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독자의 팩트체크와 번역가의 일에 대해 생각해보다

- 조지 오웰의 평론(문학을 지키는 예방책)을 중심으로

 



몇 달 전에 어느 블로거분이 내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 주셨다. 내가 딱 1년 전(2020516)에 올린 글에서 잘못된 부분(사실 내가 크게 실수한 것)에 대해 지적하고 수정해주신 것이다. 내가 이 댓글을 그동안 발견하지 못해서 몇 달간 방치되었다. 내가 올린 글은 조지 오웰의 평론집 책 대 담배(민음사, 2020)중에서 문학을 지키는 예방책이란 글을 읽고 적은 글이었는데, 바로 아래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반면 작가들은 혹독하게 탄압받고 있다. 일리아 에렌부르크나 알렉세이 톨스토이 같은 문학 매춘부들이 막대한 돈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가들에게 가치 있는 유일한 표현의 자유 같은 것은 박탈당하고 만다.”(책 대 담배, 38)

(내가 올렸던 글: blog.aladin.co.kr/712851116/11720954)


 

여기서 알렉세이 톨스토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가 아니었는데도 나는 조지 오웰이 비판한 사람이 레프 톨스토이로 착각하고 글을 썼던 것이다. 난 이 대목을 읽고 계속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글을 올릴 때까지도 나의 의혹에 대해 아무런 확인을 하지 않았다.

 

내 블로그에 댓글로 친절하게 알려주신 블로거의 설명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알렉세이 톨스토이와 레프 톨스토이는 다른 분이에요. 알렉세이 톨스토이가 문단의 창부라고 비난 받은 요인은 스탈린 정권을 찬양해서인데, 레프 톨스토이는 재정러시아 시대 사람입니다.

 

... 이 대목을 읽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과거에 내가 남긴 독후기며 리뷰에서 자신 있게써댄 여러 의견들에는 또 얼마나 많은 오해와 헛발질이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떠올린 의혹들에 대해 확인하고 검토할 생각을 그동안 게을리하고 있었다는 점을 시인해야겠다. 여기에 나는 한술 더 떠서 역시 조지 오웰은 대문호 톨스토이까지 비판하는 것처럼 이 사람 앞에는 비판의 사각지대는 없었다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평까지 달아놓았던 것이다. 너무나 부끄럽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틀린 부분을 알았으니, 이를 바로잡아야겠기에, 다시 기본적인 사실을 조사하여 나의 잘못을 바로잡기로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는 온라인 서점의 서재든 개인 블로그이든 아무리 편하게 글을 올리는 공간이라고 해도, 글쓰는 사람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불문율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금의 의혹이라도 있다면, 스스로 검증하고 검토해볼 것. 그리고 답을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검토하는 시늉이라도 할 것. 나아가 전혀 자신이 없다면 내 글에 집어넣지 말 것! 나는 최소한의 의무도 소홀히 했던 것이다. 내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주셨던 분은 출판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일까, 아니면 문학 전공자가 아닐까 싶다. 아무쪼록 나의 무지와 실수를 지적하고 바로잡아주신 점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조지 오웰의 책은 많이 읽지 못했는데, 공교롭게도 나는 이번에 문제가 된 부분을 언급한 조지 오웰의 평론이 실린 평론집을 몇 권 소장하고 있었다. 나는 첫 번째 책으로 책 대 담배(민음사, 2020, 문학을 지키는 예방책제목의 글, 38), 두 번째 책으로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이론과실천, 2013, 첫 번째 책에 실린 글과 동일한 제목의 글, 341),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 문학 예방이란 제목의 글, 239)를 서로 비교해보았다. 과연 이 부분에 대해 번역자는 주석이나 추가 설명을 하고 있을지부터 살펴보았다.

 

조지 오웰의 평론집 세 권에 실린 동일한 글을 비교해보니, 흥미로운 점 몇 가지가 있었다. 우선 가장 먼저 나온 나는 왜 쓰는가에 이 대목에 관한 충실한 주석이 실려 있었다. 번역자의 주석을 여기 그대로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주석13, 239) Illya Ehrenburg(1891-1967). 러시아 및 소련의 작가이자 언론인. 소련 시절 많은 작품을 썼으며, 2차 대전 당시에는 소련을 선전하기도 했으나 스탈린과 거리를 두는 대담한 글을 쓰기도 했다. 전후에는 검열을 비판하는 소설 해빙기(1954)를 출간했고, 스탈린 치하에 금기시됐던 인물들에 대한 언급을 담은 회고록을 내기도 했다.

 

(주석14, 239) Alexei Tolstoy(1883-1945). 공상과학소설과 역사소설을 특히 많이 쓴 작가. ‘백작 동지란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스탈린 체제를 옹호하는 선전 글을 많이 썼기에, 러시아 귀족 중 거의 유일하게 소련에서 귀족 칭호를 공공연히 쓸 수 있는 인물이었다.

