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 1950-1955
카지이 노보루 지음, 정미영.박소영 옮김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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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인 교사가 남겨 놓은 희망의 씨앗

 


카지이 노보루, 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정미영/박소영 옮김, 몽당연필, 2023

 



코로나19가 급속하게 전파되던 20203월 즈음 읽었던 기사 한편이 기억난다. 일본에 있는 어느 중소도시에서 관내 유치원과 보육원에 코로나 감염 방지용 마스크를 배포하면서 조선학교 유치부를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내용이었다. 내 눈을 믿기 힘들었다. 이건 10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4년 전의 기사였다. 21세기에 공공기관이 솔선수범하여 배제와 차별에 앞장서는 졸렬함이라니! 심지어 기사는 시 직원이 ‘(조선인은) 마스크를 다른 곳에 팔아넘길지 모른다는 취지의 폭언도 스스럼없이 했음을 전하고 있었다.

 

이후 나는 관련 사건에 대한 사설을 읽어보았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정책은 이미 오랜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깝게는 2013년 아베 신조 정부의 고교무상화정책과 관련한 사례가 있었다. 이 정책은 고교수업료를 무료화 하겠다는 취지라 명목상 많은 일본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 정책에 조선학교만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데 있다. 나아가 이를 법으로까지 제정하여 차별을 제도화한 것은 우려스러웠다. 이 조치는 몇 년 전 조선학교 유치원 및 보육원에 인도적 차원에서 마스크를 배포하는 일에서 차별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한 근거가 되었다. 일본 사회에 염치란 이미 사라져버린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문제는 왜 지금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한 일본인 교사가 조선인학교에서 5년 간 근무한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 책 <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1950-1955>를 읽으며 내내 궁금했다. 저자 카지이 노보루는 일본이 패망한 후 재일조선인들이 교육 현장에서 겪었던 수난과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겼다. 귀한 기록물이다. 그가 조선인학생들과 함께 한 경험들은 단순히 교육 현장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2020년 당시 조선학교 유치원생들에게 공공기관이 주도한 합법적차별은 훨씬 복잡하고 광범위한 문제와 얽혀 있었던 것이다. 조선인학교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무엇보다 일본의 정치권과 공권력, 권력의 눈치를 보고 진실을 보도하지 않은 언론까지 가세하여 만든 총체적 결과물로 응어리진 결과다.

 

일본의 패망 후 연합군사령부(GHQ)의 교육담당 장교 듀렐이 도쿄의 조선인학교를 시찰하며 개 잡듯이 죽여야지.”(62)라고 했던 대상은 누구였던가. 그리고 조선인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조선인학교 문제를 치안 문제로 이야기하던 이들은 누구인가. 저자가 같은 일본인으로서 이러한 폭력을 행사하는 일본인들에 대해 수치스러움을 느낀다는 대목에 눈길이 멈추기도 했다. 나아가 일본 식민주의 지배세력의 조선인 혐오, 그리고 미국의 세계패권 야욕과 철저한 반공주의가 결합하며 찾은 희생양이 바로 조선인들이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1951228일 오전 630분에 무장한 경찰 예비대대 520명이 도립조선중고등학교 건물과 기숙사에 침입했다. 훗날 이 사건을 2·28사건이라고 불렀다. 도둑처럼 학교에 급습하여 학생들의 교과서나 숙제, 미술작품, 수첩까지 압수하며, “조선인은 싹 다 죽여야 해.”(75)라고 고함치고, 학생과 교사들에게 곤봉까지 휘둘렀던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저자가 당시의 광경을 묘사한 이미지를 군국주의가 절정에 달한 시기의 일본의 모습과 겹쳐놓으면 아마도 어긋난 곳을 찾기 힘들 것”(77)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은 또다른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올해로 101주기를 맞은 간토대학살 사건(19239)이었다. 일본 군부의 주도하에 일본자경단들이 일본도뿐만 아니라 죽창으로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던 사건이 아니었나. ‘그들의 구호가 조선인을 다 죽여라!”였다는 사실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조선인학교의 폐교는 가장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현재 및 미래의 타자를 숙청하는 방법이었다.

