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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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코의 미소라길래 유난히 많고 인기가 좋은 일본 소설인가 했다. 하지만 한국 소설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총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졌다. 쇼코의 미소는 가장 앞에 나온 것으로 어찌보면 작가의 대표작인 것 같기도 하다. 난 좀처럼 소설을 보지 않는 편인데, 가장 최근에 본 소설이 '플랫랜드'와 '멀리가는 이야기'인걸 보면 그나마도 정통소설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책에 있는 단편들은 모두 재밌다.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의 가슴속으로 나를 집어 넣기도하고, 주로 배경이 과거이거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많아 오래전 그 날의 비슷한 경험으로 독자를 이끌기도 한다. 그리고 현대사의 굴직한 비극적 사건도 적지않게 다루고 있어 사건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하루아침에 잘못된 국가권력에 의해 모든 걸 잃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아주 쉽게 잊혀진 피해자들을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내용을 알면 재미없는게 소설인지라 내용정리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 7개의 단편소설에는 주인공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여자라는 점이 재밌다. 남자는 어디 까지나 양념이고 주변적 존재이며 단연 중심은 여자의 세계이다. 거기다가 정상적인 여자들도 아닌듯 하다. 살아오면서 가슴 안켠이 어떤 결핍으로 뻥뚤려있고, 대부분 우울증에 걸려 있으며 결혼생활 역시 남편이 죽거나 없는등 혼자인 경우가 많다. 거기다가 물질적으로도 충분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뭔가를 통한 자아실현 역시 역부족이다.

 온통 뭔가를 원하지만 결핍된 여자들만 나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은 항상 누군가에게 기대며 살고 있다. 할아버지든, 어디선가 만난 외국인이든. 엄마든, 손녀든 딸이든. 작가는 어쩌면 현대사회의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볼행한 여자들이 뭔가에 기대며 살아가고 싶은 심리를 그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민감한건지 모르겠지만 자주 피부의 정맥혈관이 뭔가를 의미하면서 자꾸 나온다. 마치 김훈소설에서 먹는 장면이나 잦은 빈도로 아주 잘 묘사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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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uvin 2017-04-14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은 책인데 아직도 선뜻 손이 안가는. 리뷰덕에 힘을 얻고 갑니다.

닷슈 2017-04-14 10:31   좋아요 0 | URL
네 재밌게보세요 볼만합니다
 
[eBook] 과학을 읽다 - 누구나 과학을 통찰하는 법
정인경 지음 / 여문책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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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과학책을 좀 좋아해서 취미인지 책무인지 사놓고선 그냥 쌓아놓고는 한다. 과학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분야보다 읽는데 정신적 에너지가 확실히 더 드는 편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이 책도 그래서인지 조금 쌓여있었다. 전자책으로 샀기에 이 표현은 부적절하지만 달리 다른 표현도 모르겠다. 과학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읽고보니 마치 '사피엔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인간의 진리를 위한 정신발전사를 쭉 훑어본 정신세계의 인류사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런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책은  생각보다 가볍게 잡았는데 무척이나 무거웠고 영혼이 생각보다 좀 더 흔들렸던 책이었다.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역사, 철학, 우주, 인간, 마음이 그것들이며 관련된 유명저자와 그 책들, 그 의견을 토대로 인간의 정신발전사를 서술해나간다. 저자가 워낙 유명인들의 견해를 자신의 언어로 소화해서 표현하는 듯 해, 인용인지 저자의 의견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어쨌든. 책을 보면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뇌의 탄생이라 말할 수 있다. 조금 자세히 말하면 마음의 탄생이며 조금 더 기원을 올라가면 동물의 탄생이다. 왜냐하면 동물은 항상 방향과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얻은 에너지를 갈취하고, 다른 동물을 잡아먹거나 피하기 위함인데, 때문에 책에서는 이런 동물의 움직임을 위해서 탄생한 대표적인 감각기관인 눈의 진화를 동물의 광합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참 재밌는 표현이다.

