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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티
테주 콜 지음, 한기욱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조건, 그리고 불안을 읽다
- 《오픈 시티》
테주 콜(Teju Cole) 지음 | 한기욱 옮김 | [창비] | (2023)
《오픈 시티》의 화자 줄리어스는 뉴욕에서 일하는 정신과 전문의다. 성공한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상상하려면 몇 가지 정보가 최소한 더 필요하다.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독일에서 부모와 함께 난민의 지위로 지내기도 했던 것들 말이다. 이제 좀 더 윤곽이 보인다. 화자는 인생의 여러 국면에서 수차례 ‘경계’를 넘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삶을 하나의 연속으로 경험하고 오로지 삶이 사라진 후에, 과거가 된 후에야 비로소 삶의 불연속들을 본다. 과거란,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대부분 텅 빈 공간이며 의미심장한 인물과 사건이 떠다니는 무(無)의 거대한 확장이다. 나이지리아가 내게 그랬다.”(311)
이제 독자는 줄리어스를 따라가며 동시에 그의 의식도 들여다본다. 줄리어스는 회계사와 만난 후 맨해튼의 브로드웨이를 따라 걸어 내려간다. 맨해튼의 남단에 위치한 배터리 파크에 닿은 그는 뉴욕시의 과거를 소환한다. 뉴욕시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유럽의 이민자들이 배 위에서 보았을 법한 자유의 여신상과 이들이 피곤과 희망이 섞인 몸과 마음으로 내렸을 엘리스 아일랜드가 보이는 장소다. 하지만 미국으로 들어오던 사람들 중에는 이민국이 있던 엘리스 아일랜드마저 구경하지 못했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을 타고 왔던 사람들이었다. 줄리어스는 이 도시의 공간 이면의 역사를 생각한다.
“배터리 파크는 19세기 중반에 이 도시의 활발한 상업지구였다. 노예무역은 1820년 미국에서 사형제가 되었지만 뉴욕은 오랫동안 노예무역선의 조선, 설비, 보험, 진수에 가장 중요한 항구로 남아 있었다. 그런 노예무역선의 인간 화물인 노예들 대다수는 쿠바로 갈 것이었다. 아프리카인들은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325)
“노예제로 이익을 얻는 데서 뉴욕의 씨티은행은 동시대 상인들과 은행가들이 세운 다른 회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중에 AT&T와 콘 에디슨이 된 회사들이 바로 이런 환경에서 부상했다. 전세계 최고 부자들 중 하나인 모지스 테일러는 오랫동안 설탕 상인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뒤 1837년에 씨티은행 이사진에 합류했다. 그는 1855년에 은행장이 되었고 1882년 죽을 때까지 그 직책에 복무했다. 테일러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 측의 군수물자에 자금을 지원했지만 뉴욕항에서 쿠바산 설탕 판매 중개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기도 했다. 그는 사탕수수 농장주들의 수익에 투자하고 뉴욕시 세관의 화물 수속을 용이하게 하며 ‘노동력’ 획득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했다. 달리 말하면 그는 농장주들이 노예 구매 비용을 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일을 실행하는 일환으로 자기 소유의 배를 가동하기도 했다. 그는 여섯 척의 배를 공해에 출항시켰다. 테일러와 그와 같은 다른 은행장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들의 그런 낙관주의는 크게 수지맞았다. 수익률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완전한 장비를 갖춘 약 13,000달러짜리 노예선 한척이 20만 달러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인간 화물을 실어나를 것으로 예상되었다. 1852년 씨티은행이 최대 수익을 거두었을 때, <뉴욕 타임즈>는 만약 당국이 이런 부당 이익 취득을 중지시킬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면 그건 단지 당국 자체의 우매함을 실토하는 꼴이며, 그게 의지의 문제라면 당국이 초래한 도의적 죄는 다름 아닌 노예무역상들의 죄와 동급이라고 지적했다.”(325-326)
줄리어스는 은행들이 하는 행적에 대해 비판의 언어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저 브뤼셀에서 만나 열띤 정치토론을 벌였던 파루크가 한 말처럼, 독자에게도 ‘네가 이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듯했다. 줄리어스가 휴가 중 브뤼셀에서 만난 파루크는 정치철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던 독립 연구자였다. 그 역시 아프리카인이며, ‘제2의 에드워드 사이드’가 되고 말하던 청년이었다. 정치철학자로서 파루크는 ‘다름’의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주목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소설이 12년 전인 2011년에 출간된 것을 고려하면, 식당에서 이들이 토론하던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문제는 특히나 놀라울 정도로 시의성이 있는 문제였다. 사실 꽤나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 문제였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것처럼 현재진행형인 장면이었다.
