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권 독서법 -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나미 아쓰시,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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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권 독서법>

인나미 아쓰시 지음 |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독서를 하면 좋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잊을만 하면 대중매체에서 평균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책을 읽지 않는지 성토하는 기사가 눈에 띈다. ‘책을 많이 읽어라라는 말은 많이 들리고, 소위 인문학 열풍 불기시작한지 지나도 여전히 비슷한 기사들만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언론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4 혁명 이야기하고,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정보의 바다에 언제든 접근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성인 평균 독서량이 달에 0.8권에 그치고 있다는 식의 기사만 여전히 나오고 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하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는 이들이 많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책을 읽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새해를 맞아 올해는 책을 좀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 달이 지나고 달이 지나면 여전히 작년과 같은 생활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는 나를 발견한다. 마치 언덕아래로 굴러떨어진 돌을 끊임없이 언덕위로 밀어올려야하는 시지포스의 신화처럼 무기력의 무한궤도에서 벗어나기 힘든 나를 발견할 뿐이다.

<1만권 독서법> 내가 책을 좀더 효과적으로 읽을 있는 방법은 없을지, 다른 독서의 고수들은 어떻게 책을 읽을지 궁금하던 차에 발견한 책이라서 단숨에 읽게 되었다. 저자 인나미 아쓰시는 일본에서 서평가로 활동하면서 하루에 이상, 평균 2권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자신의 경험을 간결하게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다. 아쓰시는 정보화시대 넘어 정보과잉시대에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독서 행위 대한 발상의 전환을 책에서 이야기 한다. 나아가 저자는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언급 뿐만 아니라 독서 행위 대한 의미나 바람직한 독서 습관, 독서 , 글쓰기(서평쓰기), 고르기 관리, 처분하기 등에 관해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선 저자인 아쓰시는 독서법에 대한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책을 시작한다. 과연 정독만이 독서하는 유일한 방법이 있을까? 아쓰시는 정독 대한 속박이 잘못된 학교 교육의 저주라고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따라서 정보가 넘처나는 시대에 저자는 속독 기술이나 안구 운동에 대한 테크닉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느리게 읽는 독서가 어떻게 많은 책을 읽을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책들을 읽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는 각각의 책에도 적절히 읽는 속도가 필요하다고 진단하며, 모든 것을 기억하려는 욕심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른바 플로우 리딩으로 기억해두려고 담아두지 말고 자신의 내부로 흘러드는 것에 가치를 두는 독서법을 제한하고 있다.

 

(책읽기와 글쓰기 숨쉬기(들숨과 날숨) 비유)

아쓰시가 제시하는 속독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책읽기는 숨을 쉬는 행위와 같다는 대목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숨을 들이쉬기만 해서는 생명을 유지하는 호흡을 없는 것처럼 너무 많은 양을 읽기만 해서는 건강한 독서생활이라 없다.”(59)

따라서 읽기(들숨) 것이 아니라 쓰기(날숨) 과정을 병행할 것을 제시한다. 쓰기의 과정에는 독자가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암기하려고 하지 말고 옮겨 쓰는 필사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과정에서 정보의 재구축과정이 일어나고, 책으로부터 자신만의 에센스를 뽑아 두어 자신이 만든 요약집을 갖게 된다면 이는 책을 읽으며 자신이 들이쉬고 내쉬는 모든 것을 담는 독서를 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쓰기와 에센스가 되는 문장의 취사선택) 동반되는 독서과정을 하게되고, 이것이 결국 빠르고 깊게 읽는 독서법이라는 것이다.

