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참고] 스포일러 포함/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이번에 읽은 <허즈번드 시크릿>이란 책은 작년에 신간소개에서 알게 된 책이다. 난 귀가 얇은 편이라서, 이 책에 대한 호평을 보고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장르도 좋아하는 추리 소설이고그러다가 얼마 전 알라딘 중고 매장에 갔다가 이 책을 보고 무척 반가웠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소문대로 재미있었다. 지은이는 리안 모리아티라는 호주 사람이어서인지 소설의 배경도 호주 시드니다. 나의 신혼여행지.이 소설을 읽으면서 잠시 당시의 시드니가 떠오르기도 했다. 허즈번드 시크릿우리말로 번역하면 남편의 비밀도대체 어떤 비밀일런지그리고 그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급하게 책을 펼쳤다.

 

이 소설은 세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먼저, 세실리아의 가족. 세실리아는 세 딸을 둔 평범한 워킹 맘이다. 남편은 존 폴. 그들은 시드니에서 살고 있다. 큰 딸 에스터가 요즘 베를린 장벽에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세실리아 자신이 젊었을 때 베를린 여행을 갔다가 가지고 온 벽돌을 찾으러 다락방에 갔다가 우연히 남편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봉투에는 반드시 자신이 죽은 다음에 열어보라는 문구가 써 있었고, 그 문구로 인해 세실리아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 편지만 가득 찼다. 남편 존 폴은 미국 시카고로 출장 가 있었다. 그 편지를 열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던 세실리아는 남편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고 열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이 전화를 안부 전화를 걸어와서 그 편지 이야기를 했더니 긴 침묵.... 그리고 당황한 목소리로 존 폴은 아주 오래 전에 쓴 것이라면서, 제발 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세실리아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자신이 그렇게 치졸한 사람은 아니라면서하지만, 궁금증은 더욱 커졌고, 다른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 존 폴은 자신을 만나기 전에 우울증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 딸에게 가장 좋은 아빠이자 모범적인 남편이기도 했다. 그런 남편이 죽은 다음에 열어보라고 편지를 썼다? , 궁금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세실리아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그 편지의 내용이 무척 궁금해서 그 편지의 내용이 나오는 부분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소설을 읽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두번째 가족은 테스의 가족. 남편 윌과 여섯 살 아들 리엄과 같이 멜버른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테스의 사촌이자 절친인 펠리시티와 함께 광고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윌과 펠리시티가 폭탄선언을 했다. 윌과 펠리시티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선을 넘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함께그게 무슨 문제인가? 그들은 이미 사랑하고 있다는데테스는 강한 배신감에 충격을 받고그 자리에서 짐을 꾸려서 리엄과 함께 엄마가 있는 시드니로 날아가 버렸다.

세번째 가족은 레이첼의 가족. 그녀의 나이는 68세로 남편과 사별하고 시드니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근처 학교에서 가끔 비서 일을 하면서 생활했다. 그에게는 롭이라는 아들과 아들보다 잘 나가는 며느리 로렌, 그리고 두살배기 손자 제이콥이 있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사는 레이첼에게 손자 제이콥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레이첼은 좋은 시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며느리에게 간섭하지 않고, 잔소리도 안했다. 그런데, 로렌이 일하는 은행에서 로렌의 능력을 인정하여 뉴욕 발령을 하게 되었고, 식구 모두가 뉴욕으로 가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손자 제이콥도 함께레이첼의 유일한 낙이었던 제이콥을 못보다니레이첼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며느리를 미워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레이첼에게는 롭 말고 한 명의 아이가 더 있었다. 롭의 누나였던 자니자니는 열여덟 살 때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되었는데, 범인은 밝혀지지 않은 채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이미 수십년 전 일이지만, 자니가 죽은 이후 레이첼은 평생 마음의 짐을 얹고 살아갔다. 행복할 수도 없었다. 레이첼에게는 자니를 죽인 범인으로 의심하는 사람이 한명 있었다. 그 사람은 자니의 마지막 남자친구로 코비 휘트비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우연히도 레이첼이 일하는 학교에서 체육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아직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학생들 뿐만 아니라 엄마들한테도 인기가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런 코비를 레이첼은 학교에서 날마다 봐야 하니, 늘 어색해했고, 보면 볼수록 그가 범인이라는 확신이 점점 들었다.

 

테스는 리엄과 밤비행기를 타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테스의 엄마 루시는 발목이 부러져서 병환 중이다. 테스는 다친 엄마를 도와주기 위해서 왔다고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금방 눈치를 챘다. 그것도 윌과 펠리시티가 바람을 피웠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서테스는 다음날 리엄을 학교에 전학시키려고 갔다가 레이첼과도 만나고 체육 선생님 코비 휘트비를 만났다. 십 여 년 전 테스가 열아홉살 때 코비와 사귄 적이 있었다. 테스가 엄마 집에 있는데 윌과 필리시티로부터 연이어 전화가 와서 테스의 화만 더욱 부추겼다. 테스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펠리시티의 엄마 아빠, 즉 테스의 이모와 이모부가 와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테스는 여전히 화는 풀리지 않았다. 테스는 야밤에 기분 전환하려고 드라이브나 하겠다고 나섰다가 주유소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온 코비를 다시 만났다. 코비는 가볍게 차나 한잔 마시자는 제의를 했고, 테스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한편 레이첼은 방에서 혼자서 옛날 비디오를 보다가 지금까지 못 본, 자니가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영상에서 자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코비가 화를 내는 장면을 보았다. 레이첼은 흥분했다. 이 정도 장면이면 코비가 범인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레이첼 눈으로만 그렇게 보였다. 옛날부터 자니의 사고를 담당했던 경찰 로드니를 불렀는데로드니는 다시한번 코비는 범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했고, 하지만 레이첼이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비디오 테이프는 분석팀에 넘기겠다고 했다.

