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온 - 살인 단백질의 네 가지 얼굴
D. T. 맥스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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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 주는 프리온 질환

- 프리온를 읽고



 

D.T. 맥스 지음 |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2)



 

2000년대 후반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제기된 미국산 수입 소고기의 위험성 문제는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당시에 나는 논란의 핵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뉴스를 통해 9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소들이 주저앉고,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정도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질병의 원인이나 위험성은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프리온을 만나고 나서야 이 질환에 담겨 있는 배경과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편집자를 거쳐 작가로 활동하는 D.T. 맥스가 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관련 질병을 포괄적으로 조사·정리한 결과물이다. 책이 지닌 특별한 점은 저자 자신이 프리온 질환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단백질 구조 이상에서 비롯된 신경근육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프리온이란 단어는 199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스탠리 프루시너가 처음 제안한 용어다. 그는 우형 해면상 뇌병증(광우병, BSE),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 양의 스크래피(scrapie) 등을 일으키는 감염성 병원체가 무생물 단백질임을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 감염성 병원체를 통칭하여 '프리온(prion)'이라 명명한 것이다. 이 병원체는 일반 세균(박테리아)이나 그보다 작다고 알려진 바이러스보다도 더 작은 단백질 알갱이다. 프리온은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인간에게 병을 일으킨다. 우선 이탈리아 베니스 근교에 기반을 둔 어느 가문의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FFI)처럼, 대물림(유전)되는 경우가 있다. 희생자 모두 프리온이 갉아 먹은 뇌로 숙면을 취할 능력을 상실하고 기진맥진해서 죽음에 이르렀다. 이 가문이 겪은 역사와 고통은 저자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과 마찬가지로 병을 이해해보고자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원서의 제목(The Family that couldn't sleep)이 암시하듯, 이 책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또 다른 발병 경로는 우연히 발생하는 경우로,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이 그 예다. 책에서는 이 경우를 산발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다만 프리온 질환은 잠복기가 대체로 길기 때문에(수년에서 수십 년), 세 번째 발병 경로인 외부 감염의 사례와 구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1990년대에 세계를 흔들어 놓은 광우병이 대표적인 감염사례다. 여기에는 50년대에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이족에게 들이닥친 쿠루(kuru)병도 포함된다. 포레이족이 겪은 재앙은 이들이 50년대에 시작한 식인풍습에 기인한다. 포레이족에 관한 이야기는 신경정신과 의사 올리버 색스의 책 모든 것은 그 자리에나 저널리스트 작가 리처드 로즈의 죽음의 향연에도 자세히 소개가 되어 있을 만큼 유명하다.

 

쿠루병을 통해 인류가 새롭게 얻은 통찰은 무엇보다 인류가 인간 존재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는 점이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에세이집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에서도 지적하듯, 인류는 모두 한때 식인종이었다. 식인 풍습은 초기 인류사의 어느 시기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었다. 저자의 말대로 인류가 서로를 먹었다는 증거는 넘쳐난다. 물론 인류는 그 대가를 만만치 않게 치러야 했다. 식인풍습에 의한 프리온 질환이 인간 사회에 유행하여 높은 사망률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류가 식인풍습을 버리게 한 어떤 계기나 행위로 80만 년 후 우리의 생명을 구했다는 점이 경이롭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프리온 질환은 여러 발병 경로를 거칠 수 있다. 그 원인이 무생물 단백질인 만큼 일반적인 발병의 특징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신체는 외부의 침입자에 의해 감염되었을 때 면역반응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는 생명체의 신비하고 놀라운 기능이지만, 생명체는 프리온을 감지하지 못한다. 어떤 원인(유전자의 변형에 영향을 주는 원인)에 의해 변형된 프리온 단백질이 몸에서 만들어지고 나면, 이 단백질이 신체 내부의 다른 정상 단백질을 변형시키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변형된 단백질로 사멸한 세포의 뒤엔 텅 빈 공간을 남기게 된다. 프리온 질환에 걸린 양이나 소, 고양이, 인간의 뇌에 구멍이 숭숭 남아 있는 이유다. 결국 면역 체계가 작동하지도 않는 상태(발열이 없다)에서 감염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적은 바로 생명체 내부에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정상적인 유전자 발현에 의해 프리온 단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변형되는 경우 단백질은 생명체 자체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프리온은 생명체의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치명적인 단백질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산업 혁명의 기운과 인구 급증으로 생존의 압박이 사회 전반에 가해졌다. 농업생산성 향상도 빠른 시일 내에 요구되었다. 18세기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인간의 지식과 이성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로 충만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한 축산업자가 적은 사료로 더 많은 양고기와 양모를 얻기 위해 동종교배 기법을 도입했다. 인간의 눈에 유리한 특징을 지닌 양은 끊임없이 자손을 낳아야 했다. 그 결과 발생한 프리온 질병이 바로 스크래피. 양뿐만 아니라 영국의 소에도 인간의 손길이 닿았다. 광우병은 인간이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소를 비롯한 다른 동물을 갈아 넣은 동물 사료를 소들에게 먹였기 때문이다. 우유를 생산하려면 소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단백질보다 더 많이 필요했다. 이처럼 18세기 영국에서 양이나 소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위험한 육종 방식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도입되었다. 그 결과는 21세기인 지금, 한국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걸쳐 인간은 프리온 질병에 대해 그동안 쌓은 지식을 통합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어느 이탈리아 가문의 유전병, 포레이족이 겪은 쿠루병, 알츠하이머와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등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90년대 광우병 문제는 거대축산업의 발달과 생산성 향상에 대한 산업 사회의 무리한 요구로 다시 드러나게 되었다.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하자 정부는 사태를 감추는 데만 급급했다. 자국의 쇠고기와 우유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고, 수많은 소가 살처분 되었다. 미국에서 광우병 증세가 보고되었을 때도 정부, 특히 미국 농무부(USDA)는 영국 정부와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모든 소에 대한 검사 요구를 중단시키고, 태만과 비밀주의로 문제를 더 키웠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정부와 미국정부가 보여준 대응 방식은 많은 시민과 산업뿐만 아니라 결국 국가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었으며,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불신을 주었다. 어느 경우든 커다란 이해가 달린 시장을 지키기 위해 취한 조치가 자국민들과 세계를 위험에 몰아넣었다. 이는 예고된 인재였다. 이런 과정을 반복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3년이 넘도록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 감염증의 특징은 원래 다른 종의 동물로부터 왔다는 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종간 경계를 넘어 형태와 독성이 변해온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프리온 질환 단백질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기능상 자기 복제를 한다는 점에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유사성을 갖는다. 저자는 프리온 단백질의 경우, ‘종의 장벽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283)고 언급하지만, 이 또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프리온도 종간 경계를 뛰어넘으면서 형태와 독성이 변할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광우병(우형 해면상 뇌병증, BSE)이 염소에게도 전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BSE는 음식을 통해 고양이도 감염시키기도 했다. 물론 인간에게도 영향을 준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프리온이 드물더라도 양이나 소, 고양이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인간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다.

