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패트릭 스벤손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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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The Gospel of Eels: Sons, Fathers, and the World's Most Mysterious Fish)

패트릭 스벤손(Patrik Svensson) 지음 |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뱀장어와 인간의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자로서 현대 생물학의 아버지라고 여겨진다. 그는 터키 연안의 큰 섬 레스보스에서 머무는 동안 동물과 자연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에 그는 자신이 저술한 동물의 역사17세기 까지 자연 과학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 상황을 다르게 보면, 인간의 자연과학 탐구 방법론이 2,000년 넘게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 특히 생물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뱀장어 연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뱀장어의 내부 장기 배치와 아가미 구조에 대한 글을 방대하게 기록했다고 한다. 또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연구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혁신했던 프로이트 역시 젊은 시절 뱀장어 연구로 연구 경력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청년 프로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적 관찰 기법에 따라 아드리아해 뱀장어를 연구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프로이트 사이에는 2,000년의 시간 격차가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뱀장어를 매우 진지하게 연구했다.


스웨덴의 신문 기자 패트릭 스벤손은 자신의 책 ,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에서 줄곧 유럽 뱀장어의 생태에 초점을 맞추고, 이 뱀장어가 얼마나 신비에 싸인 존재인지 설명한다. 이 책의 뚜렷한 특징은 저자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교대로 전개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책의 홀수 장에서 뱀장어에 대한 연구와 역사적 자료를 소개한다. 이어서 짝수 장에서는 가족과 관련된 개인적인 기억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와 추억을 뱀장어를 매개로 회상하고 있다. 평생 도로포장 인부로 일했던 아버지와 보육원을 운영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란 저자는 노동자 계층의 자녀였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뱀장어 낚시를 했던 기억을 돌아보며 뱀장어가 자신과 아버지 사이를 이어준 연결고리였음을 깨닫는다. 나아가 뱀장어가 우리 인간의 삶을 반영하고 통찰하게 해주는 존재임을 이야기하며 두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뱀장어는 우리에게 식당 메뉴에서 흔히 보는 존재이지만, 의외로 뱀장어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특히 이들은 비밀스럽고 독특한 본성 때문에 오랫동안 산란지가 알려지지 않았다.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소설 제목처럼 대서양에 위치한 광막한사르가소 바다가 유럽 뱀장어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정도다. 그렇다면 알에서 깨어난 조그만 뱀장어들은 저자의 고향까지 6,000 km가 넘는 대장정을 거쳐 왔다는 의미가 된다. 도대체 몇 센티미터 밖에 안 되는 뱀장어들이 대서양의 서쪽 한복판에서 어떻게 북유럽 해안까지 이동할 수 있었을까. 이 사실만으로도 신기하지만 뱀장어가 여러 번 변신을 하고, 바닷물과 민물 사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알게 되면 뱀장어가 얼마나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동물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뱀장어의 비밀스러운 기원과 생태를 알아내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의 탐구와 그 여정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뱀장어는 알에서 부화한 후 네 번의 변태를 거쳐 다시 태어난 산란지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뱀장어의 엄청난 이동거리를 고려한다면 이 작고 평범해 보이는 뱀장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현재 인간은 뱀장어가 왜, 그리고 어떻게 그 긴 여정을 따라 이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저자는 아마도 인간이 이 질문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뱀장어는 멀리 떨어진 강과 웅덩이가 있는 민물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살아도 어느 시기에 알을 낳기로 결정하면 자신의 갈 길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뱀장어의 특성을 보고 사람도 뱀장어처럼 자신이 선택한 길에 그토록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49)라고 묻기도 한다. 인간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뱀장어의 관점에서 이 존재를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덴마크의 해양 생물학자 요하네스 슈미트의 집념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뱀장어에 대해 여전히 많은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슈미트는 뱀장어의 유생 상태를 찾아 그 산란지를 밝히기 위해 대서양에서 20년 가까이 뱀장어를 추적했던 인물이었다.


저자는 요하네스 슈미트의 경이로운 행적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몸담고 있는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한 세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가 넓어졌다면, 분명 슈미트와 같이 분명한 목표를 가졌던 사람덕분일 것이다. 이 인물이 보여준 삶의 행적은, 자신이 태어난 장소를 우여곡절 끝에 찾아가는 뱀장어의 본능과 숱한 실수와 방황을 겪으면서도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교차되어 내게 다가왔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뱀장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 채 태어나 나이가 먹고, 자손을 낳으며 소멸에 이른다. 하지만 저자는 슈미트의 삶을 보고 목표를 가진 사람만이 마침내 의미를 찾을 수 있다”(96)라고 평가한다. 내게는 저자의 언급이 파우스트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조물주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고 말하는 유명한 대목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좌충우돌하고 방황하는 존재이지만, 뜻하는 바가 있는 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게다가 슈미트는 오랜 방랑 끝에 인류에게 뱀장어에 관한 많은 중요한 사실을 유산으로 남겼다.


이 책에서 뱀장어는 아마도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서 살아오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저자와 아버지를 단단히 붙들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뱀장어에 대해 탐구해왔던 사람들을 염두에 두면서 저자는 무언가의 근원을 찾는 사람은 또한 자신의 근원을 찾는다”(92)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단지 뱀장어의 기원만을 염두에 둔 언급이 아닐 것이다. 회고적인 성격의 글을 통해 저자는 자신의 근원 또한 탐색한다. 특히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여정은 악성 종양 때문에 소멸(죽음)로 나아간 아버지의 삶을 되짚어 가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은 알을 낳기 위해 자신의 산란지로 되돌아가는 뱀장어들의 여정과도 닮아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대부분의 뱀장어는 자신이 부화한 곳에 이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 좌절된 열망이 어쩌면 방황하는 인간의 삶과도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뱀장어와 인간 모두는 자신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을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뱀장어의 신비로운 생태에 더하여 이들 앞에 큰 시련이 놓여 있음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멸종 위기에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 이유로 다양한 요인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인간의 영향으로 뱀장어가 바이러스와 기생충에 감염되고, 확산되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만든 산업용 독성 물질을 비롯하여 발전소의 수문과 둑 같은 물리적 장애물이 개체 감소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울러 오랫동안 문제가 되고 있는 과도한 뱀장어 포획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가 뱀장어의 멸종 위기를 가중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 모든 요인들이 뱀장어의 생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뱀장어의 멸종 위기가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뱀장어는 그 생태적 특성 때문에, 일반적인 멸종 위기종의 판정처럼 번식개체수로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뱀장어가 정확히 얼마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뱀장어 낚시를 하며, 생물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배워온 저자는 독자에게 뱀장어의 소멸에 대한 경각심을 마지막으로 일깨워 준다.