 

밖에도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간결하게 정리해낸 자신만의 독서팁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핵심적인 사항이 바로 키워드 독서법이다. 방법은 우선 책을 읽을 자신이 목적을 분명히 인식하고, 머리말과 차례를 읽어 전체의 흐름을 파악한 키워드를 정해 읽는 적극적인 독서법이다. 키워드 검색법을 적용하면 키워드와 연관성이 적은 부분은 넘겨 읽거나 빠르게 읽어나가고, 키워드가 포함된 부분은 필사 해두면 된다. 한가지 팁은 책을 읽으며 책에 밑줄을 긋지 말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사실 지금까지 많은 독서의 고수들이 적극적으로 책을 읽는 방법으로서 독자가 인상적인 구절을 만나면 밑줄을 긋고, 여백에 노트를 하라는 말을 많이 하곤한다. 하지만 어떤 독서의 고수는 이렇게 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어서 혼동이 되기도 한다. 과연 어느 것이 나에게 적합한 방법인지는 정답이 없는 문제 같다. 다만 저자인 아쓰시는 밑줄 긋기 무의미한 활동으로 대부분 다시 보지 않으며, 자기 만족으로 끝나게되는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어느 쪽이나 맞고 틀린 방식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1만권 독서법>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독서에 대한 고민 뿐만 아니라 좀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저자의 고민과 경험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저자는 하루에 이상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서평가로서 수많은 책을 관리하고 처분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조언을 하고 있다. 특히 수많은 책을 어떻게 내보낼 것인가하는 문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갖는 고민거리일 것이다. 저자는 책의 처분을 어떻게 하며, 기준은 무엇일까. 아쓰시는 불필요한 책을 처분하면 비로소 필요한 책이 보인다."(146)라는 기준을 내세운다. 책읽기나 책관리 모두에 있어서 플로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소유하기보다는 나를 거쳐서 내보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읽다 책으로 2년이 넘은 책들은 다시 읽지 않을 가능성이 크므로 처분기준에 들어가고, 오래된 책이라 시대에 맞지 않는 책을 우선적인 처분 대상으로 삼는다. 만약 망설여진다면? 저자는 책과 언제든 다시 만날 있음 의식하라고 조언한다. 책과의 인연을 고려한 현실적인 조언이다. 그리고나면 남은 책장은 3개월 마다 정리하여 남길 책을 정한다. 3개월 전에 남기기로 판단도 지금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독서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을 버리느냐가 아니라 어떤 책을 남기느냐에 있다.”(155) 어디에서 읽었는지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소설 <연금술사>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서재 정리에 대한 부분이 기억난다. 작가 코엘료는 자신의 서재에 400 정도의 책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팔거나 기증한다는 것이다. 아마 코엘료는 책의 저자 아쓰시의 서재 관리에 인상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만을 남겨도 충분하다는 점이다 

 

(정리)

결론적으로 말해 <1만권 독서법>에서 저자인 아쓰시가 1년에 700권의 책을 읽는 방법의 대상으로 삼은 책은 제한적이다. 저자가 말하는 빨리 읽을 있는 경영서, 자기계발서에 한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 에세이와 같은 플롯을 갖는 스토리물은 책에서 제시되는 속독의 대상이 아니다. 저자는 책에서 언급하는 속독의 대상이되는 책을 분명히하고 있으며 모든 책을 빨리 읽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독서고수들이 언급했듯이, 꼼꼼하게 읽어야할 책이 있고, 빠르게 건너 띄고 핵심만 점검하며 읽어나가도 되는 책이 있다. 판단은 결국 독서과정에서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울러 책이 독서법에 관해 언급하는 다른 서적과 다른 점은 저자의 균형잡힌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없다라는 말도 있듯이 책에서 제시되고있는 속독법들은 일본의 다독가인 다치바나 다카시나 독서광인 장석주 시인등이 언급한 내용들과 많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저자의 방식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거나 강요한다는 점인데,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방법을 소개하되 여러 가지 경고 주의사항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예컨데, 저자는 다독을 있는 속독의 팁을 이야기하면서도 지식만을 위한 독서는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결국 무언가를 위한독서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을 것을 우리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아울러 책에서 언급하는 속독의 대상이 되는 경영서나 자기계발서가 아닌 문학서적이나 철학서적과 같은 빨리 읽기 어려운 들은 빨리 읽을 있는 책과 병행하여 읽고, 특히나 시간을 요하는 책들은 독서계획에 들어있지 않은 쉬는 읽으라는 현실적인 조언까지 잊지 않고 있다.   

