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그리고 고발 - 대한민국의 사법현실을 모두 고발하다!
안천식 지음 / 옹두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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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그리고 고발>

안천식 지음 | 도서출판 옹두리

 

 

편의 소설같은 일들이 대한민국의 어느 구석에서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다. 대기업의 무모하고 정정당당하지 못한 소송으로 개인의 기본권이 무참이 짓밟힌 사례를 나는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읽어내렸다. <고백 그리고 고발> 변호사인 저자가 10 겪었던 사건의 전말을 담고 있다. 대기업과 개인사이에 있었던 부동산 관련 계약에 얽힌 사건이었다. 대기업은 부동산 매매 계약서를 위조하고 개인의 막도장을 만들어 해당 위조계약을 체결하여, 값에 개인의 땅을 사들였다. 나아가 소송에서 회사에 직접적으로 적을 두고 있는 혹은 이익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을 증인으로 세워 위증하게 하였다. 여기까지 벌어진 일들은 분명 흔히 들어본 일들일 것이다. 그러나 사건들을 취급하는 법원, 판사들의 행방을 보면서 법을 모르는 일반인의 눈으로 봐도 형평성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일들이 어떻게 벌어질 있는지 보게 되었다.

 

보다 간단히 이렇게 정리해보자. 만일 여러분이 시가 40억원의 땅을 갖고 있는데, H건설과 같은 대기업이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고 여러분의 땅을 매입하는 계약서를 작성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H건설이 매매계약서를 위조하여 9억원 정도의 금액만 지불하고, 계약이 완료되었다고 공표한다. 소유주인 여러분은 물론 당연히 황당해하며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지지부진한 공판 과정에서 대기업은 문서를 위조하고, 자기 사람을 증인으로 만들어 위증을 하게 한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번번히 위증하는 증인의 말만을 증거로 인정하여 여러분의 권리를 짓밟는데 아무런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기간이 길어진 만큼 H건설은 건물의 철거가 H건설에 있는데도, 다시 계약서를 위조하여, 건물주가 아닌 여러분에게 철거의 책임을 떠넘기고, 다시 3억원의 돈을 가로 채었다. 그런데도 H건설은 자신들의 전관 변호사, 대형 로펌의 법률가를 대동하여 모든 소송에서 승소한다. 무리한 H건설의 소송으로 자신의 재산을 지키지 못한 법률에 무지한 사람은 자살하고, 여러분은 희귀한 불치병에 걸려 몸과 마음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다. 여러분은 어디 하소연할 없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사회의 루저가 된다고 상상해보라. 바로 이런 일이 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주 단순히 정리해본 것이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일이…’

다시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우선 책을 읽으면서 나는 사람(저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가하는 생각이 정도였다. 책의 후반에는 숱한 재판과 기각, 증거 수집을 하는 고생을 결국 승소를 알았는데, 맥이 풀렸다. 대한민국의 사법 환경에서 이런 기대에 부합하는 소송이 있을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여기 책에는 10 18차례 계속 패소한 패소 전문 변호사 경험한 사법 현실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저자가 제출한 상고 사유서에 대한 법원의 대응(주로 재심 기각, 증인 신청 기각 ) 보면서 뭔가 이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도 언급하고 있듯이 법원과 변호사 사이의 소통자체가 되지 않는, 아니 이를 거부하는 듯한 법원의 행태에 젊은 변호사로서 저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마도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소통 방법은 상대방 주장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와 답변의 생략인 합니다.”(355) 저자의 당황스러운 감정과 회한에 듯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답답한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법원의 존재이유를 고민하며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이론을 언급한다. 몽테스키외는 국가 권력을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나누되 재판권이 입법권과 행정권으로부터 분리되어있지 않을 시민의 자유는 존재할 없다라고 사법독립에 관해 언급하였다. 우리의 사법 독립은 과연 가능하기나할지 의구심만 든다.

 

책을 읽는동안 자세한 법률 용어와 표현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사건과 판결문의 대의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아니 글을 이해할 있었지만, 벌어진 실제 사건을 도저히 이해할 없었다. 증거를 착실히 수집하여 추가하고, 법리를 연구하고, 논문을 섭렵하는 변호사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한 이의 외침에 법원은 그저 회피와 침묵, 거절로 화답한다.   

 

나는 여기서 학창시절 모범생으로 성장하여 좋은 대학을 나오고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힘들게 공부하여 판검사 변호사가 되어 권력과  기업의 이익을 위해 기여하는 전문가들이 어떻게 태어날 있는지 가능성을 또한 보게 되었다. 다시 정리한다. 안천식 변호사의 <고백 그리고 고발> 등장하는 10 년간의 재판 과정은 대기업과 법원이 어떻게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유린하며 약탈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막중한 권한은 직간접적으로 국민이 부여한 권한이라 있다. 따라서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책임이 있다. 저자의 언급대로 법관은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의무 있다. 그러나 책에 소개된 법원의 대응을 보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판결 사유를 공공연하게 발표할 있을지 의문이 들게 한다. 고등법원, 대법원의 판사들이 일관되게 대기업에 의해 매수라도 당한 것일까? 아니면 법원에서의 일처리 관행이 이렇게 이어져내려오는 것인지? 사실 어떤점에서보면 특정 판사가 매수당하는 경우보다 이러한 일처리 관행이 존재한다면 점이 문제이다. 하급법원의 공판 결과를 상급법원에서 크게 고민을 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 관례인 것일까? 끝없는 의문이 든다.

 

시민의 기본권, 시민의 자유는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당연한 생각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법을 다루는 전문가로서 법률가들이 기타 시민의 위에 군림하기 때문이다. 헌법으로 보장된 권한과 책임이 하나의 권력이 되면서 사법권의 독립성 마저도 크게 손상을 입은 것같다. 대한민국의 법원 법률가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배경을 살펴보는 데에는 한홍구 교수의 <사법부> 김동춘 교수의 <대한민국은 ?> 읽어보면 좋을 같다. 책들을 통해 대한민국 지식인의 근원을 이해할 있고, 특히 사법부의 역사와 체질을 좀더 자세히 이해할 있으므로 겹쳐 읽기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좀더 면밀히 파악해볼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고백 그리고 고발> 속편 <찢어진 통장> 나온다고 한다. 책들은 시민들 뿐만 아니라 법을 다루는 법조인들이 읽어보고 고민해봐야할 문제들을 담고있다.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군복무시절(태평양 전쟁 당시) 폭격기를 조종하며 당시에는 자신이 투하한 폭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삶을 짓밟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상에서 폭격을 당해 가족을 잃고, 사람들의 터전이 사라진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자신이 일이 어떤 의미를 가졌던 것인지 반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사법 현실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볼 있다. 법관들은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만든 체계인 어떻게 사람의 삶을 파괴할 있는지, 파괴력을 분명히 사례에서 살펴보고 고민하고 반성했으면 한다.  

