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지식인마을 30
신혜경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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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된 예술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의 머리가 콩코드르 광장 위를 구르고 있을 때 장전된 길로틴의 밑에선 예술의 머리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 시민 혁명은 절대왕정을 붕괴시키고 귀족 중심 사회를 해체시켰다. 그동안 귀족과 왕궁의 후원을 받던 예술 또한 따뜻한 안식처를 강탈당한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부모를 잃은 예술은 이제 거리로 몰려나 정어리, 곡괭이, 밀 등과 경쟁하는 시장 경제의 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예술의 고객은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른바 졸부, 머저리, 교양 없는 인간들. 심지어 보들레르는 이런 부르주아 계급의 저급한 미적 취향을 일컬어 '개는 냄새나는 더러운 똥 통조림을 보면 꼬리를 흔들며 좋아라 달려들지만, 정작 향기로운 향수를 주면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채 냉담하게 돌아설 뿐이다'라고 말하기 까지 했다. 

상품인 주제에 고객을 경멸한다면 과연 누구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 예술은 자유를 선언한다. 절대왕정에도 귀족에도 부르주아에도 봉사할 필요 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목적으로 한다는 도도한 선언. 그리하여 예술은 그 의미를 꽁꽁 감춘채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그 무대 위에선 모호한 의미와 추상적 이미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기 마련이고 말라버린 우물은 언젠가 빗물로 가득차기 마련이다. 예술이 떠나간 자리는 대중 문화가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20세기. 대량 복제 기술과 매스 미디어로 무장한 대중 문화는 예술을 영원히 유배시키기에 이른다.  


아도르노의 문화 산업론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이론과 설명을 낳는다. 20세기, 100년에 걸쳐 변할 것이 불과 10년만에 이루어진다는 이 격변의 시기에 대중 문화를 해부할 집도의로 점지된 것은 발터 벤야민과 아도르노였다. 그러나 동시대에 살았고 같은 유대인이었으며 평생 학문적 교류를 그치지 않았음에도 두 사람이 대중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은 너무나 달랐다.   

<아도르노, Theodor W. Adorno> 


아도르노는 대중 문화를 경멸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천박한 대중 문화를 경멸했다. 그는 이 천박한 대중 문화를 건전한 대중 문화와 구분하기 위해 '문화 산업'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대충 다음과 같다.

첫째, 대중 문화의 형성에 있어 그 수용자인 대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는가.
둘째, 대중 문화는 대중을 억압하는 체제 및 사유에 저항하는가.

따라서 문화 산업이란 이 두 가지 조건이 결여되어 있는 대중 문화를 뜻한다. 또 '산업'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대량 생산된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생산된 문화들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규모로 유통되는 것인데 똑같은 모양, 똑같은 맛에 자극적인 양념을 추가하여 보급되는 대중 문화는 결국 사람들의 미각을 마비시키고 만다.

미각이 마비된 대중의 틈에서 까탈스러운 입맛을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당신이 예민한 미각을 유지하는 한 이마트에도 GS25에도 심지어 결혼식 뷔페집에서도 당신이 먹을 음식은 없다. 이 말은 남들이 입 안 가득 음식을 집어 넣으며 신나게 떠들고 있는 순간에도 당신은 주린 배를 움켜쥐며 지옥같은 허기를 달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고자 한다면 엄청난 노력을 들이거나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까탈스럽게 굴지마 주는대로 먹으면 돼. 남들도 그렇게 하잖아.' 

귓가에 바짝 다가온 끈적한 목소리는 농염한 손짓이 되어 당신을 유혹한다. 그리고 유혹은 언제나 승리한다. 이제 모든 대중은 문화 산업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 그 시스템을 비판하고 극복할 잠재력을 영영 상실해 버리고 만다. 이것이 바로 대중의 좀비화다. 이 때부터 시장과 각종 이데올로기는 사악한 양치기가 되어 뒤에서, 이 좀비 무리를, 막대기로, 이렇게 저렇게 쑤시며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간다.   

