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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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김규항은 오늘날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냐 아니냐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나쁜 사마리아인'의 저자 장하준을 진보라고 색깔 지울 수는 없겠지만 '신 자유주의'만을 놓고 봤을 때 그는 위대한 진보의 리더가 되거나 적어도 학술적, 정신적 스승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신 자유주의의 핵심은 이렇다. 각자 잘하는 것만 하고 살자는 것. 예를 들어 커피콩 재배가 왕성한 이디오피아나 케냐는 앞으로도 쭉 커피콩 수출에만 힘 쓰고 자동차, 컴퓨터 등이 주 수출품인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 물건들만 팔자는 것이다. 거기다 이런 수출품이 더 많이 팔릴 수 있도록 각 국가의 관세 완화 혹은 무관세 제도를 추가한다.  

이렇게 되면 자본의 중복 투자로 인해 생기는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이디오피아나 케냐는 이미 미국이 잘 만들고있는 자동차, 컴퓨터 생산을 위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감행할 필요가 없고 미국 또한 애꿎은 땅을 갈아 커피 농지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효율적인 경제 시스템 아래 하나가 되는 것. 신자유주의는 이처럼 매력적이고 논리적으로 결함이 없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그런데 왜 난다하는 경제학자 장하준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일까?

신자유주의에 더러운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선진국들이 자국 경제 발전을 위해 강력한 보호무역을 펼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광신도 미국은 개발도상국 시절 지배국인 영국과 유럽 열강들의 우수한 제품들로부터 자국의 공산품을 보호하기 위해 무지막지한 관세 제도를 비교적 최근까지 유지해 왔다.  

자유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은 어떨까? 영국은 낙후되 있던 면직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외국의 기술자들과 기계를 불법으로 빼돌리고 상표권을 침해하기도 했으며-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들이 거품을 물고 떠들어대는 특허권 침해에 해당한다 - 면직물 산업의 선진국에게 양모 수출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런 강력한 국가 개입으로 인해 영국은 면직물 산업을 넘어 다양한 산업을 높은 수준으로 키워낼 수 있었으며 이것이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기반이 될 수 있었다. 더이상 자기 나라에 대항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영국은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바로 전 세계적인 자유주의 무역이었다.

자유주의 무역은 후진국들에게 부가가치가 낮은 원재료(양모, 곡물, 각종 자원 등) 생산에 집중하게 만듦으로써 그들이 중공업, 기계 분야 등 기술집약, 고부가가치 산업 발전에 기울이려는 노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또 낮은 관세 제도는 후진국들에게 이중의 십자가를 지운다. 후진국일수록 세금을 거둬들이는 시스템이 취약하기 마련이다. 이런 국가들이 그나마 안정적으로 수입을 거둘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관세인데 자유주의 무역은 이 관세를 심각하게 낮추거나 심지어 무관세를 유지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후진국들의 정부는 극심한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결국에는 IMF, 세계은행 같은 세계 경제를 이끄는 사악한 악마들에게 국가의 영혼을 저당잡히게 된다. - WTO, 세계은행, IMF는 사악한 삼총사로 불린다 -

IMF는 공짜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막대한 이자를 받아 챙길 뿐만 아니라 원조국의 경제 정책을 직접 계획한다. IMF는 그 동안 원조국이 진행해오던 모든 경제 정책을 뿌리까지 뽑아내고 그 위에 자유주의의 씨앗을 심는다.  

우선 자본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여 외국의 투기 자본들이 우량 기업들을 마음껏 사냥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런다음 유치 산업 장려를 위해 제공하던 각종 국가 보조금 지원 제도를 폐지한다. 이로써 아직 새싹도 틔워보지 못한 고부가가치 산업들은 완전히 궤멸되고 선진국이 원하는 제품만을 생산해야만 하는 산업 구조가 강제된다. 그 다음이 공기업 죽이기다.  

IMF와 미디어는 변화와 개혁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공기업을 지목한다. 따라서 공기업의 개혁을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바로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이로써 국가의 기간망을(전기, 통신, 수도 등) 경영해 오던 공기업들이 외국 자본의 손아귀에 넘어간다. 여기까지 가면 IMF와 신자유주의는 더이상 경제 주권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들의 생존권마저 위협할 수 있는 절박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국방부 선정 불온도서라는 것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이 땅에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쁜 사마리아인'을 보고 나서 생각이 바꼈다. 그들은 매우 정확하고 분별있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그들이 거의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장하준의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불온 도서 목록에 올리지 않은 것을 봤을 땐 감탄할 정도였다.

