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다. <목로주점>의 주인공 제르베즈는 20여 년의 시간 동안 인생의 절정과 몰락을 모두 경험한다. '사실주의 소설'이라 분류되는 이 소설은 무일푼으로 시작하여 세탁소 주인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듯했던 가난한 여인의 인생 몰락과정을 너무도 우울하게(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이 소설 전반을 지배하는 이 실존적인 우울함은 주인공 제르베즈의 체념섞인 탄식에 가감없이 담겨있다. 

"야! 이놈의 인생은 아무리 욕심없이 살아도 소용이 없네!"(<목로주점> 제2권)

반전이란 것도 없이 가난 속에서 술과 본능적 욕구의 유혹으로 끝도 없이 몰락의 길로 접어들어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반면 저자인 에밀 졸라는 <목로주점>이 대중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어 파리 근교 메당이라는 곳에 집을 구했다고 한다. 가난한 이들의 삶을 이야기로 삼아 경제적인 여유를 얻게된 것이다. 그러니 아이러니하다는 말이다. 


<목로주점>의 시대적인 배경은 1840년대 말에서 1860년대 말이라고 하니 주인공 제르베즈가 1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의 20 여년 간 한 여인이 겪는 기구한 세월을 그리고 있다. 아울러 이 시기는 산업혁명의 도래 이후, 새로운 경제구조의 영향이 소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손을 직접 움직여 일하던 공장의 모습에서 불평하지 않고 24시간 일할 수 있는 기계의 등장으로 노동력이 불필요해지기 시작하던 사회의 모습이 소설의 구석구석 드러나고 있다. 소설 속의 한 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래요! 이놈(리벳만드는 기계)이 우릴 쫓아내게 될 겁니다! 뭐, 더 시간이 가면 모든 사람의 행복에 기여할 수도 있고요."

이 말은 당대에 살던 사람들이 공유하고 느꼈을 법한 '기계의 도입으로 노동력이 점점 불필요해지고 소외되어가는 사회의 모습'을 잘 포착해내었다. 반면 서양의 합리적 전통의 반영으로서 도구의 발명과 개선을 추구하는 미래낙관적인 시각도 일부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인 <목로주점>은 독특한 역할을 해내는 곳이다. 하루살이 노동자들이 2주치 급료를 받아 술로 탕진해버리며 인간의 고달픔을 달래주는 공간인 동시에, 사람을 타락시키고 몰락할 여지를 마련해주는 공간으로서 매우 아이러니하고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도시가 변하고 가난한 이들이 도시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인간의 조건을 묵묵히 지켜보는 곳으로서 공간이기도 하다. 주인공 제르베즈의 남편인 함석공 쿠포가 입에 술을 대기 시작하고 몰락을 예고하는 곳이다. 아울러 제르베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폐쇄된 병원과 도축장을 지나)거리를 배회하며 '죽음'의 이미지에 둘러싸인채 한 때 남편 쿠포와 술 한 잔을 들이키며 몰락을 예고했던, 하지만 행복했던 기억을 담고있던 장소이기도 하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은 사실주의 소설답게 너무나 암울한 분위기를 전달하기에 수월하게 읽힌 소설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전반적인 분위기와 삶의 조건은 어느 학술적 연구보다도 더 분명하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의 도시 주변부로 밀려나버린 숙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도시 하층민의 삶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내가 보기에 생소한 '인간조건'만은 아니었다. 지금도 여전히 삶의 근본적인 양상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4차 혁명으로 이야기되는 새로운 인간의 조건은 한 번 더 우리 인간을 위해 기능할 것인지, 아니면 한 차례 더 인간을 '소외'시킬 것인지 궁금해진다. 어떤 점에서보면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이 인간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섬뜩한 생각도 해본다. 결국 어떠한 결론에 이르더라도 '몰락의 독주'를 마실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목로주점 1>
(190면)
"쿠포는 제르베즈를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제르베즈도 체념했다. 빨래 더미 때문에 가벼운 현기증이 일면서 머리가 멍했고, 술냄새가 밴 쿠포의 숨결도 싫지 않았다. 직업상 주어진 더러움 한가운데서 주고받은 이날의 진한 키스야말로 두 사람의 삶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첫 추락이었다."

