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특이점이 온다 - 제4차 산업혁명, 경제의 모든 것이 바뀐다
케일럼 체이스 지음, 신동숙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경제의 특이점이 온다

(원제: The Economic Singularity)

캐일럼 체이스 지음 | 신동숙 옮김 | [비즈페이퍼]

 

 

들어가며-개인적인 기억

아마 3 어느 겨울이었을 것이다. 동물원에 가서 실내 우리에 들어와 있는 대형 초식동물을 구경하던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용한 실내에서 관리 업무를 하며 앉아계시던 어느 할아버지께서 책을 보고 계셨는데, 문득 나를 보시더니 여보세요, 핀테크(FinTech) 도대체 뭐에요?”라고 질문 하셨던 것이다. 뉴스에서 많이 들어본 단어이긴 했으나, 젊은이로 보였을 내가 핀테크가 뭔지 대답을 못하니 아쉬워하셨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주변에 물어볼만한 사람이 없어서 고민을 하셨던 모양인데, 아마 오래전에 은퇴를 하고 일거리를 찾아 동물원에서 일하고 계신 듯했다. 겨울의 동물원 건물 실내에서 관람객이 없으니 잠시 틈을 내어 책을 부지런히 읽고 계셨던 것으로 보였다.

내가 장면을 특히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터이다. 할아버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수명이 길어지는 현대사회에서 현재 은퇴 연령 기준에 따라 은퇴를 하게 되었을 , 은퇴 이후 나의 삶의 모습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금융관련 사업과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사회에 적응하기 바쁜나로서도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달라지게 참으로 막연하고 머리가 빙빙돌 지경이다. 이번에 읽게된 <경제의 특이점이 온다> 요즘 신문과 뉴스에 매일 같이 등장하는 4 혁명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빈번히 등장하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시대에 뒤쳐져 있으면서도 궁금했던 여러 개념들을 처음 접할 있었던 책이기도 하였다. 내가 동물원의 할아버님처럼 연령대가 되었을 ,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아마 나도 손자뻘 세대들에게 용기를 내어 이번에 나온 인공지능 제품은 어떻게 다른가?”라고 묻거나 공용 자율주행차를 있는 승강장과 사용법좀 알려줘요라고 말하게 날이 올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번에 읽은 저자 케일럼 체이스의 저서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들이 많이 나와 다소 더디게 읽었지만, 나름 특별한 호기심을 갖고 읽었다.

 

특이점에 관해

책의 제목과 관련하여 요새 흔히 만나게 되는 특이점이라는 단어는 원래 수학·물리학에서 사용하던 용어였다. 무한히 많은 값을 가질 있는 어떤 지점 또는 값을 의미하곤 한다. 거시적으로는 블랙홀, 미시적으로는 원자의 위치에서 대상의 존재를 암시하는 무한히 발산하는 값을 갖는 지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비선형 물리학에서 등장하는 프랙탈 모형의 분기점(threshold) 의미하기도 한다. 책의 저자인 케일럼 체이스는 특이점이라는 용어는 1950 컴퓨터 개발에 역할을 했던 노이만이 사회현상에 적용하면서 알려진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특히 최근 래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에서 특이점(singularity)라는 용어를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순간 기술의 특이점으로 변용하여 사용하면서부터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특히나 삼성전자 사장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던 진대제 씨가 번역서의 감수를 맡게 되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책에서는 하나의 특이점개념이 등장하는데, 책의 제목에서도 등장하듯 경제의 특이점 대한 부분이다. 저자 케일럼 체이스가 설명하는 경제의 특이점(economic singularity) 인간이 이상 노동으로 돈을 없는 기술적 실업의 시대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케일럼은 책에서 경제의 특이점 초점을 맞추되, 경제의 특이점에 맞물려 있는 이해관계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판단하고 기술의 특이점 먼저 다룬 경제의 특이점 다루고 있다(358). 특이점 개념을 들여다보면, 수학·과학분야에서 사용되던 좁은 의미(발산하는 지점, 무한한 값을 갖는 지점 등의 분기점 개념에 가까운)보다는 문턱(threshold)’ 의미에 보다 가까운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있다. 어떤 국면에서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어떤 장벽, 경계로서의 의미에 가까워 보인다. 경계 내지는 장벽이 존재하는 지점을 인공지능이 지능을 뛰어넘는 시기' 것인지 아니면 기술의 인력 대체로 인한 실업의 국면으로 것인지에 따라 특이점 개념을 다르게 부른 것일 뿐이다. 그리고 특이점의 개념은 앞에서 내가 회상했던 동물원에서의 기억과도 전혀 무관하지 않다. 기술의 발달과 우리 삶의 양상을 다르게 만들어가고 있는 핀테크 뿐만 아니라, 은퇴 이후의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고민의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그렇다.   

