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호박 집
이분희 지음, 김이조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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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끝이 서늘한 어느 날, 이는 듬성듬성 빠졌지만 팔팔하고 에너지 넘치는 누덕 할매가 세상에서 가장 큰 누렁 호박을 발견하고 어찌할까 고민하다 도끼로 껍질을 까고 식칼로 껍질을 잘라내고 주걱으로 호박 속을 파내어 멋진 호박 집을 짓고는 첫눈이 내리는 밤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반달곰이 그루터기를 선물로 갖고 찾아 오고, 눈이 더 많이 내린 다음날엔 봄 털갈이 때 빠진 털을 모아 짠 담요를 집들이 선물로 가져온 여우 가족이 찾아오고 계속 숲속 동물들이 저마다 조그마하지만 소중한 선물들을 갖고 와, 겨우내 할머니의 죽과 떡과 전과 범벅 호박 식혜 등을 먹으며 지내다, 세상에서 가장 큰 호박이 껍질만 남자 함께 떠났지만, 다시 호박은 싹이 트고 자라 세상에서 가장 큰 호박이 되었답니다! 무기력한 날에 누덕 할매를 만나니 절로 에너지가 불끈. 우리도 각자가 지은 호박 집에서 호박 속을 아낌없이 잘라내어 몸도 마음도 배고픈 친구들과 신나게 함께 하면 참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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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 창비시선 532
송진권 지음 / 창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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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始原)의 회귀로서의 여기 이 자리. 아스라한 그림자 같은 속엣말 같은 누에고치에서 뽑아져 나오는 비단 같은 향언(鄕言)들이 낭출낭출 ‘서로를 부르며 함께 있으려는 마음‘처럼 ‘패랭이꽃처럼 생생하‘게 아득하고 그윽하게 무작위로 흘러가는 절창의 詩集. ‘이윽고/ 물이 잠잠해지고/ 여기 살았을 적 내 얼굴이 떠오른다/ 한없이 몸이 물러지더니/ 물이 나를 품는다/ 나는 사방팔방으로 즐겁게 흘러간다‘ (150쪽,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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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살을 반성함





1

 스물다섯살, 카피라이터 일할 때 농약 광고 많이 만들었

지. 아직도 잊히지 않는 상표....고올, 키타진..... 배추 한

포기 키워보지 못한 사람이 흰소리를 막 했다네. 잡초와 해

충을 말끔히 없애 준다고, 일등품 수확을 약속한다고. '밝아

오는 농어촌' 그런 프로에 날마다 광고를 했네. 박수를 받았

네, 카피 잘 쓴다고.



2

농부들 곧이듣고 콩밭에 파밭에 마늘밭에 고추밭에

배밭에 사과밭에..... 흘리지 말고 먹어라

흠씬 뿜고 뿌리고 듬뿍 쏟고 부으며

풍년을 그렸을 거야



이 나라 순박한 흙과 나무들, 순순히

들이켜고 마셨겠지, 풀도 나무도

저 죽는 약이란 걸 알면서도

가만히 머금고 삼켰겠지

농사가 딱해서

농부가 가여워서



"우리에게 약 먹인 자가 저기 간다"

저무는 국도 변 저수지 둑길

늙은 전답, 검버섯 들판이

목덜미를 잡네



여전히 농약병 구르고 검은 비닐 날리는

농수로 다리 위에 차를 세우고

나, 참회의 문장을 

땅에다 묻네



용서하십시오, 죽는 약인 줄 몰랐습니다

나도 죽는 줄 몰랐습니다   (P.18)






시민 김창수씨





김연수 명창은 판소리 한바탕의 끝을 으레 이렇게 맺었다



"고수(鼓手) 팔도 아플 것이오.

김연수 목도 아플 지경이니

어질더질"*



남산 공원 백범 동상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누가 날 좀 지상으로 내려다오

나를 올려다 보는 사람들 목도 아플 것이오,

김구 팔도 아플 지경이니"



평생 누구도 내려다본 일 없는 시민 김창수씨를

높다란 돌 받침 위에 외로이 올려 세운 것은

잘못한 일이다

허공중에 한 팔을 치켜들고 있게 한 것은

송구한 일이다



서울 시민 김창수씨는

해방 조국의 공원

긴 의자에 앉아

뺑덕어미나 곽씨 부인이 건네는 인절미를 먹으며

소풍 나온 향단이 이야기를 듣거나

남대문 시장 계단참에서

딴 사람이 된 흥부의 형과

은퇴하여 시민으로 돌아온 변학도씨와

담배 한대 나누어 피기를

소망했다      (P.30 )






트럭을 타고 온 사람





1

그해 오월 광주 사진에는 부처님 오신 날

광고탑과 현수막이 보인다


오셨을까? 안 오셨을까?


