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레미 말랭그레 그림,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 정리 / 시대의창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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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노암 촘스키다. 신자유주의와 권력 비판에 있어서 이 사람을 빼놓을 수는 없다.  

노암 촘스키는 원래 언어학자이자 교수였다. - 28세에 이미 MIT 교수였다 - 그러다가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반대를 기점으로 다양한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현재는 실천적 지식인의 상징이 되어 지옥으로 가는 산타마리아 호에서(미국) 유일하게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세계의 양심으로 칭송받고 있다.  

우리나라로 비교하자면 원래 미학자이자 교수였던 진중권을 떠올릴 수는 있으나 레벨로 따지면 글쎄, 노암 촘스키는 만렙이고 진중권은 이제 겨우 캐릭을 만든 newbie에 불과하다. 물론 그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노암 촘스키처럼 82세가 될 때 쯤에 다시 해보자. 어쨌든.

촘스키에게 감사하고 있는 사실중 하나는 그가 언어학자로만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평생 연구만 하고 살았다면 나는 결코 촘스키의 사상을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언어학은 너무나 어렵다. 그러나 그의 사명은 언어학에만 있지 않았다. 촘스키가 언제나 지식인의 책무를 강조하듯 그는 오롯이 그의 사상을 살아냈다.  

서기 0년에서 32년 사이에 활동했던 뜨거운 청년 예수도 사회 변화를 막는 가장 큰 적을 중산층 지식인으로 규정했다. 지식인으로서 사회의 존경을 받지만 비판만 할뿐 결코 행동하지 않는, 그리하여 하층민의 거짓 선지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 촘스키는 시대의 양심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지식인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지 길을 밝혀주는 등대요 횃불이라 할 수 있겠다.

촘스키에게 감사하고 있는 두 번째 사실은 그가 책을 쓰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인터뷰를 했다는 것이다. 글로 썼다면 분명 따분하고 어려웠을 내용들이 인터뷰에선 언제나 생생한 말들로 살아난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도 그런 인터뷰를 모아놓은 대담집이다. 이 책은 두 시간 동안 촘스키와 나눈 대화를 무려 2년에 걸쳐 정리한 책이라고 한다.  

책을 읽어 보면 그 같은 정성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보통 말을 그대로 글로 옮겨 읽어 보면 앞뒤가 안맞는 경우가 많다. 말이란 두서 없이 진행되고 다양한 생략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답변자가 질문을 오해하거나 질문 내용에 대해 평소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내용이라면 답변은 빙빙 돌아 엉뚱한 곳에 불시착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선 그런 경우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아마 2년에 걸친 정리 기간 동안 수 없이 인터뷰를 보완하고 여러 차례 촘스키의 감수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노암 촘스키의 '말'은 번듯한 사상의 '글'로 재탄생 할 수 있었다.

나는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촘스키의 압도적 사상의 향연에 변기 속의 응아처럼 빨려들었다. 이런 결과물을 만나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고릴라의 뱃속에서 구음진경을 발견한 장무기처럼 나는 이 책을 통해 진보의 내공을 더할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이 지금의 세상에 불만을 품고 있다면, 그래서 이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부탁하건데 이 책을 보라. 문제에 처한 사람들이 스스로 체제에 대항하지 않으면 역사는 끔찍한 드라마를 되풀이 하는 법. 그러니 가난하고 힘 없는자, 우리 스스로를 대마왕 손아귀에서 구해내는 그날까지 Keep on fight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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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3GS 3G iPhone 3GS 3G 용 SGP 케이스 울트라씬 레더 그립 시리즈 - 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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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을 떨어뜨렸을 때, 케이스가 분리되어 보호를 하나도 못해줍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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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깨짱 2010-06-29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라더니... 40자평을 쓰셨군요
 
굶주리는 세계 - 식량에 관한 열두 가지 신화
프랜씨스 무어 라페 외 지음, 허남혁 옮김 / 창비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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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리뷰 'MB노믹스를 까고 싶다면 이 책을 봐라 -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편에서 나는 이미 신자유주의의 요점과 그것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지배하는 수법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굶주리는 세계'는 그 중에서도 농업과 관계맺는 점들을 살펴 그 폐해를 밝히는 책으로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이 실제로 겪는 신체적, 경제적 착취를 설명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시적 관점은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실제 피해 사례와 고통의 규모를 파악하는데는 '굶주리는 세계'를 읽는 것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농업국들의 피해는 참혹하다. 정확히 말하면 농업국의 피해가 아니라 농업국에 살고 있는 농민들의 피해다. 문제의 요점을 살펴보자.  

