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 마음을 지키는 중국 그림의 힘
김선현 지음 / 자유의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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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中心

: 마음을 지키는 중국 그림의

김선현 지음 | [자유의길]

 

 

우리는 회화라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서양의 그림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대학의 서양화과 커트라인이 동양화과보다 다소 높은 경향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서양의 예술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차지하는 위상은 동양의 예술과 대등하지 않아 보인다. 이런 모습들은 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를 바라보는 우리가 어쩌면 중심(中心) 있지 않기 때문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우리 삶의 모습들은 그럴만한 원인이 분명히 있으며, 어떤 대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이러한 현실에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림에 관한 도서라면 서양화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그리고 수묵화와 같은 전통 동양화가 아닌 동시대 중국 예술가들의 작업은 어떨지 궁금해본 적이 없었던 같다.

 

이번에 만난 도서는 현대 중국 예술가들의 작업을 소개해주고 있는 국내 저자의 책이다. 저자인 김선현 교수는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치료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문가이다.   그림을 통해 상대방의 심리 분석과 치료에 접근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자가 연구를 위해 교환교수로 해외로 나갈 기회가 생겼을 , 미국이나 호주와 같은 의료 선진국이 아닌 중국을 선택한 것도 오늘 만나게 책의 출발점이 되었을 것이다. 발달한 의료 장비나 기술을 보고 배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급속한 변화로 중국인들이 겪게되는 트라우마와 심리 상태를 연구하기 위해서라는 저자의 간결명료한 선언을 만났을 , 책이 한번 달리 보였다. 책에는 중국을 대표하고 있는 현대 작가 30인과 그들의 작업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중국과 한국을 수십 오가며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가들 만나서 친분을 쌓고 이들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결과가 바로 이번에 읽게  중심 (中心)이다.

 

책의 제목은 다의적이다. 저자는 중심(中心) 의미를 마음을 굳게 흔들림 없이 자신의 삶을 바로잡고, 정성을 다해 자기 인생의 줏대를 든든히 지키는 이라고 풀이한다. 문장 어디에도 가운데 의미하는 표현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흔들림 없이 자신을 지키는 방점이 있다. 친척분이 지어주신 호에도 ()’자가 하나 들어가는데, 여기서 ()’ 천하의 근본이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이해했다. 호에 적용된, ‘()’ 나의 본질, 나의 참모습 나아가 세상의 근본이라는 맥락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므로 내게 중심이란 의미는 세상의 근본을 향한 마음이라고 하면 너무 멀리 나간 것일까? 여기에는 자신의 삶을 바로잡는 균형감각 의지 내포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여기에서 나아가 저자는 중심을 중국인의 마음으로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의미는 창작자가 예술행위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의식을 결과물에 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 창작자들이 속한 공동체의 보편성을 담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난 , 나는 동시대 중국 작가들의 고뇌와 감정의 표현물을 통해 나와 다른 문화에 살고 있는 이들의 생각과 공감을 아울러 발견할 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현대 중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이룬 요소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현대 중국 작가들의 작업과 배경을 보면, 공통적으로 가지 특유한 경험들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현대 중국인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은 문화혁명 천안문사태 정리된다. 여러 작가들은 어린 시절 문화혁명 모습을 몸소 체험했다. ‘대머리 건달들 주제로 여러 그림을 그렸던 화가 팡리쥔이 겪은 중국 현대사의 모습은 시대성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개인들에 대한 문제를 절실히 보여주었다. 다섯 살에서 다섯살까지 겪은 문화혁명시절에 대지주였던 자신의 할아버지가 이웃사람들 앞에서 인민의 이라는 비난과 저주의 함성 속에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 그리고 천안문 사태현장에서 총을 맞고 피흘리며 죽어간 친구들을 보았을 작가가 받았을 충격과 혼란은 그에게 평생 지울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다. 그는 생존했지만, 대신 평생 거대한 중국 현대사가 남겨준 생채기를 몸에 기억으로 남겨두었을 것이다. 등장인물이 모두가 대머리인 남자의 힘없어보이는 혹은 생각이 많아 보이는 뒷모습, 하품을 하는 대머리 남자의 무기력한 모습은 오히려 이러한 표현 자체가 작가의 감정과 의식의 강렬한 표출임을 느끼게 해준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겪었던 경험과 유사한 것도 있다. 바로 산업의 발달로 인한 도시 인구의 증가 현상이 그것이다. 나라의 산업화가 국가주도적인 성격을 띠게 더욱 두드러지는데, 농촌의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하여 도시의 가난한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곤 한다. 이런 모습은 중국 뿐만 아니라 산업 혁명 이후 산업화의 영향이 미친 전세계 어디에서나 있는 현상이다. 우리의 경험도 다르지 않다. 화가 쑹이거의 <부츠 > 그린 그림이나, 류쿵씨가 그린 <먹는 기쁨이 크다>에서는 도시 생활을 하는 노동자의 고단함 엿볼 있다. 나의 부모님 역시 60-70년대 지방에서 서울로 두려움과 설렘을 가지고 도착하셨을 것인데, 이런 경험을 가진 누구나가 중국 화가들이 그린 이런 작업을 통해 공감할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양상은 다르지만 이런 부분들은 현대 중국 예술가들 역시 삶의 보편적인 경험에 주목하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친근하게 현대 중국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있는 단서가 있을 같다.

