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 곽재식의 기후 시민 수업
곽재식 지음 / 어크로스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시대에도 온실이 있었다. 15세기 나온 산가요록이란 책은 요리 책으로 유명하다. 각종 요리법을 수록하였는데 술 만드는 법은 무려 60가지 이상이란다. 그런데 이 책에 온실에 관한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 온실을 만들어 한 겨울에도 꽃을 피워 왕에게 진상하곤 했는데 사치가 지나치다는 언급도 있었다. 당시의 온실은 지금과 원리가 같은데 주변은 모두 차단하되 천장은 가급적 투명하게 하여 빛을 들게 했다. 유리나 비닐이 없던 시기이기에 종이에 기름을 먹여 최대한 투명하게 하여 지붕을 만들었다. 기름을 먹였으니 눈비에 대한 방수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지구온난화와 그 해결에 대한 책이다. 온실가스는 생각보다 적어 지구 기체 전체의 0.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제거가 쉽지 않다. 아마 질소나 산소를 제거해야 했다면 보다 쉬웠을텐데 적다보니 골라내기가 어렵다. 온실기체는 태양 빛을 받은 지표가 방출하는 적외선에 의해 달궈지는 기체다. 이들은 분자 구조가 적외선 등의 빛에 의해 쉽게 흔들린다. 이로 인해 열을 받게 되는데 그래서 온실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인간은 하루 300-4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연간 1억 1천만 톤에 달하는 양으로 상당하다. 물론 기체가 워낙 많기에 우리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0.01%, 100ppm 정도를 높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기온이 1도 이상 상승했고 2도까지 상승하는 것을 막는게 이번 세기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가 꾸준히 연구하고 경고했지만 킬링에 의해 정확히 입증되었다. 그는 주변의 이산화탄소 배출 영향을 피하기 위해 하와이 마우나로아 산에서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였고 지금은 교과서에도 많이 등장하는 킬링 곡선이 탄생했다. 이 그래프를 보면 이산화탄소 농도는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며 증가하는데 매년 들쭉날쭉 톱니처럼 오르락내리락 한다. 내리는 시점은 7-8월로 한창 여름이라 북반구에서 식물들이 탄소를 대거 흡수하는 시기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이 효과가 사라져 들쭉 날쭉하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이 내뿜는 탄소는 꾸준히 증가하므로 그래프를 결국 우상향한다. 

 냉전이 끝나자 사람들은 핵무기보다는 다른 공포인 온실효과에 주목했다. 마침 다같이 뭔가를 해보자는 분위기도 세계적으로 무르익었다. 그래서 1992년 리우에서 처음으로 지구환경에 대한 국제적 협의가 열렸다. 이런 협의를 COP라고 한다. COP는 6회에 이르자 기후변화에 대한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기술적 해결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산업이나 기술을 퇴출하고 가급적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탄소배출권에 대한 것이다. 기술적 해결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이 안될 정도로 어려웠다. 여기에 후발주자인 인도, 중국 등의 개도국에겐 적용이 어려웠고, 거의 전 산업체계에서 탄소를 배출하기에 사실상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탄소배출권은 거래제나 벌금의 형태로 지금도 남아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배출되면 확산하는 이산화탄소를 정확히 누가, 어떤 기업, 국가가 배출하는지 특정하는게 어렵다. 

 COP7에서는 미국이 교토의정서를 거부했다. 하지만 COP15인 2009년에 이르자 미국에선 오바마가 당선된다. 또한 세계 각국이 온난화로 인한 피해를 체감하고 기술도 더욱 발전했기에 변화분위기가 감지되었다. 하지만 이렇다할 합의를 도출하는데는 다시 실패한다. 한 가지 성과가 있다면 녹색기후기금의 창설이다. 이 기금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기금으로 피해가 일어난 국가나 지역을 지원하게 된다. 놀랍게도 이 기구는 한국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다. 당시 녹색성장을 밀어붙인 결과가 아닌가 한다.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탄소에너지가 아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근본적 해결책이다. 그 대표적인게 태양광 발전이다. 태양광 기술은 많이 발전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넓은 부지의 필요성이다. 2021년 충남 태안에 200-30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넓은 태양광 발전 부지가 계획되었다. 이 정도 넓은 부지에서 생산하는 전기는 300만 메가와트다. 많은 발전량인 것은 분명하나 공장 크기의 화력발전소 하나가 만드는 전기가 이것의 두배인 800만 메가와트란 점을 감안하면 문제가 있다. 상당히 넓은 부지가 필요함에도 발전량이 크지 못한 것이다. 특히 한국은 비좁은 국토에 산지가 많아 이런 설비를 구축하기 어렵다. 사우디처럼 태양이 강하고 사막이 많은 나라가 적합하다. 여기에 태양광은 만들면 끝이 아니다. 끝없는 유지 관리가 필요하다. 패널엔 오래되면 먼지가 쌓여 발전효율을 떨어뜨리고 한국의 혹독한 여름과 겨울, 폭우와 폭설, 강한 바람을 견뎌내야 한다. 이로 인해 유지보수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관리가 힘든 것이다. 

 관리가 힘든 건 풍력도 마찬 가지다. 풍력 발전기는 기본적으로 수십미터 높이다. 발전기 2000기당 한 개정도에서 화재가 발생하는데 이럴 경우 화재 진압이 어렵다. 특히 발전기가 산꼭대기나 해상처럼 화재장비가 진입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한 경우도 많다. 요즘처럼 가물다 산에 위치한 풍력발전기에서 화재가 일어나 대형산불로 번지는 사건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풍력 발전기는 복잡하기도 하다. 태양광은 패널에 전기선정도로 구조가 단순하다. 하지만 풍력은 강한 바람을 이겨내며 계속 회전해야 한다. 유지 보수가 더욱 어려운 것이다. 