정리해본다. 이 책은 뱀장어에 대해 알고자 했던 사람들의 탐색 과정을 따라가면서도 저자의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저자는 뱀장어가 매력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아마도 이 대상이 지식과 믿음 사이의 교차점이기 때문’(37)이라고 언급한다. 이건 존재를 이해하는 일에 틈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은 어쩌면 끝나지 않을 탐색 과정으로 남게 되는 일인지 모른다. 유럽 뱀장어에게 사르가소해는 세상의 끝이지만 한편으로 세상의 시작이기도 하다. 물론 개체 대부분은 이 근원에 도달하지 못하고 소멸된다. 인간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저자는 뱀장어가 모두 같은 목적지를 지향하지만 저마다 다른 능력을 지니고, 이 근원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정확히 같지도 않다고 전한다. 뱀장어의 모습을 보면, 인간이 밟아가는 삶의 여정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그 근원인 죽음으로 반드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이와 같이 동일한 목적지를 향하지만, 여기에 이르는 여정은 각자가 다르다. 하지만 어쩌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여정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자문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 담긴 뱀장어의 이야기는 놀라운 지식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은유다. 그리고 나는 저자의 통찰을 믿기로 한다. 저자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뱀장어와 아버지와 얽힌 이야기들은 내게 줄곧 이런 삶의 물음으로 되돌아가게 해주었다. 이 책은 지금 내 삶의 여정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그런 세상에 대한 이해는 뿌리가 끊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삶을 언급하며 - P27

"나는 왜 뱀장어가 매혹의 원천으로 여겨지는지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지식과 믿음 사이의 교차점이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의 성격, 본질을 언급하며 - P37

"뱀장어가 물고기와 다른 모든 동물을 예외로 만드는 점은 유생단계에서 하는 엄청난 규모의 장거리 이동이다." - P90

"무언가의 근원을 찾는 사람은 또한 자신의 근원을 찾는다." - P92

"사르가소해는 세상의 끝이지만, 세상의 시작이기도 하다." - P94

"세상은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한 부조리한 곳이다. 목표를 가진 사람만이 마침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P96

"모든 문이 당신에게 열려 있지는 않으며, 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부족하다. 하지만, 당신은 언제라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 - P102

"너는 뱀장어이니 뱀장어로 돌아갈 것이다."
- 창세기에 나오는 표현 - P142

"살릴 것인가, 아니면 죽일 것인가. (...) 어쨌든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존중이 필요한 책임이었다. 동물에 대한 존중, 생명에 대한 존중은 물론이고 우리 책임에 대한 존중이." - P158

"뱀장어는 좀처럼 으스대지 않는다. (...) 뱀장어는 환경이 제공하는 것을 먹는다. 뱀장어는 멀찍이서 방관하며, 어떤 관심과 인정도 바라지 않는다. (...) 뱀장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유난을 떨지 않는다." - P165

"최초의 생명체가 바다에서 생을 시작했듯이, 우리 하나하나가 바다의 축소판인 어머니의 자궁속에서 동일한 삶을 시작한다." - P171

"출생지로 돌아가는 긴 여정은 여전히 대부분의 뱀장어에게 좌절된 열망이었다." - P217

"간단히 말해 어쩌면 뱀장어는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것은 물론이고 목표 달성에 대해 저마다 다른 의미와 방법을 가진 개체일 수 있다." - P219

"인간이 뱀장어에 가까워질수록, 뱀장어가 우리 생활에 노출될수록, 뱀장어는 빠르게 죽어간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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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이기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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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Mein Leben

: 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Marcel Reich-Ranicki) 지음 | 이기숙 옮김 | [문학동네]

 


파란만장한 20세기를 살았던 문학비평가의 자서전

 


80세가 되도록 하루에 두 번 씩 면도하는 노인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태어나 살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20세기를 마무리하던 1999년에 자신의 삶을 기록한 문학비평가가 있다. 그런데 그는 이 책을 집필하던 당시까지도 하루에 두 번 씩 면도한다고 언급했다. 다소 강박적으로 보이는 이런 행동을 보였던 이유가 뭘까? 그 실마리를 찾으려면 약 60년 전에 저자가 겪었던 체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선 회고록의 제목은 나의 인생이다. 저자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라는 인물이며, 20세기 독일 최고의 문학평론가였다. 좀 더 단서를 추가하자면, 그는 폴란드에서 출생한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나치 점령기에 폴란드의 유명한 바르샤바 게토에서 있었고,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살아남았던 인물이다.


그러니까 마르셀이 80세가 다 되도록 하루에 두 번 면도를 하게 된 이유는 바로 게토에서의 체험과 관련이 있었다. 나치에 의해 바르샤바 게토에서 수용자로 생활하던 어느 날 나치는 유대인 이주를 명령한다. 이 때 이주명령은 유대 사회에서 추방, 곧 가스실에서의 죽음을 의미했다. 이주대상자에 선정되는 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나치 협력 기관에 고용되지 않은 경우, 그리고 특히 옷차림이 지저분하고 추레한 사람, 거기다 면도까지 하지 않은 유대인은 곧장 가스실로 가는 줄에 가서 섰다’(231). 특히 저자처럼 머리가 검었던 이는 수염이 자라 금방 지저분해져 보일까봐 하루에 두 번 면도를 하게 되었다 것이었다. 그러니까 게토에서 면도를 잘 하는 것은 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습관이었던 것이다. 미미한 사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특히 유대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이 에피소드를 통해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문득 대학시절 수강했던 화학수업 시간이 생각난다. 강의를 맡았던 한 노교수는 어느 날 자신이 겪은 한국전쟁에 관한 개인적인 체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전쟁 중에 가족 상당수가 북한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 때 상당히 흥분하셨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전쟁이 끝난 지 4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그런 기억을 하나의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오셨던 것 같다. 전쟁의 상흔을 가졌던 사람의 모습을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난다. 저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도 이런 맥락에서 이 경험을 분기점으로 하여 다른 인물이 된 것만 같다. 특히 마르셀은 연로하신 두 부모가 가스실로 가는 기차를 탈 때까지 부모를 배웅해야 했다. 어느 날 저자는 이 기차를 탈 뻔했던 아내를 구출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극한의 경험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표현한다. “사형선고를 받고 가스실로 떠나는 열차를 바로 앞에서 본 사람은 그 상흔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240)고 말이다.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


저자는 게토에서 언제나 함께 하기로 약속하며 결혼했던 아내와 가스실로 향하게 될 열차로 가는 도중 극적으로 탈출했다. 이후 게토 지역을 탈출하고, 어느 폴란드 식자공 부부의 집에 숨어 나치의 폴란드 점령기를 보내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저자는 참혹한 게토에서의 삶에도 사랑은 있었다고 증언한다. 다만 사랑하는 연인들을 매일 같이 매순간 짓누른 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내일도 살아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고 한다. 죽음의 공포 속에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아가야 했던 이들의 원체험은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생존자들에게 평생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을 것이다.


