고, 오며 가며 완독하게 되었다.

 책은 2017년에 다시 나왔지만 사실 2009년에 나왔던 책이다. 2009년은 정치인 유시민이 노무현의 죽음을 목도하고, 보수정권의 등장으로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리고 유시민 개인적으로는 정치에서 물러나기 시작한 시점이며 더욱 개인적으로는 그의 딸이 대학에 입학한 시점이었다. 유시민으로선 자신이 그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행한 많은 노력이 처절한 실패처럼 보이는 시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영향을 강하게 준 방향타 같았던 책들을 다시 보며 흔들리는 마음을 재확인하고 싶은 심정과 사랑하는 딸이 대학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좋은 책들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만들어진 듯 하다.

 그래서 여기 나오는 책들은 모두 저자 유시민이 어린 나이에 읽은 책들이다. 십대에 접한 책도 있고 늦어도 이십대에 접한 책들이다. 한창 이성과 감성, 정의감이 날카로운 시점이다보니 책에 대한 저자의 반응도 그러하다. 그러다 보니 젊은 유시민을 만나는 느낌도 들었고 그 오랜 세월에도 공감할수 밖에 없는 변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문제점도 한탄스러웠고, 과거 나에게도 비슷한 영향을 주었던 책들의 느낌과 감성도 재현되는 맛이 있었다. 

 청춘의 독서에 등장하는 책은 죄와 벌,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인구론, 대위의 딸, 맹자, 광장, 사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종의 기원,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역사란 무엇인가 이다. 이렇게 목차를 종합해보니 경제학 관련 책(인구론,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이 많고, 문학도 제법 있는데 러시아 문학(대위의 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이 좀 많았고, 역사관련(사기, 역사란 무엇인가) 책도 많았다. 그리고 가장 아픈 공통점은 이중 내가 읽은 책이 단 한권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고전이 그렇듯 무슨 내용인지는 대충 알지만 막상 읽은 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유시민이 언급한 모든 책이 인상적이었지만 우선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생각난다. 이 책은 독일 책으로 당시 언론의 작태를 비판한 것이다. 카타리나 블룸은 27살의 젊은 독일 여성으로 가난하지만 어머니와 감옥에 수감된 오빠를 부양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 사랑에 실패해 외로워하던 중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문제는 그가 무기를 탈취한 탈영병이었다는 것이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두려울 그 사실은 의외로 그녀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녀는 그와 사랑을 나눈다. 죄값을 치루고 나면 본격적으로 사랑을 나눌 생각이기도 했다. 

 문제는 언론의 태도다. 그들은 이미 남자를 뒤쫓고 있었고, 누군가와 만나는지를 확인한후 같이 엮을 심산이었다. 카타리나의 신상은 낯낯이 공개되었고, 피의자로서 아직 남여 모두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언론은 피의사실을 검찰과 결탁하여 함부로 공표했다. 카타리나와 아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그녀에 대해 묻고 원하는 사실만 부풀려 말하는 것도 물론이었다. 마치 얼마전 조국사태를 보는 듯 했다. 유시민은 시기대로 고 노무현 대통령 사건을 떠올렸다.

 사마천의 사기도 인상적이었다. 사마천은 순서대로 역사서를 서술하는 편년체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기전체를 창안했다. 이는 제왕을 다룬 '본기'와 뛰어난 장군과 신하를 나타는 '표', 예법과 음악, 군사, 역법, 천문, 치수, 화폐등 사회경제제도와 행정, 문화를 다룬 '서', 주요 제후국의 역사를 상세히 다룬 '세가', 마지막으로 뛰어난 인물들의 전기를 다룬 '열전'이다. 유시민은 본기 부분에서 한고조와 그 주변인물에 대해서 많이 다룬다. 고조는 패업을 이룬후 왕권의 안정을 위해 개국공신들을 정리한다. 그들은 고조와 나라를 세우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에서 함께한 전우들이지만 개국이후 안정된 치세를 이루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한신이 제거되었다. 또한 고조는 후에들인 황비를 사랑했고 그 아들이 영민하여 후사로 삼고싶었지만 본처인 여후의 서슬이 시퍼랬다. 고조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했지만 사후 그들은 여후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다. 모든걸 이뤘지만 특히, 500년 이상을 전란에 시달린 중국의 민중을 평화로 이끌었지만 고조는 친구도, 자식도, 사랑도 이루지 못한다. 유시민은 기록에 의지해 고조가 치료를 거부하고 그만 살기를 원했던것이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한다. 권력의 허상과 무서움이다.

 헨지조지의 진보와 빈곤도 재밌었다. 요즘 정치권에선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토지공개념이 거론되고 있으며 그 반대급부로 반헌법적 발상이니 사회주의니 하는 언행도 나오고 있다. 헨리 조지는 리카도의 후계자로 리카도가 농업지대론에 지중한 반면 헨리 조지는 도심에서의 지대론에 집중했다. 그의 책에 따르면 한 자연인이 어디든 비슷한 한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된다. 다만 그는 모든걸 할수 있는 상태지만 뭐든 제대로 할 수 없다. 분업이 없는 상태기 때문이다. 소를 잡을 수도 있고 신발도 만들 수 있지만 잘 하기 어렵고 많은 시간이 투여되며 그로 인해 다른 일을 못하게 된다. 그러다 이웃이 찾아온다. 그의 선택은 첫번째 사람과 달리 간단하다. 바로 그의 첫번째 자연인의 이웃자리기 최상의 자리가 된다. 그렇게 하나 둘 사람이 찾아오고 마을이 되고 도시가 된다.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력이 상승한다. 첫번째 자리 잡은 사람의 터가 자연히 중심지가 되고 지대가 급상승한다. 그 또는 그의 후손은 도시의 발전과 생산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고도 그 생산력 향상과 발전의 대가를 혼자서 향유한다. 때문에 헨리 조지는 그러한 지대에 대한 세금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유재산 역시 인정했으며 자본주의에 동의하는 사람이다. 그저 그런 불합리한 이익에 대해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정치권에 도전하기도 했다. 물론 결과는 안좋았다. 정치권에서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주장을 몰라보고 가짜 이익과 불합리에 현혹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바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책은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다. 부끄럽게도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도 사놓고 김치도 아닌데 오래도록 묵혀두고 있다.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는 구 소련의 소설인 만큼 사상적 검증을 받았다. 죄와 벌은 러시아 차르의 검열을 받았는데 러시아는 쉽게 변하지 않는 듯 하다. 이 책은 소련, 특히 조금만 생각이 다르고 조금만 출신이나 사상이 의심스러우면 수용소행이었던 스탈린 시대를 비판한다. 솔제니친은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 시절 스탈린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지는 분위기에서 이 책을 발간했기에 출판될 수 있었다. 솔제니친은 책에서 수용소의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몹시도 억울한 상황임에도 강제로 주어진 노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거기서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식량도 부족하고 먹을 것도 없는 편인데 한국의 남성들은 이와 몹시 비슷한 군대를 다녀오기에 공감대를 적지 않게 느낄수 있다. 한 장면에서 작업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에 즉각 응하지 않으면 형벌이 뒤따를 거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벽돌을 쌓을 때 접착제 역할을 하는 모르타르가 아직 남아 있었고 작업하는 수용인들은 이를 만들어나간다. 내일이면 그리고 작업을 이루면 모르타르가 얼어 붙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밥도 제대로 먹어가지 못하며 저녁까지 말도 안되는 지시와 조건에서 작업하면서도 끝내 그것을 이루었을때 성취감을 맛본적이 있을 것이다. 난 그 어쩔수 없는 성취감이 너무나도 싫었는데 유시민은 그런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본다.