 

프리온 질환을 일으키는 잠재적 감염원을 살펴보면 채식주의자가 프리온 질환, 특히 광우병에 걸릴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저자가 언급하는 감염원은 프리온 질환에 걸린 사람이 모르고 한 혈액을 수혈 받는 경우, 단백질 보충제나 의약품에 사용되는 소 단백질, 소 부산물로 만든 화장품 등이 있다. 인간광우병(CJD)은 사람의 뇌하수체에서 추출한 성장호르몬을 맞고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의료 치료 가정에서 채식주의자가 고대 인류의 식인풍습으로 영향을 받았던 프리온 질환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긴 해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권위도 확고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크로이츠펠트 자코뱅당원)의 슬로건처럼,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317).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문명이 고도화·산업화되면서 인간은 그로부터 혜택을 누리게 되었지만, 프리온 질환에도 걸릴 수 있는 여지는 여러 방식으로 남아있다. 우리 문명은 여전히 초기 인류의 식인풍습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앞서 언급한 올리버 색스나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라고까지 언급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처럼 말이다. 인류는 이제 첨단과학기술의 발달로 스스로의 편의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프리온 질환을 끊임없이 초대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저자 역시 프리온 질환과 유사하게 단백질 구조 이상에서 비롯된 질병을 앓고 있다. 다만 그의 증세는 이탈리아 가족이 겪고 있는 급성 신경변성질환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하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신경근육질환이다. 유전자 가운데 어느 한 부분에 변이가 일어나 신경에서 근육으로 전기 신호를 보내는 데 필요한 단백질 구조나 양에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자신의 병과 마주하여 이를 이해하고자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아울러 200년 넘게 가문의 저주라고 불리는 불면증으로 기진맥진한 상태로 사망에 이르는 질병을 프리온 질환의 큰 범주에서 이해해보고자 한 시도이기도 하다. 분명 자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이탈리아 가문에 대한 사명감도 저자의 절실한 글쓰기를 해나가게 해준 원동력일 듯싶다. 프리온 질병을 이해하고자 한 글쓰기는 호모 사피엔스의 민낯을 그대로 비추어 준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 무제한적인 경제 성장에 대한 요구라고 하면 우리와는 무관한 거창한 명분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르게 말해 우리에게 편한 삶을 누리고자 추구하는 모든 행위는 분명 프리온 질환의 원인이 된 배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며 프리온 질병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고 자신의 병도 언젠가는 치료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기도 한다. 당장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 책은 우리 인류가 어떤 모습을 지닌 존재인지 보여주는 거울처럼 다가왔다.



[1]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존재다."(46)

[2]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을 비롯한 많은 신경병증 및 신경근육질환은 전통적인 의미의 감염이나 면역반응이 아니라, 프리온 질환처럼 단백질 구조 이상에 의한 질병이다."(47)

[3] "프리온은 정확히 인간의 야망과 자연의 예측 불가능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 구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48)

[4] "우리는 지식이 완벽함을 향해 빠르게 진보하는 분주한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자연과학은 모든 분야가 새로운 발견과 진보로 충만하다."(72)
-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의 말

[5] "포레이족의 식인풍습에 관해 꼭 기억할 것은 인육을 맛있는 음식으로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즐겼던 거죠."(인류학자 셜리 글래스의 말)

"이들은 죽은 이들을 사랑했고, 먼저 애도 기간을 가졌다. 하지만 애도 기간이 지나면 먹는 일로 돌아갔다."(146)

"쿠루는 유전병이 아니라 감염병이었다."(157)

"초기 인류가 죽은 이를 매장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서로를 먹었다는 증거는 넘쳐난다."(288)

[6] "(프리온은) 외부에서 희생자를 감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의 몸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194)

"(프리온은) 희생자의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치명적 단백질이었다."(195)

[7] "원래 초식동물인 가축에게 억지로 다른 가축의 고기를 먹인 행위는 결과적으로 이들을 동종포식 동물로 만든 셈이었다."(248)

[8] "프리온 질환에서는 결정화crystallization 비슷한 과정, 즉 하나의 변형된 단백질이 다른 단백질과 접촉해 변형을 일으키는 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건강한 프리온 단백질이 병원성 단백질로 전환된다. 알츠하이머 단백질도 역시 이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269)

[9] "단일한 질병이 아니라 단일한 발병 원리를 보았던 것이다."(270)
- 연구자들의 연구를 통해 프리온 유전자와 알츠하이머 단백질 유전자가 다른 염색체에서 발견되었으며, 두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 순서도 달랐음을 밝히며 정리한 말.두 질병은 별개의 것이지만 같은 발병 원리를 보인다는 의미.

[10] "생명이란 핵형성이며, 형태 변화이며, 복제다."(275)
- 1976년 쿠루병 관련한 연구로 19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가이듀섹의 말

[11] "광우병이 이윤추구에서 비롯되었다면, CWD는 명예욕이 문제였다. 이 병은 사슴과 엘크를 침범하며, 현재 미국 내 대여섯 주와 캐나다 및 한국의 동물 집단에서 발견된다."(307)

[12] "하필 내가 변형된 신경근육질환에 걸려야 할 이유는 없지만, 걸리지 않을 이유도 없다."(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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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대멸종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김보영 옮김, 최재천 감수 / 쌤앤파커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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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의한 과잉 살육과 멸종의 연대기

그리고 오래된 인류의 미래 - 여섯 번째 대멸종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 지음 | 김보영 옮김

최재천 감수 [쌤앤파커스] | (2022)

 

 


우리가 바로 그들에게 닥친 불운이었다.

 

이 말은 독일 쾰른의 어느 박물관 연구원이 여섯 번째 대멸종의 저자 엘리자베스 콜버트에게 건넨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를 가리키고, ‘그들은 네안데르탈인을 가리킨다. 인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에 등장하면 으레 네안데르탈인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현대 연구자들의 지배적인 견해는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절시켰다는 것이다.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고유전학의 창시자 스반테 페보도 인류의 DNA가운데 몇%정도는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들이 함께 자손을 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우리의 DNA 안에 그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인간은 존재만으로도 참으로 놀라운 면모를 지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행위로 사라져간 존재는 네안데르탈인만이 아닌 듯하다. 인류가 존재한 흔적이 있는 곳에서는 으레 대형 동물이 비슷한 시기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 주목하기 전에는 생물 종의 멸종이라는 생각이 인류의 지성사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시기에 지식인들이 생물의 멸종에 대해 가정하고 있는 지배적인 관점은 종교적인 영향을 받아 멸종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나마 비판적인 지식인들은 멸종은 매우 느린 속도로 일어난다는 점진적인 멸종개념이었다.

 

한 가지 예로, 찰스 다윈과 공동으로 진화 개념을 정립한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당시의 많은 지식인들처럼 생물의 멸종이 기후 변동에 따른 결과로 해석했다. 기후 변동설을 지지한 인물에는 다윈에게 큰 영향을 미친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도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월리스는 자신의 마지막 저서에서 생물(특히 고대 생물)의 멸종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바꾸게 된다.

 

이 주제를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때, (...) 나는 그렇게 많은 대형 포유동물이 급격히 절멸한 것이 사실 인간이라는 행위자 때문이었다고 확신한다.”(322)

 

점점 드러나는 화석의 증거들로 생물이 멸종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힘을 잃게 되었지만, 이후 멸종에 관한 개념은 고대 생물이 점진적으로 멸종했다는 견해와 급격한 절멸로 대립하게 되었다. 여기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이 해부학자로 알려진 조르주 퀴비에다. 그는 탁월한 해부학적 지식으로 마스토돈이라고 부른 동물이 다른 대륙에서 발견된 전혀 다른 종의 코끼리였음을, 그리고 이 오래 전의 생물이 빠른 시기에 멸종했음을 주장했다. 조르주 퀴비에는 (급격한) 멸종이 사실임을 입증했던 셈이다. 반면 라마르크는 대격변 이론으로 불리던 퀴비에의 멸종 개념에 단호히 반대했다고 한다. 다윈 역시 점진적인 진화와 멸종을 지지한 덕에 퀴비에의 멸종 개념을 비판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종의 기원에서 종의 멸절이라는 주제는 불필요한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었다.라고 써두었겠는가. 여기에는 퀴비에에 대한 다윈의 암묵적인 조롱이 섞여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퀴비에의 급격한 멸종 개념은 당시에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후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증거가 쌓이면서, 연구자들은 수많은 동물, 특히 거대 동물이 절멸한 까닭이 바로 인류의 도래 때문이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이 주장에 대한 반대자가 많이 있던 시기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대형 동물의 급격한 절멸의 이유가 인간 때문이라는 결론이 다시 힘을 얻은 셈이다. , , 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도 같은 맥락에서 언급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왜 수천만 년 동안의 숱한 가뭄에도 살아남았던 호주의 거대 동물이 공교롭게도 정확히 최초의 인류가 도착하자 거의 동시-수백만 년을 단위로 하는 지질사적 의미에서-에 죽음을 선택했는지를 가늠할 수 없다.”(324) (, , 에서 재인용)

 