 동물의 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히 운동성과 지향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외부세계의 변화를 예측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신경계가 필요하고 탄생하게 되었으며 그 중심부에는 뇌가 자리한다. 따라서 우리의 뇌와 그 작용인 마음은 목적지향적인 형태가 된다. 외부세계에 대한 생존을 위한 예측과 반응을 하는 곳이니, 외부를 뇌에서 재현하면서 모든 것에 목적과 의미를 두게 되며 이는 인간이 모든 사실에 가치를 부여하는 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실제로 책에서는 뇌과학의 결과 인간에게 사실에 해당하는 부분을 관장하는 영역과 가치를 관장하는 영역은 같은 걸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동물은 감각장에 구속되어 있으며 인간은 의미장에 구속되어 있다는 말이 책에 나온다. 인간은 결국 한순간도 의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목적지향적인 뇌는 끊임없이 의미를 만들고 의미를 가지고 주변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즉, 계속해서 사실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는 사고를 담고 있고 사고를 만들고 제한하는 우리의 언어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우리말에는 없지만 영어권과 유럽의 언어에는 사실에 해당하는 명사를 지칭할때 관사가 항상 붙는데 영어에는 특정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관사가 그리고 유럽 언어에는 성을 지칭하는 관사가 항상 자리한다. 이런 것들은 사실에 가치를 부여한 형태라 생각한다.

 책의 앞으로 돌아가면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상징적인 형상을 지닌 물체를 보면 다른 것을 떠올리는 능력인 상징추론, 자의식과 마음읽기, 언어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이는 인간만의 특질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이런 능력을 자신의 생존을 위한 고통의 해결과 목적지향적이기에 삶의 가치와 목적을 찾기 위해 사용하게 된다.

 그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종교의 발명을 통한 초자연적인 존재인 신을 그려낸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해결책은 철학의 탄생이다. 철학을 통해 인간은 세계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라른 것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간다. 그래서 초기 철학은 이데아나 기하하등을 동원하여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그 너머의 원리에서 답을 찾아나가는 형이상학적 형태를 갖게 된다.

 하지만 뉴턴이 과학을 통해 숫자와 기호 도형등을 이용하여 세계를 설명하는 원리를 찾아내자 이 같은 형태의 답변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 과거 절대적 신과 형이상학에 의존하던 진리를 인간이 발견하게 된것이다. 이에 철학에는 인간이 인식의 주체로 올라서며 기존의 존재론에 이해 인식론이 추가된다. 인간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이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 감각, 사고에 의존하므로 그것을 다루는 분야가 생겨난 것이다.

 이에 대해 칸트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이성 사용을 엄격히 하는 순수이성비판을 제시하였고, 비트겐슈타인은 인간의 사고를 반영하는 언어의 사용을 엄격히 하는 논리철학 논고를 제시한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과학은 더 나아간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시공간을 상대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버렸고, 다윈은 인간의 모든 이성과 감각, 사고, 경험의 근간을 생물학적 인간이라는 유물론에 고착시켜 버렸다. 즉, 존재론과 가치론 인식론에 대한 해답이 인간 외의 것들에서 떠돌다 과학의 이름하에 그 답을 인간 내부의 생물학적 기원에서 찾기 시작하게 된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은 도덕성에 대해 말한다. 책은 동물에게도 감정과 기억, 지능이 있음을 말하며 인간만의 특질로 사회성과 도덕을 제시한다. 인간은 과거 초원에서 여럿이 무리지어 살아가며 서로 의존하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느끼고 배려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기쁨, 슬픔, 즐거움, 괴로움 같은 감정이 진화하였고, 이러한 감정이 무엇에 좋고 나쁜지를 느끼는 가치판단을 하게 되었다. 즉, 이러한 사회성이 공감능력의 발달과 더불어 도덕성의 기초를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현재 인간의 도덕은 교육과 종교 같은 문화적 요소들에 의해 더욱 진보되어가고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인간의 도덕은 과거 자신과 가족에서 동료로, 다른 인종으로, 사회의 약자들로, 그리고 다른 생물에게로까지 확장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책은 오히려 고리타분하게 도덕적 절대주의를 주장한다. 도덕이 객관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이 같은 형태의 생물학적 체계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또한 도덕의 기준은 과거 그 기원처럼 매우 단순하다. 인간의 욕구가 충족되면 도덕적인 것이고 욕구를 해치면 그른 것이다.