    

이번 독서에서 특히 주목해본 부분은 인공지능 개발의 초보단계에 있는 현재 국내에서 많이 언급하고 있는 자동화 사물인터넷(IoT) 같은 개념들은 인공지능분야와 연결시키기에는 지극히 부분적이고 초기적인 형태의 기술이라는 점이다. 특히 산술급수와 기하급수의 개념을 이용하여 기계학습내지는 딥러닝기술과 관련하여 설명한 부분에서는 현재 지지부진해보이는 기술개발이라도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순식간에 진보할 있는 가능성도 살펴보았다. 책에서 저자가 취하고 있는 기본적인 입장은 기술의 발달과 함께 기술적 실업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혹자는 전통적인 업무가 기계의 자동화로 인하여 대체되고 실업이 발생한다고 해도, 역사를 들여다볼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겨날 것이라는 점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저자는 새로 형성된 일자리도 결국 언젠가는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므로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기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모든 것이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 상에서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고, 구글이나 페이스북 또는 스타트업 회사들이 개발한 잠재적 고객의 빅데이터를 이용하는 마케팅 기술들은 개인정보나 사생활 침해와 관련한 문제점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도 우려할만한 점이다. <카오스 멍키> 저자 안토니오 G. 마르티네즈가 책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는 마우스의 움직임마저 마케팅 소프트웨어로 인하여 기록되고, 나의 행적 자체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볍게 농담삼아 넘길만한 주제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이미 페이스북에서는 내가 메일 계정에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의 정보와 연계되어 등록할만한 친구목록을 끊임없이 노출하고, 무언의 강요를 하고 있는 상황아닌가. 이를 기억한다면, 인터넷을 사용하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우리의 행적이 노출될 소지가 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저자 케일럼 또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의 자기학습 알고리듬의 결합으로 시스템이 마비되거나 사생활이 실시간 침해받게 있다’(154) 점을 경고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 <이글아이 Eagle Eye>에서 민간인들을 실시간 감시하는 디지털 세계의 빅브라더 같은 존재는 이미 디지털 세계를 다루는 세력에 의해 이러한 상황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단지 법적인 규제와 제제가 막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생각이다. 실제로 미국 CIA에서는 현재 개인들이 소지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역으로 도청장치로서 사용할 있는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의료분야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기술실업의 대상이 될만한 점들을 설명하는 대목을 보면, 인간 의사만이 있다고 믿어지는 진단분야 또한 장래에는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 의사를 대체할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휴대폰에 연동된 센서 등의 기기로 신체 상태를 수집하고, 날숨을 감지하는 센터를 통해 개인의 신체 정보가 디지털 정보로 변환되어 개인의 의료 파일에 기록되어 건강을 관리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정보들로부터 , 심장질환 가능성의 진단/피부암 진단 감정상태, 파킨병의 진단 등이 가능해질 것이라 말하고 있다(197). 패턴인식 기술을 통한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전세계 환자의 데이터와 비교하면 보다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문제는 수많은 환자들의 비교용 데이터를 어디서 얻을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은 실존하는 인간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문제에 맞닥드리게 되는데, 개개인의 빅데티어가 유전정보와 결합되고, 나아가 우생학적인 행정처리 방식에 따라 보험을 비롯한 시민으로서의 차별과 불이익을 받거나,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위협하는 상황이 있지 않을까하는 가능성에는 반드시 주목해봐야할 것같다.  

저자는 사생활 침해를 비롯한 개인정보 노출 등의 보안 문제는 공동감시시스템의 도입으로 이러한 위험가능성을 막을 있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공동감시시스템이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위험성이 상존하는 상태는 위험성을 내포하는 대상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와는 전혀 다른 국면을 의미한다. 물론   책은 기술적 문제에 관해 논의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 아니므로 책에서 새롭게 배운 기술적 위험 가능성에 대한 문제점과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계속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보려고 한다. 저자는 인공지능을 둘러싼 여러 부분의 기술적 현황과 전망을 폭넓게 제시하고 있으나 책의 주요 논점은 이러한 기술로 맞게될 실업문제에 있다.  

 

기술적 실업을 넘어

실존적 인간으로서 우리는 매우 발달한 산업사회를 살고 있고, 우리의 직업이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를 분명히 이루고 있다. 실업은 분명 저자가 언급하듯이 우리에게 실존적 위협을 주는 계기이며, 기술의 발달로 미루어보아 불가피한 진행과정이다. 문제는 우리가 기술적 실업을 겪어야하는 상황에서 인간다움을 어떻게 회복하고, 존엄을 유지할 있을까에 있지 않을까한다.

저자는 우선 30여년 기업생태계에서 컨설턴트, CEO등으로 재직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게,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며, 친기업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기술적 실업에 대한 보완책으로서의 보편적 기본소득 대해 지지를 표하는 입장이다. 물론 영미권의 기업환경에 비추어 경영인들이 동의를 할만한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 반면 사회주의 대한 저항감을 드러내는 미국과 같은 경우 이러한 개념을 적용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어려움을 예상하고 있기도하다.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저자 케일럼은 전세계적으로 인공지능 연구를 중단시키기로 합의하지 않은 이상, 관련 기술은 발달하게 되어 있으며, 이에 따른 노동현장의 인력 대체는 불가피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가 언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 특정 방향에 대한 인식이라기 보다는 기술적 실업문제에 대한 보다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점이라고 보인다. 달리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적인 각자도생 길로 던져두기보다는 정부와 사회의 공동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에 주목해야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기술적 실업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와 제안을 저자가 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경제의 특이점이 온다> 보다 생각해볼만한 주제, 토론해볼만한 주제들을 많이 던져주고 있는 책이라는 것이 책을 읽은 후의 인상이다. 저자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비관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에 대한 언급을 이어나가기 보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거리를 던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책이 어떤 주제로 완결되는 인상이라기 보다는 앞으로의 중요한 임무는 Y세대인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에게 달려있다라는 열린 결말을 지향한다.

