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찾아서

 

 

 

             녹색 오렌지로 태양을 그리는 아이들은 어디 있나

             바다를 술로 만드는 마술은 어디에 있나

             망루에서 죽은 자에게 멋진 묘비를 세워주는 도시는

             어디 있나

 

             어디에 있나......코르크 마개처럼 가볍게

             제가 빠져나올 술병 속에서만 떠도는 영혼은

             어디에 있나

             핏자국 얼룩진 제 모포로만 상대의 누런 얼룩을 덮어주는

             다정한 의사당은 어디에 있나......

             가던 사람들이 죽은 정어리처럼 꼼짝 않고 서서 바다를

          찾는 도시는

             자기만의 하얀 무지개로

             소년들이 목을 매는 철탑은

 

             어디에 있나

 

             무덤에 뿌려진 꽃송이를 씨앗으로 바꾸는 마술사는

             신문이 시처럼 읽히는 둥근 십자로에서

             못 박히는 시간들은

 

                                       -진은영 詩集, <훔쳐가는 노래>-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표지의 일러스트 그림 같은 책.` 빽 투더 퓨쳐`같은 시공간을 넘는,`누군가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서 써 보낸 답장`과 서로가 서로에게 인생의 지렛대가 되는 신기한 기적의 문을 여는 우편함같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쾌한 풍자를 통해, 독서의 전복적인 힘과 하나의 책이 어떻게 우리를 다른 책으로 인도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책‘. 아울러 ‘책을 읽는 사람‘ 자체가 ‘일반적이지`않음을 내포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수영씨 어딨소?

 

                              

 

          갑작스레 원고 청탁이 오거나

          글을 써야 하는데 도무지 써지지

          않을 때 김수영 시집을 찾게 된다

          집에는 백석과 이상과

          테라야마 슈지와 보르헤스도 있는데

          왜 꼭 김수영이야 하는지 나도 모르지만

          달나라의 장난감을 팔아먹는 일도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시를

          긁적거리는 일도 수십 년 전 눈빛이

          유난히 형형했던 시인이

          이미 예기(預期)했듯 모두

          팽이처럼 도는 일상에 불과할

          뿐이라서가 아닐까 혁명도 되지 않고

          한쪽 손잡이가 떨어져나간 밥솥도

          바꿀 수 없는 일상 속에서

          갑갑스레 원고 청탁이 오면

          이 우연한 싸움만큼은 한번 이겨보고

          싶어서 김수영을 찾는다

          혁명도 이미 끝내버렸고 거즈도

          보기 좋게 접어놓고 잠든 시인을

          오늘 밤도 다리 뻗고 잠들긴 글러버린

          시인 나부랭이가 감히 질투한다

 

 

                           - 성미정 詩集,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에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진 2013-01-05 19:27   좋아요 0 | URL
아... 김수영 시인님.
저도 김수영 시집을 찾으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이겨보고 싶기 때문에 찾아야 겠습니다.

appletreeje 2013-01-05 22:10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서..어젯밤에 이 詩를 읽었어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이런 귀절이 있더군요.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소이진님! 행복하고 충만한 밤 되세요.*^^*

드림모노로그 2013-01-06 14:23   좋아요 0 | URL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서재를 두리번 거리곤 해요 ㅋㅋ
그런 행위가 이상하게 위안이 된다능 ㅋㅋ
나무늘보님이 올려주시는 페이퍼는 늘 감동이네요 ^^ ㅎㅎ

appletreeje 2013-01-06 23:08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자신이 마음 가는 곳에 있으면
위안이 되지요. 위안이 되는 곳이 누구에게라도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밤이에요.

드림님의 마음이 늘 감동이시라 그래요~`^^
전 드림님의 방문이 더욱 감동인걸요^^
평온하고 행복한 밤 되세요.*^^*
 

 

 

         주머니가 많은 옷

 

       

         주머니가 많은 옷을 보면

         재경이는 너무 좋아 실눈이 되는구나

         주머니가 많은 옷을 좋아하는 너를 보면

         엄마는 지레 걱정이 앞서는데

         저 많은 주머니를 주렁주렁 채우고 살려면

         힘들고 피곤 할텐데 저 많은 주머니를

         채우지 못해 맘 상하면 또 어쩌나 엄마는

         네게 주머니 많은 옷 사줄 때 늘 망설이지만

         재경아 지금 네겐 주머니가 많은 옷이

         참 좋겠구나 주머니 하나에는 알사탕을

         또다른 주머니엔 친구들에게 나누어줄

         스티커를 또 다른 주머니에는 놀이터에서

         갖고 놀 작은 장난감을 나머지 주머니에는

         무엇을 넣을까 짱구머리를 갸웃거리며

         궁리하는 네겐 주머니가 많은 옷을 사주어도

         좋겠구나 작은 열매들처럼 볼록 튀어나온

         너의 주머니들은 아직 엄마 걱정처럼

         무겁지 않으니

 

 

 

         고 작은 주머니에 어울리는 작고 귀여운

         것들이 가득 찬 너의 주머니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래그래 이까짓 커다란 주머니

         채우지 못해 안달복달하다 제 풀에

         쪼그라들 그런 주머니 다 무슨 소용인가

         너와 함께 있는 오늘 엄마는 그런

         주머니를 잠시 잊고 주머니가 많이 달린

         너의 옷을 기꺼이 산다 엄마의

         주머니를 털어서

 

 

 

                      -성미정 詩集,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에서-

 

 

 

   뭔가, 마음이 녹록해지고 싶을 때면 성미정의 詩를 읽는다.

   나도 주머니가 많은 옷을 좋아했던 것 같다.

   주머니가 없는 옷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어쩌다, 주머니가 없는 옷을 입게 되면

   어디 도망칠 구멍이 없는 그런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이 詩를 읽으며 문득 이젠 내 옷의 주머니가 언제부턴가, '숨어있기 좋은 방'이 아닌

   잊혀진 방이 되었음을 만난다.

   이제 내 주머니에는 빛깔같은 알록달록한 설레임이나 두근거림은 다 사라져버리고

   무심히 쑤셔넣은 영수증이나 접혀진 지폐, 카드나 동전만이 언제 불쑥 손이 들어와 나갈

   시간을 기다릴 뿐이다.

 

   에이 씨 괜히, 슬프다. 간직할 게 별로 없게 된 이 삶이,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3-01-04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4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01-05 15:57   좋아요 0 | URL
아아, 좋으네요. 성미정! 담아갑니다.^^
옆사람 주머니에도 손 살짝 넣어보고 싶은 계절이에요.

appletreeje 2013-01-05 17:29   좋아요 0 | URL
아아, 반가운 프레이야님께서 오셨네요~~
지난 한 해도 감사했습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역시 프레이야님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분이세요.
저는 제 주머니만 생각했는데 프레님께서는 '옆 사람 주머니에도 손 살짝
넣어보고' 싶으시다는. 전 오늘 이 말씀, 듬뿍 마음에 담아둘래요^^
행복한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