 


어떤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15)의 번역가 역시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자세한 주석을 남겨놓아 다른 독자가 나와 같은 오해의 소지를 명백히 없애주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본문에서 문단의 창부라고 언급하고 있는 대목은 해당 작가의 역할과 책임을 조지 오웰이 비판하고 있는 맥락이기 때문에, 에렌부르크의 경우 스탈린과 거리를 두었다는 행적 보다는 소련을 선전했던 과거 행적에 주목하여 좀 더 정리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 설명만으로는 조지 오웰이 왜 에린부르크를 그토록 비판했는지 이해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두 번째 책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이론과실천, 2013)의 경우는 어땠을까? 흥미로운 점은 번역자가 같은 대목에서 예렌부르크한 사람에 대해서만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고 있다.

 


(341면 각주) 예렌부르크(Il'ya Grigor'evich Erenburg, 1891-1967). 우크라이나의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


 

이 책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의 번역가는 예렌부르크에 대해 간결하게 각주를 달아놓았다. 그러나 본문의 맥락에서 이 사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주긴 해도, 맥락과 어떤 연관을 갖고 있는지 여전히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든 지점은 알렉세이 톨스토이에 대한 주석이 아예 없다는 점이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나처럼 알렉세이 톨스토이를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로 오해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국문학을 전공한 번역자가 이 부분을 잘못 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가능성은 번역자와 해당 출판사의 편집자 모두 독자가 레프 톨스토이라고 오해할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너무 명백하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번역가나 편집자는 독자가 해당 인물에 대해 자세히 조사할 필요도 없다고, 레프 톨스토이가 아니라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 것 같다. 중년이 다 되어 문학을 읽기 시작한 나 같은 어설픈 독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독자가 여기에서 과연 오해할 여지가 있을까 판단했을법하다. 다만 이 판본의 아쉬운 점은 예렌부르크에 대한 주석이 기계적인 부연 설명이 아니라, 독자가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추가되었으면 하는 점, 그리고 알렉세이 톨스토이에 대해서도 주석을 달아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비교한 책은 민음사의 책 대 담배(민음사, 2020), 내가 직접 읽고 블로그에 독후기를 올리며 인용했던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작은 총서 쏜살문고로 나온 판본으로 해당 부분(38)을 비롯하여 주석은 아예 없다.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오스카리아나를 비롯하여 쏜살문고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조지 오웰의 이 평론집(책 대 담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조지 오웰의 글에 아무런 주석이 없어서, 그래서 나의 게으름(팩트체크를 하지 않은 것)을 보완해줄만한 장치가 아예 없었다는 것.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이제 책 대 담배를 한 번 읽었을 뿐인데, 책이 말 그대로 해체될 위기에 있다는 점이다. 책을 구입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책을 소장한다는 것은 누구나 여러 번, 언제나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구입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가벼운 판본들에 대해 열**들 출판사처럼 사철제본까지 바라지는 않겠지만, 여러 번 펼쳐보아도 책의 모양이 그대로 유지될만한 책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소장한 이 책은 한 번 읽었고, 이제 이 글을 쓰면서 여러 번 펼쳐보았는데, 종이들이 떨어져 나올 위기에 있다.

 

또 사족인 줄 알지만 오웰의 동일한 평론 제목에 대한 번역에도 할 말이 있다. 2010년에 처음 출간되어 2011년에 5쇄를 찍은 나는 왜 쓰는가의 해당 평론의 제목은 문학 예방(The Prevention of Literature)이다. 물론 모든 번역 작업은 번역자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이므로, 여기에 정답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시작해야 겠다. 다만 이 제목은 개인적으로는 너무 간결하고 함축적이어서 이 표현을 보고 어떤 내용일지 짐작해보기가 쉽지 않다. 반면, 2013년에 출간된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2020년에 출간된 책 대 담배에 실린 해당 글의 제목은 문학을 지키는 예방책으로 공교롭게도 동일하다. ‘문학 예방보다는 글의 내용이나 성격을 추측하기 친절하게 풀어 번역이 된 것 같다. 다만 영어 제목 The Prevention of Literature을 번역하여 이렇게 동일한 표현이 나왔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정리해보자. 조지 오웰이 자신의 평론 The Prevention of Literature에서 비판했던 알렉세이 톨스토이는 레프 톨스토이와 다른 사람이며, 생존했던 시대마저 달랐던 인물이었다. 알렉세이 톨스토이는 스탈린 시대의 사람이었고, 레프 톨스토이는 재정러시아 시대 사람이었다. 독자마다 얇고 가벼운 판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충실한 주석을 더 좋아하는 독자도 있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취향의 문제일 수 있다. 나는 후자의 취향에 가깝다. 다만 이번 기회에 배운 점은 아무리 가벼운 독후기를 쓰더라도 일말의 의혹이 있다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써야 한다는 점이었다. 당연한 과정인데도,나는 이를 소홀히 했다. 이건 글쓰는 사람의 기본적인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임의 필요성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참고로 나처럼 글의 맥락에 맞는 번역가의 주석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조지 오웰의 평론집에 한하여 다른 독자들에게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를 우선 권하겠다.