저자 마르셀은 전쟁을 겪고 살아남았지만 한 가지 의문을 끊임없이 되묻는다. “왜 하필 우리가 살아남았을까?”(280) ‘형은 왜 죽어야 했으며, 자신은 왜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말이다. 물론 이건 우연이긴 했지만 이후 70년 간 살면서 이 질문을 계속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런 경험 자체가 없는 나에게는 지나치게 단순화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를 일종의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으로 이해한다. 마르셀은 이 느낌을 이렇게도 표현하고 있다. “동포가 죽어갈 때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은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272) 이러한 감정은 어떤 사고로 가족과 지인을 잃었을 때, 특히 현장에서 같은 경험을 한 생존자에게도 볼 수 있는 감정으로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가족이나 지인, 그리고 옆에 있던 사람들을 구할 수 없었다는 무기력감과 더불어 겪게 되는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나치 시대에 수용소에서 생존했던 또 다른 작가 프리모 레비의 증언에서도 생존자로서 수용소에서 죽어간 동포에 대한 부채의식을 읽은 기억이 있다.



휴대용 조국이 된 문학


괴테를 비롯한 대문호를 배출하고, 칸트와 헤겔과 같은 대철학자를 배출한 독일이 20세기에 유대인 절멸이라는 잔혹한 인간성의 극단을 낳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종종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20세기를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새겨진 집단적 트라우마로부터 저자를 구원했던 건 무엇보다 문학, 특히 독일 문학이었다. 나치 병사들이 유대인들에게 모욕과 굴욕을 안기고 수모를 주었을 때 저자는 문학을 통해 견디고 스스로를 돌볼 힘을 유지했던 것 같다. 특히 아내가 된 토지아와 문학을 이야기하며 기쁨을 느끼고, 문학을 알았던 이유로 게토에서 번역 일을 하며 버틸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게토에서 탈출하여 폴란드 부부 집에서 숨어있을 때에도 문학은 유용했다. 마르셀은 매일 밤 주인을 도와 일을 하면서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처럼 자신이 읽은 문학을 이용하여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자신의 민족을 핍박한, 그것도 절멸시키려 했던 국가의 언어를 모국어로 쓰면서, 이 언어로 이루어진 문학을 사랑하고 알리는 역할을 했던 저자의 입장이었다. 저자에게 이런 상황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한 재일동포 작가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를 모국어로 익히고 야만의 시대를 겪고 살아남았다고 말이다. 그리고 전후 일본 문학을 예찬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데 평생을 바친 결과 일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면 마르셀의 경우와 비교하여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인의 정서로 바라보았을 때 이런 상황은 사실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저자가 폴란드에서 태어났음에도, 마르셀에게 독일어는 모국어나 다름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10대가 되기 전에 이미 독일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독일어로 독서를 시작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명 평론가로서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와 교류한 경험을 기록하는데, 그 중에서 20세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인 예후디 메뉴인과의 인연을 기록한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1940년대 바르샤바 게토 시절, 아내 토지아와 함께 이웃집에 초대되었는데, 음반을 통해 메뉴인의 연주를 처음 들었다고 한다. 당장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시기에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처음 듣는 메뉴인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였다고 증언한다. 저자뿐만 아니라 당시에 이 음악을 들었던 아내와 이웃들은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저자는 바르샤바에서 메뉴인의 연주를 직접 보았고, 1960년 초에는 열차에서 우연히 만나 메뉴인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1978년 가을, 중국 난징의 길거리에서 우연히 메뉴인을 만나 나눈 이야기가 특히 흥미롭다. 메뉴인은 마르셀에게 이렇게 언급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유대인이군요. (...) 우리가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면서 독일 음악을 연주하고 독일 문학을 전파하는 것, 그건 정말 좋은 일이죠.”(476) 고국과 멀리 떨어진 도시 한복판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다 서로 말없이 우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을 두 사람을 상상해 본다. 독일어가 모국어인 유대인 예술가 혹은 평론가의 심정이란 이런 것일까.


저자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 반복해서 언급한 것은 문학에 대한 사랑이었다. 폴란드가 나치로부터 해방된 후 저자는 곧바로 아내와 폴란드 장교로 입대했다. 이후 정보장교 및 영사관 업무로 베를린과 영국을 다녀오고 귀국했지만, 폴란드 공산당 노선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감되기도 했다. 이후 출판사에 배치되어 독일문학 담당 편집자로 일하며, 독일 작가들과도 교류하기 시작했다. 이 기회는 이후에 마르셀이 연구여행을 가장하여 독일로 망명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독일에서는 생존을 위해 하루아침에 문학평론가로서 본격적으로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저자가 기록한 이런 에피소드를 따라가 보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삶의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는 것이 정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는 내가 가는 곳에는 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독일문학이 있었다”(274)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인상도 저자의 탁월한 글쓰기 솜씨에 힘입은바 크겠지만 말이다. 마르셀에게 문학은 그의 삶을 이끌어준 신탁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문학, 그것도 독일 문학이 내 휴대용 조국”(335)이라고 했다. 조국 폴란드를 떠나 독일로 망명한 사건도 그에겐 독일 문학과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을 말해주는 것 같다. 20세기 초에 태어나 방랑하던 유대인들, 특히 작가나 예술가들에게 문학 또는 예술은 정말로 이들의 휴대용 조국이었다는 견해에 공감할 수 있었다.


문학비평가라는 자리는 태생적으로 작가들과 가까워지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작가의 모든 작품이 늘 좋은 것도 아니며, 비평가의 열렬한 찬사와 호평에도 불구하고 평을 듣는 작가들은 으레 비평가가 비판한 것을 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평론가로서 그가 많은 작가들과 경험했던 우정과 반목을 기록한다. 저자는 비평가와 작가와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한다. “작가와 평론가의 관계는 평론가가 작가의 최근작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471) 그러니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 하인리히 뵐이나 지크프리트 렌츠와 같이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경우도 있지만, 페터 한트케처럼 저자를 증오한 나머지 심지어 마르셀이 죽기를 바랄정도였던 관계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무엇보다 우선했던 것은 자신의 삶에 기쁨을 주는 존재로서의 문학, 곧 문학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에 대해 마르셀은 이렇게 답했다. “아무리 되풀이해 말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 그것은 바로 문학에 대한 사랑 없이는 비평도 없다는 말이다.”(393) 저자에게 문학은 세계 변화를 목표로 한거창한 기획으로서의 문학이 아니었다. 대신 문학이 자신에게 주는 기쁨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길 원했던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글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아내와의 대화였다. 저자는 아내의 80세 생일날 자신의 자서전을 마무리하는 말을 생각했다며, 조용히 시집을 읽던 아내에게 머뭇거리다 알려준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죽음의 고비를 함께 넘고 60년을 지켜보면서 배우자를 바라보는 느낌이란 어떤 것일까 상상해보았다. 두 사람은 가스실로 떠나는 열차로 가는 행렬에서 극적으로 함께 탈출했고, 극도의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를 함께 겪었다. 게다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부모들을 배웅해야 했다. 또 수많은 지인들이 가스실에서 사망했던 반면, 자신들은 왜 살아남게 되었는지를 평생 물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외도 경험도 솔직하게 밝히고 있는데, 아내를 힘들게 했던 이런 경험도 결국 두 사람을 헤어지게 하지는 못했다. 이들은 참혹한 시기를 함께하면서도 절대로 헤어지지 않기로 약속했고, 죽음이 다가올 때까지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마르셀이 마지막에 사용한 문구는 꿈이야, 현실일 리가 없어, 우리 둘이 함께 있다니.”(497)였다. 이 소박한 문구처럼, 저자는 게토에서 탈출할 때에 나이든 배우자가 생일날 편안히 시집을 읽는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말 그대로 두 사람은 꿈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서로 느꼈을 법하다. 마지막 장면까지도 마르셀의 자서전은 감동적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이 책에는 동료 독일 작가들의 언행과 역사가 논쟁을 통해 전후 독일 지식인 사회에 지배적이었던 독일인들의 견해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해국의 지식인들이 갖기 쉬운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비롯하여, 피해자의 관점에 공감하지 못하고 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독일인들의 시선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개인의 내밀하고 자세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20세기에 인간이 경험할 수 있었던 가장 참혹한 역사를 겪은 인물의 생생한 역사적 증언이기도 하다. 나는 저자가 자신의 고통과 두려움에 맞서 이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가 과거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사회에 살고 있다면, 바로 이런 인물들의 삶과 용기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58년 10월 말, 알고이 지방의 그로스홀츠로이테에서 ‘47그룹‘총회가 열렸다."(11) - P11