 

언젠가 중국여행을 하며 들은 사항 하나는 베이징에서 중국인들이 들어와 살려면 일종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베이징 시민이 자격을 얻어야 한다는 말인데, 저자가 부분을 책에서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1990년대 중국 정부가 밀려오는 농민들의 이동을 막기 위해 선택했던 호구제도 주택을 비롯한 거주의 권한 외에 의료 혜택이나 교육에도 도시의 거주자들과 차별적인 제도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예컨대 도시로 이동해와 가족을 이룬 이들의 자녀들은 대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부모가 나온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 시험을 봐야만 하는 일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중국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 우리와는 다른 중국 특유의 문화 속에서 우러나온 이런 경험들은 다소 생소하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있고, 공감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것은 서양과 달리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비극의 체험을 공유하는 한편,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압축적인 경제 성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의 감상자들은 창작자들이 녹여낸 경험을 통해 보편성을 발견하고 확인하고 있기에, 현대 중국 예술가들이 작업에도 충분히 공감을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당신의 거울이다


1980년대 중국 미술에 등장하는 신사조 운동은 무엇보다 창작자 자신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데 주안점을 두는 것으로 이해된다. 서양미술의 전통과 견주어보면, 100여년 전에 예술가의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예술 사조인 낭만주의 맥을 잇는, 혹은 낭만주의 현대적인 변용과 같은 관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대 중국 예술가들은 문화 혁명이나 천안문 사건과 같은 중국사의 사건을 몸소 겪기도 하고, 특히 예민한 감성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의 이런 상처와 아픔을 들여다보고, 작품을 통해 다시 직접 대면하며 아픔과 트라우마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쉼없이 파안대소를 보이는 남자들을 그린 화가 웨민쥔의 그림을 보노라면,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을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의학 연구에 의하면 억지로라도 얼굴 근육을 움직여 웃는 얼굴을 지으면 마치 행복감을 만들어내고 우리가 선택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반대로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는데 억지로 미소를 지어야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행복하기를 선택할 있을까? 현대 사회의 일부인 우리는 사실 후자의 상황에 많이 놓이게 되지 않을까. 작가 웨민쥔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아무 생각도 없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며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이들은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나아가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50)  

 

작가 웨민쥔의 말마따나 그가 그린 작품 인물은 하나 하나가 자기 자신이기도 하며,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저자가 트라우마 자살관리 센터에서 상처받고 찾아온 사람들의 치료과정에 참여해본 ,   세상에 상처 받지 않은 영혼은 없다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결국 예술가들은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돌아보며, 이들이 만든 작품을 보고 자신의 아픔이나 상처를 발견해내는 과정을 통해 서로 교감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들은 이들의 예민한 촉수와 감수성을 통해 우리와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수도 있겠다.  

 

환하게 웃는 인물을 그린 웨민쥔의 그림 <세상 구경> 에서는 남자가 허리를 굽혀 다리 사이로 세상을 거꾸로 보는 모습을 담았다. 세상은 뒤집힌 다르게 보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쑹이거의  <부츠 > 에서도 부츠의 위치를 서로 반대편으로 벗어놓은 것을 알아볼 있는데, 그림도 평범하지만 고단한 하루 흔적을 담고 있는 일상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낯선 시각 알아볼 있다. 사실 다른 예술가들이 내놓은 결과물들을 보면 하나 같이 우리의 삶을 조금씩 다른 시각에서 포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예술가는 각자의 경험과 속에서 자신에게 다가온 아픔이나 관심사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를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세상에 내놓는다. 과정이 이들 예술가들이 하는 궁극적인 작업이라 있겠다. 하지만 낯선 시각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삶이란 얼핏 보기에는 시시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숨어 있다 말한다. 저자의 말을 따라읽다가 언젠가 그늘이 드리워진 동네 골목길을 지날 보았던 장미 사진이 생각났다. 건물 사이로 벽에 비치는 햇살을 쬐던 장미 송이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아래 사진 참고). 멋진 풍경이 있거나 역사적인 기념물이 있는 곳도 아닌 동네 골목에서 어느 송이 장미가 조각 햇살을 받으며 나의 눈길을 끌었던 모양이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서서 꽃을 찍는 중년의 모습을 상상하면 부끄럽긴 하지만, 햇살이 비치는 좁은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내고 있는 녀석을 그냥 지나칠 없었다.  나에겐 이런 기회가 주변을 낯설게 보는 순간이다.  이런 행위들을 중국 현대 예술가들이 보여준 작업과 견줄 수는 없다. 다만, 장미 사진은 나의 하루를 다르게 만들어준 삶의 자극제라고 생각한다. 예술에 대해 접할수록 내가 배우게 되는 것은 바로 타인 뿐만 아니라 삶의 현재성에 대한 관심과 이해인 같다




나가며


책을 읽으며 가지 혼란스러웠던 점은 책의 방향성에 관한 의문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책은 현대 중국 예술가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있다. 다만 순수하게 저자가 현대 중국 예술가들을 친절히 소개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전공인 미술 치료와 관련한 정보와 경험을 일부 함께 전달하고 있기에 책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책이 현대 중국 예술가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 입문서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지만, 일부 작품에서 저자의 미술 치료와 관련한 이야기를 더하고 있는 부분은 책의 일관성에 혼동을 주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중국 작품들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기록하는 부분은 책이 현대 중국 미술에 대한 개인적인 에세이로서의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책의 방향을 어디에 두고 있다고 이해해야할지, 저자는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있을까가 다소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는 현대 중국 예술가들에 대한 소개와 저자 개인의 감상을 전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저자가 본인의 전공과 경험을 살려 화가 랴오야오야오의 <기인> 시리즈에 대한 심리분석을 넣은 부분은 특히 책의 방향을 혼동스럽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저자가 현대 중국 예술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주안점인지, 아니면 그림에 대한 미술치료의 관점에서 심리 분석을 해보는 것인지를 명확히 하여 분리하거나 아니면 그림마다 심리분석을 추가하여 책의 방향을 분명히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군데서 그림에 대해 저자가 독자에게 격려하는 듯한 부분도 책의 방향을 다소 모호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아니면 서문에서 책의 방향에 대해 미리 힌트를 주었으면 독서에 다소 혼란이 덜했을 것같다.