 

 


라틴어 서적의 한글 표기에 관해

 

여기서 조지 오웰의 같은 평론을 언급한 김에 한 가지 더 추가해보겠다. 해당 평론(‘The Prevention of Literature’)의 앞부분에서 조지 오웰은 존 밀턴의 책 아레오파지티카을 언급하는데, 이 책제목 대한 표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 제목 Areopagitica는 나의 짧은 언어 지식으로 판단해도 분명히 라틴어 제목이다. 그리고 라틴어에서 g는 모두 //소리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나는 개인적으로 고전 라틴어 발음만 찾아보았다고 인정해야 겠다) 그런데 밀턴(1608-1674)의 시대에는 중세 라틴어를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이 시기에 g소리가 어떻게 바뀌거나 확장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중세 라틴어에서 g소리가 // 소리뿐만 아니라 // 소리로도 확장되어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나의 부실한 고전라틴어 발음 지식만을 가지고 판단해본다면, ‘Areopagitica아레오파티카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답을 얻진 못했지만, 내 견해를 지지해줄만한 증거는 몇 가지 있다. 우선 박상익 교수가 연구하고 옮긴 아레오파기티카(인간사랑, 2016)였다. 박상익 교수(역사학)는 밀턴 연구로 학위를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고, 언론자유의 경전이라고 불리는 이 책을 전면재번역하여 개정판을 낸 분이다. 내가 중세라틴어 발음에 대한 지식이 없긴 하지만, 밀턴 전공자가 아레오파티카로 발음을 옮긴 것이 한 가지 간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 참고해볼만한 증거는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나오는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라는 문장이다(데카르트가 이 문장을 썼을 161911월 즈음). 여기서 이 문장은 코기토 에르고 숨으로 읽힌다. 따라서 g'에 대응하는 소리는 모두 //소리임이 분명하다. 데카르트의 시대 역시 분명히 중세 라틴어의 전통을 이어받아 사용했을 것이므로 Areopagitica의 발음표기는 아무래도 아레오파티카로 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 내 견해다.

 

사실 이 발음표기 문제는 먼저 언급한 인명을 착각한 상황만큼 중대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언어 지식이 빈약한 이공계 전공자가 이 문제로 한 번 고민해봤다면, 이 평론을 번역한 어문학 전공자, 교수님은 당연히 이 점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특히 언제나 글을 쓰고 글을 다듬고 하는 인문계 전공자들이야말로 나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이런 부분을 검토하고, 라틴어 발음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시지 않았을까 추측만 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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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5-19 08: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저도 초란공님 쓰신 글 보고 실수한 기분에 놀라서 나는 왜 쓰는가 찾아보니 같은 책의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의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그 톨스토이가 맞네요ㅋㅋㅋ알렉세이 톨스토이는 왜 선전선동가 질을 해서 사람 헷갈리게 하고 그래…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5-19 08: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쓰신 글에서 인용구만 바꾸시면 조지오웰이 성역도 없고 톨스토이 깐 것도 맞아요 ㅋㅋㅋㅋ

초란공 2021-05-19 09:05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렇네요.. 이렇게 부끄러운 소행을 꼼꼼히 읽어주시다니 ...^^;;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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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Merlin Sheldrake) | 김은영 옮김 | [아날로그]

 

 

'곰팡이가 만든 세상을 읽는 방법'


 

이번에 만난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는 아마 상반기에 읽은 과학서적 중에 가장 흥미로운 책이 아닐까 싶다책의 저자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그는 10대 시절에 이미 자신의 방에서 버섯을 길렀던 인물이다그리고 지칠 때까지 부모님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가을과 낙엽 냄새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다흐드러지게 핀 꽃송이에 얼굴을 파묻기도 했던 추억을 이야기한다저자는 세상을 향해 곤두박질치듯 달려들라’(375)고 격려하던 아버지의 관심과 보살핌을 격려 삼아 흐드러지게 핀 꽃송이에 얼굴을 파묻기도 했던 추억을 이야기한다이러한 경험이 기반이 되어그는 한 줌의 흙 속에서 우주를 발견하고이 세상의 비밀을 밝혀내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 멀린 셸드레이크는 균류를 연구하는 생물학자이자 생태학자다그런데 어떻게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탐구하게 되었을까책 속에서 띄엄띄엄 보이는 저자에 관한 정보들은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우리의 교육 시스템에서 이런 사람이 탄생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이 책은 곰팡이와 같은 균류가 만드는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식물을 비롯한 생태계의 놀라운 네트워크를 통해 바라보는 과정이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지식을 다시 검토하게 하는 것이다저자의 전문적인 지식과 소양문학적 상상력그리고 튼튼한 필력은 생명을 이루는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를 보다 생생하게 이끌어주고 있다.