 하여튼 책을 다 읽고 나니 대학초년때가 많이 생각났다. 유시민의 의도처럼 그 당시에도 이런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나는 '신문 읽기의 혁명'이나 '지식의 세계1&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같은 책을 읽고 영향을 많이 받았던 생각이 난다. '청춘의 독서'는 제목처럼 지금의 청춘들에게 그리고 청춘과 좋은 책의 맛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책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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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치 시대의 인사제도 혁신
김성천.신범철.홍섭근 지음 / 테크빌교육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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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는 입직하자마자 일반 공무원 7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으며, 경력이 쌓여 급여가 24호봉에 이르면 4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는다. 생각보다 높은 대우다. 물론 교직은 수평조직이며 실제 급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는 어디까지는 예우다. 그리고 교사집단에서 한 학교를 책임지는 위치인 학교장은 3급정도에 해당한다. 이 역시 예우겠지만 한 마을의 행정총책임자인 면장이 5급임을 감안한다면 역시 상당히 높은 직위다. 거기에 학교장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다. 물론 대통령이 매년 임용되는 수많은 학교장에게 임명장을 직접 건네진 않지만 학교장의 임명장엔 대통령의 이름이 들어간다. 그만큼 중요한 위치라는 셈이다.

 실제 학교에서 학교장의 권한과 책무는 막강하다. 많이 민주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학교내 거의 모든 의사결정 권한이 학교장의 소관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심의기구에 불과하며 일부 학부모만의 리그다. 교사집단은 수가 많지만 오랜 비민주적 풍토에 길들여져 있어 주체라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소신이 있더라도 권한이 많이 집중된 학교장의 의사에 반해 일을 진행하기는 매우 어렵다. 현 상황이 이러한 만큼 한 학교의 어떠한 역량과 민주성, 혁신성을 가진 학교장이 부임하느냐는 그 학교의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학교장 제도는 승진제도다. 이는 일반 교사가 경력 및 여타 점수를 쌓아 승진하는 구조인데 이런 체계를 갖춘 나라는 적어도 OECD국가중 한국이 유일하다. 다른 나라들은 학교장을 승진구조로 바로 보지 않으며 교사 집단과는 다른 투 트랙체제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50대 가까이 되어야 간신히 교장이 되는 한국과는 다르게 젊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교장이 될 수 있다. 거기에 다른 나라들은 교장선발을 위한 심사과정에서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고 다단계 심사를 거처 임용한다. 또한 교장에 대한 업무 평가를 매우 중요시하고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이 과정에 적극 참여한다. 거기에 교장이 되기 위한 엄격한 양성 프로그램을 거치며 이를 통해 교장 자격을 취득하게 한다. '  

 한국의 교장은 위와는 무관하게 언급한 것처럼 교직생활 중 승진을 위한 점수를 쌓아서 임용된다.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우선 직무역량의 문제다. 현시대 교장에게 요구된는 역량은 민주적 리더십과 혁신교육성공경험, 이론을 겸비한 실천가, 사람을 아우르는 인성이다. 하지만 승진 점수를 쌓는 과정은 이와 무관하다. 각 시도교육청은 자신들이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는 경우 업무부과에 부담감을 느끼는 교원들의 반발을 무마하고자 이 업무를 수행하는 자들에게 승진가산점을 부여해왔다. 돌봄교실이나 방과후, 청소년단체, 영재학급운영등이 이러한 것들이다. 물론 이와 같은 업무를 수행해보고 그 절차과 운영방안을 터득하는 것은 학교장에게 필요한것들이라 볼수 있겠지만 앞서 말한 학교장의 직무역량을 쌓게해주는 것들이 보기는 어렵다. 

 또 다른 문제는 교직문화다. 한국은 승진을 위한 가산점을 쌓기 위해 남들이 기피하는 어려운 업무들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승진대상자들도 같이 학급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그들이 더 힘든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문화가 생겨나게 된다. 

 민주성도 문제다. 한국은 교장으로의 임용이 다른 보직을 맡는 것이 아닌 승진의 개념이다. 때문에 교사가 교장으로 임용되면 자신이 다른 교사보다 우월한 직위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며 실제 한국의 체계는 그러하다. 때문에 비민주성이 발생한다. 또한 승진과정에서도 비민주성이 쉽게 발생한다. 승진대상자는 가산점을 따기 위한 업무를 맡아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대부분 학교장이 결정한다. 때문에 승진희망자들을 중심으로 학교장에게 순응할수 밖에 없는 구조적 비민주성이 발생하게 된다. 

 마지막 문제는 제약과 차별이다. 언급한 것처럼 교사는 교장이 되기 위해서 상당기간을 점수를 쌓으며 준비를 해야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교장에 필요한 직무역량을 쌓는 길을 아니다. 그것과 무관하게 현장에는 교육실천에서 상당한 내공을 쌓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교사로서 성공적일수 있어도 교장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즉, 한 가지 길만 열어놓음으로써 다양한 방식으로 역량을 쌓아올린 여러 교사들이 교장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학교장 승진제도의 문제점으로 교육 현장에선 교장공모제를 실행해왔다. 하지만 현재의 공모제는 그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유명무실하다. 현행제도는 3개의 공모제로 초빙형과 내부형, 개방형을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교장자격증으 가진 자로만 그 대상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아 활용가능한 인력풀이 적다. 또한 현 교장들은 4년임기에 대부분 별 평가 없이 중임을 하여 8년간 교장으로 임용되는 것이 가능한데 공모제교장의 경우 이 8년의 임기에 포함하지 않아 교장임기를 실제적으로 12년까지 늘려주는 역할만 하고 있다. 이는 과도한 특혜란 지적이 많다. 때문에 책은 공모제에 대한 개선안을 제시한다. 우선 쉬운 방법은 초빙형과 내부형을 합쳐 통합형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는 현 직위에 상관없이 15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교사라면 누구나 지원을 가능하게 하여 인력풀을 크게 늘리는 형태다. 외부인사가 임용가능한 개방형은 그대로 유지한다.

