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쟁이

 

 

 

                  비 개인 뒤 소금쟁이를 보았다

                  곧 바닥이 마를 텐데, 시 한 줄 쓰다 마음에 걸려

                  빗물 든 항아리에 넣어두었다

                  소금쟁이가 뜨자 물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이 되었다

                  마음에 소금쟁이처럼 떠 있는 말이 있다

                  가라앉지도 새겨지지도 않으면서 마음 위를 걸어다니는 말

                  그 말이 움직일 때마다 무심(無心)은 문득 마음이 되었다

                  잊고 살았다 그러다 열어 본 항아리

                  그 물의 빈 칸에 다리 달린 글자들이 살고 있었다

                  마음에 둔 말이 새끼를 쳐 열 식구가 되도록

                  눈치채지 못했다. 저 가볍고 은밀한 일가를 두고

                  어찌 마음이 마음을 지우겠는가

                  내 발걸음 끊었던 말이 마음 위를 걸어다닐 때

                  어찌 마음이 다시 등 돌리겠는가

                  속삭임처럼 가는 맥박처럼 항아리에 넣어둔 말

                  누구에게나 가라앉지 않는 말이 있다  (P.13 )

 

 

                                       -박지웅 詩集,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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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2-08 01:44   좋아요 0 | URL
바닥이 마를까 빗물든 항아리에 소금쟁이를 담은 시인의 마음이 참 이뻐요.

appletreeje 2013-02-08 09:07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시인의 마음도 참 이쁘고 그 시인의 마음을 보시는
보슬비님의 마음도 너무나 예쁘십니다.^^
저는 가라앉지도 새겨지지도 않으면서 마음 위를 걸어다니는 말,들 때문에
어젯밤 이 시를 읽었어요.
보슬비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그렇게혜윰 2013-02-08 09:24   좋아요 0 | URL
트위터 나무늘보님이시군요! 반가워요^^
전 @hye_yuum!

appletreeje 2013-02-08 23:3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근데 알고 계시는 분이 아닌듯 합니다.
저는 트워터를 안 하는데요.^^;;
책만먹어도 살쪄요님! 명절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그렇게혜윰 2013-02-23 20:02   좋아요 0 | URL
어멋....죄송합니다^^;
냉정히 내치지 않고 친절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appletreeje 2013-02-23 22:37   좋아요 0 | URL
어멋...뭐가 죄송하세요~~?
저는 그저 책만먹어도살쩌요님이 오신게 너무 반가운데요.^^
책만먹어도살쪄요님! 행복한 주말 되세요.*^^*

후애(厚愛) 2013-02-10 14:14   좋아요 0 | URL
마음에 드는 시에요!
담아가야겠어요.ㅎㅎ
시를 무척 좋아하시나 봅니다.^^

appletreeje 2013-02-10 16:32   좋아요 0 | URL
예~이 시, 참 좋지요~?
저에게 시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게 해 주는 타이레놀 같아요.
그때그때의 느낌에 따라, 거기에 맞는 시들을 읽게 되는 것 같아요.

후애님! 편안하고 즐거운 명절연휴 되세요.*^^*
 
동양학을 읽는 월요일
조용헌 지음, 백종하 사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조용헌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글은 내게 유효하다. 매설가의`독만권서(讀萬券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로, 우리 시대의 희로애락을 동양학의 간명한 통찰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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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 18: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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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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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걸음.. 젖은 달빛같은 책.`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마음씨가 곱고 정이 깊은 그림들이라서 그렇다. 그 정을 찾아 베풀고 싶은 소망이 이 책에 도사리고 있다. `그림 밭을 일군 옛 사람의 붓농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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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 18: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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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2-08 01:49   좋아요 0 | URL
나무늘보님 덕분에 좋은 책을 알게 되었네요. 도서관에 있어서 책배달 신청해두었어요.^^

appletreeje 2013-02-08 09:21   좋아요 0 | URL
손철주 선생의 해박한 식견과 문체, 해석으로 우리 옛그림을 정답게
볼 수 있어서 참 좋아요.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도 좋구요.^^

