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감염 예고 - 팬데믹을 예견한 목소리는 왜 묵살되었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공민희 옮김 / 다섯수레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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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이 터진 뒤에야 주목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운이 좋을 땐 수년간, 나쁘면 죽을 때까지 조롱을 받다 반짝하고 영웅이 된다. 마이클 루이스는 그런 사람들만 찾아다니는 저널리스트다. 내가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시청한 영화가 <빅쇼트>와 <머니볼>인데, 둘 다 마이클 루이스의 동명 서적이 원작이다. <세계 감염 예고>가 어떤 내용일지는 이 얘기만으로도 어느 정도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했다. 박쥐가 보유한 이 바이러스는 유비에게 목숨보다 중요했던 사통팔달의 형주, 오늘날의 우한에서 창궐해 세계로 뻗어나갔다. 경중은 있었지만 사실상 세계는 식물이 되었다. 물동은 멈췄고 사람은 갇혔다. 경제 위기는 수습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이 바이러스 때문에 영원히 뭔가를 '다시 할'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사람이 숨을 거뒀다.


팬데믹을 미리 막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마이클 루이스가 놓칠 리가 없었다. 미국은 신종 인플루엔자와 사스(이것도 코로나다)를 경험하며 질병통제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이를 계기로 꽤 그럴듯한 계획도 세웠다. 그래서 코로나19는 아주 중요한 기회였다. 이 계획이 잘 돌아갔다면 미국은 더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빅쇼트>와 <머니볼>의 주인공은 결국 영웅이 됐지만 <세계 감염 예고>의 주연들은 관객 하나 없는 무대 뒤로 쓸쓸히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사당을 무장 점거할 정도로 정신 나간 광신도를 거느린 트럼프조차 코로나19 대응 실패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 어디를 봐도 이길성 싶지 않은 조 바이든한테 말이다.


나는 재난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는데 내부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 과정을 초근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늘, 두 부류의 인간이 등장한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령 그 결정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더라도 과감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 나는 전자를 불안이, 후자를 용감이로 부른다.


불안이들은 보통 완벽한 계획을 추구하고 선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많고 판단이 느리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초유의 사태에선 무기력하다. 용감이들은 판단이 빠르고 기민하게 행동한다. 완벽한 계획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움직이면서 대응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넘어질 수도 있지만 그건 그저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이들을 따라가면 숨이 넘어갈 것 같고,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혀 짜증이 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불길 밖으로 나와 숨을 돌리고 있다.


재난 상황에서 판단이 어려운 이유는 최고의 판단이 최악의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질병 확산의 초기에 국경 폐쇄와 격리를 결정했다면 사람들의 분노를 감당키 어려웠을 것이다. 팬데믹을 막은 게 그 판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문을 열고 나와 평화로운 세상을 보며 이럴 줄 알았다고, 별거 아닌 일에 과잉 대응을 했다고 조롱을 퍼붓는다. 재난 대응이란 불길이 활활 타올라 세상을 모조리 태우고 난 뒤에야 그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다. 정말 지독한 아이러니다. 그래서 판단은 늘 미움받을 용기를 동반한다. 그래도 코로나19는 꽤 좋은 상황이었다. 감염이 전 세계로 퍼져서 어떤 판단이 옳았는지 지구인 모두가 알 수 있었으니까. 그 기회를 놓친, 실패한 영웅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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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왕국 유산 시리즈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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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줄거리를 말해야 할지 해석을 해야 할지, 후자는 능력이 없어 엄두가 안 나니 그야말로 난국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갈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씩 던져놓고 이리저리 끼워 맞춰 나가 보자.


우선, 이 소설은 판타지다. 주인공은 여성이다. 신데렐라 스토리와 유리 천장을 깨부수는 여성 신화, 인종 차별의 벽을 넘는 억센 이야기가 잘 버무려져 있다. 클리셰와 혁신을 적절히 버무려 반죽을 만든 뒤 미스터리를 겹겹이 쌓아 올린 케이크이다. 신과 마법은 생크림. 로맨스는 가니시.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묘한 판타지 소설이다.