파루크는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의 생각을 보여주는 줄리어스와 여러 면에서 견해를 달리하지만, 이 ‘다름’에 대해 기꺼이 수용하고 의견을 나눈다. 나아가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 문제의 핵심에 ‘시오니즘’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물론 하마스나 헤즈볼라 등의 과격하고 무모한 테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을 둘러싼 문제에서 진보적인 미국지식인의 이중적인 입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어 뱀과 벌의 가르침을 전하는 솔로몬 왕의 놀라운 전래 설화를 이야기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결국 파루크는 미국에 의해 ‘악’의 세력으로 불리는, 이들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솔로몬 왕의 이야기를 통해 전한다. 파루크가 ‘우린 개별자들이야.’(255)라고 한 말에는 서로 다른 존재의 다른 의견은 필연적이면서도,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동시에 서로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여기서 처음에는 의문 한 가지가 들었다. 이 모든 문제들이 나와는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현재 내 삶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종종 나의 삶이 겨울을 준비하는 마른 나무에 간신히 매달린 나뭇잎 같다고 여길 때가 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존재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나는 보이지 않는 타자에 너무나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다. 내가 사는 공간의 실질적인 주인은 은행이며, 나는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내 생활의 중요한 활동을 이어간다. 또 이를 위해 통신망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고,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사더라도 택배서비스를 이용한다. 나의 먹거리는 지방 현지에서 직접 나는 것도 있지만, 공장을 거쳐 나오는 가공식품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또 이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문명의 동력인 발전소의 신세를 져야만 한다. 나의 외모와 행동은 어떤가. 이 역시 사회 규범의 제약을 받고 있어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생각해보면 내 삶의 절대적인 부분을 자본과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연결망을 유지하는 이들은 결핍된 자원과 동력을 어딘가에서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든, 팔레스타인이든 공격을 주고받으며 아이들, 누군가의 가족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에 우리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삶을 구축하는 연결망에 대한 ‘교란’은, 연결망의 유지에 관여하는 집단의 활동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삶도 이 사건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적어도 내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한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종종 “세상에서 노예 아닌 자가 어디 있는가? 있다면 나와보라.”(1장, 《모비 딕》, 현대지성, 이종인 옮김)라는 이슈메일의 외침이 떠오른다. 이 말은 사실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인이자 연설가, 철학자였던 세네카의 말이라고 한다. 삶을 붙들어 매는 인간의 조건은 시대마다 다를 것이지만, 시대를 넘어 여전히 개개인의 삶을 구속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장, 혹은 자기장처럼 말이다. 어쩌면 인류사(특히 서양사상사)에서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그토록 천착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자유’였던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지식인들은 인간의 조건으로서 ‘자유’의 문제를, 자신과 인간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고민함으로써 나름의 유산을 남겼다. 