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교육 미래를 말한다 - 창의와 지성을 추구하는 맘에드림 혁신학교 이야기 8
서용선 외 지음 / 맘에드림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기도에 혁신교육이 도입된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혁신교육은 외형적으로 많은 걸 바꿨다. 수업과 교육과정이 학교행정업무보다 우선이라는 생각, 교원의 업무정상화를 도울 행정실무사의 도입, 교육과정의 재구성, 배움중심 수업, 교사별평가, 전문적학습공동체, 블록타임수업시간운영, 중간놀이시간 등이다. 이는 분명 혁신교육 이전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들이다. 교육에서 수업과 교육과정이 보다 우선시되고 학생이 중심으로 이동했으며, 교사는 행정의 하부 말단에서 점차 자율성을 지닌 교육전문가로 하나의 독립된 기관화하고 있다.

 이런 혁신교육에 대해 논한 책이다. 혁신교육 미래를 말한다.이다. 책은 좀 오래되었다. 2013년쯤에 나온 책으로 그래서 좀 오래된 용어도 있지만 아직도 혁신교육의 많은 논리를 관통하는 쓸만한 책이다. 

 혁신교육의 철학적 배경은 우선 복잡성 교육철학이다. 복잡성 교육 철학에서 학습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지식의 원천을 찾고 그 과정에서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복잡성 교육철학에서는 교육현상과 행위를 통해 어느 누가나 수준 도약이 가능하다. 

 다른 배경은 존 듀이다. 듀이는 고교시절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고 대학에서도 교양에서 한 번쯤, 그리고 사범계열이라면 반드시 들어봤을 교육학자다. 듀이하면 교육에서 경험주의 사조의 대표자인데 듀이는 교육을 그 어떤 외부적이고 인위적인 목적도 부과할수  없는 성장 그자체로 보았다. 교육이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듀이는 학교를 하나의 작은 사회로 보고 가장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운영이 교육적으로 이뤄지는 곳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학교라는 하나의 작은 사회에서 아동의 삶이 학습, 교과, 교육과정을 통해 지역사회학교, 민주주의 학교가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시민성 교육이 이뤄진다고 보았다.

 듀이는 민주주의 3원칙으로 인간본성에 대한 신념, 개인이 누릴 자유의 가치, 자치에 대한 인식을 제시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단순한 고정된 민주주이가 아닌 창조적 민주주의를 주장했는데 개개인이 경험하고 탐구하여 민주주의를 익히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 

 듀이에게 있어 경험은 지속의 문제로서 경험이 아닌 경험과 환경의 교섭이고 경험의 주관성과 객관성을 모두 중시하고, 과거의 범주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실험과 변화로 미래를 지향하는 경험이며 질적, 역동적, 연속적이고 사고와 반성이 충만한 것이다. 듀이의 탐구는 불확정적 상황에서 문제를 설정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자료를 확정하고 추론한 후 사실의 의미를 검토하고 상식과 과학적 탐구를 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듀이의 사상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늘날 한국의 혁신교육과 상당히 유사하며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00년전의 사상이 그 당시 오래 빛나지 못하고 학문본질주의와 교과주의에 자리를 내주며 지금에서야 다시 빛을 보낸게 무척 안타깝다.

 역량은 학문중심교육과정이 이론과 실제, 명제적 지식과 방법적 지식을 분리하여 가르침으로써 개발된 능력이 실제 생활에서 발휘되지 못하고 대학졸업장이 실제 유능을 의미하지 못하면서 주목받았다. 

 역량은 특정 지식이나 전공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갖춘 기본 능력이고, 학습을 통해 습득되며, 명시적 지식과 암묵적 지식, 기술과 기능, 동기, 태도, 판단, 의지등을 포함한 복합적 종합적 능력이고 실제 수행과정에서 가동되는 능력이란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최근 주목받는 역량에 대한 비판도 있다. 우선 역량이 결과를 보이는 것을 중시함으로써 행동주의 심리학에 기반한다는 비판이다. 그리고 환원주의 오류다. 역량을 분절해 정리해도 총합인 현실은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역량중시로 표준화에 대한 우려가 있고, 가장 큰 비판은 역량이 자본의 요구에 의해 생성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량중심교육과정은 학생을 교육의 중심으로 놓으려는 지금의 흐름과 맞는다. 역량중심 교육과정은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하게 해주고, 반성적 사고력등 고등사고력이 자리한다. 거기에 교육과정은 디자인하는 관점을 제공하고, 학교를 졸업할 학생이 갖출 역량과 그것을 위한 교육활동을 유기적으로 배치하기에 매우 좋다. 그래서 역량중심교육과정에는 주제통합학습, 프로젝트학습, 교과통합학습이 이뤄진다. 

 다음은 변혁적 리더십이다. 한국의 전문직 직업 만족도에서 초등교장은 무려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편하면서도 시간이 있으며 마음대로 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반증은 그 교장과 함께하는 초등교사의 직업만족도가 고작 90위라는데 있다. 자율성이 없고 교장에 당하는 입장이며 시간이 없고 마음대로 할수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 우리나라 교장에 대한 행정적 리더십과 수업적 리더십에 대한 연구결과는 양자가 매우 낮은 수준임을 밝혔다. 

 이는 교장이 대부분 거래적 리더십을 갖기 때문이다. 거래적 리더십은 조직의 위계를 중시하는 산업화시대의 리더십으로 조직구성원을 지시와 명령의 객체로 여기고 추종자로 대한다. 교사를 함부러 다른 사람에게 우리 직원으로 명명하여 소개하고 교사 스스로도 교장을 모셨다라고 하는 칭호는 이런 거래적 리더십을 매우 잘 드러낸다. 이런 리더십은 직무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교사 효능감과 직무만족도를 저해하며 구성원을 수동적 존재로 저해시킨다. 장기적 비전도 없으며 근시안적 자세이다. 교원의 승진체계인 승진점수부여도 이러한 거래적 리더십에 기반한다.