여섯 번째 대멸종에서 저자가 보다 문제시한 사항은, 지구 역사상 지금까지 발생했던 다섯 번의 대멸종이 아니다. 이런 대멸종은 우연에 의해, 혹은 불가피한 우주의 현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이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절멸의 위기에 놓였다는 경고가 이 책의 강력한 메시지다. 여기에 더하여 전 지구적인 멸절 문제가 제기하는 우려 사항의 핵심은 멸종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변화의 속도. 여기에 인간이 주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백악기 말에 소행성 충돌로 공룡을 비롯한 생물종의 대량 멸종을 처음 설명한 월터 앨버레즈의 말처럼, 우리는 바로 인간이 대량 멸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목도하고 있다”(369)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날지 않는 새모아의 멸종을 한 사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모아는 단테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까지 살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뉴질랜드에 상륙한 마오리족이 모아 사냥을 시작한 이후 몇 세기가 채 지나지 않아 멸종했다. 1800년대 초에 뉴질랜드에 도착한 유럽인들은 거대한 모아 뼈가 쌓여 있는 무덤만 보았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약 100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에 100만 마리 가까이 있던 검은코뿔소는 이제 약 5000마리 남짓 남아있다. 이마저도 고가에 팔리는 뿔 때문에 다시 밀렵꾼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모두 인간의 손이 닿은 곳에서 어김없이 거대 동물이 멸종한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는 사례다.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도 고래는 멸종할 것인가?’라는 장을 통해 동물의 멸종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거대 포유류의 멸종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40(인간에게 반평생의 시간)전만 해도, 일리노이주에서 버팔로의 개체 수는 현재 런던의 인구수를 앞섰으나, 지금 그 지역에서는 버팔로의 뿔이나 발굽을 단 한 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충격적인 멸종의 원인은 인간의 창이었다.”(561, 모비 딕,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22)

 

이 소설이 다윈의 종의 기원보다 8년 앞서 출간된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인상적이다. 연구자는 아니지만 지식인으로서 멜빌은 실제 자신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과잉 살육행위를 면밀히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어느 생물 종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멸종현실에 위기감을 느낀다면, 이제는 무엇보다 인간의 활동 때문이다. 이 상황을 우려하는 많은 연구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생물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침입종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생 인류가 침입종이 된 시기는 우리의 조상이 약 12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벗어나 이주한 시점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물론 이 설명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고 하는 단일기원설’(343)에 근거한 추정이다.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고유전학의 창시자 스반테 페보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생 인류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작은 인구집단의 후손이라고 보는 단일 기원설에 배치되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가설이건,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 교잡하여 아이들을 낳고, 유럽, 아시아, 신대륙의 인구를 구성하는데 기여했지만, 결국 네안데르탈인을 멸절시킨 장본인으로 여겨진다.

 

정리해보면 침입종으로서의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거대 포유류의 멸종을 초래했다. 다만 이 경향을 더욱 가속한 계기가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사건이다. 이로부터 아프리카인의 노예 매매를 비롯하여 각종 동물의 대륙 간 이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저자 콜버트는 콜럼버스 시기 이후 초래된 방대한 생물학적 스와핑을 콜럼버스 교환(Columbus Exchange)'라고 부른다. 콜럼버스의 시대에 지구 반대편으로 항해하려면 1-2년이 걸리던 것이 이제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치명적인 감염병 보균자가 하루 만에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적인 콜럼버스 교환은 더욱 큰 문제를 낳을 가능성이 많아졌다.

 

저자가 언급하는 최근의 사례를 살펴보면 특히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파나마에서 희귀종인 황금개구리와 청독화살개구리가 항아리 곰팡이 때문에 사라지고, 이 곰팡이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또 저자의 책 출간(2014) 직전인 2013년에 호낭성 균류(곰팡이)가 박쥐에게 일으키는 흰코증후군으로 몇 년 사이 북미 대륙에서만 박쥐 600만 마리가 사라져버린 일은 연구자들에게 심각한 위기의식을 주었다. 이 모든 결과가 인간의 부단한 이동 때문에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외래종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여 침입종이 되는 사례가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이는 즉각적으로는 지역의 종 다양성에 기여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침입종이 고유종을 멸절시키는 사례도 많다. 결국 전 지구적인 다양성은 결국 감소하게 된다는 점이 큰 문제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멸종의 쓰나미사례는 큰 포유동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곰팡이, 바이러스에 이르는 침입종의 유입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299). 여기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는 주체가 바로 인간이다. 이제 지구상에는 야생이라는 것이 남아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인간은 지리적인 경계를 허물고 이를 넘어버렸다. 저자는 이 현상을 신판게아라고 부른다. 판게아는 33500만 년 전 즈음에 지구상에 존재했던 하나의 거대한 초대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초대륙은 부단한 지구의 움직임 때문에 갈라지고 이동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지질학적으로 오랜 시간 분리된 대륙이 이제는 인간의 행위로 지질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판게아는 지구의 생태환경을 극적인 속도로 재편하고 있기 때문에 우려스럽다. 앞서 언급했듯이 문제는 이 변화의 속도. 한 침입종은 생태계에 유입되어도 대개는 살아남지 못하거나 지배종으로 될 수 있는 적절한 시간과 조건이 주어질 때, 지역에 적응하여 하나의 고유종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 상징적인 초대륙 환경을 급속히 재편하며 지구를 혹사시키고 있다.

 

책을 통해 저자는 수많은 멸종 사례 및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언급하며 인간이 야기하는 여섯 번째의 대멸종을 경고한다. 이 메시지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 역시 생태계에서 홀로 생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생물들과 부단히 연결된 상태로 살아나갈 수밖에 없기에, 사람이 야기한 파괴의 끝은 결국 우리 인간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수많은 다른 생태계 구성원들을 멸종에 몰아넣고도 아무런 영향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답은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지구 생명체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강인한 생명력과 회복력을 발휘했지만, 저자는 이들의 회복력이 무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페이지마다 일러주는 듯하다. 그리하여 인류는 이제 대답해야 한다. 글 앞에서 독일의 어느 연구원이 저자에게 했던 말을 조금 바꾸어보면 우리가 대답해야하는 질문은 이거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닥친 불운이 될 것인가?” 




[1] "모든 개구리의 가치가 저에게는 코끼리만하게 다가옵니다."(35)
- 백악기 대멸종에도 살아남은 양서류가 사라지는 상황을 보고 한 양서류보전센터 책임자가 한 말

[2] "종들이 사라지는 데는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지만, 그 과정을 끝까지 추적하다 보면 늘 동일한 범인인 ‘일개의 나약한 종(인간)‘을 만나게 된다."(45)

[3] "18세기 말까지는 멸종이라는 범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146)
- 멸종은 해부학자 조르주 퀴비에에 의해 입증되었다.

[4] "생물다양성 감소가 일어날 것이라는 증거는 확실하다."
"해양 산성화라는 거대하고 끔찍한 놈이 곧 다가올 겁니다."(181)
- 환경연구가들의 경고

[5] "인류는 땅속의 석탄과 석유를 꺼내 태움으로써 수천만 년 이상 - 대개는 수억 년 동안 - 격리되어 있던 탄소를 대기 중에 되돌려 놓고 있다. 그것은 지질사를 거꾸로, 그것도 초고속으로 되돌리는 일이다."(186)

[6] "여러 세대에 걸친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산호의 방식은 인간이 해온 방식과도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그 과정에서 다른 생물들을 쫓아내지만, 산호는 다른 생물들을 돕는다."(193)

"산호는 생태계의 건축가입니다. 그러니 산호가 사라지면 그 생태계 전체가 사라지는 건 자명한 일이지요."(207)

[7] "관건은 속도다. 오늘날의 온난화는 마지막 빙기를 비롯하여 이전의 모든 빙기말에 일어났던 것보다 최소 10배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235)

[8] "무척추동물은 윌슨이 말한 대로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일 수 있지만, 작다는 이유로 간과되기 쉽다."(269)

