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지기 전에 - 1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
김정섭 지음 / Mid(엠아이디)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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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제1차대전은 이름만큼 굉장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그 동생뻘인 2차대전에 비한다면 잊혀진 전쟁이나 다름없다. 둘의 발생 시기차가 고작 20년정도 차이에 불과하고 1차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새로운 세계질서가 사실상 2차세계대전을 잉태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전쟁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의 정도는 다소 놀랍다. 2차대전하면 정말 많은 것이 생각난다. 히틀러, 무솔리니, 도죠히데키등의 전범자들은 물론이고 2차대전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 책 등의 저작물도 정말 많다. 하지만 1차대전의 그것들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워호스 정도의 영화가 간신히 생각이 나는 수준이다.

 책, '낙엽이 지기전에'는 이런 1차대전을 다룬다. 1차대전이 발발하던 당시의 국제적 상황과 주요정책결정자들과 그들의 성향, 그리고 사라예보사건 이후, 각 나라들의 복잡하고 급박했으며 어리석었던 의사결정들, 그리고 그것들이 연결되어 전쟁이 이루어지고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장면들을 딱딱하지 않고 생생히 보여준다. 저자도 의도했다고 말하지만 주로 묘사로 서술되어 약간은 소설같은 기분도 느낄수 있었다.

 우선 18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은 유럽의 떠오르는 신생 강대국으로 통일 이후 비스마르크의 주도하에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알자스 로렌지역을 차지한 상태였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를 격퇴했음에도 더 이상의 팽창은 주저하였으며, 언제든 위협이 될 수 있는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정책을 구사했다. 그래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등 가급적 모든 유럽국가들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구축해나갔다. 식민지정책에도 부정적이어서 식민지정책이 가져올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과 다른 유럽국가들과의 관계악화를 우려했다. 즉, 비스마르크의 정책은 신생제국 독일의 무리한 확장보다는 그것을 유지하고 유럽내에서 지위를 인정받으며 안정화하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지금의 독일 정책과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황제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를 실각시키면서 상황은 급반전한다. 독일의 공업수준이 최대치에 이르며 국내시장이 포화에 이르자, 새로운 시장으로서 식민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고 여기에 황제의 야심도 더해졌다. 이에 독일은 새로운 식민지 개척을 위해 적극나서지만 그를 위해서는 제해권을 잡고 있으며 전세계에 식민지를 경영하고 있는 영국을 제압해야 했다. 이 때부터 제해권을 둘러싼 독일과 영국의 건함경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무리한 건함경쟁에도 모로코를 둘러싼 힘의 외교전에서 사실상 영국과 프랑스에 패배하고, 러시아 오랜 경쟁관계인 영국과 합작하기 시작하자  독일은 사실상 건함정책을 포기하고 유럽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만다.

 이는 자신들의 팽창이 초래한 바이지만 이로 인해 독일은 지상군위주로 전환하며 1차대전 전략의 근간이되는 슐리펜 계획을 세운다. 슐리펜 계획은 프랑스 부분의 서부지역을 공세할때 벨기에 부분으로 우익기동하고 방어가 강한 프랑스 부분의 좌익 부분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편성한 후, 전력을 집중시켜 단기간 내에 프랑스를 제압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후, 러시아 부분의 동부전선에 서부전선에서 생긴 여유분의 병력을 증가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간다는 것이 핵심전략이었다. 이 슐리펜 계획은 1차세계대전에서의 전략적 패배와 외교적 여지를 크게 줄여 사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듯 1910년대 유럽은 독일-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이탈리아의 삼국동맹과 영국-프랑스-러시아의 삼국협상이 팽팽이 맞서는 상태였다. 이런 와중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가 세르비아 사라예보를 순방중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간섭하는 슬라브계인이 저지란 사건이었다. 사실 첫번째 암살시도는 폭탄에 의한 것이었는데 실패하였다. 그럼에도 황태자와 경호책임자는 무리한 순방을 계속해 황태자부부는 결국 실패한 테러를 포기하고 돌아가던 또다른 암살자 눈앞에 나타나 사살되고 만다.

 이 사건에 피해자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자국의 발칸반도에서의 영향력 강화와 제국의 황태자암살이라는 손상받은 위신을 만회하고자 세르비아에 강력한 경고장을 날리려고 한다. 하지만 거기엔 러시아란 문제가 있었다. 발칸반도에 많은 슬라브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세르비아에 대한 강력한 조치는 러시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독일제국에 협조를 요청한다. 놀랍게도 빌헬름2세와 독일 정책자들은 이런 오스트리아의 물음에 무한한 협조를 약속하는 유명한 백지수표에 가까운 협조를 약속한다. 그리고 빌헬름2세는 어처구니 없게도 이긴박한 순간에 그같은 결정을 내리고서도 무책임하게 3주간의 북유럽요트여행을 떠난다. 이 같은 독일의 강경한 협조요청에 놀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상당히 호전적으로 돌변하여 세르비아의 주권과 자존심을 건드는 최후통첩을 날린다.

 세르비아는 당연히 거부할수 밖에 없었으며 이 사태를 주시한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의 이런 태도의 배후에 독일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독일의 침공의지를 과대하게 위협적으로 평가한 러시아는 선제공격에 대한 군부의 압박, 그리고 독일에 대한 공포로 인해 총동원령을 내리고 만다. 러시아 황제와 관료들은 사실 부분동원령을 내리려고 했으나 당시 러시아의 후진적 상황과 독일에 대한 공포는 이를 허락치 않았다.

 어처구니 없게도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이런 러시아의 행동에 매우 놀란다. 휴가를 다녀온 빌헬름 2세는 이와 같은 러시아의 대처에 사촌지간인 니콜라스 러시아 황제에 서신으로 상호자제를 호소한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니콜라스의 손과 빌헬름의 손을 떠난 상황. 러시아의 총동원령에 오스트리아도 총동원령으로 대응하였으며 위기를 느낀 프랑스는 영국에 도움을 요청한다. 당시 조용하면서도 영광스러운 고립적 외교로 유럽대륙의 문제에 비간섭으로 일관하던 영국 역시 상황이 급박해진다. 프랑스와의 동맹으로 프랑스 함대는 지중해 연안에 집중해있엇고 이에 북해 부근의 프랑스 영해는 영국이 보호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신생중립국의 벨기에의 중립역시 영국의 이루어놓은 것이라 전쟁발발후 사실상 이루어질 독일의 벨기에 진격은 영국의 위신을 깎는 일일것이기 때문. 거기에 프랑스를 잃은 후, 영국이 과연 무사할 것인가라는 실제적 질문도 함께자리했다.