또 한편, 세실리아는 하루종일 남편의 편지 때문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그 동안의 남편의 행동을 하나하나 생각해보면서, 남편과 사랑을 나눈 지도 오래되었다는 것에 생각이 닿자, 남편이 바람을 피고 있다고 단정을 했다. 오늘 집에 들어가면 편지를 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런데 집에 오자 일정보다 며칠이나 일찍 집에 도착한 남편 존 폴을 볼 수 있었다. 편지 개봉은 잠시 뒤로 미루어야 했다. 그날밤 남편 존 폴과 세실리아는 간만에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잠에 빠져 있는데, 존 폴이 다락방에서 왔다갔다 하는 소리를 듣고 깼다. 그것도 폐쇄공포증으로 다락방에 한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존 폴이었는데세실리아는 당장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편지를 한 치 망설임 없이 뜯어 보았다. 더 이상 궁금증을 참을 수 없던 것이다. 도대체 그 편지가 뭐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 편지는 충격적인, 알아서는 안 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첫딸 에스터가 태어났을 때 쓴 편지존 폴 자신이 열여덟 살 때 자니를 죽였다는 내용이 있었다. 충격적이고 우발적인 사고였다면서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다락방에서 내려온 존 폴은 편지를 들고 있는 세실리아를 보았다. 그러면서 용서를 빌었다. 당시 자수하려고 했지만, 용기를 낼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일로 열여덟 살에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폐쇄공포증도 그때 생긴 것이라고 한다. 스스로 벌을 받으면서 생활하려고 했다고 한다. 이 편지를 읽고 난 이후 세실리아는 심한 갈등을 했다. 편지를 읽기 전에는 궁금증으로 온 마음이 가득 차 있었는데, 이제 심한 갈등으로 온 마음이 가득 차 있다. 남편 존 폴은 살인자이다. 당연히 그로 하여금 지금이라도 자수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세 딸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빠이자, 자신에게도 좋은 남편이었다. 세실리아는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구토도 하고, 불안 증세가 나타났다. 특히 자니의 엄마인 레이첼 부인 앞에서는 더욱 심한 증세를 보였다. 레이첼로부터 새로운 증거인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하였고, 그것을 경찰에게 건네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만 실신까지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레이첼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고, 그들은 자수를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최종 결정은 하지 못하고 계속 갈등을 하였다.

 

테스는 코비와 데이트를 했는데, 그만 너무 쉽게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옛날의 좋았던 감정이 되살아난 것도 있지만, 그보다 남편 윌에게 대한 배신감에 대한 보복성도 있었다. 그런데 한번 사랑을 나눈 이후로 테스는 코비에게 완전히 빠지고 말았다. 분명 자신도 불륜을 한 것이지만,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자신도 윌의 탈선을 알게 된 지 3일만에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다음날 다시 코비와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 리엄이 아빠는 언제 오냐고 물어볼 때는 뜨끔하기도 했다. 그런데, 펠리시티가 시드니로 찾아왔다. 테스가 떠난 이후로 윌과 아무 일도 없이 관계를 정리했고자신은 이제 호주를 떠나 유럽으로 가겠다고 했다. 테스는 오히려 코비와 사랑을 그리워하고 펠리시티와 윌의 부정이 계속될 것을 내심 바랬다. 하지만 겉으로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이다. 꼬일 대로 꼬이니 화가 날 수 밖에 없었다. 펠리시티가 가면서 곧 윌도 온다고 했다. 그제서야 코비와 데이트 약속이 생각이 나서, 테스는 코비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취소했다. 윌이 도착하자, 테스는 오히려 그의 부정을 부추기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테스 자신은 윌의 배신을 보복으로 불륜까지 저질렀는데, 윌은 펠리시티와 아무 일도 없이 끝냈다? 윌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완전히 입장이 반대가 되는 것이다. 테스는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아들 리엄을 생각해서 윌과 헤어질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사랑은 없고, 관계만 유지된 생활을 하겠지? 행복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테스가 코비에게 데이트를 취소하는 그 전화그 전화는 무지막지한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데이트 취소에 대해서 코비는 이해를 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차였다는 생각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레이첼이 운전중이었는데, 레이첼은 범인이 코비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코비가 차도를 걷고 있었다. 순간 사고사로 위장하여 그를 죽여서 자신의 딸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레이첼은 가속 페달을 밟았다. 목표는 코비하지만, 갑자기 차 앞에 세실리아의 셋째 딸 폴리가 나타났다. 세실리아의 셋째 딸 폴리는 코비 선생님을 보고 따라 온 것이었다. 폴리는 레이첼의 차에 치였다. 생명은 건졌지만, 오른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평생 불구자로 지내야 했다. 레이첼은 심한 죄책감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은 차도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위로했다. 심지어 폴리의 엄마 세실리아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레이첼은 자신에게 평상시에도 친절하게 대한 세실리아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이야기하고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사실 자니를 죽인 범인인 코비를 죽이려는 마음이 있어서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세실리아는 충격을 받았다. 자니를 죽인 것은 코비가 아니고 존 폴이였으니존 폴은 레이첼의 딸 자니를 죽이고, 레이첼은 존 폴의 딸 폴리를 불구자로 만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운명의 사슬로 묶여 있었다. 세실리아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그러면서 존 폴도 자수하기로 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은 레이첼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자상한 아빠인 존 폴이 자신의 딸 자니를 죽였다니레이첼은 갈등을 하지만, 결국 레이첼은 존 폴을 용서하기로 했다. 자신의 잘못도 있으니까 말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만약'이라는 가정과 우연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만약 이랬더니 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왜 존 폴은 자니를 죽였을까? 존 폴은 자니를 여자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자니는 존 폴이 아닌 코비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우발적으로 열여덝살 젊은 혈기를 가진  존 폴은 자니의 목을 졸랐다. 하지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손을 떼었다. 금방 이성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그 몇 초의 목조름으로 자니는 죽고 말았다. 사실 그날 자니는 병원 예약이 되어 있었다. 며칠 전 병원에서 마르판 증후군일지도 모른다면서 추가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었다. 마르판 증후군은 아주 사소한 충격으로도 호흡중단 등 충격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자니는 그때 그날 병원예약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리고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다. 존 폴은 그 일로 인해 평생을 죄책감으로 살았고, 그 일로 인해 자신의 딸은 불구가 된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우연들의 합들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소설이다. 오늘도 아주 황당한 여러 가지 우연들로 인해 만들어진 스트레스를 어깨 가득 안고 왔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우리 인생이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도 그 편이 나을 것이다.
어떤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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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인문학 - 인간과 더불어 사는 생명체에 대한 새로운 성찰
박병상 지음 / 이상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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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
눈물 없이 못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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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새는 단순히 운이 나빴던 걸까?

앞서 내려앉은 철새들이 평화롭게 내려갔을 뿐인데.

내려와 보기 웬 구더기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허기진 철새에게 구더기는 반가운 영양식임에 틀림없으니 허겁지겁 먹었을테고,

이윽고 구더기는 보툴리늄 균을 겨울철새에 전파시킬 수밖에 없었을 터.

정신은 멀쩡한데 슬그머니 온몸은 마비되더니 날 수가 없다.

공포에 질려 물에 떠 있을 수밖에 다른 방법도 없는데

창공에서 그 모습을 본 철새들이 연이어 내려온다.

그리고 구더기를 허겁지겁 훑어 먹는다.