'나쁜 사마리아인'은 '사다리 걷어차기'의 후속편 격이다. 전작이 각종 통계와 역사 자료로 무장한 논문에 가깝다면 후속편은 소파에 편안히 앉아 TV대신 볼 수 있는 산문에 가깝다. 내용이 같더라도 재미가 있는 쪽이 더 위험한 법이다.  

국방부는 '나쁜 사마리아인'이 가진 '읽는 맛'과 내용에서 반정부 감정의 강력한 파급력을 봤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양서의 기준에 부합한다. 좋은 책이란 자고로 재미, 의미(메세지), 정보가 삼위 일체를 이루는 책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책을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정말 강추다. 아니 강추란 말로는 부족하다. 지극히 평범한 경제학에 문외한인 내가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10점 만점에 100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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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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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어 치웠다. 일전에 진중권을 지식을 대중화하는데 있어 독보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 그의 진가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책을 소개한다. 바로 서양미술사.  

진중권 책의 특징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정리
요약
간지나는 글발

사실 그렇다. 꼭 알아야 한다는 학문일수록 그리고 기초가 되는 분야일수록 그렇게 재미없을 수 없다. 뿌리부터 튼실히 키워야 결국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정작 새벽부터 줄 서서 등록하게 만드는 건 시험에 나오는 것만 콕콕 집어 강의한다는 족집게 과외다.  

물론 진중권을 대중의 입맛에 영합하는 저급한 학원 강사로 치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기엔
그의 주제와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진중권의 주제는 크게 미학과 현대 문화 비평 그리고 정치다. 정치는 100분 토론에서 많이 보여주고 문화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때 그때 쓰는 편이다. 미학은 그의 특기다. 권수가 가장 많고 내용도 제일 무겁다. 따라서 그의 장점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미학은 언제나 미학'사'를 포함한다. 역사는 다양하기 때문에 정리가 필요하고 방대하기 때문에 요약을 해야하며 따분하기 때문에 간지나게 써야한다.

서양미술사 1은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으로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서 중세, 르네상스, 마니에리스모를 지나 바로크, 로코코까지 거기서 한 발 더 뻗어 현대 미술에까지 깃발을 꼽는다.  

여기서 모든 장은 각 시대의 양식들이 갖는 색, 선, 구성의 특징을 설명한다. 진중권에 따르면 '체계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공시적인 접근이다. 한편 고대 미술에서  현대 미술까지의 선형적, 시간적 구분은 필연적으로 양식의 변천 과정을 다루게 된다. '학설사'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통시적 접근이다. 

이로써 그가 주장하는 헤겔의 방법, '논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의 통일이 이 한 권의 책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우리는 미술에 대한 중요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첫째는 그림 자체를 어떻게 보고 읽어야 하는가 이다. 각 시대의 화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선과 색과 구성으로 드러났는가. 이를 통해 우리는 중세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그림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둘째는 그럼 이 그림들이 도대체 왜 시대마다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미술 재료나 기술의 차이에서 오기도 하고 시대 정신, 지각방식의 변화가 반영되기도 한다. 심지어 특정 시대에는 비평이 만들어내는 문화 코드가 변화를 이끌기도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미술과 기술-사회-문화가 관계 맺는 방식을 알게 되며 비로소 미술'사'의 흐름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진중권의 책은 언제나 꽉 차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손에 쥔 것만으로도 모범생이 될 수 있다는 전교 1등의 전설적 노트 필기를 쥔것 같달까? 그럼에도 따분하거나 어렵지 않다는 건 누누이 강조하듯 진중권 최고의 능력인 듯 하다.  

그래서 그의 저작은 잘 만든 대중 문화의 키워드인 '웰메이드'를 연상시킨다. 대중들이 진중권에 열광하는 이유도 어쩌면 품격 높은 대중문화에 대한 찬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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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미학강의
이중텐 지음, 곽수경 옮김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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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고백하자. 내가 어느 순간부터 '~합니다', '~였습니다' 등의 구어체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모두 이중톈 때문이다. 나는 이 사람의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글보다 '말'에 능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고 리뷰를 쓰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던 이유도 말이 아니라 글을 쓰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문체를 바꿔 보았다. 그러고 나자 나는 글을 쓴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가벼운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중톈은 나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안겨준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내가 얻은 것은 작법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미학강의. 이중톈 저작의 최고봉이라 부를 수 있는 이 책을 접한 뒤로 난 미학을 향해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가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인도한 '백토끼' 같았다면 미학강의는 파랑새. 그 어떤 미학서도 따라올 수 없는 절대적 황홀함의 임팩트가 바로 그 이 한 권의 책에 있었다.

