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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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책의 종류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아마도 분명히 문학일 것이다. 소설이든 시든, 수필이든 문학은 가장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인공지능마저 문학을 창작할 미래에도 이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언젠가 인공지능도 자신이 또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학을 보며 이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책 '문학이 필요한 시간'을 보면서 나한테 문학이란 뭔지, 내가 왜 문학을 보는지 생각해봤다. 난 책을 꾸준히 보는 편이지만 문학과 지식으로 책의 주제를 아주 거칠게 두 개로 나눈다면 단연 나의 관심사와 분야는 '지식' 책 쪽이다. 매년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읽은 책의 70-80%는 항상 지식 책이 차지한다. 분야는 과학과 교육, 사회, 지리, 경제, 역사, 예술, 철학 등의 순이지만 사실 분야는 잘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보려고 한다. 

 내가 지식 책을 편식하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그것을 알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주로 영감을 얻는 분야는 우주와 진화, 지리를 다룬 책들인데 인간을 설명하는 근원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지식 책을 읽을수록 아쉬운 점은 경제학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처럼 영혼을 뒤흔들거나 머리를 도끼로 깨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들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처럼 지식 책이 주는 효용은 상대적으로 분명한데 비해 문학은 개인적인 측면에선 아리송하다. 문학을 보면서 느낀 개인적 효용은 아무래도 재미였다. 책을 읽으면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과 이야기, 그것을 둘러싼 세계관에 빠져들었고 간혹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는 경우도 있었다. 천명관의 '고래'나 '삼체', '7년의 밤' 같은 소설이 그랬다. 그리고 현실이나 과거의 세태를 비판하는 책들도 나름의 재미를 주었다. 문학이 필요한 시간의 저자도 그렇고 문학을 좋아하는 몇몇 분들은 아름다운 문장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사실 문학을 많이 보지 못한 지라 그런 느낌은 많이 받아 본적은 없다. 물론 대단히 멋진 표현이고 많은 것을 담아냈으며 날카롭게 인생사를 파악한다는 느낌의 문장은 더러 본적은 있지만 내가 그런 것들에게 아름답다란 느낌을 받으려면 개인적 노력이 더 필요하단 생각이다.

 그래도 문학이 필요한 시간은 아름다운 문장이 제법 많았다. 문학을 보면서 이런 감수성과 생각을 할 수 있구나란 점에서 많이 배웠다. 볼만한 책들의 추천도 좋았다. 내가 본 것들은 조금 있었고 봤지만 보면서 저자 같은 관점과 생각은 미쳐 갖지 못했기에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나는 문학을 통해 내 안의 잃어버린 가능성과 만난다."라는 표현이 좋았다. 누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이 한 번쯤 가고 싶었던 길을 버린 적이 있다. 특히 어릴적에 그랬기에 더 가슴에 남는데 문학으로 그 가능성을 다시 지펴보는 것. 대리 만족이든 아니면 다시 불을 지펴주는 것이든 문학은 그런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문학 작품 속의 문제적 개인은 단순히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다라는 표현도 인상 싶었다. 나와 비슷한 문제적 개인을 책에서 만나면 왠지 너무 부끄럽고 피하고만 싶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그런 개인을 등장시키는 것은 그런 개인의 아픔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런 표현은 정말 정곡을 찌른단 생각이다. 

 "착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도 누구에게든 상처를 입힐 것 같지 않는 사람조차도 끝없이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그것의 생의 본질적 조건이다"라는 표현에선 반성을 하게 되었다. 제 아무리 자기 성찰 지능과 대인관계 지능이 높아도 개인은 타인이 될 수 없기에 어떻게든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문학은 그런 다양한 개인과 상황을 접해서 그런 상상력을 넓혀준다. 그렇게 개인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며 내가 주는 상처를 줄이고 받는 상처에 대한 내성을 문학을 키워주지 않을 까 싶다. 

