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고양이가 길목에서 마주친 나를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피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서 삶과 대면하는 듯.....

                    계속된 한파에 움츠러든 나는

                    머플러 속에 얼굴을 묻으며

                    고양이를 외면하고 걸었다

                    고양이는 찬바람이 부는 골목에서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렸던지

                    작심한 듯 나를 뒤쫓아왔다

                    내가 멈추면 따라 멈추고

                    걸으면 따라 걸었다

                    이상한 생각에 뒤돌아봤을때

                    축 늘어진 젖무덤이 보였다

                    삶의 생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기막힌 암흑!

                    나는 집으로 달려가 밥솥을 열었다.

 

                                                   /'고양이', (P.48)

 

 

 

                       동질(同質)

 

 

                     이른 아침 문지메시지가 온다

                    -나지금입사시험보러가잘보라고해줘너의그말이

                     꼭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기를 생명처럼 잡고 있는

                     절박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신도사람도 믿지 않아

                     잡을 검불조차 없었다

                     그 긴장을 못이겨

                     아무데서나 꾸벅꾸벅 졸았다

 

                     답장을 쓴다

                    -시험꼭잘보세요행운을빕니다!

 

                                                         / '동질(同質)', (P.104)

 

 

 

                      멀리서 오는 편지

 

 

 

                     -서울 생활은 왜 그리 바쁘기만 한지 늘 쫒기는 기분으로 지내

                     게 되는데, 그래도 이곳에서는 이런저런 옛날 일도 들춰 보게 되고

                     그리운 것들도 생각납니다

 

 

                     일본 사는 친구는 일본에선 편지를 쓰지 않는다

                     그의 편지는 영국,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독일에서 날아온다.

                    서울 사는 화가 친구도 로마에 가야만 편지한다

                    지천으로 핀 양귀비꽃이 얼마나 고혹적인지

                    밤비는 마음의 어느 구석을 적시는지

                    쓴맛을 물고 있던 예민한 혀처럼

                    떠나가면 어떤 일을 가장 먼저 잊게 되는지

                    어느때 정신이 멍하도록 되살아나는지

 

                    떠난자들은 촉촉하고 보드랍다

                    먼 곳에선 달처럼 둥실 떠오르는 것들이 있나 보다

 

                                                       /'멀리서 오는 편지', (P.95)

 

                                                                            

                                                             - 조은 詩集, <생의 빛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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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9 2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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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9 23: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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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미풍

 



         육체는 슬프다,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달아나리! 저곳으로 달아나리! 미지의 거품과 하늘 가운데서
         새들 도취하여 있음을 내 느끼겠구나!
         어느 것도, 눈에 비치는 낡은 정원도,
         바다에 젖어드는 이 마음 붙잡을 수 없으리,
         오 밤이며! 백색이 지키는 빈 종이 위
         내 등잔의 황량한 불빛도,
         제 아이를 젖먹이는 젊은 아내도.
         나는 떠나리라! 그대 돛대를 흔드는 기선이여
         이국의 자연을 향해 닻을 올려라!
         한 권태 있어, 잔인한 희망에 시달리고도,
         손수건들의 마지막 이별을 아직 믿는구나!
         그리고, 필경, 돛대들은, 폭풍우를 불러들이니,
         바람이 난파에 넘어뜨리는 그런 돛대들인가
         종적을 잃고, 돛대도 없이, 돛대도 없이, 풍요로운 섬도 없이......
         그러나, 오 내 마음이여, 저 수부들의 노래를 들어라

 

 

                                                     -스테판 말라르메, '시집'- 에서

 

 

 

 

 

 

 중학교 때, 백일장에 나가 이 詩에 관한 글을 써서 장원을 하였다.

 그 나이때 뭘 알아서 글을 썼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여전히 모를뿐이다.

 단지,

 '육체는 슬프다,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만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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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위니의 집에 새 컴퓨터가 도착했어요. 위니도 신이 나고 고양이 윌버도 뭔가 재미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위니는 플러그를 꽂고,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를 클릭했어요.

 

 "마우스야, 너의 재주를 보여 줘!"

 윌버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윌버의 눈에 마우스는 전혀 생쥐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위니는 인터넷에 접속을 했는데, 윌버가 자꾸 마우스를 툭, 툭 계속 건드리고 있어요. 마우스란 녀석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새 지팡이를 주문해야 하는 위니는 슬슬 짜증이 나 윌버를 밖으로 내놓아요. 비가 내리고 있는 줄은 몰랐으므로. 쫒겨난 윌버는 하는 수 없이 비를 쫄딱 맞으며 집안을 들여다보니 위니는 잔뜩 신이 나 있습니다.

 위니는 새 요술 지팡이를 주문하고 나서, www.웃기는 마녀.com으로 들어가 배꼽 잡게 웃기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깔깔깔!"

 수염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윌버는 울면서 '야아옹! 야아아아옹이라니까!". 하지만 위니에게는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요.