 

 

(339면)
"일반인들이 억만장자나 일류 영화배우의 삶을 접하면, 어쩐지 자신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처럼 느끼곤 한다. 그러나 이런 괴리감은, 앞으로 사유재산 제도가 유지되는 상태에서 경제의 특이점이 나타날 경우 인공지능을 소유한 최상위 계층과 일자리가 없는 대다수 군중들을 갈라놓을 어마어마한 격차에서 비롯될 괴리감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20 면) 저자의 기본 논조

"이 책에서 나는 기술적 실업이 수십 년 내에 진행될 것이며, 우리가 이를 미리 대비하고 변화를 성공적으로 관리해나간다면 아주 좋은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논하고자 한다."

(282 면) 저자의 ‘보편적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입장

"만일 기계지능이 많은 사람들을 영구적인 실업자로 내몰게 된다면, 보편적 기본소득 관련제도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318 면) 자본주의에 대한 저자의 입장

"나는 전업 작가이자 강연가가 되기 전 30 여 년 동안 경영계에 몸담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복지의 안전망을 갖춘 규제 시장 경제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여전히 확신한다. 나는 인간이 일을 하는 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알려진 것들 중 최고의 경제 체제라고 생각한다."

335 면) 프로토피아 Protopia 개념에 대해
케빈 켈리, 작가이자 잡지 <와이어드>의 수석 편집장이 제안한 아이디어의 재인용

"나는 유토피아를 꿈꾸기 보다는 프로토피아를 꿈꾼다. 나는 매년 그 전년보다는 조금 나아지지만 그 차이가 아주 급격하지는 않은 점진적인 발전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기술 덕분에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 유토피아가 존재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모든 신기술은 그 기술이 해결해내는 것 못지않게 많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신기술은 결정적으로, "전에 없던 선택지를 제공하고, 좋고 유용한 것들의 총합을 서서히 아주 조금씩 채워나간다."

(340 면)저자의 블록체인에 대한 기대감

"만약에, 혹시라도 경제의 특이점을 무사히 넘기고 사회 분열을 피하기 위해 사유재산 제도를 종식시킬 수밖에 없다면, 엄청나게 강력한 국가와 중앙에 집중된 결정권을 포용해야 하는 달갑지 않은 상황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어쩌면 블록체인이 답이 될지도 모른다."

곧 저자는 ‘블록체인이 인공지능을 비롯해 사회가 공동으로 소유한 재산을 관리할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358 면)
"한편 만일 경제의 특이점이 정말로 현실이 된다면, 기술의 특이점에 앞서서 나타날 것이다.’ (기술적으로) 인공일반지능을 구축하는데 상당한 시간(수십 년 이상)이 필요할 듯 보이지만, 경제의 특이점은 20-30 년 뒤에는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 이 시점에서는 아마도 자산의 가격이 붕괴하기 시작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비교해 설명하자면 경제의 특이점은 덜 중요하지만 더 긴급하고, 기술의 특이점은 더 중요하지만 덜 긴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365 면)
"지금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기술적 혜택과 미래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묘사하는 강력한 새 문화 요소, 즉 밈이 필요한 시점이다. 선두 IT 기업들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있다. 설사 자기 보호를 위한 목적일지언정, 이들이 멋지고 아름다운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를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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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글 인용

“<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학교 폭력’에 대한 책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폭력 학교’에 대한 책이다. 흔히 학교에서 발생하는 폭력사건을 ‘학교 폭력’이라 하지만, 학교 자체가 폭력기구라는 점에서 나는 ‘폭력 학교’라는 말늘 쓴다. 폭력은 학교에서 발생하는 일탈적 사건이 아니라, 학교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다. 온갖 폭력과 인권침해가 난무하는 학교는 민주적 사회에 남아 있는 비민주적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민주적이라고 믿고 있는 사회의 원형이 비민주적인 학교에서 나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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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 모두가 쉬쉬하던 똥 이야기 사소한 이야기
리처드 존스 지음, 소슬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버려진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원제: Call of Nature)

리처드 존스(Richard Jones) 지음 | 소슬기 옮김 | [MiD]

 

이것은 삶의 순환같은 것이다.’

