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지배 - 디지털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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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신세계의 모습

- 정보의 지배를 읽으며

 


출근하기 전에 잠시 집어 들었던 한병철의 정보의 지배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읽고 글을 남겨본다.


사회비평가이자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닐 포스트먼은 죽도록 즐기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더스) 헉슬리는 이렇게 말을 잇는다. ‘1984에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사람들을 통제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줌으로써 사람들을 통제한다. 요컨대 오웰은 우리가 몹시 싫어하는 것이 우리를 몰락시킬 것을 두려워했고, 헉슬리는 우리가 몹시 좋아하는 것이 우리를 몰락시킬 것을 두려워했다.” (한병철, 정보의 지배, 33면에서 재인용)


 

철학자 한병철은 헉슬리가 구축한 신세계가 오웰의 감시국가보다 여러 면에서 우리의 현재 모습에 더 가깝다고 진단한다. 저자가 말한 대목을 좀 더 들어보자.


 

멋진 신세계는 진통사회다. 거기에서 고통은 기피된다. 강렬한 감정들도 억압된다. 모든 바람, 모든 욕구는 곧바로 충족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재미, 소비, 즐거움에 휩싸여 몽롱해진다. 행복을 향한 강박이 삶을 지배한다. 국가는 주민들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소마soma'라는 약을 나눠준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텔레스크린 대신에 감각영화관이 있다. 그 영화관은 향기 오르간등을 써서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을 마비시킨다.”(같은 책, 33)


 

이런 대목을 읽으면 한병철의 언급대로 우리는 지금 헉슬리의 신세계한 복판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름이 돋는다. 이 세계에서 국가가 주민들에게 나눠준다는 약(소마soma)은 그리스어로 영혼과 대비되는 육체’, ‘육신을 가리키는 단어에서 온 것일 테다. 우리 몸, 신체의 욕망을 곧바로 충족시켜주는 쾌락의 영약이라는 의미에서 그럴듯한 이름이다. 몇 년 전 자동차 업계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감정 반응 자동차를 선보였던 기사가 기억난다. 이 자동차에서는 운전자 및 탑승자의 신체, 심리 상태 등을 감지하여 이들의 감정을 돌봐주는 역할을 하는 기능인 것이다. 기분이 좋으면 즐거운 음악이나 기분이 좋아지는 향을 내뿜고, 우울하거나 슬퍼 보이는 표정이라면 이 또한 감지하여 기분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끊임없이, 잠시도 자신만의 사적 공간이 소멸된 환경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한병철의 언급대로 우리의 생활에 이미 행복을 강요하는 강박이 자리 잡은 듯하다.


 

특히 오늘 짬을 내어 읽은 대목에서는 텔레비전이 담론을 파편화한다.’(31)란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대통령 후보의 토론회를 비롯하여 사회의 문제들을 다루는 프로는 점차 단축되고 오락화된다. 나아가 일종의 쇼, 공연이 되어 가면서 이미지 정치가 되어 간다는 의미였다. 대신 시청자들은 오락프로그램이 주는 행복에 중독되어간다는 것이다. 결국 속이 빈 이미지들, 이러한 쇼들은 헉슬리의 소설에서 국가가 주민들에게 내어주는 약 소마에 다름 아닐지도. 공포의 지배 방식에서 한 층 업그레이드되어 이제 이미지 소비자들은 스스로, 능동적으로 이 약에 중독되어 간다는 진단을 저자는 내놓는다. 자가당착적이지만 매우 중독적인 도취의 형태다. 현대 SF의 거장인 필립 K. 딕이 언급한 바대로, 현대사회의 특징 하나는 공적 공간의 소멸인 것이다. 이제 공론장은 사적 공간들로 파열해버리고 있다.


 

오늘 독서는 여기까지. 저자는 자신의 진단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기대해본다.   