 전기차는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에디슨도 만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무거운 배터리와 충전기술의 어려움으로 사장되었다. 그러다 중동전쟁에서 오일쇼크로 잠시 주목받았다. 풍부한 석탄으로 화력발전을 하고 이 전기로 자동차를 운용하려 한 것이다. 전기차가 다시 주목받게 되는데는 배터리 기술의 발전이 크게 기여한다. 80년대 들어 일본의 전자회사들은 휴대용 기기들을 보급하고 대중화한다. 소니의 워크맨이나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 기기들이다. 이 기기들은 기본적으로 휴대용이고 디자인도 중요했기에 배터리가 반드시 소형화하면서 효율도 높아야 했다. 일본 업체들은 이를 해냈고 마침내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발한다. 지금도 사용하는 그 전지다. 

 배터리의 높아진 효율과 소형화로 많은 기기들이 전기화하고 있다. 자동차와 드론이 그것이다. 그리고 각종 기기의 전기화는 중국 같은 후발주자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기존 비행기나 헬리콥터 자동차는 내연기관으로 그 구조가 매우 복잡하며 높은 기술을 요구한다. 하지만 전기기기는 그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 때문에 드론이나 전기자동차 같은 경우 이미 중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진입했다. 

 수소경제도 주목받는다. 수소는 그 자체가 좋은 연료이긴 하지만 전기 에너지의 저장과 이동 매체로 더욱 각광받고 있다. 전기는 최대 약점이 저장하지 못하고 이동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의 발전은 전기량을 예측해 발전하고 비효율적으로 전기선을 이용해 큰 손실을 보며 공급하는 구조다. 하지만 수소로 전기를 저장한다면 이런 문제가 많이 해소된다. 남는 전기로 물을 전기 분해하여 발생시킨 수소를 저장 유통하는 것이다. 각 가정에 이미 가스관이 연결되어 있고 이를 수소로 중앙에서 공급하여 각 가정의 수소연료전지로 발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이런 수소의 가능성에 눈을 뜨고 이 부분에서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한국은 수소경제에 유리한 점이 많은데 우선, 가스나 석유가 전혀 없어 이 부분에 대한 이익집단이 없어 빠르게 탈탄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화학산업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많은 화학공정에서 수소가 필요하고 발생하는데 한국의 산업체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수소를 만들고 유통하고 서로 판매해왔다. 마지막은 완성차 업체들이 장기간 수소차 개발에 투자해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 사회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마 어려운 점은 나의 행위가 얼마나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기는지 아는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일회용 종이컵을 안쓰고 텀블러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종이컵 하나를 아낀다면 그는 매일 11g의 이산화 탄소 배출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태평양의 섬으로 해외 여행을 떠나서 머물다온다면 그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무려 1000kg이상이 된다. 종이컵을 240년 안써야만 도달할 수 있는 탄소배출량이다. 플라스틱의 사용도 마찬가지다. 플라스틱은 썪지 않고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환경을 오염시킨다. 하지만 의외로 탄소배출량이 생산과정에서 적다. 만약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조선시대처럼 도자기를 쓴다면 탄소배출량이 어마어마하다. 이들은 1000도 이상에서 장기간 구워야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한다. 여기에 무게도 무거워 그 유통과 생산과정에서도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잘 파손되기에 플라스틱보다 자주 교체될 것이다. 생각보다 도자기가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것이다. 먹거리도 그렇다. 반도체 하나를 생산하는데는 불과 675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만 치즈 1kg은 2만g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기후 변화를 위해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기후 변화는 한 국가만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전 세계 공통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대국과 선진국은 기후 변화 문제를 자국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기후변화의 해결을 위해 전기차와 수소차 모두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수소경제에 강한 기술과 인프라를 구축한 나라를 수소를 해결책으로 주장할 것이고 전기차에 강점이 있는 나라는 전기차로의 해결을 주장할 것이다. 마지막은 기후 변화는 약자들부터 피해를 입는다는 점이다. 기후 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부유층은 에어컨으로 해결하면 된다. 하지만 약자들은 그 뜨거운 온도를 온몸으로 겪어내야 하고 심한 경우 사망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식량의 가격이 오른다면 부자들은 이를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한 자들은 굶주려야 한다.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와 피해는 약자에게 먼저오기에 이들을 보호하는 조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대출 없이 0원으로 소형 아파트를 산다 - 300만 원으로 100억 자산을 이룬 부동산 소액투자의 기술
잭파시(최경천) 지음 / 다산북스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동산이든, 코인이든, 주식이든 볼 때 마다 이게 무슨 짓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불장에 뛰어들지 못한 개인적인 아쉬움도 갖고 있으며, 근로소득자가 수 십년을 노력해야 만질 수 있는 돈을 일거에 벌어들인 것을 보아도 어처구니가 없다. 게다가 부동산, 코인, 주식은 벌어 들인 돈에 대한 세금도 천차 만별이다. 사실상 부동산은 조정지역이라면 10억이 올랐어도 내가 다주택자라서 중과된 양도세를 내게되면 가져가는 돈은 2-3억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식은 내 보유 주식 금액에 따라 이것보다 한참 적은 세금을 낼 것이며, 코인은 그나마도 없다. 