 

 

 그때, 뚝뚝뚝뚝 지붕이 새서 빗물이 위니의 방 안으로 떨어졌어요. 새 컴퓨터가 비에 젖어 망가질까봐 위니는 '지붕 고치기 주문'을 외우기 위해 마법 주문책과 요술 지팡이를 온 집안을 다 뒤져 찾아요. 마침내 찾아내 지붕을 고친 후, 위니에게는 근사한 생각이 떠 올랐어요.

 

 

 "내 마법 주문들을 모두 컴퓨터에 저장하면, 마법 주문 책이 필요 없겠지? 그럼 요술 지팡이를 휘두를 필요도 없을 거야. 클릭 한번만 하면 다 될테니까.'

 

 

 새 컴퓨터에 마법 주문을 모두 입력하고 난 위니는 "어디 한번 시험해 볼까? 그런데 뭘 해 본담?"

궁리하다 윌버를 들어오게 해  "옳지! 윌버를 파란 고양이로 만들어 봐야지."하며 마우스를 클릭하자 윌버가 파란 고양이가 돼버렸어요.

 '윌버야, 이제 나한테는 마법 주문 책도, 요술 지팡이도 필요 없어."

 위니는 결국 책하고 지팡이를 내다 버립니다. 청소부 아저씨가 치워 가니까.

 

 

 그날 밤, 윌버는 위니가 잠들기를 기다려 살금살금 아래층으로 내려가 그 마우스란 놈을 자세히 보려고 툭 쳐봤지만 아무일도 안 일어나네요.

 윌버는 '야아아옹, 그르렁!" 호통을 치면서 마우스를 움켜지고 위로 홱 던진 다음, 한 바퀴 데구르르 굴렀어요. "번쩍!" 컴퓨터가 켜졌고 '번쩍!" 윌버가 새파랗게 변했습니다. 번쩍! 번쩍! 번쩍!

 

 

 단잠을 푹 잔 위니는 아침밥을 먹으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윌버를 찾는데 윌버는 아무데도 없어요.

 그러다 컴퓨터 방을 열어보니 윌버도 없고 컴퓨터도 사라졌습다. 위니는 마법 주문 책을 찾다가, 쓰레기통에 버린 생각을 하고 마당으로 뛰어 나갔는데... 쓰레기차가 저 멀리 떠나 버리네요.

 

 

  그때 트럭 한 대가 대문으로 들어 왔습니다.

 

 

  '아이코, 다행이다! 새 요술 지팡이가 왔어!'

 위니는 새 요술 지팡이를 꼭 쥐고 한 번 휘두르고는 소리쳤어요. "수리수리 마하수리 얍!'

 그러자 마법 주문책이 쓰레기차에서 쌩하고 튕겨 나와 붕 하고 날아와서는.....위니의 품에 툭 떨어졌어요. 위니는 집 안으로 쌩하니 들어가서는 사라진 것들을 되돌아오게 하는 주문을 찾았어요. 그런 다음 두 눈을 질끈 감고 요술 지팡이를 네 번 흔들고는 소리쳤죠. "수리수리 마하수리 얍!"  마침내 컴퓨터하고 윌버가 되돌아왔어요.

"좋았어. 아직 쓸모가 있군." 위니는 마법 주문 책과 요술 지팡이를 선반에 두었어요.

그리고 말했죠. 

"생각해 보니 굳이 버릴 것까지야 없겠어. 언젠가 또 필요할지 모르니까."

 

 

 

 

 

 

' 마녀 위니'를 처음 읽었을 때가 언제였더라, 어제 '마녀 위니의 겨울'을 읽다 생각하니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메인에' 마녀 위니시리즈'를 검색해 보니, 아, 1996년에 처음 읽었구나. 그리고 그때 함께 읽은 그림책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그래그래, 참 재밌고 행복하게 읽었었지.

 

 위니는 컴퓨터로' 마법 주문 책'을 저장해놓고, 나는 그 '마녀 위니'를 처음 읽은 날을 검색해 본다.

 그때는 아직 인터넷 서점들이 생기기 전이라 발품을 팔며 책방에 가서 책들을 펼쳐보며 샀을 것이다. 언젠가, 새로 생긴 동네 서점에서 책을 몇 십권 사서 택시를 타고 오려하니까 그때 마침 그 책방의 사장님이 지나가다 자신의 차로 울집까지 배달해 준 추억도 생각난다. 요즘 같아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런 일도 있었구나.

 

 일상이 가끔  우울해지는 날, '마녀 위니'의 이야기들을 읽으면 위니와 함께 다시 마음이 씩씩해지고 유쾌해진다. 다시 쌩쌩해진다.  하하~그래서 나는 '마녀 위니'가 참 좋다.

" 고맙다, 마녀 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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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8 17: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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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8 2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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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도 마음도 눈사람 같이 차갑다.

 그래서 마녀 위니의 집으로 마실을 갔다.