 프랑스가 이미 총동원령을 내리고, 독일 역시 이에 대응해 총동원령을 내리고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한 후 룩셈부르크를 침공함으로써 전쟁은 사실상 시작되고 만다. 사라예보사건 이후 정확히 한달 후의 일이었다.

 초기 전황은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압도적 군사력으로 서부전선에서 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를 제압하였고, 이로 인해 프랑스를 빠른 시간안에 침공할 수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육군 역시 초기전투에 실패하여 퇴각하는 상황이었다. 동부역시 마찬가지여서 삼소노프가 이끌던 러시아군을 탄넨베르크에서 격멸하는 성과를 올린다. 러시아 군의 전사자는 무려 40만에 달했고, 독일은 겨우 1만에 그칠만큼 대승이었으며 이후 러시아는 동부전선에서 이렇다할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독일에 계속밀리게 된다. 당시 러시아군은 병참능력이 떨어지고 심지어 통신역시 암호화하지 못하는등 후진적인 군대였으므로 패배는 자명했다. 그리고 대패이후 삼소노프는 자살한다.

 이에 고무된 독일의 몰트케는 서부전선의 2개군단을 동부전선으로 수송하는 치명적 판단 착오를 범하게 되고 연합군은 그 빈틈을 파고들어 마른전투에서 승리한다. 이로 인해 서부전선을 고착되고 만다. 당시 유럽 각국의 지휘관들은 신속한 공격전을 선호했는데, 이는 빠른 공격이 적의 영토로 신속하게 진격을 가능하게 하고, 이는 상대편지휘관으로 하여금 역시 신속한 공격전을 선호하게 만들었다. 1차대전의 발발위기에서 서로 빠르게 총동원령을 내려 서로의 동원령을 부추겨 전쟁을 발발하게 만든 것도 이와 같은 신속한 공격전에 대한 상호간의 공포때문이었다. 또한 신속한 공격전에 대한 선호는 전쟁을 빨리 끝날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낙엽이 지기전에 이다. 전쟁을 선포한 장군과 관료, 황제들은 모두 전쟁이 조기 종료될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유럽의 하천지형과 자잘한 산맥들은 진격을 어렵게 만들었고, 기관총과 장거리 사정포의 등장으로 속도감있는 진격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물론 병사들은 무거운 장비로 속도를 내는 것 자체도 불가능했다. 따라서 전장이 교착되자 서로 점령하기 어려운 긴참호가 형성되었다. 1차대전이 참호전이라 불리는 이유다. 당시엔 이런 참호를 돌파할만한 전차도 공중지원도 없었다. 그러한 무기는 2차대전에 등장한다. 어쨌든 참호는 포탄이 떨어지지 않게 끔 폭은 넓지 않으면서 쉽게 조준되지 않게 구불구불 미로처럼 깊숙이 파졌다. 참호안 환경은 매우 열악하여 쥐와 민달팽이, 이, 사람의 오물, 시체 등으로 고약한 냄새가 났다. 냄새가 참호 수 km까지 퍼져 적들은 참호가 있음을 정찰없이 파악할 지경이었다. 안에서의 위생환경도 열악해 병사들은 발목이 세균성 감염으로 썩어나가는 참호족염에 시달리고 오한과 고열에 죽어나갔다. 포탄으로 인한 공포도 상당하여 신경쇠약증에  걸리기 일쑤였고, 이로 인한 정신병으로 전후에도 고통받게 된다.

 전황은 점차 독일에 불리하게 흘러갔다. 제해권이 없으므로 해외로부터 원료 및 식량확보가 어려웠다. 동등한 해군력으로 영국에 대항할 수 없던 독일은 유명한 유보트 작전을 시행한다. 잠수함으로 적의 상선을 타격한 것인데, 그러던 중 아일랜드 인근에서 미국인 128명을 죽게한 초호화 여객선의 침몰로 작전은 소극적으로 변화한다. 미국의 참전이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전장이 더욱 장기화되작 주전론자들의 무차별 유보트 공격이 다시 힘을 얻고 만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미국의 참전이었다.

 초기 미국은 겨우 1-2만 정도의 병력만 수송이 가능했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엄청난 병참능력을 보이며 1년만에 무려 100만에 달하는 병력과 물자들을 지원한다. 오랜 참호전에 지친 독일에겐 치명타였다. 거기에 초기 동맹을 약속했던 이탈리아 역시 배신하여 오히려 연합군에 가담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도왔다. 초기 패전하고 정신을 못차리던 러시아는 혁명이 일어났다. 독일은 러시아의 혁명을 부채질하기 위해 레닌을 특별열차까지 동원하여 러사이로 수송하였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혁명으로 더이상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웠던 러시아는 독일과 강화협정을 맺는다. 이는 영토와 큰 상실과 발칸반도에서 영향력을 상당히 잃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러시아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거기에 러시아는 전세계가 곧 혁명화될거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동부전선에서 큰 여유가 생긴 독일은 여세를 몰아 프랑스 베르됭을 공격한다. 전략적 요충지는 아니었으나 프랑스의 자존심이 걸린 역사문화도시였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 곳을 집중타격하면 프랑스가 결사항전하여 프랑스의 나머지 힘을 모조리 짜낼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는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도 실패하면서 독일을 몰락의 길을 걷는다.

 먼저 불가리아가 항복하고 이어서 오스만 제국도 항복한다. 여기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항복을 하여 여러개의 나라로 쪼개진다. 이런 전황에 전쟁에 지친 독일내의 폭동과 항거 그리고 항복을 원하는 군부의 압박으로 빌헬름2세는 퇴위하고 항복한다. 전쟁의 결과는 비참했다. 1천만의 전사자가 나왔고, 1천만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다. 거기에 1천만의 군인이 부상을 입게 되었다.