 부동산의 경우 경제 성장 없이 2배 정도 오른 것을 보면 허구란 생각 뿐이다. 집이 두 채인 사람은 큰 의미가 있다. 한 채를 100% 수익을 거두며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금을 크게 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 채인 사람은 당장 그것을 팔고 지방으로 내려 갈 것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아이들도 있고 내 직장에, 생활이란게 있어 이렇게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2배가 올랐다고 해서 모두가 이 가격에 팔 순 없다. 만약 상당한 수가 이 가격에 집을 내놓는다면 폭락할 것이다. 결국 상승한 집값이란건 내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의 상승, 그리고 지금 집을 팔고 그걸 받아줄 사람이 있을 때 수익을 거둘 기회정도로 보인다. 물론 이것도 상당히 큰 혜택이자 장점이다.

 세계적으로 금리가 크게 인상하며 부동산, 코인, 주식 모두 폭락 중이다. 투자 주기에 접어들어 막 시작한 하락장이기에 적어도 2-3년은 하락장을 탈 것이란게 중론이다. 2008년에 시작한 하락장은 갑작스럽게 터진 것이었지만 이번 하락장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2008년의 하락장은 한국의 경우 2008년부터 2013년정도 까지 이어졌고 과거 2000년대 초반의 상승 분을 거의 반납했었다. 이번 하락장은 사실 2019년 정도에 양적완화의 중단과 더불어 시작되었어야 했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그 끝이 미뤄졌고 양적완화가 더욱 크게 이뤄져 풍선은 더욱 커졌다. 때문에 그 골은 더욱 깊고 길게 형성될지도 모른다. 

 이런 하락장에 읽은 투자책이라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금리 인상을 예상하지 않고 책을 서술한 것이기에 더욱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읽으면서 배울만한 점과 독특한 점도 적지 않아 괜찮은 편이었다. 저자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소득이 그리 크지 않고 가진 것 없는 흙수저이기에 무피투자나 플피투자에 집중했다. 그래서 투자 10년간 100억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투자금 자체를 적게 잡기에 다른 부동산 책과는 다르게 서울의 주요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많지 않다. 경기권과 특히 서울 북부인 고양 등지와 인천에 투자가 많고 지방 아파트에 대한 투자가 많다. 특히, 조정지역에 대한 양도세중과로 인해 지방의 공시가 1억 미만 아파트 투자가 많다. 이렇게 하면 양도세가 중과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투자는 역시 시기가 중요하다 말한다. 부동산 투자 역시 시기를 타며 대개 상승장 5년 하락장 3년이다. 물론 부동산은 장기 우상향한다. 경제가 계속 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 주기에서 상승의 끝 부분에 투자했다면 긴 하락장을 견뎌내고 다음 상승장에서 그 상승이 자신의 투자금을 넘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하락기의 끝 부분에서 투자를 한다면 상승장의 상승분을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다. 저자는 상승장이 5년 주기를 갖는다고 하는데 이는 불황기 미분양으로 장기휴업중인 건설사가 회복기에 들어서면 다시 아파트를 짓고 분양 계획을 갖는다. 하지만 상승기 초기에는 매수세가 작아 완판에 자신감을 갖기 힘들고 그래서 분양가도 낮게 잡는다. 이후 시간이 지나 상승기 2-3년차가 되면 분양을 시작하고 완판된다. 분양 후 입주까지는 3년이 걸린다. 그렇기에 상승장이 5년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차별성은 부동산 투자에서도 불황기를 견딜 수 있는 전략을 제공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6:4전략, 4:2:2:2전략이라 부른다. 6:4 전략은 수도권에 6을 지방에 4를 투자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도권은 세계적인 부동산의 주기를 따른다. 하지만 지방은 그렇지 않다. 수도권을 따르기도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기에 공급과 수요가 굴러가는 시기가 다르다. 때문에 수도권은 불황이어도 지방은 오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 수도권 부동산의 불황기에 지방은 오르는 경우도 많았다. 다음은 4:2:2:2전략이다. 이건 수도권 아파트4, 지방의 공시가격 1억 이하 아파트 서울 인천 지역의 구축 빌라, 서울의 오피스텔에 각각 2를 투자하는 것이다. 수도권 아파트는 장기투자, 지방의 저렴한 아파트는 수도권과 다른 상승 주기를 노린 투자, 구축 빌라는 장기적 재건축 재개발을 노린 투자, 오피스텔은 서울 중심가에 대한 접근 및 현금흐름을 위한 투자다. 저자는 갭투자를 위주로 하지만 현금흐름도 중시하는데 불황기의 현금압박을 견뎌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저자의 실전 투자 경험 사례와 중요한 자료를 획득하는 방법 등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불황기에 나온 책이기에 특이하고 독특했다. 오늘 라디오에서 한 펀드투자자가 나왔는데 지난 기간 동안 자신들의 펀드가 200% 정도의 수익을 기록했다고 했다. 하지만 들어왔다 나간 펀드 가입자 중 그만한 수익을 거둔 사람은 절반이하라고 한다. 그만큼 투자는 무엇이든 들어가는 시기와 불황을 견뎌내는게 중요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 미래 교육 대전환 - 입시교육의 붕괴와 고교학점제, 특별한 교육만 살아남는다
김보배 지음 / 길벗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 이후 교육광고엔 하나의 큰 변화가 생겨났다. 과거엔 메가스터디나 구몬 등 학습지나 학원이나 온라인 강의 광고가 주류였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엘리 하이처럼 인공지능에 의한 자기 주도적 또는 개별학습을 제공하는 광고가 대세가 된 것이다. 코로나로 학교 교육이 체계적 학습을 제공하지 못하고 부실한 원격 수업을 제공하자 빠르게 대체재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온라인 도구 혹은 인공 지능을 활용한 지식 학습은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공교육인 학교 현장에도 이런 도구가 들어오는 것은 시간의 문제라고 본다. 최고의 학습은 개인의 수준과 흥미에 맞춘 개별화 학습이고 현재의 일인 교사와 다수 학생 체제로는 이런 대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빠르게 지식 학습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고 후발 주자 일수록 이 부분에 사람 선생님의 오래도록 의존하며 뒤쳐질 것이다. 물론 이런 시대가 도래해도 인간 선생님은 중요하다. 누군가 이들을 관리하고 인간적으로 대하고, 협력 학습이나 동기부여, 혹은 마을교육이나 프로젝트를 구성하여 온라인에서 학습한 것으로 협력하여 구현할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온라인 학습 시대가 소위 공부의 추월 차선을 제공한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는 학습의 양극화를 크게 불러올 가능성이 높은데 온라인 시대는 시공을 초월하여 매우 강력하고 멋지며 수준 높은 학습을 제공하면서도 극강의 유혹도구로 사람을 파편적 지식과 유희에 매몰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최근 기업은 더 이상 스펙이나 학벌, 지식에 얽메이지 않는다. 국내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 블라인드 채용을 늘리고 있다. 카카오는 인재 채용 기준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가보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기, 무엇이든 본질만 남기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 나보다 동료의 생각이 더 옳을 수 있다고 믿기, 스스로 몰입하고 주도적으로 일하기, 세상을 선하게 바꾸려고 노력하기 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학원을 다니며 문제풀이식 능력을 양성하는 자가 아닌 어려서부터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탐색하고 이를 통해 몰입하여 학습한 지식을 실제 생활 문제를 해결하며 키운 역량을 가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즉, 미래인재는 어떤 분야의 탁월함을 갖고 그 탁월함을 바탕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나누는 친절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탁월함은 깊이 있는 질문과 비판적, 창의적 사고에서 비롯하며, 친절과 소통은 타인과의 공감, 의사소통, 협력능력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이런 미래인재의 역량은 온라인 도구를 활용한 공부의 추월차선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게 책의 주장이다. 온라인 학습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물리적 한계와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가상 기술이 발달하면 실제 화성에 가지 않고도 위험한 화산을 가지 않아도 이를 체험할 수 있다. 역사속의 현장이나 주요 민주화 운동 사건의 체험도 가능하다. 매우 폭넓고 실제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음은 아이의 수준과 흥미에 따른 맞춤형 학습의 제공이다. 현재는 모든 아이가 한 교실에서 같은 수준의 수업을 받는다. 그래서 최고의 수혜자는 딱 중간 수준의 학생이 되며 이보다 우수하거나 못하다면 피해자가 된다. 온라인 학습은 개별학습으로 이를 해결한다. 마지막은 실제 생산해보는 즐거움이다. 온라인 학습 도구는 코딩이건 앱개발이건 3D 프린팅이던 도구를 이용해 자신이 단순 소비자나 학습자가 아닌 생산자로써의 경험을 갖게 한다. 