"야만과 잔혹함이 우연이나 자의와 한패가 될 때 의미와 논리를 따지는 질문은 현실을 모르는 한가한 생각이라는 것을 그때만 해도 우리는 알지 못했다."(169) - P169

"게토에서의 사랑을 매일 같이 매순간 짓누른 것은 우리가 내일도 살아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곳에서의 사랑은 불안하고, 재빠르고, 초조하고, 성급했다. 그건 굶주림과 발진티푸스의 시대, 끔찍한 공포와 처절한 굴욕의 시대에 나누는 사랑이었다."(196) - P196

"당시 ‘옷차림이 지저분하고 추레한 사람, 거기다 면도까지 하지 않은 유대인은 곧장 가스실로 가는 줄에 가서 섰다. 나처럼 머리가 검은 사람은 당시 하루에 두번 면도를 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매일 두 번 씩 수염을 깎는다."(231) - P231

"부모님을 연세 때문에라도 - 어머니는 58세, 아버지는 62세 였다 - ‘생명번호‘를 받을 가능성이 없었다. (...) 그 때가 부모님을 뵙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234) - P234

"사형선고를 받고 가스실로 떠나는 열차를 바로 앞에서 본 사람은 그 상흔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240) - P240

"굶주림보다 무서운 건 죽음의 공포였고, 죽음의 공포보다 무서운 건 끝날 줄 모르는 굴욕이었다."(254) - P254

"그 때 나는 정확히 몰랐지만 예감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동포가 죽어갈 때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은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272) - P272

"내가 가는 곳에는 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독일문학이 있었다."(274) - P274

"죽음의 공포는 수년 동안 우리의 일상사였다. 그런데 전쟁의 끝이 다가올수록 해방된 우리를 더 무겁게 짓누르는 의문이 있었다. 아주 단순한 의문이었다. 왜? 왜 하필 우리가 살아남았을까?"(280) - P280

"문학이 있어야 비평이 생기는 것이다. 사실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학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작가들에게 우리가 빚지고 있는 것을 과소평가하거나 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308) - P308

"훌륭한 평론가란 언제나 명료함을 위해 글을 단순하게 쓰는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자신이 전달하는 내용을 알기 쉽고 투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위태로울 만큼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392) - P392

"내 경우야말로 취미와 일, 열정과 직업이 완전히 일치한 사례였다."(442) - P442

"작가와 평론가의 관계는 평론가가 작가의 최근작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471) - P471

"나는 세계 변화를 목표로 하는 문학에는 전혀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런 문학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480) - P480

"꿈이야, 현실일 리가 없어.
우리 둘이 함께 있다니."(496)
- 아내의 80세 생일날 떠올린 문구 - P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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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다, 경계에서 저항하다

(다시 쓰기 혹은 속편)

-야만인을 기다리며(2019), 시간 時間(2020)을 읽고

 



작년 말에 일러스트 모비 딕, 그래픽 노블 모비 딕,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묶어서 간단한 리뷰를 써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오늘은 모비 딕을 제외하고, 일본 작가 혼타 요시에의 장편소설 시간 時間(2020)을 더하여, 전에 썼던 리뷰의 구조를 그대로 차용해서 리뷰 다시쓰기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번 글은 큰 틀에서 보면 작가 또는 작중 인물의 경계 넘기경계에서 저항하기의 구도 속에서 다른 두 소설에 대해 다시 써보려고 했던 시도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J.M. 쿳시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경우, 이전의 리뷰에서 대부분 가져오되, 홋타 요시에의 시간 時間과 비교해보며 읽어본 것이다.

 


경계를 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백인작가 쿳시는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이었던 아파르트헤이트가 법률로 공식화된 1948년보다 조금 이른 1940년 태어났다. 그리고 이 소설은 야만적인 인종차별 정책이 한창이던 1980년에 출간되었다. 외견상 소설의 시간 및 공간상의 배경은 배제되어 있지만, ‘작가의 시공간을 염두에 두고 읽어 나갈 수 있다. 소설을 관통하는 배경은 제도의 경계 밖에 있던 존재를 야만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정복하고자 했던 문명의 제국주의적 맥락과 닿아있다. 백인 작가 쿳시는 내부고발자의 시선으로 문명과 야만의 경계 넘기를 시도하며 화자의 입으로 문명의 야만성을 고발한다.

 

소설의 화자는 제3제국에 고용되어 변방에서 30년을 보낸 치안판사다. 이 변방은 제국이 구축한 식민지에 요새를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곳이기도 하다. 치안판사는 변방에서 아무 일 없이권태롭지만 조용하게 살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취미로 유목민들의 폐허를 발굴하고, 이따금 유곽을 들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앞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제3제국 소속 경찰 졸 대령이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뒤바뀌어 버린다. 졸 대령의 임무는 야만인들을 정복하고 몰아내어 야만인들의 위협으로부터 문명세계를 보호하는 일이었다.

 

3제국 경찰 졸 대령이 보이지 않는 유목민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고 잡아들였던 것은 무지로 인한 공포가 만들어 낸 증오 때문이다. 치안판사가 제국의 경계를 넘어가 졸 대령이 잡아들였던 유목민 여자를 유목민에게 넘겨주고 복귀하자, 치안판사는 적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수감된다. 이처럼 사회의 질서,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계를 지우고, 경계의 안쪽에 자리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치안판사는 졸 대령이야말로 문명에서 온 야만인이라고 비판하고, 경계의 어느 쪽에 서기를 거부한다. 그는 이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꿈꾸었기에 고초를 당해야 했다.