인간사의 전제 조건은 아마도 지배하고 규제하는 소수의 세력들과 그 대상이 되는 인간 집단이 설정되어야 전개될 수 있는 것일까. 《오픈 시티》의 화자 줄리어스는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문명의 흔적을 통해 그 안에 깃든 역사를, 그리고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소설의 제목 ‘오픈 시티’는 ‘전시에 비무장 상태로 있는 대신 적의 가혹한 폭격을 면하는 도시’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소설에서 배경이 되는 브뤼셀과 뉴욕에 대응하는 것일 테다. 특히 주 무대가 되고 있는 뉴욕은 세계의 이민자들과 노예가 유입되던 도시이기도 했으니 ‘환대’ 혹은 ‘수용’의 의미와 연관지어볼 수도 있겠다. 다만 뉴욕은 세계무역센터가 ‘가혹한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소설의 제목은 꽤나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한편 유색인의 정체성을 지닌 줄리어스의 제국주의·식민주의에 관한 견해는 브뤼셀에 사는 29세의 독립연구자 파루크와의 토론에서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파루크가 원래 공부하려던 정치철학의 길이 무산되고 번역학을 공부하는 설정도 그런 의미에서 주목해본다. 번역가 안톤 허가 자신의 에세이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에서 “식민주의자들은 절대 현지 언어를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215)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타국의 언어를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그들(식민주의자들)의 언어를 출발어로하여 자신의 언어를 도착어로 번역하거나, 이들의 논리를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 비판할 수 있을 때, 상징적으로 또 다른 번역의 기능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언어가 사용되는 방식은 권력관계의 산물임을 반증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아프리카 출신의 청년 정치철학자가 번역을 공부하는 설정이 새롭게 다가왔다.
함께 읽었던 또 다른 산책자 이야기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를 생각해본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 구보는 현재의 도시 경성을 걸어 다니며 줄리어스와 비슷한 시도를 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번번이, 그리고 불현 듯 중단되고 만다. <대학노트>를 들고 사람들의 모습이나 사건, 도시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려하면, 늘상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복 경찰로 보이는 이들의 시선에 예민하게 감지하는 구보의 모습은, 식민지 현실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개된 거리에서도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위한 메모마저 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이처럼 식민지 현실은 도시에 살던 이들을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고 이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구보는 주점에서나마 자신의 노트를 펼칠 수 있었다. 감시의 시선이 멀어진, 은폐된 주점에서나마 마음 놓고 펼칠 수 있었던 장면이 인상 깊다. 여기에 쓰인 단어들은 여러 가지 정신적인 이상 징후를 알려주는 병명이었다. 식민지 공간을 살아가는 청년 지식인들의 분열적인 자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한편 구보는 식민지 공간의 지식인 청년으로서 현실의 한 부분과 거리를 두는 듯 보인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는 자본주의현실에 대한 세태에 국한될 뿐이었다. 독립운동을 하거나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이런 활동을 하는 동료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 대한 구속감 혹은 공포와 두려움 때문일까. 소설의 장면에서 식민지 현실을 떠올릴만한 장소나 상황 앞에서 구보는 어김없이 ‘신경쇠약’을 들먹이며 의욕을 잃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매여 있는 구보 자신에 대한 초상이 바로 ‘신경쇠약’이란 증상으로 나타나는 듯했다.