 전후 독일은 연합국에 알자스 로렌과 라인란트를 빼았겼으며 폴란드의 독립을 허용하게 된다. 거기에 막대한 배상금까지 안게 된다. 이에 대해 영국수상 조지 로이드는 너무 가혹한 응징으로 실지에 대한 독일의 복수로 25년뒤 다시 한번 세계대전을 치룰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프랑스 수상 조르주 클레망스는 강화조약이 너무 약하여 독일을 예전처럼 쪼개어 놓지 못한 것을 한탄했고, 이것이 전쟁으로 이어질것이라 내다봤다. 입장이 서로 다른 둘은 정확히 미래를 예측했다. 둘의 의견은 모두 옳았다.

 1차대전은 가해자와 의도가 분명했던 2차대전에 비해 애매한 전쟁으로 불린다. 전쟁의 원인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1차대전의 발발 원인을 공격이 유리하다는 잘못된 믿음, 전쟁에 대한 위험을 모두 계산했다는 착각, 위기 상황에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정책결정자들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꼽는다. 그리고 안보딜레마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안보딜레마란 A의 안보 증진 노력이 B의 안보를 저해함으로서 B가 자신의 안보를 강화하고, 그로 인해 A의 안보가 저해되어 다시 안보를 강화하고자 하는 악순환을 의미한다. 실제로 1차대전 당시의 서로간의 불신과 정보부족 몰이해로 인한 총동원령이나 위협은 상대방의 총동원령과 위협을 가져왔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이러한 1차대전의 상황을 한반도에 적용한다. 북한의 핵위협과 막강한 재래전력, 그리고 더욱 막강한 남한의 전력과 세계최강 미국군대의 전력이 한반도에 존재한다. 이는 서로 선제공격에도 불구하고 적을 완전히 섬멸하지 못하여 상대방의 2차공격으로 자기 역시 격멸에 가까운 상황을 양자가 맞게되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안보딜레마 상황이지만 전략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지적 도발로 인한 뜻하지 않은 전황의 극적인 전개로 전쟁에 치달을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의 방지를 위해 군위주의 판단으로 전쟁에 치달은 1차세계대전을 거울 삼아 군의 전문성을 인정하되 결정 및 판단에서 민간의 역할이 평소에 충분히 공유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의외로 한반도에 국한된 판단이라 다소 의외의 제안이기도 하다. 사실 한반도의 전쟁은 인계철선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한국으로의 침공을 자연히 남한을 포기할수 없는 미국의 참전을 의미하며, 안보를 위협받은 일본의 참전으로 이어질수 밖에 없다. 또한 미국과 일본의 참전은 당연히 북한을 순망치한으로 여기는 중국의 참전과 더 나아가서는 러시아의 참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1차대전과 매우 유사한데, 독일에게 오스트리아는 절대 잃을 수 없는 최후의 동맹이었고, 그런 오스트리아에게 세르비아와 발칸반도에 대한 영향력은 러시아를 막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러시아에겐 그런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태도는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졌으며, 러시아에 대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침공을 방관하는 것은 프랑스에겐 다음은 내 차례로 일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유럽에서 프랑스를 잃는 다는 것은 영국에겐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으며 자신들의 헤게모니가 위협받는 형국이었다. 이처럼 1차대전 당시 유럽 각국은 인계철선으로 연결된 셈이었다.

 저자는 앞서말한 민관군의 대화 소통 시스템을 구축하면 국지도발 시스템을 잘 막을 수 있다고 하였지만 국제적인 상황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물론 한반도 외에 다른 지역에서 적대세력간에 국지도발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엔 과거에 비해 상호 경제의존도가 매우 높아진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차대전 당시 각 나라들은 비록 왕조시대이긴 해도 전쟁의 참상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애국심에 휩싸여 몇몇 어리석은 소수결정자가 수천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협조하였다. 이와 같은 일이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에서는 벌어지지 않을까, 적어도 이중에서 그런걸 막을 정도로 성숙한 시민사회는 미국정도가 유일해 보인다. 그다음으로는 우리가 가능성이 있어보이지만 북한 핵도발에 대해 다른 평화적 의견을 좌파정권도 함부로 입에 담지못할 만큼 우리의 안보환경도 상당히 우편향적으로 경직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책은 매우 쉽게 읽힌다. 어찌보면 소설과 교양역사책의 중간정도 느낌이기도 하다.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가독성이 높다는 뜻이다. 덕분에 1차대전에 대한 많은 것을 알수 있었다. 전쟁은 끔찍하다. 그리고 전쟁을 주장하는 자들은 매우 어리석으며 결국 전쟁에 대해 책임질수 있는 역량도 없음을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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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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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이 백년을 살아보니이다. 제목만 보고 그냥 꽤 오래 사신 분이 격동의 한국 20세기에 대해서 평한게 아닐까. 그리고 백년의 방점은 한국의 20세기가 아닐가 싶었다. 유시민작가도 반세기를 조금 넘게 살았지만 나의 한국현대사를 쓰지 않았는가.(생각해보니 그 책은 50년만 다뤘던 것 같기도) 그런데 저자 약력을 보니 정말로 100년을 살았다. 한국나이로 무려 98세.

 대한제국의 신민까지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의 신민에서, 일본의 엘리트 유학생, 해방후 공산주의에 고민하는 평안도 사람에서 남한으로의 탈출, 그리고 독재정권과 오늘 날의 민주정권까지. 정말 파란만장한 한국의 근대사를 글이 아닌 온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그런 사람이 인생의 소회를 다룬 책이 이 책이다. 읽어보니 전체적인 느낌은 한국의 온건한 기독교 우파같은 생각이다. 아직 반세기도 살지 않은 나같은 사람이 평하자니 웃기기도 하지만 평은 평일 뿐이다. 사실 저자의 삶은 많이 굴곡진 한국근대사에 비하면 덜 굴곡진 삶처럼 보인다.

