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지능 -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인간의 일곱 가지 수학 지능
주나이드 무빈 지음, 박선진 옮김 / 까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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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탐구, 인간의 고유한 자리를 찾는 여정

- 수학 지능


주나이드 무빈 지음 | 박선진 옮김 [까치] | (2023)

 



2016년 한 해를 특징지었던 사건들 가운데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건이라면,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에서 그렇게나 빨리 인간을 상대로 승리할 줄은 몰랐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작년 이맘 때 즈음에는, -GPT의 출현이 또 한 번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나는 아직 제대로 이 기술을 사용해보진 않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꽤 많은 이들이 이미 일상에서 이 기술을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 소식에 으레 따라 나오는 전망은,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한 예견 같은 것들이다. 과학기술의 오랜 역사를 일별해볼 때 한 가지 분명해지는 사실은, 과학기술이 엎지른 물컵같다는 것이다. 물이 담긴 컵이 한 번 엎질러지면 컵이 넘어가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과학·기술이 인류의 편의를 위해 공개되어 사람들의 손에 닿은 이상은, 그 결과가 인간에게 유해하다고 판명이 난다고 해도 이미 늦은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곤충을 박멸하려는 목적으로 제조된 DDT를 떠올려보자, DDT는 한 때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약품이다. 하지만 인간뿐만 아니라 생태계에 큰 피해와 위협을 준다는 평가가 나오자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사용이 금지되었다. 그 결과는 어떤가? 전 세계의 해양 생물을 조사해보면, 여전히 모든 생물에서 (정도차이는 있지만) DDT 성분이 검출된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DDT가 사용 금지되긴 했으나, 전 세계에서는 이보다 수천 배 더 강력한 살충제 역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DDT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렇게 인간이 도입한 기술이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와 인간에게 피해를 주거나 심지어 공격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과학자, 인공지능 전문가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인공지능과 관련한 주제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격하거나 실존적인 위협을 주지는 않을지, 그리고 인공지능이 인간 존재를 온전히 대체해버리는 것은 아닌지에 관한 점이 대부분이다.

 

알파고의 활약, -GPT의 등장뿐만이 아니다. 이제 인공지능은 지식인들이 읽는 잡지에 기사를 쓰기도 하고, 세계의 다양한 언어 사이에 놀라운 번역기능을 선보이면서 인간의 많은 노동을 대체하리라는 전망이 끊임없이 대두된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과 함께 지내야할 미래에 유망한직업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탐색하기도 한다. 기계는, 혹은 알고리즘은 지치지 않고 인간의 역량을 넘보고 역할을 대체하려한다. 쓰기와 읽기, 작곡, 그림그리기, 얼굴 식별 등등은 놀라운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인간의 노동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전망된다. 인공지능은 엎질러진 물처럼 이제는 되돌리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술이 인간에게 불리하고 심지어 위협적이라고 밝혀진다고 해도 말이다. 이제 이 기술이 기존 시스템에 유입된 이상, 마치 없었던 것처럼 이전으로 되돌아갈 길은 없다.

 

그렇다면 곧이어 떠오르는 의문이 한 가지 있다. 인류는 인간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인간의 많은 활동과 역량이 언젠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고민은, 수학자이자 교육 전문가이기도 한 주나이드 무민의 첫 책 수학 지능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큰 대의는, 아무리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인간 고유의 역할이 있으며, 이를 지키고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데 있다. 그는 사람이 인공지능과 다른 본질적인 특징들을 7가지 항목 - 추정, 표상, 추론, 상상력, 질문, 조율, 협동 - 의 키워드로 하나씩 따져보고 있다. 이 중 앞에서 5가지 항목은 인간 고유의 사고방식과 연관한 특질을 파헤치고 있다. 반면 나머지 두 항목은 지능이 꽃을 피우는 데 필요한 인간 지능의 작동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 주나이드 무빈은 인공지능이 따라올 수 없는’, 인간만의 지능을 특별히 수학 지능이라 이름 지었다. 책에서 그는 수학이라는 용어에 잘못 씌워진 의미를 정정하며 자신의 여정을 시작한다.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권의 수학 교육과정에서 수학이 학생들의 계산 능력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문제 제기였다. 책 전반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수학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다. 기능적인 계산을 넘어 수학적 사고력에 방점을 부여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이 수학 지능이야말로 인간이 선험적으로 지니고 태어난 능력이라고 말한다.

 

아마존 부족 피라하족과 생후 6개월 된 영아의 수 개념, 혹은 수 감각에 대한 관찰과 실험 결과, 이들의 수 감각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결론이 매우 흥미로웠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최대 4까지의 정확한 수 감각을 본질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5이상의 보다 큰 수에 대해서는 이를 다룰 수 있는 사고 장치를 발명한 셈이다. 저자는 인간의 이런 사고 과정에 인공지능이 해결할 수 없는 추정의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인공지능, 혹은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하면, 아무리 똑똑한 천재 수학자라도 엄청난 시간을 요구하는 계산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다. 따라서 저자의 입장은 불가해한 작동방식으로 운영되는 인공지능의 알고리즘과 인간의 수학적 사고력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가 학생들의 계산 능력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면 답은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는 다음 세대의 수학적 사고력을 길러줄 수 있는 교과과정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구해야할 것이다.