 <저항할 것인가, 모른척 살아갈 것인가>



그러나 좀비 무리 속에서도 언제나 제정신을 잃지 않는 괴물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의 음모를 간파하고 시장의 미소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찾아낸다. 이들은 빨간약과 파란약을 들고 다니며 '매트릭스'의 거짓을 까발리는 모피우스다. 덕분에 사람들은 대안을 경험하게 되고 그 속에서 우러나는 상큼하고 깊은 맛의 존재를 깨닫는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아도르노의 문화 산업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섬뜩한 촌철의 묘를 보여준다.   

아도르노는 이 세상에 다양한 대안들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란 없다'고 말한다. 덧붙여 차이란 '어느 누구도 문화 산업의 손아귀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통제하려는 생산자들의 의도로부터 나온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예를들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혐오하는 당신에게도 시장은 무엇인가를 팔아야 한다. 그리하여 헐리웃에서는 체 게바라의 전기 영화가 만들어지고 대형 출판사는 두꺼운 양장본을 출간해 쇼윈도에 비치한다. 한편 Pop Music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MIC를 잡은 랩퍼들이다. 반항의 icon이자 대안의 상징인 이들의 앨범은 메이저 배급사에 의해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우리가 'MIC만 잡으면 나도 랩퍼'와 'Put your hands up'을 백만번 리피트 하는 동안 랩퍼들의 엉덩이 밑에선 수천만 달러가 수북히 쌓여 간다.   



<힙합은 무죄인가?> 

 

따라서 획일화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화 산업은 오히려 차이를 강조하고 부각시킨다. '혁명', '신개념', '새로운', '확 바뀐' 같은 형용사가 유난히 판을 치는 오늘날의 광고 문구들이 생각나지 않는가?  

결국 문화 산업 안에 존재하는 다양성이란 그 누구도 시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함정일 뿐이다. 그들은 대중의 취향을 촘촘히 분류하고 조직한뒤 그것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사악한 양치기들은 결코 무식하지 않다. 그들의 양몰이는 세련되고 우아하며 스리슬쩍 파고드는 소매치기의 손처럼 날렵하고 은밀하다.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 작품 

반면 발터 벤야민은 대중 문화의 긍정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모색한 최초의 미학자였다. 그는 마르크스 주의자 답게 예술의 생산 수단의 변화에 집중했는데 여기서 그의 대표작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특히 벤야민은 '아우라(Aura)'라는 신비주의적 관점을 도입하여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을 설명하려 했다.

발터 벤야민과 미학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아우라'라는 말은 한번 쯤 들어봤을것이다. 판타지 문학에서는 오오라라고 말 하기도 하는데 퇴마록에서 박신부가 사용하던 기술이 바로 이 오오라다.
그러나 발터 벤야민이 설명하는 '아우라(Aura)'가 박신부의 '오오라(Aura)'와 같은 것은 절대 아니다. 세상엔 비유 혹은 그것을 체험했던 감상을 통해서만 설명 가능한 것들이 있기 마련인데 나는 아우라 또한 이런 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아우라는 결코 언어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이렇게 설명 해보자.

우리는 지금부터 모나리자의 작업이 막 끝나갈 무렵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공방으로 날아 간다. 모나리자는 오늘날 당신에게 어떤 미학적 충격도 주지 못하는 광고 속의 그림일 뿐이지만 이건 상황이 다르다. 이 모나리자는 진짜기 때문이다! 자 이제 과감히 캔버스 앞으로 다가가 모나리자를 들여다보자. 그러자 바로 그 순간 오로지 '단 하나의' 모나리자가 예의 그 신비한 미소를 흘리며 당신의 눈을 바라 보고있다. 어떤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압도적인 숭고의 물결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것이 느껴지지 않은가?

이처럼 아우라란 그 예술이 진품이거나, 일회적이거나 혹은 원본이라는데서 나오는 독특하고 신비한 분위기다. 그런데 이 아우라는 기술 복제 시대에 이르러 처참히 무너져 버리고 만다. 구글은 모나리자라는 검색어로 0.32초 만에 152만개의 복제된 이미지를 검색해 주고 집 앞 이발소의 달력에는 모나리자가 예의 그 오묘한 미소를 띄우며 낡아 빠진 면도날을 쳐다보고 있다. 모나리자는 도처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현대 예술의 종말을 이렇게 표현했다. 