구더기들은 유수지에 맥없이 떠 있는 

철새의 옆구리를 뚫고 꾸물꾸물 연실 빠져나온다.(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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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녹색평론 147>에서 인용한 <동물 인문학>의 글이다. 이 글을 보고 얼마나 울컥했는지... 겨울 철새들은 우리나라의 갯벌을 찾아 오는데, 인간들은 그들의 터전을 개발이라는 이유로 덮어버리고 그곳에 공장을 세웠다. 그래서 터전을 잃어버린 철새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더 남쪽으로 내려왔다. 먼저 온 친구들이 갯벌에 평화롭게 앉아 있어서 따라 내려왔고배가 고프니 허겁지겁 구더기를 먹었다. 하지만 먼저 온 친구들은 평화롭게 앉아 있던 것이 아니고, 날개가 마비되어 날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독에 중독된 구더기를 먹고 날개가 마비되어 날지 못하고 있었던 것. 다른 철새들도 내려와 같이 먹고 모두 중독이 되고그렇게 그들은 떼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알고 시민단체와 봉사하는 학생들이 내려앉지 말라고 손을 흔들고 깃발을 흔들어도, 배고픈 겨울 철새들은 내려와 앉아서 구더기를 먹고 또 죽어간다고 하니 더 안타깝다. 그것을 본 봉사하러 온 어린 학생들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날까. 모두 인간의 탐욕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생명체에 대해 전혀 배려를 하지 않는 인간들그들의 탐욕.

이 책의 저자 박병상이란 분은 오랫동안 도시와 생태 문제에 대해 연구하신 분이다. 지은이가 갯벌이 많았던 인천에서 태어난 것이 이런 연구를 오랫동안 하게 된 이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분이 인천에서 태어나서 이런 연구를 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인간들의 죄]

모든 존재는 이유가 있다. 그러면 인간의 존재는 무엇일까? 인간은 왜 지구에 왔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생각을 많이 했다. 인간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진화론과 창조론이 대립하고 있다. 만약 전지 전능한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지구에 와서 한 것이라고는 지구를 망치는 일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생물들, 인간보다 먼저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을 해치고 없애는 일도 했다. 도대체 도움이 되는 일은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생물들, 특히 동물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인간은 그들의 최대의 적, 공공의 적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법을 모르는 인간. 과연 인간을 고등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지능만 높았지, 결코 지혜롭지 못한 동물...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앞서 책에서 발췌한 철새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인간들에 의해 핍박을 받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해충이라고 부르는 벌레들도 억울할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폐해를 끼쳤다고 해충이라고 부르냐고... 모기, 파기, 바퀴.(바퀴 벌레라고 하는 것은 잘못 부르는 것이고 그냥 바퀴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모기는 큰 병을 옮기는 경우도 있지만도시에 서식하는 도시 모기는 그저 피 쪼금하고 가려움만 줄 뿐인데, 그들은 그 댓가로 생명을 내놓는다. 그리고 파리는 더럽고 병균을 옮긴다고 하는데, 사실 파리보다 사람들의 손으로 옮기는 병균이 훨씬 많다고 한다. 그리고 바퀴는 인간의 역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 억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저 혐오스러운 겉모습을 가졌다고 해충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들에게는 억울할 것이다. 그것도 그들보다 한참 후에 지구에 온 인간으로부터 말이다. 이 세상에 곤충과 벌레가 멸종하면 인간은 오래 못 가서 인류가 멸종하게 되지만, 인류가 멸종한다고 해서 곤충과 벌레가 멸종하지는 않는다는 지은이의 말에 벌레들이 더 지혜로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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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곤충을 해충이라 배척한다면 익충이라 반기는 곤충도 있을 테지.

그런 곤충들에게 사람은 어떻게 인식될까?

광대무변의 탐욕을 가진 생물은 아닐까?

지구촌에서 가장 늦게 동참해 생태계를 제멋대로 교란한 인간은 편견도 참 많다.

가치중립을 외치는 점잖은 곤충도감도 바퀴를 해충이라고

몰아붙이는데 뒤지지 않지만,

생태계에 잡초가 없듯이 해충도 있을 수 없다.

다 나름대로 질서를 가진 존재의 이유와 가치가 있다.

파리와 모기, 그리고 바퀴가 사람에게 질병을 옮긴다지만

사실 사람에게 질병을 옮기고 싶을 리 없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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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동물들]

인간은 참 다양한 방법으로 동물들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과도한 산업발전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그것으로 인해 환경변화에 취약한 동물들이 먼저 사라지고 있다. 물론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사람들도 곧 사라질 것이다. 아직 살만한지 자본주의 귀신에 홀려 여전히 모든 나라가 성장과 개발에 목을 메고 있으니 큰 걱정이다. 그리고 옛날부터 내려오던 천수답도 사라지면서 무자치, 드렁허리 등 들어보지 못한 동물들도 사라지고, 미꾸라지, 왕잠자리, 거머리 등 어린 시절만 해도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던 동물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산업 발전으로 돈 좀 벌었다고 인간들의 유희를 위해서 산을 황폐화시키는 골프장. 이 골프장에 의한 피해는 그야말로 막심하다. 다람쥐, 담비, 족제비 등 많은 동물들이 그들의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호수들... 그 쓸데없는 4대강으로 사라진 돈들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것으로 인해 사라진 동물들이다. 아빠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동물들인 흰수마자, 꼬치동자개, 누치, 꾸구리, 꺽지 등은 모두 이 4대강의 피해를 본 동물이라고 하는데, 비단 그 동물들뿐만은 아닐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4대강 사업으로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큰빗이끼벌레.. 그들의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데 그들은 무슨 죄가 있는가? 모두 인간의 탐욕으로 만들어진 일인 것인데...

 

[더불어 사는 세상]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인해 생선조차 맘놓고 먹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고, SNS에 자랑질하려고 애완용으로 해외로부터 사온 동물들의 피해. 그리고 그 동물들을 아무렇게 방치하거나, 우리의 산과 강에 불법으로 풀어놓아 우리나라 생태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자칫 사람한테도 피해를 줄 있다는 이야기 등등... 인간의 탐욕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말 읽을수록 인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웠던 적이 있나 싶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의 도움 없이 혼자만 살 수 없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지구 또한 여러 생명체들이 함께 있어야 살 수 있다. 영국의 제임스 러브록이라는 사람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구도 많은 다양한 생명체들로 인해 자신의 체온을 유지해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인간은 탐욕을 없애고,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면서 더불어 살아 가는 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은데,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것이 소수의견인 것 같아 안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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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제대로 순환해야 건강하다.

순환이 원할치 못하면 병에 걸리고, 멈추면 죽는다.

38억 년 동안 살아온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개체의 삶은 짧아도 개체들이 모인 종의 수명은 길듯,

종들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수명은 더욱 긴데,

순환되는 생태계는 38억 년 동안 지구를 건강하게 이끌고 있다.

영국의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라고 주장한다.