 식민지 시기에는 일본에 유학가서 대학을 마칠수 있는 엘리트였고, 학도병에 끌려갈까 고민을 했을뿐 독립운동은 하지 않았다. 물론 신사참배로 학교를 강제로 쉬게된 경우는 있다. 공산정권하에서 탈출했지만 전쟁에 참전하지는 않았고, 독재정권하에서도 꾸준히 교수생활을 영위한 걸 보면 독재정권을 비호하진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항거하지도 않은 것 같다. 물론 역시 적극적으로 어용학자가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과거에는 식자층 자체도 적어 교수자체가 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처럼 굴곡진 한국사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성찰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유시민처럼 그리고 독립투사들처럼 살순 없고, 나역시도 그렇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에 이런 삶을 함부로 비판하거나 나쁘다고 생각치도 않는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 종교인이지만 근본주의를 배격하고 다른 것을 포용하는 생각 그리고 휴머니즘을 가장 근본적이고 이상적인 가치로 삼은 것은 인상적이었다.

 애국심이라는 것이 독재정권의 비호에 악용되고 오늘날에는 보수정당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프레임이로 굳어져 상당히 아쉽긴 하지만 애국심은 여전히 신경써야하는 중요한 가치인건 분명하다. 유시민이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것 처럼 국가와 시민과의 관계, 그리고 시민적 가치가 우선시 되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란게 전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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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식탁 위의 한국사 - 메뉴로 본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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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잡식동물의 딜레마'라는 책을 보았는데,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이 먹는 음식이 인간의 본성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설득력 있는 말이다. 책은 잡식동물로서 음식에 대한 인간 선택의 딜레마가 두뇌와 사회성 발달. 그리고 음식에 대한 금기, 윤리에 영향을 미쳐 도덕성발달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렇다면 좀더 지역적으로 가서 비록 우리가 글로벌하긴 하지만 훨씬 압도적으로 자주 먹는 한식은 어떠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리적으론 이렇게 되어야 맞지만 사실 내가 먼저 관심을 가진 책은 이 책 '식탁 위의 한국사'였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순전히 이 책의 옆에 있었기에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잡식을 먼저보고 이책을 나중에 보게 되었다.

 책은 20세기 한국음식의 변천과정을 고찰하고, 그렇게 된 시대적 원인을  잘 들여다보고 있다. 다 읽고난 느낌은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꽤 유구한 역사를 가졌을 거라고 마음대로 생각해왔던 우리 음식들이 기껏해야 그 역사적 연원이 조선후기 정도이고 상당수는 현대에 이르러 생겨났다는 점이다. 당연히 내가 모르는 음식은 없지만 그 역사적 변천과 원인 발생시점은 모두 다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르거나 예상을 빗나갔다. 특별히 좀 인상적인 것만 뽑아봤다.

 

1. 삼계탕

 "꿩 대신 닭"이란 말이 있다. 딱봐도 꿩이 닭보다 낫단 이야기인데, 이 속담은 실은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진게 아닐지 모른다. 조선시대 닭은 꿩보다 귀했다. 소와 비슷한 경우인데, 닭은 달걀을 낳는 만큼 함부로 고기로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고기로는 사냥으로 잡는 꿩을 많이 사용했고, 가격도 꿩이 더 쌌다고 한다.

 그런 것이 일제 강점기 대대적인 양계사업으로 닭의 수가 현격히 많아지며 크게 변한다. 닭이 많아지면서 닭백숙 같은 음식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 여기에 인삼이 추가되며 삼계탕이 아닌 계삼탕이란 음식이 나타났다. 인삼은 그냥 먹는 수삼(유통기한이 겁나 짧다), 껍질을 벗겨 말려낸 백삼, 그리고 껍질채 찐후, 말린 홍삼이 있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백삼이 귀하고 냉장고가 없어 인삼을 넣기 힘들어 닭을 강조한 계삼탕이 었다가 냉장고가 발달하여 유통이 크게 계산되어 인삼을 손쉽게 넣을 수 있게 되자 인삼을 강조한 삼계탕이 되었다고 한다.


2. 육개장

 개장이란 음식도 한번쯤 들어본적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육짜가 붙은 것이 육개장이므로 당연히 개장이 원조가 된다. 보통 나중에 파생한 단어에 추가적으로 뭔가 붙기 마련. 그럼 개장은 무엇일까? 예상대로 보신탕이다. 조선시대 개장은 매우 흔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애완견 애호가는 있었기에 개장에 개고기 대신 다른 것을 넣는 시도가 육개장의 시작이다.

 이 육개장은 소고기 도축을 사실상 금지했던 조선왕조가 멸망하고 나서야 본격화되었다. 여기에는 88올림픽등 개고기에 대한 혐오를 보이는 다른 나라 문화권에 눈치보기도 한 몫했다.


3. 우리가 먹는 배추는 사실 중국배추다.

원래 김치는 배추김치만이 아닌 다양한 채소를 총동원한 절임음식이었다. 배추는 귀했던 만큼 중심이 아니었고, 그랬기에 배추김치는 김치중 으뜸이었다고 한다. 원래 김치에 사용한 배추는 우리 토종인 조선배추였다. 조선배추는 우거지가 많이 나고 감칠맛이 특징이어서 사랑받았지만 속이 좀처럼 차지 않고 수확량도 적어 동결이 약하고 귀했다. 반면 중국배추인 호배추는 동결에 강하고 속이 꽉찼으며 생산량도 많았다. 물론 우거지는 적고 맛도 없다. 하지만 결국 수요를 뒷받침 하기 위해 호배추가 많이 경작되었고, 어느새 우린 조선배추 맛은 아예 잊고 살고 있다.


4. 남한에서 돼지고기는 인기가 없었다.

 원래 남한 사람들은 1960-70년대만해도 압도적으로 소고기를 선호했다고 한다. 돼지고기는 평안도나 황해도등 북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남한에서 인기가 없는 이유로는 이렇다할 조리법이 없고 안좋은 속설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당시 남한에서는 돼지고기를 한약과 함께 먹으면 머리가 희어지거나, 기생충이 많아 잘못 먹으면 죽을 수 도 있다는 풍문이 돌았다고 한다. 어쨌든 지나친 소사랑으로 소고기 값이 폭등하고 사회 문제가 되자 정부에서는 정책적으로 돼지고기 조리법을 개발하고 소비촉진 정책을 벌였다. 그 결과 1980년대에 이르러 족발집이나 보쌈집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급기야는 돼지고기를 더 선호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삼겹살 이야기가 책에 없는게 아쉬운 대목.