 

한편,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수 없는 인간의 수학적 사고력에는 상상력이 있다. 알고리즘은 엄밀하고 논리적인 규칙을 적용할 수 있거나, 어떤 대상을 부호화하여 조작할 수 있을 경우에 한하여 활용할 수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실제 세상은 훨씬 크고 복잡할 뿐만 아니라 모호함 혹은 불가해함이 가득한 곳이다. 이를 알고리즘의 언어로 마치 번역하듯 바꿀 수 있는가하면,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상력은 실제 세계를 파악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준다는 데 경이로움이 있다. 수학자가 0과 허수를 고안해내고 활용하기 시작한 데는 체계 자체의 허점너머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 허용된 규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상상력을 떠올릴 때, 나는 종종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을 떠올리곤 한다. 그는 책에서 소개된 파인만 다이어그램과 같이 시각화된 사고방식으로 유명하다. 특히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실제적인 물리학 연구에 엄밀하고 추상적인 계산만이 올바른 연구방식이라고 여겨졌다. 따라서 중요한 계산 과정에서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활용할 경우, 다른 연구자들의 멸시도 있었다. 기존의 틀에 박힌 연구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것을 꺼렸던 것이다. 특히 화려한 수식으로 기본 입자들의 충돌과 관련한 계산 과정을 입증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고 한다. 이와 달리 파인만은 입자 충돌이라는 실제 사건을 직관적으로 반영한 시각화 장치(그림)를 사용하게 된다. 이 때 그는 대상이 되는 물리 현상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고도의 상상력을 통하여 논리와 훈련된 계산 방식과 결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인만의 다이어그램은 이렇게 복잡한 현상을 보다 간단히 하고 이를 직관할 수 있는 인간의 상상력을 최대로 활용한 도구가 아닐까 싶다. 이 한 가지 사례만으로도 파인만은 저자가 언급한 인간만의 사고방식 5가지를 긴밀하게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해당 주제 혹은 대상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지 못한다. 여기에 큰 틈새가 있다. 자연스러운 경우라면, 질문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반영한다. 아이들을 선천적인 수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무엇보다 호기심을 갖는 종족이기에 그럴 것이다. 이는 대상을 알고자하는 인간의 고유 특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여기에도 바람직한 수학과정에 관한 실마리가 있다. 수학을 배우는 아이들이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도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학생으로 길러내는 것이 앞으로는 더욱 요구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수학 지능을 잘 활용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새롭게 발견해낼 수 있지 않을까싶다.

 

책에서 저자가 제시한 인간의 사고방식 5가지 외에 인간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수 없는 지능의 원리는 조율협동의 영역에 놓여 있다. ‘조율은 인간의 자기성찰적 검토 역량이라고 이해된다. 사고과정에서 자신의 모습을 살피고 사고방식을 조정하는 활동이다. 반면 협동1+12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처럼, 여러 구성원들이 함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인 셈이다. 저자는 이 협동 과정에서 인간의 활동이 빛을 발하는 데에 구성원들이 제안하는 의견의 다양성을 무엇보다 존중한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례가 생각났다. 올 여름에 개봉했던 영화 <오펜하이머>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펜하이머가 지휘하던 핵무기 개발 작전인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군부의 지휘자 그로브스 장군은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을 상당히 경계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토론을 하기 위해 여러 과학자들이 모여 일급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보안유지에 리스크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그로브스 장군은 오펜하이머와 과학자들에게 구획화지침을 준수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나누고 이를 공유하는 과정이 작전의 성공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던 것이다. 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부분으로 저자가 제시한 협동의 사례에서 가장 먼저 이 장면이 떠올랐다. 딥블루나 알파고와 같이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번개와 같은 속도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지만, 데이터나 정보의 가치와 중요도를 평가할 수는 없었다. 핵개발 과학자들은 해당 주제에 밀접하게 관련된 정보를 선별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견해를 검토함으로써 군부의 구획화요구에 맞섰을 뿐만 아니라 목표한 성취를 결국 달성했던 것이다(, 여기서는 무기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문제는 별도로 고려하기로 한다).

 

수학전문가로서 저자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선천적인 수학 지능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물론 희망적인 소식만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구현 정도는 해마다 발전한 모습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다양한 기능들은 알고리즘이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조작된 내용을 기반으로 하는 기사가 큰 영향을 미치고, 편견을 증폭시킬 수도 있음을 떠올려보라.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54)는 말도 함께 말이다. 저자가 앞에서 기하급수적 증가지수적 증가에 대해 설명한 것처럼, 보다 새로운 기술과 역량을 지닌 다음 세대의 인공지능이 개발되는 것은 우리가 쫓아가기도 힘들 정도로 빨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하고 보다 자유로운 상황에 놓이기 위해서 저자는 인간 고유의 능력인 수학 지능을 보다 개발하여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일을 독자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여러 인공지능 전문가가 인공지능에 대해 우려와 두려움을 이야기했다. 현재 주요한 구현 방식으로서 기계학습 알고리즘 시스템은 인간에게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계학습에 기반한 알고리즘이 우리에게는 불가해한 작동방식이라는 의미다.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없기에, 인간은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인간이 시도하는 모든 기술 가운데 인공지능과 기계가 인간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을, 인간이 존엄성 지키고자 기술개발을 늦추거나, 이미 개발된 기술을 결코 버리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 기계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인간의 능력·역량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저자는 이 인간 고유의 능력이 바로 수학 지능이며, 수학 지능의 원리 7가지를 소개했다. 그가 수학의 렌즈를 통해 인간지능과 기계지능의 본질을 조망하고자 한다.”(49)라는 포부를 다시 확인했을 때,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독자로서 우리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함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인간이 인공지능과 인간이 다른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수학적 관점에서 탐구하지만, 결국 이 작업은 다름 아닌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수학 자체, 그리고 인공지능은 모든 면에서 완전무결한 체계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넘보지 못할 인간의 고유한 자리는 어쩌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모호함불일치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테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때 비로소 인공지능을 시험 삼아 우리의 통찰력을 구현하며 상호보완적인 협력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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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1-20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공지능AI의 개발 자체도 인간이 하는 일이므로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수학적 사고가 뒷받침된 개발품이어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자 종이 인형을 만드는 