 이런 온라인 학습을 잘 이용하여 공부의 추월차선을 타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목적과 관심사가 분명해야 한다. 공부의 추월 차선을 타려면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 번째, 스스로 생각하고 아이의 입을 여는데 도움을 주는가 이다. 두 번째, 조금 더 어려운 단계의 도전 과제가 있는가?, 세 번째는 아이가 메이커로써 주도하는 온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이나 활동과 연계가 되느냐이다. 세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언급한 자기주도성을 위한 동기와 관심사다. 이는 다양한 경험과 자기 효능감에서 나오는데 자기 효능감은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결정해 성공해나가는 누적경험에서 비롯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은 자기 효능감은 물론 자신의 관심사를 잘 모르기도 하는데 이 경우 부모나 선생님이 항상 내가 너의 생각을 늘 궁금해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보면 관심사로 이끌리게 되는 것이다. 

 온라인 학습을 통해 공부의 추월차선을 탔다해도 이를 현실의 문제에서 해결해나가는 경험을 가지면서 이런 지식을 체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성공적으로 협업하려면 자신의 강점과 상대의 강점을 알고 그것을 조화시키는게 중요하다. 이 협업능력의 양성은 생각보다 어렵다. 학교교육에서라면 무엇보다 자주 어울리고 협력하는 경험을 제공하는게 중요하다. 때문에 최근 교육현장에서는 협력적 문제해결 평가를 중시한다. 또한 공부만이 아니라 놀이나 운동 기회를 충분히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서로 협력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도 협력의 양성은 가능하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의 강점을 찾아 인정해주기, 또는 서로의 감정이나 생각에 공감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강력한 추월차선을 제공할 온라인 학습의 시대가 눈앞에 있지만 아직 공교육 현장의 반응은 더디기만 하다. 1인 1기기 보급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이 달성되더라도 현장의 교사들이 대부분 인터넷 검색 이외에는 다른 기기 활용 학습법을 학생들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물질적, 정신적 도구 모두 현저히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첨단×유산 - 역사와 과학을 꿰는 교차 상상력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기획 / 동아시아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려대학교에서 과거 유산과 첨단기술을 연결하여 엮은 책이다. 하지만 책에서 양자가 비중이 비등하진 않고 유산에 더 초점이 가 있다. 그리고 연결도 좀 매끄럽진 못한 편이다. 그럼에도 첨단지식과 과거역사문화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첫 장은 미술이다. 미술은 시점의 변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회화가 평면인 만큼 동서양 모두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찾았다. 서양은 15세기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거울을 이용해 투시원근법을 개발했다. 이후 소실점을 그림에 한 개나 두 개, 세 개도 사용하며 과학적 접근을 한다. 동양은 이를 하늘로 올라가 극복했다. 부감법을 개발한 것이다. 