다시 책을 덮으며 돌이켜보면 느리게 읽는 독서가였던 저자 인나미 아쓰시는 빠르게 읽을 있는 들에 대한 책읽기의 팁을 전해준다. 아울러 생각해볼만한 독서의 가치 전하며 독서와 관련된 전반적인 사항들을 포괄적이면서도 간결하게 전달하고 있다. 책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 , 머리말과 목차를 꼼꼼하게 살펴보라는 저자의 조언대로 책의 목차를 다시 살펴보았는데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 상당히 공을 많이 들여 짜놓은 목차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소설이 아닌 정보를 전달하는 책들도 종종 목차를 보고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기 힘들만큼 소홀하게 작성하거나 정보가 부족한 책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지는 않지만, <1만권 독서법> 나의 선입견을 깨고, 보기보다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특히 균형감있고 합리적인 저자의 견해에 공감을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다만 아주 새롭고 놀라운 사실이나 팁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 었고, 독서법의 대상이 되는 책의 범주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저자인 아쓰시의 조언대로 책에서 내가 만난 인상적인 문장을 고르라면 다음과 같다.

독서의 진정한 가치는 책의 내용을 전부 머릿속에 기억하는 있는 아니라 가치를 느낄 있는 1퍼센트를 만나는 있다.” (23)

어느 책에서 하나의 강렬한 인상을 받고,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달라져있다면 분명 책은 책장에 오래 남아있게 것이다. 앞으로의 독서계획에 책의 조언이 여러 모로 도움이 것이다.

 

 

 

 

(23면)
"독서의 진정한 가치는 책의 내용을 전부 머릿속에 기억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가치를 느낄 수 있는 1퍼센트를 만나는 데 있다."

(67면)‘한 줄 리뷰‘쓰기에 대해
"최고의 문장에 마음이 움직인 이유를 기록한다."

곧 저자는 독자가 만난 인상깊은 문장에 대해 감동받은 이유를 써보라는 조언으로 감상문 쓰는 습관 들이기를 권하고 있다.

(84면)
"쓰면서 읽어야 빠르고 깊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소유하지 않는 독서법‘을 말하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암기하지 말고 그대로 옮겨 써보는 것으로 시작해보라 조언한다.

(115면)
"외우지 않아야 잊지 않는다."

이 말도 곧 같은 맥락에서 외우지 말것을 주문한다.

(131면)
"책읽기의 진정한 묘미는 새로운 관심이 피어나는 순간에 있다."

내키지 않는 책도 읽어서 좋았던 부분이 대부분 있다. 책에서 이 1퍼센트의 가치를 찾으면 될 것이다.

(149면)
"관리할 수 있을 만큼의 책을 소장하고 자주 환기하는 것이 가장 좋다."

책 관리와 처분에 대한 저자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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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울 것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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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을 쓰는 작가의 결과물을 읽을 저자의 살아온 궤적이 궁금해진다. 물론 책이나 출판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가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나온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작가의 삶에 대해 좀더 다가가 이해한 후에 다시 읽어보면 분명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물며 에세이는 작가가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어 공개하는 글쓰기다. 작가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글로 옮긴다는 부담감이 있을 있고, 독자는 작가의 신변잡기적인 정보와 주관적인 생각들을 엿볼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연히 임경선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없이 최근에 출간한 에세이집 <자유로울 > 접하게 되었다. 내가 작가를 몰랐던 것은 에세이나 소설을 그다지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체를 보면 혼자 작가는 이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같다란 상상의 나래를 펴며 작가에 대해 다가갈 있다.