 이와 정반대에 있는게 변혁적 리더십이다. 변혁적 리더는 비전과 목표설정을 하고 권한 위임을 통해 구성원의 자율성을 높이고 참여의식을 고양하며 지시나 명령보다는 자율을 강조한다. 그리고 도덕성을 혁신의 중심으로 본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한국 교사들은 한국 교장의 도덕성을 매우 낮게 평가한다. 하여튼 변혁적 리더십은 인간존중과 솔선수범, 변화선도, 교수학습실천을 이뤄낸다. 

 마지막은 평준화에 대한 논의다. 최근 자사고 취소에 대한 교육청의 패소판결로 평준화는 다시 중대한 기로에섰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평준화 폐지 국가에 가까운데 이미 전국과 수도권의 특목고와 자사고의 수가 과거 비평준화시절 초특급 명문고의 수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들은 단위학교 선발권을 갖는데 이로 인해 공부잘하는 학생이 학교에 집중된다. 이 학교들은 어떤 교육적 목표나 특색을 갖고 있지 않은데 이는 오로지 입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문대 진학률로 학생진학을 높이고 그래야 높은 수업료의 학교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학교들은 결국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의 이익을 챙겨주는 도구로 전락한다. 특색있는 학교가 갖는 교육적 장점인 수월성 교육이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닌 돈 있는 소수를 위한 수월성 교육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한편 평준화 학교는 거기대로 문제다. 평준화 학교는 평준화라는 이름하에 교육과정의 다양화를 포기했다. 때문에 저자는 고교 선택제 도입을 주장한다. 다만 이 선택제는 별도의 선발권이 아닌 추첨형식을 갖는 체제다. 학군제가 아니라 학군이 아닌 원거리 학교더라도 지원할 수 있고 점수가 아닌 추첨에 의해 선발하자는 것이다. 이로 힌해 평준화 학교간에 입시가 아닌 교육적 특색에 의한 자극과 질높은 평준화가 가능할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사랑한 화가들 -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정우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이 무척 덥다. 장마가 이런 식으로 끝나는 건 처음이다. 지구온난화가 아직 본격화하기 전인 1994년엔 한반도 아래에 머무르던 정체전선이 갑자기 일거에 위로 밀려 올라가며 이렇다할 비 없이 장마가 끝나 기온이 40도를 기록한 적이 있다. 하지만 미처 올라오지 않은체 정체전선이 사라진건 뭘까? 앞으로 장마는 이런식으로 진행될지도 모르겠다. 다행인지 6월에 비가 많이 내려 한반도는 그다지 많이 달궈지진 않았다. 원체 더운 일부지방을 제외한다면 아마 40도를 찍긴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더우니 책도 손에 안잡힌다. 더울땐 추리소설이나 가벼운 책이 좋다. 그래서 내가 사랑한 화가들을 봤다. 가볍게 예쁘게 예술에 다가가게 할 만한 책같았고, 예상은 뭐 거의 맞았다. 저자는 작품에 다가가는 여러 방법중 그 예술가의 삶을 아는 방식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지극히 맞는 말이며 그래서 책은 예술가들의 삶을 가볍우면서도 빠짐없이 그 굴곡을 다룬다.

 모딜리아니는 그림이 무척 특이한데 사람들의 목과 얼굴이 모두 길고 눈이 길게 째졌다. 모딜리아니는 조각 작품도 많은데 원래 조각가로 출발했다가 재료가 너무 비싸 공사장에 굴러다니는 안 좋은 재료를 썼고 가난한데도 조각하며 분진을 마셔 건강을 상해 회화로 돌아섰다고 한다. 모딜리아니 작품의 인물이 이리 길쭉한건 당시 아프리카 조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그림을 볼때마다 가슴이 무척 아프고 마치 영화 쏘우의 장면을 보는 것처럼 내가 아프게 느껴지는 프리다 칼로. 삶이 너무 불행하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 한쪽이 웃자랐고 그로 인해 절게된다. 무사히 어른이 되어 대학에 가서 연애도 하지마 버스가 전동차와 충돌하는 대형 사고로 온몸이 부서진다. 다리는 산산조각 났고 부서진 손잡이가 자궁을 뚫어 평생 생리불순에 아이를 갖기 힘든 몸이 된다. 남편 디에고를 만났는데 아버지뻘의 나이에 무척 비만한 몸임에도 바람둥이에 여자가 끝이질 않았다. 최악을 프리다의 동생과 디에고가 바람을 핀 것일 것이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따로 없다. 프리다의 그림을 보면 장기와 피, 상처들이 많은데 이런게 아프게 느껴진건 프리다가 의학을 전공하였기에 이를 무척 사실적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로드레크 포스터라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유명한 귀족출신인데 조상들간의 근친상간으로 농축이골증이라는 뼈가 잘 부러지는 병을 앓게 되었다. 어릴적 닿기만 해도 뼈가 부러지곤 했는데 다리가 크게 부러진 이후 다리는 자라지 않고 상체만 자라 이상한 외모를 갖게 되었다. 로드레크는 알폰스 무하처럼 포스터를 그렸는데 무하가 순정만화 같은 일러스트를 그렸다면 르도레크는 대상을 미화시키지 않고 단순화하여 그려냈다. 그는 댄서나 무희들의 삶은 많이 그려내어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만들었고 역동적인 무용장면과 말을 많이 그렸다. 움직임에 대한 갈망이었을 것이다. 