이중톈은 중국 CCTV의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삼국지를 강의한 후로 슈퍼 스타가 된 교수님이시다. 그래서 그런지 강의란 이름으로 많은 책을 출간하는데 이 강의들은 모두 구어체로 씌여져 있다. 미학강의도 마찬가지다. 

사실 미학강의를 최고로 치는데는 미학에 대한 통찰, 그 깊이에 대한 탄성에 있기도 하지만, 이같은 구어체 설명을 통해 어떤 어려운 개념이라도 마법처럼 풀려버리고 마는 설명의 묘를 경험 할 수 있다는데 더 큰 이유가 있다.

어디어디 유명한 출신의 선생이라던가 학자라던가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조차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의 현학적인 글과 강의를 해대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학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그저 자기가 보고 들은 어려운 강의와 책들을 되풀이 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중톈은 다르다. 이토록 쉽고 깊이 있는 미학 입문서를 나는 여지껏 읽어 본 적이 없다.

*이 책은 '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칸트와 헤겔의 근대미학을 반환점으로 돈 뒤 마지막으로 예술과 미학의 상관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최초의 질문에 묵직한 답을 제시한다.

마지막 장인 '미학과 미학사의 흐름'은 일종의 부록같은 성격의 챕터로 동서양 철학사의 대략적인 설명이 담겨있다. 그러나 다뤄야할 내용이 워낙 많아 간략한 설명에 그치고 만다. 미학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읽기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 동양 미학사(중국 고전 미학사) 부분은 사상 자체의 심오함에 생소함기까지 한 내용이라 나의 경우 대부분을 건너 뛰어야 했다. 하지만 많은 분량이 아니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앞 장의 내용들을 섭렵하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상당한 미학적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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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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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혹은 알고 있는 것을 정말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이를테면 당신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MB에 대한 분노가 순수하게 당신의 마음 속에서부터 발현된 감정이냔 말이다. 그저 옆에서 나쁜 놈이라고 떠드니까 덩달아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장담할 수 있겠지 그는 누가 봐도 나쁜 사람이니까.

질문이 어리석었다. 그럼 이건 어떤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이것은 미술인가? 백이면 백 미술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럼 그렇게 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잠시 동안의 침묵. 르네상스라는 단어라도 떠 올린다면 다행이다.  

그러고 나선 더듬더듬 '천재로 불린 화가의 작품이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사실 나도 어릴 때는 모나리자가 예쁜걸 몰랐는데 사람들이 최고의 미소라고 하니까 어쩐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그 유명한 비평가들보다 잘났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옛날에 어떻게 저런 정교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걸까 하는 감탄이 들기는 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훌륭하다. 이제 편히 쉬자.

그런데 당신이 '모나리자'를 미술로 판단하는 근거는 결코 미학적 관점에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장인 정신,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어느 화가의 천재적 '기술'에 대한 경의에 가깝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슈퍼 컴퓨터가 묘사 대상을 초정밀 스캔하여 Photoshop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초고해상도 프린터로 출력한다면 그것을 미술로 부를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슈퍼 컴퓨터의 작품을 미술로 부르지 않겠다면 동시에 '모나리자'도 미술로 취급해선 안된다. 당신이 제시한 모나리자의 예술성도 단순히 묘사 기술의 우수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문제인가? 좋다. 백번 양보해서 모나리자를 미술이라고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술에 대한 당신의 감상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당신이 '알고 있는' 모나리자에 대한 감상은 당신이 '모나리자'라는 미술 작품을 직접보고 그것과의 교감을 통해 이뤄낸 감성적 체험이 아니다.  

설령 당신이 루브르 박물관에 가봤다 하더라도 그 작품은 진품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만약 당신이 가짜 작품을 보고 이런 체험을 얻었다면 과연 진품과 짭퉁,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기준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예술에 대한 가치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상에 따라 정해지고 루브르의 가짜 모나리자를 본 당신의 감상을 진짜라고 인정한다면 내 책상 앞에 붙여둔 컬러프린트판 '모나리자'와 진품 '모나리자'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올레! 우리도 지금 당장 부자가 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모두 누군가의 주문에 의해 그림을 그렸고 그 결과물은 주문자의 집이나 성당에 걸리는 인테리어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는 장인의 공예'품'에 지나지 않았지만 미술관과 미술 비평 그리고 경매장으로 요약되는 근대 문화의 발명품들이 그것을 미술로 만든 것이다. 그럼 다시 한번 질문해 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것은 미술인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모나리자는,

미술이 아니었다.

