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 꼿꼿하고 당당한 털의 역사 사소한 이야기
커트 스텐 지음, 하인해 옮김 / Mid(엠아이디)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헤어 Hair: A Human History>

커트 스텐(Kurt Stenn) 지음  |  하인해 옮김  |  MID

 

(‘털은 그저 털이 아니었다’)

언젠가 나의 머리카락이 하루에 얼마나 자라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달에 1 cm 정도 자란다고 가정하고 계산했더니, 머리카락은 4 나노미터(nm)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거리는 DNA 이루고 있는 염기쌍 10 사이의 거리에 해당하는 거리(대략 3.4 nm) 맞먹는다. 분자 크기 세계에서 본다면 머리카락은 매초에 DNA염기쌍 10 사이의 거리에 해당하는 거리만큼 '격렬하게' 세포분열을 단백질 합성을 하여 피부 위로 밀어올리고 있다는 말이다. 두피 아래에서 지금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격렬한 생명현상이 바로 나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털은 그저 털이 아니다라는 말이 다시 보이게 것이다.

 

이제 다루게 <헤어> 손에 넣기 전에, 아내가 나에게 야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같다라고 의심의 눈길을 보낸 적이 있다. 인간이란 존재가 아무리 심신이 유기적인 존재라고 하여도, 과연 생각만으로 단백질 합성 속도가 빨라질 있다는 말이 사실일까? 스트레스에 의한 심리적인 영향이 소화불량, 불면증과 같은 생리적 변화를 야기하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전혀 근거없는 말도 아닐 같다. 나는 우선 부당하게 아내로부터 받은 의심의 눈길대신 머리카락의 성장에 대한 진실을 설명하고 아내의 미안해하는 눈빛을 보겠다는 사심가득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 커트 스텐은 병원 의사이자 과학자로서 평생 털과 모낭을 연구해온 독특한 전공을 가진 인물이다. 책에서 저자는 책을 쓰게 동기를 이발소에서 경험한 일화로부터 말하고있다. 이발사와의 대화 털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와 과소평가하는 태도를 보고 지구 위에 사는 존재자로서 털이 갖는 중요성과 의미를 폭넓게 소개하기로 결심한다. <헤어>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털에 대한 과학적 배경지식으로부터 풀어나가는데, 털의 구조 성장주기와 같은 생물학적 기초지식에서부터, 진화적 의미, 탈모 등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한다. 2부에서 저자는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 자체 대한 인문적 고찰을 하고있다. 무엇보다도 매우 강력한 메시지 전달 수단임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털에 얽힌인류사적 측면을 이야기한다. 비버의 털과 가죽을 얻기 위한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결과와 영국이 양모 산업의 전모 등을 매우 흥미롭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털에 관한 과학적 배경지식)

우선 박사 커트 스텐이 설명하는 털의 역할은 우리 몸에서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생물이 지구상에 등장하여 지금까지 진화해온 역사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원시포유류인 오리너구리는 조류나 파충류처럼 알을 낳지만, 새끼가 알에서 부화하면 포유류처럼 젖을 먹는다. 오리너구리는 조류, 파충류, 포유류의 유전자를 모두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원시포유류로서 진화의 단계를 지지해주는 증거다. 이러한 진화 단계를 고려하면 생물체와 외부세계를 구별짓는 경계로서의 표피(보호막)’ 어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변형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조류의 경우, 표피가 가는 섬유형태로 갈라져 깃털이 반면, 포유류는 바로 형태로 진화했다는 식이다.

 

털에 관한 흥미로운 배경지식을 하나 하나 알아가면서 나의 흥미를 강하게 끌었던 부분은 미스터리한 성장 주기에 대한 부분이었다. 우선 저자는 털의 기본적인 가지 성장주기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털의 성장기에는 진피에 있는 모낭세포에서 맹렬한속도로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시기로서 모간() 1달에 1 cm 피부 밖으로 밀려나온다. 다음 단계인 휴지기에서 세포분열은 중단되고 성장이 정체상태에 이르며 머리카락은 피부에 단단히 고정되는 시기이다. 시기가 끝나면 탈락기 이어지는데, 털이 빠진다. 사람은 매일 50-100개의 머리카락이 정상적으로 빠지게 되는데, 시기에 빠지는 머리카락이 탈락기 있는 녀석들인 셈이다.

 