예술은 없어졌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요즘말로는 간지. 영화 용어로는 포스> 

 

예술은 이대로 영영 끝나버린 걸까? 그러나 벤야민은 바로 여기다 예술의 새로운 출발선을 긋는다.

아우라가 충만했던 시절의 예술은 종교적, 제의적 도구로 사용됐다. 예술 작품의 유일성과 숭고미는 종교와 제의의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유용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우라가 붕괴된 이후 예술은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이 예술을 다시 고용한 것이 바로 정치다.

벤야민은 특히 러시아 민중 영화의 틈새에서 대중 예술의 정치화를 가늠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으로 대변되는 이 영화들에는 Continuity Editing으로 불리는 매끈한 숏(shot)전환이 없다. 오히려 숏과 숏을 과감히 충돌시켜 정서적 충격을 줘야한다는게 에이젠슈타인의 기본 생각이었다. 이런 충격을 통해 대중은 쉴새 없이 몰아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도 넋을 놓지 않고 언제까지나 깨어 있을 수 있다.

극장에 앉아 '전함 포템킨'을 보는 관객들은 오뎃사 계단을 줄지어 내려오는 짜르 군대의 흉폭함에서 프롤레타리아를 억압하는 지배 계급의 잔인성을 목격한다. 군중을 향해 떨어지는 총알과 불뿜는 대포들은 단지 영화 속 등장 인물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 극장에 앉아 있는 우리들에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상의 충격은 곧 관객의 분노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분노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깨닫는다.   



<사자 석상을 담은 3개의 Shot은 차례대로 이어지며 거칠게 충돌한다. 잠들어 있던 사자는 기립하고 이것은 민중의 혁명, 프롤레타리아의 자각을 의미한다> 

 

예술의 정치화는 이처럼 대중을 계몽하고 그들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는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당긴다. 도대체 어느 시대의 예술이 이런 일을 담당했었던가? 대중 예술은 결코 싸구려 유희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끊임 없이 독려하는 자극제다.  


벤야민의 헛수고 

그렇담 누가 옳은 것일까? 엘리트 의식으로 가득차 대중 문화를 쓰레기 취급했던 아도르노일까? 아니면 그 안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잠재력을 발견한 벤야민일까? 오늘날을 두고 보면 확실히 벤야민 보다는 아도르노의 음울한 예언이 적중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술의 정치화가 대중을 계몽할 수 있다지만 계몽에 앞서 시도된 것은 파시즘의 세뇌와 선동이었다. 오늘날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TV에서 양산되는 드라마는 언제나 막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질주하지만 시청률은 끊임없이 고공행진을 한다. 영화 예술의 진짜 가치? 그건 컨텐츠의 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멀티플렉스의 배급망에서 나온다. 인터넷? 그곳은 가면을 쓴 괴물들이 모여 흉계를 꾸미는 음침한 쓰레기장이다. 그곳에선 근거없는 소문이 숭배되고 진실은 항상 쓰레기 더미 속에 묻혀 버린다.

사람들은 여기서 와 하면 따라서 와하고 저기서 우 하면 따라서 우 한다. 생각하는건 피곤하다. 헛소리는 집어치는 것이 좋다. '좋은게 좋은거'라는 미덕은 오늘날의 세상을 지배하는 암묵적 동의이자 대중이 유일하게 만장일치를 이룬 사회적 계약이다.

도대체 어디에 희망이 있다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벤야민은 분투했지만 헛수고였다. 아도르노가 옳았다. 우리는 천박하다. 이제와서 바꾸기엔 세상이 너무 단단하다.
 

에필로그 

광우병 사태가 벌어졌을 때 온 국민을 촛불 시위에 투신하게 만든 것은 대중 문화의 힘이었다. 특히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이 YouTube에 공개되고 디지털 카메라로 실시간 중계가 시작되자 시위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듯 미친듯이 타올랐다. 이 와중에 누구보다도 즐거워하며 이 사태를 인터넷 방송으로 중계했던 중년 남자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발터 벤야민을 전공한 진중권이었다.