[1]
"(올더스) 헉슬리는 이렇게 말을 잇는다. ‘《1984》에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사람들을 통제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줌으로써 사람들을 통제한다. 요컨대 오웰은 우리가 몹시 싫어하는 것이 우리를 몰락시킬 것을 두려워했고, 헉슬리는 우리가 몹시 좋아하는 것이 우리를 몰락시킬 것을 두려워했다." (한병철, 《정보의 지배》, 33면에서 재인용)

[2]
"멋진 신세계는 진통사회다. 거기에서 고통은 기피된다. 강렬한 감정들도 억압된다. 모든 바람, 모든 욕구는 곧바로 충족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재미, 소비, 즐거움에 휩싸여 몽롱해진다. 행복을 향한 강박이 삶을 지배한다. 국가는 주민들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소마soma‘라는 약을 나눠준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텔레스크린 대신에 ’감각영화관‘이 있다. 그 영화관은 ‘향기 오르간’ 등을 써서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을 마비시킨다."(같은 책,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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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의 말 - 광기와 지성의 SF 대가, 불온한 목소리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필립 K. 딕 지음, 데이비드 스트레이트펠드 엮음, 김상훈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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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1960년대 초 모습 / 오른쪽: 1970년대 모습)





인간의 조건을 집요하게 탐구했던 작가의 인터뷰

- 필립 K. 딕의 말


필립 K. (Philip K. Dick,1928.12.16 1982.03.02데이비드 스트레이트펠드 지음

김상훈 옮김 | [마음산책] | (2023)

 



나는 글 쓰는 게 좋네. 정말로 좋아하지. 난 내가 창조한 등장인물들을 사랑하거든. (...) 책을 탈고하면 상실감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 정도라네. (...) 소설을 탈고한다는 건 친구들을 영영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야.”(38)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 리콜>의 원작자이자 SF 대가 필립 K. 딕의 인터뷰집 필립 K. 딕의 말을 읽었다. 딕은 캘리포니아의 명문 대학에 들어갔지만, 쓸모없는 지식을 배운다는 실망감과 불안증, ROTC 교련에 대한 거부감으로 대학을 중퇴했고, 곧이어 레코드 판매점 알바생이 되었다. 미래의 위대한 SF 작가에게 청년 시절은 대학을 관두고 나온 이후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십여 편의 소설을 광적으로 써댔지만 대부분 출간되지 못했던 암울한 시기였다.


 

이런 시절, 그에게 글쓰기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끝없는 자기 의심과 불안증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유일한 안식처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쓰는 행위만으로도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그런 청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소설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소설을 쓰며 우정을 나누었던소설 속 등장인물과 영영 헤어지는 일과 같다, 라고 했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가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친구들의 수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에서 작가 이전에 고독한 한 인간의 모습을 대면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잃어버린다고 상실감을 느끼는 남자. 나는 이걸 애착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가상의 인물과 형성한 긴밀한 유대감이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여진다.


 

광기와 지성의 SF대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작가에게 글쓰기의 기능은 글쓰기 자체였다. 그는 글쓰기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목표라고 했다.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써야 했던 그는 많이 쓰던 시절에, 5년 동안 장편 소설 열여섯 편을 썼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광기나 다름없는 작업 속도다.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던 딕의 글쓰기 생활을 엿보건데, 글쓰기(또는 그 행위)에 대한 그의 집착을 견딜 수 있는 부인이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하다. 훌륭한 작가와 훌륭한 남편이 양립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테다. 평생 그를 따라다닌 일종의 불안증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글쓰기는 그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글을 써댄 작가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난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던 게 아니라, 에너지가 고갈되었던 거야.”(91) 어쩌면 이 위대한 작가에게 편집증은 그를 작가로 만든 원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인공지능이 큰 화두다. 하지만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가 로봇 R.U.R.(1921)에서 로봇이란 용어를 처음 쓴 이후, 그리고 아이작 아시모프가 아이, 로봇(1950)에서 로봇 공학의 3원칙을 천명한 이래로 과학자들이 뛰어난 성능의 로봇과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사람들이 줄곧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 질문들을 간단히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딕이 인터뷰 곳곳에서 강연이나 작품을 통해 하려던 작업이 곧 진정한 인간을 정의하는 일이었다고 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필립 K. 딕의 작품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딕은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의 주제 두 가지 가운데 첫 번째 주제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첫 번째 주제는 본질적인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이고, 진정한 인간을 단지 인간인 척하는 존재와 어떻게 구별하는지에 관한 질문이라네.”(152)


 