 

  

프롤로그에도 언급하지만, 저자가 10여 년 간 쓰라린 경험을 한 후, 이를 '가슴속에만 묻어두기에는 너무도 서럽고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속내를 드러내었다.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사법연수원에서 연수를 받은 후 젋은 변호사로서 개업을 하며 맞닥드렸을 대한민국의 사법 현실을 저자는 자신의 세포 하나 하나에 각인해두었을 것이다. 그 수많은 말들을 가슴에 묻고 저자는 다음과 같은 한가지 당부를 덧붙이며 끝내고 있다.

 

사법부가 국민의 믿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며,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04)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지난 10여 년간의 쓰라린 경험을 한 사람의 가슴속에만 묻어두기에는 너무도 서럽고 안타까운 일이었고..." (프롤로그)

"국민들의 사법불신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단지 법에 대한 무지 때문일까?"(227면)

"현실도 모르면서 혼자서 진실을 밝혀보겠다고 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구경꾼들이 얼마나 재미있어 하며 비웃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29면)

"힘 있는 자에게는 여러모로 편한 세상이고, 힘없는 자에게는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자체가 그러한 세상이었다. 나는 즉각 검찰 항고를 하였으나 기각되었다. 기소유예도 아닌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불기소 처분이었다. 재항고를 해봐도 소용없었다." (264면)

*법원의 행태에 대한 저자의 비판

"아마도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소통방법은 상대방 주장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와 답변의 생략인 듯합니다." (355면)

"역시 그들만의 소통방법인 과감한 생략과 이유있는 항변에 대한 침묵과 무시였습니다." (375면)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이론 인용
"국가 권력을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나누되 재판권이 입법권과 행정권으로부터 분리되어있지 않을 때 시민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394면)

"법관은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의무가 있다." (403면)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가하는 당부

"사법부가 국민의 믿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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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 시간 - 프루스트의 서재, 그 일년의 기록을 통해 되찾은 시간
박성민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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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시간>

박성민 지음 | 책읽는고양이

 

 

[금호동 서재지기의 창업과 1년 간의 일기]

 

손에 감기는 아담한 한권을 손에 넣었다. 책의 저자는 서점 주인으로서 소규모 독립출판물 중고도서를 판매하는 서점 루스트의 서재주인장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목에서 영감을 얻은 책의 제목과 서점의 상호는 저자를 닮은 서점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기억으로 거의 20 금호동에 고구마라는 중고서점이 있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차례 교과서나 인문과학서적을 구하곤 했던 서점이었는데, 내가 가본 중고서점 중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중고서점이었다. ‘고구마 보유하던 책이 당시에 20 권이 넘었으니까. 요즘 인기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이 보유하는 수가 평균 3-4 권이라고 , 알라딘 중고서점 매장 5-6 점에 해당할 만큼 많은 책이 있었다. 당시 고구마 마침 중고서적의 온라인 검색 시스템을 시도했던 곳이었다. 온라인 검색 시스템으로 책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해도, 실제로 책을 찾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날씬한 사람만이 지나갈 있었던 책장 사이의 더미들, 복도에 수직으로 쌓인 책을 뒤적뒤적하며 먼지를 털어내고, 마른 기침을 하며 책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런 헌책방이 많이 사라져서 서점의 오래된 책냄새를 맡을 있는 곳이 많이 남아있지않다. 물론 깨끗한 중고서점이 편하고, 검색도 편하지만 원하는 책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이와 비교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고전적인 헌책방에서 책을 구하면 종종 누군가 어느 가을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넣어둔 팔았는지, 마른 나뭇잎이 들어있었다. 누군가 책의 여백 곳에 메모해둔 흔적,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면서 말로하기 멋쩍은 마음을 글로 표현해둔 메모를 년이 지난 타인이 발견하고 미소를 짓게 되는 일은 오랜 헌책방이 아니면 이제는 경험해보지 못할 일이 것이다.

 

 

 

갑자기 이렇게 오랜 기억을 더듬어본 이유는 90 , 저자도 역시 헌책방 고구마에서 점원으로 책을 정리하며 일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언젠가 그와 나는 각자 찾는 책을 찾느라 분주히 서로를 지나쳤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분명 고구마라는 헌책방에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고구마 이전을 하면서 서점을 관두고 대형 서점에서도 여전히 책과 관련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간의 준비를 마치고, 오래 살던 금호동에 '프루스트의 서재'라는 책방을 열었다는 것이다. 나는 주인장을 처음 보고 고구마 듣는 순간 오래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던 친구의 안부를 전해 들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2015 1월에 서점 문을 처음 열고 1 간의 일기를 이번 <되찾은:시간> 모아 책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일기쓰기를 자신의 안부를 묻는 이라 말한다. 월세를 내고 14,500원의 순이익이 남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다음에 많이 팔아야겠네하며 격려해주던 젊은 날의 서점주인을 떠올리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온다. 주인장의 글쓰기는 화려하거나 산만하지 않다. 간결한 표현 속에 정제된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 드러내는 것만 같고, 사람에 대한 따뜻한  그의 글과 마음 씀씀이에 호감이 간다. 저자는 아직 개발이 늦은 동네에 조그마한 책방의 문을 , 오히려 책방의 운영을 걱정해주고, 비가 오면 내놓은 책을 비닐로 덮어주거나, 꽃을 놓아두고 가는 이들을 발견한다. 이런 사람들이 지키는 마을은 마음의 여유야 인간미가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경비원한테 막말을 하고, 심지어 자살로 까지 몰아간 강남의 어느 동네를 떠올려보면 아직 이러한 마음씀씀이가 있는 동네가 남아있다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동네에 조그마한 책방을 열고 생존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면서도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저자의 고민들이 진솔하게 책에 담겨있다. 저자는 2015 서점을 열기 , 그리고 열고 1 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자신이 뛰어든 서점의 가치,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왔을 것이다. 자신이 준비한 '프루스트의 서재' 존재이유를 주인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

 

 

나는 헌책과 새책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잊혀지거나 잊혀질 생각과 기록의 가치를 다루는 것이다. 점이 중고책과 독립 출판물이 공존하는 프루스트의서재 존재 이유다.”(63)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견지해나가려는 저자의 노력과 다짐을 느낄 있었다.