시위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그의 모습에선 100분 토론에서 볼 수 있었던 재수없는 표독스러움이 없었다. 그는 있는대로 흥분해 사태를 완전히 즐기고 있었다. 지극히 대중적인, 천박한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번져가는 진보의 물결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이 믿어왔던 발터 벤야민의 생생한 재림을 떠올렸으리라.    

                                                     <르네 마그리뜨>

 

우리가 깨어 있는 동안 권력은 언제나 고개를 숙이며 굽신댄다. 그러나 깜빡 잠이 든 순간 그것은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어느의 주인의 자리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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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2011-04-01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도르노가 맞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예술이 천박하게 되는 시대사조 때문만이 아니라, 정치체제 자체가, 특히 대기업 등의 시장권력을 가진 체제결정자들(칼 슈미트 말대로라면 비상시국을 선포할 권리를 가진 자들)의 목적과 부합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쉽게말해 70년대에 타비스톡 연구소, 스탠퍼드 연구소 등에서 반문화 운동을 계획하여 비틀즈를 탄생시키고, 젊은이들을 정치에서 도외시키는 동시에 마약과 문화주의를 지향하게 만듭니다. 그 문화의 흐름이 지금까지와서, 대중들은 천박함을 띄는 문화를 숭상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되었지,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문화는 당시의 저급한 대중들에게서도 저급한 것으로 판정받았을 것입니다. 그럼 왜 정치권력은 이렇게 의도적으로 반문화운동을 일으켰는가, 하는 것은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므로 여기서 생략합니다.

하지만 저는 또 다르게봅니다. 중요한건 아도르노도 아니고 발터 벤야민도 아닙니다. 그들 모두가 옳고, 틀려질 수 있는 것은 사회시스템에 기인합니다. 앞으로 현재의 경쟁주의적, 황금만능주의적 세계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여 무너지게된다면, 그 이후에 과거에 파시스트 체제가, 독재 체제가,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졌듯 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난 다음 새로운 예술체제가, 어쩌면 발터 벤야민식의 긍정적 대중산업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토플러도 예언한 바 있고, 현재 각국의 부채율이 200%에 달하는 것만봐도 자본주의는 얼마 못갑니다. 결국 예술 자체는 이들의 개인적 지적과는 다르게, 항상 자체적으로 변증법적으로 흐를 것입니다.

언젠가는 발터 벤야민의 시대가. 언젠가는 아도르노의 시대가. 언젠가는 이 둘의 장점을 취합한 시대가 오겠죠.

한깨짱 2011-04-01 20:45   좋아요 0 | URL
네 결국 역사가 종결되는 시대가, 언젠가는 그런 시대가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깊이있는 의견 감사 드립니다.

sunday 2014-04-0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도르노와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을 찾는 중에 읽게 된 리뷰가 책의 내용을 넘어 벤야민과 아도르노 읽기를 주저없이 권하는 느낌으로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한깨짱 2014-04-07 14:58   좋아요 0 | URL
이 길고 두서 없는 글을 좋게 봐주시니 제가 감사합니다.
 
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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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을 만난 것은 2007년 겨울, 삼성역의 멀티플렉스 극장에서였다. 나는 이 영화의 원작이 황석영의 소설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감독이 임상수라는 것도 역시 몰랐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도대체 누가 이런 영화를 만든걸까? 하는 감탄어린 의문이 가슴을 맴돌았다. 마침내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야 두 사람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나는 그제서야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원래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건 내가 아니었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전혀 몰랐으니까. 그런데 정작 이 영화를 보고자 했던 사람은 영화관을 나오는 내내 '오래된 정원'을 불편해했다. 친구는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불살랐고 - '불사르다'는 말이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전쟁같은 데모를 벌여야 했던 청춘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그 삶을 낭비라고까지 했다. 

나는 이런 얘기를 들으며 사람들로 가득찬 쇼핑몰을 걷고 있었다. 이 세련되고 쿨한 영화가 완전히 망한걸 보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단지 내 주변의 일 이인에 불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불과 
20년 전만해도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이 나라였지만 이데올로기와 정치는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깔끔히 지워져 있었다.  