 

엄혹했던 일본의 식민지 시절, 한인들은 일본의 강제 징용으로 일본에 건너갔던 사람들도 있지만, ‘힘든 식민지 생활을 견딜 수 없어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패전 후 조선인들에 대한 속죄는커녕, 보상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를 지우는 일에 몰두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흔적지우기를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 정황을 엿볼 수 있었다. 겉으로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대등한 대우를 말하며 동일한 책임을 요구했지만, 조선인들은 정작 받아야할 혜택에서 언제나 제외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20대의 젊은 일본인 교사가 조선인중학교에 부임하여 마주했던 것은 학생들의 냉냉한 시선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재일 조선인들의 박탈감을 이해해야 넘을 수 있는 선이었다. 조선인학교에 온 신임 일본인 교사들은 달아매기라는, 학생들의 불신어린 심문을 받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 자신들의 학교를 망가뜨렸다는 반감으로 가득한 학생들로부터 일본의 문부성 및 교육위원회의 스파이로 간주된 것은 저자가 조선인학교에서 처음 마주한 현실이었다.

 

조선학교에 감염 방지용 마스크를 배포하지 않은 사례 역시 저자가 그토록 맞서 싸웠던 조선인학교 차별과 배제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일본 사회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인학교에 일어났던 일, 그리고 몇 년 전 조선학교의 현장에서 있었던 일은 단순하고 충동적인, 일탈적 사건이 아니었던 셈이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제국주의가 야만으로 치달은 전쟁의 최대 희생자였다. 이를테면 식민주의, 제국주의/군국주의, 반공주의 등의 이념이 인류에게 가한 폭력의 세계사적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주목하게 된 대목 하나는, 조선인학생들을 위한 민족교육에 대해 저자가 성찰한 대목들이었다. 조선인에게 올바른 민족교육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권의 문제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자는 조선인학교 문제가 곧 일본의 교육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119)을 간파하고 있던 소수의 지식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일본 정부가 재일조선인 아이들 12만 명의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한 사건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문제의 본질을 아래에서 엿볼 수 있다.

 

(재일조선인 교육 문제는) 피압박 민족의 해방 문제로서, 식민지로부터 해방이라는 문제로서, 일본의 평화와 독립의 문제와 관련되었음을 중요시 해야만 한다.”(138) [홋카이도에서 온 요시다 하츠미 씨의 언급 재인용]

 

여기에서 교사는 교육자로서 양심의 자유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는 문제부터, 가해국 국민으로서 피해국의 국민과 평화를 위한 화합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배경에 속한 집단의 친선을 도모하고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를 서로 존중하는 일이 우선 요구될 것이다. 물론 과거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치유될 수 있는 길은 없을 것이다. 흉터는 남아도 상처를 치유할 수는 있을 테니까. 그러나 저자가 책에서 줄곧 추구하던 민족교육의 문제는 양국의 건강한 평화와 독립을 위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았다. 가해국의 국민으로서 이런 지점까지 고민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같은 인간으로서 후손인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비춰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1950-1955>는 교육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섰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통해 교육자로서의 양심을 따라간 여러 일본인 교사,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한 조선인 교사와 조선인학생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도립조선학교는 결국 1955331일부로 폐쇄되었지만, 이 책이 남겨놓은 것은, 결국 희망의 씨앗이라 여긴다. 저자 카지이 노보루를 비롯한 여러 참여 지식인들의 존재 덕분이다. 그가 남겨 놓은 이 씨앗이 책이라는 이름으로 후대에 계속 전달되고 읽히고 기억된다면, 언젠가 새롭게 싹이 트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예감해본다.