아내의 작은 전시를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읽기와 쓰기, 책으로부터 시작된 인연이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인연과 관계맺기의 모습을 경험해보게 되었네요.


이번 전시는 작고 조촐한 곳에서 준비되었습니다.

이런 장소가 있을 줄을 생각도 못했을 법한,

방산시장의 독립 서점 '그래서 책방'에서 제공한

'그래서 쇼룸'이라는 곳에서 진행됩니다.


이곳 방산시장 주변에는 인쇄소를 비롯하여 

많은 업종의 상가가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이 가운데 인쇄소에서 책이나 인쇄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르고 남아 버려지는 종이들이 발생합니다.

이를 안타까워하신 업체 사장님과 이런 상황을 새로운 작업으로 

연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책방, 예술가가 모여 멋진 작업들을 

하고 계시더군요. 


책과 사람은 이러한 인연들을 알아보고 손을 내밀기도 하니

신기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전시장은 여러 업종의 현장이 모여 있는 종합시장 상가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처음 오시는 분들은 '미궁'의 신세계를 

경험하실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의 현장을 보면서, 그리고 이분들이 건네는

무심한 듯 따뜻한 한 마디와 눈길을 느끼면서 감상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제가 작가가 아니다보니 전시의 내용을 떠들기도 어렵습니다만,

작가가 고른 책 중에서 나오는 인물들과 물건들을,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버려졌을 종이들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장소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의미있다고 

느꼈습니다. 주변의 상가 대표분들도 좋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아내와 전시준비를 함께 했습니다.

조금 피곤했지만, 재미있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멋진 갤러리들이 모여있는 동네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 속에서 여러 사람들의 뜻이 모여 

장소와 전시회가 준비되었습니다.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전시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됨을 다시 생각해보며,

아내 대신 많은 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방산시장 주변에 오시는 분들은 한번 들러주시길.




전시장 위치: 서울시 중구 방산종합시장 A동 2층 101

(그래서 책방의 '그래서 쇼룸')


전시 일정: 2023.11.18(토) - 11.27(월) ] [목, 일 휴관]





[전시 작업에 참고한 도서들]

[1] <장래 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하정 지음, [좋은여름] (2019)

[2] <빨간머리앤을 좋아합니다>, 다카야나기 사치코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9)

[3] <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난다] (2019)

[4] <나는 노래하는 시와로 산다>, 시와 지음, [도서출판 가지] (2022)

[5]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정현주 지음, [예경] (2015)

[6] <아직 즐거운 날이 잔뜩 남았습니다>, bonpon지음, 이민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9) 

[7] <음악가 김목인의 걸어다니는 수첩>, 김목인 지음, [책읽는수요일],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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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11-18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초란공님 종이인형 사진을 살짝 보여주셨을 때 그냥 취미가 아니신것 같았어요! 너무 예쁘고 마음에 쏙 들었는데 아내분 전시회 여셨다니 축하드립니다.들러보고싶네요.(저 어릴때 살던 지역이라 반갑습니다ㅋㅋ)

초란공 2023-11-18 14:22   좋아요 1 | URL
아 이전에 올린 글도 기억하고 계셨네요^^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이 지역에 사셨다니 지리를 잘 아시겠어요. ^^

jella68 2023-11-20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도 종이도 좋아하는지라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궁긍해지네요.요즘은 다이어리 꾸미기에 이어 정크저녈이라는 게 잇어서 독서하면서 내용 정리합니다. 일종의 스크랩 형식. 아내분의 독서법 기대됩니다.