 

가지 혼란스러운 부분을 제외하면, 책을 통해 현대 중국 예술가들과 이들의 대표작품들을 알게 되어 흥미로왔다. 여러 현대 중국 예술가들이 간직한 경험들과 고민들을 통해 지구라는 행성에 함께 살고 있는 인간의 보편성을 새로 발견한다. 나아가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예술가는 시대의 모순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사람들이란 생각도 해보게 된다. 현대 중국 예술가들이 묘사한 그림과 사진 작품들에는 이들이 감지해낸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들이 담겨있다. 부분은 이들에게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특수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의 부분, 구성요소로서 인간을 이해할 , 사회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상처, 트라우마 등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공감할 있는 여지가 있기 마련이다. 이유는 예술가들의 작업이 인간으로서 각자 지니고 있는 감성에 크게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독서를 통해 저자가 소개해주는 현대 중국 예술가들의 작업들을 조금 알게 되었다. 이들 역시 자신이 속한 사회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자신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평범함 인간이기도 했다. 다만 이들은 시대에 공감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자신의 아픔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화가는 자신의 감정을 그림이라는 작업으로 대상화하고 이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한편 감상자는 화가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기억(경험) 공감을 통해 주관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보편성을 찾아낼 있게 된다. 바로 경험과 기억, 그리고 공감을 통해서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예술가들은 범인(凡人) 초월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극복해가는 인간으로서 초인들인지도 모르겠다. 상처와 아픔을 지닌 자신의 삶을 그대로 들여다보고, 자신의 의지로 이를 있는 그대로껴안고 나아가는 것은 끊없는 허무주의나 냉소주의에 빠져있다면 추구하기 힘든 긍정의 자세일 것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상처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며, 자신의 상처를 돌보고 아픔을 긍정하고 극복할 , 안의 나이테는 근사한 모습으로 자라나게 것이다. 여러 현대 중국 작가들의 작업을 보면서 자신도 역시 조금씩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처음 만나게 중국 작가들이었지만, 저자의 자연스러운 글쓰기 덕분에 현대 중국 예술이 처음인 나도 중국 예술가들의 작업들에 쉽게 다가갈 있었다. 앞으로 현재 중국의 예술계를 이끌고 있는 이들의 다음 세대, 주목받는 젋은 중국 예술가들에 대한 소개도 기대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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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초란공님의 "리사 랜들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수정 권고 안"

필독서는 각자의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겠지요. 번역 문화에 관한 이해는 박상익 선생님의 <번역은 반역인가>부터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번역의 탄생>도 많이 거론되는 책이구요. 아직 읽어보진 못했으나, <갈등하는 번역>과 <여백을 번역하라>등도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이 책들에도 몇 권씩 다른 번역관련 서적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하나씩 관심사에 따라 찾아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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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레슨(Style)

: 명확하고 아름다운 영어 글쓰기

조셉 윌리엄스(Joseph M. Williams) & 조셉 비접(Joseph Bizup) 지음

라성일·윤영삼 옮김 |  [크레센도]

 

 

언젠가 사놓고 묵혀두었던(?) 이 책을 책정리하면서 발견하고 조금 읽어보았다. ‘명확하고 아름다운 영어 글쓰기라는 부제가 달린 책은 영어 문장쓰기, 영어 글쓰기 안내서다. 이런 취지의 책을 한글로 번역하여 읽어보니 다소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 말과 글로 글쓰기를 하는 데에도 참고가 만한 부분이 있을 같다.

 

1장은 무엇보다 스타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씌여졌다. 흔히 글에서 스타일(style)’이라고 하면 문체라고 번역이 되는데,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갖는 의미의 맥락은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스타일 문체다라고 선언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미묘한 문화적 맥락의 차이는 감안하고 이해를 해야 것이다.    

 

장을 읽다가 주목하게 문장은 이것이다.

 

완벽한 상태로 글을 마무리하지 못한다고 해도, 시간이 허용하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흠잡을 없을 만큼 완벽하면 좋겠지만, 완벽이란 죽을 때까지 도달할 없는 것이다.)”(28)

 

문장에 주목하게 것은 내용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느껴서 라기보다는 문장이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을 불러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잠시 딴생각을 하게 되었다. 초고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여러 고쳐 쓰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글이 완벽해지기를 기대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완벽 결코 이루어질 없다는 점일 것이다. 다만 완벽이라고 있는 상태가 있다고 믿는다면’, 상태에 무한히 점근적으로 다가가려고 시도하는 것이 생애 우리가 있는 작업일 것이다. ‘저자는 글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미리 힌트를 주고 있다. 글쓰기를 해도해도 안된다고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원래 해도해도 (완벽하게) 안되는것이 글쓰기라고 말해준다면, 애초에 그런 기대보다는 보다 나은문장을 만들기 위해 수련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물론 해도 안되는것이기에, ‘차라리 안하겠다라는 결론은 보다 나은문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와 커다란 차이를 갖는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문장은 미완의 문장이라고 감히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어느 문장이 명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있다고 판단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나, 책의 중요한 전제는 초고를 적용하는 규칙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초고를 때는 불필요하게 글쓰기 규칙을 고민하면서 쓰지 말고 일단 쓰고 , 수정하는 과정에서 책의 글쓰기 규칙들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고라도 글을 어떻게 쓰기 시작해야 할지가 고민인 독자들에게 책은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결국 자신에게 맞는 책을 선택하는 과정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파악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중요한 생각을 아니겠지만, 자신의 흥미와 관심에 맞는 책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 자체도 자신에 대해 좀더 알아가는 이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관심사에 따라 모은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은 욕망과 결핍의 집합소이기도 하다.