<목로주점 2>
(190면)
"야! 이놈의 인생은 아무리 욕심없이 살아도 소용이 없네!"
- 제르베즈의 탄식

<목로주점 2>
(284면) 장의사 바주즈 영감이 죽은 제르베즈를 관에 넣으며 하는 말
"내 말 잘 들어...나야. 부인네들을 위로해 주는 비비라게테지...자, 이제 행복할 거야. 아름다운 그대, 이제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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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만들어진 성 - 뇌과학이 만든 섹시즘에 관한 환상과 거짓말
코델리아 파인 지음, 이지윤 옮김 / 휴머니스트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만들어진 사회, 그리고 인간의 가소성

                                    - <젠더, 만들어진 > 읽고

 

안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는 기억으로부터 어릴적 경험

     어렸을 우리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누나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우리 집에는 피아노 소리가 자주 들리게 되었다. 내가 6 즈음의 일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누나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바쁜생활을 하는 동안 누나를 괴롭히며 빈둥거리던 나에게 부모님의 관심이 모아졌던 모양이다. 피아노 학원에 가보라는 어머니의 권유에 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는데,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당시에 피아노는 여자들만 연주하는 악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빈둥거리는 남자아이라도 나의 생각에 피아노는 남자인 내가 연주해서는 안되는악기였던 것이다. 피아노 학원에 가서도 또래의 여자 아이들과 누나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느꼈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질문은 내가 오래도록 지닌 아마도 가장 오래된 궁금증이었으며 풀리지 않을 숙제였다. 그리고 당시 어린 내가 느꼈던 수치스러운 감정은 이후 30년이 훌쩍 지나도록 아직도 느낄 있을만큼 안에 분명히 각인되어있다.

 

     실험 심리학자 코델리아 파인의 저서 <젠더, 만들어진 (Delusions of Gender)> 읽으면서, 피아노 학원에서 자신을 부끄러워하던 어린 이해할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다. 책에는 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면서 얼마나 많은 성구별적문화 코드로 둘러싸여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나아가 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 아이의 성별을 알게된 부모가 아이에게 갖는 기대의 유형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고 있다. ‘여아=분홍색’, ‘남아=파랑색 같은 전형이 이름표나 담요, 등부터 아이가 뱃속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묘사하는 언어까지 노골적으로 유형화되어있음을 알게되었다. 일단 아이가 태어나면 성구별적환경의 무차별적인 세례를 받는다. 저자의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성에 대해 상식처럼 알고 동의하게 되는 사항들 예컨대 남자와 여자의 대화법이 다르다는 일종의 모태신앙과도 같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있음을 있다. 나아가 저자는 대한 고정관념이 가장 강한 시기가 보통 5-6 때라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 이는 내가 6 즈음 피아노를 배우고 연주하는 일이 부끄러운 이라고 느꼈던 경험이 나만의 특수한 사건이 아님을 말해준다. 저자가 하나의 () 제목으로도 사용한 성평등은 집에서 시작된다 문구는 성구별적 세상에서 성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기를 있는 곳은 바로 가정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만약 내가 어려서부터 보다 주의깊게 이러한 편견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피아노를 좋아하고 즐길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사례는 피아노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인간의 삶에 평생 영향을 있는 가치관의 문제에도 연결될 있다. 성인이 지금까지 내가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린 수많은 결정들도 어쩌면 나를 둘러싸고 있던 이러한 성구별적환경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학습 견해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성차별 선진국으로서의 미국

     책에서 발견하게 사실 하나는 미국 사회가 얼마나 성차별적 문화를 만드는데 있어 선진국이었가 하는 점이다. 성차별과 관련한 편견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남자는 수학 과학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학문에 능한 반면, 여자는 상대방에 공감하는 일과 종합하는 일에 능하다 것이다. 이러한 성별 차이를 부각시키고 정형화하기위해서 미국내 최고의 지식인들이 여성의 열등한 특성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던가를 깨닫게 되어 놀랍다. 미국이라는 사회는 백인 남성에 의해, 백인 남성을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성차별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대학의 컴퓨터공학과에서 공부하는 여학생 비율을 국가별로 비교한 통계가 매우 흥미롭다. 저자가 제시한 통계자료를 보면, 3세계 국가에서 컴퓨터공학과의 여학생 비율은 50% 상회하는 반면, 유독 미국에서 15%수준에 불과했다. 사실은 미국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성구별적사회심리 구조가 얼마나 포괄적으로 남녀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단서를 제공한다. 좀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19세기 하버드 의대 교수였던 에드워드 클라크는 여성의 열등한 특성을 의학전문가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여성의) 지적 노동은 난소에서 뇌까지 위험할 정도로 맹렬하게 에너지를 보내 생식력을 위험에 빠뜨리고, 의학적으로 심각한 다른 질병들을 야기한다.그러므로 여성이 열등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리학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남성의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노력은 그나마 유식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지식인층에서 여성과 남성의 뇌크기 차이 가지고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던 사실을 알게되면 더욱 경악하게 된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국내 최고의 지식인들(백인 남성들로 구성된 집단) 의해 남녀의 성차별적인 인식이 계획적이고 정교하게 형성된 사회임을 보여준다. 나아가 책은 인간이란 존재는 모순적으로 얼마나 쉽게 사회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있는지,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형성된 행동을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남녀 사이의 생물학적인 차이를 가지고 여성의 열등함을 주장하는 충격적인 사례들은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사라진 반면, 자리를 신경과학의 뇌촬영 영상이 대신하게 되었다.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PET(양전자 단층촬영)로부터재구성 뇌의 활동부위 스냅사진들은 여성과 남성의뇌기능의 차이 분명하게 보여주는데이용되고있다. 여기서 이용이라고 이유는 과학장비로 측정된 신경과학적 결과와 실제 남녀의 행동의 차이를 연결해주는 심리적 해석이 매우주관적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측정 데이터를 해석하는 있어 수많은 가능성을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여과하고 선택하여 의미를추출하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로부터 측정한 단순한 전기적인 신호를 다시 심리적 원인으로 환원하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할 있다. 따라서 앞으로신경과학에서 보여주는 뇌활동의 남녀 차이를 제시하며그러므로 남녀가 다르게 행동한다라고 주장하는 연구가 있다면, 우리는 연구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여성과 남성의 다른 선천적인 차이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하버드 대학 인지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 있다. 핑커도 앞에서 19세기 여성의 신체적 열등함과 지적 열등함 언급했던 하버드대 교수 에드워드 클라크 견해와 크게 다를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티븐 핑커 신경과학의 결과를 언급하며 좀더 고도화된 자료와 언어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장비로부터 측정된 수치와 지표만으로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해석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가치중립적이라고 여겨지는 과학의 연구결과가 이를 다루는 ‘(백인)남자 전문가 집단 의하여 어떻게 남녀 차이를 지지하는 견해를 공고히 해주고 있는지 살펴볼 있었다.       