초란공 2023-11-20 12:15   좋아요 1 | URL
요새는 전자책도 시도해보곤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종이책인가 봅니다.^^
jella68님의 정크저널은 어떻게 독서 활동과 이어지는지 더 궁금해지는걸요?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픈 시티
테주 콜 지음, 한기욱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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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조건, 그리고 불안을 읽다

- 오픈 시티

 

테주 콜(Teju Cole) 지음 | 한기욱 옮김 | [창비] | (2023)

 




오픈 시티의 화자 줄리어스는 뉴욕에서 일하는 정신과 전문의다. 성공한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상상하려면 몇 가지 정보가 최소한 더 필요하다.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독일에서 부모와 함께 난민의 지위로 지내기도 했던 것들 말이다. 이제 좀 더 윤곽이 보인다. 화자는 인생의 여러 국면에서 수차례 경계를 넘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삶을 하나의 연속으로 경험하고 오로지 삶이 사라진 후에, 과거가 된 후에야 비로소 삶의 불연속들을 본다. 과거란,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대부분 텅 빈 공간이며 의미심장한 인물과 사건이 떠다니는 무()의 거대한 확장이다. 나이지리아가 내게 그랬다.”(311)

 


이제 독자는 줄리어스를 따라가며 동시에 그의 의식도 들여다본다. 줄리어스는 회계사와 만난 후 맨해튼의 브로드웨이를 따라 걸어 내려간다. 맨해튼의 남단에 위치한 배터리 파크에 닿은 그는 뉴욕시의 과거를 소환한다. 뉴욕시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유럽의 이민자들이 배 위에서 보았을 법한 자유의 여신상과 이들이 피곤과 희망이 섞인 몸과 마음으로 내렸을 엘리스 아일랜드가 보이는 장소다. 하지만 미국으로 들어오던 사람들 중에는 이민국이 있던 엘리스 아일랜드마저 구경하지 못했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을 타고 왔던 사람들이었다. 줄리어스는 이 도시의 공간 이면의 역사를 생각한다.

 


배터리 파크는 19세기 중반에 이 도시의 활발한 상업지구였다. 노예무역은 1820년 미국에서 사형제가 되었지만 뉴욕은 오랫동안 노예무역선의 조선, 설비, 보험, 진수에 가장 중요한 항구로 남아 있었다. 그런 노예무역선의 인간 화물인 노예들 대다수는 쿠바로 갈 것이었다. 아프리카인들은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325)


 

노예제로 이익을 얻는 데서 뉴욕의 씨티은행은 동시대 상인들과 은행가들이 세운 다른 회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중에 AT&T와 콘 에디슨이 된 회사들이 바로 이런 환경에서 부상했다. 전세계 최고 부자들 중 하나인 모지스 테일러는 오랫동안 설탕 상인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뒤 1837년에 씨티은행 이사진에 합류했다. 그는 1855년에 은행장이 되었고 1882년 죽을 때까지 그 직책에 복무했다. 테일러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 측의 군수물자에 자금을 지원했지만 뉴욕항에서 쿠바산 설탕 판매 중개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기도 했다. 그는 사탕수수 농장주들의 수익에 투자하고 뉴욕시 세관의 화물 수속을 용이하게 하며 노동력획득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했다. 달리 말하면 그는 농장주들이 노예 구매 비용을 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일을 실행하는 일환으로 자기 소유의 배를 가동하기도 했다. 그는 여섯 척의 배를 공해에 출항시켰다. 테일러와 그와 같은 다른 은행장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들의 그런 낙관주의는 크게 수지맞았다. 수익률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완전한 장비를 갖춘 약 13,000달러짜리 노예선 한척이 20만 달러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인간 화물을 실어나를 것으로 예상되었다. 1852년 씨티은행이 최대 수익을 거두었을 때, <뉴욕 타임즈>는 만약 당국이 이런 부당 이익 취득을 중지시킬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면 그건 단지 당국 자체의 우매함을 실토하는 꼴이며, 그게 의지의 문제라면 당국이 초래한 도의적 죄는 다름 아닌 노예무역상들의 죄와 동급이라고 지적했다.”(325-326)

 


줄리어스는 은행들이 하는 행적에 대해 비판의 언어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저 브뤼셀에서 만나 열띤 정치토론을 벌였던 파루크가 한 말처럼, 독자에게도 네가 이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듯했다. 줄리어스가 휴가 중 브뤼셀에서 만난 파루크는 정치철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던 독립 연구자였다. 그 역시 아프리카인이며, ‘2의 에드워드 사이드가 되고 말하던 청년이었다. 정치철학자로서 파루크는 다름의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주목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소설이 12년 전인 2011년에 출간된 것을 고려하면, 식당에서 이들이 토론하던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문제는 특히나 놀라울 정도로 시의성이 있는 문제였다. 사실 꽤나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 문제였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것처럼 현재진행형인 장면이었다.

 


