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聖) 물고기

 

 

 

                       기어이 가야 할 그 어딘가가 있어

                       여울목을 차고 오르는 눈부신 행렬 좀 보아

                       잠시만 멈추어도 물살에 밀려 흘러가버릴것이므로

                       아픈 지느러미를 파닥여야 하네

                       푸른 버드나무 그늘에서조차 눈 감지 못하네

                       오롯이 지켜야 할 무엇이 있어

                       눈 뜨고 꾸는 꿈은 얼마나 환할 것인가

                       그 아득한 향수가 아니고서는 비늘이 온통 은빛일 리가

                    없지

                       뉘우침이 많은 동물이어서

                       평생을 물에 제 몸을 씻으며

                       물고기는 한사코 길을 간다네

                       온몸으로 물을 뚫고 길을 내지만

                       이내 제 꼬리지느러미로 손사래를 쳐 지워버리네

                       지나온 길은 길이 아니라네

                       제 몸 길이만큼만이 길이어서

                       발자국도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네

                       화살촉 같은 몸짓으로 말하네

                       살아 있는 물고기만이 비린내가 없다고

                       그러나 그것만이 살아야 할 이유는 아니라는 듯

                       묻고 있네

                       네 가슴에도 천국의 지도 하나쯤 품고 있느냐고

                       낚시 바늘에 얹힌 한 끼 식사에 눈길 주지 않은

                       몇 마리 물고기

                       거친 물살에 제 살을 깎으며

                       강을 거슬러 오르네  (P. 12 )

 

 

 

 

                        한 손

 

 

 

                        간도 쓸개도

                        속도 배알도 죄 빼내버린

                        빈 내 몸에

                        너를 들이고

                        또 그렇게 빈 네 몸에

                        나를 들이고

                        비로서 하나가 된

                        간고등어 한 손    (P.50 )

 

 

 

                                                    - 복효근 詩集, <따뜻한 외면>-에서

 

 

 

 

     집의 어항에서 며칠 전, 새끼물고기가 몇 마리 태어났다.

     그런데 블랙테트라 한 놈이 계속 새끼물고기들 주위를 맴돌며, 주변의 다른 물고기들이

     오면 달려가 쫓아낸다. 신기한 일이다.

     보통 물고기들은 새끼를 낳아도 그냥 별 관심을 안 갖는데

     이 놈은 희한하게도 계속 새끼들을 내려다 보며 끊임없는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치어들은, 따로 산란통에 넣어 베이비먹이를 주고 키우는데 이 블랙테트라의

     유별난 모성애에 그냥 놔두니 하루 이틀이 지나자 두 마리가 죽고, 헹갈레의 특징인

     검은 점이 보였다.  블랙테트라의 새끼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따로 남은 새끼들이라도

     살리려고 산란통으로 옮겼는데, 그 블랙테트라는 여전히 새끼들이 있었던 그 자리에서

     먹이도 먹지 않고 새끼들을 찾고 있어 자꾸 마음이 쓰인다.

     왜 그놈은 자기 새끼도 아닌 물고기들을 자기가 엄마인양 그랬을까.

     오늘 복효근의 <따뜻한 외면>,이란 시집이 와서 읽노라니 유독 이 '성(聖) 물고기' 와 '한 손'이

     마음에 스민다.  

     거친 물살에 제 살을 깎으며 강을 거스르지도 못하는 나의 물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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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4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4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5 0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5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13-02-15 12:30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 가면 있을까요? 복효근이란 시인의 이름도 저 시도 모두 처음이에요.
따뜻한 외면-이라니, 펼치기도 전에 일렁거려요, 나무늘보님.

appletreeje 2013-02-15 18:22   좋아요 0 | URL
시집 신간이라 아직 없을 것 같아요.
희망도서로 신청해 보시면 어떠실지요.^^
복효근 시인의 시는, 몇년 전 '직립'으로 처음 만나 좋았었는데
다시 만나게 됐네요.^^
따뜻한 외면,정말 마음이 일렁여요.*^^*

드림모노로그 2013-02-15 13:03   좋아요 0 | URL
와 역시 시인의 눈은 간고등어 한 손을 보고도 시가 되는군요 ..
모든 것을 비웠을 때 한 몸이 된다는.. 묘한 울림이 전해집니다.
성물고기와 태어난 새끼물고기, 묘한 대조가 이루어지네요
나무늘보님 정말 멋진 조화예요 ^^ 완전 감동 으아 ~ +_+

appletreeje 2013-02-15 18:27   좋아요 0 | URL
우리 드림님의 '눈빛'에 언제나, 경탄을 하고
저야말로 또 완전 감동을 받습니다.~~^^
드림님! 행복한 저녁 되세요.*^^*