 이 책은 소개한 표현 외에도 좋은 문장과 소개하는 괜찮은 문학 작품이 있다. 책에 나온 표현을 곱씹어 보며 관련 책을 보는 것도 좋을 겉 같다. 나는 '소유의 문법'과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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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페스토 Manifesto - ChatGPT와의 협업으로 완성한 'SF 앤솔러지'
김달영 외 지음 / 네오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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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4.13일 KBS 다큐 인사이트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주의 회차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소재가 바로 챗 GPT를 이용해 국내의 소설가들이 SF소설 단편 모음집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챗 GPT를 대부분 처음 접하였는데 초기의 반응은 대부분 놀라움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만들어가면서 챗 GPT가 사실 한 방에 소설을 길게 쓰진 못하며,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뭔가 독특한 문체를 만들어내진 못하고, 여러 개의 주제나 인물, 사건은 쉽게 많이 만들어 내나 개성있는 한방은 만들지 못한다는 점을 이구 동성으로 지적했다. 바로 이 점이 인간 작가가 챗 GPT를 이용해 채워나가야 하는 부분이었다.

 책 '매니페스토'는 그렇게 발간되었다. 심지어 이 책은 표지도 인공지능이 만들었다. 작가들의 소설 내용과 구성의도를 입력하고 그에 따라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여러 표지를 편집진이 고르는 장면이 다큐 인사이트에 나왔다. 하나같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었지만 편집자들은 너무 무난해서 이것다 하는게 없어서 고르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책 내용으로 돌아가면 이 책의 단편은 무척 재미나진 않다. 일단 내용이 실험적이어서 그런지 너무 짧은 편이다. 읽을 만 하면 대부분 끝인데 7편의 단편집이 모두 그렇다. 그래서 소설 한 편당, 작가들이 챗 GPT를 어떻게 활용하여 소설을 완성해나갔는지가 매 단편 바로 뒤에 수록되어 있다. 즉, 단편 7개와 챗 GPT를 통한 소설 구성장면 7개가 책에 수록되어 있는 셈이다. 챗 GPT를 활용하는 방법은 작가가 주제를 어떻게 잡았는가 그리고 작가가 어떤 활용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하지만 공통점은 챗 GPT가 써내는 분량자체가 짧아 여러 차례의 작업 지시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특히, 챗 GPT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은 잔혹하거나 어둡게 써내는데 약점을 보였다. 아무래도 사회적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있어 개발사에서 차단한 듯 하다. 또한 어떤 이야기든 한 방에 써내는 분량이 적었는데 이 역시도 챗 GPT로 무언가를 길게 한 방에 생산할 경우 미칠 사회적 파장을 의식해 개발사에서 막아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작가들은 큰 구성을 챗 GPT로 부터 얻거나 또는 원하는 구성이나 인물, 플롯이 나올때 까지 다른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원하는 작업이 나올때까지 챗 GPT에게 명령을 구체적으로 다시 하달하고 정 안되면 작가가 채워 넣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역시 아직까진 그럴듯한 글이 나오기 위해서는 챗 GPT에만 의존할 수는 없고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다. 작가들은 챗 GPT를 좋은 어시스턴트, 구조나 캐릭터를 빠르게 편성하는 사람, 분량을 순식간에 채워주는 사람 등으로 파악했다. 

 이 책의 시도는 매우 재밌고 의미 있는 것으로 작가들 처럼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챗 GPT를 잘 사용하면 모두 효율적이고 완성도 있는 글을 구성하는게 가능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글을 구성하는 능력이 매우 모자라다면 이와 같은 작업은 할 수 없고 챗 GPT의 글을 그대로 표절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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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교육혁명 - ChatGPT를 활용한 하이터치 하이테크 미래교육
정제영 외 지음 / 포르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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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1월 챗GPT3.5 버전이 출시되었다. 반향은 엄청나서 불과 5일 만에 사용자가 100만을 넘어셨으며, 이후 세계적으로 챗GPT를 이용한 여러 기사나 뉴스,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것이 컴퓨터와 인터넷의 충격, 스마트폰의 충격을 넘어설 만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실제 챗GPT를 써보면 그 능력에 충격을 받게 된다. 