파루크는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의 생각을 보여주는 줄리어스와 여러 면에서 견해를 달리하지만, 다름에 대해 기꺼이 수용하고 의견을 나눈다. 나아가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 문제의 핵심에 시오니즘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물론 하마스나 헤즈볼라 등의 과격하고 무모한 테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을 둘러싼 문제에서 진보적인 미국지식인의 이중적인 입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어 뱀과 벌의 가르침을 전하는 솔로몬 왕의 놀라운 전래 설화를 이야기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결국 파루크는 미국에 의해 의 세력으로 불리는, 이들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솔로몬 왕의 이야기를 통해 전한다. 파루크가 우린 개별자들이야.’(255)라고 한 말에는 서로 다른 존재의 다른 의견은 필연적이면서도,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동시에 서로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여기서 처음에는 의문 한 가지가 들었다. 이 모든 문제들이 나와는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현재 내 삶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종종 나의 삶이 겨울을 준비하는 마른 나무에 간신히 매달린 나뭇잎 같다고 여길 때가 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존재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나는 보이지 않는 타자에 너무나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다. 내가 사는 공간의 실질적인 주인은 은행이며, 나는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내 생활의 중요한 활동을 이어간다. 또 이를 위해 통신망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고,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사더라도 택배서비스를 이용한다. 나의 먹거리는 지방 현지에서 직접 나는 것도 있지만, 공장을 거쳐 나오는 가공식품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또 이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문명의 동력인 발전소의 신세를 져야만 한다. 나의 외모와 행동은 어떤가. 이 역시 사회 규범의 제약을 받고 있어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생각해보면 내 삶의 절대적인 부분을 자본과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연결망을 유지하는 이들은 결핍된 자원과 동력을 어딘가에서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든, 팔레스타인이든 공격을 주고받으며 아이들, 누군가의 가족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에 우리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삶을 구축하는 연결망에 대한 교란, 연결망의 유지에 관여하는 집단의 활동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삶도 이 사건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적어도 내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한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종종 세상에서 노예 아닌 자가 어디 있는가? 있다면 나와보라.”(1, 모비 딕, 현대지성, 이종인 옮김)라는 이슈메일의 외침이 떠오른다. 이 말은 사실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인이자 연설가, 철학자였던 세네카의 말이라고 한다. 삶을 붙들어 매는 인간의 조건은 시대마다 다를 것이지만, 시대를 넘어 여전히 개개인의 삶을 구속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장, 혹은 자기장처럼 말이다. 어쩌면 인류사(특히 서양사상사)에서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그토록 천착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자유였던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지식인들은 인간의 조건으로서 자유의 문제를, 자신과 인간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고민함으로써 나름의 유산을 남겼다. 인간사의 전제 조건은 아마도 지배하고 규제하는 소수의 세력들과 그 대상이 되는 인간 집단이 설정되어야 전개될 수 있는 것일까. 오픈 시티의 화자 줄리어스는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문명의 흔적을 통해 그 안에 깃든 역사를, 그리고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소설의 제목 오픈 시티전시에 비무장 상태로 있는 대신 적의 가혹한 폭격을 면하는 도시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소설에서 배경이 되는 브뤼셀과 뉴욕에 대응하는 것일 테다. 특히 주 무대가 되고 있는 뉴욕은 세계의 이민자들과 노예가 유입되던 도시이기도 했으니 환대혹은 수용의 의미와 연관지어볼 수도 있겠다. 다만 뉴욕은 세계무역센터가 가혹한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소설의 제목은 꽤나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한편 유색인의 정체성을 지닌 줄리어스의 제국주의·식민주의에 관한 견해는 브뤼셀에 사는 29세의 독립연구자 파루크와의 토론에서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파루크가 원래 공부하려던 정치철학의 길이 무산되고 번역학을 공부하는 설정도 그런 의미에서 주목해본다. 번역가 안톤 허가 자신의 에세이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에서 식민주의자들은 절대 현지 언어를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215)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타국의 언어를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그들(식민주의자들)의 언어를 출발어로하여 자신의 언어를 도착어로 번역하거나, 이들의 논리를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 비판할 수 있을 때, 상징적으로 또 다른 번역의 기능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언어가 사용되는 방식은 권력관계의 산물임을 반증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아프리카 출신의 청년 정치철학자가 번역을 공부하는 설정이 새롭게 다가왔다.


 

함께 읽었던 또 다른 산책자 이야기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를 생각해본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 구보는 현재의 도시 경성을 걸어 다니며 줄리어스와 비슷한 시도를 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번번이, 그리고 불현 듯 중단되고 만다. <대학노트>를 들고 사람들의 모습이나 사건, 도시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려하면, 늘상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복 경찰로 보이는 이들의 시선에 예민하게 감지하는 구보의 모습은, 식민지 현실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개된 거리에서도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위한 메모마저 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이처럼 식민지 현실은 도시에 살던 이들을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고 이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구보는 주점에서나마 자신의 노트를 펼칠 수 있었다. 감시의 시선이 멀어진, 은폐된 주점에서나마 마음 놓고 펼칠 수 있었던 장면이 인상 깊다. 여기에 쓰인 단어들은 여러 가지 정신적인 이상 징후를 알려주는 병명이었다. 식민지 공간을 살아가는 청년 지식인들의 분열적인 자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한편 구보는 식민지 공간의 지식인 청년으로서 현실의 한 부분과 거리를 두는 듯 보인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는 자본주의현실에 대한 세태에 국한될 뿐이었다. 독립운동을 하거나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이런 활동을 하는 동료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 대한 구속감 혹은 공포와 두려움 때문일까. 소설의 장면에서 식민지 현실을 떠올릴만한 장소나 상황 앞에서 구보는 어김없이 신경쇠약을 들먹이며 의욕을 잃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매여 있는 구보 자신에 대한 초상이 바로 신경쇠약이란 증상으로 나타나는 듯했다.