 

책은 단순히 영어공부/영어 문장 쓰기를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독자를 고려한 글쓰기라는 관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모호하게 숨어있는 안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여 전달하기 위한 훈련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자신을 알아가는데 도움을 있는 책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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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19-10-15 16:23   좋아요 0 | URL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임에 대하여 -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한승동 옮김 / 돌베개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책임에 대하여

: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대담 |  한승동 옮김 |  [돌베개]

 

일본의 책임에 대한 오랜 물음의 대화

 

얼마전 일본에서 전시되고있던 위안부 소녀상작품의 전시 중단 소식을 접했다. 뉴스와 후속 기사를 보면서 사건의 양상이 내게는 이전과는 다른 맥락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최근에 서경식 교수의 저서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를 읽고난 이런 뉴스가 내게 달리 보였다고 말할 있겠다. 뉴스에서는 사건이 표현의 자유 침해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보도되고 있었다. 일본 내에서 소위 진보적이라고 자인하는 사람들도 뉴스에 보도되는 맥락만을 따져본다면 소위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되었다 방향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사회의 시민이 표현의 자유 보장받는 일은 응당 중요한 사안이다. 그리고 시민이 가진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는 사회 존립에 위협이 되지 않는 쉽게 제한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문제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음을  그리고 사태가 하나의 우려를 재확인하는 사례임을 알게 되었다.

 

뉴스에 보도된 사건의 배경은 일본군 성노예 끌려간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작품 앉아있는 소녀상 일본 내에서 전시되는 가운데, 일부 일본인들의 반발과 주최측에 가해진 압력으로 작품의 전시가 중단된 것이었다. 내가 느낀 위기감은 표현의 자유문제에 국한되어 해결의 초점이 맞추어지면, 일본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식민주의 영향으로 결과한 사건의 본질이 회피되고 심지어 무화(無化)되는 상황으로 종결될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일본의 입장에서는 식민주의라는 본질을 건드리지도 않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양보 필요가 있는가의 논쟁으로 소비될 있기에, 아베 정부에 동조하는 세력들에게는 편리한 변명으로 작용할 있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이어지는 길을 차단하는 구실이 마련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보도된 뉴스는 표현의 자유 억압문제에 관심이 맞추어지다보니 보다 본질적인 면이 소홀하게 다루어지거나 회피되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읽게 서경식 교수와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대담짐 책임에 대하여에서 바로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볼 있다.

 

서경식 교수와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 대담자들은 일본의 보수세력에 대항했던 리버럴파 지식인들이 보여준 식민주의에 대한 인식 외면하는 상황을 응답 책임의 회피 표현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의 비판적인 집단임을 자처하던 리버럴파가 몰락 내지는 자폭한 상황은 결국 아베 신조를 비롯한 강경파가 착실하게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기회가 되었다. 소녀상 전시 중단과 같은 사건이 일본 사회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이유는 일본 사회가 왜곡된 역사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강경파세력이 너무 비대해짐과 동시에 제한적이나마 비판적인 기능을 담당해왔던 일본의 리버럴파 지식인들의 붕괴에 가까운 무기력으로 비판기능이 제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이해해볼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일본의 리버럴파 지식인들에게는 보다 근본적으로 넘어설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바로 천황제 존재다. 일본사회는 천황 중심으로 어느 시기나 국민통합을 이루어내던 국가였기에, 천황에 대한 강력한 인정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책임에 대하여에서 교수는 일본국의 본성에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식민주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 천황이라는 단어가 수반하는 힘은 특별하다. 일본 국민과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천황=국가라는 도식 속에 스스로가 신민 되는데 이견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분명히 정치와 종교를 헌법상에서 분리하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일본의 패전 70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천황에 대한 비판은 매국노가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제정된 헌법 상에 명시되어 있는 개인적 자유의 보장이 일본인들 스스로 간절히 원하여 누리게 시민적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얻어낸 경험없이 연합군에 의해 주어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진정한 의미에서 제대로 자유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후에 그나마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경험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기회를 여러 놓쳐 버린 것이 오늘의 전체주의적인 일본의 모습에 이르게 원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천황은 평화주의자였다라며 본질을 흐리는 발언을 하거나, ‘요새 그런 이야기(민족, 식민주의) 하면 내셔널리스트라고 비난 받아요라는 말을 리버럴파로부터 듣게되는 상황이 것으로 보인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가 지적하는 희생의 시스템에는 과거로부터 여전히 지속되는 위안부나 조선인 징용공 문제 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중인 후쿠시마 원전사고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가 있다. 대담자들은 모든 사례가 바로 식민주의의 과거 현재의 형태에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사례들에 공통적인 특징은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희생에의 강요 정리해볼 있을 같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경식 교수는 한결같이 해당 문제의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식민주의 지적하고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대담자는 일본국의 본질적인 식민주의 척결을 있었던 여러 시기를 일본 사회는 놓쳤다고 한다. 패전 이후 연합군에 의해 주어진 자유이긴 하지만 자국민 스스로가 천황제를 폐지하고 자주적인 국민으로서의 인식과 행동으로 이어졌다면, 아직까지도 이어져오는 여러 희생의 시스템 목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당수의 진보적인 일본 지식인들은 천황제라는 장벽을 극복하지 못했고, 이런 정서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의 전체주의시대가 도래하는데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풀이해볼 있다. 여기에는 일본의 정당 혹은 기타 정치 집단이나 매스 미디어 그리고 학계의 저항이 거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것이다. 다카하시 교수가 결과로 저항자는 가장 마이너인 입장으로 내몰리고 고립되어 버리는 이라고 말에서, 일본 내에서도 극소수인 대담자의 고립감과 어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읽어낼 있었다.