'오래된 정원'은 황석영의 소설이다. 나는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오래된 정원'의 소개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왜냐고? 전투화발에 몸이 깨지고 목이 쉬어라 자유를 외치던 세대는 이제 근엄한 정치인이 되거나 사교육계의 스타가 되어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었다.  

힘 없고 가난할 때는 몰랐지만 높은 자리에 서서 돈을 좀 벌고 보니 세상이 달라 보이더라... 이 세상에 권력과 돈 만큼 강렬한 환각제는 없다. 이런 세상임에도 변함 없이 자신의 '문학을 오롯이 살아낸다면' 그 존재만으로도 이 사회의 귀감이 되는게 아닐까? 이런 작가의 소설이라면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다. 그 소설 속엔 분명 온 몸으로 시대를 이겨낸 진한 삶의 체취가 담겨 있을 테니까.   

 

 

<전두환은 전범 수준의 악당이었다. 우리 사회는 너무 쉽게  

그 악마를 잊어 버렸다.>

학생 운동가 오현우는 광주항쟁의 주모자로 검거되어 무기 징역이 선고 된다. 잡히기 전 미술 교사 한윤희와 함께 갈뫼에서, 6개월 동안 꿈같은 평화를 누리는데 갈뫼 이전의 오현우의 삶과 이 갈뫼에서의 6개월 그리고 이별 이후 한윤희의 삶이 교차로 진행되는 것이 '오래된 정원'의 주된 서술 방식이다.

특히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서울의 삶과 평화롭기 그지 없는 갈뫼 생활의 교차는 7, 80년대 한국 사회의 폭력성을 잔인하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저항-현실에의 안주'라는 오현우의 내적 갈등으로 환원되면서 두 주인공의 러브스토리에 아슬아슬한 긴장을 불어넣기도 한다. 반면 이별 이후 한윤희의 삶은 이 두 공간에 대한 비평의 무대로써 소설이 이데올로기에 휘둘리는 것을 막아주는 중심추 역할을 하는데 이런 절묘한 구성은 세 개의 역사를 모두 경험한 자만이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자 일종의 의무가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 한다.   

 

 

  <5년 간의 망명 생활, 5년간의 투옥 경험은 오현우의 감옥 생활과  

베를린 장벽 붕괴 현장의 리얼리티로 되살아 난다.>

 

그러나 '오래된 정원'이 갖는 서술의 균형은 갈뫼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갈뫼를 '현실에의 안주'를 위한 공간으로 간주할 경우 그곳은 유토피아라기 보다 현실 세계가 파놓은 함정으로써, 오현우의 혁명 의지를 갉아 먹는 해충 같은 장소라고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갈뫼를 하나의 상징으로만 확정할 수는 없다. 특히 황석영은 갈뫼에서의 삶을 매우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그 아기자기하면서도 소소한 일상 속에 녹아든 주인공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과연 갈뫼를 해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이 드는건 사실이다.

또 갈뫼를 뛰쳐나간 오현우는 결국 감옥에 갇혀 17년간 인생을 낭비했다. 오현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 였으며 자유를 쟁취한 듯 보이는 오늘날도 실상 군부독재의 군화발이 자본독재의 구두발로 대체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 구두발은 더욱 강해지고 은밀해졌지 않은가! '너희들이 한게 뭐 있어!'라고 외치는 윤희의 대사는 그렇기 때문에 가슴을 아리는 비판으로 다가온다. 이런 점에서 갈뫼는 단지 가정을 꾸려 평범한 일상을 만들어가고자 했던 두 주인공의 안식처, 때 묻은 현실과 대립하는 순수한 장소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출소 후 갈뫼에서 안식을 찾아가는 오현우를 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체념한 듯한 분위기, 한 줌의 승리도 얻지 못한채 생명의 에너지를 고갈한 힘없는 후회가 느껴진다. 갈뫼를 다시 찾아 추억을 더듬으면서 오현우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혹시 '그 모든 것들은 부질없는 짓이었다'고 고백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황석영 만큼은 변하지 않을거라 믿는다. 대한민국이라는, 괴물처럼 변태하는 역사 속에서도 언제나 우뚝 선 거암(巨岩)으로 내 기억속에 남아있기를, 나는 바란다. 하지만 인간이란 결국 