진화와 멸종을 반복하면서 표면의 수많은 생명체들이 숨 쉬고 먹고 배설한 이래,

지구는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면서 대기를 구성하는 원소의 균형을 변함없이 유지해 왔다며

그는 지구를 '대지의 여신', '가이아'라고 찬미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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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박병상님이 하는 세상이 올까 싶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 주변에 있는 동물들조차도 다르게 보였다. 그들 또한 존귀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그 생명을 보호받아야 한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지은이가 꿈꾸는 인간들과 동물들이 더불어 사는 그런 세상이 오길 기대한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개중에 미꾸리도 있었을 테지만
우리는 암갈색에 거무튀튀한 무늬가 지저분하게 배열된 녀석들을 통틀어 미꾸라지라 했다.
미꾸리는 분류학적으로 미꾸라지와 매우 가까울 뿐 아니라
사는 곳도 같아 전문가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렵다.
입주변 5쌍의 수염이 미꾸라지보다 짧고 비늘도 작고
몸도 날씬한 편이라지만 그 정도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성능 좋은 돋보기로 옆줄의 비늘을 세어 150개가 넘으면 미꾸리,
모자라면 미꾸라지라고 전문가는 판정할 것이다.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창자 호흡을 한다.
그래서 항문으로 공기방울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것을 보고 `밑이 구리다`했고, 그래서 미꾸리가 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인데,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창자 호흡에 많이 의존하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민물고기가 그렇듯, 강물이 따뜻해지는 5월마다 짝짓기에 들어가는 누치는
겨울이 유난히 길었던 2010년이 더욱 불안했을 터.
지구온난화 탓으로 번식 시기가 앞당겨지는데 얼음이 늦게 녹지 않았나.
봄이 짧아지리란 걸 직감해 모래와 자갈 바닥을 선점하려 애썼을 텐데, 아뿔싸!
어느 날 다가온 삽차 떼가 모래를 마구 퍼올리며 흙탕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수온이 찬 계절이라면 호흡량이 작아 견딜 만했는데,
따뜻해지면서 숨이 막혀왔을 것이다.
겨울밤에도 쉬지 않는 삽차들이 시멘트 가루가 따뜻해진 하천으로
독극물처럼 스며들자 그만 목숨을 내놓아야 했을지 모른다.

법적으로 허가된 외래동물이라도 입양하려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단순히 호기심이나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들여놓았다가 귀찮아 방치하거나 버리는 태도는
생명에 대한 폭력이고 외래동물의 개성을 무시하는 결례다.
유리상자 안에 꼼짝 못하고 던져주는 먹이만 받아먹는 외래 개구리,
몸 돌리기 비좁은 응접 테이블에 갇힌 악어,
에어컨 켜 놓은 거실 한 구석에 웅크린 채
투명한 상자를 두드리는 사람을 외면하는 카멜레온, 이구아나와 목도리도마뱀은
죽지 못해 살아갈 따름이다.
처지를 바꿔 그들의 복지를 생각해 보라.

바다 중에서 생태적 가치가 가장 높은 곳은 대륙붕이고,
대륙붕 중에서 단연 갯벌이다.
세계의 해양학자들은 면적으로는 5번째지만
생태적 가치로 볼 때는 최고라고 우리나라 갯벌의 가치를 평가했단다.
그도 그럴 게, 조수간만의 차가 큰 만큼 조간대가 드넓지 않은가.
서해안 갯벌은 해안에서 수 킬로미터로 펼쳐졌다.
그 넓은 조간대에 날아드는 도요새와 물떼새,
오리와 기러기 종류의 종 다양성은 철새를 연구하는 조류학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우리 갯벌은 반드시 보전해 주기를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람사 국제 보호 습지`에 해당하는 `세계 3대 철새 이동통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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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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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스포일러 포함/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아쉬움]

일년에 한편씩 영화를 본다는 생각으로 기욤 뮈소의 소설을 읽곤 한다. 그런데, 솔직히 점점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 같다. 일년에 한편씩 소설을 쓰는 것은 자신과의 약속인지, 출판사와 약속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에 구애 받지 말고 좀 더 재미있고 완성도 있는 소설을 썼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1991. 아서. 25. 레지던트 응급실 의사가 주인공이다. 그의 아버지는 같은 병원의 의사인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관계가 소원해져서 연락도 잘 안하고 살았다. 사실 친아버지가 아니다. 엄마가 바람을 피우고 몰래 난 아들이었고, 아버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날 찾아왔다. 아버지는 어떤 등대로 아서를 데리고 갔고, 유산이라면서 등대와 등대에 붙은 집을 그에게 줄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엄마를 용서하고 아서를 친아들로 생각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버지의 친아들과 친딸보다는 관계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등대를 준다고 하면서, 조건이 있다고 했다. 첫째 절대로 등대를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라는 것. 둘째는 등대의 철문을 막아 쌓은 담을 절대로 헐지 말 것. 이것은 아서의 할아버지가 아버지한테 시킨 것이라고 했다. 아서의 할아버지는 1954년에 실종되었다가 1958년에 한번 나타나셨다고 한다. 그때 문을 절대로 열지 말고 벽돌로 막아놓으라고 이야기하셨다는데, 아버지는 그 말대로 했고, 그 이후로 할아버지는 다시 실종되었다고 한다.

아서는 궁금증에 휩싸였다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길래 그 철문을 열지 말라고 하신 걸까. 등대를 조사해 보았다. 할아버지 이전의 등대 주인을 추적해보았더니 그분도 실종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종되었다가 몇 년 뒤에 그를 봤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그 또한 연락이 두절되었다. 할아버지와 그 이전 주인의 이상한 공통점은 아서에게 더욱 큰 궁금증으로 만들었고, 결국 아서는 벽들을 허물고 철문을 열기로 했다. 궁금증에 결국 지고 만 것이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벽을 허물고 철문을 뜯어내고 그 창고 같은 곳에 들어갔는데, 기대와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철문이 닫히고 찬바람이 불더니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뉴욕의 어느 성당에 사람들 사이였다. 사람들이 신고해서 그는 경찰서에 갇히게 되었고,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이 1992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년이 휙 지나갔다. 더 이상한 것은 그 일년 동안의 일들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 등대의 창고의 그 무엇인가가 그를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했고,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온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다. 아버지한테 대충 그간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혹시 모르니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사실 할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신다고 했다. 정신병원에 계시지만 말이다. 그는 경찰서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고,  집 앞에서 다시 정신을 잃었다.