 개인적 생각에 도덕성의 그 기원을 맞게 찾았지만 상당히 단순하다는 생각이다. 사회가 확장되고 복잡해짐에 따라 욕구의 충족은 상당히 복잡하고 다변화 했기 때문이다. 충돌하는 경우도 많으며 개인과 사회, 집단등 욕구의 수준역시 다층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처럼 욕구자체도 상당히 다층화되어 있다. 물론 가장 강력한 욕구는 가장 본능적인 욕구이겠지만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무엇이 결국 욕구를 충족하는 것인지에 대답은 결국 요원해지고, 문화적 밈과 상당히 관련하므로 결국 생물학적 인간의 몸 밖에서 대답을 찾아 헤메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한 도덕성의 기원이 결국 인간존재의 생존과 관련한 욕구의 충족에 기원을 두는 만큼 공감과 문화적 발달에 기원한 공감대상의 확대, 즉 도덕의 대상확대도 그 한계가 뚜렷하다. 책에는 인간의 도덕이란 결국 자신과 일체감을 느끼는 사람에 국한된다고 한다. 나치와 일제에 충성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그리 나쁜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피해자들에게 일체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도덕성은 이 일체감이 다른 생물체에게 까지 도달한 상태지만 결국 배부름의 도덕이란 생각이다. 지금의 풍족함과 평화가 깨어져 일체감을 느낄 수있는 집단이 줄어드는 상황에 도달한다면 결국 도덕성의 범위는 매우 본능적인 수준으로 회귀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책의 저자인 이처럼 인문학과 과학을 융합하고 통섭하고자 하는 여러 책을 쓴 것 같다. 이 사람의 책을 더욱 보고 싶은 생각이며 책에서 인용된 저자들과 책 역시 매우 관심이 가는 좋은 계기가 된 책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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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17-04-08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인간의 도덕이란 결국 자신과 일체감을 느끼는 사람에 국환된다고 한다. 나치와 일제에 충성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그리 나쁜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피해자들에게 일체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는 악한 사람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학교에서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고 때리는 아이도 강한 아이들(일진)끼리는 좋은 아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 아이에게는 힘이 약한 아이는 일체감이 없는 것이겠지요.

돼지, 닭, 소를 먹지만 강아지를 먹지 않는 저 또한 일체감의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상위포식자인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완벽하게 결백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인지.. 채식주의자, 비폭력주의자(육체적 폭력 반대)여야 결백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채식주의자 또한 식물이라는 살아있는 생명을 빼앗는 것이고.. 비폭력주의자 또한 결국 다른 방식의 폭력을 사용하겠지요..

닷슈님의 글은 항상 깨달음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닷슈 2017-04-08 18:12   좋아요 1 | URL
저도 동물인이상 최상위포식자인이상 그리고 지구라는 한계가 있는이상 인간도덕은 유일하고 대단하긴하나근원적한계있다고 봅니다 환경운동역시 나의 목줄을죄니 시작한감이있죠
 
공생 멸종 진화 - 생명 탄생의 24가지 결정적 장면
이정모 지음 / 나무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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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도 좀 얇고, 국내저자란 묘한 편견에, 표지도 좋아하지만 핑크빛인 것이 가벼워 보여 큰 기대 안하고 잡은 책이었다. 하지만 편견이란 나쁜 것이어서 이번에는 다행히 좋은 쪽으로 기쁘게 혼이나고 말았다. 아주 초기 지구의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지금 인간시대에 이르기 까지 생물진화사에서 정말 중요한 지점을 잡아서 설명한 책이다. 하나하나 무겁지 않고 재밌으면서도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어 무척이나 좋은 책이란 생각이다.