신자유주의는 농업국을 농업국으로, 공업국을 공업국으로 영원히 유지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런데 농업국이 농업 수출국이 되기위해선 팔리는 작물을 심어야 한다. 이것을 환금 작물이라 부른다. 한편 이 환금 작물은 주로 대규모로 재배된다. 어떤 산업이든 규모의 경제를 유지해야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사업은 일반 농부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 대지주나 대기업, 즉 소수의 부자들만이 가능한 사업이다. 바로 여기서 농민들의 비극이 시작된다.

신자유주의 이전의 시대에는 자영농이나 혹은 소작농들이 식량으로 쓸 수 있는 곡물들을 재배하며 그나마 먹고 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가 들어서고 대기업과 지주들이 토지를 독점하게 되면 땅은 더이상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해 주던 삶의 터전이 아니다. 기업의 관심은 오로지 단위 면적당 이익이다. 
그들에겐 팔리지 않는 곡물을 심어 땅을 낭비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온 국토의 논과 밭은 환금 작물로 도배된다. 이 과정에서 땅을 잃거나 더이상 농사로 삶을 유지하기 힘든 농민들은 전부 일용직 노동자가 되어 대기업들의 농장에서 하루 종일 착취 당한다.  

그러나 그들이 얻는 노동의 대가는 말하기 민망할 정도다. 자녀들의 교육 문화 비용을 감당하기는 커녕 천정 부지로 오른 곡물 값 때문에 식량을 구하기조차 힘들다. 농토가 환금 작물로 도배되는 바람에 주식이 되는 곡물들이 씨가 마른 탓이다. 수입 곡물을 사먹으면 된다는 말은 빵대신 고기를 먹자는 마리 앙투와네트의 말만큼 무심하다.

재앙이 여기서 그친다면 행복한 일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선 많은 양의 비료와 농약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농업국들에게 비료와 농약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선진국의 화학 기업들이다. 개발도상국의 농장은 선진국의 화학 기업들에게 값싸며 문제를 만들지 않는 실험장이다. 온갖 독극물로 제조된 농약들은 개도국으로 운반되고 이것들은 변변한 보호장구도 없이 사람에 의해 뿌려진다. 막대한 화학 물질에 맨 몸이 노출 되는 것은 물론 일용직 노동자가 된 농민들이다.  

이제 굶주리는 세계는 농민들의 피로 범람한다. 신자유주의는 그 피를 양분으로 무럭무럭 자라나는 지옥의 대마왕이다.

'굶주리는 세계'는 이 땅에 한 끼 밥 조차 챙겨 먹지 못하는 빈자들이 넘치는 이유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제시한다. 그곳엔 무의미한 외침과 선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정확한 통계와 구체적 수치가 존재한다. 그 수치 속에서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굶주림이란 결국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 그러므로 그 해결 또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모든 것들이 현재의 당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믿는다면 조만간 농약 앞에 서게 될 사람은 제 3세계의 농민들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될 것이다. 부자들의 톱니바퀴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밟아 없앨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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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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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김규항은 오늘날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냐 아니냐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나쁜 사마리아인'의 저자 장하준을 진보라고 색깔 지울 수는 없겠지만 '신 자유주의'만을 놓고 봤을 때 그는 위대한 진보의 리더가 되거나 적어도 학술적, 정신적 스승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신 자유주의의 핵심은 이렇다. 각자 잘하는 것만 하고 살자는 것. 예를 들어 커피콩 재배가 왕성한 이디오피아나 케냐는 앞으로도 쭉 커피콩 수출에만 힘 쓰고 자동차, 컴퓨터 등이 주 수출품인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 물건들만 팔자는 것이다. 거기다 이런 수출품이 더 많이 팔릴 수 있도록 각 국가의 관세 완화 혹은 무관세 제도를 추가한다.  

