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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 - 판사들의 판사에서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ㅣ 거장의 시선 1
제프리 로즌 지음, 용석남 옮김 / 이온서가 / 2023년 2월
평점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erg, 1933.03.15 - 2020.09.18)
평등의 원칙 아래 세상을 포용하고자 했던 법조인
- 《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
: 판사들의 판사에서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원제: Conversations with RBG)
제프리 로즌(Jeffrey Rosen) 지음 | 용석남 옮김 | [이온서가] | (2023)
서로가 잘 모르지만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공동 관심사로 시작된 인연이 평생 이어진다면 정말 멋진 일일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이 많은 이들의 롤모델로 삼고자 하는 인물이라면? 《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는 미국의 법조인이자 국립헌법센터의 수장인 제프리 로즌이 20대 청년일 때 우연히 만난 이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과 나눈 대화들을 기록한 책이다. 두 사람은 음악, 특히 오페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라는 공통점으로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친구로서 존중하는 관계를 긴즈버그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 유지했다. 이 책은 단순히 한 법조인의 업적을 일별하거나 긴즈버그의 일에 대한 철학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성평등,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 음악, 삶과 사랑 등의 주제를 아우른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무엇보다 ‘성평등과 관련하여 헌법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킨’ 인물로 꼽힌다. 그가 단순히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평등 구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성별에 근거한 법으로 차별당하는 남성과 여성들’을 모두를 위해 변호하고자 했다. 억압받거나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이 남성들과 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지려면, 여성들을 고려하고자 마련된 사회적 장치가 어떤 경우에는 여성 혹은 남성마저 가두는 기능도 한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길은 여성만을 고려하는 것에서 나아가 대등한 존재로서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긴즈버그가 변호사가 되고자 했던 1950년대의 사회는 지금과 많은 점에서 달랐다. 우선 그녀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재원이었음에도 로펌에서 변호사가 되지 못했던 3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긴즈버그가 유대인이었다는 점. 둘째, 여성이었다는 점. 셋째, 결혼한 여성이었다는 점. 특히 그녀가 로스쿨을 졸업했을 때, 자녀까지 있었다는 점 때문에 로펌에 취직하지 못했다고 한다. 긴즈버그는 당시에 자신에게 해당한 이 세 가지 조건을 ‘삼진아웃’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당시에 이런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그녀는 변호사가 되고, 럿거스 대학의 법대 교수로 임용되어 당당히 자신의 꿈을 이루어나가기 시작했다. 이후의 행보는 부분적이나마 이 책에 담긴 대로다.
성평등의 관점에서 기존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판했던 긴즈버그는 자신의 삶에서 이 신념을 구현하고 실천해왔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한 대목은 긴즈버그가 평생의 동반자인 남편 마티와 함께 했던 56년의 결혼생활에 대한 언급이었다. 두 사람은 1950년에 코넬 대학에서 만나 음악에 대한 사랑이라는 공통점에서 시작하여 서로의 지성을 존중하며 친해졌다고 한다. 부부가 평생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 수 있을지 상상해본다. 긴즈버그는 이러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그가 써둔 결혼식 주례사 초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서로의 재능과 경험에 진실로 감사합시다. 그 감사함에 뿌리를 두고 서로 헌신하십시오. 인내, 좋은 유머, 상대방에게 주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여지껏 배워왔습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은, 마치 마법과 같이, 혼자일 때보다 두 사람을 더욱 지혜롭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경험으로 영원히 이끌어줄 터입니다.”(48)
미국의 전통적인 모토 중에 다음과 같이 라틴어로 된 말이 있다고 한다. “에 플루리부스 우눔 E pluribus unum”. 긴즈버그의 말에 따르면, 이 말은 ‘여럿이 모여 하나(one out of many)’란 의미라고 한다. 미국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이룬 한 국가다. 미국이 물질적인 풍요 말고도 정신적인 풍요를 성취한 이유를 꼽으라면, 한 때 이러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겠다. 지금은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청과 존중이 사라진 것만 같아 안타깝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언젠가 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포용’에 관한 저자 제프리 로즌과 긴즈버그와의 대화였다.