 

치안판사는 역사의 바깥에서 살고 싶었다. 제국이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아니 사라져버린 백성에게조차 강요하는 걸 원치 않았다. 이것이 치욕의 원인이라고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254)라고 지나간 시간을 회상한다. 그렇다면 치안판사가 야만인을 기다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기록된 역사의 표면 아래에 묻힌, 진정한 삶과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명이 야만으로 규정한 유목민의 시간은 문명과 상관없이 도도히 흐른다. 계절의 법칙에 따라 오고 가는 아이들과 같은 시간속의 삶을 살 뿐이다. 3제국의 경찰의 만행으로 유목민의 삶이 파괴되고 땅은 생산력을 잃어버린다. 판사는 건강하고 진솔한 삶을 바랬기에 부조리한 이데올로기, 관습의 억압을 통과하지 못하고 수모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제국이 보여주는 무자비한 만행을 지켜보는 치안판사의 시선은 인종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슈미얼의 시선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앞선 리뷰에서 언급한모비 딕에서는 문명화된 퀘이커교도가 소유하여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포경선의 이름이 백인들의 정복활동으로 멸종한 인디언 부족 피쿼드에서 따온 것임을 상기해보았다. ‘문명화된 백인들이 야만인들을 몰아내고자 스스로가 야만인이 되어버린 역설을 두 소설에서 발견한다. 쿳시가 소설에서 구체적인 시공간을 배제한 이유도 제3국의 하수인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특정 시기, 특정 사회의 문제만이 아님을 제시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 문제는 백인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문명사회가 지니는 편견과 억압적 관습에 관한 것이며, 쿳시는 이 문제의 본질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쿳시의 소설에서 검은 선글래스를 쓰고 나타난 문명인의 모습은 일본 작가 홋타 요시에의 시간 時間에서 검은 뿔테 로이드 안경을 쓴 일본인 장교 기리노 중위와 오버랩 된다. 이 소설의 시공간은 1937년 중국 난징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중국을 점령한 일본군이 수 개월간 자행한 학살사건이 소설의 배경이다. 소설의 화자는 중국군 정보 장교 천잉디. 그는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했을 때, 하인까지 데리고 모두 탈출한 형의 가족을 배웅했다. 반면 화자는 탈출하지 않고 집에 남아 일본군에 의해 임신한 아내와 아들을 잃는 고초를 겪는다. 소설은 화자가 대학살 전후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기록한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작가의 색다른 경계 넘기에 있다. 작가 요시에는 대학을 졸업한 뒤, 태평양전쟁 당시 징집되어 중국에서 복무 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복자가 아닌 피정복자의 시선에서 소설을 써내려갔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역사소설과 다른 이 소설만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소설의 몇 군데에 일본인의 무의식이 드러나긴 하지만, 작가는 입장(인식)의 경계를 넘어피정복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작가가 이러한 시도를 하지 않고, 몇 개월 만에 자국의 군대가 30만 명의 중국인을 학살했던 만행을 고발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길가에 있던 시체의 목을 물어뜯던 짐승들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경계에서 저항하다

 

홋타 요시에의 소설 시간 時間1955년에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나에게도 충격이자 울림으로 다가오지만,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가해국의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상상해보려 했다. 작가의 경계 넘기는 목숨을 거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반면 작가의 경계 넘기와 화자인 천잉디의 경계에서 저항하기가 대비되는 지점에도 주목해본다. 천잉디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인간(사랑)과 물질의 수준(질서/비인간성) 사이의 경계 넘기를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인간으로 남길 선택하는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집을 점거한 기리노 중위의 하인으로 지내면서도, 엄혹한 운명 속에서 익사해서는 안 된다’(138)고 다짐하며, ‘노예적인 숙명과 파괴적인 인생관에 굴종하지 않기’(109)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쿳시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도 치안판사는 경계에서 저항하기를 시도한다. 쿳시가 인식의 경계 넘기를 시도하는 반면, 소설의 화자는 문명과 야만, 비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서 저항한다. 치안판사는 제3제국 경찰들에게 몽둥이로 얻어맞아 손이 부러지고, 코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잡혀 와서 노예처럼 끌려온 유목민들을 보고 우리는 위대한 생명의 기적이야! (...) 이 사람들을 봐라! (...) 사람들이다!”(177)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치안판사가 나와 졸 대령은 다르다”(76)라고 생각했을 때의 인식은 시간 時間에서 천잉디가 인간/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넘지 않고자 했던 양심이 내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 時間의 마지막에 이르러 화자는 비인간적인 세상과 인간의 세상, 그 둘 사이의 경계를 헤매고’(125) 갖은 고초를 겪고 살아남아 회복 중이던 사촌 동생 양양에게서 생명의 강한 회복성과 희망을 발견한다. 인간은 각자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야 해야 하는 것’(250)이라고 보고, 엄연한 생의 질서를 한 번 더 믿기를, 그리고 인간의 존엄에 대해 한 번 더 의지하고자 한다. 곡식을 수확하는 것처럼 인생은 몇 번이라도 발견’(250)되는 것임을 믿는 것이다.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마지막에서는 야만의 시기가 지나가고 다시 평온을 되찾은 변방에 첫 눈이 내린다. 치안판사가 눈사람을 만드는데 열중해있는 아이들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은 긴 여운을 남긴다.

 

지금까지 전편의 리뷰와 마찬가지로 경계 넘기그리고 경계에서 저항하기의 관점에서, 인종차별과 대학살을 다룬야만인을 기다리며시간 時間을 함께 읽어보고자 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이 작품들에서 파악되는 대립되는 세계가 어떤 경계에서 충돌하되 어느 접점, 곧 정지와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지난 리뷰에서 읽어본 허먼 멜빌의모비 딕을 떠올릴 때, 나는 이 소설의 이야기가 끝나면 지면의 한계를 벗어나 또 다시 바다에서의 삶이 이어질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아가 이것이 경계에서의 저항하기를 너머 경계를 무화하기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야만인을 기다리며시간에서는 야만적인 문명에 의해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가 훼손되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여기에 저항하는 인간의 꿈틀거림을 읽을 수 있었다. 이것은 계속되는 삶과 질서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다시 해가 뜬다는 엄연한 질서를 한 번 더 믿는 것이라 믿었던 천잉디의 독백처럼 말이다

 

책을 덮고 나는 성년이 한참 지나 읽기 시작한 책읽기, 그리고 소설 읽기란 내게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해보았다. 책을 펼칠 때마다 나는 책을 경계로 나와 다른 세계와 마주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아마도 어떤 종류의 경계에 다가가고, 때론 이를 넘는 시도를 상상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 작업이 경계의 자리를 선택하거나 혹은 그 경계를 무화시키는 노력을 요구하기도 할 것이다. 문학작품에서 이질적인 두 세계가 있을 때, 두 세계는 으레 그 경계에서 팽팽한 긴장 관계를 이루며 존재한다. 이 세계의 안과 밖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경계의 자리를 가늠하고, 그 경계를 넘을 것인지, 혹은 경계의 어디에 설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는 작업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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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전기

옌스 안데르센(Astrid Lindgren) 지음 | 김경희 옮김 | [창비]

 


한 아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 ‘아이들은 영혼에 바르는 연고임을 잊지 말라

 