이야기의 근간은 힌두교의 삼주신이다. 우주를 창조한 브라만과 생명을 주관하는 비슈누, 죽음을 다스리는 시바. 힌두교의 셀 수 없이 많은 신들 중에서도 이 셋은 우주의 영원무궁을 위해 필수 역할을 맡는다. 셋의 임무는 서로를 견제하여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누가 누구의 우위에 서는 법은 없다. 그랬다간 세상은 균형을 잃고 무너진다.


십만왕국은 이 균형이 무너진 세계다. 이템파스와 에네파와 나하도스. 가장 먼저 태어난 건 나하도스였다. 그는 공허와 어둠의 군주이자 모든 야성의 아버지다. 그의 얼굴은 놀랍도록 잘생겨서 보는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하도스의 취미는 자신에게 마음을 뺏긴 필멸자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다. 위험할 정도로 매혹적인 남자!


수 천년의 암흑을 깨고 태어난 건 빛의 군주이자 질서의 화신인 이템파스였다. 그는 형과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나하도스에게 변화는 필연이었으나 이템파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둘은 싸울 수밖에 없었다. 수천 년이 지나도 그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여동생 에네파가 태어나기 전까지.


에네파는 두 오빠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에네파는 공허로 가득한 우주에 창조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한다. 첫 수확은 세 명의 자식이었다. 그들 역시 모두 신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더 나아가 필멸자를 낳는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동하는 인간들. 이템파스는 그것이 싫었고 나하도스는 좋았다. 에네파는 나하도스를 더 좋아했지만 대단한 건 아니었다. 셋은 서로를 사랑했고, 그 사랑의 크기만큼 서로를 증오했다. 균형을 깬 건 이템파스의 질투였다.


이템파스의 질투는 신들의 전쟁을 낳았다. 나하도스와 에네파 그녀의 세 자식이 한 편을 이뤘고 이템파스와 다른 모든 신들이 또 한 편을 이뤘다. 필멸자들도 둘로 나뉘어 전쟁에 참여했다. 승부는 배신자들이 갈랐다. 에네파는 땅으로 떨어졌고 나하도스와 세 명의 자식은 이템파스의 노예가 되었다. 이템파스의 편에 섰던 아라메리 가문은 보답으로 십만왕국의 지배자가 되어 하늘궁에 거주한다. 그들은 광명의 주, 모든 피조물들의 아버지가 된 이템파스의 축복 속에서 패배한 신들을 지배하는 힘과 왕국의 유산을 대대손손 물려준다.


레이디 예이네. 야만의 왕국 다르에서 태어난 여전사. 그녀의 어머니는 아라메리 가문의 일 순위 후계자였으나 한 남자와의 사랑에 빠져 그 모든 축복을 거부한 채 야만의 왕국으로 도망친다. 그리고는, 암살을 당한다. 딸을 너무 사랑했던 십만왕국의 군주는 그녀의 딸, 즉 자신의 손녀를 계승 후보자로 지목해 외삼촌, 이모와 목숨을 건 경쟁에 참여하도록 강제한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배후에 어떤 음모가 있는지, 예이네의 엄마는 누가 죽였는지, 그녀가 왜 하늘궁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신과 마법으로 둘러싸인 미스터리가 바로 소설 <십만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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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 -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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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이 지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세계는 지금 AI에 대한 희망과 공포로 들끓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AI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거라고 믿고 비관론자는 총을 든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살육하거나 자아를 얻은 초지능이 우리 종을 지배하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미래를 알든 모르든, 우리가 그 미래를 만드는 주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낙관론부터 시작해 보자. 낙관론자들은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AI봇들이 많아질수록 '옳은' 뉴스를 만들어내는 AI들도 많아질 것이다. 그들의 관점에서 인간의 오해와 편견은 모두 정보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옳은 정보를 얻고 나면 어떻게 그른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유튜브에 넘쳐나는 극우 사상들과, 미국의 큐어넌(QAnon) 같은 커뮤니티, 그리고 이들을 열렬히 지지하는 수많은 팬들을 보면 낙관론자들의 주장이 지나치게 낙천적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들은 아마 강력한 AI를 만드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학습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확히 판단하는 AI가 등장하면, 애초에 이런 정보들이 세상에 유통되지 않도록 강력히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현실은 아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여전히 무엇이 '옳은가'를 어떻게 판단하냐는 문제가 남는다. 성경을 학습한 AI는 아마 노예를 소유하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사람들 중에는 절실한 기독교인들도 있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십계명과, 유대인을 샤워실에 몰아넣어 죽음의 가스를 살포하라는 명령 사이에서 그들은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었을까? 그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유대인은 이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조차 아니었다.