 책의 주제를 굳이 하나로 잡자면 멸종이다. 지구에서는 작은 것 까지 하면 수십차례 큰 것만 따지만 총 5차례의 엄청난 멸종이 일어났다. 6번째 멸종은 지금 인간에 의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중이다. 멸종은 당시 생명체 당사자에겐 엄청난 일이지만 지구사적으로 보면 기회이기도 했다. 멸종의 틈새를 살아남은 종들이 빠르게 채워나갔고 새로운 진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고생대의 대 멸종은 공룡시대를 중생대 말의 대멸종은 포유류의 시대를 불러온 것 처럼 말이다. 멸종시기에는 공통적인 자연조건이 있다. 하나는 운석이든, 지구 지각의 대변혁이든 기온의 급 상승 및 저하이다. 다음은 아마도 그로인해 일어났을 대기 중 산소 비율의 저하, 그리고 대기중 산성가스로 인한 산성비다. 이 산성비가 식물을 절멸시켜 자연스레 다른 생물도 멸종시킨다. 이런 자연적 멸종에 비해 인간에 의한 멸종은 철저히 인간이 원인이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되며 멸종에 가장 취약한 종이 최상위 포식자라는 점에서 인간에게 경종을 울린다. 하지만 바로 자신이 원인인 이런 식의 멸종은 처음이고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점에서 이번의 최상위 포식자는 어떤 운명을 맡게될지는 모를 일이다.

 다음은 책에서 매우 재미난 부분이다.


1. 지구에 바다가 남아 있는 이유.

지구에 바다가 엄청나 보이지만 실제 깊이는 4km정도에 불과하고 지구 자체도 그리 큰 행성이 아니라 물의 양은 사실 적은 편이다. 과거 금성과 화성에도 바다가 있었는데 이들은 바다를 잃고 지구에는 바다가 남아 생명의 온상이 되어 주었다. 차이는 산소를 발생시킨 생명체의 유무였다. 태양빛에 포함된 자외선은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시킨다. 이 때 분리된 산소는 지각에 노출도니 철을 빠르게 산화시키며 소모된다. 화성의 땅이 온통 붉고, 우리 행성의 흙이 붉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렇데 되면 홀로 남은 수소는 무척이나 가볍기에 상승하여 우주공간으로 날아가버린다. 이런식으로 바다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지구의 경우에는 박테리아가 산소를 발생시켜, 지각을 산화시키고도 충분히 산소가 남아 상승한 수소와 다시 결합해 다시금 물을 생성하였다. 이로 인해 바다가 지구에서는 유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수소는 그럼에도 매우 가벼워 매년 무려 300만 톤의 수소가 우주공간으로 방출된다.


2. 어째서 석탄이 그리도 많은가

지구상의 석탄은 고생대 석탄기에 생성된 것이다. 당시에는 나무의 뿌리가 무척 약해 하나의 거목이 쓰러지면 도미노처럼 여러개가 쓰러지는 일이 잦았다. 게다가 믿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지상에 미생물이 없어 죽은 나무들이 그대로 열과 압력을 받아 탄화되어 석탄이 되었다. 즉, 지금은 도저히 자연적으로 석탄이 생성되기 어렵단 뜻이다.


3. 공룡이 등장한 이유는

앞서 멸종이 다른 생물에게는 기회의 장이 된다고 했다. 고생대 대 멸종후, 지구의 산소는 14%대로 떨어졌다. 당시 양서류들은 다리가 옆으로 나서 움직이는 동안 폐가 있는 상체가 크게 흔들렸는데, 그래서 무척 호흡이 힘들었고, 떨어진 산소비율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공룡들은 이점을 공략했다. 옆으로 나던 다리를 아래로 나게 했으며 초기에 이족 보행 위주로 진화했다. 이족 보행을 하면 하체와 상체가 따로 놀아 호흡에 더욱 유리했다. 또한 앞다리가 놀게되어 쥐고 할퀴는 형태로 변화해갔으며 후에는 날개로 진화하기 까지 한다. 물론 산소비중이 높아지는 중생대 중후기에는 다른 형태로 진화해간다.