 공모제의 경우 그 평가의 공정성과 투명성 담보가 도마위에 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책은 이 부분에 대한 보완책도 제시한다. 공모제 교장의 총 수를 예측하여 교육청에서 일괄 공채를 운영 실시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교육청 담당 인사실무자, 해당교의 교사, 지역전문가, 주민등을 포함하는 심사단이 대거 구성되어 심사를 실시하게 된다. 

 그리고 학교장 양성 프로그램도 매우 중요하다. 언급한 것처럼 한국의 교장승진제도는 교장에게 필요한 직무역량을 쌓게 만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경우 교장으로 임용되면 고작 35일 219시간의 연수만으로 교장에 임용된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들의 경우 교장 양성 프로그램을 강력하게 운영한다. 우선 학교장에게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제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이론과 실천 교육을 병행한다. 즉, 이론으로 무장했으면서도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학교장을 양성하는 것이다. 거기에 엄격한 학사관리를 바탕으로 최소 1년 이상의 교육 기간을 설정하고 있으며 현직 교장 이외에도 학교장 직위를 희망하는 교원에 대해 프로그램 참여를 열어놓는다.

 즉, 책에서 정리하는 학교장 승진제도를 정리하면 이렇다. 학교장을 승진으로 바라보는 개념을 버리고 하나의 직무로써 바라보아 민주성을 확보하며, 직무역량을 갖춘 학교장을 임용하기 위해 다양한 인력풀 확보방안으로 최소 자격기준(일정경력이상, 혹은 학교장양성프로그램이수자 등)을 갖춘 사람들을 상대로 질적 평가위주의 공모제를 실시하여 임용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임용되면 강력한 학사기준을 갖춘 학교장 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하거나 혹은 그 이수자들을 대상으로 학교장을 공모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직무역량과 민주성을 갖춘 학교장이 학교에 자리잡게 하자는게 책의 생각이다. 

 책은 교육전문직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교육전문직원은 각 시도교육청에 소속된 장학사, 장학관, 연구사, 연구관을 말한다. 이들을 각 지역교육청에 소속되어 장학에서 행정, 예산, 기획등 교육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매우 다양한 일들을 수행한다. 교육전문직원들은 교사와 마찬가지로 국가직 공무원이었지만 시도교육청에 자율성을 주기 위한 인사방안으로 2011년부터 지방직으로 전환되었다. 또 재밌는 것이 교사의 경우 24호봉이 이르면 4급에 상당하는 대우를 받지만 어이없게도 힘들게 교사에서 시험을 통과해 장학사에 임용되면 6급대우를 받는다는 셈이다. 

 일반교사들이 교육전문직원을 하는 이유는 승진때문이다. 교육전문직원이 되면 장학사의 경우 5년 장학관이 경우 3년이면 각각 교감, 교장으로의 승진이 가능하다. 점수를 쌓는 일반 승진의 경우보다 승진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일반 승진의 경우 거의 교장만이 될 수 있는 반면 교육청이 끈이 있는 이들은 교육청 내의 다양한 보직과 교육장등을 독점할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로 인해 교육전문직원이 수행해야할 업무들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장에선 전문적이어야 할 교육전문직원이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못함을 성토한다. 이는 교육전문직원이 고작 5년만 근속하고 교감으로 승진하기 때문이며 그 5년동안에도 여러 보직을 맡게 되어 전문성을 갖출수 없는 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한다. 때문에 책은 교육전문직원을 승진시키는 지금의 구조를 바꾸어 행정업무를 보다 희망하고, 적성이 있는 교사가 오래도록 교육전문직원으로써의 전문성을 쌓는 형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교육전문직원 역시 교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교육전문직원이 어떠해야 하는 가라는 비전과 직무전문성에 대한 합의가 사실상 부재하며 그간 기능적인 업무중심으로 선발한 만큼 앞으로는 이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선발하고 관리햐야 함을 주장한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혁신성, 현장지원, 전문성, 학습을 전문직원의 상으로 설정했다고 하는데 참고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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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3-03-31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장이 3급은 아니고, 5급이나 4급 정도로 보면 됩니다. 대통령 임명장이 나오는걸로 봐서 5급 정도로 보면 될 듯 합니다. 선생들끼리는 3급이라고 생각해줄 순 있겠네요.
호봉수 쌓여서 4급 대우라는건 그냥 대우공무원 수준의 처우이구요. 실제 직급과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AI 교육 혁명 -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이주호.정제영.정영식 지음 / 시원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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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교육이 교육현장에 들어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AI교육이 새로이 화두다. 교사입장에선 사실 대부분이 SW교육 능력 및 관련한 교육과정 디자인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런 상태에서 AI라니.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그만큼 시대가 빠르게 변한다는 것이기도 하며 학생들을 위해 마땅히 따라가야하는 변화이기도 하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인 로렌스 카츠와 클라우디아 골딘은 국가의 발전을 교육과 기술간의 경주로 비교하였는데 교육이 기술과의 경주에서 뒤쳐지면 경제성장이 감소하고 경제불균형이 확대하는 반면 교육이 기술과의 경주를 잘 따라가주면 경제성장이 증가하고 경제불균등이 감소한다고 주장하였다. 새로운 기술이 발빠르게 등장하는 지금 이 말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유효해질거란 느낌이다.

 물론 한국정부도 이 변화에 가만히 있지는 않다. 2018년 AI R&D전략을 발표했고 2019년 12월 AI국가전략을 발표하였다. 교육과 관련하여서는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과 AI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초등 저학년은 SW와 AI 흥미를 갖도록 2022년까지 놀이와 체험중심의 교육과정 편성 계획을,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교는 AI 교육을 필수 이수 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교사부문에서는 초등교사 사범대, 교직이수 과정에 AI 관련 내용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계획하고 있으며 AI 교육대학원을 신설하여 연간 초중고교원중 AI 교육 전공자를 1000명 씩 5년간 양성할 계획이다 

 AI 교육은 AI 기술활용과 AI 를 만드는 전문교육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모두가 AI 전문가가 될수도 도 없고 그럴 필요성도 없으니 다수의 학생들에게 AI 시대를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필요한 내용을 교육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AI 의 놀라운 가능성의 활용과 AI 와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에 AI 교육을 도입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요건은 AI 교육을 기본적인 소양교육으로 추진하고 AI 교육을 위한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AI 기반 기술인 교육용 데이터를 개방하고, AI 를 활용할 수 있는 정보 인프라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컴퓨터과학교사협의회와 인공지능발전협의회는 AI 을 이해시키는 교육과정을 제시하였는데 인식, 표현과 추론, 학습, 인간과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 사회적 영향의 5가지이다. 인식은 AI 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며 표현과 추론은 AI가 추론을 사용하여 학습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다. 학습은 AI가 데이터를 활용하여 학습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며 인간과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은 AI 기술과 인간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AI와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교육하는 것이다. 사회적 영향은 AI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긍정, 부정적 영향을 이해하고 대비하는 역량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러한 AI 교육을 통해서 인간은 AI의 주인이 되어야하는데 주인이 되기위해서는 인간 자신이 적절하게 AI를 조정하고 명령, 감독하여 AI가 범할 수 있는 기본권 침해나 위험성에서 벗어나는 AI 통제기능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직접 AI 를 감독하고 AI 통제를 다른 이에게 맡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하며, AI 가 분석한 나의 데이터에 따른 판단을 따르면서도 나와 관련한 의사결정을 직접할 수 있어야 한다. 