: 똥딱정벌레를 좋아하는 곤충학자의 따끈따끈 똥이야기

이번에는 40 이상 똥을 찾아다닌 영국의 곤충학자의 이야기가 모여있는 책으로 시작한다. 우리 주위의 아이들 중에는 이야기하면 눈을 반짝이며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하거나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이 있다. ‘ 동물들의 대사배설물이라고 있기에, 지구 상의 모든 존재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라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여주는 호기심어린 반응은 사실 저자인 리처드 존스의 표현대로 우리의 본능적인 혐오감과 무지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른들이라고 별반 다를 것은 없어보인다. 배설물에 대한 성인들의 혐오감과 무지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버려진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마디로 똥을 둘러싼 생태 이야기쯤으로 표현해 있다. 나는 책을 크게 부분으로 구분해본다. (1) 우선 저자는 똥에 관한 생물학적인 지식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인분을 비롯하여 여러 동물의 배설물에 얽힌 과학 뿐만 아니라 헤라클레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소똥이야기를 비롯하여, 역사적인 사실(배설물 처리 동물의 배설물 용도 )들을 폭넚고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2) 뒤이어 저자는 보다 집중하여, 똥생태계를 소개한다. 곤충학자로서 자연스레 따끈따끈(?)’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인 곤충인 똥딱정벌레를 비롯하여 똥파리, 반날개, 나비, 구더기 등이 등장하고 있다. (3) 책의 후반으로 가면서 앞서 소개한 개체들이 환경과 맺는 관계를 노련한 생물학자의 시선으로 보다 폭넓게 조망하고 있다.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똥생태계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집중하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똥딱정벌레에 대한 곤충학자의 애정

책에 등장하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곤충은 공식적으로 신비쇠똥구리이다.”(242)

신비쇠똥구리에 대한 저자의 언급으로 시작한 이유는 책의 전반을 통해 단순히 곤충학자로서를 넘어선 대상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똥에 의존하는 다양한 동물 중에 똥딱정벌레는 생존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중요한 존재라고 저자는 소개한다. 소년 시절부터 똥이 있는 곳을 찾아 다니며, 똥을 발견하면 관찰하고 파헤치기를 40 넘게 곤충학자에게도 특별히 애정이 가는 대상이 바로 똥딱정벌레류인 것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방목용 목초지였던 집주변을 식물학자였던 아버지와 자주 저녁 산책을 하며, 주변을 탐사하고 다녔다.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 저자는 엄청난 수의 금풍뎅이를 발견했던 일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녀석은 손바닥에서 이륙하는 작은 헬리콥터 같았고, 나는 피부에 닿았던 바람의 추억을 지금도 대부분 느낄 있다. 그리고 녀석들이 날아가며 남긴, 부드럽게 붕붕대는 음이 두뇌 뒷부분 어딘가에 있다. 어린 시절의 어느 여름 저녁이 남긴, 축복받은 추억의 소리이다.”(259)

저자가 본격적으로 딱정벌레 연구를 시작하게 것은 성인이 한참 후의 일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사실 딱정벌레가 곤충학자인 리처드 존스의 삶에서 떨어져본 적은 없어 보인다.

 저자에 의하면 똥딱정벌레는 소똥구리과, 금풍뎅이과, 똥풍뎅이과에 속하는엄청나게 다양한 곤충으로 9,000-10,000 정도가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많고 다양한 종류의 딱정벌레가 지구 생태계에서 번성한 이유가 무엇일까가 문득 궁금해진다. 수많은 종류의 딱정벌레 사례는 사실 진화론적 세계관과 창조론적 세계관의 논쟁에서 등장하기도 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창조론적 세계관에 대한 진화론적 세계관의 비판 하나는 신이 세계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면, 이렇게 다양한 딱정벌레를 설계하신 신의 의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물론 성격에 대한 보다 복잡한 논의는 고민하지 않겠지만, 여기서 비판이 되는 스피노자의 자연의 법칙 내지 섭리로서의 신적 질서 의미하기 보다는 의인화된 기독교적 대상으로 제한해서 말이다.

숭배의 대상으로서 저자가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딱정벌레류 소똥구리는 사실 기원전 2000 고대 이집트 왕국 시대에 이미 숭배 애호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흥미로운 것은 당시 이집트 사회에서 소똥구리는 부적과 목걸이, 브로치 등의 장신구에도 널리 사용되었다고 하는 점이다. 책에는 다양한 딱정벌레를 비롯한 생물체의 그림이 담겨있는데, 나는 중에서도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대 이집트의 1.5미터, 높이 1미터짜리 거대한 진왕소똥구리 석상 (<그림29>, 247) 주목해본다. 전에 어디에선가 이와 비슷한 그림을 적이 있다. 사실 당시에는 문양이 후대인들이 고대 이집트의 문양을 빌려 디자인한 그림이 아닐까하는 생각만 잠깐 적이 있었는데, 저자에 의하면 석상은 기원전 330 무렵에 만들어진 진품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소똥구리는 당시 고대 이집트 인들에게 숭배의 대상이었다는 놀라운 사실과 함께 말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검정색 소똥구리가 경외의 대상이었던 이유에 대해 저자는 실마리를 조바심내는 독자들에게 바로 알려주지 않고, 후반에 슬며시 공개한다.