[9] "인간 활동은 기후 변화 - 자연적인 기후 변화를 포함하여 - 에 따라 생물다양성이 확산할 수 있는 길에 장애물을 만들어 왔다. (이 결과는) 역사상 생물에게 닥친 그 어떤 위기보다 심각한 위기가 될 수 있다."(271)
- 환경운동가 톰 러브조이의 말

[10] "먼 미래를 내다보자면, 생물계는 궁극적으로 더 복잡해지기보다는 더 단순하고 빈곤한 상태가 될 것이다."(300)

[11] "나는 그렇게 많은 대형 포유동물이 급격히 절멸한 것이 사실 인간이라는 행위자 때문이었다고 확신한다."(322)
- 진화론의 창시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마지막 저서에 언급한 말

[12] "유전체적으로 말하자면, 네안데르탈인에게는 미학적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358)

"기호와 상징으로 세계를 재현하는 능력은 세계를 변화시킬 능력을 수반하며, 그것은 곧 세계를 파괴할 능력이 된다."(359)

"인류는 기호와 상징을 사용하여 자연 세계를 표상하기 시작하자마자 자연의 한계를 뛰어넘었다."(370)

[13] "멸종 현상의 문제는 멸종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속도다."(369)

[14]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인간이 쓰고, 그리고 건설한 모든 것이 먼지가 되고, 초대형 쥐 혹은 다른 어떤 생물이 지구를 물려받은 후에도 오랫도안 생명이 가는 길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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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야만을 발견하는 과정

- 모비 딕의 여러 번역본 비교와 감상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22)

 




모비 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주목을 받는 소설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은 고전이라고 여겨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작품에서 새로운 깨달음과 영감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의 미국을 형성한 소설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도 붙어 있는 이 소설은 작품의 길이 때문에, 심지어 영문학과에서도 수업 교재로 채택하지 않는다고 한다. 본격적인 연구의 대상이 아닌 이상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과 이야기꺼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성인이 되어 처음 읽어 본 모비 딕은 단순한 고래사냥이야기가 아니었다. 긴장감이 느껴지는 고래사냥은 사실 마지막 삼일 간의 모비 딕추적 대결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나머지 132장에 걸친 이야기는 주인공 이슈메일이 바다로 나가기까지의 과정과 일상적인 선원의 업무, 그리고 고래에 대한 잡다한 지식과 고래 해체 등에 관한 정보로 가득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번역한 작품까지 이제는 작품에 대한 번역서가 최소한 세 권 이상이 되고 있다. 고전이라고 불릴만한 책의 번역 작업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는 독자, 그리고 모비 딕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번역서가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이 무척 반갑다. 번역서 모비 딕의 풍년인 시대다. 독자로서는 어떤 번역서를 읽을까 고민이 되긴 하지만, 실력 있는 번역가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더 크다.


 

그동안 타 출판사의 모비 딕몇 종을 흥미롭게 읽었다. 최종적으로 내가 소장하는 도서는 모두 일러스트가 포함되어 있는 버전이다. 작가정신에서 출간한 아셰트클래식시리즈의 모비 딕은 일러스트가 책 내용에 충실하면서도 추가적으로 배의 구조와 고래사냥과 관련한 지식, 고래 해체작업과 고래에 따른 분수공과 분수모습의 차이 등을 설명해주는 삽화가 백과사전처럼 가득하다. 여기에 수록된 그림들은 수채화 만의 부드럽고 서정적인 느낌의 매력을 뽐내고 있기도 하다.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소설 구석구석의 장면을 궁금해하고 상상해볼만한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결과물이다. 게다가 김석희 번역가가 아닌가! 믿고 읽을 수 있는 버전이다.


 

한편 문학동네에서 나온 일러스트 모비 딕은 목판화가 록웰 켄트의 그림이 들어간 버전이다. 록웰 켄트의 그림은 매우 강렬하여 인상적이다. 한 장으로 승부를 걸어 독자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신문 삽화 같은 그림들이 화가의 해석을 통해 재탄생했다. 여기에 젊고 패기 있는 황유원 번역가의 세심한 번역과 꼼꼼한 주석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정신과 문학동네 버전은 각각 두 번씩은 읽었는데, 이번에 내가 선택하여 읽게 된 현대지성의 모비 딕도 목판화가 레이먼드 비숍의 그림들이 수록되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여기에 내가 믿고 읽는이종인 번역가가 참여하여 더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번역가가 작업에 참여했는지도 관심사항이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면, 레이먼드 비숍의 목판화는 록웰 켄트의 그림처럼 강렬한 삽화의 느낌을 주지만, 조금 다른 점은 비숍의 그림이 좀 더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긴 하지만 이렇게 미묘한 느낌의 차이가 어디서 온 것일까. 우선 그림에 사용된 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록웰 켄트의 그림에는 굵고 곧게 뻗은 선이 많은 편이며, 인물의 자세가 직선적이고 정적이다. 반면 레이먼드 비숍의 그림에는 곧게 뻗은 선이라도 가늘고 단선적이지만 방향성이 강하게 느껴지며, 선이 긴 경우는 곡선을 많이 활용한다. 여기에 등장인물의 동작은 정적인 자세가 아니라 움직이는 어느 순간을 포착한 듯한 장면이 많다. 여기에 극적인 명암대비를 잘 활용한다는 점도 켄트의 그림보다 더 역동적이고 입체감을 더 주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다양한 개성을 가진 모비 딕을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독자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수록된 그림의 여러 특징을 고려해볼 때, 현대지성 번역본은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를 많이 지닌 번역서다.


 

우선 내가 현대지성 번역본이 마음에 든 점은 번역가의 역할에 있다. 특히 번역가가 직접 작성한 해제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많이 제공되는 작가에 대한 배경이나 작품 배경에 대한 설명 외에, 소설을 읽으며 궁금해 하던 사항들을 많이 제공하고 있다. 특히 모비 딕은 나타니엘 호손과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번역가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상세한 도움 설명을 해준다. 뿐만 아니라 서양 사상의 원류가 되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곧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성경)와의 연관성도 놓치지 않고 주목한다. 이 점은 본문을 읽어 가다보면 어렵지 않게 서구의 두 가지 문화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의 1장부터 등장하는 기독교 비판적인 시각은 육지와 바다를 넘나드는 경계인의 시각으로 우리 사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가능성을 마련해 놓는다. 개인적으로는 흰 고래 모비 딕의 상징성이 소설을 읽는 동안 줄곧 궁금했더랬는데, 번역자는 이 점에도 주목하고 이 부분 역시 상세히 다룬다. 정리하면 이 책의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인 번역가의 해제에서 번역가는 독자가 이 소설을 단순히 고래잡이를 소재로 한 해양소설로 이해하는 한계를 넘어 설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시해준다.


번역가의 선정 외에 책의 구성에 있어 다른 번역서와 달리 눈에 띄는 점은, 번역가의 주석이 각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많은 번역서의 역주가 책의 마지막에 정리되곤 한다. 하지만 모비 딕처럼 두꺼운 서적의 경우, 독자가 주석을 읽지 않고 건너뛰며 읽는다면 큰 상관은 없다. 반면 나는 책을 천천히 읽는 편이다. 이왕 천천히 즐기면서 읽는다면 주석까지 꼼꼼히 읽곤 하는데, 역자의 주석 수백 개가 책 뒤에 있을 때, 매번 두꺼운 책장을 넘기면서 주석을 확인하기에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분명히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문제일 수 있겠지만, 주석이 제공된다면 나는 각주로 정리되어 있어 해당 내용을 같은 페이지 내에서 해결하며 읽기를 선호한다. 현대지성의 번역서는 천천히 읽는 독자의 독서 흐름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반대로 현대지성 번역서가 아쉬운 점은, 작품의 무게감과 물성을 고려할 때 하드커버로 나오면 좋겠다는 점이다. 책이 무겁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지성 시리즈의 공통점으로 종이가 얇아서 반대쪽 그림이나 글이 비친다는 점이 아쉽다. 소설에서 선원들이 고래 해체작업을 할 때, ‘고래 지방을 성경처럼 얇게 썬다고 표현하는데, 뒷면이 비칠 정도로 얇은 지면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소설을 읽으며 떠올린 흰 고래 모비 딕의 의미


 

서 번역가의 해제에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는 자세한 설명이 있음을 이야기 했다. 우선 향유고래의 거대한 흰 색이 주는 인상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일반적인 향유고래가 흰 색이 아니라면, 정상성에서 벗어난 흰 색 고래가 무엇보다 대자연의 존재가 지닌 성스러움불길함을 동시에 표상할 것이다. 또 흰 색은 검은 색과 더불어 모든 색을 덮고 무화할 수도 있는 극단의 색으로도 볼 수 있다. 검은 색과 함께 흰 색은 그 색을 지닌 존재 자체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대상을 알지 못한다는, 무지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여기에 이슈메일이 설명해주고 있듯이 고래의 얼굴 없는특성에 이르면 거대한 흰 색 생명체에 대한 공포감 배가 된다.