 

 

     저자인 코델리아 파인은 책을 쓰게 동기를 책의 중간에서 다음과 같이 슬며시 내비친다.

뉴로섹시즘(신경과학이 만들어내는 성차별) 고정관념의 손상, 한계, 잠재적 자기 성취를 촉진한다. 3 나는 아들의 유치원 선생이 아들의 뇌가 감정과 언어를 연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책을 읽는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254)

 

     책에서는 40 자신의 아이가 성차별적 문화에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던 심리학자 부부를 언급한다. 부모는 아이가 보는 책을 보고 성차별적인 신호가 보이면 지우거나 수정하고, 가정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동일하게 나눠 하도록 노력했다. 코델리아 파인은 부부들과 같은 노력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보는 책이나 교육과정에서 평등한 성교육을 방해하는 문화적인 신호들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나는 이들 전문가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환경이 우리를 얼마나 은밀하고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가까운 예로 나의 조카를 떠올려본다. 조카는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부모들이 걱정할 정도로 변신로봇류를 좋아하던 여자 아이였다. 그런 조카가 어느 순간 로봇을 집어던지고 분홍색과 공주 코드에 집착하는 것을 보았을 , 당시에는 나도 여자 아이니까하고 인정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젠더, 만들어진 (Delusions of Gender)> 나의 이러한 고정관념을 보기좋게 깨주었다. 모든 급격한 변화가 성호르몬 영향 때문이나 생물학적-선천적으로 다르게 배선된 뇌구조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성차별적환경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여성들이 자신들은 여자라서 수학을 못한다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되면 이것은 사회에 형성된 편견의 영향을 받은 개인이 그렇게 선택한 이라는 나의 막연한 견해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당연히 어느 집단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마취 작용과 같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말은 여성과 남성사이에 해부학적/생리학적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차이는 특정 분야의 지적 성취와는 무관하다는 ,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성들이 보다 선호하는 이유는 사회심리학적인 편견의 결과라는 뜻이다. 테스토스테론이라는 성호르몬에 의해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생리학적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차이가 어느 집단의 우열을 가리는 문제와는 무관한 일이다. 이것은 어떤 근거를 선택하여 주장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일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저자가 여성과 남성에게서 보이는 차이(행동의 차이든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된 차이든 혹은 뇌구조의 차이든)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는 같다는 점이다.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아 반론의 여지가 있는 점들을 사소한 차이라고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타인의 실험과정 결과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잘못 해석될 가능성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반면 내가 저자의 연구에서도 파고들어 의문을 제기한다면 명확한 대답을 얻기 힘들만한 부분이 보인다. 저자는 부분에 시간을 따로 할애하지는 않은 것같다. 오히려 저자가 여러 연구들에서 보이는 사소한 차이 무시하기보다 여기에 주목하고, 다른 연구자들의 편견에 의해 잘못 해석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저자라면 남녀간의 사소한 차이 무시하고나 덮어두는 것보다, ‘인간의 여성과 남성은 이러한 사소한 차이에도이러한 차이가 여성과 남성의 지적 성취 우열을 구분하는 근거가 되지 못함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등 의미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 중에는 양성평등 의미를 되묻게 하는 상황을 여러 맞게 되었다. 과연 평등 의미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던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평등 의미를 물을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50:50으로 역할이나 몫을 분담하는 기계적이고 산술적인 평등 의미만을 막연히 주장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잣대로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심지어는 고통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 모든 직업 분야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기회와 일자리를 배분해야한다라고 주장한다면 차체만으로도 많은 문제를 불러올 있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평등이라는 것은 기계적 산술적 평등 의미로 한정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이후, 혹는 산업혁명 이후 변화된 인간의 조건 우리가 현재 인식하고 있는 평등 의미가 연관되어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볼 있다. 예컨대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기회 주는 경제적 평등 생각해봄직하다. 오히려 경제적 관념이 반영된 평등 여성과 남성에게 대등한 기회를 부여하고 있으므로 자체로 이상적으로 보일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 모든 분야에 적용되면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생리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과연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할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볼 있겠다. 이는 분명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문제를 안고있다. 남성이 여성처럼 임신할 없는 생물학적인 문제에도 여성에게 동일한 노동의 강도를 요구하거나, 휴가없이 남성과 동일하게 일을 강요하게 된다면 이것이 공평한 문제인가 반문해볼 있다. 따라서 평등이라는 말을 우리가 사용할 , 보다 주의를 기울여 개념이 적용되는 상황을 민감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는 동등한 경쟁자로서 인식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기계적이고 산술적인 평등 신조를 서로에게 강요하게 (예컨대 명문화된 규정이나 등으로 강제력을 띠게 ), ‘평등 의미가 부여할 있는 폭력성 대해 생각해볼 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윤리적인 판단을 필요로할 , 상황을 둘러싼 환경과 이와 연관된 사람들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야하는 것처럼, 평등의 개념을 현실에서 적용할 보다 유연하고 상대적인 가치를 염두해두어야 것이다.        