 

[시간을 점프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여자 혼자 사는 집의 욕실이었고, 그 여자는 샤워 중이었다. 상황이 대략난감이다. 아서를 본 여자는 놀라서 소리지르고 아서는 또 경찰에 잡히기 싫어서 도망을 쳤는데그만 그 집에 지갑을 흘리고 와서, 나중에 몰래 그 집에 들어갔다. 그 집의 주인은 이미 외출하고 난 뒤였다. 집주인의 이름은 리자. 모델과 배우를 꿈꾸는 20살 아가씨였다. 그런데,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또다시 일년이 지난 1993년이었다. 무슨 병에 걸린 걸까? 도대체 어찌 된 것인가? 그 동안 기욤 뮈소의 소설을 즐겨 읽는 이라면 그다지 놀라지 않고, 눈치 챘을 것이다. 기욤 뮈소의 소설에서 타임 슬립은 자주 등장하는 소재니까 말이다. 이번 소설에서는 1년 미래로 시간 점프를 하는 그런 소설이라고, 다들 눈치를 챘을 것이다. 아버지의 전화가 기억이 나서 아서는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아버지는 면회 온 아서에게 자신이 등대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서 자신을 이 병원에서 빼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정신병원 탈출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아서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서 무턱대고 그 리자라는 여자를 찾아갔다. 리자는 자신의 집에서 본 그 남자가 아서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그저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많은 남자들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리자는 거절했지만, 아서는 리자가 빚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돈을 주겠다고 했다. 리자는 아서의 계획에 동참을 했다. 사실 아서가 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이다. 암튼 그들은 할아버지의 작전에 따라 구급차를 운전하고 정신병원으로 갔고, 그 시간에 맞게 할아버지는 심장마비가 온 것처럼 연기를 했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구출에 성공을 했다하지만 아서는 이내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1994 5월 어느 방에서 깨어났는데어떤 여자가 자살을 시도하고 욕실에 정신을 잃은 채 있었다. 리자였다. 아서는 리자를 데리고 병원에 데려가 주었고, 간신히 생명은 구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한테 연락을 해서 만났고 할아버지는 비밀을 아서에게 알려 주었다. 말도 안되는 황당한 비밀... 그 등대 창고에 들어가면 시간의 늪에 걸린다는 것이다. 24번의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데, 1년씩 시간을 점프하게 되고그곳에 머무는 시간은 24시간이라고 한다. 그렇게 24시간씩 24번의 시간여행을 하면 24년이 지나버린다는 것이다. 그 시간여행을 멈추는 방법은 없고, 24번이 끝나야 그 시간여행이 멈춘다고 한다. 이건 저주다. 24시간씩 24번이면 24일이다. 24일이 24년이라니...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런데 나쁜 소식은 더 있다.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여인에게 잘 설명을 했고, 24번 시간을 여행을 하면서도 사랑을 지속했다고 한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일년에 하루 그것도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남자를 사랑하는 게 힘들었을 텐데… 그것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24번의 시간여행을 마치고 이젠 행복한 시간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갔는데 그녀는 할아버지를 처음 보는 사람 취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여인과 낳은 아이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였다. 할아버지는 충격으로 그 여인에게 자신을 모르냐고 다그쳤고그러다가 여인이 찻길로 쓰러졌고, 때마침 온 차에 치여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거의 실성상태였고, 그의 이야기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당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사랑한 여인은 어디에 있는가? 또다른 평행 우주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황당한 결과가 기다리고… ]

일 년 뒤 아서는 리자를 찾아갔고, 그들은 이내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24시간이 지나자 아서는 사라졌다.  자신의 정체를 이야기한지 못한 채. 그리고 리자의 기준으로 일년 뒤에 아서가 나타났다. 이미 다른 남자친구도 있었고, 아서를 외면했다. 아서는 할아버지를 만났지만, 24시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그는 사라졌다. 2001 WTC 무너질 때 근처에 있던 리자와 아서는 다시 만났는데, 그때 그들은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아서는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고 리자는 그를 이해했다. 할아버지의 그 여인처럼… 그들은 이후 몇 년의 시간여행 동안 계속 만나고 벤자민과 소피아를 낳았다. 하지만 그들 사이는 또 멀어졌다. 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만한 한다. 더욱이 리자는 유명 배우가 되어 바쁜 스케줄로 아서를 만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 벤자민도 아서의 24번의 시간여행이 끝나면 자신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들었다면서 아서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 24번의 시간여행의 끝이 가까이 오면서 아서는 시간여행이 끝나고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뿐이었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할아버지도 이젠 돌아가시고 드디어 24번의 시간 여행이 끝이 났다. 과연, 할아버지와 같은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약간은 황당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반전이라고 생각하고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랑 소설에 판타지 요소를 넣는 기욤 뮈소...이번에는 소설 전체를 또 다른 소설로 만들어 버렸다 ... , 그런데 신선하지가 않다. 기욤 뮈소의 소설을 많이 읽은 이라면 예상 결말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더 이상의 줄거리를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 심한 스포일러일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이야기는 여기에서 줄인다.

한가지 기욤 뮈소에게 바램이 있다면, 일년에 꼭 한편이 아니고, 몇 년이 걸리더라도, 예전의 필력을 되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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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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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있음.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이 책은 알라딘 인터넷 서점의 책 전용 SNS인 북플이라는 곳에서 알게 된 책이다. 법정 스님을 좋아해서 책에 눈이 바로 갔다. 법정 스님이 떠나신 봄이 벌써 여섯 해 전이다세월이 참 빠르다.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는 그가 늘 자리잡고 있다. 그런 법정 스님이 성철 스님과 나눈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설전>이라는 책이다. 부제가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라고 되어 있다.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는 말씀으로 유명하신데, 나는 성철 스님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  성철 스님이 입적하신 것이 1993년이었다고 하니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책과 담을 쌓고 지내던 시절이라서, 그 분의 책을 접하지 못한 듯성철 스님이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 책을 통해서 그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어 좋았다. 이 책은 부제에서 말한 것처럼 법정 스님이 묻고, 성철 스님이 답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법정 스님보다 성철 스님의 생각이 더욱 많이 드러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으로 치면 대담이나 토크콘서트를 책으로 엮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묻고 답하는 경우, 답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것이 맞지만, 좋은 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좋은 질문이다. 이 책은 책의 뒷표지에 적힌 것처럼 현문과 현답들로 이루어져 있다. 책 두께는 그리 두껍지 않다. 그리고 책에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자연의 사진들이 많이 들어있다. 그래서 금방 읽을 수 있지만, 그 적은 양이 담고 있는 슬기와 교양은 깊은 심금을 울린다.

 

[눈싸움]

책 제목 설전. 설전이라고 하면 말로 옳고 그름을 다툰다는 설전(舌戰)이 바로 생각이 난다. <썰전>이라는 TV 프로그램도 생각이 나고그런데 책 제목에 옆에 적혀 있는 한자를 보니 눈 설(), 싸울 전(). 이라고 써있다. 우리말로 해석해보면 눈싸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눈이 온 겨울이면 눈을 뭉쳐서 던지면서 놀던 그 눈싸움. 책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후반부의 대화 주에 두 분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많은 시주들 앞에서 이루어진 대화가 있다. 다른 제자들은 성철 스님 앞에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는데, 법정 스님은 성철 스님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꼬치꼬치 캐묻기도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좀더 진면목의 답을 이끌어내신 것이다. 이렇듯 두 분이 서로 주고 받는 말씀이 마치 즐거운 눈싸움 같았기 때문에 제목을 눈싸움이라는 뜻의 <설전(雪戰)>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나중에 책 뒷날개를 보니 아래와 같이 책제목이 <설전(雪戰)>인 이유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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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수도자의 자세를 눈이라는 매개로 형상화 하는 한편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설전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과 인연을 표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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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불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불교에 관한 이야기. "불교란 무엇입니까?", "타 종교와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등 처음 불교를 접하는 사람들이 가질 만한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질문들도 있고, 중도 이론이나 중국 선종에 관한 질문 등 비교적 불교를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낯선 질문과 답변도 오가곤 했다. 아무래도 두 분이 불교 신도들 앞에서 나눈 대화들도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예전에 불교에 관련된 책들을 좀 접해서 그리 낯설지 않게 읽으면서, 오랜만에 불교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새기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그런데 이 책을 법정 스님이 생전에 쓰신 수필집처럼 생각하고 책을 편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의 대화의 또 다른 주제는 우리네 삶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관한 질문들도 오가곤 했다. 많은 대화 중에 요즘 우리나라 언론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내용과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특히 공감을 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우리나라 언론의 편향성은 이제 당연한 것으로 생각들 하고 있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 중에도 주요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분명 다른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대안 언론을 찾아 듣는 이들이 더 많다.