취직도 쉽지 않아 주머니 사정도 변변치 않았던 구보는 타인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다. 공개된 장소에서도 자신의 뜻대로 어찌하지 못하는 구보의 시선은 외부의 현실에 부딪쳐 되돌아와 내부로 향하곤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문인들마저 금광사업에 뛰어드는 ‘황금광시대’였다. 많은 사람들처럼 현실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자신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거리를 정처 없이 부유하며, 하루를 보낸다. 저자 박태원의 위트가 재미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작품 전반에 걸쳐 우울의 정서 역시 두드러진다. 구보는 여러 장면에서 금전과 행복의 관계, 행복의 조건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90년 전의 삶도 지금처럼, 혹은 이미 자유롭지 못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2000년 전의 철학자 세네카가 말했던 진실은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시대와 정서, 지역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두 소설(《오픈 시티》,《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유사한 점은 아마도 특정한 플롯이 없다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특별히 극적인 사건 없이 산책자의 동선과 시선을 따라 우연히 만나는 대상으로부터 새로운 기억이나 이야기가 파생된다. 단지 일상의 장면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주목해본 소설의 특징은, 두 작품 모두 화자가 생각할 때, 이들의 생각이 그대로 화면에 받아쓰기로 나타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 두 소설 모두, 어떤 부분에선 대화 도중에 누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줄리어스가 브뤼셀의 거리를 걷든, 뉴욕의 거리를 걷든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만나는 문명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과거의 기억은 개개인에게 다르게 간직될 것이었다. 우리가 연속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대부분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개별적으로 다르게 기억되는 사건들만 남아 불연속적인 모습을 하게 될 것이었다. 거리를 걷는 줄리어스를 따라 읽는 동안에도 나는 어떤 현실을 살고 있는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다. 미디어를 통해서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받고, 미사일에 공격받아 시신이 산적해가는 현실, 거대한 자연 재해든 인재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은 과연 내가 정말로 속해 있는 현실이 맞을까 싶은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존재일 뿐이고, 다행히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살고 있다는 상황자체가 비현실적이기도 혹은 아찔해지기도 한다. 두 소설을 읽으면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조건들을 또 다시 발견한다. 이것이 우리 삶에서 ‘불안’이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이유인지 모른다.
[1] "나는 종종 밤늦게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음을 깨닫고는 지하철을 타고 귀가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정신의학과 전임의 과정의 마지막 해가 시작될 때, 뉴욕시는 걷기의 속도로 내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25)
[2] "거대한 사람들 무리가 지하의 막힌 공간들 속으로 서둘러 내려가는 광경은 언제나 낯설었으며, 나는 인류 모두가 본능에 반하는 죽음충동에 떠밀려 이동식 카타콤 속으로 몰려가고 있다고 느꼈다."(33)
"그리고 그녀가 써준 전화번호를 바라보면서 (...) 수백만의 우리가 도시들 밑에서 이동하는 지하 여행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인간이 땅 밑에서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이 보통이 된 시대의 주민들인 것이다. 나는 또한 잊힌 도시들, 대규모 공동묘지, 카타콤에 있는 무수한 사자(死者)들을 생각했다."(194)
[3] "하지만 나를 건드린 것은 내 정신 지형에서 붙박이 같은 이들 기업의 사라짐뿐 아니라 가장 탄력적인 기업들조차 삼켜버리는 시장의 신속성과 냉정함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확고부동하게 보였던 업체들이 얼핏 보기에 몇 주라는 기간 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이다."(56)
[4] "작년에 봤던 다른 영화, 동아프리카 거대 제약회사들의 범죄에 관한 영화가 내게 좌절감을 안겨준 것은 플롯 때문이 아니라(플롯은 그럴듯했다), 아프리카의 선량한 백인이라는 틀에 박힌 설정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는 항시 대기 중이었고, 백인 의지의 토대이자 백인 활동의 배경이었다."(74)