2013-02-16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7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 도서관

                      -최승자

 

 

 

                     오늘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렸다

 

                     되도록 허름한 생각들을 걸치고 산다

                     허름한 생각들은 고독과도 같다

                     고독을 빼앗기면

                     물을 빼앗긴 물고기처럼 된다

 

                     21세기에도 허공은 있다

                     바라 볼 하늘이 있다

                     지극한 無로서의 虛를 위하여

                     허름한 생각들은 아주 훌륭한 옷이 된다

 

                     내일도 나는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리리라

 

 

 

                                              -<문학사상> 2010년 8월-

 

 

 

 

  김영태 詩人이 그린,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최승자의 캐리커처를

  물끄러미 보다가 이 '하늘 도서관'이 생각났다.

  '허름한'이란 말에 마음이 가는 날이다.

  허름한, 이란 형용사가 남루하지 않고 왠지 따스하기도 한

  겨울, 저녁이 하늘에서 내려 오는 時間.

  내일도 나는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려야겠다.

 

  이 '하늘 도서관'은 2011년, '천년의 시작'에서 출간된

  <물위에 씌어진>에도 수록되어 있다.

 

  -쓸쓸한 날에는 장자를 읽고, 더 쓸쓸한 그런 날에는 술을 천천히

  마신다. 始源을 그리워하면서, 눈에 보이는 꽃들이 어제 생겨난 듯 하고 동시에 천만년 전부터 그렇게 환하게 피어 있는 듯한 순수한 환희와 환희를 가득 풀어줄 어떤 始源性을 그리워하면서 술을 천천히 마시는 것이다.-라고 쓴 '시인의 말'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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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3-02-13 17:48   좋아요 0 | URL
지극한 無로서의 虛를 위하여 허름한 생각들은 아주 훌륭한 옷이 된다
우와 ~ 감탄이 나오네요 ~ 나무늘보님 덕에 늘 좋은 시를 만나는 것도 제 복입니다 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

appletreeje 2013-02-13 18:07   좋아요 0 | URL
아이쿠, 수정중에 다녀가셨네요.^^;;
언제나 드림님의, 핵심을 포착하시는 視線이 놀랍군요.
드림님께서도 좋은 저녁 되세요.^^

2013-02-13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3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13-02-14 09:09   좋아요 0 | URL
'고독을 빼앗기면
물을 빼앗긴 물고기처럼 된다'
오늘 온종일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다니겠어요.
나무늘보님, 오늘도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요.

appletreeje 2013-02-14 22:33   좋아요 0 | URL
앤님! 행복한 밤 되세요~~^^
 
그래도 사랑하라 - 김수환 추기경의 영원한 메시지
전대식 엮음.사진 / 공감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나의 책장에서 여전히 웃음을 짓고 계시는 추기경님의, 언제나 따듯한 사진을 본다. `사랑을 주는 일은 나의 마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가장 인간다운 행위입니다.`말씀을.. 오늘도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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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지나온 발자취의 지도를 그린다는 것, `그렇다니 다행이다. 누군가 나랑 같이 있었고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게 말야.` 겨울을 지나가면서 이 좋은 책을 추천해주신, 보슬비님께 큰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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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2-15 14:55   좋아요 0 | URL
담요는 보고싶었던 책인데 찜만 해 놓고 아직도 구매 못했어요.^^;;
별이 다섯 개! 꼭 봐야겠네요.^^

appletreeje 2013-02-15 18:31   좋아요 0 | URL
언제 기회가 되시면 꼭 보셔요~~^^
저도 보슬비님 덕분에 이 책을 읽어 너무 감사했어요.*^^*
 
고기 - 어느 도살자의 이야기 작가의 발견 6
마르틴 하르니체크 지음, 정보라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1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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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차갑게 냉각된 독일 맥주 한 캔으로, 급박했던 느낌을 진정시켰다. 특히 이 책의 저자인 하르니체크에 대해 큰 관심을. `타인의 삶` 같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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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2-14 22:25   좋아요 0 | URL
독일 맥주도 맛있지만, 체코 맥주도 맛있답니다. ㅎㅎ'필스너 우르겔'과 '감부리너스' 발견하고 요즘 좋아서 자주 마셔서요. 저희는..(책과 상관없이 맥주에 대한 이야기를.. 쿨럭..)

appletreeje 2013-02-14 22:43   좋아요 0 | URL
ㅎㅎ 롯데마트에서 세일을 하길래, 왕창 산 맥주에요~~
오~~담에는 '필스너 우르겔'과 '감부리너스' 찾아서 마셔야겠어요.ㅎㅎㅎ
보슬비님 덕분에 즐거운 독서와 더불어, 행복한 음주생활을..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