[책 속으로]

[1] "새로 채용된 일본인 교사들은 조선인들의 분노와 슬픔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 한 학교에 교장이 둘이나 있는 이상한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게 된 것은 조선인학교에 근무하고 나서다."(24)

[2] "그 아이들이 일본에 영주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이미 역사를 통해 아시는 바와 같이 조선인이 원해서 조국을 버리고 일본에 온 것이 아닌, 힘든 식민지 생활을 견딜 수 없어 도일한 이가 많기에 조선이 평화롭고 완전한 독립국만 된다면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35) [도교육위원회에 제출한 청원서 재인용]

[3] "선생님! 우리는 조선인이에요.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 때문에 말도, 나라도 빼앗겼어요. 얼굴은 조선인이지만, 조선말도 역사도 모른 채 살아왔어요! 선생님, 누가 선생님에게 일본어를 써도 안 되고 배워도 안 된다면서 학교 문을 닫아버리고 감옥에 집어넣으면 화가 나지 않겠어요?"(41)[일본인 교사 S의 기록]

[4] 4·24 교육 투쟁-재일조선인연맹 강제해선-전국 조선학교 폐쇄-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필름 위에, 남북의 분단과 일본 국내에서 미 점령군의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비민주적 행태를 아무런 설명도 수식도 없이 겹쳐놓고 보았을 때, 내 나름대로 도립조선인학교의 위치에 대해 깨닫게 된 것 같다."(62)

"문부성이 ‘조선인학교는 학교교육법에 따라 사립학교로 취급할 것’(1948년 5월)이라는 통달을 발표한 직후, 도쿄도 내 조선인학교를 시찰하러 온 GHQ 도쿄군 교육담당 장교 듀펠은 군홧발로 교실에 들어와 김일성 초상화를 보며 "개 잡듯이 죽여야지."라고 중얼거렸다. 조선인에 대한 감정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낸 말도 드물 것이다. 그는 교원 가운데 공산주의자들의 숙청을 강하게 추진했던 자타공인 철저한 ‘빨갱이 혐오자’였다." (62)

[5] 아이들을 교실로 들여보내려 한 교사에게까지 "교사면 다야?", "감히 국가 권력에 불만을 품어?", "조선인은 싹 다 죽여야 해."라고 고함쳤습니다."(75) [3·7사건에 대한 기록 재인용]

[6] "수색 영장도 없이 3천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병력을 동원해 무기 하나 없는 학교에 쳐들어와 폭력을 저지르는 행위에 과연 어떤 이유를 댈 수 있을까. 게다가 무저항 상태의 학생들과 사태를 수습하려던 교사들까지 폭행한 것은 물론이며 신문사 카메라맨과 의사까지 폭행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폭력단이나 다름없었다."(77)

[7] "인식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가해자가 피해자의 마음속에 들어가려면 스스로 피해자라는 인식이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99)

[8] "지금까지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 아래 놓여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인식함과 동시에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과 겹쳐서 생각해보면 완전히 새로운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피압박 민족의 해방 문제로서, 식민지로부터 해방이라는 문제로서, 일본의 평화와 독립의 문제와 관련되었음을 중요시해야만 한다."(138)

[9] "내가 상당히 고심해서 완성한 구상은 두 가지 기둥으로 이뤄졌다. 첫째, 고교 이하는 의무교육으로 하고 운영도 공비로 하지만, 교육 내용은 재일조선인이 자주적으로 실시하는 것, 둘째는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을 지키는 일이 일본인의 민족교육을 확립하는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142)

[10]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시설 등 제반 운영에 필요한 조건 마련은 일본 정부가 하고, 교육 내용과 조직을 만드는 일은 조선인 스스로 책임지고 확립해 가는 체제를 만들지 않으면 재일조선인 교육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144)

[11] "일본의 아이들이 풍요로운 일본인으로 자라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인 아이들도 역시 풍요로운 조선인으로 자라나야 한다. 게다가 그것은 과거에 대한 속죄로서 일본인 자신이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토록 단순명료한 논리가 5년간에 걸친 조선인학교 생활을 지탱해준 논리다."(206)

[12]"언어가 가장 고도로 승화된 것이 문학작품이라 생각한 점과 난독 학습을 하다 보니 36년간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자마자 분단의 비극을 맞은 조선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확실한 실마리가 문학 속에 훨씬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 그 무렵부터 다시 20년이 지났다. 나의 공부는 마치 소걸음처럼 느릿느릿하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조선을 알아가는 일은 어쩌면 나에게 남겨진 반생의 과제로서 앞으로도 계속 나를 뒤따라올 것 같다."(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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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04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심이 살아있으면 일본인이든 누구든 정의는 지켜지는 법이죠!
 
