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되면서 다시 조금씩 바빠지고 있다.  그래도 평생의 독서를 목표로 하느니만큼, 틈이 나면 조금씩 책을 읽고 있다.  작년 이맘때처럼 사무실에서 책을 읽는 것은 이제는 어렵고, 운동을 하면서, 그리고 집에서 쉬면서 조금씩 읽게된다. 

 

간만에 나온 하루키의 신작.  노르웨이의 숲과 쌍둥이, 그 밖에도 수 많은 그의 작품에서 이용된 장치들이 그 모습을 조금만 바꾸어서 다시 사용된 느낌이다.  혹자는 하루키의 퇴행이라고까지 하는데, 내가 많이 공감하는 작가이니만큼,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무엇인가 예전의 그처럼 나를 확 사로잡는 그 무엇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는 어떤 의미에서든지,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우리 마음속에 남아서, 때때로 다른 문제의 근원이 되는것을 보는데, 이것을 뒤늦게라도 마주하고 해결하는 것은 어쩌면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의미의 용서는 신이 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의식이 되는데, 놀랍게도 이런 의식의 과정에서 그간 알고있었던 사실이나 이해하고 있었던 사건의 본질이 실상은 전혀 다른 것임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후회는 언제해도 늦고, 결심은 언제해도 이르다 (늦지 않는다)는 말이 회자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은 더 읽어볼 생각이다.  전에 하루키 전작을 시작하게 된 '해변의 카프카'나 '상실의 시대'의 재독과 같은 결과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하지만, 내가 느끼지 못한 다른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나에게 그런 작가인 것이다.  책장 한칸에 하루키의 모든 책을 모아놓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중국은 누가뭐라고 해도 아시아 문화권의 맹주가 되고, 출발점이 된다.  나아가서, 세계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길고도 깊은 박대정심한 문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문학에서는 아직도 많이 뒤쳐진 느낌이다. 

 

위화는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된 작가인데, 이제서야 처음으로 그 때 소개되었던 '허삼관'의 '매혈기'를 읽었다.  지독하고 생생한 풍자라면 풍자인데, 그 기법이 세련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치 한국문단의 초기 60년대 작품을 읽는 느낌이라면 좀 과장이 심한 것일까?  복잡한 기교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건을 코믹하게 그려냈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게 또 은근히 웃기면서도 서글픈 면이 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아들들을 먹이기 위해서,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허삼관은 끊임없이 피를 판다.  그러다가 아주 늙어버린 그는 이제 피를 팔 수도 없다.  이 '피'를 팔아야만 살 수 있는, 아니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우화에서 나는 우리의 현실을 본다.  몸이든, 영혼이든, 팔아야만 살 수 있는 자본주의의 극치를 이룬 지금, 그 paradigm자체가 극에 다다른 지금, 팔 것이 없어지는 사람은 결코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된 지금의 모습에서 깊은 절망과 체념을 넘어선 끔찍함까지 느끼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떤 사상이 국가와 세계를 지배하든 바뀐 것은 없다.  혁명과 개혁은 임시적인 해결책이 될 뿐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워낙 쟁쟁한 번역가의 단독작품이라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호흡이 많이 끊어지는 책이라는 생각을 읽는 내내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나중에 보니 작가가 번역한 책에 썼던 글을 모아서 출판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싶었다.  또 하나는 이 책에서 언급된 작가의 번역을 통해 소개된 책들 중 아니 작가들 중에서도 내가 접해본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되겠다.  책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아는 것이 없는 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인데,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을 때에는 그가 언급한 것들 중 아는 책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카시의 책과는 많이 다르니까 그것도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문학만 번역한 줄 알았는데, 소설도 많이 번역했고 시도 번역한걸 보면, 제대로된 번역가의 영역이 따로 있다는 생각도 든다.  김영하작가나 돌아가신 이윤기 선생님의 경우 문학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문학가의 번역이 답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데, 전문 번역가들의 반발 내지는 반론도 충분히 힘이 있다고 본다. 