털의 성장 주기를 새롭게 알게되면서 나의 관심을 끌게된 것은 털이 미스테리한 주기를 갖는 경우이다. 예컨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셀 있고, 호르몬에 따라 머리가 벗겨질 있다.”(61) 같은 경우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바로 뒤에 미국 소설가 애드가 앨런 포의 단편 < 소용돌이에 빨려들어서> 소개하며, 젊은 어부의 이야기 꺼낸다. 젊은 어부는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우를 만나 밤새 극심한 파도와 싸우면서 하루만에 머리전체가 하얗게 센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문득 목소리 소설 알려진 노벨문학상 수상(2015)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어느 대목을 떠올린다. 책에서 저자는 전쟁에 참여한 러시아 여성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는데, 잔혹한 전투 현장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하루만에 머리가 하얗게어버린 여인들의 증언이 나오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 있을까, 과장은 아닐까 의심했지만, 이런 증언이 건이 아니었다. 커트 스텐은 "드물기는 하지만 의사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끔직한 정신적 충격으로 모발이 갑자기 변하는 현상을 목격한다."(63면)라는 점도 덧붙이고 있는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인터뷰기록을 읽을 때는 어린 러시아 여군들이 받았을 스트레스의 강도를 보여주겠거니 했지만, 어쩌면 이런 불가사의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우선 커트 스텐은 포의 소설 인물을 언급하면서 머리카락이 하얗게어버린 현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를 설명하는 사례로 소설 인물을 점은 우선 저자의 설명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나아가 하루만에 머리카락이 하얗게어버린 이유로 저자는 엉뚱하게도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탈모 원인으로 들고 있다. 죽을 뻔한 고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대부분의 까만 머리카락이 빠져 하얗게 두피가 드러났다는 설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인터뷰한 전직 여군들을 인터뷰했다면 과연 원형탈모 이유로 설명할 있었을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등장하는 전직 여군들이 전쟁에 참여한 나이대가 대부분 10 후반이었다. 극심한 전투의 스트레스로 하루만에 원형탈모가 일어나 검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하얀 두피가 드러났다라고하면 10 후반의 젊은 여성들이 하루만에 대머리가 되었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해보인다. 커트 스텐은 탈모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기 위한 장치로서 머리카락이 하얗게어버린 젊은 어부를 언급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인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고, 인간의 심리적 요인이 신체에 주는 영향이 긴밀하고 직접적인 존재이다. 머리 색에 대한 저자의 설명대로 피부 아래에 있는 멜라닌 색소 전쟁과 같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색소의 분포에 영향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부분은 당분간 나의 궁금증으로 남을 같다.

 

 

(털의 문화적 기능 메시지 전달 수단)

<헤어> 읽기 전까진 대한 포괄적인 관점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굳이 오랜 기억을 더듬어본다면, 털에 관한한 단지 단편적인 사례들로서 나의 경험 속에 존재할 뿐이었다. 예를 들어 학창시절 두발 규정에 대한 반감과 삭발 학생에 대한 반항아/이단아로서의 처벌에 대한 기억이 우선 떠오른다. 그리고 빡빡머리 군복무 시절이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회에서 길고 단정하지 못한 , 머리카락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못하는 메시지를 주었다. 또는 의도적인 장발 세력으로서 6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히피족들을 있다. 이들은 긴머리를 하나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하며 저항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저자는 집단성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서 삭발은 비인간화와 정복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다라고 말한다. 사형수를 처형하기 전에 머리카락을 삭발하는 과정은 사형수로부터 인간다움 흔적을 제거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1431 다르크가 화형당하기 , 1793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서기 삭발당한 사례에서 인간다움을 제거하는 과정 분명히 찾아볼 있다. 특히 이렇게 희생당한 대상이 여성 경우, 삭발은 메시지의 잔인함을 더욱 극대화한다고 있다. ‘인간다움의 제거에서 나아가 여성다움의 제거라는 기능이 더해짐으로써 이러한 메시지의 강렬함은 더욱 극적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있다. 희생자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삭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떠오르는 사례는 나치가 기획한 유대인 절멸 수용소에서 찾아볼 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해진 나치의 비인간화절차로서 수용되어있던 유대인들에게 동일한 옷을 입히고, 몸에 모든 털을 깎아버림으로써 각자의 개성을 말살한 점을 있다. 같은 옷을 입고, 동일한 머리 모양을 이들을 이름이 아닌 수감번호로 불리며 개성을 박탈당한 집단이 되었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인간이란 존재의 존엄성이 제거된 것이다. 유대인 수용소의 생존자 알려져있는 프리모 레비의 증언으로부터, 공간에서 피수용자들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자각이 희미해진 상태에 익숙해져가는 상황을 레비의 증언에서 엿볼 있다. 이제 <헤어> 통해 (주로 머리카락) 강렬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준다는 의미에서 털은 강력한 메시지 전달 수단이라는 관점을 분명히 이해할 있게 되었다.

 

좀더 밝은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여주인공인 오드리 헵번은 탈출한 공주 연기한다. 하루의 짧은 일탈을 맛보는 고귀한 존재로 등장하는데, 오드리 헵번의 보편적인 이미지는 우아함 있다. 이미지의 형성에 헵번의 헤어스타일이 절대적으로 기여했다고 있다. <로마의 휴일>에서 로마에 국빈으로 머무는 동안 로마 시내로 탈출한 공주는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미용실을 지나치는 장면이 나온다. 공주는 미용실에 들어가 머리를 귀밋머리 단발로 자르게 된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은 공주의 변신 대한 욕망을 대변한다. 번쯤 일반인들처럼 거리를 산책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데이트도 해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램이 영화의 장면에 나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내면의 여러 자아중에서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자아를 선택한다는 의미로서 장면의 역할을 상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우연치 않게 지나치게 되는 장면이지만 머리카락이 분명한 메시지 전달 수단임을 확인해보는 또하나의 사례가 것이다.

 

 

(인류사에서 털이 끼친 영향들)

인간의 털이 아닌 동물의 털과 가죽을 벌거벗은 인간 이용하게 됨으로써 털을 가진 동물의 수난사는 인류사에서 이미 일찌감치 시작되었음을 <헤어> 보여준다. 16세기에 이미 가장 인기있었다는 비버의 모피교역으로 17세기 서유럽에서 비버가 사실상 멸종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탐욕은 다시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눈길을 돌려 북아메리카에서 비버 모피를 유럽에 들여오는 교역이 활발해졌다. 결과 1840년대 이미 북아메리카의 비버 가죽교역은 이미 붕괴하게 되었다. 물론 과정에서 저자는 모피를 찾아 아메리카 원주민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며 누비던 서구인들이 북미 대륙의 지도를 만들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의 언급대로 비버를 거의 멸종상태에 만들면서 제작한 지도작성 작업이 인류에 기여 일이라 말할 있을까. 인간의 탐욕대로 숲을 약탈하고 파괴함으로써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멸망을 가져왔듯이, 모피를 얻기위해 다른 동물을 수없이 멸종시키고 생태계를 교란시킨 인간에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연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인간은 대용물을 다시 찾아 나설 것이지만 동물들의 털이 인류에 기여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 것같다.