객관성이 결여되고 주관성이 깊이 개입한 기사들... 그런 언론들을 향해 성철 스님이 주시는 깊은 가르침 같은 글이 실려 있었다. 그들이 들을 리 없겠지만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졌으니, 그들은 더욱 편향적이 될까 싶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더욱 편향적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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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언론이든지 사회의 공기라는 것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한다는 근본정신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이용물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 곤란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춘추필봉(春秋筆鋒

말 그대로 시퍼런 필봉을 세워 나가야만 사회에 공헌을 하고

사회에 대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언론이 근본정신을 버린다면 사회와 인류에 해를 주지 않겠어요?

지금도 잘하고 있겠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한 필봉으로

춘추필봉을 발휘하면 사회를 잘 선도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살릴 수 있겠지요.

=====================================

...

그리고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을 다시 읽고 발췌해 보았다. 이 쉬운 지도자의 덕목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나마 이번 선거에서 그런 지도자들에게 백성들이 회초리를 들어준 것을 보고, 아직 우리 백성들의 힘은 세다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희망을 보았다.

=====================================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고 하면 근본 전제가 사리사욕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라면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요.

정치하는 사람이 사리사욕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 그것은 자살이 되고 맙니다.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면 그 단체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죠.

그렇게 하려면 사리사욕에서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면 그 단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것을 버려야만 국가도 살고 민족도 살고 단체도 살고 자기 자신도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정치를 결국엔 국가와 민족에 큰 손해를 줄 뿐만 아니라

자기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지도자의 자격이란 참으로 사리사욕을 완전히 버린 

무아(無我)사상에서 전체를 위해 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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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어떤 언론이든지 사회의 공기라는 것,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한다는 근본정신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이용물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 곤란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춘추필봉(春秋筆鋒)
말 그대로 시퍼런 필봉을 세워 나가야만 사회에 공헌을 하고
사회에 대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언론이 근본정신을 버린다면 사회와 인류에 해를 주지 않겠어요?
지금도 잘하고 있겠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한 필봉으로
춘추필봉을 발휘하면 사회를 잘 선도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살릴 수 있겠지요.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고 하면 근본 전제가 사리사욕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라면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요.
정치하는 사람이 사리사욕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 그것은 자살이 되고 맙니다.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면 그 단체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죠.
그렇게 하려면 사리사욕에서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면 그 단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것을 버려야만 국가도 살고 민족도 살고 단체도 살고 자기 자신도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정치를 결국엔 국가와 민족에 큰 손해를 줄 뿐만 아니라
자기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지도자의 자격이란 참으로 사리사욕을 완전히 버린
무아(無我)사상에서 전체를 위해 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30쪽
내가 자꾸 깨친다 깨친다 하는 것은 사람이 그런 깨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다면 만날 노력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오. 땅 밑에 금이 많이 있는 줄 알면,
거기에 금이 꼭 있을 것 같아서 땅을 파면 금이 나오지만,
암만 파도 금이 없을 것 같으면 헛일이지 않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중생에게 부처님과 같은 그런 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깨치는 공부를 해도 헛일입니다.
문제는 그 광맥이 사람 사람 마다에 다 있나 없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런 무진장한 대광맥,
금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진장의 대광맥이
사람 사람 가슴속에 다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이것을 개발하고 이것을 소개한 것이 불교의 근본 생명선입니다.

46쪽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모든 생각을 쉬어 버리는 것,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모든 구하는 생각, 이것이 마음에 들어 있으면 아무리 섭생을 잘해도 소용이 없거든요.
그런 구하는 생각을 어느 정도 떨쳐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쉬고 사는 이것이 건강에 좀 도움이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85쪽
흔히 `용서를 하자. 용서를 하자`고 하는데, 불교의 근본사상에 용서란 없습니다.
용서란 내가 잘하고 남이 잘못됐다는 것인데,
모든 것의 책임은 나한테 있는 것이며,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남의 인격을 근본적으로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설사 어떤 사람이 칼로 나를 찌른다 할지라도
찌르게 한 것의 근본 책임은 나한테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참회`를 해야지 저 사람을 `용서`하다니요.
그래서 우리 불교사전에서 `용서`라는 말을 빼야 한다고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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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법칙 - 수학으로 배우는 법칙 시리즈 2
Transnational College of LEX 지음, 강현정 옮김, 곽영직 감수 / Gbrain(지브레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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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있음.

                  

[히포 패밀리와 트래캘리]

또 양자역학에 대한 책을 집어 들었다. 작년부터 양자역학을 이해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양자역학에 대한 책들을 읽어보고 있다. 이번에는 읽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일본의 히포 패밀리 내에 Transnational College of Lex라는 교육기관에서 그들 스스로 공부하고 이해한 후에 낸 책이기 때문이다. Transnational College of Lex에서 펴낸 책 중에 몇 달 전에 읽은 "수학으로 배우는 파동의 법칙"란 너무 좋게 봤었다. 이 책을 통해서 푸리에 급수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설명들도 어렵지 않게 되어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래서 <수학으로 배우는 양자역학의 법칙>도 쉽게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읽은 <수학으로 배우는 양자역학의 법칙>에는 히포 패밀리에 관한 설명도 더 있었다. 히포 패밀리는 다른 나라의 언어들을 자연 습득으로 배우는 그런 모임이라고 한다. 자연 습득이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이가 언어를 배울 때 따로 그 언어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아는 단어들을 조금씩 조금씩 익혀서 배워 나가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도 낯선 언어에 대한 노출을 많이 해서, 처음에는 아무 뜻도 없이 발음만 비슷하게 하면서 나중에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게 그들은 7개국의 말들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히포 패밀리에 일종의 스터디 모임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Transnational College of Lex이고, 그들은 줄여서 '트래칼리'라고 부른다. 그들이 처음 만나서 공부한 것이 바로 푸리에 급수였고, 그 공부를 마치고, 두번째로 공부하기로 결정한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그들은 수식이라는 것도 일종의 언어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언어를 습득하는 방식으로 수식을 이해하고 그 수식을 통해 양자역학이 무엇이란 것을 알게 된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10주 동안 양자역학에 대한 공부를 계획했고, 그 전에 양자역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하이젠베르크가 쓴 <부분과 전체>라는 책을 먼저 읽었다고 한다.