 

기전체와 편년체를 섞은 듯한 구성으로 바로 이야기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이 책은 시대의 지성과 양심이었던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이다.  발자크 평전을 접한 이래 상당한 흥미를 갖고 구해보게 된 작가인데,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의 기치가 높던 시절, 비교적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면서 기존의 체제를 비판하고 개혁을 지지하면서도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체제밖의 변혁이 아닌, 체제내의 변화를 원했던 일종의 온건중도우파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양쪽 모두의 적이 되기 십상이기에, 그 역시 그를 이용하려는 구세력과 신세력 모두의 구애의 대상이었다가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고, 말년에는 병과 방랑의 끝에 숨을 거두게 된다.  에라스무스하면 세계사 시간에 한번 짚고 넘어가는 '우신예찬'의 저자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요점정리나마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고민: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에서 60여권 가량을 40%DC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8/18까지인데, 한주만 더 고민을 해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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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3-08-08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도 있고 해서 반갑네요. 저도 애거서 크리스티 진짜 좋아해요^^;; 고등학교 때 미친듯이 읽다 밤에 갑자기 엄마가 등 뒤에 서 계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에라스무스 평전>이 관심 가네요. 츠바이크 책은 한번 읽으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어요.

transient-guest 2013-08-08 16:04   좋아요 0 | URL
삶도 작품만큼이나 드라마틱하죠, 크리스티도 츠바이크도..ㅎ 츠바이크는 역시 발자크 평전으로 시작하면 좋을 듯 해요. 크리스티의 책은 영어로 읽으면 확실히 그 느낌이 다르긴한데요, 한국어 번역본은 제대로 된 것을 꼭 갖고 싶네요.

blanca 2013-08-09 10:18   좋아요 0 | URL
아, 발자크 평전이 좋군요! 마침 저 발자크도 좋아하는데.. 좋은 책 추천 감사해요!

야클 2013-08-08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티 전집은 해문판은 가지고 있지만 판형이 작아서 저도 새로 사모으고 있어요. 한 방에 사는 것 보다는 가끔 몇 권 씩. ^^

transient-guest 2013-08-08 16:05   좋아요 0 | URL
저는 하나도 못 구하고 있다가 이번에 60여권을 40%나 세일한다고해서 망설이고 있어요. 월급이 따로 나오는 생활이 아니라서, 항상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구매를 고려하게 되네요.

saint236 2013-08-0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더운 여름 헉헉대면서 독서도 게을리하게 되네요. 초한지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삼국지보다 몰입도가 떨어집니다.^^

transient-guest 2013-08-08 16:05   좋아요 0 | URL
초한지는 아무래도 삼국지보다는 무협에 가깝죠.ㅎㅎ 여기는 입추답게 아침저녁으로 해가 지면 추워집니다.

프레이야 2013-08-0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은 책이 두 권. 흡입력도 공감도도 떨어지는 그의 신작에 좀 실망하면서 끝까지 읽긴 했어요. 나이와 시절인연 탓도 있겠거니 합니다. 에라스무스 평전과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은 탐나네요. 아마 한 주 더 고민하신 후 구매하게 되실 것 같은걸요.^^

transient-guest 2013-08-08 16:06   좋아요 0 | URL
-_-:: 정확하게 보고 계신듯.. 고민이 아니라, 기다리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무엇인가 엄청난 배송료를 정당화할 계기를요.ㅎㅎ 하루키는 그래도 일년에 한 번 정도 몰아서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ㅎ 힘이 빠지더라도, 그 생활 자체가 동경의 대상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08-08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루터와 에라스무스>로 변역된 판본이 있었는데 저 위의 에라스무스 평전과 동일한 작품인지 궁금하네요.

transient-guest 2013-08-09 01:12   좋아요 0 | URL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이 평전에서도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기독교 신앙에 무속이 결합한 한국의 종교적 성향을 보면서, 이런 이슈들에 대한 진지한 정보와 지식을 얻고 싶어했다.  단순한 비판이나 비난을 떠나,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고찰을 읽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책을 고르다보면, 사실 갈라진 진영만큼이나 극단적인 책이 많은 것 같다.  한쪽에서는 목사의 말을 북에서 수령이 하는 말처럼 받드는, 또는 목사가 직접 쓴, 내가 볼 때에는 매우 유치하기 짝이 없는 성경 tautology가 넘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원색적이인 비난에 근거한 책이 많은 것 같다.  이렇게 접근을 고려하게 되면, 사실 볼 만한 책이 많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데, 읽기 전부터 그렇게 되는 것은 수박 겉핣기에 다름아니라서, 문제의 소지가 많다. 

 

제목과 저자의 이력, 그리고 글이 실렸던 매체가 어쨌든 기독교 매체였다는 점에서 내부적인 고찰이라 생각하고 이 책을 구매했다.  이 책을 살 때, 이청준의 소설과 버트런드 러셀의 책을 몇 권 함께 산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종교에 대한 소설과 철학적인 사유에 대한 책인데, 아직까지 읽지는 못했다. 