5. 일본에서 유래한 김밥

 어릴적 소풍에는 김밥이 단연 최고 도시락 거리였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늘과 어제 있었던 학교비정규직 파업으로 학교현장에는 많은 학생들이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왔다고 한다. 때문에 나 역시 오래전부터 김밥을 당연시 우리 음식으로 여겨왔는데, 이상한 점을 처음으로 느낀 것은 초밥집에 가면서부터였다. 초밥집의 다른 초밥은 당연히 일본음식같은데 김초밥이라는 김밥과 똑같이 생긴 음식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당시 우리것을 따라하거나 비슷한게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책에 의하면 김밥은 원래 일본 음식은 노리마키스시에서 유래했다.

 

6. 빵집의 등장

 빵집은 일제 강점기부터 본격화 되었다. 당시에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빵을 파는 빵 행상이 주 공급처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밀가루가 귀해 빵은 그다지 쉽게 접할 음식은 아니었다. 한국 전쟁후 미국이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위해 한국에 대규모의 무상원조를 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대규모의 밀가루가 들어왔는데 이 때부터 빵도 본격화되었다.

 이은희 박사는 그 당시 빵집이름에는 세가지 경향이 있었다고 분석했는데 이부분이 재밌다. 우선 신흥당, 신라당, 유성사, 유정사처럼 당이나 사로 끝나는 일본식 이름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빵집의 지명이 그대로 이름인 경우도 많았다. 창원, 서울제과 같은게 그런 식이다. 마지막은 외국 유명지역명을 그대로 딴 경우다. 파리. 리스본, 뉴욕제과점, 독일빵집이 그런 것들이다.

 빵의 공급은 행상에서 빵집, 그리고 대규모로 밀가루가 넘치고 수요가 늘어나며 삼립식품이나 샤니 같은 대규모 공장으로 이어진다. 이런 공장들은 1980년대까지 국내 빵시장을 지배했지만 경제성장과 더불어 빵과 케이크에 대한 수요가 늘고, 소비 변화가 일어나며 전문제과점에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이 전문제과점들은 오늘날의 프렌차이즈 빵집으로 이어진다.


7. 한국음식의 프렌차이즈화

저자에 의하면 지금의 한국음식은 프렌차이즈가 지배하고 있고, 그 결과는 몰개성화다. 우리나라프렌차이즈의 시작은 1980년대로 맥도날드가 한국에 진출할까 고심중, 롯데리아의 성공을 보고 뒤늦게 뛰어든 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코코스나 TGI같은 레스토랑도 등장한다. 더불어 한국음식자체들도 프렌차이즈화가 시작되었는데 대부분 사업이 본격화되지 못했다. 저자는 한국음식점은 메뉴가 밥과 반찬으로 다양하게 제공되는 형태여서 메뉴표준화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국수류나 족발, 보쌈, 빈대떡 같이 간단하면서 표준화가 가능한 일부 메뉴가 성공적으로 프렌차이즈화했다고 본다.

  이런 프렌차이즈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해 아이엠에프로 인한 자영업자의 지나친 증가, 그리고 프렌차이즈에 대한 잘못된 성공신화의 유행으로 마치 벽돌찍어내듯 골목자리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프렌차이즈는 음식점마다 갖고 있던 독특한 손맛을 없앴다는 점에서 음식의 몰개성화에 한몫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또한 1980년데 산업화와 더불어 교통이 편리해진것도 원인이다. 이로 인해 음식의 지역적 특색이 점차 사라졌고, 5천만의 입맛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경상도에서는 경상도 만의 전라도에서는 전라도 만의 지방특색을 그 지방에서만 느낄수가 있었다. 지금은 전국 어딜가도 비슷하다.


책은 내가 언급한 것보다 훨씬더 많은 한국음식을 다룬다. 내가 술을 한좋아해서 인상을 못받아서 그렇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희석식 소주나 막걸리, 약주등의 변천도 상당히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유일한 단점은 읽을수록 배가 고파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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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0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알쓸신잡>에서 황교익 씨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겹살을 많이 먹게 된 이유를 알려줬어요. 그 이야기 속에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닷슈 2017-07-01 16:12   좋아요 0 | URL
뭔지 궁금하군요 아마 먹을게 없어서일거같은데 한번봐야겠군요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잡식동물의 혜택은 무진장한데, 우선 먹을 수 있는 것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여러 생물에게서 영양분을 얻을 수 있으니 칼로리 섭취도 높고, 환경변화에 강하다. 하지만 고민스럽기도 하다. 여러가지를 먹을 수 있다보니 무엇을 먹어야할지 고민이기도 한 것이다. 당장 우리가 숲에 떨어져서 무언가를 채집하고 사냥해서 연명해야 한다면, 정말 많은 고민이 들 것이다. 특히 여기저기 핀 버섯과 열매들을 보고 말이다. 또 만약 모르는 동물을 사냥했다면 이걸 어떻게 먹어야하지 어떤 부위를 먹어서는 안될지 정말 고민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잡식동물의 딜레마이다. 여러면에서 먹을 것은 많은데 그 안전을 위해 끊임 없이 고민하고 실험하고 방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안전한 음식섭취를 위해 인간문화권에서는 엄격한 요리 방법, 사냥이나 채집에 있어 상대 생물에 대한 윤리나 금기를 발달시켜 왔다고 책은 말한다.  잡식이 두뇌발달과 더불어 우리 본성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윤리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는 것이다.

 반면, 한평생 유칼리툽스 잎만 먹는 코알라는 먹을 것에 대해 일말의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하나에서 모든 것을 얻어야 하므로 긴 소화관이 필요하며 소화관만으로도 부족해 그 안에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들과 공생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고기만을 먹는 육식동물도 마찬가지다. 먹을 것의 선정에 고민이 없지만 몸은 알아서 그 소정의 먹을 거리에서 모든걸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가 발달하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 딜레마는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뜻하지 않게 현대판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불러왔다. 마트에 가면 먹을 것 천지이고 이 모든 것은 무척 안전해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심지어 그 원형이 무엇인지 혹은 어디서 왔는지 알수 없을 정도로 가공되거나 여러단계를 거친 것이다. 원산지란 사실상 오늘날 추적이 불가능하고 심지어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또한 최근에는 유전자 조작까지 벌어지고 있으며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화학첨가물이 함께하기도 한다. 때문에 인간은 마트에서 다시금 잡식동물의 딜레마에 빠져들게 된다. 어떤 것이 안전한지 무엇을 어떻게 먹는게 건강에 좋은지 고민인 것이다.  물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이것에 대한 무지와 막연한 믿음으로 이 문제에 대해 넘어가곤 한다.