[큰글자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지음, 김희봉 옮김 / Mid(엠아이디)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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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노안인 사람들을 주요 독자로 정하신 건지요^^;; 드넓은 행간을 쉬엄쉬엄 돌아가며, 생각하며 읽으라는 깊은 뜻으로 알겠습니다~ ㅋㅋ
오히려 글자가 컸던 중세의 책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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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11-02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 책이 바로 중세를
깨뜨린 도끼 같은 그런
책인가요.

초란공 2024-11-02 11:13   좋아요 0 | URL
뭔가 수백년 된 금서를 받아본 느낌인데요? ㅋ 글자가 커서 안경을 벗고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
 
푸른 기록
신상웅 지음 / 소요서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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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염색 장인을 닮은, 이런 여행법

 

신상웅, 푸른 기록, 소요서가, 2024

 




책을 읽는 동안 책의 곳곳에서 책을 만든 이의 의도가 느껴졌을 때, 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국내 쪽 염색 장인의 에세이 <푸른 기록>도 그런 책이었다. 푸른 쪽 색으로 물든 양포 혹은 화포의 느낌이란 이런 것일까 상상하게 만드는 책의 표지 색과 질감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작자와 저자 사이에서 책 내부에 접혀 있었을 세세한 이야기들이 책의 구석구석에서 펼쳐질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했을 법하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저자는 고향에 내려와 쪽을 직접 재배하고 천에 염색하는 일을 업으로 한다. 그리고 사이 시간을 이용해 자료 조사를 위한 여행을 한다고 한다. 이 책은 중국, 라오스, 태국, 베트남, 일본 등등 동아시아 여러 곳의 쪽 염색 현장을 발로 누빈 기록이다. 중국의 깊은 산골에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과 무늬를 지닌 옷감을 만들고 일상에서 사용할 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자녀에게 직접 고추장을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는 연암 박지원 선생의 편지글에서 쪽 염색된 두루마기를 언급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사람은 세계를 바라볼 때 자신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대상이 먼저 눈에 보이듯, 저자에게는 연암 선생의 화포가 보였던 모양이다. 연암 선생이 입었던 화포 두루마기는 우리나라에서 염색된 것일까, 아니면 수입된 옷감으로 지어진 것일까. 나 역시 궁금했다.


 

동시에 해방 직후에 그려진 한 점의 자화상도 떠올릴 수 있었다. 월북했던 화가 이쾌대가 그린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었다. 이제 막 해방되어 건국된 이 땅에서 서양식 물감 팔레트와 붓을 들고, 중절모와 푸른 두루마기를 입고 정면을 응시하는 화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어쩌면 이 두루마기 역시 연암 선생의 화포처럼 우리 땅에서 염색되고 지어진 옷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저자가 자료 조사 차 쪽 염색 전통을 지닌 동아시아 지역을 여행한 과정에서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쪽 염색 과정 이전에 저자의 독특한(?) 여행법이었다. 만약 연암 선생이 청나라 연행을 하기 전에 화포에 관심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호기심 많던 연암은 현지에서의 저자처럼 인연을 만들어 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저자가 보여주는 현지인들과의 사소하지 않은 마주침과 인연 만들기의 모습이 너무나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도 여행에 동참하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저자의 특이한 여행법은 오지에서 생존하는(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저자만의 여행 감각인 듯하다. 이를테면, 인도차이나반도의 라오스 산골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산길을 걷다가 결혼식 잔치집에서 하객들에게 발견(?)되어 초대되고 환대받는 모습이 저자의 여행을 따라가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피로연에서 독한 증류주 라오라오를 마시고, 하객들과 춤을 함께 추는 저자의 능글능글한(?) 내공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취기에 오른 저자가 감지하던 여인들의 아찔한 향기에 대한 언급도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다. 단지 글을 읽을 뿐인 나 역시 곧 눈이 부시고 현기증이 나는 듯 생생하니 말이다.