시간이라는 바다 앞에 쌓여 있는 조약돌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모난 것이라도 그 거센 물결에 닳아버려 언젠가는 맨들맨들한 조약돌로 축적되는 것. 만약 이것을 역사라고 부른다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오현우도 황석영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그 조약돌이 되고마는 현실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에필로그 

황석영은 '오래된 정원'의 영화화가 결정된 후 임상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길지 않은 대화임에도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단서를 얻을 수 있는 인터뷰였는데 특히 이런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건(오래된 정원) 감옥에서 나와서 얻은 자유의 공간이야.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제 맘놓고 러브스토리도 쓸 수 있게 된 거지. 옛날엔 우리끼리 복장도 서로 단속했어. 이 새끼 왜 이렇게 야하게 입어 이러면서.(웃음) 예전엔 사랑할 자유도 억압됐고, 그러니까 러브스토리를 쓸 자유도 없었던 거지. 망명 기간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좋은 시간이었어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한계, 한반도의 한계를 봤으니까.

어떠한 사상이라도 억압과 지배의 수단이 되는 순간 그 순수한 가치를 잃고 만다. 좌우의 이데올로기 또한 마찬가지다. 작가의 말대로 어쨌든 시대는 바뀌었다. 황석영은 '오래된 정원'의 완성을 통해 일종의 숨고르기를 마친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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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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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과 진중권은 모두 글깨나 쓰는 사람들이다. 글을 잘쓰냐 못쓰냐는 여러가지로 따져 볼 수 있겠지만 특히 쉽게 읽힌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글은 후한 평가를 받곤 한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와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가 각각 제 분야의 까다로운 전문 지식을 다루고 있음에도 그 특유의 가독성으로 마음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나는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의 기획 의도는 명백하다. 인터넷의 발달과 복잡한 정치 상황, 대형 스포츠 행사의 개최로 촉발된 다양한 문화 현상의 빅뱅. 이 전례없는 사태에 대한 해석이야 말로 지금 우리가 원하는 스토리 텔링인 것이다.   

 

<대중 문화의 알파와 오메가...?>

그러나 대중 문화 비평이란 전혀 새로운게 아니다. 짧게는 발터 벤야민과 아도르노로부터 길게는 그 옛날 고대 벽화에 '요즘 애들은 참 버릇이 없어'라는 낙서가 등장했을 때 부터 지속되어 온 것이 바로 이 대중 문화 비평이다. 잔뼈가 굵은 출판 업계가 이런 사실을 모를리 없다.  

그리하여 미학자이자 대중 문화 비평가이자 전직 교수인 진중권과 물리학을 전공했고 이제는 뇌과학을 연구중인 베스트셀러 과학자가 링 위에 올라선다. 인문학 vs 과학! 이건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얘기다. 이제 관객은 두 사람의 주먹이 제대로 충돌해 주기만을 바라며 두근대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펀치는 당연하게도 무척 대중적이다. 스타벅스에서 생수, 레고에서 애플, 셀카에서 개그콘서트까지 의, 식, 주, 락! 생활 세계를 총망라한 다양한 문화 현상들은 미학자가 날리는 잽이 되고 과학자가 휘두르는 훅이 된다.   

 

<우리 시대의 Icon>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 경기장은 애초에 미학자에게 유리하게 지어진 것처럼 보인다.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학(學)을 추구하는 인문학은 그 주제가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나름의 답을 제시할 수 있다. 게다가 진중권은 오랜 기간 동안 대중 문화와 함께하고 그것을 연구해온 사람아닌가. 그에게 이런 일은 너무나 익숙한 작업이다.