 캐터 콜비츠는 독일의 작가다. 그는 예술의 존재 의의를 사회참여라고 생각하고 처음엔 하층민과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했고, 1차대전과 2차대전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비판했다. 콜비츠와 남편은 매우 진보적이었음에도 불행히도 뜻대로 되는 자식은 없는 지라 둘째아들 페터가 1차대전에 나갔다 불과 열흘만에 전사한다. 그리고 2차대전인 1942년엔 같은 이름의 손자페터도 전쟁에서 전사한다. 콜비츠는 반전운동에 열심히 참여했고 예술을 사용했다. 회화보다는 판화가 노동자의 현실과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나치 독일에 반대했지만 나치가 들어섰고 그녀의 작품은 베를린이 폭격당해 대부분 소실되고 만다. 

 이 책엔 고갱과 샤갈, 클림트, 알폰스 무하, 에곤 실레의 삶도 실려있다. 그들의 작품과 함게 가볍게 삶을 느껴보는데 좋다. 여름에 괜찮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의 번영 - 비판적 경제 입문서
다니엘 코엔 지음, 이성재.정세은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악의 번영'을 보면서 제목만 보고는 2007위기에도 불구하고 브레이크 없이 계속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닐까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그런 기대를 갖고 상당히 강렬한 붉은 색의 표지를 가진 책으로 들어갔다(흰색 표지를 벗기면 안쪽은 붉은 색이다.) 그런데 읽어갈수록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바를 갈피 잡기가 힘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인류의 대서사시를 들추는 것 같기도 했고 제러드 다이아몬드처럼 환경 파괴에 의한 문명 붕괴를 경고하는 것 같기도 했으며 책 본연의 목적에 맞게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 읽어보니 이 모든 걸 다룬책이란 생각이다. 그런데 저자가 좀 갈팡질팡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가 분명치 않았는데 읽으며 잡으려 했던 책의 주제를 나름대로 정리했다. 


1.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정주가 농업보다 앞선다는건 최근 연구가 밝혀낸 정설로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그래도 농업이 인류역사상 매우 중요한 혁신이었던 것은 분명한데 신석기에 일어난 이 혁명은 1년에 평균 5km정도의 속도로 퍼져나갔다. 풍요와 저장식량의 등장으로 왕이나 귀족, 성직자, 전사 같은 게으른 계급이 등장했다. 문명은 빠르게 퍼져나가 아나톨리아의 대장장이는 기원전 3500년경 청동을 기원전 1000년경엔 철을 제작했다. 관리들은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에서 문자를 중국에선 기원전 1300 경 문자를 만들어냈다. 기원전 13-11세기 경 항아리, 투구, 방패, 갑옷등을 제작하는 청동제련법이 넓은 지역에서 실용적 기술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후 기술발전은 산업혁명이전까지 정체한다. 로마는 실용주의로 널리 알려져있지만 실상 기술발전이 매우 느렸다. 이전의 기술을 사회적으로 잘 활용했을 뿐이다. 이는 노예때문인데 기원전 225년경 60만이던 노예는 1세기 말엔 전 로마제국 인구의 무려 35%에 이르게 된다. 더구나 노예는 그 수가 많아 가격도 쌌다. 노예가 일상적으로 보급되니 농촌의 소농은 붕괴되었다. 이들이 갈곳은 직업군인뿐이었고 그들이 직업군인이 되어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으로 또 다른 노예가 보급되어 다시 소농이 붕괴하는 악순환을 낳았다. 결국 로마는 노동을 사회적, 지적으로 정교화하지 못한체 노예제에 끈질기게 의존함으로써 생산의 공간을 회복할수 없는 주변으로 밀려나 붕괴한다. 

 로마이후 10세기 유럽은 엉망이었다. 북부에선 바이킹, 남부와 동부에선 이슬람과, 헝가리 침략자들, 그리고 중부에서는 강도에 대한 공포로 교역이 마비된 매우 폐쇄적인 상태였다. 당시 유럽은 농촌일색에 도시가 없었다. 영주는 모든 폭력을 독점했으며 잉여생산물을 획득했는데 교역이 없어 자신이 거둔 수취물인 소고기와 와인을 소비하느라 매번 영지를 돌아다녀야했다. 

 11-13세기가 되자 농업생산성이 향상되며 중세의 준자급자족적 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한다. 농기구가 늘고 개량되었다. 삽, 가래, 쟁기가 철로 만들어지고 쇠스랑이 나타나고 말의 목에거난 마구와 물레방아가 확산한다. 그 결과 경작지와 인구가 모두 증가하였다. 도시는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는데 고대의 도시가 로마처럼 소비의 중심지라면 이 시기의 도시는 장인으로 가득 찬 생산의 중심지였다. 

 노동에 대한 관점도 변화했다. 노동은 과거 신이 내린 형벌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14세기 경에 이르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중대한 죄이며 정신적 수치라는 생각이 퍼져나갔다. 아직 육체노동을 멸시하긴 했지만 적어도 정신노동이라면 중시되었다. 

 유럽은 12-18세기 크게 발전하는데 이는 유럽의 지리적 요인과 관련한다. 로마제국 이후 유럽은 하나의 제국이 되지 못한다. 알프스, 피레네산맥, 영국해협은 자연적 장벽으로 새로운 유럽제국의 탄생을 방해하였고 여기에 의지한 영국, 프랑스, 스페인은 일찍이 안정되었다. 하지만 이런 장벽을 갖추지 못한 중부의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러시아등은 근대까지 내내 흔들렸다. 유럽은 유라시아의 변방으로 세계를 휩쓴 몽골의 침략에서도 무사할수 있었다. 