작물과 수확의 계절성에 따른 삶의 순환, 풀의 성장과 방목용 목초지, 또는 하늘을 굴러가는 태양의 신비스러운 일주기를 고대 이집트인들이 소똥구리와 연관지었든 아니든, 그들은 소똥구리에게 감탄하고 박수를 보냈다.”(318)

아울러 자신의 몸무게에 비해 50배나 무거운 경단 나르는 장사들은 고대 이집트 인들에게 정력 화신으로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주거형 딱정벌레와 같이 경단 땅에 묻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돌보던 똥딱정벌레류처럼 속에서 엄청난 힘으로 지표면을 뚫고 나오는 모습을 통해 사자의 귀환내지는 불멸의 존재 모습을 보았는지는 정확히 수는 없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 인들은 보다 자연의 일부로서 똥을 둘러싼 생태계, 그리고 소똥구리의 생태에 보다 밀접한 관찰과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저자가 인정하듯 똥파리를 비롯하여 기타 똥에 의존하는 생물체들과 같이 똥딱정벌레들은 진정한 똥장인 주요 구성원인 것이다.

 

똥으로 덮힌 침묵의 맞지 않기 위하여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똥과 똥의 주민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갖게 된다면, 아직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새롭고 신나는 것들을 발견할 있을지도 모른다.”(278)

저자의 말을 통해 저자가 연구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흥분이 충분히 전달될 정도다. 또한 똥과 똥의 주민들 결국 개체들과 환경에 대한 관계를 의미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저자의 생태학적 관심을 드러내주고 있는 부분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저자는 책에서 똥과 똥의 주민 대한 생물학적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개체와 환경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고,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똥의 주민에게 하나의 환경이지만 결국 똥은 대지에 속해있다. 저자는 우리가 발을 딛고 서있는 환경으로서의 대지 중에서도 중요성을 특히 강조한다.

어떤 시점이 되면 똥과 흙의 경계는 완전히 흐려진다. 부엽토는 썩어가는 유기물의 잔해를 끊임없이 휘저은 것이라고 주장할 있는데, 어쨋거나 지렁이는 여기에 등장한다. () 가축이 풀을 뜯는 들판에서는 똥에서 흙으로 변하는 정도를 감지하기 어렵다. 흙이 똥을 포함한다. 똥은 흙이다.”(294)

흙은 우리가 쉽게 발견하는 동식물 생태계의 기반이되는 환경이라고 있다. 여기에서 나아가 저자는 이런 생태계를 인간이 본의아니게 교란할 있고, 결과는 상당히 심각할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다.

이러한 개체-환경과의 생태관계를 교란한 사레를 저자는 역사에서 다시 소환한다. 때는1700년대 말에서 1800년대 초에 걸쳐 영국에서 추방된 영국죄수들이 호주에 거주하기 시작했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데려온 소들의 배설물을 제대로 처리할 있는 똥딱정벌레가 없어서 목초지가 똥으로 덮히는 재앙이 될뻔한 사례를 언급한다. ‘호주 똥딱정벌레 프로젝트라고 불렸던 계획은 결국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들의 배설물을 처리할 있는 똥장인 도입하는 과제였던 것이다. 사례는 외래종의 도입에 따른 토종 생물들의 멸종위기와 같은 경각심을 다시금 일깨워주며, 우리가 현재 보유하고 누리고 있는 생물권의 자원을 돌보고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나아가 저자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 에서 DDT 교훈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했듯, 가축들에게 투입되는 항기생충제 이버멕틴의 사례나 그밖의 화학약품들에 대한 경고를 여러 페이지에 걸쳐 놓치지 않고 있다. 결국 가축들의 기생충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투입되는 기생충약으로 가축 체내의 기생충을 제거할 있을 지언정, 이러한 화학약품들은 거의 변하지 않고 체외로 배설물과 배출되어 똥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똥생태계를 크게 교란시키고, 위험에 빠뜨릴 있음에 저자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항기생충제 이버맥틴의 경우만 보더라도, 결국 독이 똥을 배출함으로써 똥딱정벌레의 성체 유충의 행동을 크게 변화시키거나, 개체를 감소시켜 똥의 분해가 다시금 지연되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1800년대에 호주의 목초지가 똥으로 덮힐 뻔한 것처럼, 똥딱정벌레에 의해 똥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언제든 똥으로 뒤덮힌 침묵의 다시금 우리를 찾아올 있을 것이다.