이렇게 되면 자본의 중복 투자로 인해 생기는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이디오피아나 케냐는 이미 미국이 잘 만들고있는 자동차, 컴퓨터 생산을 위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감행할 필요가 없고 미국 또한 애꿎은 땅을 갈아 커피 농지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효율적인 경제 시스템 아래 하나가 되는 것. 신자유주의는 이처럼 매력적이고 논리적으로 결함이 없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그런데 왜 난다하는 경제학자 장하준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일까?

신자유주의에 더러운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선진국들이 자국 경제 발전을 위해 강력한 보호무역을 펼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광신도 미국은 개발도상국 시절 지배국인 영국과 유럽 열강들의 우수한 제품들로부터 자국의 공산품을 보호하기 위해 무지막지한 관세 제도를 비교적 최근까지 유지해 왔다.  

자유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은 어떨까? 영국은 낙후되 있던 면직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외국의 기술자들과 기계를 불법으로 빼돌리고 상표권을 침해하기도 했으며-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들이 거품을 물고 떠들어대는 특허권 침해에 해당한다 - 면직물 산업의 선진국에게 양모 수출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런 강력한 국가 개입으로 인해 영국은 면직물 산업을 넘어 다양한 산업을 높은 수준으로 키워낼 수 있었으며 이것이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기반이 될 수 있었다. 더이상 자기 나라에 대항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영국은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바로 전 세계적인 자유주의 무역이었다.

자유주의 무역은 후진국들에게 부가가치가 낮은 원재료(양모, 곡물, 각종 자원 등) 생산에 집중하게 만듦으로써 그들이 중공업, 기계 분야 등 기술집약, 고부가가치 산업 발전에 기울이려는 노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또 낮은 관세 제도는 후진국들에게 이중의 십자가를 지운다. 후진국일수록 세금을 거둬들이는 시스템이 취약하기 마련이다. 이런 국가들이 그나마 안정적으로 수입을 거둘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관세인데 자유주의 무역은 이 관세를 심각하게 낮추거나 심지어 무관세를 유지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후진국들의 정부는 극심한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결국에는 IMF, 세계은행 같은 세계 경제를 이끄는 사악한 악마들에게 국가의 영혼을 저당잡히게 된다. - WTO, 세계은행, IMF는 사악한 삼총사로 불린다 -

IMF는 공짜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막대한 이자를 받아 챙길 뿐만 아니라 원조국의 경제 정책을 직접 계획한다. IMF는 그 동안 원조국이 진행해오던 모든 경제 정책을 뿌리까지 뽑아내고 그 위에 자유주의의 씨앗을 심는다.  

우선 자본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여 외국의 투기 자본들이 우량 기업들을 마음껏 사냥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런다음 유치 산업 장려를 위해 제공하던 각종 국가 보조금 지원 제도를 폐지한다. 이로써 아직 새싹도 틔워보지 못한 고부가가치 산업들은 완전히 궤멸되고 선진국이 원하는 제품만을 생산해야만 하는 산업 구조가 강제된다. 그 다음이 공기업 죽이기다.  

IMF와 미디어는 변화와 개혁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공기업을 지목한다. 따라서 공기업의 개혁을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바로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이로써 국가의 기간망을(전기, 통신, 수도 등) 경영해 오던 공기업들이 외국 자본의 손아귀에 넘어간다. 여기까지 가면 IMF와 신자유주의는 더이상 경제 주권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들의 생존권마저 위협할 수 있는 절박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국방부 선정 불온도서라는 것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이 땅에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쁜 사마리아인'을 보고 나서 생각이 바꼈다. 그들은 매우 정확하고 분별있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그들이 거의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장하준의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불온 도서 목록에 올리지 않은 것을 봤을 땐 감탄할 정도였다.