 11-13세기경 화폐가 발달하며 중세영주의 권력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중세 유럽의 봉신들은 영주에 공물을 바쳐야 했는데 영주는 40일간 봉신을 휘하에 둘 수 있었다. 하지만 화폐경제발달로 조세를 현물에서 현금으로 바꾸어 납부하자 영주는 40일의 한계에서 벗어나 정규군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영주는 영국의 궁수, 스위스의 창병, 제노바의 쇠뇌사수를 고용하기 시작했으며 무기의 발달로 중세 봉건적 성격의 전쟁이 사라진다. 화포가 등장하여 영주의 성채는 단독으로 보호받기 힘들어졌으며 강한 영주가 왕이되고 영주들은 왕에 의탁할수 밖에 없게 된다. 페스트는 영주에게 날려진 또 하나의 직격탄이었다. 인구의 1/3이 절멸하여 노동의 가치는 귀해졌고 영주는 농노들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토지이탈을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영주의 몰락과 잦은 전쟁으로 유럽은 폭력이 만연했다. 종교전쟁과 30년 전쟁은 그 정점이었다. 급격한 내부변화로 새로운 규제 원리가 필요해졌고 그 중 하나가 의회였다. 14세기부터 프랑스의 삼부회의, 스페인의 코르테스, 영국의 팔리아먼트가 나타났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국가의 재정적 요구에 맞서는 일을 했다. 영국은 대헌장으로 왕은 의회의 승인없이 세금인상을 할수 없게 되었고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왕국의 재정을 의회의 감독아래 놓는 것은 왕국에도 결국 좋은 일이었다. 이로써 은행가들은 위험이 줄자 안심하고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영국은 낮은 이자율로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영국은 낮은 금리로 군사비를 조달할 수 있었던 반면 프랑스를 그렇지 못해 경제가 파탄나 루이 16세의 운명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내부변화 원리는 국가민족이라는 새로운 정치모델이었다. 이는 도시국가와 제국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었다.


2. 산업화로 맬서스의 덫에서 벗어난 인류

 농업생산은 수확 체감의 법칙을 따른다. 그래서 산업화 이전 높은 사망률은 축복이었다. 부양인구수를 줄였기 때문이다. 멜서스의 섹계에서 노동은 큰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농업이 수확체감하기 때문이다. 실제 수렵채집인의 2시간 정도의 노동은 농업생산자의 10시간 정도 노동과 맞먹을 정도였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나면 모든건 바뀐다. 오래 인류의 덫이었던 멜서스의 세계가 끝난 것이다. 

 농업시대에 인간과 토지는 상보적이었다. 인간의 노동을 투입할수록 농업생산물은 체감했지만 토지가 공급되면 어느 정도 많아졌다. 수확체감의 근본적 문제는 토지가 노동인구의 증가에 따라 같이 증가하는게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농업은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다르다. 기계는 계속 공급이 증가할수 있었고 노동의 증가에 걸맞출수 있었다. 따라서 산업사회에서 인구의 증가는 충분히 부양이 가능하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조업은 농업과 달리 규모수익 불면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1인당 소득도 인구증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증가하며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물론 노동자 1인이 작동하는 기계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제조업도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지만 기술개발이 이를 극복해낸다. 기술개발로 노동자 1인이 움직이는 기계수를 늘리거나 한 대의 기계가 노동자 1인과 생산하는 양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때문이다. 더 많아진 인구는 선순환을 낳았다. 인구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창조되고 소득도 늘어 소비시장도 커졌기 때문이다. 


3.풍요로운 그러나 불안한 체제

 교역이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은 역사적 거짓말이다. 1차대전은 역사상 가장 교역이 활발해 상호의존도가 가장 높아져 누구도 전쟁이 일어나면 손해를 보기에 일어나기 어렵다고 주장하던 시기에 일어났다. 교역은 오히려 전쟁을 앞당긴다. 교역으로 한 나라는 기존에 확보하기 어렵던 재화를 비축할수 있게 되고 국력이 강해져 호전적이 될 수 있다. 1차대전 당시 독일은 그러한 나라였다.

 패전후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강제로 세우게 되고 보통선거 도입과 완전비례대표등을 도입한다. 하지만 강압적 체제였기에 정당성을 얻기 어려웠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좌파와 우파에게 모두 비난받는다. 1차대전 이후 독일은 급격한 도시화로 계급이 불안정했으면서 도덕적으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귀족계급이 많은 특권을 유지하고 있었고 종교적으로 분열되어 사회가 매우 혼란했다. 거기에 전쟁부채를 갚으로고 프랑스 벨기에 군대가 루르를 점령하고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통화를 남발해 초인플레가 발생한다. 프랑스군이 철수하자 새화폐인 렌덴마르크화를 도입해 안정되지만 기다리는건 1929년 경제위기였다. 극좌 극우정당이 세력을 얻기 시작하고 독일인들이 선택한 것은 나치였다. 

 미국에서는 1929년 10월 29일의 검은 화요일후 한달만에 주가가 무려 85% 폭락한다. 산업생산은 3년만에 절반으로 줄고, 인구의 25%가 실업상태가 된다. 자동차, 세탁기, 가구 같은 내구재 소비가 크게 감소했고 건설주문도 급감한다. 1차대전중 연합국의 식량 지원을 위해 당시 미국은 경작지가 크게 늘어난 상태였는데 경기 후퇴로 인한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해 농업종사자의 소득은 무려 70%나 감소한다. '분노의 포도'는 이런 배경하에 나온 소설이다. 1929년의 우기는 국제무역이 붕괴하지 않았다면 충격이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 교역은 1929년 이후 1933년까지 무려 1/3으러 줄어든다. 1929년의 위기는 사실 국제통화위기였다. 국제자본은 늘 그렇듯 취약해보이는 지역부터 자본을 거두어들였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폴란드, 독일은행이 차례로 파산했다. 영국, 프랑스 정도가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간신히 버틸수 있었다. 