의견은 둘로 갈릴 것이다

- 오셨다면 그 난리가 났겠어요?

- 오셨어요,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2

사실은 이렇다, 그분은 다녀가셨다



황금 가사는 무등산 깊숙이 숨겨두고

서둘러 변복을 하고

머리띠를 두르고 총을 잡았다

당신이 본 사진 속

그 사람이다


웃통을 벗어부치고 깃발을 흔들었다

피 묻은 청년을 들쳐 업고 내달렸다

가두방송을 하고 구호를 외쳤다

당신이 들었던

그 목소리다


겨우 총성이 멎고. 집으로 혹은

다른 세상으로

모두 흩어지고 난 아침에

비를 들고 광장을 쓸었다



3

여러 큰절에서 연꽃 처소를 마련해놓고

서로 모셔 가려 했으나

그는 너릿재 넘어가는 트럭을 타고

굳이 이 골짜기에 와

누웠다     

화순 운주사  (P.38 )






표표히 떠나가는





 등장인물 한 사람이 조용히 퇴장했다. 심야에 119를 불러

타고 무대 밖으로 아주 나가버렸다. 내 인생의 갈림길

마다 길을 가리켜주던 중요한 인물이 예고도 없이 빠진 것

이다



 남은 사람들 모두, 대사는 적었으나 작별의 인사는 그윽

했다. 당신으로 인하여 스토리 전개가 느려지고 느슨해지긴

했지만, 덕분에 봄날의 노들강변 소풍객처럼 평화로웠다면

서 흐느꼈다.



 우이동 솔밭 풍경은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컷백으로 끊

임없이 반복 되던 회상 장면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

서부영화에서 배운 것처럼, 표표히 떠나는 자의 가는 곳

이 남는 자의 세상보다 당연히 멋지고 행복할 것이라고 믿

기로 한다.



 술을 사러 가야겠다. 내 인생에서 사라진 등장인물과 줄

어든 내 배역을 위하여 여러 잔을 마셔야겠다 그가 떠남으

로 나또한 해고 되었으니.     (P.59)






이모는 약속을 지켰다




"자리 잡으면 연락할게"



먼 길 떠나는 사람들이 곧잘 던지고 가는

이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영 소식이 없으면 아직도 자리를 못 잡았거나

아주 잊어버린 까닭이라 생각하자


제법 잘 지켜지는 약속도 있다



"먼저 가보고 좋으면 부를게"



삼년 전에 저 세상으로 간 언니가

자꾸 부른다며, 엄마가 먼 길을 갔다

혼자 갈 수 있다며

언니가 마중 나오기로 했다며

새벽길을 갔다



이모는 약속을

지켰다



좋으니까 불렀을 것이다   (P.54 ) 




/ 윤제림 詩集, <스물다섯살을 반성함>에서








   [시인의 말]




   헌 기계는 가게로 가게에 있던 기계는

   옆에 새로 난 쌀가게로 타락해가고

   어제는 카시미롱이 들은 새 이불이

   어젯밤에는 새 책이

   오늘 오후에는 새 라디오가 승격해 들어왔다

                                      - 김수영[금성라디오]



이것이 저것을 저만치 밀치고,

오래지 않아 또다른 무엇이 와서

저 자리의 주인이 된다.

점입가경, 타락과 승격이 순식간이다.

폭포의 전율과 급류의 공포가 마을로 내려오고

꽃과 나무들조차 성실 근면의 미덕을 버렸다.

산신령이 집을 잃고

물귀신이 거처를 구걸하리라.


위태로워라, 사람의 자리.


멀리서 휠덜린이 말한다.

"근심하고 섬기는 일,

시인들에게 맡겨진 일이로다."


만신(萬神)과 손을 잡아야겠다.


시인과 무당은 이쪽저쪽 두루 통하는

우주의 엔터테이너.


할 일이 더 늘 것 같다.


                                      2026년 입춘 즈음

                             남산 시옹암(是翁庵)에서

                                                 윤제림






반가운 시인의 반가운 詩集이, 진달래 동산처럼 반갑게 봄처럼 도착했다. 가슴을 광광 울리는 아름답고

너른 들판 같은, 풍성하고 뜨겁고 다정한 마음들의 合唱 같은 시공간의 회귀와 희망에 대한 노란 손수건들 같은

詩들 덕분에 뱃머리 오색 깃발처럼... 덕분에 사노라면 가끔씩 찾아오는 작은 근심들을 잠시 여기 내려놓는다.