 

 

  만들어진 , ‘젠더 의미에 까까워진 기회

     책을 읽게 되면서 젠더 의미에 대해 눈길을 주게 되었다. ‘젠더 단순히 여성과 남성을 나누는 대체물이 아니라 사회학적으로 의도된 결과임을 깨닫는다. 페미니즘의 방향이 앞으로 어떠해야하는가라는 문제는 너무나 근본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복잡한 문제다. 그만큼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의 전반에 이들 모든 문제가 관여되어 있으며, 해결의 실마리도 우리의 전반에서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파멜라 스톤 여성들이 경력을 단절하고 가정으로 향하는 진정한 이유는 가정 성불평등 때문이다."라고 말한 점에 공감하며 다시금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떤 문제가 우리의 전반에 배어있다면 문제는 일상에서, 좀더 구체적으로는 가정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있겠다. 나아가 새로운 방향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실천해나가는 것으로 시작해볼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과 남성이 서로에 대한 생명을 붇돋아주고 존중하기 위해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정 내의 성불평등은 부부가 설겆이를 50% 나눠하거나, 청소 구역을 절반 나눠하는 문제를 넘어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가짐을 갖는 그리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나가는 것이 더욱 근본적인 출발점이 있을 것이다. 나는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인간이 타인 주변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형성되어가는 섬세한 존재임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동기

"뉴로섹시즘은 고정관념의 손상, 한계, 잠재적 자기 성취를 촉진한다. 3년 전 나는 내 아들의 유치원 선생이 아들의 뇌가 감정과 언어를 연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책을 읽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254면)

1장 시작부분 - 성전환자 Jan Morris의 말 인용

"여자 대우를 받을수록 나는 더 여성스러워졌다. 싫든 좋든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차를 후진시키거나, 병마개를 따는 일에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나는 그 일에 서툴러졌다. 알수 없는 일이지만, 사람들이 내가 들기엔 상자가 너무 무거울 거라고 하면 실제로 상자는 무거웠다."

"나는 광대하다. 내 안에는 다수가 존재한다." (월트 휘트먼의 말)
- 심리학에서 개인의 다양한 자아 중에서 선택된 특정 자아를 일컫는다. 활동자아(active self)는 매 순간마다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하는 역동적인 카멜레온에 가까운 자아이다.(1장 참조)

*사회학자 파멜라 스톤의 말(7장 참조)

"여성들이 경력을 단절하고 가정으로 향하는 진정한 이유는 가정 내 성불평등 때문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말(7장 참조)

"남성도 부모이긴 마찬가지이고, 실제로 남성이 집안에서 동등해지기 전까지는 여성이 집 밖에서 동등해지는 일은 절대없다."