생물학적으로 인간일지라도 우리 가운데에는 안드로이드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었다. 작가에게 진정한 인간이란 어떤 존재였던 것일까. “예를 들자면, 그릇된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걸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 ‘아니, 나는 죽이지 않을 거야.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존재.”(54)가 딕에게는 진정한 인간의 전형이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둘러싼 부조리에 맞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존재다. 그럼 작가가 집요하게 써나갔던 미래사회의 모습과 안드로이들에 대한 고민은 결국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던 노력으로 수렴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인 인상으로 판단하자면, 작가 필립 K. 딕은 지독히도 고독했던 인물이었으리라. 물론 스스로 자처한 면이 있긴 했지만 어떤 이유가 되었건 그에게 글쓰기란, 자신을 고립시키는 보이지 않는 망토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안증과 우울감, 그리고 인터뷰어가 끊임없이 제기하는 일종의 피해망상이라는 증세와 마주할 수 있게 해준 삶의 조건이 아니었던가 싶다. 따라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에 대해 성찰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작가는 자신이 기득권이 아니며, 강자가 아니었기에 약자에게 공감한다고 했다. 또한 이것이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영웅이 아니라 오히려 루저에 가까운 존재로 그려졌던 이유로 볼 수도 있겠다.


 

필립 K. 딕의 말에서는 작가의 생애 마지막 인터뷰와 더불어 말년의 생각들이 부분적으로 담겨있는데, 그 중에서 작가에 관해 한 언론(<악튀엘 Actuel>)이 발표한 기사 내용 중에서 인상 깊은 부분이 있어서, 이 글을 인용하며 마무리해본다.

 


놀라움은 피해망상의 해독제다. 놀라움을 많이 경험하며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은 당신이 피해망상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준다.”(89)


 

원문의 놀라움이란 용어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는 이 용어를 삶에서 느끼는 경이와 같은 것으로 대체해보았다. 삶의 경이로움은 정확히 예상된 대로 일어나는 삶과 공고한 신념 체계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질이다. 오히려 우연성 속에서, 예기치 못한 발견의 순간 따라오는 경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놀라움을 느낄 줄 아는 존재야 말로 작가가 줄곧 질문으로 던지던,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필립 K. 딕이 끊임없이 글을 쓰며 44권의 장편과 120편에 달하는 중단편을 발표하며 이루어낸 작업은 결국 인간의 조건에 대한 탐구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1] "나는 글 쓰는 게 좋네. 정말로 좋아하지. (...) 책을 탈고하면 상실감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 정도라네. (...) 소설을 탈고한다는 건 친구들을 영영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야."(38)

[2]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현실 세계에서 내게 위안을 주는 친구들의 수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겠군. 나는 소설에서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이 엄청난 용기를 발휘하는 순간을 묘사하면서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네. (...) 내가 쓰는 소설은 그의 용기에 대한 찬가라고 할 수 있겠지."(39)

[3] "(자신의 강연 <The Human and the Android>를 통해) 진정한 인간을 정의하고 싶었네. 왜냐하면 우리 중에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만 실제로는 안드로이드인 사람들이 있으니까. (..) 컴퓨터는 날이 갈수록 예민한 사고력을 가진 존재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도 점점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잖나."(53)

[4] "(진정한 인간이란) 예를 들자면, 그릇된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걸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 ‘아니, 나는 죽이지 않을 거야.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존재. 권위에 대한 일종의 망설임인데, 나는 이런 태도를 십대들, 이른바 ‘양아치 punk’라고 폄하되는 세대에서 봤다네."(54)

[5] "글쓰기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목표야.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 이를테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아내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글쓰기의 기능은 글쓰기라고나 할까."(66)
: 글쓰기의 기능에 대해.

[6] "개인의 삶은 이제 존재하지 않아. (...)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삶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사생활 범위의 축소야. (...) 모든 것이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간 거야."(75)

[7] "우리는 언제나 감시를 받고 있으므로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었어. 따라서 우리는 위선적으로 행동하거나, 거짓말을 할 여유 따위는 없다고 해야겠지. (...) 감시받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완전히 정직하게, 일관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해."(77)

"감시의 역기능은 어떤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겠지. 이건 인구가 밀집한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고. 무슨 얘긴지 알겠나? 고립이나, 은둔 따위는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야."(77)

[8] "놀라움은 피해망상의 해독제다. 놀라움을 많이 경험하며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은 당신이 피해망상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준다."(89)
: 딕에 관한 <악튀엘 Actuel> 기사 인용 내용.