 

한편 이 소설이 탄생한 이후 모비 딕이 표상할 수 있는 대상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이러한 특징은 인간 사회가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특질 무언가에 대응될 수 있기에 시대를 지나오면서도 여전히 살아남게 된 것이 아닐까싶다. 일단 소설 작가의 손을 떠나 세상에 나오면, 작품에 대한 해석은 독자들에게 주어지기 마련이다. 다만 여기에서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살펴볼 수 있는 단서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연대기-역사적인 관점인데, 이 소설이 1851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미국 전역과 서구 유럽을 들썩이게 했던 사건 하나가 바로 1849년의 캘리포니아 금광 발견이다. 소설에서도 잠시 언급되는바, ‘골드 러시시대의 막이 오르게 된 직후였던 것이다. 이 때는 많은 사람들이 벼락부자의 꿈을 안고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하던 시기다. 그러니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모비 딕으로 대표되는 황금만능주의의 표상일 수도 있고, 고래를 쫓는 에이해브는 금을 찾아 달려드는 광기어릴 정도의 욕망에 굶주린 사람들로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날 물신주의에 물든 정도가 지나쳐 인간성을 상실하고 메말라가는 사람들을 떠올려볼 수도 있겠다.


 

내게 모비 딕이 상징할 수 있는 대상은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바 있는 허구적인 존재일 수도 있겠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허상을 만들어 내고 이를 믿게 만드는 존재다. 특히 모비 딕을 서구 백인 문명이 만들어 낸 모든 불합리한 기준과 규범으로 볼 수는 없을까. 그렇다면 모디 딕에게 복수하겠다고, 자신의 다리 한 쪽을 앗아간 고래에게 응징을 다짐하는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해브는 편집증에 붙들린 인간 사회에 대응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에이해브의 편집증은 특히 서구 기독교의 일신교적인 독단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때 작품을 관통하는 또 다른 맥과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에이해브의 일신교적인 광기가 서구 사회에만 존재할 리 없다. 어쩌면 우리의 근현대사를 뒤흔든 이데올로기 역시 바로 이런 맥락과 연결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모비 딕과 이를 집요하게 쫓는 에이해브의 광기는 보다 보편적인 표상을 얻을 수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지 인간이 이루는 집단 내에서 부조리함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제도적인 면, 사상적인 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이 만들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모순은 문명의 야만성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한다. 멜빌이 모비 딕 1장에서부터 언급하는 노예제도가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겠다. 인간의 문명은 계급을 구분하고, 노예를 만들어 사회를 통제해왔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1장에서 이슈메일이 세상에서 노예가 아닌 자가 어디 있는가?”(40)라고, 세네카가 한 말을 굳이 재인용하면서 외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고전은 인간 사회에서 부조리한 모순이 암묵적으로는 상식이 되고 합리성이 되어 버렸음을 간파하고 독자가 상기하게 해준다.


 

고전은 시대를 거쳐도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하며 문화와 지역을 떠나 인간 사회의 공통적인 특질을 대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기 때문이다. 고전의 생명력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읽은 모비 딕은 인간의 문명이 부조리함을 만들어 내고, 이 부조리함을 유지하도록 문명을 통제하고 만들어왔음을 새삼 일깨워 준다. 이러한 진실을 더욱 분명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모비 딕의 카발라적인 순환구조다. 육지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자 한 이슈메일은 오랜 모험과 항해 끝에 홀로 생존하여 다른 포경선에 의해 구출된다. 다시 육지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유대교 신비주의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이 순환 구조는 더 나아가면 서양 사상의 원류가 되는 플라톤의 영혼회귀와도 연결지을 수 있다. 이는 이 소설에서 서양 사상의 지혜와 원류를 재확인하는 발견을 독자에게 주기도 한다. 소설은 이슈메일의 구출과 회상에서 끝나지만 언젠가 이슈메일은 또다시 바다로 나갈 것 같지 않은가. 소설에 언급된 것과 같은 이유로 말이다. 그러므로 멜빌의 모비 딕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내는 문명의 야만성이 역사는 되풀이 되듯어떤 형태로든 되풀이 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소름 돋는 우화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속성이자 우리를 매어 놓는 속박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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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1-18 14: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민되는군요. 저도 두꺼워 가지고 각주는 맨뒤에
나와있는 책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장 맨밑에 나와 있어야 하는데...
그러고 보면 책 만드는 사람들은 읽는 사람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보기 좋은 것이 제일인가 봅니다.

근데 초란공님 모비 딕 마니아시군요!^^

초란공 2022-11-19 08:49   좋아요 2 | URL
저 생각해보니까 집에서 사용하는 머그컵, 티셔츠, 책베개, 에코백도 다 모비딕이내요 마니아보다는 굿즈 중독인가요 허헛 ㅋㅋ ^^;;
 
화이트 스카이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김보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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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상대로 한 팡글로스의 도박

- 화이트 스카이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 지음, 김보영 옮김, [쌤앤파커스] (2022)

 



근대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자신의 철학을 담은 콩트 캉디드를 남겼다. 이 풍자소설을 통해 볼테르는 라이프니츠식의 낙천주의, 세계는 조화롭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믿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런 세계관을 대표하는 인물이 캉디드의 철학 스승 팡글로스다. 소설 속의 인물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상에 편재해 있는 악과 부조리를 겪지만, 그는 이 세상이 언제나 최선으로 이루어졌다고 굳게 믿는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저술하며 인류세의 위기를 경고하고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자신의 신간 화이트 스카이에서 팡글로스 같은 과학자와 공학자들을 만나 취재했다. 물론 이 책에서 만난 과학자·공학자들은 현재 지구가 마주한 여러 문제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팡글로스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이들은 전 세계 사람들이 마주한 지구적인 환경 문제들을 과학기술로 해결해보려고 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저자는 이들이 가진 논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독자에게 제시하고 점검한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환경 문제는 인류가 처한 어떤 위기보다도 심각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든 무언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마련이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운 결론으로 보인다. 하지만 환경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인류가 마주한 위기를 경고했던 저자가 저널리스트로서 현재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헤친 현장을 따라가 보면 생각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처한 환경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자연 환경에 개입하고 이를 바꾸어 놓은 결과, 으레 또 다른 재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지역을 물로부터 보호하고자 시행했던 토목공사의 결과 이 지역은 1시간 반마다 축구장만한 땅이 수몰되어 지도에서 사라지고 있다. 심지어 뉴올리언스 일부는 10년에 거의 15센티미터씩 가라앉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5년에 이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에는 도시 해체를 신중하게 계획하기 시작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오랜 세월 미시시피강이 퇴적해 놓은 이 지형은 이렇게 자연을 통제하려 했던 인간의 선한 프로젝트의 결과 홍수의 범람은 줄어들었을지 모르나, 퇴적 작용마저 중단되게 되었다.