참, 보슬비님께서 추천해주신 '담요' '고기' '교육천국, 쿠바를 가다'도 오늘 아침에 왔어요~~^^ 보슬비님 덕분에 이번 구정에 좋은 책들 읽게 되어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쉬어도, 그 무엇을 사도,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정희재 지음 / 갤리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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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란 내 자신의 가치와 신념이 아닌, 사회가 강요하는 트랜드나 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괜찮아. 대세에 지장 없어. 각 안 잡고 살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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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집

                         신동엽 시인의 옛집에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도

                      마당에 피워놓은

                      모닥불은 훨훨 탄다

                      삼십 년 전 신혼살림을 차렸던

                      깨끗하게 도배된 윗방

                      벽에는 산 위에서 찍은

                      시인의 사진

                      시인의 아내는 옛날로 돌아가

                      집 앞 둠벙에서

                      붉은 연꽃을 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옛 백제의 서러운 땅에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모닥불 옆에서 훨훨 타오르고 있는

                      몇 개의 굵고 붉은 낱말들이여   (P.82 )

 

 

 

 

                         가난한 사랑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 없이 뇌어보지만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P.32)

 

 

                                         -신경림 詩集, <가난한 사랑노래>-에서

 

 

 

 

 

          농무(農舞)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파장(罷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신경림 詩集, <農舞>-에서

 

 

 

 

        신경림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詩集이 <農舞>였다.

        우리는 '파장(罷場)'의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를 읇으며, 낄낄거렸던가.

        그때는 그랬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운 시간이라 믿었던.

        출간 25주년 기념으로, 절판 되었던 시집 <가난한 사랑노래> 를 특별판으로 읽으니 새삼,

        요즘의 네트워크 세상이, 아니, 이 시집의 詩들이 새삼스러운 이 느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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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5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05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02-06 09:45   좋아요 0 | URL
신경림 시인의 글을 구수한 향토냄새가 나네요 ^^
잊고 있었던 향수 같은 .. 부끄럽지만 한번도 신경림 시인의 시를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이번기회에 사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오늘 눈이 많이 와서 그런지 시가 그리웠는데 ㅎㅎㅎ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하다고 두려움이 없겠는가
젊은 날의 방황이 떠올라. 애잔해집니다 ^^
좋은 시 감사합니다 ~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appletreeje 2013-02-06 10:05   좋아요 0 | URL
드림님께서는 이성도 감성도 풍부하신 것 같아요~~^^
드림님의 댓글로, 詩의 귀절을 읽으니
더욱 이 시의 절절함이 와 닿는 듯 합니다.

드림님! 늘 감사드리며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드림모노로그 2013-02-06 13:33   좋아요 0 | URL
ㅎㅎㅎ 먼저 허락을 구했어야 하는데
가난한 사랑노래는 제 블로그에 퍼갔어요 ㅋㅋ
제가 모르는 것들을 많이 알려주시는 나무늘보님 ㅋ
정말 감사합니다 ^^ ㅎㅎ

appletreeje 2013-02-06 19:39   좋아요 0 | URL
아유~~잘 하셨습니다~~^^
신경림 시인의 詩가 드림님 덕분에 더 많은 분들께
행복을 주셨을테니까요.^^
드림님! 행복한 밤 되세요.*^^*

블루데이지 2013-02-06 14:52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 특별판 구입했어요!
예전 시집을 이사 할때 잃어버려서 가끔 집나간 형제찾든 그리워했었거든요!ㅋ
이번 시집도 얼릉 제 손때 묻혀 제꺼로 만들려구요^^
appletreeje님께서 적어놓으신 시들 제가 좋아하는 시라서
반가운 마음에 댓글남겨요! 오늘 즐거운하루되셔요! 감사합니다.

appletreeje 2013-02-06 19:01   좋아요 0 | URL
댓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늘 블루데이지님의 사려깊고 다정하신 글,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집나간 형제찾든 그리워했었'거든 이란, 말씀이 참 좋습니다.

블루데이지님! 행복한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