 챗GPT는 거의 모든 분야에 이용할 수 있는데 당연히 교육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챗GPT 교육혁명'의 저자는 챗GPT가 교육의 여러 분야에 갖는 함의를 잘 분석하고 실제 사례를 자세히 책에 제시했다. 아직 챗GPT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교육에 어떤 파급력을 가질지 도무지 감이 없는 교육자라면 필독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챗GPT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다. 글자 그대로 생성형 사전 학습 트랜스 포머인데 풀어서 말하면 사전에 방대한 글이나 책, 논문 등의 언어 뭉치를 빅데이터로 학습했고 이를 통해 비지도학습 형태로 인간의 자연어를 생성하는 학습을 한 인공지능이다. 트랜스 포머는 각 단어의 중요도를 결정하여 그에 따라 입력 시퀀스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즉, 방대한 양의 인간 언어를 학습 후 이를 자연어로 생성하는 연습을 한 후 트랜스포머 방식으로 단어를 자연스레 구성하는 인공지능이라는 것이다. 챗GPT는 놀랍게도 인간의 신경세포에 해당한다고 할 수 도 있는 파라미터의 수가 무려 1750억개인데 그래서 성능이 매우 대단하다. 다만 챗GPT는 단어수준에서 학습이 이뤄지고 언어를 구사하기에 맥락이나 문맥이 어색한 경우가 더러 발생한다. 

 저자는 챗GPT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인간의 역량을 제시한다. 

 우선 개인적 지식 기반의 판단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실제 문제해결능력, 창의성과 인문학적 상상력, 디지털 리터러시와 시민성, 자기주도학습 역량이다. 챗GPT역시 모든 것을 앉아서 떠먹여 주는 것이 아니고 챗GPT가 제시한 내용이 모두 옳고 편견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기에 이를 잘 활용할 인간의 능력이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나오게 되면 교육계에선 오랜 숙원인 개별 맞춤형 교육과 개별 학습과정의 분석이 가능해진다. 이는 개별화 교육을 실현으로 평균적 교육과 대량화 교육에 갇혀 있는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부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우선 인공지능에 의한 학습은 고도로 자동화되어 인간의 중요한 판단이 필요한 부분까지 자동화할 우려가 있다. 또한 인공지능이 정량적 정보에 익숙해 인간의 상호작용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고, 자동화 학습을 하는 경우 학습자의 창의성과 창조적 사고가 저해될 우려도 있다. 여기에 평가 상황에서 학습자가 인공지능을 악용할 우려가 있고 문해력 저하와 문제해결 능력의 저하, 더불어 기초지식에 의한 이해와 암기를 소홀히 할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챗GPT를 활용한 교육은 가능성이 커 무시하기 어렵다. 챗GPT는 학생이 과제를 입력할 경우 분석하여 문법적으로 혹은 내용, 논리 상 틀린 부분을 잘 찾는다. 즉, 자동화된 채점 시스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학생 맞춤형 콘텐츠도 생성한다. 학생이 쓰고자 하는 글, 혹은 수준에 맞는 자료 제공이 가능하다. 또한 인터넷 강의에 대한 맞춤형 보조 지원도 된다. 학생이 강의를 들으며 모르는 내용을 챗GPT에 질문하여 보조자료를 얻어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또한 학습 진도의 추적과 문제해결도 지원한다. 

 챗GPT는 현재 학교교육현장에도 활용이 거의 무궁무진하다. 학교 행정에도 사용이 가능하다. 간단한 수학여행 계획서나 체험학습 계획을 장소, 시간, 예산, 목적, 관련 교과 등을 구체적으로 입력해주면 그럴듯한 계획을 빠르게 편성해준다. 내용이 맘에 들지 않을 경우 같은 내용을 다시 물어보면 다른 대답을 해주며, 질문 자체를 보강한다면 답변도 보강된다. 