나는 결혼할 때 텔레비전을 사지 않았다. 여러 집을 전전하고 현재 살고 있는 집에는 부엌에 인터넷으로 연결된 테블릿 크기의 티비가 설치되어 있어서 가끔씩 주방에 앉아 TV를 본다. 보통 TV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가끔 뉴스를 볼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지 깨닫고 놀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제는 뉴스를 볼 때마다 충격을 많이 받고, 심리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금 한 아이가 학대받아 사망한 일로 수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나는 어제 저녁에나 뉴스를 보면서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제 본 뉴스시간에는 아이의 죽음뿐만 아니라, 차에 묶여 끌려 다니다 죽은 강아지에 대한 뉴스, 음주 운전 차에 치여 열심히 내일을 준비하던 젊은 여성이 사망한 사건 등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요즘 TV를 볼 때마다 나는 지금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닌지 착각할 정도가 되었다. 매일 TV를 통해 뉴스를 보는 사람이라면 이미 이런 뉴스에 익숙해져있겠지만, 가끔씩 TV를 보는 사람이 이런 뉴스를, 그것도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한꺼번에 접하게 얼마나 충격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을지 상상해보라. 어제는 뉴스를 보면서 정말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원래 새해가 되면 삐삐롱 스타킹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전기에 대해 좀 밝은 독후기를 작성해볼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에 겪은 개인적인 아픔과 시련을 딛고 많은 이들이 존경할만한 삶을 살았던 작가로서 말이다. 하지만 한 아이의 충격적인 죽음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다만 이 사건과 관련해서 다시금 린드그렌을 떠올렸다. 그녀는 보통의 부모들처럼 아이들의 심정과 미래를 고민하고 걱정하던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린드그렌은 단순히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캐릭터 삐삐를 창조한 아동문학 작가로 정리되는 인물이 아니다. 이 전기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을 읽고나면, 린드그렌이 인간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매일 용감하고 진실하게 삶을 살았으며, 아이와 젊은이들의 미래를 고민하고 걱정했던 어른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의 작가 옌스 안데르센은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전기와 프레데릭 왕세자의 전기를 쓰기도 했던 덴마크의 전기 작가라고 한다.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성과 같아서 그의 후손이거나 친척이 아닐까 추축해본다.

 

뉴스를 통해 한 아이의 안타까운 사망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이 책이 생각났고, 책의 제목이 된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이란 문구를 떠올렸다. 전기에 따르면 이 문구는 린드그렌의 동화 미오, 나의 미오에서 주인공들이 당면한 위험이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기적을 기대하며 암송하는 기도문의 일부였다. 사망하기 전까지 학대받았던 아이는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매순간 여기를 벗어나게 해달라는 바램만을 갖지 않았을까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볼 뿐이다.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를 듣는 일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의 기도를 외면했던 침묵의 카르텔의 일부라고 해도 변명하기 힘들 것 같다.

 

린드그렌은 아동을 위한 작품에서도 삶의 주요 문제들, 이를테면 고독, 고립, 어둠, 죽음, 슬픔과 같은 삶의 보편적인 고민들을 담아,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어른으로서 우리가 염려하듯이 아이들이니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르다’, 라고 동화에서 배제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린드그렌은 합당한 방식으로 이런 주제들을 다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이들을 온전한 인간으로 대하고, 아이들이 이런 충격에도 각자 나름대로 이를 소화해 나간다는 믿음을 견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린드그렌의 견해에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반대할 교육자들도 분명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아이들을 단순히 미성숙한 인간으로만 보는 시각도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현대 사회에서보다도 더 삶과 죽음이 가까이 있었던 조상들의 삶을 떠올려보자. 아이들이라도 늘 부모나, 형제자매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일이다. 이에 대해 린드그렌의 생각을 좀 더 들어보자.

 

예술적으로 합당한 방법이라면 이야기를 통해 죽음이라는 주제도 진솔하게 다룰 수 있으며, 이를 소화해 내는 것은 어린이의 몫이다. 죽음과 사랑은 나이를 막론하고 인류의 경험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도 예술을 통한 충격을 경험해야 한다. 이것은 잠든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일이다. 누구나 이따금 눈물 흘리고 두려움에 떨 필요가 있다.”(337)

 

젊은 시절 첫 아이를 낳고 곧바로 고통 속에서 헤어졌던 경험, 사실상 싱글맘으로서 생계를 위해 분투했던 린드그렌의 청년기를 떠올려본다. 이 때의 고통스럽고도 생생한 체험은 이후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아야하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린드그린은 앞서 언급한 미오, 나의 미오에서 슬픔새노래새를 언급하는데, “우리 머리 위로 슬픔새가 날아다니지 못하게 할 수는 없지만, 머리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할 수는 있어요”(291)라고 자신의 어린 펜팔 수신인에게 말해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린드그렌은 어린 상대에게도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며 이들이 삶의 진실을 배우고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이를 소화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린드그린은 특히 아이들에 대해, 그리고 이들의 교육과 미래에 대해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세계의 운명은 요람에서 결정 된다’(276)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고, 특히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니까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무엇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지에도 연장되어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던 작가였다. 린드그렌이 지녔던 신념, ‘우리는 남들이 우리에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라는 입장은 나이와 지역, 계급 및 시대와 무관하게 진리일 것이다. 이 진리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성립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린드그린에게 글쓰기는 무엇보다 특별했다. 특히 결코 만만치 않았던 그녀의 삶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행복을 주는 행위이기도 했다. 린드그렌은 어떤 때는 행복하고 어떤 대는 슬프다. 나는 글을 쓰며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290)라고 했다. 그녀의 동화를 보면 언제나 행복했던 시기를 보낸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개인적으로 힘든 시련과 2차 대전을 겪은 인물이다. 그면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행복을 찾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전기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린드그렌이 삶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냥 살아갈 뿐입니다. (...) 나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신나고 풍성해서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고민할 겨를이 없어요. 하루하루가 가져오는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요. 매일을 마치 삶의 마지막 날처럼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늘 하루가 인생이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그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 실제로 삶이란 재빠르게 스쳐가는 부조리이며, 그 후에 찾아오는 것은 커다란 침묵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짧은 시간 동안에는 최대한 풍성하게 채워야 합니다.”(449)

 

린드그렌의 전기에는 인생의 후반에 작가가 실천적인 활동가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력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녀는 인본주의자로서, 문명비판론자로서, 또 정치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년에는 끊임없이 환경, 여성, 동물복지 등의 문제에 관해 글을 기고하고 사회적인 논의를 끌어낸 인물이기도 했다. 다만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으로서, 그리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작가를 계속 따라가 보려 한다.