 

 

 

<되찾은:시간>에는 서재 주인이 지난 2015 1 침묵 속에서 남겨둔 기록을 보여주고있다. 단편들이긴 하지만, 일관된 저자만의 생각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을 매개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들의 사연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 공간이 되어가는 같아 다행한 마음이 든다. 나라의 인구 절반 가까이가 대도시에 모여살며 파편화되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우리는 원래 서로 잇닿아 있는존재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일을 이런 공간과 사람들이 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서로의 연대 재확인하는 일이 앞으로 필요한 일이며 과제가 같다. 서울의 서쪽 신촌, 홍대 주변에서 이러한 작은 서점이나 공방이 모여 새로운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면, 금호동과 같은 서울의 동편에 프루스트의서재 같은 작은 서점들과 공방 등이 새로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덮으며)

저자는 오늘도 자신의 안부를 묻는 일기를 썻을 것이다. 말주변은 없을지 몰라도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좋아한다는 그의 나직하고 정제된 문장을 떠올려보며, 저자의 서재가 운영되기를 바란다. 책을 읽고 덮으니 표지에 그의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닮은 정제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책은 사람을 이어준다.

 

 

결국 책이란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사물이므로 사람을 이어주는 책이야 말로 기능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되찾은:시간> 서점 곳을 알게해준 책뿐만이 아니라, 서재지기와 다른 사람들을 이어줄 것이다. 조만간 주인장의 안부를 물으러(사실 그가 내려주는 커피 얻어마시러) ‘프루스트의 서재 다시 들러볼 예정이다.

 

 

 

 

 

 

 

"나는 헌책과 새책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잊혀지거나 잊혀질 생각과 기록의 가치를 다루는 것이다. 이 점이 중고책과 독립 출판물이 공존하는 ‘프루스트의서재’의 존재 이유다."(63면)

"책은 사람을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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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세계를 굴리다 - 바퀴의 탄생, 몰락, 그리고 부활 사소한 이야기
리처드 불리엣 지음, 소슬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바퀴, 세계를 굴리다>

(원제 The Wheels: Inventions & Reinventions )

리처드 불리엣(Richard W. Bulliet) 지음 | 소슬기 옮김 | MiD출판사

 

 

바퀴달린 이동수단의 가장 오래된 흔적은 기원전 4000 경에 남겨졌다.

(148)

실증적인 1 증거물들에 매달리는 고고학자들과 역시 1 사료에 기반하여 역사학자들은 이와같은 평가를 내린다. 리처드 불리엣은 역사가로서 바퀴라는 대상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추적해나가는 역사 탐정과 같은 인상을 준다. 독자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며 고고학자 내지는 역사 탐정이 것처럼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는데, 과정을 따라가는 일이 줄곧 흥미를 자극했다.

 

 

 

(바퀴를 바라보는 가지 형태)

저자가 정리한 가지 형태의 바퀴는 바퀴를 잇는 축과 바퀴가 일체형을 이루어 같이 돌아가는 바퀴 형태인 윤축(wheelset)’, 바퀴가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독립차륜(independently rotating wheel)’, 그리고 캐스터(caster)’라고 하는 수직축과 수평축을 통해 바퀴가 보다 자유도를 가지고 움직일 있는 바퀴가 있다. 역사적으로 윤축을 적용한 사례는 광산에서 사용되어 무거운 석탄 등을 나르던 광차 기차가 예일 것이며, 독립차륜은 마차바퀴, 자동차 바퀴를 연상하면 된다. 이에 더하여 윤축 형태의 바퀴보다 다소 늦게 그러나 거의 비슷한 시기 동안 인기를 누린 바퀴의 형태는 바로 독립차륜방식의 바퀴로서 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바퀴의 형태를 이루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앞의 바퀴 형태와는 달리 캐스터’는 가구 이동용 바퀴처럼 개의 수직회전축과 개의 수평회전축을 가진 바퀴의 형태로서 비교적 짧은 역사로서 1700년대 이후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설명대로 바퀴의 형태를 크게 부류로 나누고 나니 길을 가다가도 무심히 유모차는 독립차륜이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11개의 중에서 캐스터 관한 장은 마지막 11장에 간단히 언급되므로 사실상 <바퀴, 세계를 굴리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윤축 독립차륜 형태의 바퀴와 관련한 사항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심리전의 중요한 요소로서의 이륜전차)

언젠가 이집트 파라오의 전차(Chariot) 주제로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기억이 있다. 학자들과 과학자들이 현재 남아있는 유물과 기록들을 토대로 실제 파라오의 전차를 재구성하여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는데, 책에서 바퀴를 분류하는 기준으로 본다면 분명히 마리 말이 이끄는 람세스2세의 이륜전차는 매우 놀라운 기술의 집약체였다. 이제 책을 통해 이집트 파라오의 전차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가 기원전 1600-1200년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의 전차는 당시의 전술에서 실용적인 쓰임 뿐만 아니라 적에게 그리고 아군에게 어떻게 보일지 고려한 심리적 전술의 하나로서 중요한 전쟁 무기였다는 점이었다. 사륜 마차 또는 수레와 달리 비교적 소형의 이륜 마차의 가장 장점은 방향 전환이 보다 용이해짐으로 인하여 전시에 빠르게 적진에 침투하여 치고 빠지는전술이 가능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이었다. 다만 저자는 어느 시점에서 전차가 무용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바로 이륜 전차가 조그만 장애물이 있어도 진행에 지장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전차의 진행을 방해하고, 말의 발굽을 공격하는 장애물을 던져 설치함으로써 이륜전차의 실용성에 급격한 타격을 입히게 되었던 모양이다. 

