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 김갑수의 살아있는 날의 클래식
김갑수 지음 / 오픈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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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매우 straight하게 말해서, 이 책은 참 지겨운 책이 되어버렸다.  몇 가지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있다.  


1. 힘겹게 쓰인 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용을 억지로 채웠다는 뜻이 아니라, 달변가인 김갑수씨가 막상 글을 쓰면서는 생각보다 고심하고 고민하면서 조금씩 써내려간 것이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


2. 매니악한 취미.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음반과 오디오기기, 그리고 커피에 미쳐 살아가는 김갑수씨의 책이니만큼, 클래식 이야기와 가끔씩 커피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작업실'어쩌고 한 책보다 훨씬 더 음반과 가수, 작곡가, 연주가, 지휘자의 이야기로 두꺼운 책 한 권을 채웠는데, 이게 상당히 고난이도인 것이다.  독재정권의 근대공립학교 교육의 햇살을 받고 자라난 사람처럼 나도 대략의 유명한 이름은 알고 있다.  슈베르트, 베토벤, 슈만, 쇼스타코비치, 차이코프스키, 하이든, 모차르트 등등.  그런데 이분은 유명한 고전음악의 대가의 곡을 그냥 듣는 것이 아니다.  연주자나, 악단, 음반, 지휘자, label등의 변별요소들과 유명한 곡을 곱하면 나올 엄청난 종류의 음반에서 이것 저것 빼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흥미로운 그의 신변잡기는 거의 빼놓고, 음악이야기만 하니 정말 미치겠더라.  음악을 들으면서 읽는 것도 아니고, 도통 reference가 되지 않는 주제의 책을 읽어내는 것은 고역이었다.  물론 그의 탓이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워낙 모르는 것이 많은 내 탓이다.


3. 그의 상태.  끄트머리로라도 40대라고 주장할 수 없게된 50대의 늘어짐.  그의 지인이 아니라서 속사정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간 July Hall을 드나드는 인간들 중 일부에겐 꽤 여러 번 데인 것 같다.  'PS. 나이 들면 절대 연애 감정 풍지 말자. 야나체크처럼 망신만 당한다. 앞에서 웃고 딴데 가서 비웃고 흉보는 젊은 그녀들' pg. 209

아직 조영남처럼 완전히 모든 것을 던지지도 못했고, 그처럼 완변하게 자기자신에 빠져 있지도 못한 일견 순수해보이기까지 하는 김갑수의 속맘.  근데, 나이가 들면 사실 아리따움, 아니 어쩌면 젊음 그 자체에 끌려 어린 처녀들이 예뻐보이기는 할게다.  다만, 거기서 멈춰야지.  그녀들이 반한건 김갑수씨의 지식과 커피, 클래식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것들이 다 모여있는 그의 서식처, July Hall이지 김갑수씨가 아닌게다.


아! 이 매니악한 아저씨의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문학수 기자의 책을 들춰내다가 아마존과 알라딘에서 거금을 들여 reference된 CD를 주문했다.  스트리밍과 다운로드가 양분한 음반시장에서 점점 처리된 재고때문에 좋은 음반을 괜찮은 가격에 구할 수 있다고 한 김갑수씨의 말에 혹해서, 이리 저리 뒤적거리다가 결과적으로는 '괜찮은'가격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여러 음반을 사들인 것.  애꿎은 지갑만 가벼워졌다. 


정말 김갑수처럼 작업실을 하나 갖고 싶다.  여기에 내가 가진 책과 음반, 영화, 게임소프트를 몽땅 때려박아 놓고, 가끔씩은 두문불출하고 싶다.  fancy한 기기도 필요없고, 멋진 커피머신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그렇게 세상에서 인공적이지만, 잠깐이라도 격리되어 지내고 싶은거다.  