 여기에 교육과정이나 프로젝트, 단위 수업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학교의 비전과 학년의 비전을 입력하고 이를 실행할 방안의 프로젝트를 물어보면 챗GPT는 상당히 자세히 대답을 해준다. 여기에 수업의 목표를 입력하고 학생활동을 편성해 달라고 하면 그것 역시 해준다. 개인적으로 학교의 비전을 입력하고 이 비전을 실천할 만한 학년별 프로젝트를 연계성을 고려하여 3개 씩 편성해달라고 했는데 챗GPT는 이를 어렵지 않게 해낸다.

 인성교육 및 상담에도 챗GPT는 활용이 가능하다. 매일 교사의 지시를 어기고 폭력적이며 과잉행동장애가 있어 보이는 학생이 있다. 그리고 그 학부모는 자녀의 행동을 크게 문제 삼지 않으며 교사가 과민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이 학부모와 어떻게 상담하면 좋겠냐고 물으면 챗GPT는  가지 상담 방안을 알려준다. 학생의 문제 행태나 고민도 입력하면 답을 알려주는데 개인정보 유출은 되지 않는 것 같지만 주의하는게 좋겠다.

 평가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초등 4학년을 대상으로 곱셈 문제를 출제해 달라고 하면 실제로 출제해준다. 단순 문항 뿐만 아니라 조건을 자세히 넣어주면 평가장면도 자세해 진다. 또한 국어나 사회 같은 경우 지문이 필요한 경우도 많은데 역시 지문도 금방 만들어 준다. 심지어 코딩 문제도 만들어주는데 이 쯤되면 뭘 못하는지 궁금해지기 까지 한다.

 학생에게 챗GPT의 활용법을 알려주는 것은 고민이다. 챗GPT 홈페이지에서는 13세 이상에게만 이것의 활용을 가르치라고 명시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한국엔 챗GPT에 대한 교육 가이드 라인이 없는데 빨리 나올 필요성이 있다. 책에 나오는 우려처럼 챗GPT 활용의 조기 학습은 학습할 필요성과 기초기본, 문제해결능력 등을 저해할 우려가 있고, 과제형 평가의 경우 악용될 우려도 높다. 하지만 기초기본을 갖춘 일정 나이 수준 이상의 학생이라면 가르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안 그래도 갖가지 변화로 시대를 따라가기 어려운 교육계에 또 다른 큰 숙제가 던져진듯 하다. 하지만 도움이 많이 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챗GPT를 빨리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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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국가의 탄생 - 검찰개혁은 왜 실패했는가?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이춘재 지음 / 서해문집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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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전 이 맘 때 문재인 정권은 그야말로 꽃길을 걷고 있었다. 촛불 혁명으로 인한 탄핵 정국 속에 탄생한 정권은 사실상 외교 공백 상태이던 상황에서 힘든 상대 국가들을 잘 조율해 평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북한과의 관계도 상당 부분 회복했었다. 북한과는 조만간 종전 선언이라도 나올 분위기였고 이로 인해 대통령의 지지율은 2년차 임에도 무려 80%에 달했다. 이어진 지선과 총선에서도 압승해 '뉴노멀'이란 단어와 민주당 20년 집권설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그랬던 그들은 자신들이 임명했던 검찰총장 윤석렬에게 뒤통수를 맞아 그에게 대권을 5년 만엔 내주고 당 대표가 수십 차례 압수수색을 당할 정도로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책은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 검찰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소홀이 했다 이 지경에 이른 것으로 판단한다. 책은 문재인 정권과 윤석렬을 비롯한 검찰의 과거 행보를 나란히 보여주며 현재에 이르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 촛불 혁명 당시 여러 적폐에 대한 청산요구가 들끓었지만 그중 특히 사람들이 주목했던 것은 검찰개혁이었다. 당시 검찰은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김학의를 무혐의 처리했고, 정윤회 사건,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 이명박 다스 사건 등 누적된 비리로 무능으로 국민적 반감을 크게 사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첫 개혁은 검찰 개혁이 아닌 그들을 이용한 적폐 청산이었다. 물론 박근혜와, 이명박 정권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문재인 정권 집권 이전부터 시작되었지만 정권이 바뀌었어도 그 양태가 변함이 없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를 용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박근혜의 탄핵에는 상당수 보수당 의원들도 참여했었는데 이들은 적폐 수사의 대상으로 전환되면서 사실상 문재인 정권과의 협치는 물 건너 가게 된다. 