 

인류의 문화에 영향을 끼친 동물털의 예로 저자는 잉들랜드의 양모산업을 이야기한다. 13-14세기 중세 유럽에서 돈이 되는양모 무역은 급속하게 확장되었고, 양모무역을 통해 근대 자본주의의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바로 은행, 금융의 기원이 양모 무역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메디치가가 부를 축적할 있었던 , 신대륙을 발견했던 콜럼부스의 가문이 양모 무역에서 부를 축적할 있었던 배경은 바로 과의 관련성을 다시 조명해주고 있다. 그만큼 중세 말기에 양모무역은 이미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이해된다. 보다 흥미로운 점은 잉글랜드의 양모가 오늘날 어떻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양모 산업의 전통을 갖게 되었는지에 관해서이다. 13세기 궁정의 조직적인 노력으로 플랑드르 지방의 앞선 양모 산업 관련 종사자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잉글랜드에 귀화시킨 , 그리고 국가적으로 양모 수출입에 대한 통제등을 통해 오늘날 후손들은 전통있는 양모 산업의 전통을 갖게되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우리는 털이 단지 털이 아님 충분히 인정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만큼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에 있어 털은 신체 외부 환경와 내부를 경계짓는 표피의 변형으로서 개체 자체의 생존에 지극히 중요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개체들의 삶에 깊숙히 영향을 주고받는 변수였던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책을 읽기 내가 품었던 사심어린 독서의 목적을 상기해본다. 머리카락이 야한생각을 많이 해서 빨리 자라는 아님을 주장할 있는 단서가 있을까. 저자는 모발의 성장을 남성호르몬의 안드로겐이 주는 영향과 견주어 언급하는 대목은 보인다. 일단 안드로겐 농도가 급상승하는 사춘기에 2 성징으로서 음모와 겨드랑이와 다리에 털이 나는 뿐만 아니라 털이 두꺼워지는현상을 말하고 있긴 하지만, 모발이 빨리 성장하는 것에 관한 언급은 분명 찾아볼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야한 생각하기라는 심리적 동인이 생리적으로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지 확신할 있어야하는데, ‘야한 생각을 많이 하는 안드로겐의 분비와의 관계에 대해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오히려 야한 생각을 많이 머리카락의 빠른 성장 대한 아내의 비난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머리카락은 사람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탈모 진행되거나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이 불균형하게 분비되도록 영향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야한 생각을 하는 행위 모낭 하부 세포의 세포분열을 더욱 빠르게 하여 단백질을 빨리 합성한다는 말보다(단백질 합성 속도의 상한선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해줌으로써 탈모 확률이나 남성호르몬의 불규칙한 분비 가능성을 극소화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야한 생각을 하는 행위 머리카락을 빨리 자라게 해주지는 못해도, 머리카락의 성장에 제한이 가거나 호르몬 분비가 불규칙하게 분비되어 성장 저해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머리카락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해준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머리카락의 성장 속도를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각종 스트레스 환경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서)우리가 머리카락이 빨리 자란다 인식할 있지 않은가.

 

하나, 남성중심적인 신경과학의 연구결과 편견을 비판한 심리학자 코델리아 파인의 저서 <젠더, 만들어진 >에서도 언급하듯이, 과학의 급속한 발달로 현대 신경과학 분야는 fMRI 같은 뇌활동부위 영상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코델리아 파인이 비판하고 있는 바대로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부위에 대한 기록을 심리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야한 생각에 의한 머리카락의 성장 결부지어볼 있을 것같다. 다시말하면 뇌활동 전위를 기록한 자료만으로 피검사자가 무슨 생각을 했으며 어떤 심리적인 반응에 기인했는지 소급해서 심리적인 원인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다시 정리하면, 나의 머리카락이 매우 자란다고 하더라도 사실이 내가 야한 생각을 많이 이라는 심리적인 동인 하나로 소급해서 지적할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오히려 야한 생각을 많이 한다면(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바쁜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벗어남으로써 탈모예방이나 불균형적인 호르몬 분비 문제를 예방할 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설득력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오히려 야한 생각을 함으로써 건강한 모발 지키는데 오히려 도움이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일 수는 있지만, 아내의 비난에 대한 나의 입장은 이렇다.

 

 

<헤어>를 읽고 받은 인상을 다시 떠올리자면, 털은 그저 불필요하게 신체에 난 존재가 아니라, '나'라는 개체가 인간이라는 종의 계통이 겪어온 진화 과정의 흔적을 보여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아울러 인간의 문화가 발생한 이래로, 털은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담는 수단으로서 기능하였다는 점을 상기해본다. 나아가 '벌거벗은 원숭이'로서 다른 동물의 털과 가죽을 이용하기 위한 인류 욕망의 대상으로서 털과 관련한 경제활동은 인류 역사의 무대에서 중심적인 기능을 수행해왔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서의 털에서 더 나아가 DNA라는 인간 고유의 정보를 담고 있는 머리카락은 현대에 이르러 새로운 정보를 지닌 수단으로서 중요성이 재평가되어야할 것 같다. 털은 그저 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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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권 독서법 -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나미 아쓰시,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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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권 독서법>