[9] "전체주의는 국가뿐만이 아니라 좌파 파시즘, 심리학적 운동, 종교운동, 마약 중독 재활 단체, 권력자들, 책략가들 따위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어. (...) 내가 옹호하는 대의는 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의야. (...) 하지만 난 강자가 아니기 때문에 약자에게 공감한다네. 내 소설의 주인공들이 본질적으로 반(反)영웅들인 건 바로 그 때문이야. 거의 루저에 가까운 친구들이지만, 나는 혹독한 세상에서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특질을 부여하려고 노력한다네."(114)

[10] "첫 번째 주제는 본질적인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이고, 진정한 인간을 단지 인간인 척하는 존재와 어떻게 구별하는지에 관한 질문이라네."(152)
: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의 주제를 이야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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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5-04 1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10여년 사이 몰라보게 늙었네요.
작가가 된다는 건 이런 외모의 변화도 감수해야하는 건가 봅니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으니...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탓도 있을 것 같고.ㅠ

얄라알라 2023-05-07 15:09   좋아요 1 | URL
사진 밑 캡션을 유심히 보았는데, 최대 19년 차이일 텐데 참 많은 변화가 느껴지네요.
장편 44권
120편의 중단편...후덜덜한 수준으로 창작을 하신 분이라, 산고로 치면 몇 년 내내 산고 겪으신 것과 같겠어요

얄라알라 2023-05-07 15: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한 책 함께 읽기, 올리버 색스 책을 마지막으로 요샌 겹치는 책이 많지 않았지만
저도 드디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읽으려 합니다
초란공님 올려주신 이 책은 안타깝게도 제가 사는 지역 전체 도서관에 한 권도 없어서 구매각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데, 리뷰를 너무도 이해 잘 가게 매끈하게 써주셔서 소설 읽기 전에 큰 도움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3-06-08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초란공님^^

이 페이퍼, 당선이네요. 넘 축하드립니다.
저는 이 책은 못 읽고, 다른 걸로 필립 K 딕 접했어요.
다시금 축하드립니다
 
도도가 있었다 - 사라지고 살아남고 살아가는 생명 이야기 푸릇푸릇 지식 1
이자벨 핀 지음, 전진만 옮김 / 시금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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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시각과 인간에 의한 과잉살육의 폐해를 모든 세대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 눈에 잘 보이는 큰 동물들뿐만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에게도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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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의 시간 - 길 잃은 물고기와 지구, 인간에 관하여
마크 쿨란스키 지음, 안기순 옮김 / 디플롯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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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는 인간의 운명을 알려주는 지표다

- 연어의 시간를 읽고

 


마크 쿨란스키(Mark Kurlansky) 지음 | 안기순 옮김 | [디플롯] | (2023)

 




연어의 조상은 약 1억 년 전, 공룡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인간의 조상은 현생 인류를 넘어 유인원까지 포함하더라도 200-300백만 년에 불과하다. 인류는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공룡들을 본 적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까마득한 후배인 인간이 불과 몇 세기만에 선배인 연어의 생존마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환경 및 역사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해온 작가 마크 쿨란스키는 연어의 시간에서 민물과 바다를 오가는 대표적인 소하성 어류인 연어를 고찰하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


 

현생 인류가 출현했을 때 이들은 자연의 두려움뿐만 아니라 풍요로움도 만끽했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지식과 상상력으로 도달하기 힘든,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켈트족의 전설에 나오는 연어를 이야기해준 대목이 인상적이다. 켈트족에 따르면, 연어는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마다 더 많은 지식을 얻는다. 연어는 이미강과 바다를 모두 정복한 존재였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지식을 지니는 존재였다는 믿음이었다. 내게 이러한 믿음은 자연의 존재에 대한 신뢰와 경이, 존중이 담긴 상호관계성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모든 환경·생태 문제들은 인간의 그릇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이 오만해지면서 자연에 대한 경이감과 존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고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은 이제 자연이 내어주는 풍요로움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연어의 시간에서 저자는 유럽의 백인들로 대표되는 인간이 유럽 본토를 포함, 신대륙(특히 북아메리카 대륙)을 어떻게 유린하고 황폐하게 만들어갔는지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백인은 물고기를 식량과 거름으로 사용하다가 급기야 (강에) 댐을 세우고, 나중에는 빌레리카 운하를 건설하고, 로웰에 공장을 세우면서 물고기 이동(연어/섀드/에일와이프 등)에 종지부를 찍었다.”(139)