 사실 검찰 개혁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숙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사상 최대의 자율권을 부여했음에도 막강히 저항했고 정권이 넘어가자 그를 무자비하게 사정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개혁에 대한 강한의지와 한 번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집권초기부터 강한 여론을 등에 없고 이를 실시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적폐 세력에 대한 청산에 대한 욕구가 더 컸었던 듯 하다. 특히, 친노 친문 계열엔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명박은 반드시 심판받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박근혜와 이명박 일당이 마무리 되자 검찰의 다음 대상은 사법부였다. 국정농단에 사법부가 연루되어있었던 것이다. 당시 양승태 대법관은 박근혜 정권과 사법 거래를 하였다. 일본 강제 징용 노동자에 대한 판결을 해결해주기로 한 것. 박근혜 정권으로선 아버지가 행했던 한일 협정을 안정적으로 계승하고 일본과의 위안부 협의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윤석렬 검찰에게도 이런 비리는 좋은 기회였는데 사실상 검찰의 유일한 대항마라 할 수 있는 사법부를 초토화시키고 길들일 수 있는 찬스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명의 전직 대통령 그와 연루된 한국 최고의 기업 총수, 사법부마저 주무른 윤석렬 검찰의 힘은 역사상 최대가 된다. 이런 큰 수사를 위해 문재인 정권은 검찰 조직을 증대했고 수사의 편의를 위해 윤석렬이 원하는 인사를 실시해주었다. 즉, 검찰은 역사상 가장 막강해지면서도 가장 한 명의 입맛에 맞게 조직이 장악되고 만 것이다. 

 이렇게 적폐 청산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집권 3년차에 문재인 정권은 검찰 개혁을 시도한다. 학자 출신인 조국과 적폐 청산을 열심히 마무리해준 윤석렬이라면 이 모든 게 이뤄질 것이라는게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윤석렬에 대한 경고와 반대가 충분히 있었다. 그가 생각만큼 검찰개혁에 적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반대에 가까우며 측근에게만큼은 그다지 공명정대하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경고에도 대통령은 잘못 판단한다. 잘못 판단한 것에 대해서는 조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생각만큼 깨끗하지 못했고, 민정 수석으로 있으면서 13명의 차관 급이 인사 청문회에서 낙마하는 등 윤석렬을 비롯해 인사 검증에 미숙했다. 

 이는 검찰개혁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기존 생각과도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검찰 개혁은 정권 초기에 강하게 여론을 등에 없고 해야 하며, 검찰 개혁의 적임자 역시 매우 깨끗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두가 어그러진 것이다. 알고 있는 것처럼 조국은 이 일로 인해 윤석렬에 의해 멸문지화에 가까운 고통을 겪게 되고 대통령의 지지율도 처음으로 부정여론보다 낮아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일에도 민주당은 총선에서 압승한다. 다시금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국의 후임인선이 쉽지 않았다. 조국을 압살한 윤석렬의 서슬이 퍼래 많은 인사들이 고사하였고 거의 유일한 대안은 추미애 장관이었다. 추미애 장관은 5선 의원에 당대표까지 지낸 중진중의 중진이어서 사실 장관보다는 총리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판사출신에 사법연수원도 윤석렬보다 한참 선배로 그를 누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보였다. 