인나미 아쓰시 지음 |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독서를 하면 좋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잊을만 하면 대중매체에서 평균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책을 읽지 않는지 성토하는 기사가 눈에 띈다. ‘책을 많이 읽어라라는 말은 많이 들리고, 소위 인문학 열풍 불기시작한지 지나도 여전히 비슷한 기사들만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언론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4 혁명 이야기하고,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정보의 바다에 언제든 접근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성인 평균 독서량이 달에 0.8권에 그치고 있다는 식의 기사만 여전히 나오고 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하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는 이들이 많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책을 읽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새해를 맞아 올해는 책을 좀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 달이 지나고 달이 지나면 여전히 작년과 같은 생활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는 나를 발견한다. 마치 언덕아래로 굴러떨어진 돌을 끊임없이 언덕위로 밀어올려야하는 시지포스의 신화처럼 무기력의 무한궤도에서 벗어나기 힘든 나를 발견할 뿐이다.

<1만권 독서법> 내가 책을 좀더 효과적으로 읽을 있는 방법은 없을지, 다른 독서의 고수들은 어떻게 책을 읽을지 궁금하던 차에 발견한 책이라서 단숨에 읽게 되었다. 저자 인나미 아쓰시는 일본에서 서평가로 활동하면서 하루에 이상, 평균 2권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자신의 경험을 간결하게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다. 아쓰시는 정보화시대 넘어 정보과잉시대에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독서 행위 대한 발상의 전환을 책에서 이야기 한다. 나아가 저자는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언급 뿐만 아니라 독서 행위 대한 의미나 바람직한 독서 습관, 독서 , 글쓰기(서평쓰기), 고르기 관리, 처분하기 등에 관해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선 저자인 아쓰시는 독서법에 대한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책을 시작한다. 과연 정독만이 독서하는 유일한 방법이 있을까? 아쓰시는 정독 대한 속박이 잘못된 학교 교육의 저주라고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따라서 정보가 넘처나는 시대에 저자는 속독 기술이나 안구 운동에 대한 테크닉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느리게 읽는 독서가 어떻게 많은 책을 읽을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책들을 읽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는 각각의 책에도 적절히 읽는 속도가 필요하다고 진단하며, 모든 것을 기억하려는 욕심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른바 플로우 리딩으로 기억해두려고 담아두지 말고 자신의 내부로 흘러드는 것에 가치를 두는 독서법을 제한하고 있다.

 

(책읽기와 글쓰기 숨쉬기(들숨과 날숨) 비유)

아쓰시가 제시하는 속독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책읽기는 숨을 쉬는 행위와 같다는 대목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숨을 들이쉬기만 해서는 생명을 유지하는 호흡을 없는 것처럼 너무 많은 양을 읽기만 해서는 건강한 독서생활이라 없다.”(59)

따라서 읽기(들숨) 것이 아니라 쓰기(날숨) 과정을 병행할 것을 제시한다. 쓰기의 과정에는 독자가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암기하려고 하지 말고 옮겨 쓰는 필사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과정에서 정보의 재구축과정이 일어나고, 책으로부터 자신만의 에센스를 뽑아 두어 자신이 만든 요약집을 갖게 된다면 이는 책을 읽으며 자신이 들이쉬고 내쉬는 모든 것을 담는 독서를 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쓰기와 에센스가 되는 문장의 취사선택) 동반되는 독서과정을 하게되고, 이것이 결국 빠르고 깊게 읽는 독서법이라는 것이다.

 

밖에도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간결하게 정리해낸 자신만의 독서팁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핵심적인 사항이 바로 키워드 독서법이다. 방법은 우선 책을 읽을 자신이 목적을 분명히 인식하고, 머리말과 차례를 읽어 전체의 흐름을 파악한 키워드를 정해 읽는 적극적인 독서법이다. 키워드 검색법을 적용하면 키워드와 연관성이 적은 부분은 넘겨 읽거나 빠르게 읽어나가고, 키워드가 포함된 부분은 필사 해두면 된다. 한가지 팁은 책을 읽으며 책에 밑줄을 긋지 말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사실 지금까지 많은 독서의 고수들이 적극적으로 책을 읽는 방법으로서 독자가 인상적인 구절을 만나면 밑줄을 긋고, 여백에 노트를 하라는 말을 많이 하곤한다. 하지만 어떤 독서의 고수는 이렇게 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어서 혼동이 되기도 한다. 과연 어느 것이 나에게 적합한 방법인지는 정답이 없는 문제 같다. 다만 저자인 아쓰시는 밑줄 긋기 무의미한 활동으로 대부분 다시 보지 않으며, 자기 만족으로 끝나게되는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어느 쪽이나 맞고 틀린 방식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1만권 독서법>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독서에 대한 고민 뿐만 아니라 좀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저자의 고민과 경험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저자는 하루에 이상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서평가로서 수많은 책을 관리하고 처분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조언을 하고 있다. 특히 수많은 책을 어떻게 내보낼 것인가하는 문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갖는 고민거리일 것이다. 저자는 책의 처분을 어떻게 하며, 기준은 무엇일까. 아쓰시는 불필요한 책을 처분하면 비로소 필요한 책이 보인다."(146)라는 기준을 내세운다. 책읽기나 책관리 모두에 있어서 플로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소유하기보다는 나를 거쳐서 내보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읽다 책으로 2년이 넘은 책들은 다시 읽지 않을 가능성이 크므로 처분기준에 들어가고, 오래된 책이라 시대에 맞지 않는 책을 우선적인 처분 대상으로 삼는다. 만약 망설여진다면? 저자는 책과 언제든 다시 만날 있음 의식하라고 조언한다. 책과의 인연을 고려한 현실적인 조언이다. 그리고나면 남은 책장은 3개월 마다 정리하여 남길 책을 정한다. 3개월 전에 남기기로 판단도 지금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독서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을 버리느냐가 아니라 어떤 책을 남기느냐에 있다.”(155) 어디에서 읽었는지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소설 <연금술사>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서재 정리에 대한 부분이 기억난다. 작가 코엘료는 자신의 서재에 400 정도의 책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팔거나 기증한다는 것이다. 아마 코엘료는 책의 저자 아쓰시의 서재 관리에 인상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만을 남겨도 충분하다는 점이다 