 

뉴올리언스에서 인간이 거대한 자금을 들여 개입한 프로젝트의 목록은 우리의 4대강 사업처럼 제방을 높이고 강물을 막았던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남부의 대홍수를 계기로 미시시피강 홍수 통제권을 국유화한 미국 의회는 자연을 개조할 권리를 미 육군 공병대에 부여했다. 이들은 시시포스처럼 끊임없이 강 주변으로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제방을 쌓았고, 나아가 세계 최대의 양수장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뉴올리언스의 토지 손실은 계속되어 멕시코만과의 거리가 도시 형성 초기보다 32킬로미터나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치지 않는 투지와 마르지 않는 희망으로 승리를 다짐하며 이 지역을 바꾸어 놓았다. 여기에 석유 산업이 들어와 습지에 운하까지 팠던 것이다. 이제 가라앉던 습지는 바닷물까지 들어와 갈대 등의 식생이 죽고 습지의 많은 생태계가 회복하기 힘든 교란을 겪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1920년대 미국 사회는 엔지니어링의 힘에 대한 과도한 확신이 넘쳐났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자연을 엔지니어링하는 작업의 선봉에 섰던 집단이 바로 미육군 공병대였다. 자연에 대한 이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공병대가 만든 구조물이 자연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 재앙에 휩싸일 뻔한 후에도 공병대의 한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병대가 명령하면 미시시피강은 그게 어디든 가게 되어 있다.”(89) 나아가 공병대원들은 우리는 강을 틀어쥐고, 바로잡고, 길들이고, 족쇄를 채웠다.”(56)라고 말하는 이들이었다. 이정도면 뻔뻔한 것이 아니라 광신도 집단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21세기에도 이들의 태도는 크게 변함이 없는 듯하다. 한 공병대원은 저자에게 문제가 있는 곳에는 공병대가 있습니다.”(90)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 공병대가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야 할 듯하다.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본인이 취재하는 이들에 대한 평가나 판단을 곧바로 드러내지 않고 이들의 말을 거리를 유지하며 전한다. 오히려 저자의 입장이 너무 중립적인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거대한 정치 세력과 연결되어 있는 미 공병대에 대해서 저자의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기에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 대신 저자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던 로마 서정시인 호라티우스의 말로 자신의 입장을 대신한 듯하다.


 

쇠스랑으로 자연을 긁어낸들 자연은 이내 돌아와 우리가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우리의 비뚤어진 경멸을 뚫고 승리할 것이다.”(82)


 

하지만 토목 공사로 환경을 변화시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저자는 생태계 보전에 앞장 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제2부에서 들려주고, 지구의 대기 환경을 바꾸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제3부로 가면서 점차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미육군 공병대가 주장하는 논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통제가 문제라면 더 큰 통제가 해법이다’, 라는 입장이다. 저자는 이를 인류세의 논리라고 정리한다. 1부에서 저자가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 주변의 광활한 지역에 개입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면, 2부에서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에 대한 통제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크리스퍼(CRISPR) 기술을 활용한 유전자 편집 기술로 생태계를 통제하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이들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사용하여 생태계에 발생한 재앙을 해결하고자 했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한 백화현상을 겪는 산호에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하여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에 강한 내성을 가진 산호로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이 논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면 이들 유전공학자들의 주장이 공병대의 인류세 논리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물론 이들의 주장 가운데 우리 환경이 이미 유전적으로 변형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 이들은 애초에 존재하면 안 되는 2만 개의 유전자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단지 10개 정도의 유전자를 추가하려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매우 큰 질적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자연에서 이루어진 유전자 변형은 오랜 시간생물과 환경이 상호작용하며 적응하여 최적화된 결과다. 여기에는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생태계 그물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반면 인간이 단 10개의 유전자를 바꾸어 생태계에 노출시켜 빠른 시간에 생태계에 영향을 주게 된 상황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인간의 개입은 환경을 교란시키고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다. 이들 유전공학자들은 단지 10개 정도의 유전자 변형이라고 대중을 교묘하게 설득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들은 선한 프로젝트라는 선민의식으로 과학자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 것이다.


 

인간의 개입으로 생태계가 위기에 처하게 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저자가 언급한 수수두꺼비도 한 가지 사례다. 또 다른 예로, 일부 과학자들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유전자 기술로 생쥐를 멸종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자연선택을 무력화시키는 드라이브 유전자를 가진 생쥐를 만들어 수컷만 낳도록 조작함으로써 멸종을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제 책의 후반으로 가면서 자신의 견해를 점차 드러낸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181)는 점도 지적한다. 여기에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은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회의론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생물의 다양성이 생태계 구성원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어 자연 스스로의 회복력을 기대하는 것과 유전자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이 마주한 문제를 값싸고 빠르게 해결하는 방식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이들 과학자들이 지적하듯, ‘그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견해에 크게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류가 처한 위기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본질적인 원인에 손을 댈 일이다. 인간이 환경 및 생태계의 어떤 이상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특정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을 교란시키는 일을 직접 해결하려고 뛰어들기 보다는 자연의 치유력을 이용하는 일이 보다 근본적이며 필요한 일이라 여긴다. 물론 이들 과학자들은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럴수록 문제의 해결책은 문제의 원인을 곧바로 공략해야 할 일이다. 예를 들면 인간의 무분별한 성장과 자연의 과도한 이용을 줄이고 자원을 보다 고르게 분배하는데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에게 필요한 자원이 영원히 무궁무진한 것처럼 취하고 소모해서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미 육군 공병대나 유전자 기술을 이용하여 생태계 재앙을 해결하려는 공학자와 과학자들이 포기하지 않는 일말의 희망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내가 인간 세계에 편재하는 모든 부조리를 경험한 뒤에도 세계의 최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팡글로스의 공허한 희망을 이들에게서 본다면 너무나 지나친 해석일까 자문해본다. 이들의 사고는 북미 대륙에 침입한 아시아 잉어를 제거하고자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죽이려는 이들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토착 생명의 순수성을 지키고자하는 서양 백인들의 사고와도 연결될 수 있으리라. 이처럼 인간이 적극 개입하여 자연을 엔지니어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우려를 보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취약점을 지닌다.

 


3부에 이르면 과학자들의 자신감이 지구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기 환경을 바꾸는 계획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지구 온난화에 대비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지구 성층권에 햇빛의 반사율을 높이는 입자를 살포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지구 온도를 강제로 낮추려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태양빛을 상당히 반사시켜준 극지방의 얼음과 빙하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아이디어는 보다 더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1815년의 탐보라 화산 분출과 같이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례처럼 자연이 기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인간의 개입으로 지구 생태계를 갑작스럽게 교란하는 일은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여기에는 이런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도 이를 분명히 지적한다. 그는 햇빛의 반사율을 높이려고 하늘에 수많은 입자들을 살포하는 시도에 대한 부작용으로 하늘도 흰 색으로 보이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이 화이트 스카이인 이유다.

 


저자는 인간이 마주한 여러 환경적인 재앙을 해결하고자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취재했다. 때론 이들의 명분에 동의도 하고 수긍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직접적인 개입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분명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과학자들이 여러 방면에서 문제들을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하지만, 해결 방안의 실행은 또한 정치적 결정의 문제임을 분명히 한다. 물론 이 문제에 과학기술자들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치적 결정의 문제이기에 이는 모두의 문제가 된다. 이런 중대한 문제의 결정이 전문가 혹은 정치인들의 손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독자들에게 한 가지 더 생각거리를 던진다. 만약 전문가 혹은 정치인들의 결정으로 하늘에 무수히 많은 입자들을 뿌리게 되었다고 상상해보길 요구한다. 전 세계의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 없이 말이다. 이 때 전 인류가 태양빛의 반사율을 성공적으로 높여 지구의 온도를 낮추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만일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이 주어들지 않고 계속 늘어난다면, 인류는 다시 이전의 기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어쩌면 인류는 하얀 하늘 아래기후가 교란되어 여름에 작물이 얼어 죽어 식량 대란이 발생한다면 인류에게 큰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독자에게 암시하며 마무리한다. 그러므로 제목으로 사용된 화이트 스카이는 인간의 어리석은 개입으로 인류가 보게 될 또 다른 재앙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저자가 독자에게 경고하는 말을 읽고 다시금 캉디드가 생각났다. 지구 온난화를 늦추자고 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많은 입자들을 대기에 뿌리겠다는 생각은 도박과 다름없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팡글로스의 마음가짐을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이 인류를 상대로 벌이는 도박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에다 인간 세계의 온갖 부조리를 경험하고 고향에 돌아온 캉디드와 스승 팡글로스가 마지막으로 나누는 대화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여전히 최선인 세계의 존재를 믿는 팡글로스의 말에 캉디드가 대꾸하는 말 때문이다.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 합니다.이 말을 공병대나 일부 과학자들이 들으면 자연을 통제하려는 의욕이 더욱 고취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자를 포함하여 아마도 모든 인류가 공유해야할 마음가짐이란 우리가 꽃과 열매를 당장 맺을 수 있게 기후를 바꾸거나 물길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화로운 정원을 마련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책 속으로]