 AI 교육이 교육계에 미칠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개별화맞춤학습과 협력학습의 활성화다. 교육계의 흐름은 획일화에서 다양화 그리고 개별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간 개별화 교육은 교사 일인이 맡아야 하는 학생이 다수인 상황, 그리고 교육 내용이 획일적으로 주어지는 문제, 교사 개인이 맡아야 할 수많은 행정업무, 개인진단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했었다. 하지만 AI 교육이 실행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AI 는 학습입문기부터 개인의 모든 학습 데이터를 수집 분석한다. 이를 근거로 개인에 맞는 처방과 흥미를 강조하는 개별 맞춤형 학습이 가능해진다. 

 AI 교육은 협력학습도 활성화한다. 협력학습의 최대의 적은 무임승차자와 방해자, 봉효과자이다. 교사는 협력학습을 실행하면서 모둠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관찰하거나 개입할수 없다. 하지만 AI 는 실시간 센서로 학생들의 반응이나 대사, 표정, 감정등을 분석함으로써 학생이 협력학습에 기여를 하는지 따라가지 못하는지를 진단 분석할수 있다. 때문에 AI 활용교육은 협력학습을 촉진한다. AI는 소규모 학급에서의 협력학습도 활성화하는데 소규모 학급은 학생 수 자체의 부족으로 협력학습이 어렵다. 하지만 AI를 통해 자신들과 흥미및 관심사가 비슷한 국내 및 국외의 그룹가 매칭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소규모 학급에서의 협력학습도 가능해진다. 

 AI 교육은 이런 형태로 학교현장에 들어왔을때 기존 학교와 교사, AI 간의 새로운 관계 및 역할 재정립이 요구된다. 책은 이를 High tech와 High touch로 구분한다. High tech를 담당하는 것은 AI 로 학생의 사전지식 수준, 니즈를 빅데이터 분석으로 파악하여 진단하고 학생의 각자 속도로 맞춤학습을 지원하며 학생의 학습상황과 개인 정보등에 대해 분석하고 가공한 학습정보를 교사에게 제공한다 High touch는 교사의 역할로 소프트웨어의 정보 데이터를 통한 개별 맞춤형 지도, 고차원 소프트 스킬에 집중한 능동적 학습 경험 제공, 학생멘토링과 사회정서학습을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AI는 학습에서 지식과 이해부분을 담당하게 되며 교사는 적용과 분석, 평가, 창조등 보다 고차원적인 부분을 담당하게 된다. 지식의 직접전수와 학습코칭이라는 부분을 AI가 담당하고 학습디자이너이자 상담가 조언가로서의 기능을 교사가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책은 AI 가 등장하더라고 교육분야에서는 교사를 밀어내는 것이 아닌 기존의 강의, 지식, 맞춤형 코칭과 개별화 교육, 평가, 행정업무를 담당함으로써 오히려 여유가 생긴 교사가 마땅히 기존해 해야했떤 교육의 고차원적 부분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정부차원에서의 일대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는 학교, 교사, 교과데이터, 기술 등의 영역에서 장벽을 만드는 요소를 대대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AI 활용하고자 하는 교육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 관치주의가 사라져야 하며 기업과 정부출연 연구진에 더 높은 자율성이 주어져야 하며 실패가 용인되어야 하며 관료들의 이기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 

 미래의 교육과정은 학생에게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제시한 문제를 풀게 만들지 말고 동료와 협력하여 새로운 질문을 찾아내어 질문에 기계가 답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과정이 되어야한다고 한다. 책은 학생 개인의 학습 데이터의 축적으로 가까운 미래에는 고부담이며 일회성이고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수능같은 시험은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AI에 의한 진정한 입학사정관 제도 같은 입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막연히 교육의 적, 아니 교사의 적일지도 모른다는 AI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립할 수 있었다. 선생님, 학습, 학부모가 반드시 한 번쯤 봐야할 책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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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5-06 20: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I도 결국 알고리즘 문제라고 본다면 학교에서는 수학과 윤리 등 기초 학문 교육이 더 중요하지 않을지 생각듭니다. ^^

닷슈 2021-05-07 10:41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거기에 그 알고리즘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의 문제와 알고리즘 자체의 설계도 중요한듯 합니다. 엠비씨 보도 보면 최근 주요포털 기사들이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보수언론만 집중 소개되는 점, 그리고 자체 알고리즘으로 포털내 자체 쇼핑몰만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는점도 문제죠. 알게모르게 이미 인공지능에 사람들이 많이 조작되고 있어 교육이 시급해보입니다.
 
부의 대이동 - 달러와 금의 흐름으로 읽는 미래 투자 전략
오건영 지음 / 페이지2(page2)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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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경제가 코로나 19로 난리인데 자산시장은 더 난리다. 타오르다 못해 그 끝을 알기 어려운 지경이다. 열풍은 한국의 경우 부동산에서 금과 주식, 해외 주식 그리고 이젠 코인으로 옮겨갔다. 투자의 성공은 내가 산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내 자산을 다른 사람이 사 주는 경우다. 그게 무너지는 순간 투자는 실패가 되고 가격은 연쇄적으로 붕괴하게 된다. 가계부채도 무려 1800조에 이르러 무서울 지경이다.  

 이번에 본 부의 대이동은 이런 혼란스러운 투자상황에서 채권과 금, 달러라는 자산에 대해 논한다. 특히, 채권은 수익성이 낮아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 외의 자산인데 실제 자산 증폭 효과는 낮아도 다른 자산을 움직이는 주요 변술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금과 달러와의 상관관계와 달러가 안전자산이라는 책의 주장도 흥미로웠다. 


1. 채권

 채권은 빚에 대한 보증서다. 빚진 자는 채무자가 되고 돈을 빌려준 자는 채권자가 된다. 채권에는 얼마에 돈을 빌렸고, 어느 기간동안 얼마의 이자를 지급할지가 표시된다. 채권은 국채와 회사채로 나뉜다. 국채는 나라의 정부가 발행한 채권이고 회사채는 기업이 발행한 채권이다. 당연히 나라가 보증하는 국채가 더 안전할테니 채권금리도 회사채보다 낮다. 