 

 

 

(바퀴와 인간 사회의 상호작용)

바퀴를 주제하는 연구자들은 인류역사에서 바퀴의 중요성은 인정하되, 바퀴 자체만으로 인류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했다고 바라보지는 않는 듯하다. 다만 인간의 속에서 바퀴가 자체만으로 발전할 잇는 대상이라기 보다는 바퀴가 달린 수레나 마차가 지나갈 있는 길의 인프라 구축 또한 병행해야한다는 점이 먼저 해결되어야 했다. 기원전 3000 전에는 이미 장장 8000 km 이르는 실크로드가 유럽과 중국을 이어주는 대륙 내의 통로로서 활발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기술이 발달해왔던 것은 아니다. 말이 끄는 수레가 주로 다니던 길에는 말발굽에 의해 길의 훼손되거나, 또는 기타 가축의 배설물이 쌓이는 문제가 있었으나 자동차가 발명되고, 좋아진 도로 포장으로 자동차가 더욱 빠르게 보급되자 동물의 배설물이 도로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는 차량의 증가로 인하여 빠르고 편리한 수단을 얻었지만 교통수단이 점점 빨라지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오히려 교통체증과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 사상가 이반 일리치가 지적한바대로 현대 사회는 반생산성 특징으로 하는 사회로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바퀴달린 운송수단이 사회에 간접적인 영향이라고 있을 것이다.

 

윤축을 기반으로하는 기차는 제한된 길인 선로를 따라 움직인다. 윤축을 사용하는 운송수단은 저자에 따르면 단위거리당 수직거리, 선회반지름의 제약이 따른다. 다시말하면 일정한 수평거리 수직거리의 변화는 동력이 필요한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윤축에 기반한 운송수단은 독립차륜을 사용하는 수단에 비해 회전이 용이하지 않으므로 거리를 회전해 가야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윤축 운송수단의 제약이 현대의 풍경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달리 표현하면 기차의 동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낮은 언덕이나 산을 깎아 보다 평평하게 선로를 건설하는 경우를 있다. 이와 더불어 독립차륜 방식에 바탕을 두는 자동차의 발달과 빠른 보급으로 도시 내의 풍경도 새롭게 바뀌었음을 있다. 가지 바퀴의 방식에 기반한 운송수단은 인간의 수직적 환경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수평적 환경도 변화시켰다. 다시 말하면 철도는 선로를 중심으로 양쪽의 세계를 나누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저자는 철도가 공동체를 둘로 갈라놓는 결과를 흔히 초래한다’(38)라고 까지 언급하고 있다. 결국 바퀴에 의존한 운송수단은 도시를 비롯한 우리의 삶에 분열적 생태계를 구축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동물이나 사람의 왕래를 우선 방해하고, 철로를 중심으로 쪽은 부유자들이 사는 지역, 다른 쪽은 극빈자들이 모여사는 지역과 같이 우리의 삶을 분열시킨 사례를 보여주기도 한다.   

 

 

 

(바퀴의 섹시즘 그리고 마차의 유니섹스화)

바퀴에 대한 역사를 더듬어 가면서 눈에 띄는 쟁점하나는 바퀴를 사용한 운송수단이 성에 따른 차별의 역사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서도 끊임없이 조롱받는 기사계급의 시대는 어떤 시대보다도 두드러지게 성차별적 요소를 보여주는 같다. 기사계급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사실은 여성 특히 상류층 여성을 억압하는 핵심 계급이 되었던 시대가 중세라고 수도 있겠다. 저자에 다르면 독립차륜방식이었던 마차는 진정한 남성(기사) 말을 타고 이를 호위하는 동안 여성들만의 으로 인식되었고, 마차는 쇠퇴하고 비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15-17세기 중반을 통해 마차혁명이 일어남을 여러 언급하고 있다. 이는 남성들에 의해 비하의 대상이 되었던 마차가 시기 이후 남자 귀족들에 의해 이용되면서 마차가 위상을 회복한 계기로 파악해볼 있다. 다시말하면 마차가 더이상 여성들의 전유물 되지 않고, 유니섹스화 되었던 계기로 이해해보면 어떨까. 

 

하지만 이쯤에서 나의 놀라움이 끝나지 않는다. 중세 유럽의 여성들이 처한 상황에 비해, 비슷한 시기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여성 받지 않았던 구속으로서 여성이 유목 민족 사이에서 고유한 역할 마을의 수레를 책임짐 수행하였다. 다시말하면 중세 유럽 여성들이 억압을 두드러지게 받게된 시기는 기사도의 흥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세 유럽 여성들(특히 귀족 여성들) 기사도와 중세 기독교의 억압에 받기 시작했다면,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여성이 억압을 받게 되는 계기는 산업혁명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봐야할 같다. 나는 바퀴에 관한 마차혁명의 계기가 유럽의 흑사병 이후, 달라진 인본주의적 관념 또한 중세시대 여성들 만의 것으로 여겨지던 마차 타는 남성의 등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은 로지스틱 곡선으로 대변되는 혁신의 전파 그래프에서 저자가 전하듯, 중세가 끝나던 시기의 마차의 출현 바퀴와 관련한 운송수단의 기술변화와 무관하다는 점을 재확인해준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보다 중요한 관점은 유럽의 (상류층)남성이 바퀴달린 이동수단을 바라보는 태도/관점의 변화에 기인한다’(188) 하는 점이다. 이는 중세가 끝날 무렵 유럽에서 어떠한 종류의 세계관의 변화가 이루어 졌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다. 저자 리처드 불리엣은 이러한 배경에 주요한 영향을 끼친 요소로서 다소 엉뚱하게 화약무기의 개발에 관여한 헝가리 기술자를 언급하고 있다.

