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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평점 :
솔직히 추천을 받고 읽게 된 책은 이미 기대치가 만빵이라서 아무리 괜찮은 이야기라도 자칫하면 이미 커진 기대 떄문에 상대적으로 덜한 재미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그 추천이 유명한 블로거나 팟캐스트를 통한 것이라면 걱정과 부담은 기대에 비례하여 커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정말 좋은 책이라면, 그리고 추천이 상업적인 목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사실 이런 걱정은 말 그대로 걱정으로 그칠 뿐이다. 추천을 통한 구매와 독서가 문제가 되는 까닭은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길 때, 아니 글을 남기기도 전에, 과연 내가 받은 느낌, 나의 감상이 온전히 나의 것일까 하는 의문을 준다는 점이다. 리뷰를 먼저 듣고 읽은 책, 그리고 그 리뷰가 하필이면 '빨간 책방' 하고도 이동진 기자라는 수준급 고수의 입에서 다른 전문작가와 함께 slice and dice된 것이라면 정말이지 내가 생각하는 책에 대한 생각이 내것인지 심각하게 의심하고 고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또한 이동진 기자에게서 옮은 병이다. 난 이런 표현을 자주 쓴 기억이 없거든),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또한 책이 소중했던, 그러니까 책 한 권을 구하면 읽고, 읽고, 또 읽던 시절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문화혁명의 엄중하고 코믹한, 그러나 실로 잔인하고 섬뜩했던 칼날은 어차피 내가 공유하는 기억이 아니다. 5-60년 전에 중국에서 모택동이 벌인 희극적이고 유치했던 정권유지방법, 그의 실패의 하나일 뿐, 그 임팩트나 의미는 그리 클 수가 없다. 그것보다는 살아보지도 못한 그 시절의 기억은 그나마 배움을 통해서 한국의 혼란과 독재에 대한 씁쓸함과 마사오군에 대한 미움을 갖는 것이 훨씬 쉽고 당위적이다. 그러니까, 이 시절 재수없게 홍위병의 탄압에 걸려든 아버지 때문에 한창의 나이에 산골로 노동교화유배를 당한 두 작중인물들에 대한 연민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미 접한 줄거릴 따라가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그저 책이 정말 귀했고,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예전의 기억 뿐이었다.
90년대에 본격적으로 나타나 한 시절을 주름잡았던 도서대여점이 나오기 훨씬 전, 80년대 중반부터 봉고트럭을 개조한 책차에 신간잡지와 온갖 hot한 소설들을 싣고 3일 정도에 한번씩 동네에 나타나던 도서대여차가 있었다. 이 차가 오는 날이면 시간에 맞춰, 특히 방학중에는 집에서 사주기 전에는 볼 수 없는 만화잡지를 빌리기 위해 생긴 긴 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의 아이들, 그리고 중고생의 독서경향은 좀 살만한 형편의 집이라면 한 질씩 들여놓던 xx세계문학전집, 위인전기세트, 소설전집, 백과사전 등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서점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다양한 소설을 골라서 보는 재미, 책 값보다는 훨씬 싼 가격으로 3일 정도를 갖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이 대여차의 매력이었다.
머리를 잘 쓰면 소설 한 권을 빌려서 2-3명 정도가 돌려가면서 읽을 수도 있었는데, 그 덕분에 가끔씩 동네형이 빌려온 영웅문을 가져다 밤새 읽어내고 갖다준 적도 많이 있었고, 자다가 새벽 3-4시 즈음에 눈이 확 떠지면 불을 켜고 다시 책을 본 일도 허다하다.
그러다가 중3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고 사들이는 일에 재미를 붙였는데, 이때만해도 책장 두 개가 채 못되는 양의 책을 갖고 여러 번 읽으면서 그 내용을 몸에 새겼었다. 지금도 이 당시 읽은 책들의 내용은 거의 다 기억하고 있고, 읽던 그 시절의 내 모습까지도 그려낼 수 있는데, 아마도 이런 다독과 재독 덕분일 것이다.
지금은 원하는 책은 가능하면 무조건 사들이고, 쌓아올리는게 읽는 속도보다 빨라졌고, 그 나름대로의 보람도 있고, 즐거움도 있지만, 한 권의 책을 읽고 또 읽던 시절의 숨막히는 재미는 느끼기 어렵다. 마치 십대에 들어 첫사랑을 하던 시절의 사랑의 순도와 몰입도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담담해진 지금에와서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은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깊은 내용의 책도 그 나름대로의 이유로 한번 이상 읽긴 어렵다. 읽을 책도 많고, 할 일도 많고, 집중력도 떨어지는 탓이지만, 그 이상 내가 더 이상 순백색의 감성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 둘러선 사람들, 처음으로 세계문학을 접하는, 그것도 극한환경에서 몰래 읽는 재미에 십대의 감수성이 더해진 그야말로 책이, 이야기가 재미있어 죽겠는 한 시절을 볼 수 있었다.
'빨간 책방'에서 이야기한 다양한 이슈와 심리적인 묘사, 모티브는 그대로 좋다만, 이미 들은 내용을 내가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었을까?
아! 작중인물들 중 관념이 앞선 그 녀석은 내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수 많았던 기회를 다 놓쳐버린 것을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돌아볼 수 있었는데, 내가 조금만 더 영악했고 능동적이었다면 아마 매우 일찍 어른의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내 10-20대가 새삼 더욱 아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물론 그랬더라면 아마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취직하기 좋은 컴공 같은 이과에는 재주가 없으니까, 그리고 조직생활도 잘 견뎌내기 어려웠을 테니까, 그래 아마 장사를 하면서 좋은 20대 시절에 왜 그토록 놀기만 했는지 한탄하는 것으로 풀렸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이 시지에라는 이름은 익숙하지 않지만, 이 책과 함께 주문한 몇 권을 더 읽어보면 작가의 색깔이 잘 보일 것이다. 더 알아갈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