 

이 대목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39년 메리맥강에서 형과 함께 카누를 타면서 연어의 회유 경로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고 적은 기록이다. 이 기록만 보더라도 인간이 연어의 생존에 위협을 가한 시기는 적어도 200년은 족히 된 셈이다. 미국 역사에서 1848년은 세계사적인 시점이자 하나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바로 캘리포니아주에서 금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 세계에서 약 30만 명이 사금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해는 연어에게 암울한 미래의 시작을 알리는 해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강에서 사금을 채취하고, 광산을 개발하면서 연어 서식지가 급속하게 파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새크라멘토강에서는 사금찾기가 시작된 지 5년이 지나자 연어 떼가 사라지기도 했다. 소로가 살던 시기에 그가 보았던 문제들은 어쩌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안고 있는 보다 큰 문제는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행보에 머뭇거림 없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의 운명은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의 풍요로운 자연을 목격한 15세기 말 이후, 자연에서 나오는 산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유럽으로 가져가기 시작하면서 이미 암울한 전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북미 지역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연어 회유장소나 다름없던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템스강도 연어가 회유하던 곳이었으나 이곳에서 연어가 잡혔다는 기록은 1833년 이후 남아 있지 않다. 책에서 저자는 자기고백적인 태도로 다음과 같이 고찰한다.


 

영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산업 강대국이 되었고, 뉴잉글랜드는 영국에 버금갔다. 오염되고, 숲은 벌거벗고, 강에 유독물이 흐르고, 물고기는 죽었다. 하지만 중요한 목표는 달성했다. 유럽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과정을 되풀이할 작정이었다. 유럽인은 식민주의자들이었다. 심지어 반식민주의 미국인들도 제국주의 정복자들이었다.”(164)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성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점이 내가 발견한 이 책의 진가이기도 하다. 저자의 관점은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연어가 살아남지 못하면 지구도 생존할 희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연어가 강과 호수, 바다 모두를 정복한존재이기에, 연어가 지구의 건강을 가늠하는 지표라고 하는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 연어를 살리고 되돌아오게 하려면 강을 깨끗하게 하면 되는 걸까?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다. 연어는 무엇보다 우거진 숲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은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야 한다. 저자가 연어와 강 그리고 숲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73)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 책은 연어의 경이로움에 관한 책이면서 인간과 연어의 관계에 관한 역사, 특히 인간에 의한 연어 수난사를 이야기한다. 인간이 연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연어를 바라보는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비판적인 안목으로 재검토한다는 점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신념은 연어의 남획과 환경파괴로 인한 연어 개체수의 감소를 초래했다. 이러한 신념이 이제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마저 위협하고 있다. 인간은 종족의 생존이 시험대에 오를 때마다 지혜를 모아, 난국을 극복해왔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념도 이제는 다시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활동에 의해 야생 연어의 개체수가 감소했지만, 양어장을 구축하면 줄어든 개체수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기만이다. 뿐만 아니라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서로 의존하며 존재하는 생태계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기도 하다.


 

현재 연어의 개체수는 19세기 초반의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북반구에는 수많은 연어 어장이 있었다고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여파, 벌목과 관개 등의 개발활동과 산업 활동 등으로 숲과 강이 훼손되어 이제는 수많은 강에서 연어가 사라져버렸다. 러시아, 일본, 미국의 원주민이 식민주의 정치 세력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어업권을 박탈당하는 동안 연어도 고향을 잃어간 셈이다. 이 책은 연어를 통해 이들이 자연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생명체이며,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위협적이거나 자극적인 자료를 통해서가 아니라 단호하지만 차분히 우리가 선택하여 나아가야할 방향을 일러주는 책이다



[1]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연어가 살아남지 못하면 지구 또한 생존할 희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37)

[2] "연어는 북반구에만 서식하지만 늘 지구의 건강을 가늠하는 일종의 지표였다. (...) 연어를 통해 인간이 환경에 가한 폭력의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37)