 이런 종류의 무지에 대해 경각심을 보내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세가지 음식 사슬을 이야기한다. 산업적 음식사슬, 전원전 음식사슬, 수렵채집적 음식사슬이다. 음식 사슬이란 기본적으로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 만들어낸 칼로리를 그걸 하지 못하는 다른 생물에게 칼로리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저자는 책에서 산업적 음식사슬부터 시작하여 전원적 음식사슬,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렵채집적 음식사슬의 현장을 실제로 경험하고 성찰해나가면서 문제점을 짚어 냄과 동시에 인간이 음식사슬의 수혜자로서 다른 생물에게 가져야할 가치나 태도에 대해서도 철학적으로 고찰해나간다.

 책은 우선 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풀과 인간이 일종의 연합을 맺었다고 본다. 사람은 널리펼쳐진 풀밭을 보면 묘한 안정감과 평안을 느끼는데 이것은 인간과 풀의 오랜 연합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수렵채집사슬 시절 풀은 초식동물과 인간 양자에게 이점을 제공했다. 풀은 나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풀은 우선 초식동물에게 뛰어난 맛과 영양을 가진 풀잎을 제공했다. 풀밭에 초식동물이 자연스레 모여들자 인간은 이런 초식동물의 고기를 풀밭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풀밭이 잘 자라야 고기도 쉽게 얻게 되므로 인간은 풀이 잘 자라게끔 불을 지르고 이를 통해 나무를 제거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 때문에 풀은 이런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초식동물의 강한 이빨과 불을 이겨내는 깊은 뿌리와 근두를 발달 시켜왔다. 그 덕에 풀은 불과 초식동물의 일차섭취에서 빠른 시간안에 회복한다.  

 전원적 음식사슬의 시대에서는 또 다른 풀들이 등장한다. 이 풀들은 영양분이 많은 씨를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과거 풀이 초식동물을 거쳐 인간에게 칼로리를 전달하는 사슬에서 이젠 직접 전달하는 것으로 사슬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풀은 대개 여러해살이인데 영양분이 많은 씨를 제공하는 풀들은 모든 영양을 씨에만 투입하기 위해 아예 한해살이로 변모한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풀과 인간의 연합이 바로 농경의 시작이다. 전원적 음식사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산업적 음식사슬의 이야기는 이 한해살이 풀들중 아메리카에 서식하던 독특한 종에서 시작한다. 아메리카가 원산지인지라 다른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늦어졌는데 이 녀석은 바로 옥수수다. 옥수수는 쌀이나 밀과는 다르게 씨앗들이 껍질에 여러겹으로 둘러쌓여 있어 아예 스스로 번식이 안되는 종이다. 껍질에 쌓인 옥수수를 땅헤 묻으면 동시에 알들이 발아하여 하나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모두 땅속에서 썩어버린다고 한다. 어찌보면 가장 인간에 의존하는 셈이다.

 옥수수는 다른 어떤 풀보다도 산업자본의 입맛에 알맞게 진화하여 선택받았다. 우선 옥수수가 곧고 단단한 줄기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는 단위면적에 가장 많은 개체를 재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옥수수는 화석연료로 만든 비료와 합성화학 약품에도 매우 잘 적응하여 산업적 농업에 알맞았다. 더욱 무서운 점은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부분이다. 농업회사들은 매번 옥수수 종자를 비싼 가격에 농가에 팔곤하는데, 이 씨앗을 심으면 옥수수로서 좋은 품질을 가진 잡종 1세대가 수확된다. 하지만 옥수수의 특성상 이 잡종1세대의 종자를 심어 수확한 잡종 2세대는 부모세대들이 갖고 있던 상품으로서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지 못하면 모습도 다르고 생산량도 적다. 이런 옥수수의 형질은 자연스레 대규모 다국적 농업회사에 막대한 지적재산권수익을 보장해주었고, 다른 소작농들이 그들에 종속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이처럼 옥수수는 산업자본의 입맛에 매우 잘 맞게 진화한 작물로 이로 인해 산업적 음식사슬에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의 먹는 양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공산품이나 사치품과는 달리 먹는 것을 파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때문에 산업자본은 옥수수를 이용해 다른 여러가지를 행한다. 옥수수로 치즈와 기름, 감자프라이를 만들고 심지어 건전지의 재료로 사용하는 방법까지 알아낸다. 또한 단맛을 내는 액상과당으로 변모하여 각종 음료수에도 사용되게 된다. 과거 코카콜라는 지금과 비교하면 매우 작은 병에 적은 용량으로 주로 유통되었는데 상대적으로 단가가 낮은 액상과당이 설탕을 대체하게 되자 코카콜라는 가격을 내리는 멍청한 짓 대신 대용량으로 매출규모를 오히려 늘리는 선택을 한다. 이게 1984년인데 우리나라에도 이로부터 몇년정도 지나서 1.5L들이 콜라가 팔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처럼 현대의 가공식품중 옥수수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현대인의 머리카락을  성분조사 하면 무려 60%이상이 옥수수에서 비롯한 물질로 판명된다. 특히 이 증상이 심한 북미인들을 책은 '두발 달린 콘칩'이라고 까지 말한다. 참고로 책에서 언급한 식품별 옥수수 함유비율은 다음과 같다.