 

전체주의 일본이 형성된 결과는 다시 일본인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 예를 들면 미일 안보체제는 일본의 헌법을 초월한 존재인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미군이 기지를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미군들의 일본인들에 대한 우월적인 태도는 오키나와 대학에 떨어진 미군 헬기 수습 과정이나 미군에 의해 자행된 오키나와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에서 뚜렷이 확인할 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한 이후 미군측은 일본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접근도 하지 못하게 했는데, 놀라운 것은 일본 정부가 이런 미국 측의 대처방식에 대해 항의나 사고 수습에 대한 의지 조차 없어 보였다는 점이었다. 내게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이에 대한 피해는 결국 자국민인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돌아가버리는 구조가 되었다. 자국민인 오키나와의 재산과 인명이 피해를 봤는데 뒷짐지고 구경만 하는 본토 일본인들과 정부의 행보는 충격적이었다. 결과 오키나와인들은 본토 일본인들에 의해 버린 취급을 받으며 다른 차별과 희생을 떠안게 되어 버렸다. 정황을 다시 정리해보면, 일본 사회의 식민주의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문제는 다시 자국민의 인권이 온갖 형태로 침해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있다.   

 

서경식 교수는 책의 일본어판 후기에서 2017 <치안 유지법> 적법하게 제정되었으므로 손해 배상도 사죄도 실태 조사도 하지 않겠다라는 법무대신의 국회 답변을 보고 일본은 마침내 데까지 왔다라고 판단했다. 1990년대 부터 일본의 반동기(리버럴파의 몰락과 강경파의 장기집권) 들어선지 사반세기가 지나자 이제는 국민과 국제적인 시선은 아랑곳 없이 자신들의 속내를 시원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런 말을 언론 앞에서 하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갑갑했을까.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아직 해결된 것은 없고,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문제와 마주하는 일이 남았다. 문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나 일본여행을 취소하는 문제에서 해결될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최근 일간지의 뉴스를 보니 일본의 관광객이 크게 줄어 위기의식을 느낀 여당 정치인(자민당 간사장)  우선 일본이 손을 내밀어 양보할 있는 것은 양보할 "이라고 말하며 동시에 우리(일본) 어른이 한국의 주장을 듣고 대응해 나가는 도량이 없으면 된다"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출처: 중앙일보] "한국에 양보할 하자"…관광객 급감에 온건파들이 움직인다   (2019 09 29일자 기사)

 [ https://news.joins.com/article/23589845 ]

 

우선 총재 다음 자리인 자민당 간사장 니카이 도시히로( 二階俊博·80) 이면에는 이번에 읽은 대담집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이 과거 식민주의 행보의 가해자라는 인식을 전혀 확인할 없었다. 아울러 한국에 대한 유아적인 우월의식에 젖어 있음을 확인할 있다. 특히 양보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함 의미하는데, 그가 사용한 맥락에서의 양보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가 열등한 존재에게 관대함을 베푸는 행위의 맥락으로 감지된다. 나는 물론 양국의 경제적 교류가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입장이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여파가 일본인들에게 보다 근본적인 국면에 대한 이해나 깨달음을 주는 데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언젠가  끝나게 되겠지만, 일본인들이 전후 이래 학습된 사고 정지와 (천황제로의) 자발적 예종의 습관으로 공고화된 일본의 전체주의적인 본성에 일말의 영향을 미칠 있으리라는 기대에는 회의적이다.

 

책을 읽으며 가지 주목하게 것은(서경식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1990년대 들어 그나마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있었던 리버럴파의 몰락으로 시작된 일본 사회의 반동기 오늘날 일본형 전체주의가 이제 완성되었다 이야기하는 대목이었다. 여기에 아직 역사적인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내가 배운 점은 오늘날 일본의 전체주의 형성에 미국의 역할을 빼놓을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것은 서경식 교수가 국이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자국의 정책에 맞추기 위해 천황제를 잔존시켰기 때문”(255)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에서 확인할 있다. 나아가 전후 일본사회 재편의 양상이 해방을 맞은 대한민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양상과 궤를 같이 한다는 , 그리고 중심에 공통적으로 미국의 존재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해방을 맞았을 , 도망갔던 한국인 검찰·경찰 세력이 미군정 국내 장악과 함께 다시 복귀한 사실, 이들이 해방된 공간에서 다시 정치적 역량을 확보한 사례는 일본의 경우와 매우 유사함을 발견한다. 이런 정국에서 우리는 친일파에 대한 파악과 처벌 과정에 중요한 골든 타임 놓치게 되었다. 상황은 일본도 다를 바가 없었다. 유사한 패턴의 배후에 미국이 보인 행보를 우리는 주목해야 것이다.

 

패전 일본 내의 정치적 상황은 역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1947 트루먼 독트린 이후 냉전 태세를 굳혀 가던 미국은 중국 공산화와 한국 전쟁을 계기로 일본 재무장을 핵심으로 동아시아의 냉전적 대결 체제를 본격화하면서, 군국주의 일본의 전쟁 범죄 처벌과 ‘평화 국가 일본’으로의 개조라는 기존 정책을 전쟁 범죄자 재기용과 일본 재무장, 이를 위한 일본 경제의 재건이라는 방향으로 급회전시켰다. 이것이 일본 패전 지금까지 70 년간 동아시아의 정세 흐름을 결정지었다.(302)

 

일본 사회 역시 패전 직후 미국은 천황제를 존속시키면서 전범자를 재기용하도록 방관하여 식민주의가 오늘날에도 건재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미구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특수를 일본이 누리게 해주면서 일본 사회의 전체주의화에 눈을 감았다. 그러므로 미국은 ·간접적으로 아시아의 평화유지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점과 일본 사회의 전체주의 형성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없을 것이다.