[1] "통제가 문제라면 더 큰 통제가 해법이다. 그것이 인류세의 논리다."(56)

[2] "엔지니어들의 개입 덕분에 범람을 막았고, 대혼란도 없었으며, 새로운 땅의 조성도 없었다. 그 대신에 루이지애나 남부의 미래는 바다로 쓸려 내려갔다."(64)

[3] "미국 의회는 ‘대홍수’에 대한 대응으로 미시시피강 홍수 통제권을 사실상 국유화하고 그 임무를 육군 공병대에 맡겼다."(71)

[4] "공병대가 명령하면 미시시피강은 그게 어디든 가게 되어 있다."
(한 공병대 장군의 말)

[5] "하나의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그에 비하면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108)

[6] "세계 최고의 지성들이 협력한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150)
- 이 견해는 인류 최대의 오판인 듯하다.

[7]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파괴하면서 인간에게 아무런 고통이 없으리라는 생각은 오만이 맞다. 그러나 ‘모든 산호초를 아우르는 규모의 개입’이라는 것 역시 또 다른 오만이 아닐까?"(151)
- 저자의 비판적인 시각

[8] "우리는 애초에 존재하면 안 되는 2만 개의 유전자에 단 10개 정도의 유전자를 추가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10개는 나머지를 파괴하고 생태계에서 몰아냄으로써 균형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162)
- 일부 유전공학자들의 지극히 인간중심적 시각, 책임회피, 생태계의 균형에 대한 근시안적 사고와 무지를 드러낸 말.

[9] "수학적 모델링에 따르면 효과적인 억제 드라이브는 엄청난 효율성을 발휘하여, 정상적인 생쥐 5000마리가 서식하는 섬에 유전자 드라이브 생쥐 100마리를 방사하면 몇 년 안에 생쥐를 박멸할 수 있을 것이다."(179)

[10] "우리는 신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 일을 잘 해내지는 못했다. (...) 우리는 재미로 아름다운 것들을 죽이는 로키(북유럽 신화의 장난꾸러기)이며,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농경의 신)다. (...)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뭔가를 하는 것보다 낫다. 또 때로는 그 반대다."(187)
- 영국 환경 운동가이자 작가인 폴 깅스노스의 말.

[11] "우리가 배출량을 반으로 줄인다고 해도 - 그러려면 전 세계 인프라의 상당 부분을 재편해야 한다 - 이산화탄소농도는 덜 빠르게 상승할 뿐 감소하지 않을 것이다."(204)

[12] "신속한 염가 솔루션으로 보이는 SAIL이 그렇게 빠르고 저렴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진정한 해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온난화의 증상만 치료할 뿐, 원인을 제거하지 못한다."(236)

[13] "과학자들은 권고를 할 수 있을 뿐이며 실행은 정치적 결정의 문제다. 우리는 그 결정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미래 세대,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공평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랬던 적이 별로 없다는 것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259)

[14] "전 세계 - 혹은 적극적인 소수의 국가 - 가 SAIL함대를 띄운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만약에 SAIL이 점점 더 많은 입자를 하늘에 뿌리지만 전 세계의 탄소 배출도 계속 늘어난다고 하자. 우리는 산업화 이전의 기후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악어가 북극해 해안에서 볕을 쪼이던 플라이오세나 에오세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얀 하늘 아래 백련어가 반짝이는, 전례 없는 기후의 전례 없는 세계에 살게 될 것이다."(259)
-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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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 김현준의 재즈+로그
김현준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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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재즈 현장을 비추는 거울, 캐논

- 캐논, 김현준의 재즈 + 로그

 

김현준 지음, [한울] (2022)




책을 통해 재즈비평가 김현준을 처음 알게 된 건 25년 전의 일이다. 우울증인지도 모르고 내 안의 세계에 갇혀 있던 시절, 나는 어떤 음악도 듣지 않는 아이였다. 우연한 만남. 재즈는 나를 세상으로 향하도록 처음 문을 열어주었다. 새끼 새가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올 때 어미 새는 밖에서 알을 쪼아 도와주기도 한다던가. 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문을 잡아준 것에는 김현준의 재즈 파일(1997)과 그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도 있었다. 군 시절 라디오로 그가 진행하던 재즈 프로그램을 듣던 기억이 난다. 점호가 끝난 한 밤중, 고참들이 잠든 시간.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카세트의 녹음 버튼을 눌러 그가 진행하던 방송을 테이프에 녹음하곤 했다. 내무반에서 방송을 녹음 한 테이프를 늘어져라 듣고 지우기를 반복하던 기억도 새롭다.


 

캐논, 김현준의 재즈 + 로그(이하 캐논)18년 만에 나온 그의 세 번째 책이라고 한다. 책에 담긴 이야기가 무르익는 동안 그는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했다. 간간이 그가 번역했던 쳇 베이커마일즈 데이비스 평전을 서점에서 만나면 반가웠지만, 나는 나대로 생활에 매몰되어 오랫동안 음악을 잘 듣지 못했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는 여전히 재즈비평가로, 또 공연기획자와 프로듀서로, 그리고 교육자로 치열하게 자신의 역을 맡아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출간된 캐논은 그가 지난 세월 함께 했던 국내 재즈 현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여기에 저자가 가상의 피아니스트 한세영과 대화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을 도입했다. 비평가만이 아니라 음악과 연주자에 대한 애정을 지닌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가슴에 꾹 눌러 담았던 이야기였다. 그가 써야할 책이었다고 말할 때, 재즈 클럽의 문을 여는 순간 떠들썩한 공기의 떨림과 실내의 열기가 살갗을 때리는 듯 느껴졌다. 여기에는 지난 20여 년 간의 무게가 실려 있었을 것이다.


 

책 전반에서 저자가 비평가로 지내는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 되물었을 법한 화두를, 재즈곡의 중요한 프레이즈(phrase)처럼 만나게 된다. 바로 비평가란 누구인가?’, ‘비평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저자에 따르면, 비평가의 역할이란 물밑에 감춰진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눅눅하게 처져버린 우리의 가슴에 불을 댕기는 일”(7)이다. 그에게 비평이란 짝사랑하기다. 그렇다고 비판적인 시각을 포기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나는 어떤 대상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주어본 이만이 상대방을 미워할 수도 있는 법이라고 이해한다. 조금 과장해본다면 배교자라도 한때는 열렬한 숭배자였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의 비평은 연주자의 상처를 덧나게 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재즈 연주자들에게 여러 가지 해법을 제시하고 대안과 자성의 소중함’(125)을 지향한다. 이런 내막으로 그동안 그의 눈길은 줄곧 무대 위 연주자의 표정과 몸짓을 향하고 그의 숨소리 하나까지 듣고자 했을 것이다.


 

나는 왜 비평을 하는가. 앞서 말했듯이 나의 비평은 카타르시스를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데 대한 감성의 화답이다. 동시에, 사회의 일원으로서 미학적 신념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한 이성의 손길이다.”(125)


비평가는 무엇보다 먼저 연주자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대상 없는 비평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124)이다. 지난 25년간 재즈계 현장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연주자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당부가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이 말들이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의 당부가 재즈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에서 재즈나 재즈인이라는 표현을 다른 분야의 예술로 대체해보라. 여전히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미술가는? 사진가는 또 어떤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어느 예술 분야를 떠올려보아도 대상 없이존재하는 분야는 없다.