(소다수100%, 밀크셰이크 78%, 셀러드드레싱65%, 치킨 너겟56%, 치즈버거52%, 프렌치프라이23%)

 하지만 산업적 음식사슬에서는 이로도 모자랐는지 옥수수를 사료로 쓰기 시작한다. 사실 앞서 말한 가공보다 사료로서의 쓰임이 먼저다. 이 기술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육식어종인 양식연어에게까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옥수수를 먹일정도라고 한다. 경악스런 사실이지만 일단 책에서 주로 문제삼는 동물은 소다. 소는 반추위를 갖고 있고 함께 공생하는 미생물들을 통해 풀에서 칼로리를 얻을 수 있게 진화한 놀라운 생물이다. 사람은 이런 소에게 비싼 풀대신 싸구려 옥수수를 먹이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소에게는 질병이 생겨난다. 우선 고창증이다. 옥수수에 전분이 많고 섬유질이 적다보니 소가 특유의 트림을 하지 못하게 된다. 가스배출이 일어나지 못해 더부룩하게 속에 가스게 차게되고 이게 폐를 압박하여 나타나는 질병이다. 다음은 산중독이다. 인간의 위와는 다르게 소의 위는 중성이다. 그런데 옥수수를 섭취하면 소의 위는 산성화한다. 이 때문에 소가 사료를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50일정도라고 한다. 소에게는 이외에도 옥수수로 사료를 바꾸어 빨리 덩치를 키우기 위해 젖을 빨리 떼는 고통이 주어지며, 좁은 사육환경등으로 갖가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로 인해 질병에 취약해지므로 소에게는 많은 종류의 약물과 항생제가 자연 처방된다. 인간이 최종소비자로서 이를 먹게 됨은 물론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본래 소고기에는 오메가 6지방산과 오메가 3지방산이 1:1로 균형을 이룬다. 하지만 옥수수를 먹고자란 소는 오메가 6지방산이 과다해지며 종국에는 10:1의 비정상적인 분포를 보이겐 된다. 원래 몸에 좋은 소고기가 심혈관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식품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산업적 음식사슬의 폐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인간이 화학적으로 질소고정에 성공한 이후 산업적 음식사슬의 농업에서는 대규모로 비료사용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농경은 과거 태양에너지에 의존하던 것에서 화석연료에 의존하는것으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게 된다. 책에서는 농업의 발견이 인간이 최초로 경험한 자연상태로부터의 타락이라면 화학비료의 발견은 두번째 타락이라는 말로 이런 세태를 극적으로 잘 비유한다. 농부들은 비료를 필요이상으로 사용하곤 하는데 결국 생산량에 대한 압박과 불안때문이다. 여분의 질소는 기화하여 산성비로 변모하거나 질산암모늄이 아산화 질소로 바뀌어 지구 온실가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잔류비료는 물에 녹아 아질산염이 되고 이게 인체에 들어갈 경우 헤모글로빈과 결합하여 산소부족현상을 만들어낸다. 이로 인해 심장에 선천적 질환을 갖는 청색아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산업적 음식사슬은 농부도 가만두질 않았다. 앞서 말한 지적재산권으로 인한 산업자본에의 종속은 물론이고, 옥수수농업만을 자발적으로 강요당하는 형국에 놓여있다. 대개 상품의 가격이 떨어지면 생산자는 공급량을 줄이는 선택을 하기 마련인데, 농부들은 오히려 생산을 늘려나간다. 다른 상품의 경우 가격이 떨어지면 판매량도 어느정도 늘기마련이나 인간이 먹는 농산물은 수요가 비탄력적이라 그렇지 못하다. 거기다 농부들의 농장가족경제는 계속되는 경영난을 타계하기 위해 어려 중장비투자로 상당부문 빚을 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항상 일정현금이 필요하기에 가격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대규모 생산을 유지해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처럼 산업적 음식 사슬은 그 종사자인 농부에게는 빚을, 소비자인 인간에게는 현대판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자연생태계에는 환경오염을, 가축들에게는 강제적 유전자 변형과 인간과 공생관계를 맺긴 했지만 동물로서 최소한의 동물다움을 누리지 못하는 비극적 삶을 강요하고 있다. 이득을 보는 주체는 오직 산업자본 뿐이다. 이런 산업적 음식사슬에게데 내세울게 하나 있긴 한데, 바로 저렴한 공급이다. 지금처럼 싼 달걀과 닭고기 등의 육류, 곡식가격은 산업적 자본하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엔 숨겨진 가격이 있다. 파산하지 않고 계속해서 농부가 산업적 자본에 종속되게 만드는 국가의 보조금, 환경오염으로 인한 비용, 그리고 비만등 건강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들이다. 이런 엄청난 비용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전원적 음식사슬에서 산출되는 유기농 음식이 오히려 저렴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전원적 음식사슬에서는 옥수수를 사료로 쓰는 것을 중단하고, 원래대로 풀을 사료로 쓰며 동물에게 풀을 뜯고 본능에 따라 노니는 동물다움의 자유를 허락한다. 때문에 열악한 환경과 질병을 막기 위한 항생제등의 남용도 없고 비료의 사용도 거의 없다. 이는 방목에 기반한다. 저자에 의하면 혹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방목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소가 뜯은 풀은 영양균형 회복을 위해 먹힌 양의 잎만큼 뿌리부분을 포기한다. 이 포기한 뿌리 부분은 흙속의 박테리아, 균류, 지렁이가 이용하여 갈색의 부식토로 바뀌어 토양의 건강함을 유지한다. 또한 죽은 뿌리가 있던 자리는 벌레, 공기, 물의 통로가 되어 표층을 형성하기도 한다.

 방목의 또 다른 이점은 환경의 건강함의 지표이기도 한 종 다양성을 증가시킨다는 점이다. 풀들사이의 경쟁과 종의 차이로 풀밭에는 다양한 길이의 풀들이 존재한다. 초식동물은 이중 당연히 눈에 띄는 긴풀을 우선적으로 먹기 마련이며 그 결과 작은 풀들이 햇빛에 노출되어 성장이 촉진되고 풀밭 전체에 닿는 햇빛의 총량도 증가한다. 풀들중 콩과 식물들은 토양에 질소를 고정하여 땅 아래로는 이웃풀에 영양을 공급하고 땅위로는 가축에 질소를 공급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전원적 음식사슬은 산업적 음식사슬에 비해 비용도 결국 더 저렴하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그 자체가 하나의 순환적 자연생태계가 된다. 또한 단위면적당 곡물과 가축의 생산량 역시 산업적 음식사슬의 생산량을 넘어선다.