 

앞서 서경식 교수는 일본이 이제 아베 정권의 장기 집권으로 일본적인 전체주의를 완성했다고 했다. 동시에 데쓰야 교수는 제국 시기의 식민 지배 책임을 계속 부인함으로써 과거의 단절 극복하지 못하고 국제 지도 속에서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 지적한다. 이유를 데쓰야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15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통해, 근린 민족들과의 신뢰 관계를 구출할 없게 현실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284)

 

일본이 이렇게 무모하게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처하면서도 자신만의 행보를 유지하는 것은 배후에 미국과의 유착 혹은 상당한 정도의 대미 의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상황은 결국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도 적신호가 켜져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만 살려고 노력해도 그럴 없는,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일본 정부는 전근대적인 천황제를 폐지하고, 식민주의를 극복하여 일본인들이 헌법에 보장된 대로, 자유로운 개인적인 주체로서 존재할 있도록 해야만 것이다. 천황제의 종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일본 국민의 다수는 기꺼이 자발적으로 신민으로 회귀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발언대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천황제는 원리적으로 서로 양립하기 힘들다. 일본 사회에서는 일본정부를 비롯한 대다수 일본인들이 회피해왔던 책임 다시 바라보고 인식하는 과정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같다. 그래야 역사 수정주의 문제나 일본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고 있는 모럴의 붕괴 계속 진행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있다. 국내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것은 이미 옛날의 일이다. 과거의 허물을 그만 들추라 논리로 대응하곤 한다. 이런 논리는 가해자, 기득권자가 가장 좋아하는 레토릭이라고 서경식 교수는 말한다. 보다 밝고 건강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이 언제나 함께하는 가운데 과거사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사건의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알려져야 하며, 후세는 이를 알아야만 한다.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는 행위는 미래에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마무리 대담자들을 다시 보며

 

다카하시 교수의 가차없는 일본 정부 비판을 보노라면 일본 사회에서 매우 보기 드문 인물임을 알게 된다. 과연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다수가 이야기하는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을 하는 학자라면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일본 내에서도 이렇게 극소수에 속하는 학자에 대해 서경식 교수의 평가는 남다르다.  

      

(다카하시 선생은) 대단히 중요한 장면에 있는 사상가라고 생각해요. 일본이라는 곳에서 그런 사람이 전혀 없다고 수는 없겠지만 이른바 아카데미즘과 현장이라는 것의 경계를 오가며 생각하는 , 소수파와 다수파의 경계에 서서 생각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205)

 

서경식 교수에 대한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신뢰와 평가 또한 남다르다.

 

서경식 선생은 언제나 나에게는 스승과 같은 벗이자 벗과 같은 스승이었다.”(286)

 

20 넘은 대화와 고민의 세월을 지내며 대담자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지닌 도반 셈이다. 그리고 소수의 입장이나마 끊임없이 소수의 입장에서 다수를 비판하고 의견을 개진하며,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의 왜곡된 시선을 갖는 이들이 펼쳐 놓은 문제점들을 지적해왔다. 이번 대담집 책임에 대하여에서는 일본 사회에 만연해있는 책임 회피 기작을 분석 비판하고 응답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 이 두 지식인의 입장이 소수이긴 하지만 두 사람은 식민지 종주국으로서 일본 국민 다수에 내재되어 있는 식민주의적 심성과 싸우는 일에 오랜 시간을 바친 이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다음 세대에 이분들의 역할을 이어갈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더 많이 나와 한일간의 연대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데쓰야 교수가 후기에서 인용한 오키나와 이시가키지마의 시인 야에 요이치로 시로 마무리를 해보려고 한다.  

 

야에 요이치로의 시집(2017) 일독(日毒) 나오는 재인용.

 

대동아 전쟁 태평양 전쟁

300만의 일본인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2,000 아시아인을 괴롭히다 죽이고는 그것을

모두 잊었다는

의지 의식적 기억 상실

교활함 야비함 거무칙칙한

광기의 공포 그리고 나는

확인한다

실로 이것이야말로 지금 일본의 암흑을 통째로 표상하는 한마디

일독’(日毒)

 

 

서경식 교수: 여기서 일독’(日毒) 스스로 중독되어 제정신을 잃은 채로 타자에게 계속 재앙을 뿌려대는 모습을 의미한다.(11)

데쓰야 교수: 여기서 시인이 과제로 삼은 일독의 제거 메이지 유신 150년을 관통하는 일본의 식민주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의미한다.(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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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Moby-Dick or, The Whale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지음  |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8] 설교단 (The Pulpit)

 

[8장의 기본 줄거리]

예배를 보러 고래잡이 예배당 들어온 이슈메일은 눈보라를 헤치고 들어온 목사의 행동을 관찰한다. 목사는 독특한 설교단으로 오르는 모습과 이후의 행동, 그리고 설교단 뒤에 걸린 커다란 그림을 관찰하며, 설교단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한다.  

 

 

소설의 화자인 이슈메일은 이번 8장에서 설교단의 보편적인 상징성 주목한다. 고래잡이 산업이 주를 이루는 이곳 뉴베드포드의 항구에 있는 고래잡이 예배당 있는 설교단은 우선 일반적인 계단이 없다. 대신 작은 배에서 배로 올라갈 사용하는 줄사다리를 달아 놓았다. 이제 우산도 마차도 이용하지 않고 눈보라를 뚫고 도착한 노인은 존경받은 교회의 매플 목사였다. 그는 젊은 시절, 작살잡이로도 일했던 사람이었으며, 일찍 성직에 몸을 담았다.    