 

미생물이 인간 사회 전체에 그토록 큰 영향력을 발휘해왔다는 점은 이미 우리가 경험하는 바다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간주해왔지만사실 우리는 수많은 생명의 가지 중에서 우연히 성공하여 살아남은 곁가지 하나에 불과하다이 책에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공생균사체 네트워크그리고 수평적 유전자 전이와 같은 것들이 아닐까 싶다나는 식물이 단지 줄기와 잎뿌리로 명확하게 구분된다고만 알고 있었지만저자는 식물의 정의혹은 식물이라는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할 수 없다고 알려준다그 주된 이유는 미생물이 생명활동에 단순히 개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매우 중요한 역할도 담당하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식물의 뿌리 중심에 균류가 자리 잡고 있고균사체 네트워크가 뿌리 사이뿐만 아니라 식물과 식물 사이를 이어주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나에게 놀라운 사건이었다게다가 자신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해석하는 곰팡이라니!

 

여기에서 나는 지인이 몇 년 전에 경험하고 내게 말해준 한 가지 사건을 떠올려 보았다그는 언젠가 출장을 가게 되어 세면도구를 챙기다가 몇 달 동안 아내와 칫솔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이후 이 충격적인(?) 사건이 잊혀 지는가 싶었는데그의 체질에 조금의 변화가 생겨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예를 들면 과거에 그는 매운 음식이나 피자를 먹으면 배탈이 나지 않았는데이제 그가 이런 체질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흥미로운 건 이 체질이 그의 아내가 결혼 전에 지니고 있던 특징이었다는 점이다뿐만 아니라 그 전에는 부부가 같이 있으면 모기가 지인의 아내에게만 몰려들어 지인은 모기에 물리는 적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그런데 이제는 그가 아내보다 모기에 더 잘 물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분명히 몇 년 사이에 지인과 부인의 체질이 변해있었는데상대방이 갖고 있던 체질을 어느 정도 서로 공유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 나는 이 변화가 단순히 노화(?)로 인한 개인적인 신체상의 변화일 것이라고 추측했다아니면 같은 공간에서 부부가 함께 지내며 서로가 닮아가는 것일까 하고 막연히 생각하기만 했었다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지인의 체질 변화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한 것이다저자에 따르면, ‘동물의 장 속에 사는 박테리아가 동물의 신경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화학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186)고 한다이 분야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분야인 신경미생물학에 속한 영역으로장내 미생물이 뇌와 상호작용을 하고나아가 심리적 상태인지 및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415, 주석10)이었다그러므로 지인 부부가 인지하지 못한 채 몇 달간 칫솔을 공유했던 경험을 통해 각자 지니고 있던 미생물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저자는 주석에서 서로 다른 기질의 쥐에 대한 언급을 한다여기에는 이 쥐들 사이에서 미소생물상을 교환하는 사례가 나온다. ‘정상적인’ 기질을 가진 쥐에게 소심한’ 쥐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하자 과도한 경계심을 보이고 우유부단해졌다는 대목이다(415). 이 현상이 부부가 칫솔 공유를 했던 지인의 경험 및 이후의 체질 변화와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저자는 진화의 새로운 공동저자로 공생과 수평적 유전자 전이를 강조하고 있는데이 두 개념으로 지인의 체질 변화에 대한 설명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특히 한국인들은 가족이 식사할 때 반찬과 찌개 등을 공유하곤 하므로가족들이 비슷한 체질을 갖게 되는 실마리를 이 대목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아울러 흥미로운 점은 지인의 아내가 과거에 찬 음식과 매운 음식그리고 피자와 같은 음식을 먹고 배탈이 잘 났지만이제는 이 현상이 상당히 사라졌다는 점이었다나는 이 변화가 부부의 몸 속 미생물이 상대방의 몸특히 장 내부에 침투했고, ‘수평 유전자 전이를 통해 빠르게 상대방의 체질적인 특성을 공유하여장 내부에서 새로운 공생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증거로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주제를 연구할 수 있는 분야가 신경미생물학인데, ‘장 내부의 세계를 통제하거나 조종하는 것’(416, 주석10)이 상당히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특히 장 내부에는 변수가 너무나 많기에 이 미생물의 활동과 특정 행동 사이의 인과 관계를 밝힌 연구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우리의 몸과 가족 사이의 관계 등에 대한 이해를 넓혀줄 수 있는 실마리를 이 작은 존재들이 쥐고 있었다.