책에서 언급된 것들은 정말 좋은 음반일것이다.  김갑수씨의 안목을 아니 믿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상당히 주관적이지만, 요즘 세상에 그렇게 전투적으로 음반을 듣고, 클래식을 호흡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일전에 문학수 기자의 책을 바탕으로 5-6장의 CD를 사들여 해당하는 항목에 맞춰 정리했다.  꽤 재미있는 작업인데, 다음 주에 resume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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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1-2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투적으로 음반을 들으면서 클래식을 제대로 호흡하려면 현실에서 그에 필요한 노력, 시간과 비용 등과 비례하는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텐데 저자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네요. 결국 자신이 선택하는 문제로 귀결될 수 있겠지만…

transient-guest 2016-01-23 09:59   좋아요 0 | URL
이분은 다른 취미가 없고, 돈이 생기면 음반, 기기, 커피에 지출된다고 하더라구요.ㅎㅎ 김갑수씨의 레벨이 되면 취미보다는 삶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전 그의 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ㅎㅎ

oren 2016-01-23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흔치는 않지만 `클래식에 미쳐 사는` 사람들이 결코 생각보다 적지는 않을 꺼라는 짐작도 해 봅니다. 클래식을 즐기는데 무슨 엄청난 `물적 설비`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물론 엄청난 설비를 갖춘 사람들도 더러 있긴 하더라구요. 제 친구 한 녀석은 `음악 감상`이 여의치 않은 자신의 사무실에만 하더라도 고급 외제차 두 대를 사고도 남을 만큼의 돈을 들인 장비를 갖춰놨더군요. 그게 10년 전쯤 얘기인데, 그 녀석은 결국 자신이 주업으로 하는 일 말고도 `명품 오디오 기기 수입 판매업`까지 병행하고 있더군요. 저는 그 친구보다는 `장비`가 훨씬 허접해도 수천 장의 LP판을 자랑삼아 보여주던 또다른 친구가 더 부럽더라구요. 가끔씩 막걸리나 쏘주를 몇 잔 걸치고 나면 `**야, 울 집에 음악 들으러 올래? 보고 싶다, 자슥아~` 하던 그 친구는 `자기만의 방`이 따로 없어 좁은 거실을 온통 앰프와 스피커와 턴테이블과 CDP와 음반들로 가득 채워 놓고 살거든요. 몇몇 오래된 희귀 음반들은 벌써 한 장에 `돈 백만 원` 가까이 나가는 녀석들도 있어서, 나중에 돈이 다 떨어지더라도 막걸리 사먹을 돈은 충분하다면서 너스레를 떠는 녀석이지요. 저는 요즘엔 TV를 도통 거의 보지 않아서 김갑수 님을 잘 모르는데(얼핏 본 듯도 하구요..) 님의 글을 읽으니 이 책에 급한 관심이 생기네요... 제겐 이 글이 마치 `어떻게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있겠니?` 하는 다급한 호소처럼 거꾸로 들리네요.... 거 참...

transient-guest 2016-01-23 10:05   좋아요 2 | URL
김갑수씨의 책을 보면 꽤 많더라구요, 그 정도 수준으로까지 클래식에 미쳐있는 분들이요.ㅎㅎ 다만 이분의 책에서 다뤄지는 분들은 물적설비도 대단한, 취미 이상으로 소리찾기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았지요. 저도 클래식을 즐기지만, 미니컴퍼넌트도 좋고, 라디오 기기에 붙은 CD player만 되어도 행복해합니다.ㅎㅎ 물론 작년엔가 구입한 휴대용 턴테이블에 LP를 올려놓고, 잠시 빠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음악이 최고입니다만.. ㅎㅎ 연장선상에서 좋은 기기와 LP만을 고집하는 것도, 또 엄청난 지식과 감별능력을 갖게 되는 것도 대단한 것 같아요. 길라잡기 책으로는 문학수 기자의 책이 저는 더 차분하고 친절하게 느껴져서, 그 책에서 소개된 음반을 하나씩 모아서 책과 비교하면서 듣고 있어요. 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도 추천합니다.ㅎ 지인 말씀하시니 예전에 소리를 찾다가 LP에서 오디오 카세트로, 방송용 테이프로, 거기서 LP를 비디오테이프에 녹음해서 듣던 누군가가 생각나네요.ㅎㅎ 가장 아날로그적으로 완벽하다고 하면서..ㅎ