 


저자의 가방에는 이따금 찹쌀떡이나 귤 등의 과일이 들어 있어, 현지인들에게 주며 말을 트는 모습도 여행지에서의 인연을 만드는 노하우인가 보다. 이걸 알았다고 아무나 잘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낯선 곳, 특히 산골 오지 마을에서도 결코 굶지 않을 것 같은 저자의 인연 만들기 내공은 아무리 봐도 신기할 뿐이다. 저자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가는 인연은 오지의 산간 마을, 낯선 장소를 이전과는 다른 곳으로 만들어준다. 태국 북부 산간 마을 매살롱을 지나며 저자가 기록해 둔 한 문장, “삶이 섞이듯 문화도 섞인다.”(110)는 타문화와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철학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또 나의 시선을 붙들었던 부분은 쪽 염색을 하는족과 관련한 역사였다. 중국에서 쪽 염색하는 먀오족은 족과 친척이었고, 이들은 역사적으로 어떤 계기로 인해 남쪽으로 이동했던 모양이다. 이들이 인도차이나반도에 있는 베트남, 라오스, 태국의 북부 산간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런데 족이라고 하니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있어서 이전에 읽은 책을 들여다보다 족에 관한 언급을 처음 마주쳤던 책을 찾았다.

 


바로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현실문화, 2023)에서 미국과 캐나다의 로키산맥을 중심으로 송이버섯을 채취하던 동양인들이 바로 족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 책의 번역자는 몽족대신 몽인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라는 표현이 현대 문화가 아닌 전근대적인’, 혹은 미개하고 야만적인문화를 가진 사회라는 편견을 갖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몽인으로 번역하고 있다. 아무튼 이 책의 5장과 6장에서 미국 서부 오리건주의 산속에서 송이버섯을 채취하는 몽인에 대해 소개하는데, 이들이 미국이 야기한 전쟁으로 난민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보인다. 다만 애나 칭은 보다 자세한 내막을 소개하고 있지 않아 이 대목을 읽을 때 몽인들이 미국에 난민으로 오게 된 사연이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바로 <푸른 기록>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점령군으로 있던 프랑스가 물러난 후 들어온 미국. 이들이 벌인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라오스와 베트남 북부의 공산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산골에서 살아가던 몽인들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싸우게 했던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패전하고 퇴각한 후다. ‘몽인들은 미국의 먹튀에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몽인들의 비극과 고난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버려진 몽인들은 공산 정부의 보복 대상이 되어, 수십만 명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난민수용소에 머물다가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등으로 건너가 디아스포라가 되었던 것. 이렇게 해서 <세계 끝의 버섯>에서 마주쳤던 몽인들의 비극적인 역사도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은 마치 송이버섯처럼 척박한 토양에 흩어져 자신만의 생존술을 발휘하며 존재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은 낯선 곳에서도 지난 시절 쪽 염색물을 들인 양포에 대한 푸른 기억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쪽 염색 전통을 찾아간 저자의 여정이 세계사적인 사건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

 