"당신의 딸이 여성적 방식으로 세상을 접하는 건 당신의 딸이 가진 소녀의 뇌 때문이다."(10장 참조)

*거리언 연구소에서 출판한 <It‘s a Baby Girl!>(2009)에서 인용한 문구. 이 저서는 여성과 남성이 다른 뇌 구조(생물학적, 선천적 차이)로 인하여 남녀 행동의 차이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후천적,문화적 영향에 대한 고려를 무시하고 있다.

*영장류 학자 프랜시스 버튼의 견해(11장)

"영장류의 태아기 호르몬이 그 개체가 태어나 속하게 될 특정 사회에서 자신의 성에 맞는 행동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

- 곧 이 말은 성별에 따른 다른 행동 양식은 선천적인 영향(호르몬 등의 영향)에 의한 문제에 결정적인 영향이 있는 것보다 사회심리적 영향이 매우 지대함을 암시한다. 유전자가 남녀로 하여금 수학을 좋아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인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또 다른 영장류 학자 윌리엄 메이슨의 견해(11장)

"부모 행동에 대한 설계는 유아기에 이미 존재하고, 양성에서 동일한 형태로 나타나며, 평생 계속해서 드러난다. 그러나 유아에 대한 관심은 성에 따라 나누기 시작한다."

- 여기서 엿볼 수 있는 점은 ‘부모 되기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되어 평생 영향을 주고있다는 점인 반면, ‘유아에 대한 관심‘은 호르몬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성차별적인 생물학자의 견해 - 조지 로매니스(George Romanes)

"여성의 뇌 무게가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140그램 더 적다는 점을 보면, 단순히 해부학적 기반을 가지고도 여성의 지적 능력의 열등함이 뚜렷하다는 걸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여성의 일반 체격은 남성보다 튼튼하지 않다. 따라서 심각하거나 오래 지속되는 뇌 활동에서 오는 피로를 더 견디기 힘들 것이므로, 생리적 바탕을 가지고도 유사한 에측이 가능해야 한다. 실제 사실을 가지고 보면, 여성에게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데에서 그 열등성이 가장 눈에 띄게 드러나며, 이는 특히나 더 고도의 지적 작업에서 더 확연하게 나타난다."

- 사회에 영향력을 가진 지식인이 의도한 성차별적 구조를 만드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을지 생각해볼 수 있다.

*하버드 의대 교수 에드워드 클라크의 견해(14장 참조)

"(여성의) 지적 노동은 난소에서 뇌까지 위험할 정도로 맹렬하게 에너지를 보내 생식력을 위험에 빠뜨리고, 의학적으로 심각한 다른 질병들을 야기한다."

*교육운동가 레너드 삭스의 견해(15장)

"남녀 뇌의 발달 차이를 무시한 교육 과정은 글 못쓰는 남자아이와 자신들이 ‘수학바로‘라고 생각하는 여자아이를 만든다."

-남녀의 차이를 부각시켜 교육을 성별에 따라 다르게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교육가들의 발언으로서, 남아를 ‘글 못쓰는 인간들‘, 여아를 ‘수학바보‘라고 미리 구분지어 놓고 이에 따른 차별 교육을 ‘맞춤 교육‘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범하게 되는 순환오류이다.

*남여에 따라 다르게 성유형화된 부모들의 기대(17장)

- "전 제 아들에게 농구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야구하는 법도 가르치고 싶습니다."
- "여자아이라면 예쁜 옷을 입혀 주고 인형을 사주고 무용 수업을 받게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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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그리고 고발 - 대한민국의 사법현실을 모두 고발하다!
안천식 지음 / 옹두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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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그리고 고발>

안천식 지음 | 도서출판 옹두리

 

 

편의 소설같은 일들이 대한민국의 어느 구석에서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다. 대기업의 무모하고 정정당당하지 못한 소송으로 개인의 기본권이 무참이 짓밟힌 사례를 나는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읽어내렸다. <고백 그리고 고발> 변호사인 저자가 10 겪었던 사건의 전말을 담고 있다. 대기업과 개인사이에 있었던 부동산 관련 계약에 얽힌 사건이었다. 대기업은 부동산 매매 계약서를 위조하고 개인의 막도장을 만들어 해당 위조계약을 체결하여, 값에 개인의 땅을 사들였다. 나아가 소송에서 회사에 직접적으로 적을 두고 있는 혹은 이익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을 증인으로 세워 위증하게 하였다. 여기까지 벌어진 일들은 분명 흔히 들어본 일들일 것이다. 그러나 사건들을 취급하는 법원, 판사들의 행방을 보면서 법을 모르는 일반인의 눈으로 봐도 형평성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일들이 어떻게 벌어질 있는지 보게 되었다.