cyrus 2016-01-23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이 쓴 <지구실의 작업실>인가요? 아무튼 그 책을 군대에 있을 때 읽었습니다. 이 책 때문에 군대 밖에 있는 것들이 많이 그리웠습니다. 너무 그리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ㅎㅎ 저자의 생활이 제가 원하는 삶의 방식과 유사했거든요. 군 생활 동안 읽은 책 중에 읽어서는 안 될, 위험한 책이었습니다. ㅎㅎㅎ

transient-guest 2016-01-23 17:37   좋아요 0 | URL
정말 힘드셨겠네요.ㅎ 저도 딱 맞아떨어지는건 아니지만, 이렇게 저만의 공간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저 맘편히 혼자 숨어들어갈 수 있는 곳...ㅎㅎ 그런게 하나 필요해요.

몬스터 2016-01-23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문불출에 제 맘이 그냥 콱...

transient-guest 2016-01-24 09:34   좋아요 0 | URL
가끔 그렇게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죠. 저는 하루의 일정한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싶네요.ㅎㅎ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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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모 레비는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서 2차대전이 끝나가던 무렵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부가 망한 후에 이루어진 독일의 침공으로 인해 수용소로 끌려갔던 사람이다.  여기서의 경험과 유대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책을 썼는데, 모든 것을 그렇게 다 털어냈다고 생각하던 무렵 갑자기 자살한 사람이다.  서경식 교수는 쁘리모 레비가 죽은 후 그 자취를 따라 또리노를 돌아다닌 후 이 책을 썼다.  여러 모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서경식 교수를 통해 다른 이들을 만나는 것은 책에서만 찾게 되는 즐거움인데, 문제는 서경식 교수, 그리고 그가 다루는 주제나 인물의 특성상 즐거움은 씁쓸함을 함께 가져온다는 점이다.


악한 사람들을 타자화하여 욕하는 것, 즉 그들은 괴물인 "이해의 바깥"에 존재하는, 이성을 초월한 괴물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쉬운 방법으로 어떤 사건이나 행위를 이해하는 것이다.  서경식 교수가 쓴 이 말 (살짝 paraphrase한)을 본 순간, 그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피로감과 절망감의 원인에 조금은 다가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괴물이 자기 자신이나 다른 보통 사람들과 같은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어찌될까..."  '병신년의 얼굴들'이란 제목으로 올린 어떤 사진속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들 또한 집에 가면 누군가의 엄마이고, 할머니이고, 아내일 것이란 생각에 아뜩해지는 건 이런 이유다.  


일전에 서경식 교수가 쓴 "내 서재 속 고전"을 보는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이유는 그의 삶 내내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차별과 멸시, 이에 못지 않은, 모국에서의 시선, 게다가 학내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국내 공안세력이 조작한 북한 스파이 사건으로 구속되어 고문 받고, 재판을 받은 후 실형을 살았던 두 형들을 생각하면, 그의 인생에서 반대쪽에 서 있는 저편의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는...그야말로 심신을 갉아먹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는 쁘리모 레비에게 있어 독일인을 악마가 아닌 사람으로 바라보면서,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펑범성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그를 "소통 불능의 깊은 균열 속으로 빠져"들게 했음을 서경식 교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사 청산과 화해를 부르짖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음은 매한가지.  거기다 타자화도 어려운 그들은, 너무도 평범한 선의를 가장하는 그들은  상황을 교묘하게 왜곡하여 피해자를 가해자로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킨다.  이런 사례는 재일조선인인 서경식 교수가 너무도 잘 알고 있고, 그간 일본의 우익정치인들과 이 땅의 친일파와 독재부역세력을 경험한 우리도 또한 너무 익숙하다.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그때는 '시대'가 좋지 않았고 '전쟁'은 그런 것이며, 일부의 '광신적 군인'이 폭주한 것이지 국민도 (왜왕)도 이 '사실을 몰랐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공생'을 위해서는 서로 '원한'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때 서경식 교수는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원한'을 품는 이유를 얼마든지 댈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서로'라는 말이" 수상하게 느껴진다.  이런 자들은 한국이나 왜를 가리지 않고 "실제 '증오'의 원인이 된...현실을 개선하려고 하기는커녕 가해자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고, 상처를 치유할 수 없는 피해자에게" 과거를 잊으라고, 다 털어버리라고 강요한다고 한다.  이게 일본의 우익이나 소위 온건중돈만의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고, 가끔은 이유도 없이 분노하고 잔인한 생각을 하게 한다.