 셰이의 법칙은 공급은 자기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케인스는 이 위기를 맞아 소비의 증대를 주장했다. 고용과는 무관한 소비 증가가 경제의 승수효과를 일으켜 위기를 타파한다는 것이다. 케인즈 주의를 숭상한 2차대전 이후는 자본주의 진영에서 영광의 30년이었다. 선두주자인 미국은 느리게 성장한 반면 추격자인 유럽국가들과 일본은 빠르게 성장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선진국의 수준을 따라 잡는 것은 빠른 반면 따라잡으면 이후 스스로 길을 잡아 생산력을 증가시켜야 하므로 성장이 필연적으로 느려지게 되는 것이다. 

 1970년대 들어 OPEC의 석유가격 인상으로 위기가 찾아온다. 케인즈 주의에 의하면 경기후퇴와 인플레이션은 동시에 일어날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동시에 일어났고 케인즈주의자들은 소비를 증대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공급이었다. 단기적 유가상승과 장기적 생산성의 저하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응해 1980년대부터 금융자유화로 일컬어지는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자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그들에 의하면 모든 문제는 효율을 가로막는 정부와 복지국가였다. 이때부터 일어난 금융자유화와 신자유주의는 2007 경제위기와 지금의 빈부격차를 일으키게 된다.


4.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3가지 악

 우선 폭력이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폭력적 존재로 진화했다. 포식을 위해서 성경쟁을 위해서 그리고 농업혁명이후 집단 및 국가가 형성되면서부터는 사회문화적으로 그것이 공진화했을 것이다. 즉, 폭력인 인류역사상 늘 대비해야했고 행사해야 했던 것이다. 폭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적인 폭력과 공적인 폭력, 그리고 상상의 폭력이다. 유럽은 16-17세기 종교전쟁이라는 살육, 30년 전쟁이라는 광기이후에야 폭력이 간신히 수그러들었다. 이후 국가만이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수 있다는 인식이 확립되었다. 19세기 들어 이런 공적폭력이 줄어들자 부부간의 폭력 같은 사적 영역에서의 폭력이 오히려 증가하였다. 남성 사이 폭력이 줄면서 여성이나 아이를 향한 폭력이 만연했다. 공적 폭력이 가정으로 이동한 것이다. 1880년대 들어서야 어린 소녀에 대한 강간, 근친상간, 미성년자 학대에 대한 고발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졌다. 

 공적 폭력과 사적 폭력이 모두 잦아 들자 상상의 폭력이 시작된다. 공적 영역은 물론 사적 영역에 다핸 폭력이 엄격이 규제되기 시작한 18-19세기 들어 유럽에서는 공포과 폭력 소설이 크게 유행한다. 이런 소설이나 매체를 통해 유럽인들은 도시에서의 범죄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위험한 계급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폭력이 줄어듬에 따라 폭력은 더더욱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폭력과 범죄를 다루는 엽기 소설을 읽는 것은 이러한 고통을 떨쳐내고 즐기기 위한 수단이되었다. 이는 현대로도 이어져 평화로운 국가일수록 공포영화와 엽기소설, 잔혹컨텐츠가 만연한다. 9.11테러는 물질적 폭력이었지만 선진세계 대부분 사람들에게 미디어로 전해진 상상의 폭력에 가깝다.

 현대 세계에 폭력의 세 가지 종류는 언제든 폭발 직전이다. 오늘날 투치족이나 보스니아인, 구자라타의 이슬람 교도에 대한 폭력은 과거 유럽 종교전쟁 수준의 폭력이다. 거기에 상호증오에 의한 국가간 합법적 폭력 가능성도 여전하다. 인도와 파키스탄, 동중국해에서의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그루지야가 그렇다. 미국과 중국은 또 어떤가.

 두 번째 악은 환경 파괴다. 오이스타인 달은 사회주의는 시장이 경제적 진실을 말하게 허용하지 않아 무너졌고 자본주의는 시장이 생태적 진실을 말하게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네 가지 실수로 재앙이 일어난다고 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예측 못하는 실수,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못하는 실수, 문제를 인식해도 이를 해결할 의지를 천명하지 못하는 실수, 마지막은 문제해결 의지를 천명하지만 실제 실천은 하지 못하는 실수다. 인류는 이중 세 번째에 해당한다. 

 인류는 곧 90억에 달하게 되고 이는 인류가 지구로부터 갉아낼 부가 6배나 증가함을 의미한다. 18세기까지 인류는 주로 태양에너지에 의존했고, 사육하던 동물은 척추동물의 겨우 0.1%였지만 지금은 무려 95%에 달한다. 화석연료와 삼림파괴로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화 초기 280ppm에서 지금은 388ppm 12세기 말에는 560ppm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구 한계를 명백히 넘어서는 것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을 어렵게 한다. 

 물도 중요한 문제다. 최근 큰 강들은 건기에 바다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수위가 급격히 줄고 있다. 갠지스, 나일강이 이미 그러하다. 만약 나일강의 수단과 에디오피아가 물 사용량을 늘린다면 이집트와의 갈등이 불보듯 뻔하다. 터키와 이라크가 건설한 댐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의 델타 삼각지대 90%를 파괴했다. 2050년까지 태어날 30억의 새로운 인구는 향후 지하수층이 무분별하게 개발된 나라에서 태어나야 한다. 중국은 물부족이 심각하다. 중국 밀의 절반, 옥수수의 1/3을 생산하는 북부평원의 지하수는 이미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인도와 중국의 관개용지에서의 농업생산량은 과거의 7-80%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들은 용수가 줄어드는 강 유역에 위치한다. 멕시코시티, 카이로, 베이징이 그렇다. 