'나쁜 사마리아인'은 '사다리 걷어차기'의 후속편 격이다. 전작이 각종 통계와 역사 자료로 무장한 논문에 가깝다면 후속편은 소파에 편안히 앉아 TV대신 볼 수 있는 산문에 가깝다. 내용이 같더라도 재미가 있는 쪽이 더 위험한 법이다.  

국방부는 '나쁜 사마리아인'이 가진 '읽는 맛'과 내용에서 반정부 감정의 강력한 파급력을 봤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양서의 기준에 부합한다. 좋은 책이란 자고로 재미, 의미(메세지), 정보가 삼위 일체를 이루는 책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책을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정말 강추다. 아니 강추란 말로는 부족하다. 지극히 평범한 경제학에 문외한인 내가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10점 만점에 100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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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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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어 치웠다. 일전에 진중권을 지식을 대중화하는데 있어 독보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 그의 진가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책을 소개한다. 바로 서양미술사.  

진중권 책의 특징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정리
요약
간지나는 글발

사실 그렇다. 꼭 알아야 한다는 학문일수록 그리고 기초가 되는 분야일수록 그렇게 재미없을 수 없다. 뿌리부터 튼실히 키워야 결국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정작 새벽부터 줄 서서 등록하게 만드는 건 시험에 나오는 것만 콕콕 집어 강의한다는 족집게 과외다.  

물론 진중권을 대중의 입맛에 영합하는 저급한 학원 강사로 치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기엔
그의 주제와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진중권의 주제는 크게 미학과 현대 문화 비평 그리고 정치다. 정치는 100분 토론에서 많이 보여주고 문화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때 그때 쓰는 편이다. 미학은 그의 특기다. 권수가 가장 많고 내용도 제일 무겁다. 따라서 그의 장점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미학은 언제나 미학'사'를 포함한다. 역사는 다양하기 때문에 정리가 필요하고 방대하기 때문에 요약을 해야하며 따분하기 때문에 간지나게 써야한다.

서양미술사 1은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으로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서 중세, 르네상스, 마니에리스모를 지나 바로크, 로코코까지 거기서 한 발 더 뻗어 현대 미술에까지 깃발을 꼽는다.  

여기서 모든 장은 각 시대의 양식들이 갖는 색, 선, 구성의 특징을 설명한다. 진중권에 따르면 '체계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공시적인 접근이다. 한편 고대 미술에서  현대 미술까지의 선형적, 시간적 구분은 필연적으로 양식의 변천 과정을 다루게 된다. '학설사'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통시적 접근이다. 

이로써 그가 주장하는 헤겔의 방법, '논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의 통일이 이 한 권의 책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우리는 미술에 대한 중요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첫째는 그림 자체를 어떻게 보고 읽어야 하는가 이다. 각 시대의 화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선과 색과 구성으로 드러났는가. 이를 통해 우리는 중세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그림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둘째는 그럼 이 그림들이 도대체 왜 시대마다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미술 재료나 기술의 차이에서 오기도 하고 시대 정신, 지각방식의 변화가 반영되기도 한다. 심지어 특정 시대에는 비평이 만들어내는 문화 코드가 변화를 이끌기도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미술과 기술-사회-문화가 관계 맺는 방식을 알게 되며 비로소 미술'사'의 흐름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진중권의 책은 언제나 꽉 차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손에 쥔 것만으로도 모범생이 될 수 있다는 전교 1등의 전설적 노트 필기를 쥔것 같달까? 그럼에도 따분하거나 어렵지 않다는 건 누누이 강조하듯 진중권 최고의 능력인 듯 하다.  

그래서 그의 저작은 잘 만든 대중 문화의 키워드인 '웰메이드'를 연상시킨다. 대중들이 진중권에 열광하는 이유도 어쩌면 품격 높은 대중문화에 대한 찬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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