 채권은 희안하게도 채권금리와 그 가격이 반비례한다. 이자를 많이 주면 돈을 많이 벌게 되는 채권인데도 이상하게도 그러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00만원에 8%의 고정금리를 주는 채권을 산다. 그런데 운이 없게도 경기불황으로 금리가 급등하여 내가 채권을 산지 한 달만에 채권금리가 20%되었다. 그렇다면 투자자는 당연히 기존의 채권을 정리하고 고금리 채권으로 갈아타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러자면 기존의 채권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8%금리의 채권이 20%금리 시대에 팔리기가 만무하다. 때문에 채권가격할인이 들어가야 한다. 12%만큼의 손해를 보상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리가 올라 채권의 수익성이 좋아지면 희안하게 채권가격이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금리가 떨어지면 채권 가격은 반대의 이유로 상승한다. 

 채권이 무서운 것은 한 국가의 경기가 후퇴할 때다. 이유는 채권의 가격이 금리와 연동하기 때문이다. A라는 나라에 경제 위기가 찾아온다. 그러면 A 국가에 투자한 외국인들은 위기를 느끼고 그 나라의 주식과 국채를 매도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주가 하락과 채권 가격 하락이 갖이 찾아온다. 외국인들은 주식과 채권을 팔아 얻은 A 국가의 화폐를 안전자산인 달러 매입에 사용한다. 그러면 A나라에는 달러가 사라져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금리가 급상승하는 부작용이 찾아온다. A나라는 지금 미국이 하는 것처럼 자국 통화를 풀어 경제를 활성화하고 싶지만 이미 금리가 상당히 올라있고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한 상황이라 재정정책을 펼수가 없게된다. 자국 통화를 풀면 금리의 안정은 몰라도 화폐가치는 더욱 떨어져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내수 경제침체가 오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한국처럼 채권이 안전 자산인 나라의 경우에는 시나리오는 다르게 흘러간다. 선진국의 경기가 후퇴하면 당연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그 나라의 주식을 팔아버린다. 하지만 그 나라가 충분한 경제력으로 신용이 있다면 채권을 팔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세계적인 경제후퇴국면이라면 그 나라의 채권은 오히려 인기가 있어진다. 주가는 떨어져도 채권 가격은 오히려 상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채권 가격의 상승은 금리의 하락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 나라는 주식으로는 달러가 유출되지만 채권으로 인해 달러가 들어오게 되므로 자국화폐의 가치 하락을 방어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물론 내수 경기 방어가 가능해져 경제난맥에서 여러가지 재정정책도 펼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한국의 국채도 안전자산인 것으로 주장한다. 이는 좀 의외로 다가오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한국경제가 보여주는 안정성은 이를 뒷받침한다. 우선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1100원-1300원 사이의 안정적인 원/달러 환율을 보이고 있다. 고정환율제가 아님에도 긴 기간동안 상당히 안정적인 수치다. 그리고 한국은 2008 경제 위기 이후 99개월간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국제사회는 해당국가를 구조적 무역 흑자국으로 인정한다. 그 나라의 산업고조상 흑자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보는 것이다. 이런 강력한 무역수지 흑자로 한국은 외환보유고가 4000억달러를 넘어선다. 때문에 한국의 국채를 안전자산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다가올 미래에 한국이 채권투자국으로써 매력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이미 저성장 기조에 접어든 나라로 주식투자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강한 경제구조로 채권투자로는 적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노령화에 따른 저성장 기조가 일반화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일수록 돈을 벌기 어려워지며 노령화에 따라 각 나라가 큰 규모의 연금을 운용하고 있으며 이 연금은 성격상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짙다. 때문에 한국의 국채는 장차 여러나라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2.달러

 선진국 국채에 이어 저자가 주장하는 두 번째 안전 자산은 달러다. 달러가 안전자산인 이유는 오랜기간동안 막강한 미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러 도전을 물리치고 꾸준히 기축통화의 위치를 지켜오고 있는 점과 경기후퇴시 가치를 오히려 상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달러에 대한 도전을 살펴보자.

 첫 번째 도전은 1970년대 산유국들의 도전이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의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금본위제를 철회한다. 금1온스당 35달러를 보장하던 약속이 깨어지자 달러의 가치는 급락한다. 여기에 중동전쟁으로 OPEC는 원유수출도 중단한다. 그러자 달러에 대한 환상은 깨어지고 오히려 급등한 원유를 갖고 싶어하는 국제사회의 수요가 늘어났다. 기축통화로써 달러의 첫 위기였다. 하지만 새롭게 Fed의 의장이 된 폴볼커는 1980년대 미국 금리를 무려 20%로 올려버린다. 미국내 실업자가 증가하고 기업은 어려움에 봉착했지만 달러가치는 급상승했고, 전세계적인 경기둔화로 원유수요는 감소한다. 유가는 급하락했고 OPEC가 오히려 위기에 봉착한다.

 두 번째 도전은 1980년대 엔화다. 폴볼커에 의해 달러가 초 강세를 띄자 일본의 엔화는 상대적 약세로 일본의 수출은 크게 증대한다. 미국은 막 석유파동에서 벗어난데다 긴축으로 고실업의 파고였다. 여기에 일본산 물건이 들어오니 제조업이 잠식되어 고통스러운 상황이었다. 이에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를 강제로 두배 정상하는 합의안이 도출된다. 플라자 합의로 일본은 엔화가치가 실제보다 거의 3배 상승하여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 그러자 일본은 내수에 초점을 두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다. 그리고 엔강세로 수출물가가 크게 떨어졌고 유가도 하락헤 국민생활이 크게 안정되었다. 하지만 부동산 버블이 강하게 일어났고 그 붕괴로 금리가 인상되며 오랜 불황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세 번째 도전은 2000년 유로화다. 미국 경제만큼의 유로존 경제가 등장하고 단일화폐가 등장하자 달러에겐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유로존 내 국가들의 경제력은 동일하지 않았다. 그리스의 경우 약한 경제력으로 신용이 낮아 원래라면 고금리에 대출을 해야했지만 유로존이 형성된 이후 다른 유로국가들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저금리로 대출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을 한다. 하지만 2008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더욱더 강한 경기부양이 필요해졌으나 재정적자가 감당이 안되었다. 투자자들은 위기를 느끼고 그리스에서 이탈리아, 포르투갈로 위기가 전파된다.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유로존은 양적완화를 실시했고 유로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게 된다.

 네 번째 도전은 위안화의 도전이다. 중국은 과거 달러당 8.2위안의 고정환율을 실시했다. 하지만 2005년부터 관리변동 환율제를 도입하면서 2005년 달러당 8.2위안이었던 것이 2015년 6위안까지 화폐가치가 크게 상승한다. 하지만 2014년부터 미국은 경제위기이후 풀린 돈의 회수를 위해 금리인상을 단행하고 달러가 초강세를 띄게 된다. 유로화와 엔화는 여전히 경기부양을 위한 양적완화로 가치가 낮은 상황이었다. 중국화폐만 상대적 강세를 띠게 되자 수출경쟁력이 떨어져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다시 달러당 7위안정도로 올리게 된다. 