 쓰레기의 양도 엄청나다. 성장은 산업생산성을 계속 증가시키고 이로 인해 재화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단축된다. 그 결과 제품 가격은 하락한다. 하지만 생산되는 재화량은 감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격이 낮아짐에 따라 쉽게 쓰고 버리는 경제가 성장한다. 재화의 가격이 그 재화가 일으키는 환경비용보다 낮아지게 되며 도시 밖에 쓰레기를 버리는 비용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마지막 악은 저성장과 불평등이다. 1980년대 시작한 자유화는 2차대전 이후 질서인 포디즘과 복지국가, 케인스주의를 해체하여 상호협력의 세계를 파괴했다. 포디즘에 의해 대규모로 조직된 기업들은 비효율을 이름으로 1980년대 해체되었고 많은 부분을 외주화한다. 베버리지에 의해 촉진된 복지체제도 영광의 30년 이후 성장이 둔화되며 어려움에 빠졌다. 케인즈 주의도 신자유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영광의 30년 이후 패러다임은 바뀌었지만 선진사회를 지배한 것은 저성장이었다. 저성장에서 사람들은 불행하다. 사람의 행복에서 소득은 큰 요인이다. 연구결과 소득은 행복의 절반 가량을 좌우하고 가족관계, 건강등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하지만 소득이 3배로 늘어난 시점에도 소득의 증가는 행복을 크게 증가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최상위 부유층은 상당한 행복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는 사람들이 부를 통해 느끼는 행복은 매우 효과가 짧고 상대적임을 의미한다. 즉, 고성장사회에서 사람들은 빠르게 들어오는 소득을 통해 자신이 바라보던 계층에 다가가거나 진입했음을 느끼며 행복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저성장 사회에서는 이것이 사라지므로 소득 증가에 따른 행복을 느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즉, 소득이 늘어나는 체감 속도가 중요한 것이다.

 1980년대 주주들은 다시 주도권을 잡았다. 2차대전 이후 기준인 노동조직 유형인 노동자의 경력 관리방식, 사회정책, 노동조합은 재검토의 대상이었다. 새로운 주주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규범은 기업의 전문지식과 핵심업무에 집중하는 것이고 경영자의 보수는 이를 위해 기업의 이윤과 연동되었다. 나머지 업무는 모두 외주화하였다. 외주화 서비스 업체를 서로 경쟁을 시작했고 점차 노동자 없는 기업이 나타났으며 세계화는 이를 가속화하였다. 

 중앙은행의 규제를 받지 않는 그림자 금융체제도 탄생한다. 이들은 이미 2007위기전 전통은행체제와 비슷한 경제규모를 달성한다. 이들은 자신의 대차대조표에 등장하지 않는 전대미문의 구조화 투자회사를 만든다. 이를 통해 건정성 규제를 회피하고 은행들은 자기자본을 하나 동원하지 않고 대출을 받아 고수익 상품에 투자했다. 대출을 해주는 대신 대출을 증권화했고 모두가 본연의 업무에서 벗어나 돈이 되는 같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경제위기였다. 

 최근의 정보화는 주주자본주의와 금융자유주의에 의해 불평등을 더욱 가속화한다. 정보는 디지털코드로 즉 상징 혹은 분자의 형태를 띨때 그것을 담을 물질적 형태보다 그 내용을 구상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들게 된다. 영화나 잘만든 게임이나 소프트웨어 혹은 메타버스를 생각하면 그렇다. 이런 류들은 일단 첫 재화를 생산하고 나면 두 번째 이후를 생산하는데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즉, 잉여가치의 원천이 전통 자본주의처럼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투입하는 것이 아닌 구상으로 이동하게 된다.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력을 가진 노동자는 더 이상 잉여가치의 원천이 아니므로 기업으로부터 착취의 도구인 노동자조차 되지 못하고 외주화의 대상정도로 전락한다. 불행히도 이는 제조업에도 적용된다. 프랑스의 르노는 1950년대만 해도 전체차량의 80%를 스스로 생산했고 관련 지원 직종도 모두 직접 고용했지만 지금은 신제품 구상과 브랜드 홍보만 한다. 20%의 차량만 직접 제작하고 나머진 외주화한다. 

 이런 인터넷, 소셜미디어, 플랫폼, 사물인터넷이 가져오는 신경제에선 노동의 가치가 이렇게 폄훼되고 과거처럼 오히려 부귀와 명성이 관심사다. 비물질적 생산은 투여된 노동 시간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게 보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런 비물질적 생산은 규모 수익 체증의 법칙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신경제에선 진입장벽이 매우 낮음에도 생산자가 더욱 큰 시장을 장악할 수록 제품 구상에 들어간 비용을 빨리 회수하여 더큰 돈을 벌어 격차를 벌리므로 독점적이 된다. 플랫폼과 소셜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아마존이나 네이버, 구글등을 보면 딱 그렇다. 누구나 그들의 시장에 진입할 수 있지만 그 거대한 선점효과를 당해낼 수 없다. 


 악의 번영을 보며 세 가지 악은 따로 노는게 아니라 모두 상호연계되어 공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저성장에 빠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며 사람들은 잠재되 있던 3가지 폭력을 더욱 쉽게 폭발시킬수 있게 되었고, 경제성장은 지구를 오염시킨다. 책의 내용은 하나의 귀결고 깔끔하게 이어지지 않아 리뷰를 작성하며 나름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보았다. 프랑스 저자의 책인데 명료함을 부족했지만 세계사의 자본주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8-06 16: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8월 건강 잘 챙기세요 ^ㅅ^

닷슈 2021-08-06 21:5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스콧님은 두 개 하셨더군요. ㅋ. 부럽습니다.

mini74 2021-08-06 16: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축하드립니다 *^^*

닷슈 2021-08-06 21:5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도 당선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08-06 17: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닷슈 2021-08-06 21:5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도 축하드려요.