 한국은 조선시대 부감법을 많이 사용했는데 그리는 대상의 규모에 따라 높이를 달리 할 수 밖에 없었고 고공부감법, 고공경사부감법, 저공경사부감법, 평행사선부감법을 이용했다. 고공부감법은 하늘의 높이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것으로 궁궐의 장대함이나 많은 인원을 동원한 행사에 적합했다. 고공경사부감법은 시선을 약간 뒤로하면서 위로 올라가는 것으로 경사각을 표현한다. 정산의 금강전도, 김홍도의 월야선유도가 이 방법을 사용했다. 저공경사부감법은 살짝 만 뒤로 올라간 것으로 규모가 작고 대상을 크게 그려도 되는 풍속화에 적합했다. 서당이나 단오풍정 등이 이 방법을 사용했고 공간이 친밀하게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 평행사선부감법은 고공경사부감법을 발전시킨 것으로 부감법의 최종판이다. 고공경사부감법을 취하되 건물만을 특이하게 정면에서 45도를 비틀어 그려 입체감을 드러낸다. 규장각도나 화성행궁도가 이 방법을 사용했으며 가까운 것을 오히려 작게 그리고 먼 것을 크게 그린다. 

 한국에는 평행사선부감법으로 제작한 대작으로 효명세자가 남긴 동궐도가 있다. 크기가 무려 576*273으로 창경궁과 창덕궁, 비원등 당시 궁궐의 전체를 남겼다. 워낙 대작이었기에 여러 화원이 나눠 그렸는데 그럼에도 하나의 시선으로 그림을 완성한 것이 대단하다.

 서양에서는 도자기를 도기와 석기, 자기로 구분한다. 기준은 온도인데 도기는 80-1100도, 석기는 1100-1250도, 자기는 1250도 이상이다. 이 구분에 따르면 삼국시대 백제토기는 800-900도였고 통일신라의 토기는 900-1000도, 조선 백자는 1250도 내외로 부합한다. 도자기는 유약을 쓰는데 그 역사는 철분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분이 어느 정도 되느냐에 따라 색이 바뀌는데 흑색은 10%, 붉은 색은 5-10%다.  

 최초의 청자는 중국 한나라에서 1세기 쯤 탄생했다. 중국 항주 인근 절강성이 청자 집단 산지로 이후 1000년이 지나서야 고려에 들어왔다. 청자 생산의 핵심은 알맞은 태토를 찾는 것이고 두 번째는 유약, 세 번째는 불을 때는 기술이다. 고려 청자의 가마기술은 아마 10세기 경 중국 월주요지역에서 장인을 통해 유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자는 가마 밑바닥에 뒤집어 놓은 듯이 동그란 모양으로 깔려있는 감발이란 것을 쓰는데 이는 보조역할을 한다. 감발을 사용하면 자기에 열을 고르게 전달해 발색이 좋다. 하지만 소수만 소성할 수 있기에 비용이 많이 들고 고급청자에만 쓴다. 

 백자와 청자는 태토가 매우 다르다. 청자는 논밭 1미터 정도 아래의 흙이 적합하고 강진과 부안의 것이 좋으며 양도 풍부하다. 하지만 백자는 돌을 부순 흙이 적합해 산 꼭대기에 태토가 있다. 여러 지역의 태토를 배합하기에 흙의 확보가 매우 어렵다. 유약은 재를 쓰는 것과 납을 쓰는 것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재를 쓰는데 납유약은 인체에 해롭기에 써도 주로 자기의 외부에만 쓴다. 납유약은 중국의 당삼채에 적합하다. 자기를 굽는 과정에서 각종 색상이 자연스레 흘러내리는데 그래서 당삼채의 색이 총천연색을 띄게된다. 반면 재유약은 채색이 어렵다. 무슨 나무 재를 얼마나 섞느냐가 중요하다. 

 중국의 가마는 상당히 규모가 크다. 높고 길이도 긴데 반면 고려의 것은 높이도 낮고 길이도 짧다. 중국의 가마는 대량생산에 적합하고 고려의 것은 애초 소량생산 용이었던 것이다. 고려의 것은 대량생산은 어려운 반면 가마가 작기에 온도의 조절이 좋고 소성과 냉각이 쉽고 빠르다. 때문에 색이 좋고 고급청자가 잘 나온다. 청자의 색은 역시 철과 관련하는데 유약의 철이 환원하면 푸른색으로 변화한다. 가마 안의 장작이 타면 탄소가 발생하는데 탄소가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이산화탄소가 되어 날아간다. 이렇게 공기 중의 산소를 조절하여 산화환원을 조절해 색을 내는 것이다. 

 처음엔 아궁이에 소량의 장작을 넣고 문을 열어놓는다. 이러면 산소가 들어와 탄소와 결합하고 산소는 유약의 산화철과 결합하여 산화가 더욱 진행된다. 그러다 900도에 이르면 장작을 3-4배 넣고 문을 닫는다. 이러면 산소가 급격히 줄고 탄소가 늘어난다. 그리고 이 탄소가 유약의 산소를 빼앗아 유약을 환원시키는데 이려면서 푸른 색을 띄게 되는 것이다. 