 

그밖에 균사체 네트워크가 식물에 필요한 물질의 수송 네트워크 역할을 하는 이야기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빛을 내는 발광 곰팡이에 대한 이야기그리고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의류에 대한 이야기 역시 무척 흥미로웠다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모든 현상들은 식물과 곰팡이가 각각 독립적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공생을 통해 가능했다여기에는 배경으로서의 지구 환경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나아가 이런 현상의 이면에 그토록 많은 우연과 필연의 요소를 포함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는 점을 생각하면 생명과 지구의 역사가 경이롭게 다가오기도 한다이렇게 형성된 식물과 균류 혹은 곰팡이 연합은 다시금 지구 대기의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미칠 수 있었다는 인식이 새로웠다이것은 균근 관계가 생명의 진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한 줌의 흙은 그 속에 생명이 가득 차 있는 우주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우리가 단순히 생산성만을 높이기 위해 사용해온 화학비료가 땅 속의 균사체 네트워크를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 안다면우리의 삶과 미래를 위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일이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생소한 개념들낯선 개념들이 많이 남지만누구든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생태계 전체를 조망하는 새로운 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균사체는 정형화된 신체 형태가 없다."(97)

"균사체는 통제센터가 없다."(99) - P97

"환경에 묻혀 있는 균사체는 스스로 변신(shape-shift)한다. (...) 모든 개체는 개별적인 신체 구조를 갖는다. 완전히 똑같은 두 개의 균사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 균사체에 관한 발달론적인 ‘비결정론‘(indeterminism)
- P101

"우리는 보통 동물과 식물을 물질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물질이 끊임없이 지나가는 시스템이다." - P104

"융합하거나 번식할 때면 균사는 ‘타자’로부터 ‘자아’를 구분하며 ‘타자’의 종류도 구분한다." - P111

"‘인간과 비인간을 ‘진정한 정신’과 ‘진정한 이해력’을 기준으로 삼아 칼로 무 자르듯 깔끔하게 선을 그어 구분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고대의 신화’일 뿐이다."
- 다니엘 데닛(Daniel Dennett)의 말 재인용 - P122

"우리 몸속에 있는 미네랄 일부는 어느 시점엔가 지의류를 거쳤다."
-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 - P139

"곰팡이의 DNA는 지의류가 된 조류에서 발견된다. 인간 게놈의 최소한 8%는 바이러스에서 출발했다."
- 405, 주석 12 - P405

"지의류는 파트너쉽으로부터 생겨난 혁신의 놀라운 사례다. 연합체인 지의류는 부분의 합보다 훨씬 크다."
- 내부공생설을 주장한 린 마굴리스의 말. ‘초기 진핵세포는 지의류와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

"내부공생설은 21세기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이며, 나는 린 마굴리스의 흔들림 없는 용기와 열정에 큰 감명을 받았다."
- 내부공생설을 지지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말 재인용 - P148

"식물은 뿌리가 없습니다. (…) 식물이 가진 것은 균뿌리, 즉 균근입니다."
- 저자의 학부시절 교수가 수업중 한 말, 식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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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Ann Druyan) 지음 |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위한 짧은 변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모두 읽어본 한 지인은 앤 드루얀의 책이 전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 나는 아직도 칼 세이건의 이 유명한 책을 읽어보진 못했기에 지금 두 권을 비교해서 평을 할 입장은 되지 못한다. 다만 나는 앤 드루얀의 신간을 읽고 마음에 들었던 점들을 독후기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칼 세이건의 저작은 이미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베스트셀러인데다, 많은 독자 팬을 두고 있기에, 후속작이 전작을 능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거다. 내가 앤 드루얀의 책을 읽으면서 주목했던 부분은 이 책이 공식적이든, 개인적이든 전작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이 책 나름의 자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앤 드루얀은 이미 여러 권의 책과 다큐멘터리 영상 <코스모스> 작업 등을 오래 해온 베테랑 작가이자 감독이다. 애초에 그녀는 자신의 책이 남편의 작업이자 전작을 넘어서기를 목표로 경쟁했던 것이 아니다. 책 끝부분에서 저자는 조심스럽게 독자를 감탄시키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저 독자와 소통하고 이어지길 바랐다’(423)는 고백을 하고 있다. 어느 작업이 더 훌륭하냐를 따지는 것은 물론 독자 마음에 달려 있는 문제이고, 이 문제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나는 앤 드루얀의 책이 그 나름의 장점과 주목할 만 한 점이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과거 칼 세이건의 주요 저작(물론 앤 드루얀과 공저한 작업을 포함하여)은 주로 미소 냉전이 한창일 시기에 나온 결과물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과학기술에 힘입어 만들어진 원자 폭탄과 같은 가공할만한 무기로 인한 인류 공멸의 위험을 절실히 체험했고, 이를 꾸준히 경고했었다. 냉전 시대가 저문 후, 앤 드루얀은 같은 맥락에서 이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문제,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우려와 경고의 메시지를 책에 절실히 담고 있었다. 이 점에서 앤 드루얀은 과거 두 사람이 인류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던 전통을 변함없이 이어받아 적극적으로 세상의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풍부한 화제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볼 수도 있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대신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앤 드루얀의 책은 아주 깊이 있게 내용을 파고드는 책은 아니다.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삶의 문제를, 마치 스몰토크를 하듯 가뿐히 다루면서도 과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메시지를 놓지 않는 다. 나는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과학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편안한 자리에서 듣고 의견을 나누는 것 같아 독자의 접근성이 좋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도 분명 독자의 호불호가 나뉠 것이다.