초딩 2021-08-06 17: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닷슈 2021-08-06 21:5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축하드리고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재미나 보이는군요.

이하라 2021-08-06 18: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닷슈 2021-08-06 22:0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닷슈 2021-08-06 22:0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강나루 2021-08-06 2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당선 축하드려요^^

닷슈 2021-08-06 22:00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역시 축하드리고 일본인 이야기는 저도 관심이 많은 책입니다.
 
수업 방해 - 교사와 학생이 함께 풀어 가는 행복 솔루션
한스 페터 놀팅 지음, 같이교육연구회 옮김 / 테크빌교육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교사 양성기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가르치는 내용이다. 그 다음이 어떻게 가르치냐이고 가장 마지막이 학급경영이다. 그렇다보니 교사 역시 이 세 가지 중 학급경영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다. 배운적이 없고 이론적 토대 역시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학생들이 혹은 교사가 어떤 이유로든 수업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수업방해로 정의한다. 수업방해는 3종류가 있는데 능동적 수업방해, 수동적 수업방해, 학생간의 상호작용 방해다. 능동적 수업방해는 떠들거나 소리지르고 돌아다니는등의 행위고 수동적 수업방해는 수업시간에 기대되는 행동의 부족으로 준비물을 안갖고 오거나 과제를 해오지 않거나 학습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행위들이다. 학생간 상호작용 방해는 일종의 무질서 상태로 서로 적대감을 갖고 협력하지 않거나 특정인을 따돌리는 행위다. 

 이런 수업방해의 원인은 크게 3가지다. 우선 기관으로서의 학교다. 학교는 강제적 교육기관으로 학교와 교사가 정한 수업 방법과 목표가 대부분 학생의 희망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근원적으로 수업방해가 일어난다. 다음은 학생으로 학생 개개인의 성향이나 처한 상황, 사회적 구조문제들이 수업방해를 한다. 마지막은 교사의 태도로 교사가 학습을 진행함에 있어 수업을 원활히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 수업방해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의외이면서도 당연하게 이 세 가지중 수업방해를 가장 크게 일으키는 원인은 교사의 태도다. 

 따라서 교사의 입장에서 수업방해를 줄이는 방법은 4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장악력과 중복 전략이다. 장악력은 학급전체를 주시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고 중복전략은 동시에 2가지 사건에 주목하는 것이다. 한 학생은 격려하면서 다른 학생은 동시에 훈육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순조롭고 탄력적인 수업진행이다. 다양한 수업활동사이의 전환, 수업지연, 집중을 방해하는 수업과 상관없는 내용의 제거, 작은 잘못에 대한 쓸데없는 설교하지 않기 등이다. 세 번째는 집단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집단 동원력은 넓은 범위의 학생을 집중하게 하는 것이며 책임 원칙은 넓은 범위의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제어하는 것이다. 꼼꼼한 검사하기나 불시적 검사 등이 이 두가지를 올려준다. 마지막은 피로의 방지다. 학생은 신체상태에 따라 졸음이나 지루함을 느끼는데 주제를 전환할때 적절한 자극, 변화, 도전과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책은 이 정도 내용을 골자로 중후반부부터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실행하는지에 대해서 꼼꼼히 서술한다. 볼만하긴 한데 앞에 서술한 것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교사라면 교육학 일반지식으로 알만한 것들이어서 좀 흥미가 떨어졌다. 수업방해라는 것을 상기한다는 면서에 볼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뭉크하면 역시 절규가 떠오른다. 하지만 뭉크가 노르웨이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절규의 판본이 여러개라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것 같다. 그리고 이 절규는 소더비 미술품 경매에서 1억 1992만 달러에 팔려 당시론 최고가였다. 뭉크의 작품은 도난에도 많이 시달렸는데 작품 대부분이 오슬로 시 소유고, 살아생전 주목 받던 것에 비해 다시 조명받는데 시간이 좀 걸렸기 때문이다.

 뭉크가 태어난 노르웨이는 겨울은 무척 어둡고 춥고 눈으로 뒤덮여 흑과 백의 무채색풍경이다. 하지만 여름은 짧고 강렬하며 온 세상의 것들이 에너지가 넘친다. 이런 극단적 계절변화 그리고 어려서부터 뒤틀린 그의 감정은 강렬한 색채의 그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뭉크는 다섯살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어린시절 쭉 같이 놀던 누이가 뭉크가 13세때 역시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뭉크의 아버지는 종교에 매달려 안그래도 힘든 뭉크의 유년을 옥죄였다. 어린시절 그는 매우 병약해 천식에 류마티스성 고열을 앓았고 이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어 가정학습을 하는 바람에 친구하나 없었다. 더군다나 뭉크의 집안은 가난하지만 유명한 집안인지라 노동자계층의 거주지에 살면서도 부르주아라서 이웃과의 친분 및 교류도 없었다. 

 그런 뭉크가 세상에 나온건 20살이 다되어서였다. 아버진 뭉크를 1880년 크리스티아니아 공학대학에 보내지만 뭉크는 1년만에 그만두고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한다. 뭉크는 1884년 화가 프리츠 타우로브가 운영하는 야외 아카데미에 참석해 타우로브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경제적 지원을 얻고 선진미술을 보고 올 수 있게 된다. 1885년 뭉크는 만국박람회를 경험하고 선진미술체험을 통해, 예술적으로 성장하고 자유롭고 다채로운 붓질을 시도하며 노르웨이 화단의 지배적인 화풍인 인상주의와 사실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1885년에서 1927년까지 무려 40년의 기간 동안 뭉크는 '아픈 아이' 그림을 반복해서 그린다. 여러버전의 판화로도 제작이 되었는데 이 작품의 모티브를 아무래도 누이 소피의 죽음이다. 뭉크는 그 죽음의 충격을 도달하고픈 예술의 경지까지 계속 끌어올린듯 하다. 뭉크는 먼친척뻘인 다그니 율을 만나게 되는데 뭉크는 남자들이 한 아름다운 여인을 향해 무수한 손을 뻗는 작품인 '손들' 그리고 '마돈나'를 율을 모델라 그려낸다. 뭉크의 마돈나는 기존의 성모마리아의 성스러운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관능적이면서도 붉은 아우라를 표현해, 성스러우면서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성모를 표현한다. 마돈나의 석판 버전엔 정자와 태아가 그려진 프레임이 있는 것도 특징이다. 