 

(정리)

결론적으로 말해 <1만권 독서법>에서 저자인 아쓰시가 1년에 700권의 책을 읽는 방법의 대상으로 삼은 책은 제한적이다. 저자가 말하는 빨리 읽을 있는 경영서, 자기계발서에 한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 에세이와 같은 플롯을 갖는 스토리물은 책에서 제시되는 속독의 대상이 아니다. 저자는 책에서 언급하는 속독의 대상이되는 책을 분명히하고 있으며 모든 책을 빨리 읽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독서고수들이 언급했듯이, 꼼꼼하게 읽어야할 책이 있고, 빠르게 건너 띄고 핵심만 점검하며 읽어나가도 되는 책이 있다. 판단은 결국 독서과정에서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울러 책이 독서법에 관해 언급하는 다른 서적과 다른 점은 저자의 균형잡힌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없다라는 말도 있듯이 책에서 제시되고있는 속독법들은 일본의 다독가인 다치바나 다카시나 독서광인 장석주 시인등이 언급한 내용들과 많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저자의 방식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거나 강요한다는 점인데,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방법을 소개하되 여러 가지 경고 주의사항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예컨데, 저자는 다독을 있는 속독의 팁을 이야기하면서도 지식만을 위한 독서는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결국 무언가를 위한독서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을 것을 우리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아울러 책에서 언급하는 속독의 대상이 되는 경영서나 자기계발서가 아닌 문학서적이나 철학서적과 같은 빨리 읽기 어려운 들은 빨리 읽을 있는 책과 병행하여 읽고, 특히나 시간을 요하는 책들은 독서계획에 들어있지 않은 쉬는 읽으라는 현실적인 조언까지 잊지 않고 있다.   

다시 책을 덮으며 돌이켜보면 느리게 읽는 독서가였던 저자 인나미 아쓰시는 빠르게 읽을 있는 들에 대한 책읽기의 팁을 전해준다. 아울러 생각해볼만한 독서의 가치 전하며 독서와 관련된 전반적인 사항들을 포괄적이면서도 간결하게 전달하고 있다. 책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 , 머리말과 목차를 꼼꼼하게 살펴보라는 저자의 조언대로 책의 목차를 다시 살펴보았는데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 상당히 공을 많이 들여 짜놓은 목차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소설이 아닌 정보를 전달하는 책들도 종종 목차를 보고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기 힘들만큼 소홀하게 작성하거나 정보가 부족한 책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지는 않지만, <1만권 독서법> 나의 선입견을 깨고, 보기보다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특히 균형감있고 합리적인 저자의 견해에 공감을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다만 아주 새롭고 놀라운 사실이나 팁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 었고, 독서법의 대상이 되는 책의 범주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저자인 아쓰시의 조언대로 책에서 내가 만난 인상적인 문장을 고르라면 다음과 같다.

독서의 진정한 가치는 책의 내용을 전부 머릿속에 기억하는 있는 아니라 가치를 느낄 있는 1퍼센트를 만나는 있다.” (23)

어느 책에서 하나의 강렬한 인상을 받고,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달라져있다면 분명 책은 책장에 오래 남아있게 것이다. 앞으로의 독서계획에 책의 조언이 여러 모로 도움이 것이다.

 

 

 

 

(23면)
"독서의 진정한 가치는 책의 내용을 전부 머릿속에 기억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가치를 느낄 수 있는 1퍼센트를 만나는 데 있다."

(67면)‘한 줄 리뷰‘쓰기에 대해
"최고의 문장에 마음이 움직인 이유를 기록한다."

곧 저자는 독자가 만난 인상깊은 문장에 대해 감동받은 이유를 써보라는 조언으로 감상문 쓰는 습관 들이기를 권하고 있다.

(84면)
"쓰면서 읽어야 빠르고 깊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소유하지 않는 독서법‘을 말하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암기하지 말고 그대로 옮겨 써보는 것으로 시작해보라 조언한다.

(115면)
"외우지 않아야 잊지 않는다."

이 말도 곧 같은 맥락에서 외우지 말것을 주문한다.

(131면)
"책읽기의 진정한 묘미는 새로운 관심이 피어나는 순간에 있다."

내키지 않는 책도 읽어서 좋았던 부분이 대부분 있다. 책에서 이 1퍼센트의 가치를 찾으면 될 것이다.

(149면)
"관리할 수 있을 만큼의 책을 소장하고 자주 환기하는 것이 가장 좋다."