화학약품에 의한 생태계 교란과 더불어 오늘날 인간에 의해 진행되어온 여러 포유류의 멸종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있다. 여러 거대 포유류의 멸종에는 배설물에 의존하는 수많은 똥생태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게 된다. 현재 아프리카의 똥딱정벌레들이 감소할 것으로 우려하는 이유도 사실 거대 포유류의 멸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렇게 똥딱정벌레들의 앞날이 어두운 것은 사실 사람이 파괴한 진짜 결과이다’(348)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이 특히 애정을 갖고있는 딱정벌레들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특히 딱정벌레가 보여주는 창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인간도 일부를 이루고 있는 생태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실패하는지 있다. 딱정벌레들은 환경이 얼마나 건강한지 알려주는 지표이자, 생태계의 회복력을 측정하는 척도이면서 생물권에 다가오는 재앙에 대한 조기경보 시스템이다. 우리는 딱정벌레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며 특히 똥딱정벌레는 자세히 관찰할 가치가 있다.”(349)

 

 

버려진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 정리

저자 리처드 존스의 평생에 걸친 연구와 애정이 담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아는 똥이 아닌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다. 목초지 혹은 목장에서 소똥을 발견한다면, 언젠간 나도 똥을 좀더 바라보고 관찰하고 파헤쳐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여기에서 금빛의, 혹은 청록색의 풍뎅이나 소똥구리를 발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책에서 우리는 똥을 이용하는 자연계의 섭리와 지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고 있고, 버려진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관점을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독자들도 얻게 되리라 확신한다. 저자의 흙은 똥이다라는 표현처럼 결국 똥은 우리다라고까지 말할 있게 되었다. 거부감을 느낄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잇닿아 있다는 관점에서 표현한 말이다. 어쩌면 산업혁명 이후 우리를 둘러싼 환경, 자연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소외시키기 시작한 이래로 우리의 자연에 대한 무지는 심해지고, 지구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더욱 무뎌지고 있는 형국이다. 기원전 2000 소똥구리를 숭배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 월등한 지식을 소유한 우리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애정과 이해는 이들보다 형편없을지도 모르겠다. 똥은 단순히 배출되어 비료로서 자연계에 역할을 하는 것을 넘어 이후의 새로운 생명활동에 관여하는 중요한 자원이기도 하다. 버려진 의존하는 똥딱정벌레의 사례에서 충분히 있듯이 똥에서 새로운 먹이 사슬이 발생하고 자연의 순환과정은  이어진다. 여기에 우리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지혜를 좀더 배워야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통해 똥과 똥딱정벌레로 대표되는 환경과 개체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은 나아가 새로운 생태학적 시각을 넓히고 우리의 삶을 지켜나가는데 중요한 지침이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버려진것들은어디로가는가 # #딱정벌레 #생태학 #생물학 #MID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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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항상 연기가 폴폴 날아다니던 맨하탄을 걷다가 찍어둔 필름 사진으로
시아노프린트용 필름을 다시 제작하고, 감광유제를 직접 만들어
붓으로 바르고 노광한 후 얻어낸 이미지.
 
 
 
아직은 많이 서툴지만 암실에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흑백톤의 인화보다 
제약이 더 많고, 그 만큼 더 간단하게 작업할 수 있다. 
흑백사진은 암실에서 후처리 작업을 의도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좀 더 넓은 만큼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기술을 읽혀야한다.
 
시아노프린트는 제작한 필름을 인화지 바로 위에 밀착인화지를 만들듯이 밀착하여 노광하므로 필름과 인화지 사이에서 후기작업을 할 여지가 없다.
필름을 만들 때, 애초에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볼 수는 있겠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산책하던 어느 저녁
서로에게 집착하듯 떨어질 줄 모르고 사랑을 표현하던 커플을.
이 커플은 분명 한 시간이 넘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내가 산책하러 들어갔다가 나올 때까지도 같은 강도의 입맞춤을 하고 있었으니까.
 
 
사진의 왼쪽 끝에 내 그림자가 부러운 듯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땐 그랬다. 해가 넘어가는 석양으로 늘어진 긴 그림자를 보며
이들도 마치 물처럼 길게 흘러흘러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사진에 해당하는 텍스트를 사진과 많이 띄어놓은 이유는 사진을 볼 때 텍스트를 시야에서 보이지 않도록 의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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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 상대성이론과 파동방정식 그 후, 통일이론을 위한 두 거장의 평생에 걸친 지적 투쟁
폴 핼펀 지음, 김성훈 옮김, 이강영 감수 / 플루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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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원제: Einstein’s Dice and Schrodinger’s Cat)

핼펀(Paul Halpern) 지음 | 김성훈 옮김 | 이강영 감수 | [플루토]

 

 

들어가며

오늘날 아인슈타인은 말할것도 없고, 많은 일반인들이 슈뢰딩거에 대해서도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특히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나, 애매모호함의 상징이 되어버린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 이미 대중문화에 자리잡은지 오래다. 지난 백여년 간의 물리학사를 되돌아볼 , 사람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얄궂은 입장을 공유하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바로 20세기 현대물리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물리학자들의 우정과 연대, 반목과 화해의 이야기이자 현대물리학사의 국면에 대한 흥미롭고 귀중한 기록이기도하다. 그리고 물리학자 사이를 매개하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자연의 모든 힘을 통합하려는 통일이론 있었다. 책은 1900년대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이 태동하던 시기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힉스입자 발견 중력파 검출 등의 최근 물리학 소식까지 아우르며 인류가 존재의 기원 우주의 근본에 대한 이해라는 노력의 현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사람은 20세기 양자역학의 정립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장본인이다.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발견, 슈뢰딩거의 파동역학 정립으로 사람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양자역학이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주축이된 코펜하겐 해석’, 자연의 무작위성 확률 대변되는 철학적 해석이 많은 물리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게 되자,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공동의 전선을 구축하게 된다. 사람은 우주의 질서에 우연이 배제된 결정론적 법칙이라는 명료함과 객관성에 의해 유지된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자연의 여러 힘들을 통합하려는 노력에 전념하게 된다. 책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이들 사이에 오고간 편지 사료들을 조사하여 재구성하고 있다.