 고려청자의 백미는 색과 더불어 상감이다. 하지만 상감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릇은 구우면 부피가 줄어드는데 청자는 15%, 백자는 20% 정도가 감소한다. 태토와 바른 유약의 열팽창계수가 같아야 같은 비중으로 줄어 균열이 없는데, 이를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때문에 대부분의 청자와 백자는 약간의 균열이 있다. 여기에 상감을 하면 태토와 유약, 그리고 백상감토, 흑상감토 4박자가 맞아야 한다. 고려청자는 중국 청자보다 색이 좋은데 이는 가마와 관련한다. 고려의 가마는 작아 빠른 냉각이 가능해 유약에 결정이 적다. 때문에 난반사가 적어 색이 잘 나는 것이다. 

 조선의 백자는 시기마다 사실 색이 조금 씩 다르다. 순백색으로 시작해 회백색, 백옥색, 청화백자로 이어지는데 가장 최고는 백옥색을 띤 18세기 백자다. 백자가 회백색을 띄는 시기는 나라 경제가 어려워 태토 확보가 어려웠던 시기다. 백자는 청자와 다르게 상감이 아닌 그림을 그리는데 이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초벌구이 한 백자는 표면이 입체이니 당연히 그림을 그리기가 어려우며 매우 건조하므로 수분을 빠르게 흡수한다. 때문에 한붓으로 빠르게 그리지 않으면 먹이나 물감을 모두 먹어버린다. 여기에 재벌하면 크기가 더 작아지기에 애초에 그림을 그릴때 축소 될 것도 감안해야 한다. 

 김정호는 평생 지도를 제작했다. 그는 30대였던 1834년 청구도를 제작했고 1859년 동여도를 완성하고 대동여지도를 완성한다. 대동여지도는 동여도를 초고로 삼아 판각한 것이다. 김정호는 지도제작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지리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동여도지, 여도비지, 대동지지를 편찬하여 지도와 지지를 항상 같이 제작하였다. 지도에는 정보를 담는데 큰 제약이 따르기에 그는 지지를 같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대동여지도의 지지편이 대동지지다.

 대동지지는 32권은로 1권이 서울, 2-24권은 8도의 각 군현, 25도는 산수고, 26도는 변방고, 27-28권은 정리고, 29-32권은 방여총지다. 정리고는 각종 도로망이고 방여총지는 단군에서 고려에 이르는 우리 나라의 영역을 담은 것이다. 

 김정호에 대한 오해는 세간에 널리 펴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지도를 평생 전국을 돌며 실측해서 만들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정부와의 갈등으로 인한 옥사설이다. 이는 과거 교과서에 이렇다할 근거없이 짧게만 실렸던 것이 널리 퍼진 것으로 아마도 내용이 극단적이어서 였을 것이다. 책의 저자는 이것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실측이다. 아무리 공간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도라도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를 그냥 걸어서 지도로 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아파트단지는 단순하기로도 한데 경계가 복잡하고 산과 물이 접하고 고저가 있는 과거 조선의 군현은 어떨까. 물론 산 등 높은 곳으로 올라가 조망하는 방법도 있으나 전국을 이렇게 하기도 힘들고 막상 높은 곳은 시계가 나쁜 경우도 많다. 때문에 저자는 김정호가 실측이 아닌 방대한 자료를 얻어 이를 토대로 종합하여 지도를 편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기에 옥사설도 말이 안된다. 방대한 자료를 관으로부터 얻어 지도를 제작할 수 있던 자가 정부와 갈등관계이긴 어렵다. 저자는 사실상 김정호가 정부의 의뢰 혹은 관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어 정보에 대한 접근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널리 보급할 목적으로 목판제작하였다. 목판은 약점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단색 표현으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점과 필사지도와는 다르게 많은 정보를 넣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동여도에는 지명이 1만 8천개인데 대동여지도에는 1만 2천개로 줄어든다. 김정호는 심사숙고하여 중복되는 것을 제외하고 중요도를 기준으로 6천개를 떨군 것으로 보인다. 

대동여지도에는 특이하게 산과 강등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도로망만은 직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현대에도 직선도로가 매우 드문데 조선에 직선도로가 웬말일까. 여기엔 김정호의 의도가 담겨있다. 목판본은 언급한 것처럼 단색이기에 도로망마저 실제로 그리면 산맥 및 하천 등 다른 것과의 구분이 매우 어려워진다. 이에 김정호는 도로를 직선표기하고 거리를 알려주기 위해 눈금표기 하였다. 때문에 지도를 보는 사람은 군현간의 실제 거리를 매우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또한 김정호는 실제 도로가 연결되지 않은 군현 사이에도 도로를 그려넣었는데 이는 도로는 없더라도 각 군현간의 관계망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여러모로 머리를 많이 쓴 셈이다. 

 조선에서 소식을 전하는 방법은 편지와 봉수, 필마가 있었다. 이중 가장 빠른 것은 봉수인데 속도가 시속 100km였다. 하지만 봉수는 매우 단순한 의도만 전달 할 수 있었는데 봉화가 5개여서 개수에 따라 정보가 달랐다. 하나면 평시이고 두 개면 국경에 접이 출몰, 세 개면 적의 침범, 네 개면 척의 침공, 다섯 개면 전투였다. 하지만 정보전달이 매우 단순하고 실수가 잦았으며 봉수꾼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필마에 더 의존했다.