책 관리와 처분에 대한 저자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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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역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연주한 Free Jazz Guitarist 최성호 특이점의 공연 후 즉흥 감상'


2016년 11월에 발매된 '최성호 특이점'의 2집 앨범 이후, EBS에서 이 음반에 수록된 곡을 중심으로 공개녹화를 진행하였다.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 즉흥음악이란 무엇일까 나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몰라서 궁금증이 생긴것이었는데, 물론 나에게도 답은 없다. 그저 음악을 취미로 듣지도 않았던 나에게는 사실 매우 어렵게만 느껴지는 음악이다. 하지만 공연 중 최성호는 자신의 작곡과정을 지극히 '소소하게' 얘기했다. 그의 작곡과정은 일상에서 맞닥드리는 '작은 사건'을 모티프로하곤 한다는 것. 무언가 거창하고 대단한 주제를 가지고 난해한 음악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너무나 싱겁게마저 느껴지는 일상의 어떤 순간이 최성호에게는 '낯설게 느껴지고', 이것이 그에게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주는 모양이다. 


글세...기타(최성호), 베이스(김도영), 이한얼(피아노), 드럼/퍼커션(백선열) 이렇게 네 명이 모여 연주를 하는 쿼텟 구성으로, 연주자들 바로 앞에서 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문득 어떤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도시의 일상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고, 나는 도시를 멀리서 조망하는 그런 느낌말이다. 마치 디오라마 형식의 도시 사진처럼 작은 장난감 같은 전철이 한강의 다리를 건너고 있고, 벼룩같은 차들이 분주히 자기 갈길을 재촉한다. 점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미세한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런 도시의 원경이 떠오른다. 우리의 일상은 누가 뭐래도 각자 알아서 분주히 진행되고 있다. 거리를 지날 때, 스쳐지나가는 어느 여인은 누군가와 전화로 이야기하며 지난 주 소개팅한 남자를 흉보는 그런 대화가 잠시 들리다 사라지는 그런 도시의 일상이 떠오른다. 


즉흥 연주의 본질적인 특징일까. 특이점의 연주를 들으면서 이들의 즉흥 연주는 마치 '문어'와 '불꽃놀이'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문어'는 주변 환경의 색과 표면 특성에 따라 순식간에 주변 환경과 동화를 이루는 능력을 갖는다. 특이점의 연주도 이와 비슷하다. 네 명의 악기가 각자가 내는 불협화음과도 같은 소리가 어느 순간 어떤 패턴을 띠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드럼 연주자가 갑자기 어느 리듬을 다르게 치기 시작함과 동시에, 나머지 밴드의 연주가 마치 문어 다리의 색이 순식간에 변해가는 것처럼 이들도 새로운 패턴을 따라간다. 너무나 예민한 '촉'을 훈련받은 사람들같다. 라이브 공연이라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이들은 기타리스트의 색다른 시도에 다른 멤버들이 순식간에 이에 호응한다. 탄탄한 기본실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런 예측하기 힘들어보이는 변화에 대응하기가 정말 어려울 것 같다. 마치 문어의 한 몸처럼 이들은 자신의 색을 순식간에 바꾸는데 아주 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이점의 즉흥 연주는 '문어'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한편 최성호 특이점의 연주는 '불꽃놀이'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불꽃놀이를 유심히 보면, 하늘로 올라가는 하나의 거대한 불줄기로부터 작고 여러 가지 불줄기로 나뉘고, 이들이 퍼지는 동안 또다시 어느 순간 각자의 점이 새로운 불줄기를 결과하는 프랙탈 구조같은 연주같다는 생각을 했다. 번져가던 작은 불줄기의 점들이 어느 순간 새롭고 더 작은 불꽃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더 작은 불꽃을 내뿜는 계기는 연주자가 의도한 새로운 연주가 진행되기 시작할 때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특이점의 연주는 이렇게 폭죽이 터지는 양상과 유사한 것 같다는 생각을 연주를 들으며 해보았다. 


예술의 장르는 서로의 경계를 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스스로 존재해나가는 것일까. 최성호 특이점의 연주를 들으며 기타리스트 최성호가 언급한 작곡 과정의 모습들은 마치 현대 사진의 과정과 매우 유사한 면이 있는 듯하다. 근대적 사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투디움'적 요소, 다시말하면 어떤 학습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 정보에 해당하는 요소들보다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반응을 일으키는 '푼크툼'적 요소에 보다 큰 자리를 내주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가 '푼크툼'을 언급할 때 사진을 바라보거나 어떤 오브제를 바라볼 때 관찰자의 내부로 관통해 들어오는 어떤 충격의 요소까지는 아닐지라도, 관찰자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어떤 인자를 상정할 수 있는 것이다. 최성호의 음악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눈이 고요히 내리는 광경을 무심코 지켜보다가 문득 바람이 불어 눈이 위로 올라가는 순간을 그는 포착한다. 또는 한강변을 걷다 바람이 불어 자신이 하고있던 생각의 편린들을 바람에 실려보내는 듯하다고 말하는 그는 온 몸과 마음의 힘을 빼고, 지극히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하는 연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최성호 특이점의 즉흥연주를 바라보면 Free Jazz란 연주자 중심의 지극히 개인적인 장르이면서도 그 나름의 보편적인 주관성을 갖는 '반응'의 음악이라 나 나름대로 정의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Free Jazz의 본질적인 특징을 현대 사진의 맥락에서 그 유사성을 찾는 이유가 바로 이 '주관적이면서 무의식적인 반응성' 때문일 것이다. 


EBS 공연 팜플렛을 보면 최성호가 한 말로 보이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즉흥 재즈하면 뭔가 추상적인 대단한 의미를 담은 음악인 것 같지만, 저의 음악은 대부분 일상 속에서 느끼게 되는 지극히 평범한 감정들에서 출발합니다. 우리의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자 합니다."    