4.풀의 등장

당연히 풀이 나무보다 먼저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나무가 먼저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풀이 진화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공룡의 멸종후, 조류형 공룡이 그 자리를 득세하고 있었다. 포유류들은 좀처럼 덩치를 키우지 못해 이들에게 상당세월 고전하고 있었는데, 풀의 등장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풀의 등장으로 초식 포유류가 그 섭취로 덩치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하였고, 이를 포식하는 덩치큰 육식 포유류도 등장하였다. 이 육식 포유류가 조류형 공룡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5. 네안데르 탈의 멸종

네안데로 탈의 멸종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이 책에서는 네안데르 탈의 짧은 유년기를 원인으로 꼽았다. 네안데르 탈은 집단이 작고 수명이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무척 짧았다. 그 결과 어린아이가 빠르게 성인기로 접어드는 수밖에 없었고, 이는 유년기에 놀이나 문화 전승을 통한 창의성을 말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네안데르 탈은 바늘조차 발명하지 못했는데 그로 인해 추운지역에 살면서도 제대로 된 방한복을 만들지 못해 항상 추위에 약했다. 이는 수명을 더욱 낮추고, 유년기가 더욱 살라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책에서 말하는 원인은 이것이지만 일전에 읽은 책에서는 네안데르 탈의 해부학적 구조가 언어 사용이 어려웠다는 걸 본적이 있다. 언어의 사용 여부는 진화경쟁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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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03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 이후》라는 책이 여섯 번째 멸종의 조짐을 소개하고, 여섯 번째 멸종 이후 인류의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생 멸종 진화》에 나온 내용들이 중복되어 있어서 책 후반부만 봐도 됩니다.

닷슈 2017-04-03 12:46   좋아요 1 | URL
잘알겠습니다

커피소년 2017-04-08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는 공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과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언제부턴가 과학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과학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면서도 당장에 삶과 맞닿아 있는 사회에 관심이 많이 쏠리게 되더군요.

그래서 모르고 지나간 것들.. 알지 못 하는 것들이 많았는데 닷슈님 덕분에 알고 갑니다..

닷슈님의 재미있고 유익한 글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닷슈 2017-04-08 18:10   좋아요 1 | URL
저도 과학에 관심간지 얼마안됐습니다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 10년 차 초등교사가 푸는 교육계 미스터리
김현희 지음 / 생각비행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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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나 이상한 사람이 많지만 학교에는 유독 이상한 사람이 많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거 같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학교에 실제로 이상한 사람이 많다, 아니 허용된다. 그것은 적어도 교실에서만큼은 마음껏 권력을 견제 없이 누릴수 있는구조와 정말 중대한 실수가 아니면 평생 밥그릇이 보장되는 상황때문이다. 거기에 내 사견을 보태자면 학창시절이란게 워낙 길고, 아직 인격적으로 미성숙하고 민감한 시기라 더욱 그러한 이상함이 강하게 각인되기 때문일 수 도 있다.

 어쨌든 학교가 이렇게 이상한 것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학교의 본질인 학생의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러가지 원인을 지목한다.

 첫째는 교육대학의 문제다. 초등교사의 경우 여러과목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수의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수하는 과목과 학점의 수는 지나치게 많은데 비해 그로 인해 정작 제대로 배우는 것이 없다는게 문제다. 또한 이 역시 현장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아 어설프게 교대에 배운 것이 그나마 현장에 도움이 되지도 못한다. 실제로 핀란드의 경우 교사는 석사이수까지 마치게 되며 실습기간역시 거의 1년에 달해 2개월정도에 불과한 한국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교수들의 역량역시 일반대학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인것도 이유이다.