 이처럼 달러는 기축통화로 오랜 기간 위기때마다 도전을 물리쳐왔다. 이런 강력함은 선진국 채권과 더불어 경제위기시 달러를 안전자산으로 갖고자 하는 수요를 꾸준히 만들어낸다. 때문에 저자는 안전자산으로 불황에 강한 달러를 추천하고 한번에 대량 매입보다는 경제 위기를 대비하여 적립식으로 조금씩 갖고 있을 것을 권한다.


3. 금

 금은 안전자산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역사적으로 가격의 변화를 살펴보면 금은 달러화와는 가치가 반비례하며 오히려 주식시장과는 비례하여 움직였다. 이말은 불황에 강한 달러 가치와는 달리 금은 불황에 약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셈이다. 

 과거 금은 금본위제로 화폐에 대한 담보로 사용디었다. 1944년 브레튼 우즈 체제는 금 1온스당 35달러의 가치를 보장하였고 세계 각국은 보유한 금의 양만큼만 화폐를 찍어낼 수있었다. 때문에 각국은 고정환율제를 택하였고 자신들의 화폐가치를 달러화에 고정하였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미국이 1-2차대전 중 유럽에 많은 돈을 빌려주고 큰 폭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본위제는 문제가 있었다. 경제규모와 교역의 규모가 커지면 더 많은 화폐의 발행이 필요하지만 금에 화폐가 묶이므로 이것이 어려웠다. 실제 경제공황때 극복이 어려웠던 것도 적기에 필요한 곳에 화폐공급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려면 전세계에 달러가 퍼져야만 했다. 달러를 퍼뜨리려면 다른 나라에 무상 원조를 하거나 투자를 하거나 혹은 미국이 여러 나라에 큰 폭의 무역적자를 가져야만 했다. 이로 인해 미국은 기축통화국이 된후 전통적인 흑자국에서 상당한 무역 적자국으로 돌변하게 된다. 하지만 해외투자자가 보기에 이는 불안요소였고 미국에 달러대신 금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지게 된다. 이로 인해 1971년 닉슨에 의해 금본위제가 철폐된다. 달러의 담보가 사라지자 달러가치는 하락하고 반면 금가치는 상승한다. 금은 70년대에 황금기를 맞는다.

 하지만 달러가치가 절하되자 폴볼커에 의해 고금리 정책이 실현된다. 이는 달러 가치의 상승을 가져왔다. 그의 정책은 가혹했으나 향후 인플레이션을 막아내고 초 고금리로 강한 기업만 살아남는 구조조정이 일어났고, 물가는 안정되고, 유가도 하락하였다. 미국은 우량기업 중심으로 2000년까지 강한 호황을 맞는다. 달러는 초강세를 보였고 금은 무려 20년가까운 암흑기를 맞는다. 

 최근 금가격은 경기후퇴로 인한 저금리 및 양적 완화가 이루어질때만 상승세를 보인다. 하지만 달러가치는 강한 미국 채권과 미국의 경제력으로 크게 하락하지 않기에 달러가치와 반비례 연동하는 금은 안전자산으로서는 가치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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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구범진 지음 / 까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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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광대한 인구와 영토를 자랑하는 중화왕조와 강한 군사력을 갖춘 기병 위주의 북방 유목민족을 지척에 두고도 멸망하지 않고 오래도록 나라를 유지해왔다. 이는 산과 강, 삼면이 바다라는 자연방어책(하지만 인도와 중국사이의 히말라야처럼 절대 못 넘을 만한게 못된다)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력한 국방력때문이었다. 고구려는 수당의 침입을 막아냈고, 고려는 요와 금, 원의 공격을 차례로 막아냈다. 그리고 조선은 임진왜란에서 수십년간 전쟁으로 단련되고 조총이란 최신 무기로 무장한 왜를 막아내었다.

 물론 참담한 패배가 없던 건 아니다. 고조선은 1년의 농성끝에 한에 왕검성이 점령되어 멸망하였고, 백제와 고구려는 결국 당과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 하지만 한반도 혹은 만주에 기반한 우리나라 왕조를 멸망시키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으며 침략국가는 수년 혹은 수십년 간의 인적 물적 경제적 고통에 시달렸다. 하지만 한국답지 않은 어이없는 패배가 있으니 바로 병자호란이다. 병자호란은 불과 2달만에 끝난 전쟁이며 왕이 포위되어 굴욕적 항복을 하고 수십만의 백성이 노예로 끌려가는 대사건이었다. 한국의 역사에 이런 굴욕적 패배가 어디 또 있을까. 그런 병자호란의 패배를 침략자의 우두머리인 청 태종 '홍타이지'의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 이 책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이다. 


1. 전쟁 발발과 청의 전력

 정묘호란 후 후금과 조선은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조선 역시 명과의 사대가 있었지만 후금의 군사력을 당해낼수 없었기에 상당히 맹약을 지키기 위해 조심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다. 조선조정에서는 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침략을 조심하고 방비를 강화하라는 교서를 변방에 내렸는데 이것이 그만 청의 사신단에 넘어가고 만것이다. 청은 이를 절화교서로 규정하고 조선이 맹약을 어긴 증거로 삼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건은 따로 있었다. 바로 홍타이지의 칭제 사건이다. 

 홍타이지는 조선정벌(정묘호란), 자하르 정복, 그리고 과거 원황제의 옥새를 손에 넣고 이 업적을 바탕으로 칭제를 한다. 하지만 당시 청에 와있던 조선의 사신단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홍타이지의 칭제행사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명의 최대 조공국인 조선의 이런 반항은 홍타이지 입장에선 자신의 칭제의 정당성을 상당히 부인하는 사건이었다. 홍타이지의 조선 침략 의지는 이로써 확고해지게 된다. 

 혹자들은 조선 침략을 명을 정벌하기 이전 후방을 정리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조선과 명, 청의 지정학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만 하다. 하지만 정묘호란 이후, 아직 왜란의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한 조선은 이미 청의 후방을 공격할 능력과 의도가 없음을 청은 잘 파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조선은 명공격을 위한 후방 정리가 아닌 그 자체가 목표였다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홍타이지는 조선 공격전 명의 후방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북경 일대에 대대적 침공을 가해 약탈을 감행한다. 