이제 비관론을 얘기해 보자. 그들은 정보가 곧 진실이고 진실이 지혜와 힘이라는 사실을 순진한 발상이라 일축한다. 지혜까지는 모르겠지만 힘이라는 데는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 비관론자들은 20세기 중반부터 반세기 가깝게 이어온 냉전을 사례로 들며 정보가 힘이라는 사실을 조롱할 것이다. 소련과 중국 같은 공산국가들은 발전한 기술을 토대로 정보를 중앙에 집중했고, 이를 인민의 배고픔을 해결하거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이용하는 대신 강력한 전체주의 독재국가를 수립했다! 그러니 정보=힘이라고 부르고 싶다면, 뭐 그렇게 해도 좋다.


비관론자들은 공산주의 독재국가들이 결국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패배한 이유를 정보 처리의 비효율에서 찾는다.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로 인간을 억압해 질서를 유지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국가는 엄청난 자원을 소비했다. 문제는 그렇게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음에도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잠도 자지 않고 쉬지도 않는 AI의 등장에 독재자들의 마음이 설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초거대 AI는 지금까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었던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판단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반정부 사상을 가졌는지, 언제 어디서 전복을 위한 테러를 감행할지, AI는 쉬지 않고 명령을 내려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죽일 것이다.


<넥서스>는 비관론자의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계속 읽어나갈수록 긍정론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 낙관과 비관과 긍정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확실한 차이가 있다. '망했다. 앞으로는 뭘 해도 안 될 거야.'라는 게 비관이라면 '걱정 마 뭘 해도 잘 될 거야.'라는 게 낙관이다. 긍정은 이런 거다. '망했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하지?' 유발 하라리는 비관론자처럼 보이는 긍정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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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타씨에게 묻다 - 닌텐도 부활의 아이콘
호보닛칸이토이신문 엮음, 오연정 옮김 / 이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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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타 사토루, 미야모토 시게루, 레지널드 피서메이는 닌텐도 부활의 삼신기였다. 사토루는 개발자, 시게루는 기획자, 레지널드는 마케터다. 그야말로 완벽한 조합이랄 수밖에.


닌텐도는 일본 회사였지만 당연히 해외 매출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고, 이렇게 돈을 벌어와 닌텐도의 심장에 연료를 공급한 게 레지널드 피서메이였다. 그는 닌텐도 미국 법인의 대표였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게임 기획자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다. 마리오의 아버지라고 하면 설명 끝. 여기에 굳이 젤다까지 붙일 필요가 있을까? 이와타 사토루는 일본 닌텐도, 본사의 사장이었고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와타 사토루는 도쿄 공대를 졸업한 뒤 학창 시절 가끔 일을 도왔던 HAL연구소에 입사한다. 그냥 개발 너드였다. 뭔가 만들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을 대단히 좋아했다. 규모가 아주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다 덜컥, HAL연구소의 대표 자리를 맡게 된다. 취임 당시 회사의 빚은 100억. 이를 갚기 위해 닌텐도의 외주 개발을 맡아 유명 타이틀 몇 개를 만들어낸다. 그중 하나가 바로 '별의 커비'다.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뭐 마리오보다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이 바닥에선 의외로 또 '별의 커비'를 인생작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성공 끝에 그는 닌텐도의 대표가 된다. 외주 개발사 사장이 본사의 사장이 됐을 정도니 그야말로 회사의 심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타 씨의 말을 듣다 보면 뭔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공통된 질문이 하나 있음을 알게 된다. 그건 바로 '왜?'다. 그냥 단순한, 본질적인 의문이다. 저건 어떻게 동작하지? 어떻게 만들었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의문은 학습을 유발하고 학습은 더 거대하고 많은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이 순환을 흔히 '성장'이라 부른다. 머릿속에 '왜?'가 없으면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가끔은 의문 없이도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 따르는 건 가능해도 절대 이끄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명함 속에 나는 사장입니다. 머릿속에 나는 개발자입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나는 게이머입니다.(p.193)