 

사실 나는 흥미롭게 읽어나가다가 저자의 주장을 만나니 지나치게 구체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없었다. 저자가 ‘1450-1650 사이에 유럽에서의 세계관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라고 물을 , 나는 엉뚱하기는 하지만 좀더 포괄적인 역사를 떠올려보았다. 나의 엉뚱한 생각은 유럽의 흑역사, 흑사병의 출현 닿았다. 근거로 유럽에서는 1340년대 흑사병의 유행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 해당하는 2500만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고 한다. 하나의 사건은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던 신의 시대에 신의 권위에 대한 의혹을 조금이라도 품게 하지 않았을까? 마을이 흑사병으로 몰살당하고, 한명이 혼자 살아남았다고 가정해본다. 그럼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모두 빼앗아간 신을 원망하지 않을까. ‘흑사병 유럽에 미친 영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흑사병의 유행을 거쳐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좀더 많은 확률적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다. 이는 확률 기반으로하여 혁신의 전파 양상을 보여준다는 로지스틱 곡선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 보다 적은 생존자에게 보다 많은 기회와 빠른 사회의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기가 바로 흑사병이 잦아든 이후의 유럽이 아닐까. 

 

 

 

(바퀴와 오리엔탈리즘)

미국의 역사학자인 저자에게서 동양에 대한 편견을 읽어내었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오히려 중동역사를 전공한 저자가 바퀴에 얽힌 솔직한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재확인해본다. 중국의 외바퀴 수레 아니라 일본의 인력거에 대한 서양인의 반응은 혐오감이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아시아인으로서 나는 오히려 소가 끄는 수레를 주거지로 사용하며 마을을 구성하는’(168) 알란족훈족 (169), 그리고 몽고의 무자비한 침략을 받았던 유럽인들의 동방에 대한 뿌리깊은 두려움과 혐오의 연장선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시말하면 유럽인이 인력거에 혐오감을 드러내었다라기보다, 유럽인의 뿌리깊은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혐오의 대상을 인력거라는 사물을 통해 드러내었다라는 것이다.

 

 

 

(마무리하며)

<바퀴, 세계를 굴리다(원제: The Wheels: Inventions & Reinventions)> 바퀴 달린 운송수단의 5500년의 역사를 독자에게 흥미롭게 보여준다. 책의 방점은 아마도 윤축 독립차륜사이에 벌어진 운송수단의 경쟁과 인간의 삶에 영향에 있다고 있겠다. 특히나 책에서 마차혁명이라는 개념은 가장 중요한 모티프일 것이다. 아마도 저자는 마차혁명 주로 염두해 두며 다음과 같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고려요소들 사이의 여러 가지 상호 연관성을 분명히 하면서, 바퀴의 이야기는 발명이 누가 무엇을 처음으로 생각했느냐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한다.”(260)

이와 관련하여 책의 부제가 발명(inventions) 그리고 재발명(reinventions)’이라는 점에 다시 주목해본다. 이렇게 부제를 붙인 저자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고 보니, 기존의 것에 대해 새롭게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싶다. 좀더 구체적으로 퍼즐을 맞추어보면 바퀴의 재발명이라는 것은 바퀴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마차혁명 심리적 성격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제시해주는 것으로 파악해도 것이다. 바퀴의 역사와 흑역사 살펴봄으로써 좀더 보편적으로 얻은 교훈은 우리 인류의 역사는 일종의 편견을 가진 지배자의 역사였다는 ,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편견을 깨고 변화해간 도전자의 역사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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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1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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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콜린 매컬로 | 강선재, 신봉아, 이은주, 홍정인 옮김

 

 

풍부한 상상력과 세심한 고증의 결정체

나는 이번 기회에 처음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 콜린 매컬로의 장편 역사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시리즈의 한 복판에, 기원전 1세기 로마의 현장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내가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토가를 입은 원로원과 집정관들의 모임에 불쑥 나타나서 카이사르와 키케로의 명연설을 듣고 논리적인 웅변에 감탄하고, 카이사르의 연설에 반대하는 피소가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사람들에 의해 의사당 밖으로 끌려나가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생생한 현장감을 느꼈다. 콜린 매컬로는 2000년이 지나 이름만 남은 이들이 살아숨쉬는 생생한 현장을 복원했다.

이렇게 비교하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콜린 매컬로는 서양의 김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만 김용은 상상력에서 보다 큰 비중을 두었다면, 매컬로의 글에서는 작가의 상상력 뿐만 아니라 기원전 1세기 경,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생활사적인 디테일이 분명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로마 귀족 남성들의 욕망과 이들의 치밀하고 복잡한 정치적 권모술수, 그리고 로마 귀족 여성들의 또 다른 차원의 야망 - 예를 들어, 세르빌리아가 자신의 아들 브루투스에게 재산을 몰아줌으로써 또 다른 자신의 아바타로서의 생명력을 보장해두려는 욕망 - 의 현장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전개해나가고 있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2000년 전 벌어졌음직한 일들이 만약 지금 외계인이 침공하여 현대 사회를 관찰할 때 상당한 공통점을 발견할 것 같다. 물론 인간이 사용하는 부속물의 모습은 획기적으로 바뀌었지만, 사랑과 질투, 분노와 탐욕의 감정들이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적이 있었던가. 앞에서 매컬로를 서양의 김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물론 많은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부각되는 점은 매컬로는 주요 인물의 캐릭터의 연구에 보다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웅의 시대에 전장에서 벌어진 일이나 어떤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에서 벌어졌음직한 일이 아닌 이들의 일상에 파고들어 이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상상하고 인물을 묘사하고 있는 점은 가히 탁월하다는 점에 그저 감탄하게 된다. 물론 역사 소설은 소설로서 읽어야 하겠으나,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 본성의 재발견이라는 점과 인간이 존재하는 언제 어디에서건 개개인의 일상은 여전히 끈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카이사르의 여자들>에서 로마로 돌아와 우여곡절 끝에 최고신관으로 선출된 카이사르는 다음의 2권에서 법무관으로 선출되면서 한 걸음 더 정치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카이사르에게는 앞으로 어떤 시련과 승리가 전개될지 더욱 기대된다.

 

 

 

[첨언]

*지도에 대해 우선 책에서 몇 개의 지도 및 도면이 나오는 데, 너무 많은 정보가 있어서인지 글자가 작고 이탤리체로 기울어 있어서 가독성이 떨어진다. 로마자를 기본으로하는 언어에는 이탤릭체로 기울이는 방식이 쓰이긴 하지만, 우리 말의 사용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한편 지도가 나오면 찬찬히 구석구석 구경하는 걸 좋아하지만 눈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개인적으로 지도를 살펴보는 일이 다소 피곤한 경험이었다. 혹시라도 다음 번 인쇄시에는 기울인 텍스트를 바로 세우고, 글자체를 바꾸어 가독성을 좀더 고려해주셨으면 한다.