[5] "약 이백년 후에 포트 오렌지 지역의 한 청년이 허드슨강을 따라 내려와 맨해튼에 정착했을 때, 그는 흰 리바이어던을 소재로 걸작을 쓰리라고 결심했다. 한때 트리니티 교회의 교구 주민이었떤 저자는 자신의 책을 ‘고래’The Whale라고 이름 지었는데, 첫 출간 이후에야 ‘모비 딕’Moby-Dick이라는 부제가 덧붙었다."(114)
[6] "엘리스 아일랜드는 주로 유럽 난민들의 상징이었다. 흑인들, 이른바 ‘우리 흑인들’은 훨씬 거친 입국항을 알고 있었다."(121)
[7] "줄리어스Julius라는 이름은 나를 또다른 장소와 연결해주었고 내 여권과 피부색과 함께 내가 나이지리아에서 다르다는, 따로 놓여 있다는 감각을 강화해주는 것들 중 하나였다. 나는 올라튜보선이라는 요루바식 중간 이름이 있었지만 결코 쓰지 않았다."(165)
"어머니는 이십대 초반에 독일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도망쳤고 율리아나 뮐러Julianna Müller는 줄리앤 밀러Julianne Miller가 되었다."(166)
[8] "브뤼셀의 통치자들이 이 도시를 비무장 도시로 선언하고 그럼으로써 2차 대전 동안 폭격을 면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브뤼셀은 잔해 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드레스덴이 되었을 것이다."(199)
[9] "에드워드 사이드가 내게 그토록 소중한 이유가 바로 그거야, 그(파루크)가 말했다. 알겠지만, 사이드는 젊었을 때 골다 메이어가 발표한 그 성명, 팔레스타인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고 그 말을 듣고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여하게 됐어. 그는 다름이 결코 수용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지."(213)
[10] "얀 반에이크가 14309년대에 크고 붉은 터번을 쓴 자화상을 그렸을 때, 그건 이방인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는 15세기 겐트의 다문화주의를 입증한 것이었다."(217)
"그들은 단일한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흔하고 얼마나 부질없는지 감지하지 못했다. 이런 무지는 분노하는 젊은이들과 강력한 정치적 수사로 그들을 옹호하는 나이 든 사람들이 전세계에 걸쳐 공유하는 특징이다."(217)
[11] "그러더니 그가 우리 전래 설화, 솔로몬 왕에 관한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하고 말했다. 솔로몬 왕이 한번은 뱀과 벌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어. 솔로몬 왕의 말에 따르면, 뱀은 죽임으로써 자신을 방어해. 하지만 벌은 죽음으로써 자신을 방어하지. (...) 그러니, 모든 피조물은 자기 힘에 걸맞은 방법을 지니고 있어. (...) 전에 말했듯이, 줄리어스, 나는 네가 이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 내 생각에, 팔레스타인 문제야말로 우리 시대의 중심적인 문제야."(245)
[12] "유대인들은 세상을 침묵시키기 위해 그 숫자를 이용해. 난 사실 정확한 숫자가 뭔지 아무 관심 없어, 젠장. 모든 죽음은 고통이야. 타자들도 역시 고통을 겪었고, 그게 바로 역사인거야, 고통이."(249)
[13] "내게 중요한 건 아랍 세계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우리도 단일체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개별자들이라는 걸 세상이 알아보는 거야. 우린 서로 의견이 달라. 방금 내가 내 절친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걸 봤잖아. 우린 개별자들이야."(255)
[14] "어떤 상실이 그들의 웃음과 추파 이면에 놓여 있는지 궁금했다. 이들(르완다인들) 대다수는 르완다 인종대학살 시기에 십대였을 것이다. 여기 있는 저 사람들 중에 누가 살해를 했을까, 아니면 살해 현장을 목격했을까, 나는 자문했다. 조용한 얼굴들에는 분명 내가 볼 수 없는 어떤 고통이 가려져 있었다."(280)
[15] "본능적으로 아기를 구한 것은 작은 행복이다. 르완다인들과, 그 살아남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 것은 작은 슬픔이다. 최종적인 익명성이라는 생각은 조금 더한 슬픔이다. 아무런 말썽 없이 성욕을 충족한 것은 조금 더한 행복이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이런 식의 상념이 계속되었다."(293)
[16] "생각들이 서로 재빨리 뒤엉켜서, 비행기를 탔을 때 으레 하게 되는 보통의 병적인 생각 외에도 나는 이상한 정신적 전위(轉位) 상태를 떨치지 못했다. 비행기가 하나의 관이고 아래의 도시는 다양한 높이와 크기의 흰 대리석과 석조물이 있는 거대한 묘지라는 생각이었다."(300)
[17] "이 도시(뉴욕) 곳곳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작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다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310)
[18] "우리는 삶을 하나의 연속으로 경험하고 오로지 삶이 사라진 후에, 과거가 된 후에야 비로소 삶의 불연속들을 본다. 과거란,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대부분 텅 빈 공간이며 의미심장한 인물과 사건이 떠다니는 무(無)의 거대한 확장이다. 나이지리아가 내게 그랬다."(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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