 이렇게 장관이 바뀌지만 이어지는 것은 추-윤 갈등이었다. 초기 추미애는 인사로 윤석렬을 눌렀지만 법기술자인 윤석렬의 저항으로 각종 소송에서 절차 상의 이유로 패소 하며 위기에 몰린다. 또한 윤석렬을 누르는 과정에서 검찰 조직내의 전체적인 반발을 사게 되어 사실상 검찰 개혁 동력이 상실된다. 추미애와 윤석렬의 갈등은 마치 정권이 내로남불하는 것처럼 여론에 비춰졌다. 윤석렬이 대선과정에서 공정과 상실을 그토록 내세울수 있었던 이유다. 

 여기에 부동산 폭등은 정권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검찰 개혁 같은 것 보다는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한 욕구가 더 컸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역사적 아쉬움은 사상 초유의 정치경력이 부족한 대통령의 탄생으로 이어졌으며 행정부의 주요직이 모두 검찰출신으로 장악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저자는 이것이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약자를 옹호하지 않고 정치적 타협을 모르는 검찰조직에 의해 운영되는 정치가 성공하기 어려운 것으로 파악한다. 즉, 지금의 검찰정권은 무능하고 시대착오적이었던 진보정권이 실패가 낳은 부산물이라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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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사람들 - 왜 돌봄은 계속 실패하는가, 2021년‘올해의 인권책’선정
정택진 지음 / 빨간소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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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선진국 지위에 올랐음에도 사회의 보장망이 충분하지 못한 나라다. 민주사회로서의 역사가 부족하고 복지국가로서의 역사는 더욱 일천하기에 국가 사회의 보장 속에서 이렇다 할 성공적인 보살핌을 받은 경험이 없다. 경험의 부재는 상상의 부재로 정책의 정당성과 지지의 부재로 이어진다.   그래서 한국엔 유독 빈민이 많다. 그리고 빈민에 대한 문제도 많은데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빈민에 대한 지원의 부족함이다. 기초생활수급제가 있으나 생존을 보장할 뿐 인간적인 삶을 사는 실존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둘째는 빈민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다. 한국은 능력주의 신화가 깊숙히 자리잡아 그 실패자인 빈민에 대해 유독 가혹하다. 때문에 빈민을 능력없는 자로 취급하거나 도움의 대상보다는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반면교사의 대상으로 삼기 일쑤다. 마지막은 가족 주의다. 한국의 지원법망은 기본적으로 가족이 대상이다. 즉, 아무리 그 개인이 가난하고 근로 능력이 없더라도 부양능력이 있는 가족이 있다면 국가의 지원 대상이 되지 못한다. 때문에 간혹 가족이 경제력이 있어도 가족과 연이 끝어진 빈민이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어려움을 겪는 뉴스를 우린 종종 접하게 된다. 

 동자동 사람들은 이런 한국의 빈민이 모여 있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사람들은 한 사회학자가 르포처럼 오랜 기간 그들은 대하며 그 환경과 사회, 살아가는 사람들을 분석한 책이다. 동자동은 전형적인 쪽방 촌으로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빈민 밀집 거주 지역이다. 현재 70동의 건물, 1328개의 쪽방에 1160명이 거주한다. 동자동은 한국 전쟁 당시 폭격이 심해 폐허가 되었고 전후, 피난민과 빈민이 모여 판자집을 건축한다. 남대문 상권이고 일거리를 구하기 쉬운 서울역과 인접하여 유동인구가 많았다. 때문에 윤락가가 들어서는데 빈곤과 타락의 이미지가 겹쳐 오래전부터 정화의 대상이 되고 만다. 범죄의 온상으로 취급되고 실제 그런 면도 있어서 그 유명한 소설 인간 시장의 배경이 바로 이 동자동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 시장이 더욱 불안정해지며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 동자동으로 더욱 몰려들었다.