 

또한 저자는 연주자의 궁극적인 목표가 스타일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과 주변 세계를 면밀히 관찰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모든 예술가는 세상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으로 대상의 상태를, 특히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입은 상처와 슬픔을 제일 먼저 감지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의 상처와 정면으로 대면하고 그 상처를 어루만짐으로써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수단’(27)을 갖게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은 각자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서는’(172) 존재들이기도 할 것이다. 비평가로서 그가 재즈계에 전하는 당부를 나는 모든 예술인들에게 전하는 정언명령으로 읽는다. 이 길이 고귀한 길인 반면, 누구나 지나갈 수 있는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코로나 시국으로, 또는 기득권이 들어앉은 높은 성벽에 가로막혀 재즈인의 길을 걷지 못한 연주자들의 사연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대상을 손에서 놓아 버린 가슴 아픈 사연들이 찬바람 이듯 지나가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재즈라는 서브컬처는 굽은 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저자는 음악이 경력을 쌓는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이유’(264)임을 다시금 일깨운다. 이 말을 읽고 어느 작가가 언급한 표현을 떠올렸다. 그가 자신의 글쓰기 수업 중 언급한 표현을 대강 옮기면 이렇다. ‘글쓰기는 결코 직업이 아니다. 글쓰기는 여러분이 좋아하기 때문에, 나아가 쓰지 않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쓰는 것이라고. 물론 음악인의 경력을 쌓는 문제는 중요하다. 다만 여기에 선행되어야 하는 건, 음악가가 자신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다. 달리 말해, 저자는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지 당신이 음악을 좋아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음악가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연주가가 아니기에 이런 말을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비평가가 후배 연주자들에게 하는 말은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말에서 끝나지 않는다. 보다 먼저 재즈 현장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그는 새로운 세대에 대해 무한한 관심과 지지를 보내면서, 음악을 가까이하는 대중에게는 국내에서 왜곡되어버린 재즈의 위상을 바로 알리고자 한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나름의 위치에서 분투해온 시간의 증거물이기도 하다.


 

10년 전 즈음의 기억이다. 이탈리아 재즈계의 거장 트럼페터 엔리코 라바의 공연에 간 적이 있다. 2012년 즈음이므로 당시에 라바는 이미 73세 정도였다. 젊은 시절만큼의 에너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분한 연주였지만, 특히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연주 중에 빈번히 젊은 연주자들에게 연주할 기회를 더 주고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좋은 작품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표현력(연주력), 독창성, 진정성을 들었다. 엔리코 라바의 연주 기량이나 독창성은 비평가의 입장에서 인상적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까마득한 후배 연주자의 소리를 정성껏 귀 기울여 듣고,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며 배려하는 모습은 선배 연주자가 보여주는 진정성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재즈를 여전히 잘 모르는 나에게도 그 날의 연주가 뭉클한 감동으로 남아있는 이유다. 저자가 책에서 들려주는 진정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는 이 날의 연주를 떠올리며 읽었다. 언제 그의 연주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기약할 수 없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저자가 한국 재즈계와 후배 연주자들에게 하고자했던 말은, 문학을 하고 싶었던 중학생시절의 저자에게 친척이 해준 말에 아마도 모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마음의 고향을 잃지 마라.”(109) 앞서 이야기한 선배 연주자 엔리코 라바의 사례처럼 이미 정상에 오른 이들이 후배들에게 더 많이 배려할 때, 후배들은 새로운 마음의 고향을 얻게 될 것이다. 선배 연주자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를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후배 연주자들에게 길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재즈 1세대는 그야말로 어려운 여건에서 열정과 노력으로 자신의 길을 만든 세대다. 아울러 후배들을 많이 챙기고 배려했던 이들이기도 하다. 이제 그 몫은 다음 세대에게 주어졌다. 여기에 더하여 후배 재즈인들이 해야할 일은 마음의 고향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이들에겐 힘겨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저자가 언급한 대로 대한민국에서의 재즈는 앞으로도 서브컬처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한 소수 음악이 사회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로부터 그 존재를 인정받을 때 젊은 연주자들은 최소한 마음의 고향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책을 읽는 동안 재즈비평가가 오랫동안 묵혀놓았던 이야기들을 밤새 옆에서 들은 느낌이다. 자연 생태계가 건강한지의 여부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존재들이 서로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종의 다양성 확보에 달려 있다. 한국 재즈계도 그렇다. 젊은 재즈연주자들이 마음의 고향을 잃고 존재 이유인 음악을 손에서 놓아버린다면, 한국 재즈 생태계의 다양성이 감소하고, 나아가 언젠간 대한민국 재즈의 미래 역시 소멸 위기에 놓이게 될지 모른다. 오래도록 음악과 멀어져 있던 나 역시 한국 재즈계에 침묵의 봄이 오지 않길 바란다. 음악은 음악인 혼자 수행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속한 생태계는 건강해야만 한다. 예술은 국내 어느 한 기업가가 말했던 것처럼, 한두 명의 천재가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분야가 결코 아니다. 효율성과 성과를 기준으로 예술인들을 평가하고 지원하는 것은 다양성이 확보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생명력을 잃고 하나의 화석처럼 되어 버린 퓨전 국악의 사례를 떠올리면 된다.


 

책을 덮고서 책에 등장하는 가상의 피아니스트 한세영을 다시 떠올려본다. 한세영이란 인물은 대한민국에서 소수 음악을 어께에 짊어지고 고군 분투해온 이 땅의 모든 재즈 음악인들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책에 제시된 한세영의 경력이 피아니스트인 점을 제외하면 저자가 걸어온 삶의 궤적과 닮았다는 점에서, 한세영은 저자를 비추고 있는 하나의 거울상으로도 읽힌다. 따라서 한세영이 하는 말은 비평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할 테다. 나아가 저자가 또 하나의 자신한세영과 대화할 수 있게 해주었던 이 거울이야말로 하나의 캐논’(예술가들이 삶과 창작 과정에서 지켜야할 규범, 176)이었다는 생각도 해본다. 저자가 지향했던 삶과 마찬가지로, 그가 바라보던 연주자는 오늘도 끊임없이 자신을 찾아 길을 헤매기도 할 것이며,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고 있을 것이다. 또 어디선가는 마음의 고향을 지키며 자신의 작품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마음의 고향을 지키며 자신의 길을 찾고자 노력하는 모든 예술인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하느니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전영애 역, 도서출판 길, 91)









[책 속으로]

[1] "나는 재즈가, 수많은 이들의 갈채 속에 시대를 풍미하는 상업 음악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재즈를 그렇게 만들려는 시도가 되레 그 가치를 왜곡하기 쉽다는 점도 현장에서 몸으로 배웠다."(9)

[2] "삶과 동떨어진 음악은 현실 속에서 생명력을 얻지 못하며 울림의 폭도 좁다. 그리고 만드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 음악은 온몸으로 느끼지 못하면, 음악은 없다."(70)

[3]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마음의 고향을 잃지 마라."(109)
- 문학을 하고 싶었던 저자의 중학생 시절, 친척 한 분이 저자에게 했던 말.

[4] "비평은 짝사랑이다. 비평가로 세상을 산다는 건 설렘의 포로가 된 채 ‘마냥 기다림‘의 끈기를 요구받는 일이다."(124)

[5] "비평가는 그대가 꿈에 그렸던, 그대의 작품을 누구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했던 열렬한 짝사랑의 주체였다."(125)

[6] "건강한 서브컬처로서의 소수 음악이 사회에 의해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건 견디기 힘든 폭력이다."(126)

[7] "연주자로서 눈여겨봐야 할 재즈의 교훈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서는 태도와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데 있어요."(172)

[8] "세상 그 누구도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모든 이들에게서 사랑받지 못한다. 그러니,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남은 생을 바쳐라."(231)
- 재즈 연주자 앤드루 시릴이 2014년 사천 국제 재즈워크숍에서 저자에게 건넨 말.

[9] "우리는 그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351)

[10] "(연주자는) 조건 없이, 자기 작품을 아낌없이 무조건 사랑하라."(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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