 병자호란이 조선자체가 목적이었다는 또 다른 근거는 친정이다. 고대로부터 어느 왕조든 친정은 매우 큰 부담이 따르는 사건이다. 황제나 왕이 전사하거나 적의 포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타이지가 적의 내지로 직접 들어가 친정하는 것은 조선정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조선정벌에 상당한 우선순위를 두었다고 볼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은 청이 동원한 전력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은 절대 큰 나라가 아니었다. 국방력을 막강했을 지언정 인구는 130-240만정도로 명에 비하면 인구수나 경제력면에서 1%정도밖에 되지 않는 나라였다. 이중 청의 군대인 팔기만주의 남자 총인구수는 34만정도였다. 게다가 이중 21만은 자유민이 아닌 한인 출신의 노복으로 그들은 군역의 의무가 없었다. 결국 징병 가능 청의 총 인구수는 12만정도에 불과했다. 조선은 절대적 패배를 강조하기 위해 청의 군사가 30만이거나 12만 8천정도로 이야기하지만 이는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어쨌든 홍타이지는 그럼에도 조선 정벌에 무려 3만4천의 병력을 동원한다. 팔기만주와 팔기몽고가 1만 우전초하 1만, 명에서 항복한 천우, 천조병 2천, 외몽고병사 1만2천이었다. 총력전이었던 셈이다. 


2. 조선의 방어전략과 청의 공격전략

조선은 정묘호란에서 여진인의 강력한 군사력을 맛보았다. 1619년 심하천투를 통해 조선은 적과 평지전에서 조우하면 승산이 전혀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낮은 평지성의 공성 능력 역시 적은 매우 뛰어났다. 때문에 조선의 전략은 기본적으로 적 침공시 기병이 점령이 어려운 산성으로의 입보였다. 조선의 방어선은 3중으로 압록강과 청천강, 황해도 방어선이었다.

 압록강은 너무 길기에 모든 지역을 방어할 수 없어 침공로로 예측되는 의주와 창성지역에 병력을 배치하였다. 전쟁발발시 이 지역 군사들은 백마산성과 당아산성으로 피신하기로 하였다. 청천강 방어선은 안주와 영변으로 안주는 적이 의주로 침공할시, 영변은 적이 창성으로 침공할시 방어기점이 되었다. 안주성에는 평안병사 유림을, 영변의 철옹산성에는 부원수 신경원에세 수천의 정예병을 주어 지키게 하였다. 양지역은 서로 기각지세로 서로 위험할 경우 응원이 가능한 지역이었다. 마지막은 황해도 방어선으로 황주와 평산일대였다. 황주는 홍산 근처의 정방산성에 도원수 김자점에 평산지역은 태백산성이었다. 

 이런 조선의 방어전략은 정묘년에서의 경험에 바탕을 둔것으로 정묘호란시 청은 주요 평지성들을 손쉽게 점령하였고 요충지에서 만난 조선군을 쉽게 격파하였다. 때문에 산성으로 피신하여 요충지가 점령당하지 않고 시간을 끌어 적을 불리하게 만드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기간 조정은 상황에 따라 강화도로 피난하는게 전략의 골자였다.

 하지만 청의 공격전략은 이런 조선의 전략과 확연히 달랐다. 청은 정묘년과는 다르게 조선의 항복이 목적이었으므로 요충지의 점령에는 관심이 없었다. 빠른 속도로 진군하여 도성을 포위해 인조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제 일 목적이었다. 또한 침공로 역시 한군데가 아니라 두곳이었다. 청은 의주와 창성 두지역으로 모두 침공한다. 하지만 의주로 침공한 부대는 빠르게 전격전을 감행한 반면 창성으로 침공한 부대는 요충지를 점령하면서 천천히 진군했다. 빠른 전격적은 보급로의 문제와 고립의 문제가 있으므로 양자를 병행해 약점을 보완하려던게 아닌게 생각된다. 하여튼 이런 청의 방식은 조선에 상당한 혼란을 일으킨다. 

 홍타이지는 선발대 300명을 상인으로 변장시켜 진군시켰는데 이들은 한양도성에 불과 침공 후 4일만에 도달한다. 이런 빠른 진군에 조선 조정은 겁을 집어먹고 강화도로 파천하지 못한다. 강화도 파천에는 3-4일의 말미가 필요한데 이런 시간을 방어선들이 벌어주지 못한 것이다. 물론 처음 도달한 선발대는 소규모였으므로 충분히 강화도로 파천이 가능했지만 청의 전광석화 같은 진군으로 혼란스럽게 도달하는 장계에 정신이 빠진 조선 조정은 그런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때문에 인조는 부랴부랴 남한 산성으로 입성한다. 물론 청의 포위망이 완성되기전 남한산성에 갇힐 것을 우려해 성을 나오려 하였지만 날씨가 이를 돕지 않았다. 이 처럼 전방 조선군의 산성입보는 이처럼 청의 전격전에 큰 도움이 되고 말았다. 

 계절도 문제였다. 만주에서 한양까지는 큰 여러개의 강이 있다. 압록강, 청천강, 예성강이다. 하지만 홍타이지는 전격적은 위해 겨울까지 침공을 기다린다. 1월이 되어 강이 모두 얼자 청의 기병은 빠른 속도로 도하가 가능했다. 물론 1월이라고 강이 반드시 어는 것은 아니었지만 17세기는 전세계적인 소빙기로 무척 추웠고, 진군시기에 유독 추워 날씨가 청을 도왔다.  


3. 무너지는 조선군

물론 남한산에 갇혔어도 희망은 있었다. 강화도로 두 대군이 종묘사직을 들고 피신하였으며 청의 전격적으로 전장의 방어군이 그래도 온존했다. 또한 남4도의 근왕병 역시 기대할만 했다. 병자년 당시 조선은 국력이 피폐했지만 전란의 기운 속에 꾸준한 준비로 대충 10만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3만 4천 전체가 최정예병인 청군과 단순하 숫자비교는 무리지만 3배에 달하는 순이었다. 그리고 남한산성 자체의 병력도 1만2천이었다. 남한산을 포위한 청군을 오히려 안팎으로 협공할수도 있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이는 희망일 뿐이었다. 점령하며 창성으로 침공해온 청의 동로군은 당아산성을 함락하고 영변의 철옹산성도 공격한다. 그리고 이들은 영변에서 부원수 신경원과 김자점을 토산에서 격파한다. 이에 평안도의 홍명구와 유림도 남한산을 구원하기 위해 남하한다. 하지만 청의 요격을 피해 동으로 크게 우회하여 진군이 늦어졌고 강원도 김화에서 오히려 북상하던 외번 몽고부대와 격돌하여 궤멸당한다. 

 남은 것은 남부 4도의 근왕병뿐이었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충청도가 먼저 움직였다. 충청 감사 정세규는 용인의 험천에 충청병사 이의배는 안성의 죽전 산성에 진을 친다. 이들은 청의 기세가 대단하여 단독으로 붙기보다는 전라와 경상의 병사와 합류하여 대군을 이룰 요량이었다. 하지만 청군은 험천의 군을 격파하고 이를 구원하던 이의배의 군사도 격파한다. 그리고 원정길이 이끌던 강원의 군사다 검단산에서 격파한다. 