*등장인물의 관계에 대한 언급 처음 매컬로의 소설을 접해서인지는 몰라도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과 이들의관계, 등장 인물의 별명의 사용 등으로 이들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앞에서 읽었던 누구였는지를 더듬어 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나처럼 기억력이 좋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주요 인물들에 대한 도식, 가족관계 등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첨가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번역에 대해 번역가가 4명 참여한 것은 일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문체의 차이로 인한 불일치, 어색함을 주기 쉽다. 복잡한 등장인물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집중하며 따라가다보니 특별히 문체의 상이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다만 작업의 부담이 줄어든 만큼 독자를 좀더 고려해주셨으면하는 부분이 있는데, 상당한 고증과 연구를 통한 역사 소설인 만큼, 그리고 다른 고대의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독자를 고려하여 좀더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추가 작업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기원전 1세기 경에 로마에서 사용하던 물건이 나오는 경우, 독자가 보다 접근하기 쉽게 간단한 주석을 덧붙였으면, 그 때 그 때 읽어가면서 좀더 이해를 깊이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또 다른 예로 화폐의 단위인 탈렌툼이 당시에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지 언급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브루투스의 어머니인 세르빌리아가 아들에게 갈 수도 있었던 돈-그러나 이복동생 카이피오에게 넘어간 돈- 1 5천 탈렌툼이란 과연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지? 이 금에 비교하면 카이사르가 원로원에서 자신이 해적에 납치된 경험을 이야기하며 해적에게 납치된 사람들의 계급에 따른 몸값을 이야기하는 대목과 비교해보면, 카이사르는 법무관이나 집정관을 지낸 우너로원의 의원의 몸값은 50 탈렌툼, 유명한 감찰관과 집정관의 몸값은 100 탈렌툼하는 식의 정보를 건넨다. 이런 부분에서 역자들의 도움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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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와 느린 춤을 - 아주 사적인 알츠하이머의 기록
메릴 코머 지음, 윤진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낯선 이와 느린 춤을>

(원제: Slow Dancing with a Stranger: Lost and Found in the Age of Alzheimer’s)

메릴 코머(Meryl Comer) 지음 | 윤진 옮김 | MiD

 

 

 

공교롭게도 <낯선 이와 느린 춤을> 읽기 시작한 , 옆지기의 회사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컴퓨터 대의 하드드라이브가 사라져버렸다’. 컴퓨터는 하드드라이브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모든 데이터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내는 데이터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컴퓨터 기사의 답변만 들을 있었다고 했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만, 컴퓨터 시스템의 경우 우리는 미리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백업 해둘 있다는 점이 사람과 다르다. 만물의 영장을 가능하도록 해준 뇌신경의 가소성 백업 복구 불가능한 원본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책의 뒷표지에는 치매를 예방하려면 읽고 쓰고 끊임없이 머리를 써야 한다.’라고 조언한 추천사도 있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치매의 경우에 도움이 되는 말일 있으나, 책의 저자인 메릴 코머의 남편 하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조언이었다. 하비는 저명한 의학박사로서 수십년 끊임없이 읽고 쓰고 꾸준히 머리를 써왔을터이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은 경력의 정점에 올라있던 가장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아마 추천사를 썼던 분은 책을 읽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조발성 알츠하이머성 치매. 병은 비교적 이른시기에 발생하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치료법은 현재 없다. 그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경이 퇴행해가며 인간이 구축해 놓은 인격, 정체성, 추억 모든 것을 백지화해버리는 병이었다. ‘ 잃어버리는 병이라고 했던가. 책을 읽기 전까진 나는 치매의 문제가 그저 개인의 문제로만 받아들였던 같다. <낯선 이와 느린 춤을> 2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남편을 옆에서 간호하며 절절히 적어내려간 간병기이며, 하비의 병은 결코 개인의 고통에서 끝나지 않음을 나에게 일깨워 주었다.

 

 

[하비의 알츠하이머병에 관하여]

하비가 병에 걸리고 10 뇌사진으로부터 알아낸 사실은 기간동안 뇌가 현저히 위축되었다는 점이다. 나아가 노인반이라고 불리는 단백질 이상 침착물이 존재하였으며, ‘신경섬유 농축체라고 하는 타우단백질이 비이상적으로 형성된 섬유다발이 나타났다. 통상적으로 나이가 많이 들어 뇌에 특별한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 노인의 경우, 뇌신경의 퇴행과 더불어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기 쉬운 것으로 이야기하곤한다. 그러나 하비의 경우에는 누구보다도 뇌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였으며, 나이에 비해 일찍 병을 얻었다. 조발성 알츠하이며병진단을 받은 하비는 생활습관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유전적인 문제로 봐야할 것이다. 희귀한 유전 질환 사례를 기술했던 <니콜라스 볼커 이야기>에서와 같이 개인의 유전자 내부의 특정 위치에서 매우 드물게 일어난 돌연변이로 인하여 정상적인 단백질합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나아가 비정상적으로 합성된 단백질의 다발이 재생이 불가능한 뇌세포를 영구적으로 손상시킴으로서 뇌가 관여하는 모든 기능을 상실해나가는 모양이다

 

 

[환자의 입장에서 일관되게 저술해간 기록]

우리가 흔히 보는 환자의 투병기나 완치기록, 혹은 <니콜라스 볼커 이야기>처럼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다양한 입장에 놓인 사람들(환자, 보호자, 의료진, 과학자 ) 조명한 책이 있다면, 책은 오로지 환자를 옆에서 지켰던 보호자의 관점으로 기록된 책이다.

 

우선 저자인 메릴은 치매 환자의 보호자로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남편 하비의 병에대한 당혹감과 절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암과 같이 많은 이들이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환자와 함께하려는 활동이 많은 경우가 있는 반면, 치매 환자들의 보호자들은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듯하다.

