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모'는 우리나라 만화계에서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든 독특한 작가다. 우선 작품수가 무척 많다. 엄청 많다. 놀랄 정도로 많다.
김성모는 한 달에 적어도 5권 이상의 단행본을(서로 다른 만화) 찍어 내면서 동시에 스포츠 일간지에 만화를 연재한다. 그에게 창작의 고통이란 다른 우주의 언어처럼 보인다. 나는 그의 작업 방식에 틀림없이 비밀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었다.
우선 문하생 중 하나가 원고에 배경을 그려 넣는다. 배경은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미리 복사해둔 건물 그림이나 자연 풍광을 붙여 뚝딱 만들어 낸다. 그럼 인터넷 서핑을 하며 새로운 만화 소재를 찾던 김성모가 천천히 일어나 그의 도장들을 꺼낸다.
<현란한 배경>
이 도장에는 캐릭터의 표정이 새겨져 있다. 김성모 만화의 주인공은 모두 '강건마'라는 이름으로 생김새가 똑같고 표현해내는 감정은 손에 꼽을 정도로 압축된다. 대략 10-15개 정도의 도장만 있으면 자신이 연재하는 모든 만화 캐릭터들의 표정을 소화해낼 수 있다.
<다양한 표정>
자 이제 김성모가 만화에서 보여주듯 현란한 손놀림을 보이며 도장을 찍기 시작한다. 도장이 찍힌 원고를 받아든 다른 문하생은 자와 펜을 들고 몇개의 직선을 그어 캐릭터의 몸체를 완성한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동차가 생산되듯 김성모의 작업실에서는 밤새 만화가 생산된다.
어느 사회든 공산품은 수공예품보다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물론 예전같지야 않겠지만 몇년 전만해도 전국적으로 2만여개의 만화 대여소가 성업 중이었다. 이 시절 수백 권이 넘는 만화를 전국에 보급하면서 김성모는 미국 금괴 보관소 '포트 낙스'를 능가하는 부를 축적했을 것이다. 그를 만화가보다 뛰어난 비지니스맨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만화도 대중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는 것은 참 희한한 일이다. 특히 '럭키 짱' 원, 투, 쓰리, 포는 학기말 자습 시간에 요긴하게 소비되던 주요 컨텐츠였다.
'럭키 짱'은 무협 만화의 무공, 비기 등을 학원물에 이식한 만화로 여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한가지 씩의 필살기를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필살기가 시전될 때 김성모가 동작 모두를 한 페이지씩 구성했다는 것인데 이런 연출의 원조인 '붉은 매'가 '한국 무협 만화의 계보' 1편에서 밝힌대로 갑론을박의 논쟁 거리를 제공했다면 '럭키 짱'의 경우 지면 낭비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는 데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40계단 108콤보'같은 필살기를 시전하고 나면 만화의 반 이상이 대사 없는 그림으로 채워졌다. 필살기를 온 몸으로 맞아준 주인공은 '너의 공격 패턴을 알아냈다. 그것은 강 약 약 강 강 강 약 강 중 약이다.'라는 선문답 같은 대사를 하고 난 뒤 정확히 그 다음 권의 반을 자신의 필살기로 수 놓았다. 한달 단행본 5권의 신화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드디어 콤보 시작>
학원물 하면 또 조운학의 '니나 잘해'가 떠오른다. '니나 잘해'는 학원 주먹계를 정파와 사파로 나누고 그들끼리 연맹을 구성하는 등 무협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정통성 대결, 정치, 음모 등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껴안았다.
그래서 캐릭터들은 각각의 '류파'를 형성하며 개성있는 싸움을 벌였고 마치 강호를 연상케 하는 패싸움, 1:1 대결, 납치, 암살(실제 죽이는건 아님) 등이 판을 치는 다소 황당한 학원계를 만들어 냈다.
<니나 잘해의 장보고와 반토막>
물론 말도 안된다. 이런 일들은 학생 수준에서 벌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설정이야 말로 '니나 잘해'를 만화 답게 만든다. 동시대의 만화 '짱'이 보다 현실적인 폭력을 그리는데 비중을 뒀지만 오히려 '니나 잘해'에 비해 흥미가 덜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협이 현대로 배경을 옮긴 만화는 이 밖에도 '무림수사대'같은 웹툰을 꼽을 수 있다. 웹툰에 대해선 아마 나중에 따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자 이제 무슨 만화가 남았을까? 나는 지금까지 여덟 편의 만화를 소개했지만 사실 우리 손을 거친 만화는 이것 말고도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협 만화와는 궤를 좀 달리했지만 '팔용신전설', '나우', '천랑열전'의 박성우가 생각나기도 하고 학원 폭력물의 원조라 볼 수 있는 이명진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것 같은 저녁'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만화들은 이제는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작품들이다.
언젠가 어머니가 흉하게 각진 구형 '그랜저'를 보시면서 '그랜져가 못나진건지 내 눈이 각박해진건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셨드랬다. 하지만 내가 서글퍼지는 이유는 예전에 그렇게 재밌게 보던 만화책이 더 이상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기억할 만화에 한국 무협, 아니 한국 만화 조차 없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의 옛 만화를 추억하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