 1만에 달하던 경상의 군사가 전장에 도착하여 쌍령에 진을 쳤다. 하지만 청군은 고작 300의 기병으로 이들을 격퇴한다. 사상자만 3천여명에 달할정도로 참혹한 패배였다. 마지막은 전라도의 군사였다. 이들은 가장 먼 거리였던 만큼 전란후 13일만에 광교산에 북상한다. 광교산의 김순룡은 청군을 상대로 모처럼 승리를 거둔다. 청은 지휘관 양구리가 전사할 정도였으며 큰 피해를 입었으나 조선군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화살과 양식 부족으로 전라군은 수원으로 피신하고 오히려 청에게 군마를 1140필이나 노획당하고 만다. 안타까운 대목이다. 

 이처럼 하4도와 황해, 평안도의 군사가 궤멸당하자 남은 것은 아직 남진하지 않은 함경도의 군사였다. 이들은 미원에 심기원과 합류하여 무려 2만 3천의 병력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들은 전쟁의 마지막까지 참전하지 않는다 청군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차례로 궤멸한 다른 군을 보았기 때문이다. 


4. 강화도 함락

청군은 1637년 2월 16일 강화도를 공략한다. 광교산 전투후 16일이 지나서였다. 강화도는 고려의 대몽항쟁에서 보여준 것처럼 상당히 넓은 면적의 해도이면서도 험준한 해안 지형과 넓고 깊은 수렁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였다. 거기에 임진년에 보여준 것처럼 조선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수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청은 수군의 개념이 아예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런 강화도가 하루만에 함락된다. 왜였을까?

 조선의 강화도 방어전략은 해상에서의 저지였다. 강화도와 경기도 사이에는 염하수로가 흐른다. 이 수로는 조류가 심하고 수심이 얕다. 때문에 판옥선의 진군 및 주둔이 어려웠다. 또한 당시는 겨울로 강에 얼음이 얼어 있어 배로의 도하가 매우 어려웠다. 때문에 조선군은 염하수로의 북쪽입구인 연미정과 남쪽 입구인 광성진에만 병력을 배치했다. 특히 북쪽으로의 상류이 더 어려웠기에 남쪽에 보다 비중을 두었다. 당시 강화도엔 1600의 병력이 있었는데 600은 이미 다른 지역의 구원을 위해 나간 상태였다. 즉, 상륙을 방어할만한 혹은 상륙한 적을 상대할 만한 병력이 거의 없었다닌 이야기다. 

 때문에 강화도는 청의 기습 상륙에 하루만에 무너진다. 강화도를 공격한 청의 병력은 3만으로 알려져있지만 이 병력은 청의 전군이다. 청은 강화도 공략에 44척의 배를 동원했는데 이를 감안하면 그들의 병력은 3200정도로 추정된다. 청은 강화도 지형과 조수의 이치를 잘 깨닫고 갑곶진으로 기습 상륙했는데 여기엔 향화호인이 한 몫은 한것으로 추정된다. 향화호인은 귀화한 여진인으로 조선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었고, 해안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정묘년부터 조선인들은 이들의 배신을 의심하였는데 병자년에 이것이 현실화한다. 향화호인들의 정보로 인해 청은 강화도의 약점을 파고 들었고 갑곶진으로 상륙한다. 반면 조수의 역흐름에 걸린 조선 함대는 제대로 진군하지 못해 이를 막지 못한다.


5.갑작스런 항복 권유와 신속한 철군

 이처럼 조선의 전황이 절망적이었음에도 청의 항복 조건은 매우 후했다. 인조의 출성과 척화신 2-3명의 박송이었다. 하지만 이 후한 조건도 조선에겐 어려웠다. 대부분의 신하가 척화신이라 2-3명의 희생양을 마련하기도 어려웠고 오랑캐의 말을 믿고 출성했다 왕이 낭패를 볼수 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중국 송의 휘종과 흠종은 금에 끌려가 고초를 겪다 죽었과 고구려의 보장왕과 백제의 의자왕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황이 좋지 못하고 남한산이 완전 포위되어 바깥으로부터의 소식도 끊기자 조선은 점차 저자세로 변해간다. 하지만 청은 인조의 출성을 끝까지 고집하며 오히려 회담을 거부한다. 그러다 갑작스레 청이 빠른 화의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때문에 조선조정은 근왕군의 승리나 명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책의 저자는 홍타이지의 이런 태세전환이 다름 아닌 천연두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금은 절멸된 병이지만 천연두는 18세기 매년 40만의 희생자를 내던 무서운 병이었다. 천연두는 남부지역의 병으로 만리장성 이북에서는 16세기가 되어서야 병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누르하치에서 홍타이지시절에 이르기까지 만주에는 만, 한, 몽 연합 거주가 나타난다. 특히 한족이 문제였는데 이들과 함께 천연두도 자연히 따라와 큰 피해를 입혔다. 이에 청은 천연두를 앓고 살아남은 숙신과 아직 감염되지 않은 생신을 구분하고 명 내지를 공략할때는 숙신들을 주로 투입했다. 

 병자호란 당시에도 마찬가지 였는데 당시 서울엔 이미 천연두가 창궐하고 있었다. 홍타이지는 전격전을 위해 강이 얼어붙은 겨울을 침공시기로 정했지만 그 시기는 천연두가 창궐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홍타이지 어영 주변에 천연두 환자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빠른 태세전환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홍타이지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조선에 오래머물지 않고 빠른 철군을 한다. 서울은 물론이고 어떤 중소도시에도 들르지 않았으며 마중을 나온 조선의 관원들도 모두 피했다. 천연두가 아니라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지만 방역을 중심에 둔다면 이해가 가는 면이다. 

 항복 후 인조는 생각보다 후한대접을 받는다. 원의 침략을 받았던 고려는 오랜 저항과 쿠빌라이라는 유력자를 알아보고 제대로 항복하여 부마국의 대접을 받았지만 인조의 조선은 의외였다. 홍타이지는 삼전도의 의례후 인조를 청의 주요 친왕들보다 더 높은 바로 자신의 옆자리, 즉 2인자의 자리에 앉힌다. 조선에 대한 대접이었다. 이를 향후 청이 중원을 제패한 후 만든 국제질서에서 조선이 생각보다 높은 위상을 점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임진왜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잊힌 병자호란에 대해 여러 면을 새롭게 보여준다. 특히, 조선의 사료뿐만 아니라 청의 만문 사료를 많이 활용하여 객관적이지 못했던 부분의 새로운 퍼즐을 맞춰낸 느낌이다. 멸망 직전의 조선을 살린 것이 평소 조선 백성을 괴롭히던 천연두라는 사실이 재밌다. 과학기술이 절정에 달한 지금처럼 과거에도 최강국일지라도 감염병에는 맥을 못췄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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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7 18: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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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30 09: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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