 

알츠하이머병 환자 보호자들은 대부분 너무 지쳐있거나 도움을 받지 못해 고립되어 있다.”(17)

하비는 나와 함께하지만 그의 정신은 나와 함께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깝게 있지만 또한 각자 고립되어 있다.”(21)

나는 철저히 혼자다.”(302)

 

가족이 있고, 아들의 며느리, 손자 손녀까지 있던 메릴에게 환자의 보호자로서 당면문제는 오로지 그녀의 몫이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마저도 이들과의 우정어린 노력에서 가장 힘든 부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 ‘홀로 자신만의 고독한 현실로 되돌아 오는 이었다고 고백하듯, 메릴은 철저히 혼자였다. 자녀들은 그들의 아이들의 육아로 인해 메릴 자신만큼 남편과 어머니에게 도움을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점점 악화되는 재정문제에 더하여 치매 환자 뿐만 아니라 고립되어 절망감과 두려움을 겪고 있는 보호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취약하다는 점에도 주목해본다. 우리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치매에 걸린 부모를 과연 어느 선까지 돌볼 있을 것인가. 치매 환자가 자신의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데다, 하비처럼 끊임없이 돌아다니거나, 절제력을 잃어 공격적인 성향까지 지닌 상태가 된다면 과연 나는 어디까지 간호할 있을까. 2-3년은 버틸 있을지 자신이 없다. 메릴의 친척이나 친한 친구들이 그녀에게 만약 하비가 보호자의 입장이었다면 그녀처럼 간호해줄 같으냐?’라고 반문할 , 메릴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하비가 내게 무엇을 해줄까가 아니다. 내게 중요한 인간으로서 신뢰와 책임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해야한고 느끼는 일들이 무엇인지였다.’(180면)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자신의 모든 역량과 시간을 남편 하비의 간호에 집중한다.

 

메릴이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도 변해버린 환자의 모습을 보고 방문객들은 발길을 끊게 된다.’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중으로 소외와 고립를 가져다준다. 책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은 미국에만 540 , 세계적으로 4400만명 정도가 고통을 받고 있어 통계적으로 68초마다 치매 진단을 받는 셈이라고 한다. 암과 버금갈 만큼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고통받고 있는 병인데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암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는 점이 나에겐 하나의 의문임과 동시에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유독 알츠하이머병은 타인에게 알리지 않는병이 되었을까.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치매환자가 있는 가정은 보호자가 환자만큼이나 고통을 받는다는 점을 있겠다. 보호자로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환자를 보면서, 나와 공유하던 추억과 기억을 서서히 잃어가는 환자를 보면서 보호자가 받는 심리적인 고통은 이루말할 없을 것이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보호자는 이러한 환경에 놓여있는 것이다. 책은 치매를 앓고 있는 보호자의 입장을 상세히 알려 병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가져오는 변화와 의미를 우리가 있도록 해주었다.

 

 

 

[‘ 누구인가? – 정체성의 문제]

책을 읽으며 가지 주목한 점은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정체성 문제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아마도 지구상의 인류가 생긴 시점에서 지금까지 해답이 주어지지 않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평생을 질문과 함께 살아간다. 그만큼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삶의 근본이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이란 두터운 책에 보면, 전기고문 기술자가 인간의 기억을 완전히 말소시키기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매우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전기고문을 통해 뇌세포를 포맷해버림과 동시에 새로운 인성이 자라길 기대했던 것이다. 전기고문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소리가 차단된 어두운 방에서 자신의 몸도 건드리지 못하게 묶어두는 , 사람이 대한 물리적 감각(오감을 통한 자기 확인) 공간성(나는 어디에 있는가?) 차단함으로써 정체성을 파괴시킬 있었다. 인간의 기억 개인이 겪게되는 경험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세계를 탐색하도록 한튼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나의 기억 내가 인식하는 시간성 본질을 이루고 있을 것이며, 나의 오감과 직관을 통한 나의 경험들은 외부 세계를 인지함으로써 자신과 내가 존재하는 공간성을 확립해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기억이라는 대체될 없는 중요한 인자를 기반으로 하여 우주에서 고유한 존재를 마련해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인간으로서 수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살면서 이를 다시 불러들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영원을 살수 있다고 말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으로서 하비는 자신의 정체성 비가역적으로 상실해갔다. 지갑이나 열쇠, 신문 등을 찾지 못하거나 자신이 찾던 논문을 끊임없이 찾는 증상부터 시작하여, 자신이 아끼던 노란색 포르쉐를 타고 10 거리이던 직장까지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매기 시작했다. 나아가 하비는 운동조절능력을 상실해갔으며, 절제력마져 잃으면서 공격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지 장애가 나타나며 환청 환각에 시달리는 아니라 부인인 메릴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던 . 이쯤 되면 하비는 그를 정의해주던 그만의 특질, 인성마저 상실했던 것이다. 뇌가 손상을 입어가면서 뇌가 관여할 있는 모든 기능, 기억, 인성이 사라져가며 결국에는 낯선 되어버렸다.

 

내가 임을 안다는 것은 바로 기억 기반하고 있다. 인간의 정체성이란 뇌의 가소성 같이 무한해보이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서 인간이 경험하고 감각하고 세상과 교류한 모든 것의 총체로서 이해할 있을 것이다. 어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는 동일한나이면서 이미 책을 읽기 전의 나와는 다른나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비롯된 가족과 친척, 내가 경험하고 나와 상호작용을 거친 모든 세상의 흔적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현상은 바로 기억 의존하고 있으며, 기억의 축적을 통해 내가 나임을 잊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츠하이머병은 나를 정의하는 모든 기반인 기억 아울러 지우기에 잃어버리는 병이라고 불리는 것일 터이다. 따라서 나를 정의하는 기반이 무너질 저자 메릴이 나와 집에 사는 남자는 내가 사랑해서 결혼했던 사람이 아니다.”(13)라고 쓰고 있듯이 세상에 낯선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기억을 공유하지 못하면, 사람과 사적인 관계는 성립할 없어요.”(316)

메릴이 말은 잔인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지닌 정체성 무게를 보다 숙연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삶과 죽음의 문제]