그러나 과학자는 그렇지 못했다. 21개의 소재 중 물리학과 뇌과학의 힘을 빌려 논술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 정재승의 글이 현상의 뿌리를 파고드는 논문이 아니라 그저 담백한 에세이가 되고 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주 창조론이나 생명의 기원, 인간 복제와 윤리학의 문제 등 과학과 인간의 가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를 두고 두 사람의 대담이 진행됐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다. 이런 면에서 '크로스'의 기획 의도는 그 자체가 한계이기도 했다.

따라서 웅진지식하우스는 새로운 경기장을 지어야 한다. 이번에는 누구에게도 기울어지지 않은 - 아니 정재승 쪽으로 살짝 기울어도 괜찮다 - 평평한 경기장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위에서 미학자 vs 과학자의 진정한 종합 격투기가 벌어진다면, 합체도 충돌도 미완성인 이 책의 허물쯤은 적당히 덮어둘 의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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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전3권 세트 - 한국만화대표선
박흥용 지음 / 바다그림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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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k(벡, 해롤드 사쿠이시 작)에 대한 글에서 썼듯이 만화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오로지 시각을 통해서만 전달하는 매체이다. 그러므로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기린의 이름은 기린이다 라고 하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란 머리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아서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거의 예상했던 일이 보란듯이 틀어지고 마는 일이 빈번히 나타나곤 한다. 감정 이입이 쉽지 않은 그림임에도 그 글을 읽는데 흠뻑 빠져들고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독서 경험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영화에선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원작은 매우 서정적인 작품이다. 그것은 영화가 주로 이몽학-황처사(혹은 견자)-백지의 피상적인 대립 구조에 근거를 둔 반면 원작은 견자의 내면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준익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도 바로 견자의 내면. 시대 자체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한 '개인'의 애수였을 텐데 이는 이준익의 이야기들이 언제나 역사 속에 자리잡고 있음에도 시대보단 개인의 정서를 그리는데 공을 들인 전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이준익이 '왕의 남자'만큼 잘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그러나 원작의 글은 너무나 오묘했고 차분했다. 그것은 푹푹 고아 삶아내는 사골국처럼 차분히 앉아 뜸을 들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다. 2시간 남짓의 시간에 압축하기엔 글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웠고 그 의미는 너무나 거대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무대는 조선의 선조 시대. 바야흐로 임진왜란의 전운이 감돌고 동서인의 당쟁이 극에 달했으며 정여립이 반란하는 등 유사이래 그보다 더한 폐해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시기였다.  

주인공은 한견자(犬子)라는 인물로 본명이 한견주(堅柱)요 또 서자 출신이었다. 견자는 뛰어난 침술가요 전설적 검객인 봉사 황정학을 만나 그를 스승으로 삼게 되는데 이 만남이 의미하는 바가 또 오묘하다.

견자는 신분에 대한 울분으로 사회에 의미없는 분노를 표출할 뿐 마땅히 나아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이다. 반면 봉사임에도 마치 구르미 달을 버서나듯 태생의 저주를 훌훌 털어버린 황정학은 진정한 자유인이요 또 '눈 뜬' 장님이다. 이 눈 뜬 장님 둘이 만나니 비록 '눈 뜬'의 의미는 서로 다를지언정 두 사람의 마음까지 다르진 않았다.  

황정학은 눈먼 병신으로 천대 받았던 경험을 기억하기에 견자의 울분을 이해하고 견자는 황정학의 초월적 능력을 보고 자신의 깨부셔야 할 것은 부패한 나라, 사회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견자의 성장 만화가 된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배경으로 스펙타클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닌 까닭에 만화는 여유가 있다. 명대사들도 견자와 황정학이 나누는 한담 속에 드러나고 그것은 은근히 스며드는 서정시가 되었다가 곧 가슴 전체를 울리는 소리로 퍼져나간다. 영화가 원작을 쫓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고작 팔천원을 내고 감동과 재미와 메시지까지 남겨 가려는 관객들에게 영화는 어느 한 곳에도 집중하지 못한채 조바심 내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대중 예술이란 이렇듯 쉬워 보이면서도 결코 쉽지가 않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삼백원짜리 대여점에서 만나지 않은 건 참 다행이다. 만화가 책장 안에서, 위대한 문학과 나란히 호흡할 수 있다고 믿기에 나는 이 세 권의 만화를 나의 서재에 꽂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림보다 글이 좋은 만화, 그래서 더 오롯이 기억되는 작품.