 다르니 율 이후 뭉크는 여인 툴라와 약혼하지만 그녀의 결혼 요구에 지쳐 뭉크는 지쳐간다. 둘은 싸우다 뭉크의 실수로 총이 격발되어 뭉크는 왼손을 다치게 된다. 주손이 아니었지만 이후 뭉크는 특유의 신경증으로 다시는 그림을 못그리게 될 거라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 소동으로 그리 집착하던 툴라가 떠나가 황당한 나머지 뭉크는 신경증이 더욱 심해진다. 

 뭉크는 고향 노르웨이에선 신진화가로 크게 인정받지 못하지만 독일에선 꽃을 피운다. 당시 독일은 철학과 문학에선 독보적이었지만 예술분야에선 이렇다할 인재가 없었다. 1871년 이후 통일과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급성장하며 사회 분위기가 역동적으로 바뀌며 새로운 예술을 모색하는 분위기였다. 뭉크는 이런 분위기에서 베를린 화가 협회의 상설 전시장인 빌헬름 거리의 건축가의 집에서 첫 독일 전시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보수적이던 베를린 화가 협회장 안톤 폰 베르너는 뭉크를 맹 비난했고, 프랑스에 적대적이던 당시 분위기도 뭉크의 인상주의적 그림에 좋지 못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악명도 유명세인지라 뭉크는 이일로 독일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뭉크는 돈을 벌기 위해 직접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만 금전적으로 크게 이득을 얻진 못한다. 하지만 더욱 유명해져,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블레슬라우, 드레스덴, 뮌헨에서 전시회 요청이 쇄도한다. 당시 30대의 뭉크는 베를린 중심거리인 운터 덴 린덴에서 전시회를 하며 처음으로 그림 5점을 엮어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당시만 해도 연작에 대한 개념은 없던 시절이어서 이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다. 

 뭉크는 베를린에서 스칸디나비아 출신들이 주로 모이던 검은 새끼 돼지 주점을 자주 찾는다. 입구에 걸린 아르메니아산 와인 주머니가 검은 새끼 돼지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뭉크는 화가임에도 회화보다는 문학에 많이 심취해 있었고 실제로 많은 글을 남기기도 한다. 검은 새끼 돼지의 멤버들은 문학과 예술과 연관하여 새로운 사상, 상징주의와 데가당트미학, 최신의 과학적 발견, 이국적인 방식이나 현상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럼에도 뭉크는 이들 일파가 과도하게 급진적이거나 퇴폐적으로 흐르면 다소 거리를 두어 인근의 카페 바우어를 찾곤 했다. 검은 새끼 돼지들의 멤버가 하나둘 떠나가며 쇠퇴하자 뭉크는 1896년 파리로 이동한다. 

 파리유학에서 뭉크는 그림은 살아 숨쉬고, 느끼고, 아파하며, 사랑하고,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야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뭉크는 '사랑' 연작처럼 그림 개개보다는 이들을 함께 묶어서 본다면 주제 전달을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1918년 10월 뭉크는 블롬크비스트 갤러리에서 회화 30점, 약 70점의 스케치와 수채화를 포함한 인생역작인 '생의 프리즈'를 선보이게 된다. 프리즈는 건물 내부나 와부의 벽 윗부분의 그림이나 부조조각이 일렬로 연결된 띠 모양의 장식이다. 생의 프리즈는 작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 전시되느냐에 따라 변화되고 조정될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뭉크 시기 화가는 그림에 담을 모티브나, 주제, 화풍만을 고민했지 그림을 어떻게 보여주고 전시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는 없는 시기였다. 뭉크는 전시기획과 디자인을 고민한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던 셈이다. 

 1930년대 뭉크는 오른쪽 눈 혈관이 터지는 병에 걸려 한동안 거의 실명상태로 지내게 된다. 1939년 2차대전이 터지자 나치의 노르웨이 침공이 예상되었지만 피신할 생각을 하지 않던 뭉크는 나치지배하에서 농수산부의 명령으로 농사를 짓게 된다. 뭉크는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감을 맛본다. 그리고 일전 나치가 자신의 그림을 퇴폐 미술전에서 전시한 것을 경험했던 지라 자신의 모든 그림들이 처분될 것을 우려하게 된다. 뭉크는 1940년 자신의 작품을 모두 오슬로시에 기부하게 된다. 그리고 1944년 나치의 패망을 목격하지 못하고 80세로 사망한다. 

 뭉크의 그림을 보면 같은 주제를 여러번 다르게 그려내며 분위기를 다르게 하고 좀더 완성시키려고 하는 노력에서 경지에 다가가려 했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연작의 개념도 재미있고 실제로 생의 프리즈는 매번 다르게 전시된다. 당시의 생의 프리즈와 지금의 생의 프리즈 전시는 구성이 다르다. 거기에 노르웨이의 변화무쌍한 자연이 준 강렬한 색감과 표현,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으로 평생 지속된 죽음에 대한 공포와 알고 싶은 마음, 그리고 풀리지 않는 여성 관계는 그의 작품에 그대로 투영된다. 절규 이외에도 뭉크의 많은 작품을 알 수 있어 좋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