 

보다 간단히 이렇게 정리해보자. 만일 여러분이 시가 40억원의 땅을 갖고 있는데, H건설과 같은 대기업이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고 여러분의 땅을 매입하는 계약서를 작성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H건설이 매매계약서를 위조하여 9억원 정도의 금액만 지불하고, 계약이 완료되었다고 공표한다. 소유주인 여러분은 물론 당연히 황당해하며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지지부진한 공판 과정에서 대기업은 문서를 위조하고, 자기 사람을 증인으로 만들어 위증을 하게 한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번번히 위증하는 증인의 말만을 증거로 인정하여 여러분의 권리를 짓밟는데 아무런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기간이 길어진 만큼 H건설은 건물의 철거가 H건설에 있는데도, 다시 계약서를 위조하여, 건물주가 아닌 여러분에게 철거의 책임을 떠넘기고, 다시 3억원의 돈을 가로 채었다. 그런데도 H건설은 자신들의 전관 변호사, 대형 로펌의 법률가를 대동하여 모든 소송에서 승소한다. 무리한 H건설의 소송으로 자신의 재산을 지키지 못한 법률에 무지한 사람은 자살하고, 여러분은 희귀한 불치병에 걸려 몸과 마음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다. 여러분은 어디 하소연할 없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사회의 루저가 된다고 상상해보라. 바로 이런 일이 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주 단순히 정리해본 것이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일이…’

다시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우선 책을 읽으면서 나는 사람(저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가하는 생각이 정도였다. 책의 후반에는 숱한 재판과 기각, 증거 수집을 하는 고생을 결국 승소를 알았는데, 맥이 풀렸다. 대한민국의 사법 환경에서 이런 기대에 부합하는 소송이 있을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여기 책에는 10 18차례 계속 패소한 패소 전문 변호사 경험한 사법 현실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저자가 제출한 상고 사유서에 대한 법원의 대응(주로 재심 기각, 증인 신청 기각 ) 보면서 뭔가 이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도 언급하고 있듯이 법원과 변호사 사이의 소통자체가 되지 않는, 아니 이를 거부하는 듯한 법원의 행태에 젊은 변호사로서 저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마도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소통 방법은 상대방 주장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와 답변의 생략인 합니다.”(355) 저자의 당황스러운 감정과 회한에 듯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답답한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법원의 존재이유를 고민하며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이론을 언급한다. 몽테스키외는 국가 권력을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나누되 재판권이 입법권과 행정권으로부터 분리되어있지 않을 시민의 자유는 존재할 없다라고 사법독립에 관해 언급하였다. 우리의 사법 독립은 과연 가능하기나할지 의구심만 든다.

 

책을 읽는동안 자세한 법률 용어와 표현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사건과 판결문의 대의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아니 글을 이해할 있었지만, 벌어진 실제 사건을 도저히 이해할 없었다. 증거를 착실히 수집하여 추가하고, 법리를 연구하고, 논문을 섭렵하는 변호사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한 이의 외침에 법원은 그저 회피와 침묵, 거절로 화답한다.   

 

나는 여기서 학창시절 모범생으로 성장하여 좋은 대학을 나오고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힘들게 공부하여 판검사 변호사가 되어 권력과  기업의 이익을 위해 기여하는 전문가들이 어떻게 태어날 있는지 가능성을 또한 보게 되었다. 다시 정리한다. 안천식 변호사의 <고백 그리고 고발> 등장하는 10 년간의 재판 과정은 대기업과 법원이 어떻게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유린하며 약탈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막중한 권한은 직간접적으로 국민이 부여한 권한이라 있다. 따라서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책임이 있다. 저자의 언급대로 법관은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의무 있다. 그러나 책에 소개된 법원의 대응을 보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판결 사유를 공공연하게 발표할 있을지 의문이 들게 한다. 고등법원, 대법원의 판사들이 일관되게 대기업에 의해 매수라도 당한 것일까? 아니면 법원에서의 일처리 관행이 이렇게 이어져내려오는 것인지? 사실 어떤점에서보면 특정 판사가 매수당하는 경우보다 이러한 일처리 관행이 존재한다면 점이 문제이다. 하급법원의 공판 결과를 상급법원에서 크게 고민을 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 관례인 것일까? 끝없는 의문이 든다.