로즌: "포용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긴즈버그: "포용이란 것은, 소외된 사람들을,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두 팔을 벌려 공공체의 일부로 껴안는 것입니다."(268)
우리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긴즈버그야말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9명으로 이루어진 연방 대법관으로 일할 때, 자신과 자주 의견을 달리하는 스캘리아 대법관과의 오랜 우정과 존중의 관계가 한 가지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의견이 그렇게 다른 사람과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는지 저자가 묻자, 긴즈버그는 스캘리아 대법관의 좋은 점으로 답을 대신했다. 스캘리아는 누구보다 멋진 유머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말이다. 긴즈버그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장점을 찾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상대방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경청할 줄 아는 태도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사실 이건 당사자 혼자만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다고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 역시 훌륭한 인격을 가진 인물이어야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이 사례 역시 긴즈버그가 평생 삶 속에서 보여준 ‘포용의 정신’을 발 보여준다는 점이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연방 대법원에서 소수의견을 가장 많이 낸 법조인에 속했다는 사실도 그녀의 ‘포용 정신’을 고려하면 이해가 잘 된다. 그녀는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들이 모인 대법원이라도 실수를 할 수 있으며, 나쁜 결정을 하기도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녀가 지지한 ‘소수의견’의 핵심 개념은 ‘상식의 정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서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이 때 긴즈버그는 우리가 끊임없이 비기득권에 속한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살아가는 한, 우리는 한없이 배울 수 있습니다.”(151) 이는 불완전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피고, 나와 다른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 일에서 출발할 것이다. 특히 법조인은 법의 적용에 있어 ‘누가 더 큰 고통을 받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그의 눈길이 언제나 가난하고 기득권에 속하지 못한 이들, 특히 여성들에 좀 더 머물게 되었을 것이다.
긴즈버그가 공부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마주한 불평등한 현실을 회피하거나 불평만 하지 않고 직접 변화시켜 가는 일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후손들은 행운아들인지도 모른다. 그가 없었다면 여전히 사회에 불평등의 잔재가 남아있긴 하지만, 지금의 정도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녀는 2020년에 병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을 지냈다. 책의 저자와 긴즈버그가 나눈 대화를 따라가 보면, 두 사람이 반평생 나눈 우정의 대화가 얼마나 풍요로운 시간이었을지 상상해본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두 사람만의 사적인 대화를 넘어 한 시대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기도 할 것이다.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혹은 한 사회에 커다란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실제로 그의 존재가 사회를 조금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긴즈버그 대법관이 자신의 꿈을 말한 대목이 인상적이어서 인용해본다. 상식적인 말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한 꿈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부모 역할과 직장 생활을 꾸려가는 삶의 방식을 만드는 것, 그 방식으로 사회가 굴러가도록 남녀가 같이 노력하는 것입니다.”(1984년에 언급)
[참고 - 오탈자]
[1] 34면, '우리임을 것을 밝히는' ==>> '우리임을 밝히는'
[2] 87면, '1984년, 페미티스트' ==>> '페미니스트'
[1] "긴즈버그는 추상적인 원칙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개인들, 성별에 근거한 법으로 차별당하는 남성과 여성 개인들을 위해 변호하며 정의를 구현해나갔다."(33)
[2] "제 목표는 여성들을 떠받치고 있다고 여겨지는 그 받침대가 실은, 모두를 가두는 우리임을 밝히는 것이었죠. 한 번에 한 걸음씩 법원이 깨닫게끔 하고 전진시키는 일이 그 당시 제 목표였습니다."(34)
[3] "궁극적으로는, 시민들 스스로가 조직해야 합니다. (...) 사람들에서부타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종류의 추진 없이, 입법부는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74)
[4] "여성과 남성이 존재하는 방식을 일반화시키면, 고유한 각 개인에 대한 결정을 바르게 내릴 수 없다."(106)
[5] "그게 바로 릴리가 한 행동이죠. 소수의견의 핵심 개념은 상식의 정신입니다."(177)
"전통적으로 소수의견이 장차 이 나라의 법이 되어왔습니다. (...) 법원이 잘못했다는 걸 인식한 소수의견이 있었습니다. (...) 법원이 틀린 판단을 내렸음을 인식하고 옳은 판결을 써내려간 사람들을 한번 돌아보세요. 처음에는 소수의견으로 출발하지만, 그 다음 세대에서는, 법원을 대표하는 의견이 되었다는 것을."(178)
[6] "의료보험 또한 사회안전망의 결함을 보완한다고 봅니다. 사람은 늙거나 파트너가 사망했을 때 사회보장 혜택을 받습니다. 의료보험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국민들의 기본적인 필요 사항이 채워지고 있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습니다."(187)
[7] "법원은 일이 일어난 뒤에, 사후에 대응하는 기관입니다."(195)
"법원이 사회적 변화를 선두에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방향으로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했다."(198) : 법원의 역할에 대해
[8] "평등이란 개념은 처음부터 존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회에서 실현되어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투표권을 가지기까지, 우리 여성은 1868년부터 지금까지 참으로 긴 시간을 걸어왔습니다."(206)
[9] "‘넌 안돼’라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마세요. 꿈이 있고, 추구하고 싶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을 기꺼이 할 의지가 있으면, 누군가 ‘넌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게끔 내버려두지 마세요."(235)
"진짜로 실현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기꺼이 그걸 이루는 데 필요한 노력을 하세요."(272)
[10] "좋은 시민이라면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가 있다는 조언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의무란, 우리 민주주의가 적절히 작동하도록 돕는 것이겠지요."(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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