 

취직도 쉽지 않아 주머니 사정도 변변치 않았던 구보는 타인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다. 공개된 장소에서도 자신의 뜻대로 어찌하지 못하는 구보의 시선은 외부의 현실에 부딪쳐 되돌아와 내부로 향하곤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문인들마저 금광사업에 뛰어드는 황금광시대였다. 많은 사람들처럼 현실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자신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거리를 정처 없이 부유하며, 하루를 보낸다. 저자 박태원의 위트가 재미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작품 전반에 걸쳐 우울의 정서 역시 두드러진다. 구보는 여러 장면에서 금전과 행복의 관계, 행복의 조건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90년 전의 삶도 지금처럼, 혹은 이미 자유롭지 못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2000년 전의 철학자 세네카가 말했던 진실은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시대와 정서, 지역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두 소설(오픈 시티,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유사한 점은 아마도 특정한 플롯이 없다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특별히 극적인 사건 없이 산책자의 동선과 시선을 따라 우연히 만나는 대상으로부터 새로운 기억이나 이야기가 파생된다. 단지 일상의 장면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주목해본 소설의 특징은, 두 작품 모두 화자가 생각할 때, 이들의 생각이 그대로 화면에 받아쓰기로 나타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 두 소설 모두, 어떤 부분에선 대화 도중에 누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줄리어스가 브뤼셀의 거리를 걷든, 뉴욕의 거리를 걷든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만나는 문명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과거의 기억은 개개인에게 다르게 간직될 것이었다. 우리가 연속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대부분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개별적으로 다르게 기억되는 사건들만 남아 불연속적인 모습을 하게 될 것이었다. 거리를 걷는 줄리어스를 따라 읽는 동안에도 나는 어떤 현실을 살고 있는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다. 미디어를 통해서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받고, 미사일에 공격받아 시신이 산적해가는 현실, 거대한 자연 재해든 인재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은 과연 내가 정말로 속해 있는 현실이 맞을까 싶은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존재일 뿐이고, 다행히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살고 있다는 상황자체가 비현실적이기도 혹은 아찔해지기도 한다. 두 소설을 읽으면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조건들을 또 다시 발견한다. 이것이 우리 삶에서 불안이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이유인지 모른다.  




[1] "나는 종종 밤늦게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음을 깨닫고는 지하철을 타고 귀가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정신의학과 전임의 과정의 마지막 해가 시작될 때, 뉴욕시는 걷기의 속도로 내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25)

[2] "거대한 사람들 무리가 지하의 막힌 공간들 속으로 서둘러 내려가는 광경은 언제나 낯설었으며, 나는 인류 모두가 본능에 반하는 죽음충동에 떠밀려 이동식 카타콤 속으로 몰려가고 있다고 느꼈다."(33)

"그리고 그녀가 써준 전화번호를 바라보면서 (...) 수백만의 우리가 도시들 밑에서 이동하는 지하 여행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인간이 땅 밑에서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이 보통이 된 시대의 주민들인 것이다. 나는 또한 잊힌 도시들, 대규모 공동묘지, 카타콤에 있는 무수한 사자(死者)들을 생각했다."(194)

[3] "하지만 나를 건드린 것은 내 정신 지형에서 붙박이 같은 이들 기업의 사라짐뿐 아니라 가장 탄력적인 기업들조차 삼켜버리는 시장의 신속성과 냉정함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확고부동하게 보였던 업체들이 얼핏 보기에 몇 주라는 기간 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이다."(56)

[4] "작년에 봤던 다른 영화, 동아프리카 거대 제약회사들의 범죄에 관한 영화가 내게 좌절감을 안겨준 것은 플롯 때문이 아니라(플롯은 그럴듯했다), 아프리카의 선량한 백인이라는 틀에 박힌 설정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는 항시 대기 중이었고, 백인 의지의 토대이자 백인 활동의 배경이었다."(74)

[5] "약 이백년 후에 포트 오렌지 지역의 한 청년이 허드슨강을 따라 내려와 맨해튼에 정착했을 때, 그는 흰 리바이어던을 소재로 걸작을 쓰리라고 결심했다. 한때 트리니티 교회의 교구 주민이었떤 저자는 자신의 책을 ‘고래’The Whale라고 이름 지었는데, 첫 출간 이후에야 ‘모비 딕’Moby-Dick이라는 부제가 덧붙었다."(114)

[6] "엘리스 아일랜드는 주로 유럽 난민들의 상징이었다. 흑인들, 이른바 ‘우리 흑인들’은 훨씬 거친 입국항을 알고 있었다."(121)

[7] "줄리어스Julius라는 이름은 나를 또다른 장소와 연결해주었고 내 여권과 피부색과 함께 내가 나이지리아에서 다르다는, 따로 놓여 있다는 감각을 강화해주는 것들 중 하나였다. 나는 올라튜보선이라는 요루바식 중간 이름이 있었지만 결코 쓰지 않았다."(165)

"어머니는 이십대 초반에 독일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도망쳤고 율리아나 뮐러Julianna Müller는 줄리앤 밀러Julianne Miller가 되었다."(166)

[8] "브뤼셀의 통치자들이 이 도시를 비무장 도시로 선언하고 그럼으로써 2차 대전 동안 폭격을 면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브뤼셀은 잔해 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드레스덴이 되었을 것이다."(199)

[9] "에드워드 사이드가 내게 그토록 소중한 이유가 바로 그거야, 그(파루크)가 말했다. 알겠지만, 사이드는 젊었을 때 골다 메이어가 발표한 그 성명, 팔레스타인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고 그 말을 듣고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여하게 됐어. 그는 다름이 결코 수용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지."(213)