 둘째는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교대의 입학점수가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시기에 이게 웬말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암기 및 주입식 교육으로 얻은 높은 점수보다는 올바른 시민으로서의 교사에 주목하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교대 교육과정에서는 그러한 시민성을 길러줄만한 수업이 전무한 편이며 대부분의 교대 입학생들 역시 성향상 상당히 안정성을 추구한는 사람들로 대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이 기존의 좋지 못한 교직풍토에서 무언가를 바꾸어 낸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셋째로는 의외로 위원회등 좌파의 산물을 공격한다. 학교성과급제나 학교 평가제, 일제고사, 교원능력팡가등의 우파적 장치의 폐해는 이미 거의 모두가 공감할 정도이다. 하지만 학교운영위원회를 비롯한 학교민주화를 위한 교내 각종위원회 역시 폐해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사실 이미 학교내의 많은 위원회들은 잘 운영되는 곳도 있겠지만 학부모 위원과 지역위원들의 역량부족, 전문가의 보조 미비 등으로 거의 교내 거수기 역할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저자는 무능하게 작용한 교내의 위원회들을 자신이 직접 근무한 학교에서 일어난 교내 부실 급식문제에 대한 무능으로 잘 보여준다.

 넷째는 여러 과목들의 문제, 그 중 특히 도덕과의 문제이다. 도덕과는 세계적으로 거의 한국에 유일하게 있는 것이며 그 시작은 다소 불순하게도 반공도덕이다. 즉, 독재정권의 산물인 것이다. 현재는 반공교육도 다 걷어내었고, 순수 도덕교육만 남아있지만 문제는 상당히 국가주의적 시각을 갖고 교육을 유도한 다는 점이다. 도덕교과서는 특정가치를 학생에게 강요하는데 교과서에 나오는 일화역시 적절치 못한 경우가 있으며 상황에 따라 상충되는 가치가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무엇보다돋 학생스스로 상황에 맞게 선택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방향, 즉 시민교육이 아니라는 점을 저자는 가장 강조한다. 그 외에 학생 수준에 맞지 않고 억지스러운 스팀교육과 아직도 전문가로서의 기능만을 강조하는 음악교육을 싸잡아 비판한다.

 저자는 10년차의 초등교사로 현장에서 자신이 실제 겪은 학교의 부조리를 잘 지목하며 그 해결방안으로 교사의 헌신과 학교 민주주의의 회복을 제시한다. 그리고 학부모의 관심을 지목한다. 학부모의 관심이야말로 학교현장에 가장 큰 압박으로 다가올수 있는 현실 때문이다. 실제로 교사는 스스로 학부모를 가장해 해결하고자하는 학교문제를 해결하였는데, 학교구성원으로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정말 손쉽게 해결되는 장면들을 제시한다. 웃픈 현실이다.

 이 책 처럼 학교현장에 대한 좋은 책이 현장교사를 통해 간혹 나오는 편인데, 주목도는 상당히 낮은 경우가 많다. 학교교육은 미래의 시민을 길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학교교육이 진즉 제대로 되었다면 오늘날의 많은 정치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민감하고 해결하고 노력하는 시민이 양성되었을 거라는 점에서 교육은 사실상 사회문제 해결의 좋은 방책중 하나인 셈이다. 이러한 책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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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02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과학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고등학교 과학 수업의 실태가 궁금했어요. 학생들이 배운 과학교과서에 오래 전에 나온 이론들이 많을 겁니다. 과학 선생님들이 과거 이론을 뒤집거나 반대되는 새로운 이론들을 알려줘야하는데 교육 여건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교과서 중심, 성적 중심의 과학 수업이 계속된다면 기초과학 역량을 강화하기 힘들어질 겁니다.

닷슈 2017-04-02 21:32   좋아요 1 | URL
교과서의 이론은 그래도 비교적 잘바뀔지도 모릅니다만 가르치는 교사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개취이긴하자만 알라딘에서 조차도 과학리뷰어는 너무희소해서 안타까울때가있습니다

2017-04-03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7-04-03 00:25   좋아요 2 | URL
교사가 그렇게된데는 교사집단의책임이 크죠 하지만교육문화와 교육부 학부모의 문제도 적잖다고봅니다

커피소년 2017-04-03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특히 도덕에 대한 글에서 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닷슈 2017-04-03 12:48   좋아요 1 | URL
책이 훌륭했습니다 한10년전에 도덕교육의 파시즘이란 책이있었습니다 그시대가 좀지나긴했지만 그책도 좋았습니다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 진화학자 장대익의 인간 탐구
장대익 지음 / 바다출판사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장대익 교수의 또 다른 책으로 이번에는 인간의 5가지 특성에 대해서 진화론의 입장에서 접근했다. 늘 주장하는 인문학과 과학이 통섭된 시도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초반 부분은 좀 재미가 없는데 뒤로 갈수록 역시 장대익 교수다라는 생각을 하면 보게 되었다. 