 

시민의 기본권, 시민의 자유는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당연한 생각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법을 다루는 전문가로서 법률가들이 기타 시민의 위에 군림하기 때문이다. 헌법으로 보장된 권한과 책임이 하나의 권력이 되면서 사법권의 독립성 마저도 크게 손상을 입은 것같다. 대한민국의 법원 법률가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배경을 살펴보는 데에는 한홍구 교수의 <사법부> 김동춘 교수의 <대한민국은 ?> 읽어보면 좋을 같다. 책들을 통해 대한민국 지식인의 근원을 이해할 있고, 특히 사법부의 역사와 체질을 좀더 자세히 이해할 있으므로 겹쳐 읽기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좀더 면밀히 파악해볼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고백 그리고 고발> 속편 <찢어진 통장> 나온다고 한다. 책들은 시민들 뿐만 아니라 법을 다루는 법조인들이 읽어보고 고민해봐야할 문제들을 담고있다.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군복무시절(태평양 전쟁 당시) 폭격기를 조종하며 당시에는 자신이 투하한 폭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삶을 짓밟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상에서 폭격을 당해 가족을 잃고, 사람들의 터전이 사라진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자신이 일이 어떤 의미를 가졌던 것인지 반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사법 현실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볼 있다. 법관들은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만든 체계인 어떻게 사람의 삶을 파괴할 있는지, 파괴력을 분명히 사례에서 살펴보고 고민하고 반성했으면 한다.  

 

  

프롤로그에도 언급하지만, 저자가 10여 년 간 쓰라린 경험을 한 후, 이를 '가슴속에만 묻어두기에는 너무도 서럽고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속내를 드러내었다.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사법연수원에서 연수를 받은 후 젋은 변호사로서 개업을 하며 맞닥드렸을 대한민국의 사법 현실을 저자는 자신의 세포 하나 하나에 각인해두었을 것이다. 그 수많은 말들을 가슴에 묻고 저자는 다음과 같은 한가지 당부를 덧붙이며 끝내고 있다.

 

사법부가 국민의 믿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며,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04)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지난 10여 년간의 쓰라린 경험을 한 사람의 가슴속에만 묻어두기에는 너무도 서럽고 안타까운 일이었고..." (프롤로그)

"국민들의 사법불신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단지 법에 대한 무지 때문일까?"(227면)

"현실도 모르면서 혼자서 진실을 밝혀보겠다고 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구경꾼들이 얼마나 재미있어 하며 비웃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29면)

"힘 있는 자에게는 여러모로 편한 세상이고, 힘없는 자에게는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자체가 그러한 세상이었다. 나는 즉각 검찰 항고를 하였으나 기각되었다. 기소유예도 아닌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불기소 처분이었다. 재항고를 해봐도 소용없었다." (264면)

*법원의 행태에 대한 저자의 비판

"아마도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소통방법은 상대방 주장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와 답변의 생략인 듯합니다." (355면)

"역시 그들만의 소통방법인 과감한 생략과 이유있는 항변에 대한 침묵과 무시였습니다." (375면)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이론 인용
"국가 권력을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나누되 재판권이 입법권과 행정권으로부터 분리되어있지 않을 때 시민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394면)

"법관은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의무가 있다." (403면)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가하는 당부

"사법부가 국민의 믿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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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만화판에 ‘2016 시사영화상 남우 주연상 김기춘‘이란 내용을 보니 한 해가 저물어감을 새삼 느낀다.

문득 올 한해를 정리할 말로 떠오른 표현.

˝저물어가는 병신년과 함께 하야!˝

올 한 해는 어느 해보다 개인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많은 일을 겪고 바라보느라 많이 지친 한해였다.

내년 한 해는 뭘 더 바랄 것이 남아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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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 시간 - 프루스트의 서재, 그 일년의 기록을 통해 되찾은 시간
박성민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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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시간>

박성민 지음 | 책읽는고양이

 

 

[금호동 서재지기의 창업과 1년 간의 일기]

 

손에 감기는 아담한 한권을 손에 넣었다. 책의 저자는 서점 주인으로서 소규모 독립출판물 중고도서를 판매하는 서점 루스트의 서재주인장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목에서 영감을 얻은 책의 제목과 서점의 상호는 저자를 닮은 서점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기억으로 거의 20 금호동에 고구마라는 중고서점이 있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차례 교과서나 인문과학서적을 구하곤 했던 서점이었는데, 내가 가본 중고서점 중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중고서점이었다. ‘고구마 보유하던 책이 당시에 20 권이 넘었으니까. 요즘 인기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이 보유하는 수가 평균 3-4 권이라고 , 알라딘 중고서점 매장 5-6 점에 해당할 만큼 많은 책이 있었다. 당시 고구마 마침 중고서적의 온라인 검색 시스템을 시도했던 곳이었다. 온라인 검색 시스템으로 책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해도, 실제로 책을 찾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날씬한 사람만이 지나갈 있었던 책장 사이의 더미들, 복도에 수직으로 쌓인 책을 뒤적뒤적하며 먼지를 털어내고, 마른 기침을 하며 책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런 헌책방이 많이 사라져서 서점의 오래된 책냄새를 맡을 있는 곳이 많이 남아있지않다. 물론 깨끗한 중고서점이 편하고, 검색도 편하지만 원하는 책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이와 비교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고전적인 헌책방에서 책을 구하면 종종 누군가 어느 가을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넣어둔 팔았는지, 마른 나뭇잎이 들어있었다. 누군가 책의 여백 곳에 메모해둔 흔적,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면서 말로하기 멋쩍은 마음을 글로 표현해둔 메모를 년이 지난 타인이 발견하고 미소를 짓게 되는 일은 오랜 헌책방이 아니면 이제는 경험해보지 못할 일이 것이다.