 

물론 책에는 저자가 칼 세이건과의 만남과 사랑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은 익숙하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이는 문화적 정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앤 드루얀의 공식적인 작업이 결국은 칼 세이건과 함께 했던 시간들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나는 이 책이 한 사람에 대한 꾸준한 사랑과 상실에 대한 애도의 작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부로 나아가 전 세계 독자의 삶에 닿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앤 드루얀의 염려는 저자가 인용한 스피노자의 한 마디에서,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한 마디, 그리고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세계 종자 은행 개념을 제안했던 식물학자 바빌로프의 행적에서, 지구의 재앙이 임박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마나베 슈쿠로의 논문 등에 관한 이야기들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었다.

 

써놓고 보니 꽤나 일방적인 칭찬만 있지 않을까 싶지만,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두고 지인이 남긴 평에 대해 내가 좋았던 점을 정리해보고자 했다.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저자가 후대인들이 선대의 업적을 기반으로 혹은 이 업적을 개선함으로써 선대의 지적 성취를 딛고 올라설 수 있었던 인류사의 장면들을 흥미롭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 책이 풍부한 화제를 담고 있는 만큼 각각의 화제는 또 하나의 씨앗이 되어 더 깊은 배움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앤 드루얀이 1939년 세계박람회에서 아인슈타인이 했던 연설을 인용한 대목이 인상적이어서 남겨보고자 한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26)

 

우리가 흔히 과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할 때, 아인슈타인은 대중에게도 그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묻고 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과학과 관련해서 말이다. 이 문장은 환경문제와 지구온난화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감안할 때, 여전히 귀담아 들을 말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 1939년 세계박람회에서 한 아인슈타인의 연설 재인용 - P26

"사람들의 마음은 무력이 아니라 사랑과 이성으로만 정복할 수 있다."
- 바뤼흐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재인용 - P76

"꿈에서 책임이 시작된다"
-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처음 사용한 말 재인용 - P126

"바빌로프와 동료 식물학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미래가 그토록 손에 잡힐 듯하고 귀중한 현실로 느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 P171

"우리는 모두 똑같은 도구 상자로 만들어졌고... 똑같은 유전 물질로 만들어졌으며,... 다만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밟아 왔을 뿐이다." - P266

"양자세계의 무법적 카지노에는 객관적 현실이라는 것이 없다." - P325

"우리가 예측력을 발휘하는 과학을 개발하더라도, 결국 손 놓고 앉아서 그 예측이 현실로 실현되길 기다리기만 할 거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 P414

"나는 더 이상 독자를 감탄시키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저 독자와 소통하기를, 독자와 이어지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코스모스> 이후의 내 모든 작업은 매일 칼에게 바치는 사랑의 선물이었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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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14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앤두루얀의 책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과학적 지식이 없어도 술술 읽혀지게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넣었고 (지루하지 않게 편집도 잘됨)
남편의 인간적인 모습도 좋았어요
남편은 워낙 세계적인 과학자 였고 코스모스 라는 책보다 미국에서 영상물로 더 많은 대중들에 관심을 모아서 전문성을 놓고 평가하기보다
남편을 향한 아내의 마지막 헌사 처럼 읽혀졌어요.

초란공 2021-05-16 22:07   좋아요 1 | URL
저도 scott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가족이든 지인이든 한 사람을 그렇게 평생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멋진일인것 같습니다~
 
아무튼, 하루키 - 그만큼 네가 좋아 아무튼 시리즈 26
이지수 지음 / 제철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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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루키

: 그만큼 네가 좋아

이지수 지음 [제철소]

 


짤막한 독후기 - ‘아무튼, 하루키

 


아무튼시리즈는 특정 소재에 대한 애정을 지닌 저자가 해당 주제에 대해 글로 쓰는 프로젝트다. 연필 혹은 떡볶기 같은 일상의 소재들도 대상이 된다. 다만 이런 주제로 책 한 권을 써 내는 일은 대상에 대한 애정이 아니면 쉽지 않을 것 같다. 덕후가 된다는 것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아무튼, 하루키를 읽어보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무겁고 버거운 주제의 책을 읽고 난 후 집어든 책이었다.