저자가 일본의 골목 전시장에서 일본인들이 작업한 쪽 염색 옷감과 더불어 중국의 '먀오인몽인들의 푸른 화포를 다시 만난 순간 먹먹해하던 장면이 인상 깊다. 국내에서 직접 쪽을 기르고 염색에 매진해온 저자는 매순간 작업의 의의를 끊임없이 자문했을 테다. 산골 마을에 사는 몽인들이 명절에 입고 나온 화려한 옷들을 보며,“내가 물들이는 푸른색은 명함도 내밀기 부끄럽다.”(170)고 말하는 저자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현재 남아 있는 푸른색 화포에서 무엇을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196)를 자문하는데, 전통과 새로움에 대한 요구와의 충돌 혹은 균형에 대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모색하고 있다. 현재적 관점에서 쪽 염색 작업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탐색하는 장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저자가 여행에서의 기억과 종이 위에, 그리고 그간 무명천 위에 남겼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나 역시 저자가 전해주는 푸른 기운을 이어 받아본다. 저자의 표현대로 푸른색은 푸른색이되 다 같은 푸른색이 아닌이 쪽 염색의 빛깔은 서늘하면서도 신비함을 자아낸다. 은근히 눈길을 붙들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듯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게 하는 색이다. 때론 처연한 푸른색에 눈이 시린 느낌이 들 정도다. 중국과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지의 산골에서 전통을 이어온 이들이 옷감에 물들이고 남은 푸른 물은 그들의 애환과 고통, 슬픔을 오랫동안 씻어내었을 테지만, 한편으론 반복할수록 선명하게 남는 푸른 빛은 한편으로 그들의 심연에 응어리진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을 것만 같다. 때론 시간이 지나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진실은 있기 마련이니까. 저자가 여행에서 낯선 인연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그는 사라져가는 것을 찾으면서도 때론 우연한 발견들 또한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삶이든 문화가 서로 섞이며 새로운 세계로 한 발 한 발 내딛게 되는 것처럼.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1]
"나는 콩 대신 색을 수확했다. (...) 쪽에서 풀려난 색이 하늘로 이어졌다."(13) - P13

[2]
"이름을 쓴 꼬리표라도 달지 않으면 푸른 무명더미 속에서 내 것을, 나의 푸른색을 구별할 수 있을까. 저 안에 나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하는 속절없는 물음들."(13-14)
- P14

[3]
"삶이 섞이듯 문화도 섞인다."(110) - P110

[4]
"나는 현재 남아 있는 푸른색과 화포에서 무엇을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196) - P196

[5]
"더구나 그런 아름다움이 일상과 함께 한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 반갑다. 아름다움이란, 또 문화란 저렇게 삶과 섞여 살아있을 때 가장 빛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265) - P265

[6]
"길은 끝이 없고 가야하는 이유도 앞에 놓인 길 위에 있다."(303)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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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28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초란공님도 책을 협찬받아 읽으실 때가 있으시군요. ㅎ 저도 쪽염색 좋던데. 보기만. ㅋ 이런 책이 있었네요. 좋으셨나 봅니다. ^^

초란공 2024-10-28 22:04   좋아요 1 | URL
하하 네^^ 가끔은 색다른 주제로 출간된 책에 관심이 가서요~ 책을 보고 일본 우키노에 그림을 보이 온통 사람들이 푸른 쪽 염색 옷을 입었더라구요.

그레이스 2024-10-28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도 소요서가에서...!^^
저두요...

초란공 2024-10-28 22:04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혹시 서점에서 마주치는 분이 아니실지 ㅋㅋㅋ

그레이스 2024-10-28 22:07   좋아요 1 | URL
저는 회원이긴 한데요, 프로그램은 아직 온라인으로만....!

초란공 2024-10-28 22:08   좋아요 1 | URL
아하^^ 왠지 더 반갑습니다~^^
 
푸른 기록
신상웅 지음 / 소요서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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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지에서 저자가 만들어가는 인연과 인간적인 섞임/어우러짐이 인상적인 여행기입니다. 아시아 지역의 쪽 염색 전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면서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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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0-28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있는 책 만나니 기분 좋네요^^
 
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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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남긴 사랑과 회한의 기억 그리고 복원의 기도


김이정, <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2024

 



상실의 경험 없는 인생이란 존재하는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때론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장편소설 <유령의 시간>은 작가 김이정의 가족사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소설에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 초래한 어둠의 시간을 통과하며 상실과 상처를 화인처럼 짊어진 사람들로 그득했다.