 

 

 

갑자기 이렇게 오랜 기억을 더듬어본 이유는 90 , 저자도 역시 헌책방 고구마에서 점원으로 책을 정리하며 일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언젠가 그와 나는 각자 찾는 책을 찾느라 분주히 서로를 지나쳤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분명 고구마라는 헌책방에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고구마 이전을 하면서 서점을 관두고 대형 서점에서도 여전히 책과 관련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간의 준비를 마치고, 오래 살던 금호동에 '프루스트의 서재'라는 책방을 열었다는 것이다. 나는 주인장을 처음 보고 고구마 듣는 순간 오래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던 친구의 안부를 전해 들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2015 1월에 서점 문을 처음 열고 1 간의 일기를 이번 <되찾은:시간> 모아 책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일기쓰기를 자신의 안부를 묻는 이라 말한다. 월세를 내고 14,500원의 순이익이 남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다음에 많이 팔아야겠네하며 격려해주던 젊은 날의 서점주인을 떠올리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온다. 주인장의 글쓰기는 화려하거나 산만하지 않다. 간결한 표현 속에 정제된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 드러내는 것만 같고, 사람에 대한 따뜻한  그의 글과 마음 씀씀이에 호감이 간다. 저자는 아직 개발이 늦은 동네에 조그마한 책방의 문을 , 오히려 책방의 운영을 걱정해주고, 비가 오면 내놓은 책을 비닐로 덮어주거나, 꽃을 놓아두고 가는 이들을 발견한다. 이런 사람들이 지키는 마을은 마음의 여유야 인간미가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경비원한테 막말을 하고, 심지어 자살로 까지 몰아간 강남의 어느 동네를 떠올려보면 아직 이러한 마음씀씀이가 있는 동네가 남아있다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동네에 조그마한 책방을 열고 생존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면서도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저자의 고민들이 진솔하게 책에 담겨있다. 저자는 2015 서점을 열기 , 그리고 열고 1 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자신이 뛰어든 서점의 가치,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왔을 것이다. 자신이 준비한 '프루스트의 서재' 존재이유를 주인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

 

 

나는 헌책과 새책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잊혀지거나 잊혀질 생각과 기록의 가치를 다루는 것이다. 점이 중고책과 독립 출판물이 공존하는 프루스트의서재 존재 이유다.”(63)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견지해나가려는 저자의 노력과 다짐을 느낄 있었다.

 

 

 

<되찾은:시간>에는 서재 주인이 지난 2015 1 침묵 속에서 남겨둔 기록을 보여주고있다. 단편들이긴 하지만, 일관된 저자만의 생각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을 매개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들의 사연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 공간이 되어가는 같아 다행한 마음이 든다. 나라의 인구 절반 가까이가 대도시에 모여살며 파편화되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우리는 원래 서로 잇닿아 있는존재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일을 이런 공간과 사람들이 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서로의 연대 재확인하는 일이 앞으로 필요한 일이며 과제가 같다. 서울의 서쪽 신촌, 홍대 주변에서 이러한 작은 서점이나 공방이 모여 새로운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면, 금호동과 같은 서울의 동편에 프루스트의서재 같은 작은 서점들과 공방 등이 새로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덮으며)

저자는 오늘도 자신의 안부를 묻는 일기를 썻을 것이다. 말주변은 없을지 몰라도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좋아한다는 그의 나직하고 정제된 문장을 떠올려보며, 저자의 서재가 운영되기를 바란다. 책을 읽고 덮으니 표지에 그의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닮은 정제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책은 사람을 이어준다.

 

 

결국 책이란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사물이므로 사람을 이어주는 책이야 말로 기능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되찾은:시간> 서점 곳을 알게해준 책뿐만이 아니라, 서재지기와 다른 사람들을 이어줄 것이다. 조만간 주인장의 안부를 물으러(사실 그가 내려주는 커피 얻어마시러) ‘프루스트의 서재 다시 들러볼 예정이다.

 

 

 

 

 

 

 

"나는 헌책과 새책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잊혀지거나 잊혀질 생각과 기록의 가치를 다루는 것이다. 이 점이 중고책과 독립 출판물이 공존하는 ‘프루스트의서재’의 존재 이유다."(63면)

"책은 사람을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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