하루키와 관련하여 한 권의 분량으로 에세이를 써낸 저자는 하루키 덕후다. 학창시절에 하루키를 읽었고, 원서로도 읽고 싶어 일본어를 전공한 사람. 물류회사, 책과 관련한 직업을 거쳐 번역가로 일한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표현 그대로, 하루키의 작품들은 저자의 삶(공부와 일)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셈이다.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그의 문장이 입에 맴도는 정도라면 진정한 하루키 덕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책으로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할 테다.


저자는 불타던 학창 시절의 연애담도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놓았다. 나는 슈뢰딩거의 파스타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과 전공자의 비애다. 대학을 졸업한지 오래되었건만.. 이런 부분에서 웃다니...(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만 웃는다.) 내가 처음 하루키를 만난 것은 대학시절일 텐데, 아마 상실의 시대였을 것이다. 책 전반을 흐르는 묘한 정서가 꽤 오래 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하루키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몇 년 전에 읽은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하루키는 성실하고 노력하는 작가다.


아무튼, 하루키에서 저자가 반려묘와 사별한 부분을 읽을 때, 한 달 전 세상을 뜬 우리 집 반려견도 생각났다. 한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집에 온 녀석은 17년을 우리 가족과 함께 했다. 나이가 들어서 대소변을 잘 가리던 녀석이 집 안 아무데나 누기 시작하고, 걷다가도 주저앉기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항상 녀석의 소변을 밟을까 조심하던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우리 가족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다가온다. 식구들이 집을 나가거나 올 때면 항상 현관에서 맞아주던 반려견이었다.


번역가로서 자신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통해 다져진 직업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매일 번역의 세계와 반려묘의 세계, 그리고 하루키의 세계를 넘나들며 분주하지만 순간순간 정성껏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밋밋할 수 있는 우리의 삶 속에서 때론 바둥거리면서도 특정 대상에 대한 애정이 먼저인 사람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었다.


누군가가 특정 대상에 대한 덕후라면, 그 대상은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있는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잡다한 지식 이전에, 그에겐 대상에 대한 사랑이 무엇보다 먼저일 것이다. 대상의 좋은 점과 부족한 점 모두를 속속들이 알고, ‘그럼에도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판단기준에 그 대상이 중심이라는 것. 만약 덕후의 조건이 이런 것이라면, 저자야말로 하루키덕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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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화판 - 권윤덕의 그림책 이야기
권윤덕 지음 / 돌베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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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화판

: 권윤덕의 그림책 이야기

권윤덕 지음 [돌베개]

 


그림책 작가의 작업 노트와 철학: '인간은 치유하며 성장 한다'

 


최근에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생겨 아내와 함께 읽게 된 책이다. 권윤덕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자세한 정보 없이 손에 든 책이었지만 인상 깊게 읽었다. 저자는 1995년 아이와의 일상을 소재로 그려낸 만희네 집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25년 이상 그림책 작업에 전념해온 작가다. 특히 작업 전반을 보다 편리한 디지털 작업이 아니라 수묵화나 불화와 같은 전통적인 도구와 방법을 계속 활용하며, 각 작업마다 표현 기법을 새롭게 탐구하면서 제한적인 조건들을 극복해왔다.


 

나의 작은 화판에는 1995년에 출간한 첫 책부터 2016년에 펴낸 나무 도장까지 20여년의 작업을 대상으로, 작가의 삶과 작업에 대한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특히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를 눈높이에서 지켜보면서, 아이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울러 일상에서부터 거대한 역사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를 표현해내기 위해 새로운 표현 기법을 시도하고 연마하는 모습도 책에 녹아있다. 물론 그 과정 자체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어린 아들과 1년 간 헤어져 중국에서 수묵화를 배우거나, 노동 현장을 취재하다가 냉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진행 과정에서 부딪히는 양상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사람들과의 연결됨을 고민하며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그림 한 장을 완성하기까지는 만만치 않게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림은 내가 익히고 느낀 만큼 그릴 수 있고, 내가 애쓴 만큼 표현할 수 있다. 내 능력과 노력을 넘어 기대하면 곧 허영이고 헛붓질이다.”(183)


 