작품 속 주요 인물인 김이섭은 일제 강점기에서 30, 해방 공간에서 전쟁을 겪고 30년 생애를 살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끝내 찾지 못했다. 특히 이념의 대립으로 손 쓸 기회도 없이 아내와 세 아이를 잃었던 그였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그리움이라는 깊은 우물의 심연 속에 평생 갇혀 살았다. 사회주의라는 이상과 타인을 위한다는 대의를 따르다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자각은 그의 삶을 평생 갉아 먹었다. 한차례 가족을 잃고 난 후 주변 사람들의 손에 떠밀려 한 여인, 미자가 그 앞에 나타났다. 그녀 역시 전쟁 중 눈앞에서 남편이 죽고 안식처마저 잃었던 여인이었다.


이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새로운 가족을 꾸리게 된 이섭과 미자는 엄혹한 시절, 가족을 지키고자 발버둥 쳐온 우리 선배 세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별 인사도 미처 하지 못한 채 역사의 거대한 파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주었던 이섭에게는 잃어버린 피붙이들의 목소리와 이름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시간 속에서 부유해야 했던 이들이기도 하다. 이섭, 미자, 그리고 월남전에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돌아온 남편을 지켜보아야 해던 순희의 생을 상상해 본다. 이들처럼 인생의 고비를 넘는 동안 삶에 대한 신념과 열정이 배반당했을 때, 그러니까 이 방향감각의 상실감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이섭이 건너야 했던 기구한 삶은 내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섭은 물 밖에 나온 새우의 모습처럼 강하지 못한 생명을 무엇보다 혐오했다. 그가 이런 무기력함을 가장 잔혹한 형벌로 여겼을 속사정을 헤아려본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던 가장으로서의 수치심과 죄책감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섭과 미자, 그리고 가족이나 다름없던 이웃집 순희 같은 이들은 모두 고통스러운 상처를 끌어안고서 각자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고자 분투했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우리 삶의 비루한 취약성을 선명히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이토록 버텨낼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등과 보듬을 수 있는 팔을, 살가운 손길을 서로에게 내어줄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첫 아내이자 한 집안의 사랑을 받던 맏딸을 잃고 삶의 의욕을 놓아버린 장인을 바라보던 이섭의 마음처럼, 사람이 사람을 잃고 무언가를 지켜낼 힘을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게 인상적으로 남은 장면 하나는, 지형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저렇게 모든 걸 잃고도 여전히 인간을 사랑한다는 게 가능할까?”, 자문하는 대목이다. 지형의 형제들이 아버지가 평생 잃어버린 것들을 복원하자고 손을 모으는 장면이 오롯하게 떠오른다.


인생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다시 살리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는 갓 태어난 아이의 천진한 검은 눈동자일 수도, 또 누구에게는 마음껏 울 수 있도록 등을 내어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상실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고 꿈을 꾸는 일일 수도 있겠다. 지형이 꿈에서 보았던 노란 두메양귀비를 백두산에서 발견한 순간 아버지의 존재를 다시금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며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리운이복형제에 가 닿고자 했다. 지형의 이러한 간절함은 다시 이생에서 누군가를 추억하고 사랑하며 꿈꾸길 멈추지 말 것을, 기도하듯 요청하는 듯했다. 불현듯 이섭이 남긴 오래된 일기장의 한 구절이 어른거린다. “인간의 생이여, 헛되고 헛되도다. 하물며 이념과 꿈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꾸지 않는 생은 또 얼마나 헛될 것인가.지형이 이복 오빠가 있을 방향을 향해 무언가를 외칠 때, 나 역시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메마르고 헛헛한 유령의 시간을 보내온 모든 이들이 이제는 꿈꾸는 시간으로 생을 채워 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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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4-10-31 13:44   좋아요 0 | URL
네~ 괜찮습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