[10] "얀 반에이크가 14309년대에 크고 붉은 터번을 쓴 자화상을 그렸을 때, 그건 이방인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는 15세기 겐트의 다문화주의를 입증한 것이었다."(217)

"그들은 단일한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흔하고 얼마나 부질없는지 감지하지 못했다. 이런 무지는 분노하는 젊은이들과 강력한 정치적 수사로 그들을 옹호하는 나이 든 사람들이 전세계에 걸쳐 공유하는 특징이다."(217)

[11] "그러더니 그가 우리 전래 설화, 솔로몬 왕에 관한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하고 말했다. 솔로몬 왕이 한번은 뱀과 벌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어. 솔로몬 왕의 말에 따르면, 뱀은 죽임으로써 자신을 방어해. 하지만 벌은 죽음으로써 자신을 방어하지. (...) 그러니, 모든 피조물은 자기 힘에 걸맞은 방법을 지니고 있어. (...) 전에 말했듯이, 줄리어스, 나는 네가 이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 내 생각에, 팔레스타인 문제야말로 우리 시대의 중심적인 문제야."(245)

[12] "유대인들은 세상을 침묵시키기 위해 그 숫자를 이용해. 난 사실 정확한 숫자가 뭔지 아무 관심 없어, 젠장. 모든 죽음은 고통이야. 타자들도 역시 고통을 겪었고, 그게 바로 역사인거야, 고통이."(249)

[13] "내게 중요한 건 아랍 세계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우리도 단일체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개별자들이라는 걸 세상이 알아보는 거야. 우린 서로 의견이 달라. 방금 내가 내 절친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걸 봤잖아. 우린 개별자들이야."(255)

[14] "어떤 상실이 그들의 웃음과 추파 이면에 놓여 있는지 궁금했다. 이들(르완다인들) 대다수는 르완다 인종대학살 시기에 십대였을 것이다. 여기 있는 저 사람들 중에 누가 살해를 했을까, 아니면 살해 현장을 목격했을까, 나는 자문했다. 조용한 얼굴들에는 분명 내가 볼 수 없는 어떤 고통이 가려져 있었다."(280)

[15] "본능적으로 아기를 구한 것은 작은 행복이다. 르완다인들과, 그 살아남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 것은 작은 슬픔이다. 최종적인 익명성이라는 생각은 조금 더한 슬픔이다. 아무런 말썽 없이 성욕을 충족한 것은 조금 더한 행복이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이런 식의 상념이 계속되었다."(293)

[16] "생각들이 서로 재빨리 뒤엉켜서, 비행기를 탔을 때 으레 하게 되는 보통의 병적인 생각 외에도 나는 이상한 정신적 전위(轉位) 상태를 떨치지 못했다. 비행기가 하나의 관이고 아래의 도시는 다양한 높이와 크기의 흰 대리석과 석조물이 있는 거대한 묘지라는 생각이었다."(300)

[17] "이 도시(뉴욕) 곳곳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작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다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310)

[18] "우리는 삶을 하나의 연속으로 경험하고 오로지 삶이 사라진 후에, 과거가 된 후에야 비로소 삶의 불연속들을 본다. 과거란,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대부분 텅 빈 공간이며 의미심장한 인물과 사건이 떠다니는 무(無)의 거대한 확장이다. 나이지리아가 내게 그랬다."(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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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문제는 이제 우리의 존재 자체와 무관할 수 없고 마주쳐야만 하는 당위가 되었네요. 이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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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과 뉴욕의 두 산책자가 걸으며 사유한 두 도시 이야기

- 테주 콜의 오픈 시티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출간

 




최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소설 가운데, 도시를 거닐며 사유한 작품에 주목해본다. 하나는 우리나라 모더니즘 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판형이 작은 핑크색 바탕의 양장본으로 나왔다. 표지와 글 속의 삽화는 동년배 작가 이상(책에는 필명인 하융으로 기재되어 있다)이 맡아 완성한 판본이다. 박태원과 이상은 각각 1909년과 1910년에 태어난 식민지 키드이자 지식 청년들이었다. 이 소설은 두 사람이 20대 중반이던 1934년에 30회에 걸쳐 일간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신문에 연재만 되었지 단행본으로는 정식 출간된 적이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 없다는 점이 흥미롭다. 소설의 주요 인물인 구보는 26세의 소설가다. 게다가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었다. 만 소속된 직장이 없고 미혼인 상태다. 여기에 중이염을 앓고 시력도 좋지 않아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쓴 문학도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된다. 제목이 말해주듯 소설은 한 소설가의 하루를 담고 있다.