 

물론 에세이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펼치는 장이기에 저자의 생각에 공감을 하게되기도 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다만 자신의 이야기를 성실히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고 나는 우연히 저자를 새롭게 알게되어 저자의 삶의 일면을 엿보게된 무심한 독자일 뿐이다. 저자의 글쓰기와 문체는 지극히 평범하게 느껴진다. 소재의 평범성이 오히려 에세이란 장르를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해주기도 한다. 현학적이거나 화려한 문장을 써서 에세이를 썼다면 오히려 끝까지 읽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평범하고 진솔하게 써내려가는 저자의 문장들은 내가 상상하기에 저자의 삶을 많이 닮았을 것이라 느껴진다. 책에 사인을 받거나 유명세를 이후 연락을 해오는 오래전 친구들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도 저자의 생각들은 자신이 쓰는 문장들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을 쓰고, 에세이를 쓰며 삶에 대한 성찰을 쉬운 언어로 이야기하는 저자는 여성이기 이전에 자신의 일을 가지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독립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는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릴 부모님을 따라 여러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 그리고 직장에서 일반 회사원으로서 10 넘게 살아온 경험때문이었을까, 저자는 사회나 집단이 강요할 있는 제약 속에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었다고 믿는다. 특히나 결혼 , 결혼 번에 걸친 암치료 과정을 거치며 과정에서도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글쓰기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 많은 독자들이 저자의 꾸밈없는 문장들을 따라가며 공감하게 되는지 알게된다.

 

산고의 고통과도 같은 글스기 과정을 매번 거치면서도 쓰고 나면 온몸으로 때를 그리워하는 저자도 재능 대한 고민의 흔적을 내비친다. ‘재능 대한 평가와 견해는 사람마다 너무나 다르다. 재능은 어느 누구의 선천적, 후천적 개인사의 총체라고 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동안 우리는 너무나 선천적인 영향에 방점을 찍고 그대로 수용한 나머지 후천적인 영향을 간과해온 것이 아닌가 한다. 장석주 시인은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 졸렬한 글이라도 있는 용기 재능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전업작가가 아닌 평범한 우리들은 어렸을 때부터 뭔가 특별한 특징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가 좋아하던 것을 꾸준히 하며 행복해하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 저자가 인용한 <파이 이야기> 구절(“당장 있는 일에 집중해서 생존은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견해에 공감하는 공감대가 된다.

아마도 여성 독자들은 작가의 생각들이 속속 이해가 잘되고 공감이 될지 모른다. 다만 저자와 비슷한 나이또래인 중년 남자로서 나는 예술가의 이야기하며 영화를 언급한 대목에서 상당히 공감을 하게 되었다. < 블루Born to Be Blue>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그것인데, 영화 모두 에단 호크가 나오고 예술가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였다. 저자는 영화를 이렇게 보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예술가의 삶을 바라보는 (나와는 다른)관점에 대해 알게되기도 하였다. 온전히 저자의 견해에 공감을 하게 되지 않아도, 수긍할 있는 것은 저자가 독자에게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는 느낌은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삶에 대한 성찰을 따라가보며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이란 느낌이 주는 막연한 기대와 긍정의 기운을 이어받아 더욱 성장할 있기를 기원해본다. 내가 살아온 해를 되돌아볼 , 작가가 적어둔 구절이 떠오를 같다.

 

우리의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러니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고 지금 내야 해야 하는 일을 찾아내 최선을 다해 하기로 한다. 어차피 시간에 걸친 승부다.” (48)

 