쉽지는 않았다. 책의 첫부분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유치한 듯한 그림까지 섞어가며 쉽게 쓰여 있었고, 상식으로 알고 있던 내용들이 나와서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책의 중간부분을 넘어가면서, 온통 알 수 없는 수식들로 어지러웠다. 아래 수식과 같은 페이지가 연속으로 나왔다. ,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책은 양자역학을 이해시켜주는 책이라기보다 증명하는 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을 연구한  과학자들이 양자역학을 설명한 수식들이 있는데, 그들이 계산한 수식을 하나하나 따라가 보는 것이다.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연필을 들고 이 책에 나와 있는 수식을 하나하나 따라 써 내려가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처럼 눈으로 읽어 내려간다면, 그 수식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전에 읽은 <파동의 법칙>의 경우는 고등학교 때운 수학에서 볼 수 있는 수식들이 많았지만, 이번에 읽은 <양자역학의 법칙>에는 수식 자체가 어려웠다. 그래도 이 책은 양자역학이 왜 생겨났으며,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연구했다는 내용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복잡한 수식은 건성건성 건너뛰고, 글만 읽어도 나쁘지 않았다. 이번 리뷰에서는 그런 양자역학에 대한 흐름만 정리해보았다.

이 책의 좋은 특징 중 하나는 반복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한 챕터를 시작하기 전에 그때까지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 준다. 그러면 복잡한 수식으로 잃어버렸던 맥을 다시 찾아서 다시 한번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내 다시 출현한 복잡한 수식 때문에 한숨을 내쉬지만 말이다. 좀 아쉬운 점은... 수식을 대충대충 봤는데도, 수식에서 명백한 오류가 있었다는 점이다. 본 것만 두어 군데인데, 꼼꼼히 수식을 검토해 보았다면 그보다 더 많은 오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수식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읽길 바란다.

 

[빛이란]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빛이다. 먼저 과학자들이 빛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부터 살펴보자물질을 이루는 최소 단위는 무엇일까? 고대 돌턴이라는 사람은 그것을 원자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 시절에 원자를 볼 수는 없었다. 근대에 들어서서 돌턴이 이야기한 것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많은 원자들이 발견되어 주기율표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물리학에서는 원자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자, 광자 등 원자보다 더 작은 물질을 이루는 최소 단위가 있을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입자들을 양자(量子)라고 했다. 그런 양자들은 너무 작아서 보이질 않았다보이지는 않아도 그 양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바로 양자역학이다양자들이 자연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수식으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그런데 빛의 정체는 무엇일까? 빛은 19세기까지만 해도 파동이라고 생각했다. 영이라는 사람이 실험을 통해 빛이 간섭한다는 것을 밝혔다. 간섭이라는 것은 파동의 성질이기 때문에 영의 실험을 통해 빛은 파동이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런데, 파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흑체 복사다. 태양의 빛이 지구에 닿으면 지구는 따뜻해진다. 그것은 빛이 열을 전달한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파동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전달 물질이 있어야 열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빛이 열을 복사하는 것을 흑체 복사라고 한다. 고등학교 때 과학교과서에 들어본 적이 있는 플랑크라는 과학자가 그래서 실험을 했다. 진공의 쇠상자에 온도를 높이면 빛이 나오는데, 온도에 따라 빛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양한 온도는 다양한 파동의 빛이 나온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온도와 빛의 파동과의 관계를 그린 그래프를 플랑크 곡선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곡선을 수식으로 표현하려고 했는데고전역학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빛의 에너지가 불연속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파동이라면 에너지가 불연속일 수가 없다... 여기서 고전역학이라고 하면 뉴턴의 역학과 거기에서 파생된 역학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자연의 모든 현상은 고전역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플랑크는 그 곡선의 식을 구해서 플랑크 곡선이라고 이름을 지었고, 논문에 발표하면서도 뉴턴 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문구를 추가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의 고전역학은 절대진리와도 같았다.

그런데 그런 고정관념을 깨는 천재가 등장하였으니, 바로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의 논문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빛은 파동이 아니라 입자라고 생각했다. 혁신적인 생각이란다. 선입견을 깨는 그런 생각. 그렇게 빛이 입자라는 가설을 내세웠는데 바로 광양자 가설이다. 이것이 1905년이었다. 참고로 아인슈타인은 1905년 한 해에 광양자 가설뿐만 아니라 특수상대성이론, 브라운 운동 등 3개의 위대한 논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는 외계인이거나 천재임에 틀림없다. 빛이 입자라고 근거가 되는 대표적인 것은 바로 광전효과와 콤프턴 효과란 것이 있다. 광전효과는 금속에 진동수가 큰 빛을 쬐면 전자가 튕겨나가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파동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고, 입자여야만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콤프턴 효과는 빛 입자가 서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x선은 충돌 후 산란되어 진동수가 작아진다... 진동수가 작아진다는 것은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이야기인데, 파동이라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현상을 운동량으로 증명해야 하는데운동량은 속도와 질량의 곱으로 구할 수 있다. 그런데 빛의 질량이 있나? 없다... 빛의 질량은 0이다. 하지만 질량이 없어도 에너지와 속도를 알면 운동량을 구할 수 있는데, 그렇게 아인슈타인은 빛의 운동량을 구했다고 한다.

빛이 입자를 증명하는 실험 중에 안개상자 실험이라는 것도 있다. 콤프턴 실험에서는 전자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작은 물방울을 모아 놓은 안개상자에 전자를 쏘게 되면 전가가 지나가는 모습이 물방울의 흔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 빛은 입자라는 것이다. 정말 빛은 신기한 것이다.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밝혀낸 빛의 성질들은 정말 확실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알아내지 못한 빛의 성질이 또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양자역학의 탄생]