 

이 책과 비슷하게 주인공이 산책하는 소설이 있는데, 이제 막 출간된 장편소설 오픈 시티저자 테주 콜은 미국에서 태어난 유색인(흑인작가다이 작품이 그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한다이 소설에서도 주인공 는 뉴욕을 걷는다그가 만난 장소와 풍경사람들과의 대화와 사유로 소설이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물론 박태원의 소설과 이 소설이 묘사하는 시대를 비롯해서 많은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두 소설 모두 경성과 뉴욕이라는 도시를 걸으며 만난 장면들이 특별한 플롯 없이 전개된다는 공통점이 있다게다가 오픈 시티의 작가 이력이 남다르다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나이지리아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다시 미국에 와서 공부했다특히 미술사를 공부하고 졸업 후에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서 4년 간 사진 비평가로 일했다는 점그리고 현재는 하버드 대학에서 문예창작 교수로 재직 중인 점이 특이했다많은 부분에서 백인 지식인이 거쳤을 법한 경로를 밟았던 까닭이다.




 
















 

두 소설에서 두 인물이 주로 하는 일은 그저 도시를 걸으며 눈앞의 풍경을 보고, 생각하는 일이다. 우선 도시적인 장소가 언급될 것이고, 장소가 간직하는 역사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또 산책자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다가도 아는 사람과 마주하기도 할 것이다. 이 때 도시는 새로운 만남의 지점이 되고 대화의 장이 된다. 때론 오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는 오랜 기억을 불러오니 말이다. 두 청년이 각각 두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지를 때, 과거와 현재를 찬찬히 뜯어보기도 할 것이다. 걷기의 목적 없음은 오히려 모든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어디 갈까, 생각해본다. 모두가 그의 갈 곳이었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22) 하지만 두 청년의 도시 걷기는 매우 상반된 입장에서 출발한다. ‘구보씨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 중이염까지 앓고 있다. 자존심은 강하지만 궁핍한 청년이 바라본 하루가 담겨 있는 것이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 빈부격차와 같이 근대화가 가중시킨 여러 사회 현상들을 지켜보며 사유가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많이 든다. 예를 들면 갈 곳 없는 자신(구보)과 달리 안전지대에서 전차를 기다리는 이들을 보고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갈 곳만은 가지고 있었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29) 나는 이 기분이 어떤 느낌인지 아주 잘 알 것 같다. 구보는 번잡한 도시의 군중 속에서 외로움과 애달픔의 감정을 느끼는 인물이다.


 

반면 오픈 시티는 정신과 의사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는 인물이다. 대신 유색인으로서 자신이 지닌 정체성으로부터 세계를 탐구해나간다. 특히 미국이 주도한 국가 폭력의 역사가 도시의 기억과 교차하는 지점을 찬찬히 뜯어본다. 아직 끝까지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가 펼치는 생각과 의식은 구보씨의 경우와 다소 다르다. 오히려 시선이 외부로 향하는 인상을 준다. 백인이 자행한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과 노예제도 문제, 나아가 9·11참사까지, ‘의 기억과 얽키며 교차한다. 두 소설 모두 특별한 플롯이 없기에, 산책하며 떠오르는 사유들을 병치하는 구도가 소설의 줄거리를 이룬다고 봐야할 것이다. 공간에 인간의 시간·역사가 더해진 장소와 만날 때, 이들의 사유는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되어 방향을 전환하며 새로운 사유로 이어진다.


 

오픈 시티에서 흥미로운 점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W.G. 제발트와 J.M. 쿳시, 그리고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저자가 제발트와 쿳시, 그리고 멜빌에 주목한다는 것은 인종차별과 식민주의 역사에 대한 견해가 소설 속에 반영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 프리모 레비를 비롯한 여러 문인뿐만 아니라 재즈 연주자들을 비롯한 예술가들도 언급된다. 사진가이자 사진비평가로 활동했던 오픈 시티의 저자 테주 콜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이 부분만 보아도 그는 영국의 국보급 작가라 불리는 제프 다이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제프 다이어 역시 미술 비평가 존 버거의 책 사진의 이해를 편집했고, 사진 비평서 인간과 사진지속의 순간들를 썼으며, 재즈 연주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그러나 아름다운을 쓰기도 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테주 콜이 미술사를 공부하던 2007년에 출간된 그의 첫 데뷔작 매일이 도둑을 위한 날 Every Day is for the Thief은 아프리카 라고스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일화 형식으로 포착한 중편소설이다이 소설의 형식이 특이했던 것은 소설의 텍스트에 사진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여 테스트-이미지를 병치시키는 구조를 선택했다는 점이었다다시 말해 사진이 등장하는 소설이었는데어쩌면 이 전에 이미 텍스트에 이미지를 활용하는 W.G. 제발트의 글쓰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그의 첫 소설이 글에 이미지를 사용한 작업이다보니최근에 읽은 죽음의 도시 브뤼주가 떠오른다이 소설은 19세기에 이미 최초로 소설에 사진을 적극 활용했던 작품이었다다만 여기에 사용된 도시의 이미지들은 대부분 당시 사진기술의 제약 때문에 사람은 모두 사라지고 도시의 풍경만 남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또 사진들은 소설의 분위기나 복선을 보여주는 듯 상징적인 기호로서 사용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테주 콜의 첫 중편 소설을 확인하면 차이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저자에 관해 궁금했던 부분은 작가의 정체성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거나 드러날까 하는 부분이다. 이는 소설을 다 읽고 더 생각해볼 일이다. 오픈 시티는 여러 면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요소들을 많이 지닌 작품이다. 아마도 올해 나의 소설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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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1-02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독법讀法을 보여주는 좋은 리뷰입니다.

초란공 2023-11-02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