 

이내 이슈메일의 시선은 설교단으로 향하는 목사를 따라간다. 줄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에 위치한 설교단을 오른 다음, 목사는 설교단 밖으로 걸쳐있는 줄사다리를 끌어 올리는 연극적 행위에 주목한다. 목사 스스로 작은 퀘벡 요새처럼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위를 어떻게 이해할 있을 것인가를 자문하는 것이다. 우선 이슈메일은 행위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행위는 바깥세상의 모든 세속적 인연과 관계로부터 정신적으로 잠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하는 아닐까? 하느님의 충실한 종인 그에게 하느님 말씀의 고기와 포도주로 가득 설교단은 자급자족할 있는 요새, 성벽 안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 에렌브라이트슈타인인 것이다.

 

, 이슈메일이 생각해 설교단의 상징성은 8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드러낸다. 설교단은 바로 세상의 선두이며,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곳이라는 것이다. 다분히 미국적이라고 알려진, 혹은 미국을 만든 책으로 꼽히기도 하는 모비 정치와 종교가 헌법상 분리되어 있는 미국이 사실은 기독교를 믿는 백인들이 이끌어가는 곳이라는 미국의 본질을 이미 간파하고 있다고 간주해도 같다. 여기에서 나아가 매플 목사는 하느님의 종인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세상의 선봉에 자가 것이다. 이슈메일은 세상이 항해를 떠난 배이며, 배의 형상을 설교단은  세상이라는 뱃머리라고 하며 8장을 마무리 짓는다.

 


 

예배당의 그림과 다른 상징성

 

8장에서 흥미를 부분은 설교단보다도 이슈메일의 시선이 스치듯이 지나가며 발견하고 있는 커다란 그림이었다. 설교단 뒷벽에 걸려있다고 이야기하는 그림에 대한 묘사와7장에서 잠시 언급했던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그림 <노예선The Slave Ship> 묘사와 매우 흡사하여, 나는 멜빌이 8장에서 터너의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주장해보고자 한다.

 

우선 터너의  <노예선 The Slave Ship> 그림(아래)을 먼저 보자.

 

(전체그림)


(오른쪽 아래 부분 확대 그림)


그림의 정확한 제목은 다음과 같다.

<Slavers Throwing overboard the Dead and Dying—Typhoon coming on > 이다.

 

제목을 거칠게 직역해보자면,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들을 밖으로 던지는 노예상인들 다가오는 폭풍> 정도가 같다. 그림은 캔버스에 그린 유화로, 터너가 1840년에 처음 전시한 그림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와 서경식 교수의 나의 영국 인문 기행 따르면, 토마스 클락슨(Thomas Clarkson) 저서 《노예 무역의 역사와 폐지  The History and Abolition of the Slave Trade 읽고 영감을 받아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림이 7장에서 언급했던 종호학살사건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위키피디아는 추측이 맞음을 확인해주었다. ‘종호학살사건 1781년에 영국인 선주가 노예를 자신의 재화라고 생각하고, 죽거나 건강하지 못해 죽어가던 노예들을 수장시켜 잃어버린 재화 대한 보험금 청구를 위해 저질러진 학살사건이었다. 사건이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60년이 지나서도 터너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음을 있다.

 

전체 그림(첫 번째)을 보면, 그림의 가운데에 노을과 함께 해가 저물고 있으며, 왼편에는 검은 폭풍우와 이곳으로 향하는 배가 보인다. 그리고 그림의 아래, 바다에는 물에 던져진 노예들의 손과 발이 보이는데, 여전히 쇠고랑이 채워져 있는 모습을 있다. 그림의 오른 아래 부분을 확대한 부분 그림이 아래( 번째) 그림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바다의 물고기들과 상어들, 그리고 새들은 물에 빠진 노예들에게 달려들거나 주위를 배회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에는 물고기, 상어 떼에 잡아 먹히는 쇠고랑 노예들의 쇠고랑 채워진 수족이 거센 파도 속에서 모를 보이고 있다. 

 

대략 그림을 파악했으니, 이제 모비 8장에 등장하는 설교단 뒤의 그림 관해 이슈메일이 묘사하는 대목을 살펴보자.

 

파도가 검은 바위에 부딪혀 눈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해안 앞바다에서 무서운 폭풍우를 만난 호화로운 척이 묘사되어 있었다. 하지만 세찬 바람에 흩날리는 소나기와 굽이치는 먹구름 높은 하늘에는 태양이 작은 섬처럼 있고, 그곳에서 천사의 얼굴이 환히 빛나고 있었다. 빛나는 얼굴이 심하게 흔들리는 배의 갑판에 빛을 던져, 넬슨 제독이 빅토리 갑판에 박아 놓은 은판처럼, 부분만 또렷이 드러났다.

 

다시 묘사와 터너의 그림을 놓고 비교해 보면, 일치해 보이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 보인다.  폭풍우를 만난 척이 검은 바위처럼 보이는 어두운 바다로 거친 파도를 힘겹게 헤치며 나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림의 가운데 보이는 태양이 개인적으로는 날개가 있는 천사의 형상으로 상상되어 보이기도 한다. 이슈메일은 죽음의 바다에 던져진 인간들의 처절한 모습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는다. 예배당의 의자에서 높은 곳에 위치한 설교단 뒤의 그림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대신 이슈메일은 끓어 넘치듯 분노하는 바다 멀리 척이 폭풍을 향해 나아가는 그림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것이다.  