 한국의 복지는 이중적 형태로 국가운영에 필요한 노동자를 보호하는데 중점을 뒀다. 공무원 연금, 군인연금, 국민복지 연금법, 의료보험법이 그것들이다. 여기에 들어가지 못하는 노동자나 사람을 보장하는 법은 생활보호법(1961)이 유일한 것으로 이것이 큰 변화없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자동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네를 네 가지로 설명한다. 우선 기초수급이다. 주민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조건부수급자로 이것에 절대적으로 의지해 생활을 영위한다. 두 번째는 죽음과 장례에 관한 서사다. 주민들 상당수가 가족과 연이 닿지 않는 상태로 사망 시 무연고 사망, 장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여러 단체로부터의 물품 지원이며 네 번째는 동자동을 상징하는 세 개의 건물이다. 

 동자동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과 연이 끊긴 빈민이지만 장례 절차에 대한 생각은 보통사람과 같다. 장례는 죽은 사람을 기리는 행위이고 살아 생전의 모습이 어떠했든 제대로 된 절차를 통해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기존 서울시의 공영장례 조례안은 무연고 시간 또는 연고자가 미성년이거나 75세 이상으로 장례 능력이 없는 경우에만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개정하여 기초생활수급자나 조건부수급자로 확대하였다. 즉, 동자동 사람들이 대상이 될 수 있게 개정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번에 여러 구의 시신을 짐짝처럼 쌓아서 운구를 하거나 화장 후, 공영납골당에 다른 유해와 섞여 소위 '잡탕'이 되는 것은 동자동 사람들이 매우 싫어하는 행태다. 또한 무연고 장례의 경우 무연고의 입증에 시간이 걸리기에 장례의 마무리까지 3-6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동자동 같은 쪽방의 주민들은 기초생활수급에 의지하고 여러 단체의 지원에 의지하기에 장기가 소위 길들여지게 된다. 이들은 이로 인해 자신들이 받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 사라지고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해가는 것으로 보인다. 동자동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나 지원단체의 사람들은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는 이들의 행태에 대해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일단 이들이 스스로 뭔가를 할 수있 게 자립을 시키려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 자체가 일종의 낙인이다. 타고난 장애나, 성격적인 부분, 그리고 성장과정에서의 문제로 그렇게 될 수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쪽방 거주민들은 자신들 간의 상호 호혜나 베품으로 긍정적인 상호의존 관계를 맺기도 한다. 사람은 일방적으로 수혜를 받기만 하면 사회적 존재로 진화해왔기에 자존감이 무너지게 된다. 때문에 일부 동자동 주민들은 무료 자장면 같은 지원을 거부하기도 한다. 그들이 서로 돕는 형태는 이렇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워 즉각적인 도움을 서로 죽고 받지 못하기에 자신의 주기 행위를 안부를 물어보며 몰래 돕거나, 남는 옴식이라는 형태로 주는 등 받는 자에 대한 부담을 더는 형태로 이뤄지는 것이다. 때문에 받는 자도 존엄성을 지키고 다음에 자신이 비슷한 행위를 언젠가 행함으로써 긍정적 상호 의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것이 갖는 한계도 뚜렷하다. 이들의 이런 상호돌봄 관계는 일면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보니 역설적 자기 파괴가 일어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남편의 폭행에 시달리는 한 아내가 동자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상호 돌봄에 의지 하는게 그러한 예다. 

 저자는 사람은 물질 이외에도 일종의 자격으로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자동 사람들은 취약한 연결 속에서 사람 됨을 부정 당하고 상호 돌봄과 사회적 관계도 박탈 당한다. 때문에 쪽방에서의 삶은 파괴적 결과와 자기 소모, 인격 손상과 무력함을 견뎌내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걸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보다 충분한 물질적 지원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존엄함 보장, 그리고 건강한 사회적 네트워크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이런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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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3-04-16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대정신은 지극히 인문학적이며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