찌는듯 사람을 볶아대는 이 더위가 마치 견자와 황정학을 괴롭혔던 사회의 굴레처럼 느껴지기에 이 밤, 웬지모를 절절함이 가슴 속에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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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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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들이 '예수'에 집중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무래도 그들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고 했던 예수의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유산계급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인물이 존재했던가? 이 질문의 답을 잠시 미뤄둔다 하더라도 이토록 상쾌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은 인물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관심가져 보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솔직함이 그 어느 시대보다 절실히 다가오는 오늘날에 말이다.  

김규항은 우리 사회의 혁명 실패를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는 영성의 개발이 없는 혁명이다. 그리고 둘째는 영성의 개발에만 몰두하는 혁명이다. 전자는 냄비에 끓이는 밥과 같다. 밑바닥은 다 타서 늘러 붙는대도 윗 부분은 설익어 먹을 수 없다. 반면 후자는 증기를 내뿜지 않는 압력 밥솥이다. 안으로 꽁꽁 싸매고 들어가 아무리 힘을 줘도 뚜껑은 열리지 않는다. 

그러니 해답은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땐 그냥 '중간'에 두고 에둘러 말해 버리면 의외로 위대한 해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공자도 그랬고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랬으며 칸트 또한마찬가지였다. 김규항이도 이렇게 말한다. 혁명은 '사회 변혁과 내 안의 변혁이 동시에 이루어졌을 때 탄생한다'. 고로 좌파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김규항이 이번에 '예수'라는 담론을 자신의 필모그라피에 올리기로 한 것은 그 자신에게는 혁명의 초석이요 필수불가결한 사항이었을 것이다.

'예수전'은 마르코 복음서를 중심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쫓는다. 김규항에 따르면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의 견해'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복음서로 4복음서 중 가장 먼저 씌였고 종교적 첨가가 가장 적은 복음서이다. 

김규항이 마르코 복음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굳이 좌파 기독교도라는 말을 만들어야 할만큼 보수화해버린 오늘날의 교회와 말씀은 김규항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 예수', 진보의 탈을 쓰고 인민을 호도한 짭퉁 지도자들에(바리새인) 대항하고 성전 앞 상인들의 좌판을 뒤 엎으며 분노했고 언제나 빈자와 약자를 대변했던 이 위대한 '아웃사이더'를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예수전'을 통해 김규항이 말하고자하는 유일한 것이다.

나는 한국의 기독교도들은 정말 무식하고 편협하다고 생각한다(물론 나를 포함해서). 이슬람교 심지어 가톨릭까지 싸잡아 사이비 종교쯤으로 말하는걸 보고 있으면 그 무식에 정신이 아연해지기까지 한다.이것은 한국의 종교 교육이 몰이해와 배타성으로 점철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에게 왜 몰이해와 배타성이 필요한 것인가? 그건 이미 거대한 주식회사로 변해버린 한국 교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의 모토는 단 하나. 

남보다 더 많이 고객을(신도) 유치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남의 종교, 심지어 다른 교파 마저도 찢어 발겨야 한다. 몰이해와 배타성은 일종의 마케팅 전략인 것이다.

신도가 돈으로 보이는 교회에서 어떻게 빈자와 약자를 대변했던 예수의 말씀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예수가 재림하여 부와 권력에 맛들인 목사들을 향해 '너희들이 가진 모든 것을 놓고 나를 따르라'고 한다면 누가 과연 예수를 따를 것인가? 그들은 또 한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다.

당신이 꼬박꼬박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헌납하며 좋은 배우자와 직장, 높은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한 기도를 올리기 전에 진짜 예수의 말씀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자. 그리하여 내 안의 진정한 변혁부터 이뤄내자. 그럼 총력전도주일에 가짜 신도의 이름을 적어내지 않아도, 전철역 앞에서 싸구려 커피믹스를 타주지 않아도 복음은 제발로 땅끝까지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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