하나씩 서경식 교수가 저술한 책과 그가 소개한 책들을 읽으면서 천천히 이 가슴아픈 역사를 깊이 가슴에 새길 것이다.  선행학습을 통하여 미리 피로감을 느끼는 체험을 통해, 아무리 심각하고 긴 반동의 세월을 살더라도, 더 나이가 들어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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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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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영화도 보았다.  언제나 그렇다고 보는데, 영화가 책보다 더 나은 경우는 드물다.  이 경우도 영화가 꽤 괜찮기는 했지만, 책의 세밀한 묘사와 다소 느리지만, 역시 훨씬 더 차분하고 꾸준한 전개를 영화라는 매체의 시간적인 제약 때문인지, 많이 잘라낸 부분이 이미 책을 읽은 사람이 보기에는 조금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그래도 맷 데이먼의 연기는 늘 훌륭했고, 다른 조연들도 다들 이름값을 하는 배우들이라서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내가 만약에 마크 와트니처럼 혼자서 극한환경에 갑자기 남겨진 상태였다면 아마도 패닉과 안정을 거쳐 일종의 포기를 하고 그저 최후의 순간이 추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선에서 딱 주저앉았을 것 같다.  물론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이 워낙 질겨서 이런 저런 수단을 강구할지도 모르겠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전제가 따르는데, 일단 매우 충실했고 강도가 높았을 반복훈련, 모든 것을 혼자 해낼 수 있는, 역시 훈련을 통한 지식습득, 그리고 한 가지 이상의 practical한 전문지식이 기본적으로 탑재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은 정말 약한 존재인데, 가끔씩 Discovery채널에서 해주는 Survivorman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오지에 남겨지면 2-3일 안에 죽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또다른 얘기라서 반복훈련이 누락된 지식습득은 이런 갑작스러운 극한상황에서는 크게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추운 것과 더운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늘 추운 것을 선택한다.  벗는 것은 한계가 있고, 더운 날씨에는 아무리 벗어도 덥기 때문이고, 추운 날씨에는 그럭저럭 옷을 껴입고 무엇인가를 덮고 있으면 따뜻해질 수 있기 때문인데, 지구에 가까운 태양계의 행성들 중 금성보다는 화성이 미래이주계획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 같다.  화성보다 훨씬 가까운 금성은, 태양과의 거리가 지구보다 조금 더 가까운 덕분에 사람이 살 수 없는 엄청나게 뜨거운 곳이니까 (여기에 비하면 단테가 묘사한 지옥은 산들바람이 부는 공원에서의 산책 같을 것이라고 아시모프가 (비슷한 소리를) 말한 것이 기억난다).  어쨌든, 미국을 선두로 한 선진국의 우주항공계획은 내가 60-70대가 되는 시점에는 사람을 화성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테러와 극우의 준동이 약속이나 하는 것처럼 서로를 자극하고 보완해가는 것이 21세기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것 같은 마당에, 그나마 무엇인가 조금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이다, 우주로 간다는 것은.  NSAS뿐 아니라 Space X를 비롯한 민간기업도 이 경쟁에 뛰어들어 초기의 열세를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와트니가 살아 남았던 것은 계속 무엇인가를 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희망에 가득차 있다가 절망하는 조울을 반복했더라면 그는 죽었을 것이다.  농사를 지었던 것도, 매일 하루의 일과를 만들어 처리했던 것도, 꾸준한 시도를 했던 것도 그 자체로 와트니를 살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저 그렇게 계속 움직였기 때문에 그 와중에 새로운 것을 찾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런 행동이 모여서 그를 헤르메스호로 올려 보냈던 것이다.  물론 온 지구의 서포트와 헤르메스호 승무원들의 희생도 큰 몫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와트니가 준비되지 않았더라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물이 넘치도록 부어질 수 있더라도 그릇이 작거나 깨져있으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와트니는 좋은 상황이 왔을때 이것을 잡을 수 있도록 계속 무엇인가를 했던 것이다.  매우 현실적인 자세와 함께. 