저자는 50페이지 전후의 그림책 한 권을 만들어 내려면 관련 자료를 공부하고나 취재하고, 이를 소화하여 그림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만들어내는 데 최소 2-3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작업에 맞는 새로운 그림 기법(표현 방법)을 연구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또 여러 권의 더미북을 제작하며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고 대화하며 만들어나가는 과정도 거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책이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와 편견을 깨는 기회였고, 새롭게 배우는 점이 많았다. 이건 작업의 어려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포함한 다양한 독자가 어떻게 읽을까, 메시지가 어떻게 전달되고,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일까도 고민하는 과정도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작업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반드시 고려해야 하며 넘어야할 단계였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예기치 못하게 13년이라는 긴 호흡을 필요로 했던 꽃할머니작업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한중일 세 나라의 그림책 작가들이 평화의 연대를 위한 공동작업으로 시작되었다. 저자는 한국 그림책 작가로 참여했고, 이 작업에서는 위안부할머니들에 주목했다. 이 주제는 수많은 분들이 국가의 폭력으로 고통을 받으며 인권이 유린된 역사이기에, 그만큼 많은 고민을 요구하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어떻게 하면 개인의 일과 역사적 맥락을 연결할 수 있을까 계속 질문”(203)하며, ‘폭력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폭력을 이야기하기 위해 고민하며 작업의 방향과 나아감을 결정했다. 10년이 넘는 지난한 작업의 경험은 저자에게 ‘50년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던 경험이었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재능, 혹은 천재성이란 말은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능은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글쓰기든 창작이든) 쉽게 포기하지 않고, 창작에 대한 열정이 고갈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예술가의 재능은 단지 작품의 시장성만을 기준으로 판단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일이다. 예술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여기에 공감하는 자다. 나아가 이러한 인식을 자신의 삶 속에 녹여 각자에게 익숙한 매체를 통해 이를 구체적인 대상으로 재현해내는 이들이다. 사회의 규범 속에서 살아가는 대중들이 외면하기 쉽거나 미처 인지하지 못한 삶의 진실들을 캐어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대중은 그 속에서 보편적인 경험과 진실을 발견하고 공감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역할을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의 삶 자체가 이미 하나의 예술작업이라고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가 아이들과 책읽기 수업을 할 때, 만나게 되는 아이들에 대한 시선이 좋아 이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마음이 아픈 어린이 뒤에는 상처로 가득한 부모가 있었고, 그 가족 뒤에는 개인의 힘으로 뛰어넘기 어려운 사회구조가 막아서고 있었다.”(250) 고통과 상처를 경험했던 사람이 다시 타인, 특히 자녀에게 이러한 고통을 전가하는 사례는 흔히 발견된다. 이런 문제가 개인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회구조적인 문제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데 저자는 주목한다. 그 역시 작업을 하면서 본인의 아픈 과거를 새롭게 마주한다. 더불어 개인과 사회의 관계, 개인과 개인의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고 이를 형성해나가기도 한다. 이 점은 넉넉하지 않은 부모의 노동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해 방치되다시피 하는 아이들, 그리고 이 상황에 죄의식을 항상 갖고 살아가야만 하는 부모들을 만나 함께 이야기와 고민을 나눈다. 이 때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데, 서로가 이어지는 모습이 푸근하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림책은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어른이 되어 늦게나마 그림책이 지니고 있는 힘을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



"어린이는 나름 나름의 기질과 재주를 가지고 태어난다. 각자 그것을 밑천 삼아 사회 안에서 서로 보완하고 어울어지면서 저마다의 행복과 의미를 찾아간다. 사회의 기존 가치나 질서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화해해 가면서, 새롭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 P96

"사실 그런 주제를 끌어가는 힘의 원천은 나의 간절함 외에 다른 것은 없다. 달리 말하면, 이 사회에서 나가떨어지지 않겠다는 절박함이 내게 있었다." - P156

"처음에 그림책을 구상할 때는 소박한 발상에서 출발한다. 취재와 스케치를 거듭하면서 종종 그 발상이 너무 보잘것없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려면 거듭해서 질문하고 좀 더 깊이 탐색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 P187

"그림책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 P217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구나, 사랑받으면 덜 아프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P248

"‘저 사람만 없애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자신과 타자를 폭력적으로 구분 짓기 시작한다. (...) 그리고 없애야 할 적이 만들어지는 순간, 사람들은 그 대상에 대해서라면 아무리 잔인한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P291

"가해자임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일은 부단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자기가 놓인 구조를 의심하고 되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새롭게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이제껏 당연시되어 온 폭력을 멈추게 할 힘이 깃들어 있다."

- 심아정,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자료집>, 2018, 61-62면에서 재인용 - P326

"법은 긑이 없고, 법은 한 곳에 집착되어 있지 않으니, 이미 집착된 법과 기술을 깨트려 나가야 한다." 전통으로 이어져 온 법을 익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만, 그 법을 깨트리는 단계에 이르러야 새로운 그림,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 중국 화가 자유푸(1942- )의 화집 서문의 글귀에서 재인용함.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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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07 0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희네집 우리집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이 봤던 책이네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같이 그림책을 보는게 너무 좋았었는데 아이들이 크고 나니까 일부러 찾아서 읽어지지는 않는게 좀 아쉬워요. 좋은 그림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그림책을 만드는 분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저도 한번 읽어보고싶네요.

초란공 2021-05-07 08:38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자녀분들도 각별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