 

다시 모비 7 읽기를 상기해보면, 1781년에 영국의 노예선 (Zong)에서 죽거나 죽어가는 아프리카 노예 132명을 수장시켜버린 종호학살사건 대해서 정리해두었다. 우선 멜빌은 현재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터너의 <노예선The Slave Ship> 그림 원본을 보스턴 미술관에서 보지는 않았음이 분명하다. 보스턴 미술관은 1870년에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모비 딕》 집필하던 1850 시점에서 보스턴 미술관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말이 된다. 터너가 그림을 그리고 처음 전시한 연도는 1840년인데, 전시된 곳은 영국(런던에서 태어나 평생 런던에서 살았으므로 아마도 런던에서 전시가 되었을 것이다) 것이다. 작가정신 《모비 딕》버전에 기록된 허먼 멜빌의 행적을 따라가보면, 1839 20세의 혈기왕성하던 청년 멜빌은 영국 서부 해안의 도시 리버풀로 향하는 화물선에 급사로 승선했다고 나온다. 리버풀은 노동자들의 도시로 이곳에 도착한 멜빌은 대도시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빅토리아조 사회의 명백한 불평등을 발견 한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세상을 배워나갔던 멜빌은 처음 영국의 공업도시 리버풀에 도착하고, 사회의 구조적인 양상을 목격하고 있다. 그러므로 터너가 자신이 그린 <노예선The Slave Ship> 영국에서 그림을 전시하던 즈음(1840) 멜빌이 영국을 처음 방문(1839-1840)했을 것으로 보이며, 당시 사회를 놀라게 했던, 혹은 논쟁적일 만한 그림에 대해 또는 화가 윌리엄 터너에 대해 멜빌이 들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물론 나의 추정일 뿐이다. 하지만 20세의 젊은 나이라고 해도, 리버풀에 처음 도착하여 리버풀이라는 도시에서 계급의 격차라는 문제를 알아볼 만큼의 예민함과 《모비 딕》3장에서도 짐작해볼 있듯이, 그림에 관심을 가졌던 멜빌이 터너의 작업에 대해 알았을 법한 감수성은 이미 갖추고 있다고 보인다.

 

다시 정리해보면, 1840년에 터너의 그림이 영국에서 전시되었을 , 멜빌이 그림의 원본을 직접 보았을 가망은 희박하다. 하지만 당시에도 그림을 모사하여 걸어두는 것이 흔한 유행이기도 했기에, 포경산업이 중심을 이루는 뉴베드포드의 예배당에 터너가 그린 그림, 폭풍우 속을 항해하는 배가 그려져 있는 (모사한) 그림이 설교단의 뒤에 걸려있는 일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울러 영국의 공업도시 리버풀의 계급적 격차의 모습을 알아보는 감수성을 지녔던 20살의 멜빌이라면, 그리고 배를 타면서도 여가 시간을 온전히 책을 읽는데 할애하며 지식과 교양을 쌓아가던젊은 청년이라면, 수십년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종호학살사건 윌리엄 터너의 과감하고 논쟁적인 그림을 모르지 않았을 터이다. 아울러 노예제를 혐오했던 멜빌이  정치적으로 급진파 노예제 폐지론자였던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공명했을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생각해본다.  

 

다시 작가 연보에 따르면, 이후 1840 즈음 고국으로 돌아온 멜빌은 서부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실패하고, 포경선 아쿠시넷호를 타게 되는데, 때의 경험이 바로 《모비 딕》 녹아들어가 훗날 수면으로 부상하게 된다.

 

 

터너의 노예선에 대한 외국 블로거의 해석

 

다시 터너의 노예선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터너의 <노예선> 그림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간단히 덧붙여두기로 한다.

 

[출처: http://www.the‐art‐minute.com/joseph‐mallord‐turner/ ]

 

글에 따르면, 블로거는 터너의 그림이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미라는 낭만주의 개념을 저버린 행위다라는 취지로 이야기한다. (참고: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미 대한 논의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김동훈 옮김, [마티] 참고할 )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미 개념은 이미 모비 3 읽기 부분에서 이슈메일이 물보라 여인숙입구에 걸린 형체를 없고 불길해 보이는 그림을 보는 장면에서 잠시 언급했던 개념이다. 어쩌면 3장에서 여인숙에 걸려있던 그림도 역시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서 찾을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앞서 출처 부분에 소개한 블로거에 따르면, 숭고미 낭만주의의 개념에 범주화되어 있음을 있다. 그리고 개념은 자기 보존이라는 인간의 본능과 연관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숭고미 공포와 고통에 대한 생각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며 동시에 신과 자연의 권능(power) 보여주기에 우리를 압도하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터너의 그림 <노예선> 보자.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폭풍우 속으로 들어가는 노예선 앞의 바다는 거센 파도가 일고 있다. 그림 자체는  종호학살사건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지 않고는 세부 모습을 알기 어렵다. 대신 비극이 벌어지는 거센 바다의 격랑은 신의 분노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드먼드 버크가 이야기한 숭고미 요소가 보인다. 하지만 터너는 숭고미의 낭만적 개념을 배반한다. 거칠게 일렁이는, 심지어 부글부글 끊어 오르는 듯한 바다의 표면은 죽은 노예의 시체와 바다에 던져진 병든 노예가 상어 떼의 습격으로 고통과 아우성, 피로 물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블로거는 강렬한 장면을 인륜을 저버린 인간에 대해 분노하고 못마땅해 하는 신의 분노를 포착하는 그림으로 이해한다. 인간을 압도하고, 심지어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며, 신의 권능과 자연의 웅장함이 드러내는 숭고함’, ‘숭고미라는 개념은 인간의 탐욕과 인간성이 상실된 학살 행위로, 피로 물드는 바다의 그림을 통해 숭고함 얼룩지고 배반당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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