다른 나라에서는 우주항공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조 단위의 돈이 투자되고 당장 회수할 수 없더라도 펀딩이 끊기지 않는데, 정치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이 애비시대로 돌아간 듯한 병신년의 한국에서는 내수시장 따먹기, 이전투구, 계층과 세대간 뿐만 아니라 계층과 세대 안에서의 싸움으로 바쁘다.  여기에 대통령르 참칭하는 어떤 녀자는 정신을 집중하면 바위를 뚫는다는 미친 소리를 씨부리면서 나라를 팔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심함 이상의 비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비록 내가 이제는 한국이란 나라보다는 이곳에 더 깊은 연고를 갖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  이 절망적인 상황은 우주의 기운이 천배로 다가와도 뒤엎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끔 생각한다.  내 전문분야를 키워서 맘이 맞는 사람들을 하나씩 둘씩 이곳으로 이주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나?  그렇게 다 빠져나오면 어떻게 하지?  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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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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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김탁환 작가의 정도전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예전에 다른 작가의 정도전 소설을 읽고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어떻게 역사가 현재의 사회상이나 특정한 세력의 필요에 따라 포장되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어떻게 하다보니 비슷한 시기에 읽은 책이 이덕일 소장의 책이라서 또다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드라마나 책에서 나온 수양대군의 반정에 대한 묘사 또한 과거 군사정권 시절과 지금의 차이가 꽤나 뚜렷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  다만, 다른 케이스들에 비해 단종의 과실이 없다는 점, 세종-문종을 이었다는 정통성, 그리고 수양대군 자신의 포악함이나 초기의 실정을 감출 수가 없기 때문에 찬양 일변도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기억이 있고, 여기에 너무도 명명백백히 그 충정을 드러내는 사육신 이야기 등과 함께  모호함을 완전히 피해가지는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수양대군을 옹호하는 묘사는, 김종서-황보인 등이 어린 단종을 등에 없고 소위 '황표정사'라는 것으로 권력을 농단했고, 이에 수양대군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정변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단종은 요즘 말로 collateral damage가 되었다는 것이 그 골자가 된다.  특히 여기서 주안점을 두는 것은, 수양대군이 왕이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다보니 거기까지 갔다는 듯한 뉘앙스의 묘사였는데, 이를 위해 김종서로 권력이 집중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려는 시도는, 지금와서 생각하면 억지스럽기 그지없다.   


그렇게해서 전 시대에는 조선조 초기의 드문 명장이요 명신으로 묘사되는 김종서를 바로 그 다음 시대에는 어린 왕을 대신하여 전권을 휘두른 권신으로 만들었고, 이를 통해 수양대군의 쿠데타를 정당화한 것이다.  이놈의 쿠데타.  대한민국 현대사의 군사정변세력들은 이렇게 쿠데타의 뿌리를 저 멀리 조선조의 창업, 왕자의 난, 수양대군의 반역에서 가져오는 시도를 통해 그 정당함과 정통성을 강요했고, 덕분에 교과서에 그 시조가 실릴 정도로 조선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김종서의 역사적 지위를 함부로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이런 억지스러움은, 그러나 역사적 사실로써, 충의와 절개의 상징과도 같은 사육신 때문에 더욱 궁색해진다.  수양대군이 나쁜건 아니고, 사육신은 좋고...이걸 어떻게 조화를 시킬 수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이 부분은 definite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즉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것은 단종을 생각하면 쬐끔 나쁘지만, 왕자였으니까 권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고, 특히 권신들이 왕권을 쥐락펴락하고 있던 것을 바로 잡고 왕권을 강화한 것이라서 결과적으로는 잘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결말을 짓고, 사육신은 별도로 충절을 기리는 이상한 형태였던 것.  