[3] "어째서 연어는 이토록 많은 종으로 진화했을까? 끊임없이 적응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연어는 환경 변화에 맞춰 유전적 특성을 조정한다."(60)

"같은 종이면서 다른 강에서 태어난 두 연어의 DNA차이는 두 사람의 DNA 차이보다 훨씬 크다."(61)

"갈 곳을 잃고 표류하던 연어가 새로운 강에 들어가면 그곳에 적합한 특성을 지닌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62)

[4] "연어와 강 그리고 숲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73)

[5] "네덜란드는 남획뿐 아니라 수력발전 댐을 건설해 강을 오염시켰다. 네덜란드가 유럽 최대 어획량을 달성한지 100년이 지나자 라인강에는 연어가 귀해졌다."(119)

[6] "바다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풍부한 광산보다 낫다."(131)
- 뉴잉글랜드 정착을 추진했던 존 스미스 선장의 말.

[7] "벌목꾼, 소몰이꾼, 나라를 쥐고 흔들었던 석유업자를 비롯해 환경을 파괴하는 거칠고 용감한 남성을 미화한 이야기는 미국 문화에서 흔하다."(141)

[8] "16세기까지 (일본의) 아이누족은 연어를 낚으며 전통적인 삶을 고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낚시에 대한 권리와 접근성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1872년 아이누족의 소유지는 없다는 법이 공표되었다. 1899년 교묘하게 말을 꾸며 완곡하게 표현한 ‘홋카이도구 원주민 보호법’은 아이누족이 일본에 완전히 동화되어 비민족(nonpeople)이 되었으므로 땅에 대해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158)

[9] "영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산업 강대국이 되었고, 뉴잉글랜드는 영국에 버금갔다. 오염되고, 숲은 벌거벗고, 강에 유독물이 흐르고, 물고기는 죽었다. 하지만 중요한 목표는 달성했다. 유럽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과정을 되풀이할 작정이었다. 유럽인은 식민주의자들이었다. 심지어 반식민주의 미국인들도 제국주의 정복자들이었다."(164)

[10] "명확하고 단순하게 자연을 다루면 거의 틀림없이 실패한다. 자연법칙은 언뜻보면 단순하지만, 항상 결과를 추측하기조차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226)

[11] "양어장 운영 방향은 잘못됐다. 야생 물고기를 잃은 만큼 양어장 개체가 그 부족분을 항상 상쇄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258)

[12] "우리는 경제를 번영시킬 때 자연에 더 많은 손해를 가한다."(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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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 - 판사들의 판사에서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거장의 시선 1
제프리 로즌 지음, 용석남 옮김 / 이온서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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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erg, 1933.03.15 - 2020.09.18)





평등의 원칙 아래 세상을 포용하고자 했던 법조인

- 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


: 판사들의 판사에서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원제: Conversations with RBG)


제프리 로즌(Jeffrey Rosen) 지음 | 용석남 옮김 | [이온서가] | (2023)

 



서로가 잘 모르지만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공동 관심사로 시작된 인연이 평생 이어진다면 정말 멋진 일일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이 많은 이들의 롤모델로 삼고자 하는 인물이라면? 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는 미국의 법조인이자 국립헌법센터의 수장인 제프리 로즌이 20대 청년일 때 우연히 만난 이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과 나눈 대화들을 기록한 책이다. 두 사람은 음악, 특히 오페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라는 공통점으로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친구로서 존중하는 관계를 긴즈버그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 유지했다. 이 책은 단순히 한 법조인의 업적을 일별하거나 긴즈버그의 일에 대한 철학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성평등,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 음악, 삶과 사랑 등의 주제를 아우른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무엇보다 성평등과 관련하여 헌법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킨인물로 꼽힌다. 그가 단순히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평등 구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성별에 근거한 법으로 차별당하는 남성과 여성들을 모두를 위해 변호하고자 했다. 억압받거나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이 남성들과 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지려면, 여성들을 고려하고자 마련된 사회적 장치가 어떤 경우에는 여성 혹은 남성마저 가두는 기능도 한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길은 여성만을 고려하는 것에서 나아가 대등한 존재로서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긴즈버그가 변호사가 되고자 했던 1950년대의 사회는 지금과 많은 점에서 달랐다. 우선 그녀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재원이었음에도 로펌에서 변호사가 되지 못했던 3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긴즈버그가 유대인이었다는 점. 둘째, 여성이었다는 점. 셋째, 결혼한 여성이었다는 점. 특히 그녀가 로스쿨을 졸업했을 때, 자녀까지 있었다는 점 때문에 로펌에 취직하지 못했다고 한다. 긴즈버그는 당시에 자신에게 해당한 이 세 가지 조건을 삼진아웃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당시에 이런 불리한여건 속에서도 그녀는 변호사가 되고, 럿거스 대학의 법대 교수로 임용되어 당당히 자신의 꿈을 이루어나가기 시작했다. 이후의 행보는 부분적이나마 이 책에 담긴 대로다.