 

이 책에서는 열 가지 사례를 통해 일반적으로 구분되는 유형의 개신교 신자의 모습을 살핀다.  기독교인이 쓴 책이니만큼, 심하고 원색적인 비난보다는 잔잔하게 이들의 신앙행테와 그 출발점 내지는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이것이 어떻게 그들의 신앙생활에 투영되는가를 담담하게 그린다.  결론적으로 현대의 개신교 신앙의 근간에는 믿음을 정립하고, 이를 다시 성서적 증거로써 뒷받침하는 형태의 신앙이 정립되어 있는데, 이렇게 하므로써, 이미 정해진 결론을 성서의 말씀으로 그 '신념'을 '정당화'하게 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즉 말씀을 위한, 목적을 위한 말씀만이 살아남는 신앙이 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저자가 꼽은 열 가지 유형의 신앙행태에는 주말신자형, 현실괴리형, 생활습관형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마지막의 한 사람 - 시골에서 목회를 하면서, 지역사회에 몸을 담고, 전통을 무시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탈한 목사님의 모습은 약간의 희망을 준다.  자주 보이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문체나 단어의 사용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일독한 보람이 있다.

 

서재그림에 끌려 산 책이다.  한 국어선생님이 집을 지으면서, 건축가와 나눈 집짓는 이야기를 이미 완성된 집안 곳곳의 사진과 함께 비교하여 구성한 책이다.  건축이나 미술에는 관심이 좀 떨어지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서재의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 그 자체가 된다.  또 이 서재 말고도 곳곳에 책을 놓을 공간을 미리 계산하여 만든 책의 길이나 공중서재는 또 다른 하나의 볼거리와 부러움 거리를 제공한다.  책장때문에 늘 고민을 하는 요즘, 집을 구하면 이렇게 내부를 리모델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집값이 비싼 곳에서의 집 주문제작은 꿈일 뿐이다.  여기서는 총 건축비용이 땅 값 말고도 3억 5천만원 정도를 들였다고 하는데, 국어선생님께서 받으신 부모님의 지원도 상당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땅 값과 집을 짓는 값이 이미 지어진 집을 사는 것보다는 싸다고 하고, 특히 비싼 집으로 갈 수록 그렇다고 하는데, 그 대신 재력이 상당해서 많은 비용을 융자없이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은 이런 집은 그림의 떡이다.  간만에 눈이 호사를 누린 것 같다.  

 

하루키의 최신작은 읽은지 오래이나, 아직은 정리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  무엇인가 아쉽기도 하고, 힘이 조금 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읽어보고 결론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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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책쟁이들'은 지금에 와서 보아도 나를 책에 대한 고민으로 이끈, 그러나 장서가로서의 외로움을 달래준 고마운 책이다.  이 책에서 시작된 나의 자부심, 그리고 그 이상의 추구해야 할 독서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함은 조금 과장하면 고심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이 과정에서 로쟈, 장정일, 다치바나 다케시, 파란 여우, 이지성, 이현석을 비롯하여 지금 당장 모두 떠올리기 힘들만큼 많은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책 이야기를 읽고 내 나름대로의 철학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을 독서 그 자체로 사랑하는 사람, 수단으로써의 독서, 목적에 이루기 위한 과감한 선택과 포기가 동반되는 독서, 공부로써의 독서라는 이론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당연히 읽을 책과 관심가는 책은 늘어만 가고, 과연 어떤 독서를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보다는 질문이 늘어가는 지금에도, 그러나 책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에 눈과 귀가 솔깃하여 관심을 갖게 된다.  이번의 두 권은 그렇게 여전히 충동성이 다분한 나의 구매에 의해 일게 된 책이다.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 모티브를 따온, 그러나 약간은 밋밋하게 느껴지는, 일종의 동인소설 같다고 생각을 했는데, 권두언을 읽어보니, 오마주라고 한다.  아예 대놓고, 모티브를 차용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구도 역시, 하루키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한 남자+한 여자, 그리고 다른 한 남자, 그가 찾는 다른 한 여자, 이들의 만남, 헤어짐, '해변의 카프카'에서 언급된 '입구의 돌'을 들어올리는 것.  극단적으로 말해서, 제목에 살짝 낚인 기분이 들기도 한다.  도서관은 만남의 장소, 고독의 장소,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등장인물을 위한 장치 이상의 것은 아닌 것 같다.  무엇인가 도서관을 중심으로 이런 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이어지기를 기대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일본풍의 라이트 노벨을 읽은 정도의 느낌만 남는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읽었을지 모르겠지만, 조금 실망스럽다.  하지만, 책 자체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관심이 가는 사람은 다른 리뷰와 함께 구매에 참고했으면 한다.