 조선은 말을 통한 소식연결을 위해 전국에 역을 운영했다. 말은 시속이 60km로 빠르나 지구력이 약해 대충 30리 간격으로 역을 배치했다. 이로 인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15-20일이면 소식이 도달했고 실제 임진왜란때 선조는 3일 반만에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큰 규모의 역은 전국 41개 작은 역은 504개 였다. 찰방이라는 관리가 역의 총책임자였고 그 밑에 역리가 있었다. 큰 역에는 역리가 20-30명, 작은 역에는 2-3명 배치되었고 그 아래 역노비가 다수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암행어사가 동원하는 인원이 바로 이 역노비다. 1808년 전국 역에서 보유한 말의 수가 5380필에 달했다 .상당한 수인데 아마 전란이 일어나면 군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역에서 말을 사용할 권리를 증빙하는게 마패다. 마패는 세 가지 역할을 했는데 역에서 말을 빌리고 ,신분을 증명하고 , 공문서에 도장으로 쓰인 것이다. 10마패는 왕, 7마패는 대군, 6마패는 정2품이상, 5마패는 종2품 관리이고 그 아래는 1-5마패를 썼다. 마패는 나무나 철로 초기 제작했는데 부식을 막기 위해서 나중에는 구리 마패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라시아 역사 기행 - 한반도에서 시베리아까지, 5천 년 초원 문명을 걷다
강인욱 지음 / 민음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 4대 문명을 지금 사회의 시원으로 보지만 이는 농경사회, 특히 서구적 시각에 가깝다. 채집 및 유목은 농경보다 오래되었고, 특히 반건조지역인 초원은 화약의 발명으로 무력화되기 전까지 적은 인구수에도 인류문명에 상당한 족적을 남겼다. 많은 문화 및 기술의 전달 통로 역할을 하였고 단절된 농경지역을 교역로로 연결했으며 때론 막강한 군사력으로 농경제국을 허물고 세계제국을 세우기도 했다. 때문에 저자는 초원은 적어도 5대 문명쯤 취급받아야 한다고 본다. 현재 초원 문명중 농경사회에 삼켜지지 않고 이렇다할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거의 없다보니 초원의 역사 역시 제대로 발굴되지 않는 측면이 상당하다. 

 농경문명을 계승한 지금의 국가들은 초원에 대해 두 가지 정도의 관점을 갖는다. 우선 대국들은 과거 초원에 당한 것을 생각하며 야만이나 이질적이고 공포의 대상으로 취급하면서도 그들이 이룬 대제국을 이중적으로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려 한다. 그리고 주변부의 국가들은 초원을 웬지 자신들의 기원으로 삼고 싶어한다. 동아시아로 치자면 전자는 중국, 후자는 한국과 일본의 태도다. 하지만 둘다 옳지 못한 태도이며 기본적으로 초원이 농경국가와 꾸준히 교류하고 기술문화적으로 상호 영향을 미친 것에 대해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우린 초원을 다소 낭만적으로 생각하지만 인구가 적은 만큼 그 지역은 인구부양력을 갖지 못한 매우 혹독한 지역이다. 여름이 매우 짧고 겨울은 혹독하고 길다. 초원은 이 짧은 여름에 자라난 풀에 의존한다. 식량이 없기에 유목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데 효과적 가축 통제와 목초지로의 빠른 이동을 위해 식량수단이던 말을 이동수단으로 길들였다. 장성한 아들이 먼저 분가하여 새로운 목초지로 떠나기에 초원에선 마지막까지 남은 막내가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한다.

 말을 길들이는데는 3가지 중요한 마구가 필요했다. 우선 재갈이다. 재갈은 말의 이빨을 뽑아서 끼우거나 어금니를 갈아낸 후 끼우는 것으로 약간의 힘으로도 고삐를 당겨 말에게 큰 고통을 줄 수 있다. 때문에 재갈이 개발되고 나서야 말에 탄 인간이 안정적으로 말의 방향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은 안장이다. 말의 등뼈는 울퉁불퉁하여 등에 타면 탄 사람에게 상당한 부상과 불편한 감각을 준다. 때문에 안장을 개발해 등뼈를 덮고나서야 사람은 안정적으로 승마를 할 수 있게 디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기병이 등장한다. 마지막은 금속제 등자다. 등자는 이전에 개발되었지만 금속제 등자는 3-4세기 고구려고 처음 개발했다. 금속제 등자로 중무장 기병이 등장한다. 말위에서 무거운 무기를 휘두르거나 말 자체를 무겁게 무장시키면 승마자가 안정적일 수 없었는데 금속제 등자의 등장으로 큰 훈련없이도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고구려의 개마무사는 바로 이 금속제 등자의 발명으로 탄생한 것이다. 

 말을 어느정도 다룰 수 있게 되자 전차가 등장했다. 전차는 무기이면서 신과 인간을 잇는 상징물이기도 했다. 전차는 매우 비싼 무기였는데 바퀴살이 개발되고나서 더욱 활성하한다. 유명한 카데시전투에서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맞붙었는데 히타이트는 바퀴살을 개발해 전차를 경량화한 덕에 3명이 전차에 승선했다. 한명의 방어, 한명의 공격, 한명의 운전이다. 반면 이집트는 기존처럼 한명 공격방어, 한명 운전으로 크게 불리했다. 전차는 기원전 11세기가 되어서야 중국 상나라에 전파하였고 한반도와 만주에선 별로 쓰이지 않았다. 이는 당시 한반도와 만주에 큰 전쟁이 없던 중교중심의 제정일치 사회라는 것과 산악지형이 많아 전차가 별로 쓸모가 없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초원 민족은 승마를 하기에 생식력이 낮았다. 승마는 위험한 것으로 격렬하게 오래 말을 타면 자연거세 확률이 높았다. 유목사회는 이런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여 보상하였고 생식과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더욱 전투에 집중해 무서운 전투력을 가진 전사로 거듭났다. 유목사회는 인구유지를 위해 생식력을 보존한 다른 사람들이 많은 아이를 낳아 그 아이를 입양시키는 방법과 전쟁포로를 집단에 유입시키는 방안을 썼다. 