이덕일 소장의 해석으로는 수양대군이 일부 대소관료들과 불만세력을 모아 반란으로 왕권을 빼앗은 결과 그 전까지 배제되었던 공신우대문화가 다시 살아났고, 이는 두고두고 조선 초기의 참신한 개혁정신을 흐리고, 부와 권력이 특정계층에 편중되는 구조가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혹자는 명나라 연왕 주태의 회천에 비춰 수양대군의 정난을 정당화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실 연왕 주태 역시 조카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기 때문에 정당화할 수가 없는 행위라고 보기 때문에 수양대군의 정난을 이에 빗대어 정당화할 수가 없다.  같은 의미로 사실 이방원의 왕자의 난 또한 정당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이덕일 소장이 굳이 이 부분을 수양대군의 정난과 차별화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방원이 공신을 척결한 행위는 새로운 왕조가 열린 후 왕권의 입장에서는 필요한 일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그가 형제들과 창업공신들을 죽인 이유는 자신이 왕이 되고자 했음 가장 큰 이유지 왕권강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왕이 된 이방원은 사병제를 혁파했는데, 이 역시 공신세력을 배제하는 목적보다는 군사력을 중앙화하여 병권을 왕에 귀속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기 때문에 더더욱 수양대군의 행위와 이방원의 그것을 차별화하는 것은 좀 억지스럽다.  이런 면에서 가끔 바른 역사를 세우기 위한 저술과 학술활동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씩은 이덕일 소장의 글에서 피로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족: 김종서를 백두산 호랑이라고 하는데, 문관으로서 유능한 무관의 도움을 받아 북진을 개척한 공과 그 그개를 볼 때 그 이상 어울리는 별명을 찾기 어렵겠다.  그런데 이 별명을 일본군 하사관출신으로 양민학살에는 능했지만, 전투에는 무능했던 김종원이라는 살인귀가 같다쓴 것을 알면 김종서 장군은 무슨 생각을 할까?  혹자는 이 살인귀가 731부대와 난징학살을 재현했다고 할만큼 잔인하고 변태적인 자였던 것 같은데...


여러 날을 쓰다 말다를 반복하면서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가면서 겨우 나온 리뷰답게 지지부진한 글이다.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를 전달하는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면서 확실히 느낀 결론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점이다.


수양대군의 반정으로 벼락출세한 인간들의 면면을 보면 일부는 기존의 권력구조에 포함되어 있었던 자들 (정창손, 신숙주 등)이지만, 상당수가 별볼일이 없는 자들 (한명회를 비롯하여)이었다.  이들이 정변 이후 일등공신이 되어 훈구세력의 시조가 되어 조선조, 온갖 비리와 부조리를 양산하고 고착화시켰음이다.  약 500년 후,  박정희의 쿠데타로 급부상한 한국군부의 찌끄러기 같은 자들과 거기에 빌붙은 일본/만군출신 잔당들의 출세,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군부의 기형적인 세력화, 토착화, 파벌화, 문벌화, 그리고 이에서 파생되는 부정부패의 시조가 되었다.  그래.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지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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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12-04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좋은데요~^^
역사는 반복될 뿐 아니라 숨기거나 왜곡한 사실도 후대에 전해지는 지엄함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transient-guest 2015-12-04 08:2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아무리 숨기고 지우려 했어도 후대엔 모두 전해진 것을 또한 이 책을 통해서 봤습니다만, 쓰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ㅎ 이는 자연스러운 이치인데, 이것을 거스르기 위해 교과서를 자꾸 고치는 사람들은 김종원 같은 자가 후대에는 타이거 킴으로 알려지길 원하고 있겠죠?
 