 

1973년에 한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린드그렌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어린이가 최소한 한 명의 어른과 바람직한 정서적 유대를 가져야만 안전함을 느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삶을 견디기 어려울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383)

 

그녀가 공개적인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는데, 아마도 갓 태어난 자신의 아기를 멀리 떨어진 위탁 가정에 맡기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던 몇 년 간의 절실한 체험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당장 내일이 불안한 나날 속에서 매순간 엄마와 떨어져서 지내야 했던 아이의 심정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면서 나는 린드그렌이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간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전기의 작가 역시 린드그렌 철학의 핵심은 살아가는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449)이라고 강조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른과 정서적으로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한 아이, 아니 심지어 학대받고 방치된 아이의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다. 이 아이는 린드그렌이 아이들로부터 기대했던, 슬픔과 고독 속에서도 매 순간 (삶에) 집중하면서 우리가 진실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느껴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차가운 땅속에 묻힌 아이에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 린그드렌은 학대를 하고 방치했던 양부모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얻고 웃음을 잃어가던 아이를 외면한 어른들에 대해 분노했을 것 같다. 나아가, 아이에게는 고독과 외로움의 상처에 대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위로해주고 싶어 했을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고독 속에 갇혀 있지. 인간은 누구나 외롭단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다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작고 외로운 존재야”(447)라고 말이다. 린드그렌이 창조해낸 삐삐는 어쩌면 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방치되고 심지어 학대받은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지키려고 했던 생에 대한 의지의 은유적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이를 학대하고 방치한 양부모뿐만 아니라, 이를 알고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은 입양기관, 그리고 신고를 받고도 이런 상황을 방치한 경찰들, 그리고 아동학대법방지를 위한 법제정에 한동안 무관심했던 국회위원들을 비롯한 기득권을 가진 모든 어른들, 이 모두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방치했다면, 우리 어른들은 가해자의 편에 가까운 혹은 그 일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린드그렌의 한 마디를 전해주고 싶다. “아이들은 영혼에 바르는 연고”(368)임을 잊지 말라고. 아이들이야말로 오히려 병든 어른들의 영혼을 치유해줄 수 있는 귀한 존재들이라고 말이다. 한번도 진실로 살아있음과 유대감을 느껴보지 못했을 아이의 죽음을 애도한다.





"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221) - P221

"교육에서 자유란 안정을 배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존중과 애정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를 존중하는 것입니다."(250) - P250

"어떤 때는 행복하고 어떤 때는 슬프다. 난 글을 쓰며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290) - P290

"이건 마치 오늘 하루가 일생의 전부인 양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야. 매 순간 집중하면서 우리가 진실로 살아 있음을 느껴야 한다는 거지."(348)
- 열일곱살의 린드그렌에게 작가 엘렌 케이가 해준 토마스 토릴드의 격언 - P348

"모든 어린이가 최소한 한 명의 어른과 바람직한 정서적 유대를 가져야만 안전함을 느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삶을 견디기 어려울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383) - P383

"우리 모두는 자신의 고독 속에 갇혀 있지. 인간은 누구나 외롭단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다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작고 외로운 존재야."(447) - P447

"‘오늘 하루가 인생이다.‘ (...) 실제로 삶이란 재빠르게 스쳐 가는 부조리이며, 그 후에 찾아오는 것은 커다란 침묵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에는 삶을 최대한 풍성하게 채워야 합니다."(449)
-환갑의 린드그렌이 기자에게 해준 말 - P449

"아이들은 영혼에 바르는 연고야"(368)
- 손주들과 함께하던 시기,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쓴 표현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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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독가들 - 조선 지식인의 독서 리더십과 독서론 책문화교양 7
박수밀 지음 / PARK&JEONG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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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독가들

: 조선 지식인의 독서 리더십과 독서론

박수밀 지음 | [카모마일북스]

 


삶을 지탱하는 책읽기, 삶을 열어주는 책읽기


 

조선 시대의 왕 중에서 정조는 호학 군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 여러 지식인들의 독서와 삶을 다룬 책 탐독가들에 따르면, 정조는 또한 다양한 배경의 지식인들을 등용하어 업적을 남길 기회를 마련했다. 정조는 다산 정약용으로 하여금 자신의 강력한 개혁 정책을 돕게 했고, 다산은 거중기를 발명하여 수원 화성의 축성을 단축했다. 또 정조는 규장각에 검서관을 설치하여 이덕무와 같은 서얼 출신의 실력 있는 학자들을 등용하기도 했다.


내가 이 책에서 한 가지 주목하게 된 지점은 정조가 승하한 후의 사건이다. 이른바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옥(1801)이 일어났던 것인데, 주축이 된 노론 세력이 천주교를 믿던 남인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천주교를 믿는 이가 있었던 다산의 가문에는 시련과 고난이 시작되었다. 둘째 형과 막내인 다산은 유배를 가게 되었고, 심지어 셋째 형은 참수를 당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다산은 강진에서의 유배 생활 동안 5백 여 권의 저술을 남겼다고 한다. 중세의 말기 이탈리아의 시성 단테가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고 신곡을 완성한 것이 집이 아닌 길 위에서였음을 떠올려보게 한다.탐독가들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다산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의 일부인데, 여기에는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자신들은 망한 가족이며, 망한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길은 오직 독서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두 아들에게 너희들이야말로 진짜 독서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었다’(57)고 용기를 주었다.


다산이 아들에게 이런 언급을 한 까닭은 인생에서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이라야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 있다’(58)는 다산의 지론에서 나왔다고 한다. 집안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난 마당에 자녀들에게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독서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설명해줄 수 있는 단서가 있을 것이다. “(독서는) 날짐승과 벌레의 무리를 초월하여 큰 우주를 지탱한다. 독서야말로 우리의 본분이다”(58)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다산에게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 행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정조가 매우 아끼던 이덕무는 서얼 출신으로 검서관으로 공직에 나아가기 전까지 어떤 기회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가난하게 살았다. 아내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굶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과였으리라. 겨우내 이불하나를 뒤집어쓰고 입김이 보이는 추운 방안에서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추위를 이겨내곤 하던 이덕무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겨울에 추운 외풍이 들어오니 논어로 병풍삼아 바람을 막고, 한서한 질을 이불 위에 늘어놓아 또 다른 이불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현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잘 와 닿지 않겠지만, 입김이 나오는 방에서 밤을 나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당장 내일 다시 눈을 뜰 수 있을지 모르는 여건에서 살았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이덕무와 정약용의 독서가 이들의 삶에 미친 영향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이들에게 독서는 고난과 시련에도 이들을 견디게 하고, 현실을 극복할 힘을 길러주는 삶의 과정이었다. 두 사람의 예만 보더라도 독서는 지식을 주고, 직업을 얻는데 유용한 것을 너머 삶을 이어가게 하는 동인이 되었다. 반대로 삶에서 고통과 시련을 겪은 자만이 독서의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다산의 생각에는 독서가 삶의 일부이자 연장선에서 함께 했다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 책에는 독서가 다양하게 삶에 영향을 미친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교산 허균은 시대를 너무 앞서나갔던 것인지, 공직에 부임한지 10여일 만에 불교를 숭상한다는 혐의(불교 서적을 읽었기에)로 파직을 당하기도하고, 생의 마지막에는 결국 역모죄로 처형당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허균이 당대에 규정된 독서를 하지 않고, 폭넓은 독서를 통해 세상의 모순과 진실을 절실히 깨우쳤기 때문이다.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허균처럼 책을 읽기 전과 후가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독서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다른 사람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또 결은 조금 다르지만, 저자는 전쟁에 임했던 충무공 이순신의 마음가짐은 유교 경전의 책읽기뿐만 아니라 역사서와 소설책, 병법서 등 폭넓은 독서를 통해 형성된 바가 크다는 점에 주목한다.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은 오자병법에 나오는 말인데, 후대에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규정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이 말은 책 읽는 무사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순신의 독서가 조선을 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인들의 독서는 각자의 시련을 이겨나가는데 큰 힘을 주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