최성호는 자신의 소소한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긴밀히 교감하는 연주자란 생각을 해본다. 그에게 작곡의 대상은 일상에 '촉수'를 드리우고 있는 한 무궁무진할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이해하고 있던 즉흥 음악, free jazz의 난해함과는 달리 최성호의 음악은 서정적인 멜로디가 자주 나온다. 이런 부분이 그 만의 독특한 특징일까. 즉흥 음악이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그가 연주하는 이런 서정적인 멜로디의 적용도 역시나 낯설긴 마찬가지다. 최성호는 이런 자신만의 특징을 억누르거나 감추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으로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점은 본인이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인지도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최성호 특이점'이 해나갈 앞으로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연주자로서 만들어나가는 정체성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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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 Generation>

하비 피카/ 풀 볼 (글)

에드 피스커 (그림)

김경주 옮김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 모음]

 

미국의 현대 역사에 있어서 60년대는 그 언제보다도 역동적이고 사건 사고가 많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사회, 문화 및 예술 등의 사회 모든 영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분출하고 충돌하던 시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히피문화, 여권운동(성차별 반대), 인종차별반대 운동, 케네디 대통령 암살, 루터 킹 목사 암살, 미국의 베트남 전 참전 및 반전 운동 확산, 68혁명 등의 역사적 사건들은 60년대를 특징짓는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역사의 한 부분에서 큰 역할을 한 문화적 요소로서 '비트 세대'를 반드시 고려해야할 것 같다. '비트 세대'는 대체로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를 관통하는 큰 문화적 흐름의 하나였다. 기존의 체제에 대한 저항적이고 반동적인 성격을 특징으로 하며, 미국의 작가 들에게 좀더 색다르고 도전적인 시와 산문을 쓰도록 영향을 주었으며,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들의 문학작품 및 생활에 큰 영향을 주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 비트 세대들은 동성애에 대해 말하고, 징집 반대, 반전주의, 마약복용 허용 등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생활방식으로 많은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비트 제너레이션>은 미국 현대사를 이루는 중요한 19세기 중반의 비트 세대에 한정해서 조명하고 있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를 통해 보다 생생하게 이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 '비트 세대'들의 대표 인물인 잭 케루악(Jack Kerouac),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urg), 윌리엄 버로스(William Burroughs)를 중심으로 이들을 둘러싼 미국 문화의 한 단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비트 세대'에 대한 정보를 문학이나 역사를 통해 접하게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진'이라는 분야를 통해 알게 되었다. 1957년 스위스 태생의 사진작가인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미국을 자동차로 횡단하며 찍은 사진들로 만든  <The Americans>라는 사진집을 출간하게 되는데, 이 사진집은 사진사적으로 기존의 근대 사진을 뛰어 넘어 현대 사진으로 넘어가는데 큰 영향을 준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대단한 테크닉이나 위대한 장면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의 모호한 연작이었던 것이다. 당시 세계 최강의 부유한 시절을 보내던 미국에서 어떤 점에서 보면 기존의 다큐멘터리적인 사진들이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연작의 형태로 미국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었기에 호불호가 매우 강했을 것이다. 후에 잭 케루악이 이 사진집에 주목하고, 널리 이야기하면서 더욱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와 잭 케루악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는지의 여부를 알지 못했지만, 이 <비트 제너레이션>에는 그 친분을 알 수 있는 대목이 한 문장 나온다.

"케루악과 긴즈버그는 함께 썼던 시 <풀 마이 데이지>를 로버트 프랭크, 알프레드 레슬리와 함께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케루악의 나레이션은 최고였고, 독립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작품이 되었다."

(44면)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는 독립영화 제작도 했다는 기록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데, 바로 케루악과 긴즈버그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록 한 줄 밖에 단서를 찾을 수 없었지만, 매우 흥미로운 정보였다. 특히 영화에 관심있는 이들은 이들의 작업을 찾아보면 케루악과 긴즈버그의 시와 이들의 영화화 작업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957년 9월 미국 일간지 <New York Times>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On the Road>에 대한 서평이 실린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1957년에 잭 케루악과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 <The Americans>의 발간은 이미 비트 세대의 분출이 여러 분야에서 예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비트 세대'의 중심 인물들의 생활을 보면(마약과 동성애, 심지어 강도와 우발적 살인) 일반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거부감을 야기할만하다. 마약을 한 상태에서 여자 친구의 머리에 유리잔을 올려놓고 윌리엄 텔 놀이를 하다가 여자 친구의 머리에 총을 쏘아 죽인 윌리엄 버로스의 일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비트 세대들에 대한 보다 생생한 묘사를 통해 이들의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면모에 더욱 주목하게 되고, 미국 역사의 한 단면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일화일지는 모르겠지만 윌리엄 버로스의 유명한 소설 <벌거벗은 점심 Naked Lunch>가 원래는 <벌거벗은 욕망 Naked Lust>였던 것을 앨런 긴즈버그가 잘못 읽었고 이 제목에 대해 잭 케루악이 비난한 사실로 인해 정해진 제목이라는 일화 등은 <비트 제너레이션>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래픽 노블을 읽어나가니 영화 <킬 유어 달링 Kill Your Darling>가 생각났다. 이 영화는 잭 케루악, 윌리엄 버로스, 앨런 긴즈버그 및 루시엔 카의 젊은 시절을 배경으로하는 영화였다. '비트 세대'에 대한 이해와 흥미를 가지는 데에 이 영화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실제 있었던 사실과 다른 점들은 있을 수 있으니 당대의 배경을 이해하는 정도로만 살펴보면 되지 않을까한다.  