원자에 열을 쪼이면 빛이 난다그것을 프리즘으로 보게 되면 불연속선으로 보인다. 그 모양의 형태는 원자마다 다르다. 이것은 예전에 학창시절 배웠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왜 선들이 불연속적으로 나타날 것인가? 그 선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발머라는 수학교사가 취미로 그 선들의 관계식을 구했다고 한다. 그냥 불연속적인 선들로 보였는데, 특정 수식으로 그 선들과의 관계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 선들 사이에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톰슨이라는 과학자도 이 금속에서 나타나는 불연속 선 스펙트럼에 대해 연구를 했다. 그래서 전자의 존재를 알아냈다. 전자의 질량은 원자의 1/2000 이고, (-)전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한다. 그럼 전자는 어떻게 생겼지톰슨은 전자가 수박씨처럼 위치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원자가 수박이면 수박씨는 전자가 되는 것이다. 톰슨의 제자 러더퍼드는 α산란실험으로 톰슨모델을 증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α파가 2만개 중에 1개꼴로 금속을 통과하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톰슨모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전자는 원자핵 주변에 있다고 생각을 했다.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인데, 전자는 (-)전하를 띠고 있으니, 원자핵은 (+)전하를 띠어야 했다. 그러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전하와 (+)전하는 전자기력에 의해 서로 끌어당긴다. 그런 원자핵 주변의 전자는 이내 원자핵과 붙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인 전자가 원자핵을 주변을 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원심력과 전자기력이 같기 때문에 일정궤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모순이 있었다. 원운동은 가속도운동이고, 고전역학 중에 맥스웰의 파동역학에 의하면 가속도 운동을 하는 것은 에너지가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 시간이 흐르면 원자력이 전자기력보다 작아져야 하고그로 인해 다시 전자와 원자핵이 서로 붙어야 한다고 했다. 그 밖에 전자의 움직임을 고전 역학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빛도 그렇고, 전자도 그렇고... 이런 작은 입자들의 미시적 세계의 현상들은 고전 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 작은 입자들의 현상을 설명할 새로운 역학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전자 궤도를 버려라]

닐스 보어란 과학자가 있었다. 원자 모형을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의 이론, 즉 입자로 설명하려고 했다. 고전 역학은 아예 적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양자역학의 규칙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먼저 원자의 선 스펙트럼이 불연속적인 에너지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자가 몇 개의 에너지 준위를 가지고 있는 궤도를 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전자가 자신의 궤도를 돌고 있는 것은 정상상태라고 하고 이때는 빛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자의 에너지 준위가 달라질 때, 즉 에너지가 변할 때 빛이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되자 선 스펙트럼의 원자 구조를 모두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좀더 보충해서 설명하면, 궤도가 높은 곳의 전자들은 궤도간 간격이 아주 좁게 되어 불연속이 아니라 연속처럼 동작한다고 했다. 그렇게 궤도가 높은 곳의 전자들의 움직임은 전자기력과 원심력이 같다고 하는 고전역학으로 설명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높은 궤도의 전자의 경우 고전역학을 이용하여 전자의 진동수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자의 궤도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닐스 보어는 원자의 궤도 구하는 것은 뒤로 하고, 선 스펙트럼의 빛의 세기나 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보어가 구한 것은 진동수 구하는 방법까지였다.

닐스 보어의 제자 중에 하이젠베르크라는 과학자가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전초열이라는 병에 걸려서 헬골란트 섬으로 휴가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쉬면서 연구를 했다고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고전역학을 궤도가 높은 전자뿐만 아니라 낮은 전자도 고전역학을 이용해서 설명하려고 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변칙이었다. 그런 변칙을 써서 그는 보어가 하지 못한 선 스펙트럼의 에너지 크기를 구했다. 하지만 그도 전자의 궤도는 밝혀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궤도를 버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자가 방출하는 빛으로 진동수와 진폭을 구할 수 있다면서, 굳이 궤도를 밝혀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물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 있어야 물리학이라고 하면서, 하이젠베르크의 물리를 부인했다. 아인슈타인은 관측이 가능한 것만이 물리학이라고 했다.

 

[전자의 정체는…]

루이 드브로이란 사람이 있었다. 아마추어 과학자로 독학으로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전자가 입자가 아닌 파동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아인슈타인이 빛이 파동이 아닌 입자라고 생각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전자를 파동으로 생각해서 계산했더니 양자조건을 만족하는 것을 밝혀냈다. 그래서 그는 전자는 파동이라고 논문을 발표했다. 아인슈타인도 이 논문에 흥미를 느끼고, 그 논문을 슈뢰딩거에게 전달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슈뢰딩거는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한다. 슈뢰딩거는 전자의 파동방정식을 이끌어냈다전자가 파동임을 수식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 전자의 파동방정식을 유도해내는 식이 책이 쭉 나와 있지만눈으로만 읽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식이다. 그렇다고 손으로 천천히 따라 적는다고 이해할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려운 수식의 연속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게 하는 페이지가 지나면 결국 슈뢰딩거가 이룬 것은 전자를 파동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바라던 그것.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여전히 슈뢰딩거의 전자는 약점들이 있었다. 그가 구한 파동방정식은 전자가 한 개인 경우를 구한 것이었다. 내가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전자 2개를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설명하려면 6차원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전자 3개면 9차원, 더 많은 전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한차원이 필요하게 된다고 했다. 이것은 설명하기 어려웠다. 다시 전자의 이미지가 사라졌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막스 보른이라는 사람이다.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확률로 해석했다.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을 파동이 아닌 입자들의 개수로 바꿔서 설명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이중슬릿 실험. 그것은 파동을 설명하는 실험이었다. 그런데 전자의 입자로 바꿔서 생각하고 이중슬립을 통과한 전자의 개수들을 세어보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파동으로 나타난 간섭의 세기에 비례하여 전자의 개수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확률로 생각하니 다시 이미지가 돌아왔다고 했다슈뢰딩거 방정식은 한 개의 전자만 설명이 가능했는데, 보른의 확률해석은 전자가 많아도 3차원의 공간에서 설명이 되었다. 그런데 전자를 한개만 쏘면 어떻게 될까? 이중슬릿에 전자를 한 개만 쏘면 전자는 둘 중에 하나로 들어오게 된다. 각각 확률은 반반씩이다. 그리고 이 경우는 간섭 현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가 우리가 관측을 하게 되면 전자는 영 딴 놈이 된다. 이를 확률파동이 수축한다고 하는데, 몇 번을 읽어봐도 이해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결국 양자역학에 관한 책을 보다 보면 가장 끝에서 출현하는 불확정성 원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전자의 불확정성이란, 위치를 정확하게 보려고 하면 운동량을 알 수 없고, 운동량을 정확하게 알려고 하면, 전자의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전자는 눈으로 봤을 때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불확정성 원리를 하이젠베르크와 보어가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전자는 관측하지 않을 때는 파동처럼, 관측될 때는 입자처럼 움직인다" 라고... 그리고 이때 파동은 실제 물질의 파동이 아니라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주장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물리학이라는 것은 명백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니까 말이다. 양자역학에 대한 불확정성 원리를 1927년에 주장하였는데그 이후에 이것을 뒤집는 이론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은 옳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고양자역학은 현대 과학에서 아주 중요한 분야라고 한다. 그러니까 누군가 전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아직까지는 전자는 관측하지 않을 때는 파동처럼, 관측될 때는 입자처럼 움직인다라고 대답하며 된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핵심이다.

아쉽게도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아직 양자역학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모했다. 전에 다른 책에서 양자역학을 가장 쉽게 설명한 사람이 리처드 파인만이라고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이제 파인만이 설명한 양자역학을 찾아봐야 하나.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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