좋은 시집을 읽는 기쁨을, 토요일의 봄맞이 술 한 잔으로 벗해야겠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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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의 노래





모차르트를 높여놓고 설거지를 한다

세제 향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설거지에는  설거지의 도가 있어

먼저 더운물에 그릇을 불리고

거품을 일으켜 애벌 씻은 다음

부드럽게 헹구고 물을 찌워

마른 행주로 닦아 말리면 뽀송해진 그릇들이 좋아한다

어느 과정 하나 소홀하면 안 되고

깊고 얕고 넓고 좁고 그릇에겐 그릇의 품성이 있어

마땅히 예로써 존중해야 한다

아내는 내가 설거지를 해놓으면 좋아한다

어떤 때는 그릇에 얼룩이 그냥 있다거나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고 해도

그러한 지적으로 나의 공부는 나날이 깊어간다

애들이 식기세척기를 사준다 해도

기계는 일은 알지만 살림의 도리를 모르고

마지막으로 행주를 짜 널고

바라보는 재계(齋戒)의 기쁨을 모른다

어떤 날은 이 일 말고 하는 일이 없기도 하지만

그릇을 닦는 일은 세상을 닦는 일이고

나의 경계는 나날이 높아간다  (P.104)






숲속의 의자





누가 숲속에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쉬었다 가기도 했지만


어떤 날은 산이 쉬었다 가고


어떤 날은 바람과 나무가


어떤 날은 고요가 앉아 있기도 했는데


많은 날들을 저 자신이 앉아 있었다  (P.78)





/ 이상국 시집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 中










山으로 가는 어느 길목, 이층에 카페가 있었다. 테이블 다섯에(그중 하나는 주인장의 투명독서대가 놓여 있는 자리이고) 피아노와 악기와 책들과 사진과 그림들이 빽빽하게 놓여 있는.

성악을 전공하고 이러저러한 음악과 공연을 하고, 서울 알만한 교회 성가대 지휘자도 하였는데 어느 날 부조리한 이유로 해임이 되고 그래서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지만 교회를 떠났고, 어느날 2층에 1인 카페를 내고, 하루종일 재즈가 흐르는 그 작은 숲속의 옹달샘 같은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듣고 혼자 冊을 읽다가 밤 11시에야 문을 닫고 끝나는 그런 조용한 카페. 지인들과 아주 맛있게 내려 주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갈 때마다, "사장님!" 부르면 정색을 하며 "난 사장 아니다. 그냥 '설거지 하는 놈'이다." 하곤 했는데 우리는 그럼 '설거지 하는 님'으로 "설님!"이라 낄낄대며 호칭을 하곤 했는데, 구석구석 아름다운 풍경과 한밤의 낮고 반짝이는 조명 빛 아래서 바흐도, 모차르트도, 재즈도, '술과 장미의 나날'도 혹은 '시가 될 이야기'도, 노랑 수선화가 피어 있는 실내에서 가곡 '수선화'도 여러 성악가들의 목소리로 고요함 속에 숨죽여 들었던 마치 애니메이션 속 같은 그런 운 좋은 사람들만 누렸던, 탐미주의 에겐남이 언제나 자신을 '설거지 하는 놈'이라고 지칭했던 공간과 시간과 사람. 詩人의 이 詩를 읽다가 문득 주인장 생각이 떠올라 미소 짓는 '수행자의 노래'. 

왜 맨날 한사코 자신을 '설거지 하는 놈'이라 자칭했는지 왠지 알 것도 같은 '설님'에게 이 시를 들려 주면 좋아할 것 같았네.

이제는 '그대의 창에 등불 꺼지고'로 종료하였지만, 같은 아티스트인 그대의 눈 밝고 어여쁜 따님이 오늘도 '새 발자국(Turning Page)'으로 많이 운 날은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오늘도 열심히 '중꺽마'의 정신으로 걸어가고 있으니 잘 지내시길.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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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태원 참사 3주기. 유족들에겐 영원히 지속될 슬픔의 날 일 것이다. 부모들에게, 타인들은 잊으라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공허한 위로. 부모에게 자식에 대한 날마다의 기억은, 내 목숨이 딱 끊어지는 그날이라는 말을, 가장 사랑하는 친구에게 다시 듣는 밤.

'놀러 가서 죽은 청년들' 이야기가 아니라, 인파 관리만 제대로 했어도 모두 살았을 국가 부재로 인한 사회적 재난이었음을 거듭 인지하며 지금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파면된 세상에서 자식들이 허무하게 죽은 일의 진상 규명을 희망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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