 

성평등의 관점에서 기존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판했던 긴즈버그는 자신의 삶에서 이 신념을 구현하고 실천해왔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한 대목은 긴즈버그가 평생의 동반자인 남편 마티와 함께 했던 56년의 결혼생활에 대한 언급이었다. 두 사람은 1950년에 코넬 대학에서 만나 음악에 대한 사랑이라는 공통점에서 시작하여 서로의 지성을 존중하며 친해졌다고 한다. 부부가 평생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 수 있을지 상상해본다. 긴즈버그는 이러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그가 써둔 결혼식 주례사 초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서로의 재능과 경험에 진실로 감사합시다. 그 감사함에 뿌리를 두고 서로 헌신하십시오. 인내, 좋은 유머, 상대방에게 주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여지껏 배워왔습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은, 마치 마법과 같이, 혼자일 때보다 두 사람을 더욱 지혜롭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경험으로 영원히 이끌어줄 터입니다.”(48)


 

미국의 전통적인 모토 중에 다음과 같이 라틴어로 된 말이 있다고 한다. “에 플루리부스 우눔 E pluribus unum”. 긴즈버그의 말에 따르면, 이 말은 여럿이 모여 하나(one out of many)’란 의미라고 한다. 미국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이룬 한 국가다. 미국이 물질적인 풍요 말고도 정신적인 풍요를 성취한 이유를 꼽으라면, 한 때 이러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겠다. 지금은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청과 존중이 사라진 것만 같아 안타깝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언젠가 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포용에 관한 저자 제프리 로즌과 긴즈버그와의 대화였다.


 

로즌: "포용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긴즈버그: "포용이란 것은, 소외된 사람들을,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두 팔을 벌려 공공체의 일부로 껴안는 것입니다."(268)


 

우리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긴즈버그야말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9명으로 이루어진 연방 대법관으로 일할 때, 자신과 자주 의견을 달리하는 스캘리아 대법관과의 오랜 우정과 존중의 관계가 한 가지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의견이 그렇게 다른 사람과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는지 저자가 묻자, 긴즈버그는 스캘리아 대법관의 좋은 점으로 답을 대신했다. 스캘리아는 누구보다 멋진 유머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말이다. 긴즈버그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장점을 찾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상대방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경청할 줄 아는 태도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사실 이건 당사자 혼자만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다고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 역시 훌륭한 인격을 가진 인물이어야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이 사례 역시 긴즈버그가 평생 삶 속에서 보여준 포용의 정신을 발 보여준다는 점이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연방 대법원에서 소수의견을 가장 많이 낸 법조인에 속했다는 사실도 그녀의 포용 정신을 고려하면 이해가 잘 된다. 그녀는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들이 모인 대법원이라도 실수를 할 수 있으며, 나쁜 결정을 하기도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녀가 지지한 소수의견의 핵심 개념은 상식의 정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서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이 때 긴즈버그는 우리가 끊임없이 비기득권에 속한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살아가는 한, 우리는 한없이 배울 수 있습니다.”(151) 이는 불완전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피고, 나와 다른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 일에서 출발할 것이다. 특히 법조인은 법의 적용에 있어 누가 더 큰 고통을 받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그의 눈길이 언제나 가난하고 기득권에 속하지 못한 이들, 특히 여성들에 좀 더 머물게 되었을 것이다.