 하지만 이처럼 완벽해 보이는 전원적 음식사슬에서도 저자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동물을 죽이는 일이었다. 전원적 음식사슬에서는 동물은 비교적 마음껏 동물다움을 누리며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했다. 옥수수 사료에 의한 질병도, 좁디 좁은 환경도 없는 아름다움이 있었지만 뒤편에서는 도축하는 날이면 하루에 수백마라의 동물이 도축된다.

 그래서 작가의 눈은 자연스레 채식주의로 향하며 마지막 음식사슬인 수렵채집사슬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채식주의자들의 육식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작가의 심기를 무척 어지럽힌다. 오랜 고민끝에 수렵채집사슬을 통한 직접 동물의 사냥과 그 동물의 해체 및 요리, 그리고 식물의 채집과정을 통해 작가는 이 답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인간 도덕에 대한 성찰이기도 한데, 저자가 보기엔 인간의 도덕이 종이 아닌 개체의 권리에 기초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인간과는 다르게 개체하나하나 보다는 종으로서 다루는 것이 더 중요한 동물에게 이 도덕이 적용되기가 용이치 않다. 또한 인간 도덕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처리하기 위해 만든 인간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의 법칙이 인간 사회에 제대로 된 지침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불완전한 도덕 체계는 자연세계에 대한 올바른 지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도덕에 기초한 채식 주장은 결국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인간이 동물을 인간처럼 다루어 그 개체로서의 권리를 챙기는 것 보다는 종전체로서 동물의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맞다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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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 니체 :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 지식인마을 37
김선희 지음 / 김영사 / 201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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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펜하우어는 진화론과 불교를 알았을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떠오른 질문이었다.

이 책은 지식인 마을 시리즈의 한 권이다. 총 40권인데 올초에 1권인 '진화론도 진화한다 다윈&페일리 편' 읽으며 그 존재를 알았다. 이 책은 37권이다. 꽤 괜찮은 프로젝트 같아서 책을 사고 싶었지만 보관할 공간도 없고 해서 직장내 도서로 다행히 구입이 되었다. 곧 직장을 옮길 예정이라 빨리 읽어야 하는데 읽어보니 역시 철학은 쉽지가 않았다. 다른책을 보며 무려 1주일 이상을 질질 잡고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어느정도 이해가 된 것 같지만 솔직히 니체는 아니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 밖에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쇼펜하우어의 유명한 인생론을 대학초년에 읽은 적이 있었다. 워낙 부정적이지만 그걸 부인할수 없어 우울하게 인상에 남았던 기억이 있다. 그 짧은 이해와 기억 탓에 그래도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자라고 하면 음 그래 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는 되었다.

 쇼펜하우어의 대표 저서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다.

 여기서 표상은 마음 또는 의식에 현전하는 것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칸트는 세계의 객관성을 부정하고 주관성을 강조하였는데 여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관찰하는 세계는 그 자체가 아닌 주관이 무척 들어간 표상인 것이며 인간종 전체가 같은 표상을 보는 것도 아니고 개개인마다 다른 표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간종과 개가 파악하는 세계는 감각기관의 차이로 완전 다른 표상을 갖고 있으며 같은 인간이라도 색맹인 사람과 아닌 사람의 표상은 완전히 다를수 밖에 없다.

 어쨌든 세계는 개개인의 주관에 따른 표상이고, 따라서 이 표상은 개개인의 이성적 인식이 아닌 직관에 의존한다. 그리고 직관이라는 것은 사람의 감각적 육체에 근거하는 것인데 이 육체를 지배하는 것이 바로 의지이다. 의지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직관적으로 관찰하고 파악하는 것이 표상이므로 표상은 곧 의지에 근거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표상들은 모두 의지의 객관화인 셈이다. 여기서부터 진화론 냄새가 좀 풀풀난다.

 의지는 세가지 동인을 갖고 있어 원인과 자극, 동기에 의해서 움직인다. 원인은 주로 무기물에 작용하고, 자극은 식물, 동기는 동물에 작용한다. 하지만 인간은 특별하니 3가지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  동물이지 인간에게 있어 의지의 근본은 두 가지이다. 바로 욕구의 충족인데 이는 모두 개체를 유지하는 것, 종족을 번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생존과 번식의 욕구가 의지인 셈인 것이다. 때문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이란 자연이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걸어놓은 마법의 지배하에 있다고 말했다는데 마치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를 말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이러한 의지로 인해 인간은 한없이 고통받는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것은 결핍된 행성에 동물로 태어난 이상 한계가 있는 것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결방법은 어처구니 없게도 정관이다. 세계는 의지와 표상의 산물이고 내가 이걸로 인한 고통과 번뇌는 모두 덧없는 것이라는 것을 한발 물러서서 파악하는 것이다. 마치 불교의 해탈같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 해결에서 더 나아가 동고란걸 주장한다. 자신이 이런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났음에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다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내가 해탈했어도 같이 사는 이웃이나 가족이 고통스럽다면 나의 해탈은 실로 무의미하고 이기적일수 밖에 없다. 이런점에서 주장하는 것이 다른사람의 고통도 이해하고 나와 같은 길로 이끌어가는 동고이다. 이 역시 상당히 불교적이다.

 결국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고통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불교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셈인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보기에......) 그래서인지 쇼펜하우어가 불교와 진화론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불교는 확실하진 않지만 알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진화론 같은 경우 다윈이 종의기원을 발표하기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나왔으므로 가능성이 없었다. 물론 다윈이 그 저서를 만들어놓고도 거의 10년이상을 썩힌 만큼 다윈과 친분이 있었다면 알았을수도 있겠지만 국적이 다른 만큼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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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6-22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윈이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1871년에 냈죠. 멘델이 유전법칙을 1865~1866년 사이 냈지요. 멘델의 유전 법칙을 알았다면 다윈이 그런 식으로 유전(부모 형질의 융합)을 말할 수 없었죠. 그 이론에 따르면 돌연변이 등을 설명할 수 없었다는. 물론 멘델의 법칙이 수학공식에 가까워 수학을 잘 몰랐던 다윈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란 추측도 있지만요^^;
많은 이론들을 보며 ‘그가 이걸 알았다면‘ 싶은 게 많아 저도 생각을 덧붙여 보았어요^^

닷슈 2017-06-22 16:3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