 

 마녀 위니는 긴 머리 꼬랑지에

 노란 리본을 묶고 항상 털이 뻐쳐있는 까만 고양이 윌버와 "난 겨울이 싫어." 외치다, 갑자기 머릿속.. 촛농이 흐르는 촛불을 켜듯 커다란 요술 책을 펼쳐 놓고는 꼼꼼히 읽는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가 "수리수리 마하수리 얍!" 외쳤다. 그러자 마녀 위니의 집으로 해가 밝게 빛나고, 하늘은 새파랗고, 해가 내리쬐는 여름이 되었다. 

 위니는 털옷이랑 푹신푹신한 모자랑 겨울 장화랑 장갑을 벗고, 목도리를 풀고 의자를 가져와 마당에 두고, 햇볕을 쬐었다. '멋져.' '여름이 훨씬 좋아!'

  그런데 동물들은 겨울잠을 자다 깨어나서, 몸이 몹시 찌뿌드드하고, 꽃들은 해가 너무 뜨거워 모두 시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몰려와  마당에 우글거렸다. 얼마 안 있어 마당에는 마녀 위니와 고양이 윌버가 발 디딜 틈도 없게 되어 와글와글, 뒤죽박죽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위니와 윌버는 집 안으로 들어가 창밖만 내다 본다.

 

 

 -위니가 만든 멋진 여름은 끔찍했어요. 그 때, 위니는 또 다른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요.

  딸랑딸랑..... 누군가가 마당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어요. 마녀 위니는 몹시 화가  났어요. 위니는 요술 지팡이를 움켜잡았어요. 위니는 방 바깥으로 잽싸게 달려나갔어요. 발을 동동 구르고, 눈을 감고, 열까지 세고, 요술지팡이를 다섯 번 휘두르면서 소리쳤어요. "수리수리 마하수리 얍!" 해가 사라지고 파란 하늘이 사라지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집으로 잽싸게 달려갔어요. 작은 동물들은 집으로 돌아가 다시 겨울잠을 잤어요. 꽃들은 땅 밑으로 들어가 봄을 기다렸죠.-

 

 

 나도 다시 집으로 들어가, 따뜻한 초콜릿 우유를 만들고 빵을 구워 먹고 싶다.

 그리고 침대 속에 들어가 편안히 눕고 싶구다. 갸르릉~거리는 윌버의 숨소리를 들으며.

 "아, 따뜻하고 아늑해." 위니가 말했어요. '겨울도 멋져!"

 

  그래 겨울도 멋져. '그곳이 어디든.'

 

  내일은 위니의 집으로 새 컴퓨터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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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1-07 20:30   좋아요 0 | URL
전 마녀위니 영어책으로 한권 읽어봤는데, 완전 정신없더라구요.ㅎㅎ
그런데도 재미있긴했어요. 한글로는 어떨지 도서관에 한번 살펴봐야겠어요

appletreeje 2013-01-07 22:07   좋아요 0 | URL
ㅋㅋ, 마녀위니가 원래 정신없잖아요~~^^
보슬비님의 서재 덕분에 제 알라딘 생활이 더욱 행복하고 충만합니다~~
너무 감사드려요~~^^
보슬비님! 행복한 밤 되세요.*^^*

프레이야 2013-01-07 20:37   좋아요 0 | URL
마녀 나오는 책은 다 재미있더라는 기억이ㅎㅎ

appletreeje 2013-01-07 22:10   좋아요 0 | URL
예~~마녀가 나오는 책은 다 넘 재미있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갭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과 '툴툴 마녀는 생각을 싫어해'
파울로 코엘료의 '프로토벨로의 마녀', 루이스의 '사자와 마녀의 옷장'을 재밌게 읽었어요.
프레이야님! 빨리 페이퍼좀 올려주세요~~
프레님의 사유 깊고 따뜻한 글을 읽는 일이 얼마나 제게 큰 기쁨인데요.
아마 이것은 모든 알라디너님들의 기다림일거예요^^
좋은밤 되세요~~^^
 

 

 

            지도를 찾아서

 

 

 

             녹색 오렌지로 태양을 그리는 아이들은 어디 있나

             바다를 술로 만드는 마술은 어디에 있나

             망루에서 죽은 자에게 멋진 묘비를 세워주는 도시는

             어디 있나

 

             어디에 있나......코르크 마개처럼 가볍게

             제가 빠져나올 술병 속에서만 떠도는 영혼은

             어디에 있나

             핏자국 얼룩진 제 모포로만 상대의 누런 얼룩을 덮어주는

             다정한 의사당은 어디에 있나......

             가던 사람들이 죽은 정어리처럼 꼼짝 않고 서서 바다를

          찾는 도시는

             자기만의 하얀 무지개로

             소년들이 목을 매는 철탑은

 

             어디에 있나

 

             무덤에 뿌려진 꽃송이를 씨앗으로 바꾸는 마술사는

             신문이 시처럼 읽히는 둥근 십자로에서

             못 박히는 시간들은

 

                                       -진은영 詩集, <훔쳐가는 노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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