로봇정신 - 로봇시대 개막, 신 인류의 조건
한재권 지음 / 월간로봇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앞으로 약 10년 후에는 정말 재미있는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계유수기업의 top 공학자인 고객이 즐겨 쓰던 말이다.  엄청난 스피드와 에너지효율, 그리고 저비용을 자랑하는 차세대 반도체, 알루미늄을 강철만큼 단단하게 만드는 기술, 수소전지, 태양광 발전기, 등등.  그간 내 사무실을 거쳐간 한국계 공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분야다.


현재 한국과 일본, 중국, 유럽과 미국의 유수기관에서는 로봇공학,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거나 연관된 분야의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기술적인 수준, 그리고 양적인 투자와 노하우를 볼 때 아직까지는 미국이 선두에 있는데, 기술개발이나 리서치 면에서 아무리 다른 나라들이 뛰어나더라도 이를 아우르는 마켓과 정책, 그리고 투자, 나아가서 유수의 학자, 연구원, 개발자나 공학도가 미국에 와서 살게 만드는 국가사회적인 인프라는 중국조차도 아직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되는 날이 오기는 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를 나누어본 top 10%급의 공학자나 과학자들, 토니 세바 같은 사람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한재권 박사에 따르면 그렇다.  이들은 이미 향후 10년이면 무인자동차의 시대가 온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으며 효율성 때문에라도 기존의 화석연료는 에너지산업에서 그 주도권을 재생에너지에 물려줄 것이라고 한다.  실리콘 밸리 한 가운데 살면서 보면 확실히 그럴것만 같다.  하지만, 이것이 중서부나 동부의 한적한 옛 도시에 살면서도 그렇게 받아들여질까?  


한재권 박사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버지니아 공대의 로봇팀을 세계 유수대회의 top을 끌어올렸듯이 미국의 유수기관과 학교에서 한국계 학생들은 상당히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로봇공학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 카이스트나 서울대학교의 실력도 수준급이지만, 범국가 또는 범학계나 업계수준의 대규모 funding이나 인식을 보면 미국이 역시 이 분야를 주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로봇이 실생활에 도입되면 과연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일단 엄청난 숫자의 일자리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많은 대체 일자리가 나오겠지만, 없어진 직종과 숫자에 대비하면 미미한 정도라고 본다.  그리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로봇이 활성화되면 전문직도 거의 다 사라질 수 있다.  그 어느 외과의사보다도 더 정확한 집도, 그 어느 인간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엄청난 정보를 취합하여 분석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  변호사도 마찬가지.  엄청난 법률과 판례와 용례를 분석하여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적용가능한 수준의 통계치로 뽑아내는 로봇 변호사를 인간 변호사가 당해낼 수 있을까?  운전도, 수리도, 생산도 모두 로봇이 담당하고 이 로봇의 관리조차도 로봇이 담당하게 되는 시대가 되면, 어쩌면 그 시대는 인간 이후 다른 종으로 넘어가는 진화학적 과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이미 그 훨씬 전에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은 쓸모가 없어지고 어떤 일도 할 수 없고, 그러나 수익분배에 인색한 극소수, 전 세계적으로 1%로 채 안될, 자본가에 의해 목숨만 부지할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게 되거나 그 상태에서 서서히 수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퇴보할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술문명의 발전에 비례한 나눔의 패러다임의 세계화가 시급하다.  아무리 좋은 것을 많이 만들고, 아무리 일을 적게해도 된다한들, 절대다수가 그 결과로 가난해지고 쓸모없어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물론 한재권 박사에게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는 공학자로서 그의 본분에 충실하게 사람을 위한 원대한 로봇개발의 꿈을 하루씩 이루어가고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니까.  보다 더 현실적이기도 하고, 철학적일 로봇개발에서 파생되는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들 모두의 몫이다.  


로봇이 생활의 모든 노동을, 그리고 생산까지 책임져준다면 그때야말로 우리는 진정한 사민주의와 나눔을 통한 공생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가난해지는 과거의 실패한 공산주의가 아닌 모든 사람이 부유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소유나 재산의 개념이 큰 의미가 없는 그런 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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