 

 

 

스피노자라는 유령과 스피노자의

아인슈타인은 대중에게 너무나 알려진 아이콘으로서 그가 상대성이론이나 광전효과, 브라운 운동 등의 발견 이론 정립 뿐만 아니라 생의 후반에 통일이론 정립에 매진했음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반면 슈뢰딩거도 아인슈타인과 같은 입장에서 서로 경쟁하고, 연대하며 통일이론을 추구했다는 사실은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나아가 책에서 더욱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람 모두에게 의식/무의식 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 다름아닌 스피노자라는 사실이다. 물론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 사람은 모두 철학적으로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마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으나, 시기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스피노자가 나머지 사람에게 영향을 크게 미친 것은 분명해보인다. 그런데 하필 스피노자인가? 네덜란드의 유대인으로서 이른 나이에 유대교단 으로부터 저주와 함께 파면을 당했다고 하는 이단아 스피노자, 파면 렌즈 깍는 일을 하며 독립적으로 자신의 철학체계를 세운 사람에게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경도되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자연에는 우발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신성의 필연성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행동하도록 결정되어 있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재인용(163)

 

저자 핼펀이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인용해놓은 부분을 보면,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평생토록 취했던 철학적 입장, 다시말하면 우주에 대한 근본적 설명에 애매모호함이나 주관성을 배제하려고 했던 입장의 실마리가 보인다. 우연을 거부하고 결정론적인 믿음을 갖게 데에는 분명 스피노자의 치밀한 철학체계에서 영감을 얻은 바가 것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보더라도, 책은 짧은 스피노자의 생애의 상당 기간동안 엄밀한 기하학적 증명 방식을 빌어 자연의 법칙이라는 신과 인간에 대한 논증을 완성해나간 책이다. 공교롭게도 20세기가 태동하면서 등장한 양자역학의 애매모호성 스피노자의 엄정하고 객관적인 신의 세계와 양립불가능해보였다. 다시말하면 스피노자의 완벽한 자연 법칙, 스피노자의 신에 무한한 신뢰를 가진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에게 양자역학은 불합리해 보였을 것이다. 사람 모두 양자역학의 성립에 중요한 기여를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스피노자의 유령은 이들에게 향후 입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는 존재의 질서정연한 조화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지, 인간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신은 믿지 않습니다.

New York Times, 1929 4 25일자에서 아인슈타인의 인용 (164)    

 

아인슈타인의 말을 음미해보면, 그리고 향후 70년이 넘는 인생에서 그가 궁극의 통일이론을 발견하기 위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음을 읽어낼 있다. 결국 스피노자의 신은 아인슈타인 뿐만 아니라 슈뢰딩거에게도 일종의 종교와도 같은 위치에 있었다고 있다. 물론 슈뢰딩거는 아인슈타인보다 좀더 쇼펜하우어와 힌두교의 베단타 철학에 경도되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쇼펜하우어를 서구 최고의 학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쇼펜하우어도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고려한다면, 통일이론을 추구한 슈뢰딩거의 행보도 설득력을 갖는다. 나아가 자연의 모든 법칙을 기하학적 원리를 통해 표현하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아인슈타인에게 스피노자는 일종의 교리였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아인슈타인이 실증적인 증거에 대한 고려없이 순수 수학적인 세계에 침잠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듯하다. 대중적으로는 나날이 인기를 더해가던 시기에 학문적으로는 물리학계로부터 점점 고립되어가던 아인슈타인의 입장을 좀더 이해할 있을 같다. 나는 이것이 스피노자라는 유령이 아인슈타인에게 영향이라고 본다. 저자는 보다 명료하게 스피노자가 아인슈타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양자물리학에서 확률을 거부하고, 수십 년에 걸쳐 매끈한 통일장이론을 추구했던 것은 분명 그가 스피노자의 개념을 열렬히 고수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164-165)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인간적인 면모

그러나 어쩔것인가? 우리 모두는 결국 사람인 것을.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역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의 가정 생활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가정과는 사뭇 달랐다. 사람 모두 화려한 여성 편력과 복잡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물들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 문화에서 정해놓은 규범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하기도하고, 어느 순간 잘못 판단하여 다른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나치가 독일에서 실권을 잡고 오스트리아를 합병 하던 , 슈뢰딩거는 영국에서의 임기를 끝내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대학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나치에 동조하지 않았던 슈뢰딩거는 자신의 교수직을 지키기위해 나치 치하의 오스트리아를 지지한다는 편지를 썼던 일은 분명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만한 일이겠지만, 거대한 폭압적 세력 앞에 자신의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는 개인의 고충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치의 입장에서 믿음직스럽지 못하게 보였던 슈뢰딩거는 편지에도 대학 명예교수직마저 박탈당하고 만다. 아마도 이러한 불안감과 좌절감으로 인하여 슈뢰딩거는 더욱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그리고 베단타 철학 종교적/철학적 질문에 침잠하는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통일장 이론에 매진하던 아인슈타인의 말년, 아인슈타인은 슈뢰딩거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모든 (자신의 통일장 이론에 대한 노력) 옛날의 돈키호테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같군. 하지만 실재를 나타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유지하고 싶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네.