 5가지 부분은 탐구하는 인간, 따라하는 인간, 공감하는 인간, 신앙하는 인간, 융합하는 인간이다. 앞의 4가지는 확실히 인간 본성이라 생각되지만 마지막 융합하는 인간은 저자가 현재 인간사회에 바라는 부분이다. 따라하는 인간은 모방과 관련하여 인간의 지식을 쌓고 전수가 가능하여 문명을 이루게 된 것과 관련이 있으며 공감하는 인간은 도덕성의 발달과 그것의 동물로까지의 확장, 신앙하는 인간은 종교와 각각 관련이 있다. 

 책 내용들은 장대익 교수의 책을 꾸준히 본 사람이라면 크게 새롭지는 않다. 이 책에서 특별히 재밌게 본 부분은 두가지다. 

 

1. 가족의 탄생

 장대익 교수는 가족의 탄생에 성의 분화를 전제로 깐다. 무성생식을 한다면 당연히 가족은 필요없다. 1인 가구만 무한할 뿐. 현재 세계는 1부1처제가 보편적인 편이다. 하지만 인간의 고환의 상대적크기(고환무게/몸무게)는 일부다처인 침팬지와 완벽한 일부일처인 고릴라의 중간정도에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애매한 셈인데, 실제로 일부일처를 종교의 영향으로 완성한 서양문명이 지배적이 되기 전에는 인류 문명의 80%이상이 일부 다처제였다고 한다. 우리도 그러했고, 아직도 그러한 나라들이 많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머리가 크고 신체적으로 상당히 미숙한 태아를 갖게 되었는데, 그 결과 남성의 장기간 보호가 요구되었다. 어머니 혼자만으로 그 미숙한 아이들 돌보는 것은 단연 무리이기 때문. 또한 남성 입장에서도 인간 여성은 배란기를 숨기는 재주를 갖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녀석이 내 아이인지 도저히 알 수 가 없으니 장기적으로 함께 거주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인 셈이다. 


2.융합 혹은 통섭

통섭이나 융합개념이 회자한지 상당히 오래이지만 나 역시 그렇고 오해가 많은 편이다. 실제로 저자는 일종의 유행처럼 들끓다가 끝나지 않을까란 우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대학이나 학교에서 융합을 교과나 과목간의 경계를 없애는 통폐합을 생각하는편이다. 물론 이것도 융합이지만, 저자는 진정한 융합이란 질문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주제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교과나 학문들이 함께 협력하는 것이다. 교육계에서 말하는 주제중심의 통합인 셈이다. 

 또한 대학에서 자신의 전공과목조차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융합이 무리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게는 이렇게 말한다. 대학에서 학부생의 융합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의 융합이라고. 즉, 연구를 해내가는 과정에서의 융합인 셈이고 그 과정에서 융합적 지식보다는 융합적 태도를 강조한다. 

 장교수는 이처럼 융합의 개념이 진정성 있게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사회의 융합은 아직 큰 도움이 안되는 야생의 밈으로 파악한다.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융합을 길들여진 밈으로 만드는 것이다. 비유조차 뼛속까지 진화론자다. 


장대익 교수를 잘 알건 모르건 상당히 재밌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임이 분명하다. 마지막에 또, 과학 관련 도서를 추천하는 것은 이 사람의 특징이다 매번 해결 불가능한 숙제를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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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3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섭’의 개념을 잘못 알면, 보편화된 하나의 학문이 소규모 수준의 학문들을 통합하는 걸로 인식할 수 있어요. 학생 수가 많고, 취업이 보장된 A 학과와 학생 수가 적은 비인기 B 학과를 통폐합하는 경우가 그런 거죠.

닷슈 2017-03-31 10:37   좋아요 0 | URL
그렇게 악용되기도 하는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