머릿속에 나는 개발자입니다를 기획자로 바꾸면 이와타 사토루의 인생은 내가 되고 싶어 했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비록 그처럼 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 작은 영역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여전히 '왜?'를 앞세우면서, 때로는 무시와 비난을 받지만. 이제 몇 년 후면 나는 이와타 씨가 세상을 떠난 나이가 된다. 운이 조금만 따라준다면, 나는 아마 그보다 훨씬 오래 살 것이다. 행운처럼 주어진 이 시간을 어떻게 쓰면서 살아야 하는지, 이와타 씨에게 배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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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임무는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 벼랑 끝의 닌텐도를 부활시킨 파괴적 혁신
레지널드 피서메이 지음, 서종기 옮김 / 이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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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는 정말 정말 신비한 회사다. 죽을 듯 죽을 듯하면서도 기적같이 살아나고, 그 방식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하다. 갈라파고스 같은 일본 문화의 정수를 심장에 박아 넣은 기업인데, 바로 그 고유함으로 세계에 족적을 남겼으니 정말 놀랍다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다.


레지널드 피서메이는 무너져가는 닌텐도에 입사해 제2의 전성기를 이끈 미국 법인의 사장이다. 마케팅 출신의, 대단히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인물로 그로스(growth)에 특화된 인재로 보인다. 침몰하는 배의 키를 맡기에는 제격이었던 셈!


사람들은 성공 신화의 뒤에 늘 위대한 지도자가 있다고 믿는다. 완전히 틀린 믿음은 아니다. 닌텐도DS와 Wii의 전 세계적 히트에는 레지널드 피서메이, 이와타 사토루, 미야모토 시게루라는 삼위일체가 있었으니까. 세 사람은 의견이 늘 같았던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완벽한 팀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E3 쇼의 키노트를 기획하며 있었던 일이 이 추정에 아주 좋은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레지널드 피서메이는 세계 최대의 게임쇼 E3에서 전 세계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저는 레지라고 합니다. 제 임무는 경쟁자들을 박살 내는 겁니다. 또 제 임무는 그들의 명성을 끝장내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임무는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My name is Reggie. I'm about kicking ass. I'm about taking names. And we're about making games."

(p.184)


쥐뿔도 없었던 회사가 하기엔 지나치게 건방진 대사였지만 이것이 그대로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어버렸다. 확실히 성공을 위해선 망상에 가까운 일도 자기만큼은 확신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 같다. 늘 조심스럽고 우울해 보이는, 언제든지 깜짝 놀랄 준비가 되어 있는 일본인은 많이 불편했겠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발언은 맨 마지막 문장 '그리고 우리의 임무는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였다. 왜냐하면 이 대사의 초안이 '우리의 임무'가 아니라 '나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이런 공격성이 마뜩잖은 일본인인데, 게임 개발자도 아닌 마케터가 '나의 임무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겠다니 사실관계조차 맞지 않는 이 말에 우리의 재패니즈들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많은 우려와 반대 끝에 이 대사는 '우리'로 변경됐고 결국 전설로 남았다.


나는 이 '우리'에 속은 사람 중 하나다. 이 책의 제목이 '나의 임무는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였고 지은이가 레지널드 피서메이였다면 내가 이 책을 살 일이 있었을까? '게임을 만드는 것'이라는 말에 '나의 임무'를 붙이는 건 이와타 사토루나 미야모토 시게루 정도나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은 닌텐도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레지널드 피서메이의 자서전에 가깝다. 닌텐도는 무려 140페이지에 가서야 등장한다. 생생한 게임 개발 이야기는 마케터의 커리어에 섞여 풀이 죽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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