 사슴은 초원에서 생활에 필수적인 고기와 가죽을 제공하기에 매우 중요한 문화적 모티프가 된다. 사슴을 숭앙하는 풍습이 초원이 널리 분포하는데 이는 동아시아에도 이어진다. 기원전 9-5세기 초원에는 사슴돌이 만들어진다. 이는 2미터 정도 크기로 자바이칼, 알타이, 몽골 등지에 분포한다. 전면을 사슴문양으로 채운 이 돌은 전체가 초원전사를 의미한다. 귀부분엔 그래서 귀걸이가 허리부분엔 허리띠와 칼 문양이 등장한다. 스키타이 전사들은 역동적인 형태의 사슴을 새긴 청동이나 목제 장식품을 애용했다. 그들이 그린 사슴은 종류만 10종 이상에 자세도 매우 자세하여 사슴에 대한 상당한 관찰과 관심을 보여준다. 한편 사슴문화는 한반도에도 펴졌는데 그래서 기원전 3-1세기 사슴문양 청동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한반도는 사슴문화가 크기 않은 지역이다. 

 중국에선 초원 세력을 야만시하고 적대하지만 그들의 역사에 초원은 역시 깊이 자리한다. 중국은 초원세력인 원과 청, 요와 금을 겪었고, 몇몇 한족(?)왕조는 사실상 초원과의 연합세력이다. 우선 주나라를 들 수 있다. 주는 중원에서 서북방면으로 건너간 일파가 현지에서 주변 세력과 연합하여 힘을 키운 후 다시 중원으로 진출해 상을 멸하고 세운 나라다. 전국시대 조나라도 있다. 조나라의 무령왕은 인근 약소국인 중산국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한다. 중산국은 유목문화를 받아들여 강한 기병을 갖고 있었는데 이를 당하지 못한 것이다. 무령왕은 당시 중원인이 남여 모두 치마를 입던 것을 호복인 바지를 스스로 입고 명령하며 기병을 키웠다. 결국 이들은 중산국을 멸하고 중원의 패자가 된다. 다음은 진이다. 진은 위치 자체가 중국 서북방면으로 애초에 중원과 거리가 멀다. 진은 오래된 국가인데 기원전 7세기에 묵공이 서융을 제압하고 그들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비로소 세력을 떨치게 된다.

 신라의 적석목곽분은 특이한 양식으로 4세기 갑자그 등장해 200년간 유지된다. 알타이 지역의 파지릭 고분이 매우 유사하다. 파지릭 고분은 무덤 주변에 둘레돌을 두르고 무덤 위로 돌을 쌓고 안에는나무 무덤방을 놓는다. 둘 다 유라시아에서 매우 드문 방식이다. 신라와 가야에는 후발주자이고 고구려 백제와 달리 북방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짐에도 북방 문화가 많이 나타난다. 신라의 천마도와 황금보검 가야에서 출토되는 철제무기나 마구등이 그러하다. 학계에서는 한때 이들 지역이 북방기마민족의 후예가 내려와 강하게 영향을 미쳐서 그렇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저자는 그런 인구이동의 흔적은 별로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소국인 이들에게 이런 문화가 나타나는 것은 강한 힘에 대한 동경과 더불어 스스로가 북방과 대결하며 교류하고 문화를 창조하는 고구려와 강한 문화적 정체성과 폐쇄적 농경문화의 백제에 비해 바다를 접해 개방적이고 오히려 교류가 원거리로 가능했던 이들 지역이 영향을 받기 쉬웠기 때문이 아닐까로 추정한다.

 한국의 대표적 먹거리 문화인 불고기는 사실 농경과 유목문화의 결합품이다. 초원에선 샤슬릭이란 꼬치구이가 오래전 부터 유행인데 그들은 양고기를 꼬치에 끼워넣고 다니며 불에 쉽게 구워먹곤 했다. 이를 발전시킨게 고구려의 맥적이다. 맥적은 반농반목 국가인 고구려에서 콩류의 양념을 고기에 재워 꼬치 형태로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양고기와 양념이 없는 고기는 아무래도 비린내가 나기 마련인데 맥적은 양념을 하여 이것을 잠재운 것이다. 맥적은 중국과 초원에서 인기가 매우 좋았고, 조선의 설하벽으로 이어지고 지금의 산적과 너비아니로 이어졌다. 지금의 불고기는 콩과 고추장류 양념에 채소를 곁들이는 것으로 완벽한 초원과 농경의 융합작품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22-07-05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에 ‘기병이 등장하자 전차도 등장했다’는 의미는 전차가 기병 이후에 나왔다는 의미인지요?
그렇다면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전 전차가 먼저 나오고 한참 후 기병이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닷슈 2022-07-05 22:01   좋아요 1 | URL
아니요, 북다님 말씀이 맞습니다. 전차 이후 기병입니다. 어느 정도 말을 쓸 수 있게 된다음 전차가 등장했다라는 표현을 하려던 것이었는데 좀 문제가 있네요. 고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