아울러 탐독가들에는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다양한 독서법이 소개되어 있다. 일일이 여기에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책에서 저자가 관심을 둔 지식인들은 대체로 실천적인 책읽기를 한 인물을 중심으로 소개되어 있다. 지식의 쓸모뿐만 아니라, 이들의 독서의 행위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주목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들에게 독서란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일에서 나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삶과 상호작용하는 방편이었다. 이 독서가들의 지향점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실천하는 것에 모아진다고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해 저자는 연암 박지원의 독서가 곧 사물 읽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허균의 진보적 사상을 담은 유재론호민론에는 인간의 평등적인 가치관이 담겨 있었다. 이런 생각은 담헌 홍대용의 현실 비판적인 사상, 인간과 사물이 모두 소중하다고 본 생각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시대 독서가들의 독서론에서는 의문을 품는 독서’, ‘밑바닥 까지 캐는 독서를 이들의 공통점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 독서관은 현실에 기반을 둔 과정이기에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관심 없이는 지속하기 힘든 독서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들에게 독서는 삶에 닿아 있어야 진정으로 의미가 있다고 보았던 셈이다.


이 책에 소개된 독서관 중에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실학자의 독서론에서 연암 박지원이 저자의 마음(고심처)을 읽을 것을 주문한 대목이었다. 동양 최고의 명저로 꼽히는 사기는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이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을 당한 상태에서 저술한 책이다. 사마천이 흉노족에 항복한 장군을 변호하다가 문제가 된 것이다. 이에 저자는 연암이 언급한 나비 잡는 소년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가짐이란,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으려고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내밀고 다가갔다가 망설이는 순간 나비를 놓쳤을 때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나비를 놓쳐서 겸연쩍어 웃다가도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해하는 마음인 것이다. 연암은 이 아이의 마음을 사기를 읽을 때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대개 궁형을 당한 이들은 자살을 하게 마련이지만, 사마천은 그 울분을 참고 사기를 완성해 내었다. 어떻게 보면 연암의 비유는 사마천이 겪은 일에 비하면 너무 가벼운 사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속상해하는 마음을 넘어서 울분 속에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나갔을 사마천을 상상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거죽만 읽지 말고 작가의 고심을 읽으라는 주문이었다. 아마 우리 시대의 표현으로 하면 공감의 독서를 하기 위해 정신을 기울이고 상상할 것을 당부하는 말이 될 것이다.


탐독가들에는 연암의 독서법 말고도 세종대왕과 정조의 독서법에 대해서도 소개가 되어 있다. 물론 이들은 통치자로서의 입장에서 독서를 한 사례를 보여준다. 또 재능보다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경지에 이른 독서가 김득신의 사례를 만날 수 있었다. 번번이 과거에 떨어졌지만, 부지런히 읽고, 꾸준히 공부하여 김득신은 59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공직에 나아갔다고 하다. 부족함을 꾸준한 노력으로 극복한 김득신의 독서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번에 읽게 된 탐독가들에서는 무엇보다 독서가 책을 읽는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숙고한 조선 지식인들의 독서관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금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독서는 위로가 되어 주고, 삶을 계속 살아갈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또 여러 독서가들이 독서가 이들에게 미친 삶의 양상에 주목해서 따라가다 보면, 인간에게 어느 한 가지 견해를 강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데다 불가능하다는 점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유교 경전만이 옳고 이 경전들만을 읽으라고 한다면, 이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독서는 앎에 이르고 독서가에게 자유로움 또한 준다는 믿음을 새롭게 발견할 수도 있겠다. 제도로 사람들의 삶을 구속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정신까지 구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산 허균이 시대를 너무 앞서서 태어나긴 했지만, 허균이 고심했던 사안들(평등한 삶, 차별, 신분제약 철폐 등)은 대략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이슈다. 비록 허균은 당대의 관습에 굴복하여 처형당했지만, 후세인들은 그의 사상과 작품을 여전히 읽고 감상하며,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한다. 이번에 탐독가들을 읽으며 여러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독서법뿐만 아니라 독서가 삶에 미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따금씩 나의 독서 목적과 독서 방식도 점검해볼 수 있었다. 독서가 우리에게 어떤 행위인지를 표현할 수 있는 마무리로는 다산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로 정리해본다.

 

독서, 이것이야말로 인간 세상의 가장 맑은 일이다.”(55) 

-「두 아들에게다산 정약용의 편지

 

 

 

"독서, 이것이야말로 인간 세상의 가장 맑은 일이다."(55)

-「두 아들에게」다산 정약용의 편지 - P55

‘인생에서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이라야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 있다’(58)

"(독서는) 날짐승과 벌레의 무리를 초월하여 큰 우주를 지탱한다. 독서야말로 우리의 본분이다"(58)

- 다산 정약용의 말 - P58

"무릇 책 읽기는 매번 한 글자라도 뜻이 분명치 않은 곳과 만나면 널리 고증하고 자세히 살펴 그 근원을 얻어야 한다."(59)

- 다산의 ‘격물‘의 공부(밑바닥까지 캐는 독서) - P59

"독서는 옳고 그름을 분별해서 실천하는 데 있다. 일을 살피지 않고 오롯이 앉아 책만 읽는다면 쓸데없는 학문이 된다."(115)

- 율곡 이이의 <자경문> - P115

"예교가 어찌 자유를 구속하겠는가, 인생의 부침을 다만 정에 맡기노라. 그대는 그대의 법을 따르라,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129)

- 교산 허균이 불교를 숭상한다는 혐으로 공직에 임명된지 13일 만에 파직 당하고 쓴 소회 - P129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보며, 보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다만 모아두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139)

- 창애 유한준이 지인 김광국의 수장품 <석농화원>의 발문에 쓴 문장 - P139

"앞다리는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독움하며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서 다가갑니다. 잡을까말까 망설이는 순간 나비는 날아가고 맙니다.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기에 겸연쩍어 씩 웃다가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입니다."(152)

- 연암 박지원이 저자의 고심처를 읽으라고 하면서 든 나비 잡는 소년의 비유 - P152

"젊을 때는 읽지 않는 책이 없어야 하고, 그 뜻을 궁구하지 않는 것이 없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중요한 것을 선택해서 힘써야 한다. 한 권의 책을 읽다가 문득 나중에 공부하기에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다시 가서 이해해서 깊이 생각하고 의미를 찾아내 지극한 곳까지 궁구하는 것이 좋다."(203)

- 18세기 성리학자 백수 양응수의 독서론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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