우리는 죽는다라고 괴테가 말했던가. 나는 말을 괴테의 다른 문장과 비교하곤 한다.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내가 살아 있는 , 알게 되었네.”(전영애 교수의 번역) 표현은 상당한 이질감을 주지만 사실 엄정한 인생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온도의 개념을 떠올려볼 , 우리가 말하는 차가움 뜨거움 다른 이름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손은 100 끊는 물에든 영하 196도의 차가운 액체 질소에서든 모두 동일하게 화상을 입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의 끝을 떠올릴 , 우리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할 있다. 앞에서 괴테가 말한 진술로부터 교훈을 다시 정리해 보면, ‘내가 살아 있을 , 해처럼 맑게, 꿈꾸고 사랑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되지 않을까. 죽음은 삶의 다른 이름이며 전제조건일 터이다. 우리는 언젠가 죽을 운명이지만, 살아있는 삶을, 타인을 사랑해야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서경식 교수가 < 서재 고전>에서 죽음 대해 언급한 것을 기억해내었다. 현대 사회는 죽음 금기시하고 죽음 기피하게 사회라고 말했다. 내가 어릴 할머니는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나는 할머니를 둘러싸고 있던 친척들의 사이로 누워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봤던 기억만 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인간의 마지막은 그가 평생 살아왔을 (아파트) 벗어나 친척들이 아닌 첨단기계가 둘러싼 병실에서 보내야하는 것으로 정의되어버린 듯하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에서 어린 주인공 모모가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를 집의 지하에 데리고 마지막 모습에 다소 놀란 적이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집에서 죽은 가족의 묘가 집의 지하 깊숙한 곳에 있었다는 기록을 어디에선가 보고는 때에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에밀 아자르 아니 로맹 가리의 충격적인 상상력에 빚진 결말이 아니라 죽음 대하는 과거 프랑스인들의 시선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다시 <낯선 이와 느린 춤을> 돌아오면, 메릴의 남편 하비는 삶과 경계에 매우 가까이 있던 사람이었다. 메릴의 기록은 우리의 죽음을, 다시 말하면 우리 각자의 삶을 다시 바라보도록 환기시킨다. 메릴은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들의 단언을 들으면서 절망에 빠지곤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그렇게 20년을 간호했다. 그녀는 죽음 피할 없음을 알고, 이와 대면한다. 남편의 죽음 금기시한 것이 아니라 죽음 자신의 속으로 끌어안았다. 물론 금전적인 어려움도 영향을 받았겠으나, 메릴은 자신의 직업과 경력을 포기하고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남편과 새로이 치매를 앓기 시작한 어머니를 자신의 집에서 간호했다. 자신의 가족 중에 병원에 오래 머물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픈지, 나의 삶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나가야할지 막막했던 적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나는 메릴의 간호활동이 얼마나 상상하기 힘든 어려운 결정이었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저 나는 메릴이 남편과 어머니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어떻게 지켜주었는지 숙연한 마음으로 지켜 뿐이었다.  

 

 

 

책을 덮으며 놀랐던 하나는 20년간 일관되게 유지했던 메릴의 면모였다. 그녀를 정의하는 여러가지 면모를 고려해보자면, 우선 그녀는 무한한 인내와, 깊은 절망 속에서도 자신과 남편의 삶을 놓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나아가 더욱 놀라운 것은 자신의 삶을 전부 남편과 어머니의 간호에 던져 넣은 상황에서, 알츠하이머병 재단과 관련한 활동을 하며 다음 세대를 돕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삶에 대한 긍정이었다. 메릴의 긍정적인 태도와 진정성은 다음 문장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비는 인생에서 중요한 모든 , 사랑, 신뢰, 가족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이가 고맙다.”(322)

불치병을 앓고 타인이 되어가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환자로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고 가족의 의미를 다시 보여준 메릴의 삶을 보면 그저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책의 다음 마지막 문단은 책을 덮은 후에도 일간 계속 머리 속에 강하게 자리잡았다. 아마 책에 대한 나의 기억은 문단에 대한 인상으로 남을 같다. 인간으로서 자신과 가족의 존엄을 지켜주었던 메릴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의 말을 마지막으로 여기에 발췌해본다.

 

내가 아침에 보스턴에 가게 때는, 언제나처럼 마지막인 하비에게 키스를 건넨다. 우리가 신체 접촉을 때에 서로 교감한다고, 병이 말기에 이르렀긴 해도 내가 보내는 조건 없는 사랑의 메시지를 하비가 알아차릴 있다고, 믿고 싶다. 하비를 어루만지는 손길에, 못하고 덮어 놓은 슬픔이 배어나는 것을 숨길 없다. 나는 그를 구할 없다.

 

말기 호스피스 치료를 집에서 하기로 하고 그이의 생명이 꺼져 가는 마지막 날들에 그이에게 낯선 이의 손길이 닿지 않게 결정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사람이 처음 느끼는 감각이 촉감이라는데, 하비가 마지막으로 느끼는 촉감이 손길이기를 바란다. 내겐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323-324)

 

(참고로 메릴 코머라는 분이 과연 어떤 분일까 궁금해져서 찾아보게 되었는데, 여기에 링크를 포함해둔다. http://merylcomer.com/)

 

(ver. 1.2)

[알츠하이머병의 파괴적이 영향에 대해]
(15면)
"가족이란 공통된 기억의 힘을 바탕으로 결속하는 것인데, 알츠하이머병은 그런 기억을 왜곡하고 파괴한다."

[남편 하비가 메릴의 처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정한 말]
(98면)
"당신이 정말 내 아내라면,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은 당신에게 너무 가혹하네요."

[치유와 보살핌을 도와준 메릴의 글쓰기에 관해]
(189면)
"이제 일기를 쓰는 일이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으며 점점 커져가는 두려움과 죄의식의 분출구 역할을 했다. 고함을 지르고 싶을 때면,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대신 일기를 썼다."

(190면)
"누구라도, 그 사람이 병에 걸려 나을 희망이 없다는 이유로 인생에서 잊혀서는 안된다."

[치매환자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
(247면)
"내가 새롭게 보여줄 수 이는 관점은, 이전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것으로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상이 강도 높은 육체 노동이라는 사실이었다."

[알츠하이머병 재단의 활동 방향을 시사하는 메릴의 말]
(267면)
"환자를 돌보는 일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나는 다음 세대를 더 돕고 싶었다."

(322면)
"하비는 인생에서 중요한 모든 것, 즉 사랑, 신뢰, 가족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이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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