지금까지가 이 책이 주장하는 주요 내용이다. 책의 저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는 위와 같은 이유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작품, 이집트의 피라미드, 승리의 여신 니케 조각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인도의 시바상 이 모든 것들이 미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Matrix를 파괴하는 Neo와 같은 책이다. 오랜 시간동안 켜켜이 쌓인 미술에 개념, 그 고착된 체제를 뚫고 보여주는 싱싱한 관점은 미술과 미학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새 지평을 열어 준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화, 그리고 그것을 통해 결정되는 사물의 가치에 대한 통찰은 이 책을 한 권의 미술서를 뛰어넘어 위대한 철학서로서까지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대한 점은 이 책이 누구나 술술 읽을 수 있는 쉬운 문장으로 씌여졌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들이 이렇게 쉽게 씌여졌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더 훌륭해 질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와 그리고 번역가는 정말 기막힌 작업을 해냈다. 판타스틱한 경험이나 볼거리를 제공했을 때 현대 사회의 속어는 그것을 '예술이다'라고 표현하던가? 그럼 다음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래와 같다. 이 책은 예술인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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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세트 - 전3권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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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라고 하면 100분 토론에 나오는 말 많고 신경 거슬리는 사람쯤으로 알겠지만 사실 그의 직업은 미학자다.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미학'을 강의하는 곳이 서울대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중권이 다니던 당시에는 그랬다. 서울대에서 미학을 공부, 동대학원 석사 그리고 미학을 위해 독일에서 10년간 유학. 전공은 발터벤야민. 그러니 진중권은 한국에 몇 안되는 진짜 미학 전공자인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는 '미학 오디세이'라는 책을 썼다. 못 들어본 사람이 많거나 제목은 들어봤으나 안 읽어본 사람이 많거나 대부분이 이런 사람들일텐데 이 책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팔려 진중권에게 '자가용 비행기'를 안겨준 유명한 책이다. 현재까지 1, 2, 3권이 나와 있고 앞으로 더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4, 5, 6권이 나온다면 나로서는 더 없이 즐거운 일이지만 2년째 보관함에만 담겨져 있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 될테지.
 
미학이라는 건 철학의 한 분야다. 고대 철학들은 선악의 기준과 미추의 기준이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미학=철학 이었고 미학의 역사는 철학의 역사와 동일했다. 그래서 세상의 유명한 철학자들은 모두들 미학에 대해 한 마디씩 했다. 미학이라는 말에서 난해함과 함께 딱딱한 건조함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들 덕분 일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미학은 바움가르텐이라는 새 아버지를 맞이하게 된다. 바움가르텐은 미학을 논리와 이성으로 논증해야만 하는 철학의 금고에서 꺼내 감성의 영역으로 되돌려 주었다. 이제 미추는 감성과 직관에 의해 누구나 논할 수 있는 친숙한 개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학은 오해에 둘러 싸여 있다. 지난 5년간 정말 줄기차게 미학 오디세이를 권했지만 지인 중 그 누구도 쉽사리 이 책을 집어 들지 못했다. 심지어 몇 권씩이나 직접 선물한 적도 있었으나 지금 그 책들이 잘 살아 있는지 시원한 봄 햇살은 커녕 형광등 불 빛이나마 본 적 있는지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 하나 만큼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지식을 대중화하는데는 우리 나라에서 진중권만한 사람이 없다. 이건 사실이다.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이 지식 소매상을 자처하지만 내가 볼 때 진짜 지식 소매상은 진중권이다. 정치적 내공은 딸릴 수 있으나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 엉킨 실타래 처럼 복잡한 이야기를 술술 푸는 재주는 저 '항소이유서'의 유시민도 진중권을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진짜 강추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움베르토 에코의 두꺼운 미학서들을 생각하면 안된다. 그네들의 책이 무시무시한 학술서라면 미학 오디세이는 영화 잡지 씨네21쯤 되는 책이니까.

*미학 오디세이 1, 2, 3권은 고대에서 근대에까지 이르는 미학의 발전사를 개괄하고 있다.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으며 오히려 흥미진진 신나는 미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이 사람도 역시나 쓰기 보단 말하기에 능한 사람 같은데 읽기 쉬운 글은 결코 사상의 깊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달변의 재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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