 

이야기의 무대도, 시장조사와 서점 전문가도 모두 일본의 것이기에, 한국이나 미국이 주요무대가 되는 나의 독서편력에 별로 큰 관련성을 느끼지 못하는 채, 책을 다 읽어 버렸다.  하지만, 서점이 줄고, 독서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 그나마 남은 독서인구가 온라인 유통과 전자북으로 넘어가기 시작한지 오래인 지금, 일본의 사례를 가지고 우리의 현실을 비춰보는 의미는 있다.  다만, 일본 특유의 집요함과 장인정신으로 대표되는 '업'에 대한 집념은 우리와는 확실히 다르기 때문에, 어떤 'ism'을 가지고 서점을 경영하거나, 서점에서 일하는 취재원들의 자세에 대한 공감, 또는 비교분석은 다소 무리가 아닌가 싶다.  '시대의 창'에서 냈다고 보기에는 살짝 의문스러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이 책 역시 '서점'이라는 단어에 낚인 감이 없지는 않다. 

이래저래, 책에 대한 책이 두 권이나 더 늘어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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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독서, 운동, 그리고 음악이 되겠다.  다섯 가지로 이들을 늘려 잡으면, 여행과 영화가 포함이 되겠는데, 요즘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많이, 자주 든다.  윗 사람이 없는 내 일의 특성상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겠지만, 모든 일이 나의 책임이 되는 상황에서는, 훌쩍 사무실을 비우는 것은 쉬워도, 일상을 단절시키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경로와 의미로써의 여행은 다소 무리가 될 것이다. 

 

최근에, 공항에 나간 일이 있는데, 저녁의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밤 시간대의 국제선 청사는 여전히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공항에서만 맡을 수 있는 매연이 섞인 향긋한 도착과 출발의 공기 내음을 맡으면서,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 지금 이런 생각을 하게된 계기가 된 것 같다.  물론, 자동차를 타고 근처의 명승지를 가는 것도 여행이 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어떤 need는 좀더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기에 아쉽지만, 여행과 독서가 어우러진 잔잔한 책 몇 권을 읽는 것으로 달래고 있다.

 

아무런 기대없이 선전과 추천을 보고난 후 최근에 사들인 이 책은, 나와는 동향 출신의 몇 살 위인 카피라이터를 본업으로 하는 저자가 그간의 여행과 사진, 그리고 각 여행지에 들고 갔었던 책 이야기로 엮은 작품이다.  다소 두껍고 무거운 느낌이 들 정도로 좋은 재질의 종이는 아마도 사진풍경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저자 혹은 출판사의 배려 또는 도구가 아니었을까?  밑줄을 긋기에는 별로 좋은 재질이 아닌, 그러니까, 수성펜이든 유성이든 잘 먹어주지 않는 재질의 종이라서, 저자의 감흥과 나의 공감이 만나는 지점을 표시해 둘 수는 없었지만,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마도 매우 오랫동안은 내가 가보지 못할, 어쩌면 가볼 생각을 하지 않을 나라들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와 여기에 얽힌 그의 책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사진과 함께 편집된 책이니만큼, 여행지의 느낌을 그대로 한번에 옮기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이 책은 한 호흡에 쓰여진 책이라는 느낌을 받을 만큼, 천천히, 그러나 계속 나의 눈과 마음을 온전히 집중하게 했다.  유럽이나 미국의 도시를 무대로 삼은 재기발랄한 책들, 또는 여행 가이드에 가까운 책들도 좋고, 유명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도시의 이야기도 좋고, 요컨대, 사진집에 가까운 다소 성의가 없게 느껴지는 구성만 아니라면, 여행에 대한 책은 언제나 그곳에 대한 설레임과 미래의 기약을 제공하기에 참 좋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적으로 덜 가게 되는, 주류에서 벗어난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과 책, 그리고 지난 십 수년에 해당하는 저자의 인생이야기와 함께 들여다 보는 것은 다른 여행기에서 느낄 수 없는 각별하고 감칠 맛을 느끼게 한다. 