 

긴즈버그가 공부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마주한 불평등한 현실을 회피하거나 불평만 하지 않고 직접 변화시켜 가는 일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후손들은 행운아들인지도 모른다. 그가 없었다면 여전히 사회에 불평등의 잔재가 남아있긴 하지만, 지금의 정도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녀는 2020년에 병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을 지냈다. 책의 저자와 긴즈버그가 나눈 대화를 따라가 보면, 두 사람이 반평생 나눈 우정의 대화가 얼마나 풍요로운 시간이었을지 상상해본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두 사람만의 사적인 대화를 넘어 한 시대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기도 할 것이다.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혹은 한 사회에 커다란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실제로 그의 존재가 사회를 조금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긴즈버그 대법관이 자신의 꿈을 말한 대목이 인상적이어서 인용해본다. 상식적인 말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한 꿈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부모 역할과 직장 생활을 꾸려가는 삶의 방식을 만드는 것, 그 방식으로 사회가 굴러가도록 남녀가 같이 노력하는 것입니다.”(1984년에 언급






[참고 - 오탈자]

[1] 34면, '우리임을 것을 밝히는'  ==>> '우리임을 밝히는'


[2] 87면, '1984년, 페미티스트'  ==>> '페미니스트'





 


[1] "긴즈버그는 추상적인 원칙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개인들, 성별에 근거한 법으로 차별당하는 남성과 여성 개인들을 위해 변호하며 정의를 구현해나갔다."(33)

[2] "제 목표는 여성들을 떠받치고 있다고 여겨지는 그 받침대가 실은, 모두를 가두는 우리임을 밝히는 것이었죠. 한 번에 한 걸음씩 법원이 깨닫게끔 하고 전진시키는 일이 그 당시 제 목표였습니다."(34)

[3] "궁극적으로는, 시민들 스스로가 조직해야 합니다. (...) 사람들에서부타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종류의 추진 없이, 입법부는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74)

[4] "여성과 남성이 존재하는 방식을 일반화시키면, 고유한 각 개인에 대한 결정을 바르게 내릴 수 없다."(106)

[5] "그게 바로 릴리가 한 행동이죠. 소수의견의 핵심 개념은 상식의 정신입니다."(177)

"전통적으로 소수의견이 장차 이 나라의 법이 되어왔습니다. (...) 법원이 잘못했다는 걸 인식한 소수의견이 있었습니다. (...) 법원이 틀린 판단을 내렸음을 인식하고 옳은 판결을 써내려간 사람들을 한번 돌아보세요. 처음에는 소수의견으로 출발하지만, 그 다음 세대에서는, 법원을 대표하는 의견이 되었다는 것을."(178)

[6] "의료보험 또한 사회안전망의 결함을 보완한다고 봅니다. 사람은 늙거나 파트너가 사망했을 때 사회보장 혜택을 받습니다. 의료보험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국민들의 기본적인 필요 사항이 채워지고 있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습니다."(187)

[7] "법원은 일이 일어난 뒤에, 사후에 대응하는 기관입니다."(195)

"법원이 사회적 변화를 선두에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방향으로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했다."(198)
: 법원의 역할에 대해

[8] "평등이란 개념은 처음부터 존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회에서 실현되어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투표권을 가지기까지, 우리 여성은 1868년부터 지금까지 참으로 긴 시간을 걸어왔습니다."(206)

[9] "‘넌 안돼’라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마세요. 꿈이 있고, 추구하고 싶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을 기꺼이 할 의지가 있으면, 누군가 ‘넌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게끔 내버려두지 마세요."(235)

"진짜로 실현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기꺼이 그걸 이루는 데 필요한 노력을 하세요."(272)


[10] "좋은 시민이라면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가 있다는 조언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의무란, 우리 민주주의가 적절히 작동하도록 돕는 것이겠지요."(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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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2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3-03-22 11:24   좋아요 1 | URL
앗~!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즈버그와 저자가 든 판례 관련 배경을 잘 몰라서 헌법에 대한 긴즈버그 대법관의 존중과 여기에 담긴 깊은 의미까지 파악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대화 속에 저도 함께한 것처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기득권에 속하여 안락한 삶을 누릴수도 있는 위치에서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이들을 진심으로 ‘포용’하는 일이 사회를 얼마나 더 좋게 바꿀 수 있는지....대화 속에서 작은 희망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