 

 

(불만스러운 점들)

책의 편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트 제너레이션>에 대해 독자로서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면 텍스트가 너무 작아 읽기에 눈이 아팠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모두 시력이 좋은 사람들만을 가정한 것인지... 나는 책을 읽으며 상당히 불편했다. 일반 만화보다 글이 많은 그래픽 노블의 특성과 독자의 입장을 고려했다면 이렇게 책을 만들었을까. 나아가 책의 막바지에 이른 184페이지 부터는 잠깐이지만 글자 크기가 더욱 작아져있다. 이렇게 편집할 요량이면 왜 판형을 더욱 키워서 글자를 크게하고 가독성을 높이는데 좀더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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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울 것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글을 쓰는 작가의 결과물을 읽을 저자의 살아온 궤적이 궁금해진다. 물론 책이나 출판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가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나온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작가의 삶에 대해 좀더 다가가 이해한 후에 다시 읽어보면 분명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물며 에세이는 작가가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어 공개하는 글쓰기다. 작가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글로 옮긴다는 부담감이 있을 있고, 독자는 작가의 신변잡기적인 정보와 주관적인 생각들을 엿볼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연히 임경선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없이 최근에 출간한 에세이집 <자유로울 > 접하게 되었다. 내가 작가를 몰랐던 것은 에세이나 소설을 그다지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체를 보면 혼자 작가는 이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같다란 상상의 나래를 펴며 작가에 대해 다가갈 있다.

 

물론 에세이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펼치는 장이기에 저자의 생각에 공감을 하게되기도 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다만 자신의 이야기를 성실히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고 나는 우연히 저자를 새롭게 알게되어 저자의 삶의 일면을 엿보게된 무심한 독자일 뿐이다. 저자의 글쓰기와 문체는 지극히 평범하게 느껴진다. 소재의 평범성이 오히려 에세이란 장르를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해주기도 한다. 현학적이거나 화려한 문장을 써서 에세이를 썼다면 오히려 끝까지 읽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평범하고 진솔하게 써내려가는 저자의 문장들은 내가 상상하기에 저자의 삶을 많이 닮았을 것이라 느껴진다. 책에 사인을 받거나 유명세를 이후 연락을 해오는 오래전 친구들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도 저자의 생각들은 자신이 쓰는 문장들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을 쓰고, 에세이를 쓰며 삶에 대한 성찰을 쉬운 언어로 이야기하는 저자는 여성이기 이전에 자신의 일을 가지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독립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는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릴 부모님을 따라 여러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 그리고 직장에서 일반 회사원으로서 10 넘게 살아온 경험때문이었을까, 저자는 사회나 집단이 강요할 있는 제약 속에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었다고 믿는다. 특히나 결혼 , 결혼 번에 걸친 암치료 과정을 거치며 과정에서도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글쓰기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 많은 독자들이 저자의 꾸밈없는 문장들을 따라가며 공감하게 되는지 알게된다.

 

산고의 고통과도 같은 글스기 과정을 매번 거치면서도 쓰고 나면 온몸으로 때를 그리워하는 저자도 재능 대한 고민의 흔적을 내비친다. ‘재능 대한 평가와 견해는 사람마다 너무나 다르다. 재능은 어느 누구의 선천적, 후천적 개인사의 총체라고 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동안 우리는 너무나 선천적인 영향에 방점을 찍고 그대로 수용한 나머지 후천적인 영향을 간과해온 것이 아닌가 한다. 장석주 시인은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 졸렬한 글이라도 있는 용기 재능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전업작가가 아닌 평범한 우리들은 어렸을 때부터 뭔가 특별한 특징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가 좋아하던 것을 꾸준히 하며 행복해하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 저자가 인용한 <파이 이야기> 구절(“당장 있는 일에 집중해서 생존은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견해에 공감하는 공감대가 된다.

아마도 여성 독자들은 작가의 생각들이 속속 이해가 잘되고 공감이 될지 모른다. 다만 저자와 비슷한 나이또래인 중년 남자로서 나는 예술가의 이야기하며 영화를 언급한 대목에서 상당히 공감을 하게 되었다. < 블루Born to Be Blue>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그것인데, 영화 모두 에단 호크가 나오고 예술가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였다. 저자는 영화를 이렇게 보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예술가의 삶을 바라보는 (나와는 다른)관점에 대해 알게되기도 하였다. 온전히 저자의 견해에 공감을 하게 되지 않아도, 수긍할 있는 것은 저자가 독자에게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는 느낌은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삶에 대한 성찰을 따라가보며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이란 느낌이 주는 막연한 기대와 긍정의 기운을 이어받아 더욱 성장할 있기를 기원해본다. 내가 살아온 해를 되돌아볼 , 작가가 적어둔 구절이 떠오를 같다.

 

우리의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러니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고 지금 내야 해야 하는 일을 찾아내 최선을 다해 하기로 한다. 어차피 시간에 걸친 승부다.” (48)

 

지금 현재, 앞에 놓인 삶에 주목하고 집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사항인지 나이들어가면서 피부로 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나 희망하는 삶의 모습에 가깝지 않더라도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최선을 다하면서 하던 일이 새로운 기회에 요긴하게 쓰이는 경험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보면 사람의 경험치라는 , 연륜이라는 것은 전혀 무시할 없는 개개인의 지혜로 이어진다고 있다. 앞에 남아있는 시간의 무게 내가 누린 20대의 시간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저자의 삶에서 나온 솔직한 성찰은 힘을 지니고 성장하고 있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있다. 앞으로 5 , 10 경험치가 달라져있을 시점에서 저자의 에세이를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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