: 슈뢰딩거에게 보낸 1950 09 03일자 편지에서 인용(399)

 

세상물정에 어두워 보이는 아인슈타인이라도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의 노력에 대한 숱한 회의를 했음을 짐작해볼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아인슈타인의 행보를 되돌아볼 , 통일이론을 구축하려는 평생의 노력은 결국 무산되었다. 세기의 천재였지만, 또한 인간이기에 그리고 어쩌면 벗어나기 힘든 자신의 입장과 종교에 가까운 집착으로 인하여 실패는 예견되었을 있다. 하지만 일흔이 넘도록 자신의 신념과 열정에 따라 사망하기 전날 까지도 연구할 있었던 아인슈타인은 인간으로서 하나의 모범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사람이 공통의 목표를 향해 노력을 경주했지만, 이들 사이에 언제나 우정이 가득했던 시기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1947 슈뢰딩거가 통일장 이론을 완성했다는 언론 발표 이후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 사이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슈뢰딩거는 아일랜드 더블린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업적에 대한 압박과 언론사들의 선정적인 보도로 인하여 아인슈타인의 감정을 건드린 부분이 있다고 보인다. 심지어 상대방을 표절로 고소할 생각까지도 했다는 사실도 당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후 사람이 다시 편지를 주고 받기까지 꼬박 3년의 세월이 필요했다는 점도 나에겐 천재들이 결국 완벽하지만은 않은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저자는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 사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사람의 관계를 보면 사람은 애정이 넘칠 때도 있었지만, 배신의 순간도 있었다. 사람은 순간의 환영을 쫓다가도 자신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람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둘도 없는 단짝이었던 것이다.”(423)

 

 

 

나가며

저자 핼펀은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의 관계를 중심으로 바라본 현대물리학사의 모습을 면밀한 자료조사와 이야기 실력으로 흥미롭게 풀어내었다. 특히 사람이 서로에게 또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보다 친근하게 천재 물리학자의 개인적인 생각에 다가갈 있었던 기회였다. 저자가 성실하게 통일 이론과 관련하여 설명해주고 있는 부분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지만, 통일장이론에 관해서는 학문적 소수파에 속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현대 물리학의 발전 과정을 가까이서 있었기에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궁금증을 가진 부분 하나는 불확정성에 관한 아더 에딩턴의 해석에 있다.

양자적 불확정성이 (하이젠베르크가 주장했던 것처럼) 자연의 근본적 속성이 아니라 인간이 절대적인 정확도로 측정할 능력이 없기 때문”(289)이라는 에딩턴의 해석은 현재 물리학계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주장은 아직 하나의 견해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은 결코 절대적인 정확도에 미치지 못하리라는 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그렇다면 물리학 교과서도 바뀌어야 하지 않은가.

 

다른 궁금증 하나는 저자인 핼펀이 슈뢰딩거가 말년에 지도하고 이후에 디랙과도 연구한 레오폴드 핼펀이라는 인물을 거론하는 부분(411) 있다. 성이 동일한 폴과 레오폴드라는 사람의 관계가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물론 책의 주제와 상관없을 것이지만, 가끔은 책의 주제보다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엉뚱한 곳으로, 옆길로 새는 과정에서 나만의 책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분명 저자는 부분에 나름의 의미를 담아 기록해두지 않았을가 하는 짐작을해본다. 저자 핼펀은 슈뢰딩거의 마지막 연구조교라는 레오폴드 핼펀의 아들일까?

 

책을 덮으며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의 관계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현대 물리학사에서 놀라운 업적을 남겼던 사람이지만, 이들도 1 2 세계 대전을 겪고, 나치의 영향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이기에 각자 연구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낸 결과물들이라는 점을 염두해둔다. 아울러 이들도 결국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기에 숱한 과오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사람은 무기력하거나 좌절감을 겪으며 상당한 시간을 뚜렷한 결과 없이 견뎌내었던 점도 잊지 말아야 같다.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람은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둘도 없는 단짝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둘을 묶어주는 힘은 통일장 이론이었으며, 이들이 수없이 주고 받았던 편지들은 존재 사이의 힘을 매개해주었던 교환입자 같기도 하다. 어쩌면 사람은 슈뢰딩거 자신이 언급했던 고양이 역설 사고실험에서 얽힘 대상이 되는 입자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떨어져 있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주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C) 표지/일러스트: 이다은

 

 

 

 

#사이언스올 #과학 #우수과학도서 #리더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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