 

되도록이면 비수기에 훌쩍 떠나서 현실과 지금의 role playing에 맞는 옷을 벗어 던지고, 여행자로서의 RPG를 즐기고 싶다.  보기에 따라서는 인생은 어짜피 한 편의 게임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변호사도, 독서가도, 애서가도, 무엇도 다 나의 모습의 일부분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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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이야기했던 20권 Project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간략하게 적어 보았다.  각 20권/20일은 5권/5일로 나눠서, 가능하면 일정한 테마를 잡고 진행하려고 노력했는데, 생각보다 갖고 있는 책들 중 마음에 들어오는 책을 선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선정한 후에 다시 다른 책으로 바꾼 경우도 있었다.  요컨데, 성공이나 자기계발 프로젝트에서 제대로 된 책을 만나는 것은, 특히 객관적인 의미로써 그런 책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번에는 또 다른 책들과 함께 조합하여 Project를 진행해보고 싶다. 

 

 

 

 

 

 

 

앞의 네 권은 모두 실제로 무엇인가를 이루어낸 사람들의 회고록이 된다.  지난 60여년 간의 한국 기업사에서 그래도 정주영 회장은 인정해주고 싶다.  노사문제나 역사관에 있어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그의 근면성실함과 통일에 대한 의지는 높게 보고 있다.  그의 가장 큰 실책이라면 결과적으로 MB라는 기생괴물을 만들어 냈다는 것?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마치 앞서 태어난 일본의 정주영 같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브랜슨의 괴짜같은 인생 또한 범인이 쉽게 바라볼 수 없는 특이함이 있다.  웅진의 히트상품 제조기로 통하는 조운호씨의 일화에서는 무엇인가 미루지 않고,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끝으로 공병호씨의 책은 여전히 그리 맘에 와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1인 기업가라는 것,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고독과의 싸움이라는 홀로선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읽어 볼 필요는 있었다. 

 

 

 

 

 

 

 

 

 

앞서의 이야기들이 이미 일가를 이룬 고수들의 사례를 주로 꾸며졌다면, 다음 5권은 소위 말하는 강사들의 이야기들로 구성하였다.  다만, 세세하고 구체적인 방법론보다는 뭐랄까, 거시적인 의미에서 인생이나 일과 나 자신에 대한 것들을 돌아볼 이야기를 보려 했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구본형씨의 글에서는 따뜻함이, 플렉스에서는 강사로써 일가를 이룬 트레이시의 명쾌한 논리가, 이지성 작가의 책에서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것을 보았다.  이들 중 사실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데에 크게 도움을 준 책은 로버트 마우어의 '오늘의 한 걸음이 1년 후 나를 바꾼다'이다.  변화는 크고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음을, 그저 하루의 작지만 꾸준한 시도에서 비롯됨을 배웠고, 실제로 삶에 응용하게 한 책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5일의 독서에서는 실질적인 방법론을  통한 자극을 받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책들의 한계였는지, 아니면, 이런 식의 구성에 거부를 느끼는 나 자신 때문이었는지, 크게 감흥이 오지는 않았다.  '새벽 거인'은 그나마 게을러질때 나를 돌아보게 하고, '고객을 사랑하라...'를 보면, 자칫 성공과 함께 나태해질 수 있는 마음가짐을 다잡게 한다.

 

 

 

 

 

 

 

 

 

마지막 5권을 읽는 것에는 15일이 넘게 걸렸다.  즉 20권/20일 프로젝트는 적어도 기한을 맞추는 것에서 보면 25%의 실패 또는 delay를 겪은 셈이다.  다시 마음공부와 성찰로 돌아와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고칠 것은 고쳐가면서, 또한 용기를 얻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릴 때의 꿈에서 멀어지거나, 꿈을 꾸던 그 시절의 배포가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현실의 벽에 스쳐 상처가 나거나, 힘이 들면, 웅심이 사그라들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만 남게 되는 것 같다.  그럴 때, 미래를 바라보면서 계획을 세워 실천하고, 꿈을 꾸라고 다그치는 책을 보면 잠깐이나마 위안을 얻고,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 

 

이렇게 해서, 첫 20/20 프로젝트가 끝났다.  소감이라고 할 것은 없고, 그저 조금이라도 건진 것이 있다면 실제 생활에 응용되어야 할 것이다.  하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면서, 하루를 열심히 살면, 요원해보이기만 하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안주할 수 없는 것이 타고난 성향이라면, 도전과 변화로의 갈망 그 자체에 몸을 맡기고 한 세상을 사는 것도 방법이 될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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