지금 현재, 앞에 놓인 삶에 주목하고 집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사항인지 나이들어가면서 피부로 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나 희망하는 삶의 모습에 가깝지 않더라도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최선을 다하면서 하던 일이 새로운 기회에 요긴하게 쓰이는 경험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보면 사람의 경험치라는 , 연륜이라는 것은 전혀 무시할 없는 개개인의 지혜로 이어진다고 있다. 앞에 남아있는 시간의 무게 내가 누린 20대의 시간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저자의 삶에서 나온 솔직한 성찰은 힘을 지니고 성장하고 있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있다. 앞으로 5 , 10 경험치가 달라져있을 시점에서 저자의 에세이를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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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
라오 핑루 글.그림, 남혜선 옮김 / 윌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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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읽다가 어느 순간 울컥해서 책을 덮은 뒤 집에와서 마져 다 읽은 책이다. 한 부부가 60년 넘게 함께했던 인생을, 저자인 핑루 할아버지의 그림을 통해 꿈을 꾸듯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핑루 할아버지는 북경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던 지식인 아버지를 둔 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인인 메이탕 할머니도 한약방을 하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던 모양이다. 그러나 항일전쟁이 발발하고 이들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하게 변해갔다. 일본군과 벌인 치열한 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수 차례 넘기고 살아남은 핑루 할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후 내전(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시 국민당 세력이 타이완으로 근거지를 옮기고나자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들은 더욱 어려운 삶을 살게되었던 것.‘국민당에서 복무한 과거'로 인해 '노동을 통한 정신 개조 대상'으로 분류되어 가족과 22년간 떨어져 살아야했던 것이다. 하지만 퇴직하고 부인을 간병하며 시작한 그림 그리기 실력으로 복기한 본인의 추억이 이 책 <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누구나 어렵게 살아야만 했던 시절, 긴 스타킹에 구멍이 나면 잘라서 실로 꿰메어 다시 쓰고 또 다시 구멍이 나거나 헤지면 더 잘라서 꿰메어 다시 신고다니곤 하여 짧은 양말처럼 되어버린 결과물을 그려놓은 대목에서는 
누구나 웃음을 머금게 된다. 오랜 탁자 하나도 오래도록 아끼며 쓰다가 돈이 필요해 전당포에 맡긴 후 전당포 주인이 던져 부서진 탁자를 바라보며 울며 마음아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다섯 자녀들 모두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씨를 물려받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박노해 시인의 어느 시 중에서, 한 농부가 평생 몰고 다니던 경운기를 폐차하기 위해 떠나보내기 전날 집에서 상을 차리고 경운기를 향해‘잘 가시게'라고 절하는 대목을 떠올린다. 경운기 하나로 평생 밭을 갈고, 수확을 하여 장에 내다 팔아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내고 손주들에게 사탕하나 사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는 어느 농부의 마음이 그대로 뭉클하게 느껴졌던 시였다. 핑루 할아버지 가족의 삶에서 보이는 경물(敬物)하는 마음은 요즘처럼 모든 자원이‘낭비'되는 시대에 더이상 발견하기 힘든 마음가짐일 것이다.‘경물'할 줄 아는 사람만이 삶에 대해 겸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두 부부는 60년 넘게...비록 22년 정도 떨어져 살아야 했으나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인간의 연을, 부부의 연을 놓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두 부부에게는 유일무이하게, 독창적인 이들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이가 한 살 더 들어서인지, 요즘 부쩍 한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지금 내 가 살고 있는 시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핑루 할아버지처럼 결혼을 하고나서 더 실감하고 있다. 종종 편협하고 찌질한 나의 행동들이 아내에게 상처를 주지나 않았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이 땅에 태어나서 늦게나마 나에게 의지하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나에겐 좀더 기쁘게 해주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에 더욱 감사하게 된다.

핑루 할아버지와 메이탕 할머니가 만났던 20대의 사진과 60년이 지난 80대 때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가까이 들여다본다. 두 커플이 같은 사람이었는지 잘 알아보지 못하겠다. 아마도 오래도록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핑루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는 영원히 메이탕 할머니의 20대 모습이 기억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이 부부의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유년 새해에 나는 새로운 바램을 추가해본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 그럭저럭 잘 지냈지?˝라고 말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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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예금통장 - 고백 그리고 고발 다음 이야기
안천식 지음 / 옹두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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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예금통장>

안천식 지음 | 도서출판 옹두리

 

대한민국의 독립적인 사법체계는 유용한 허구였나?

그래도 법원과 법관이 제일 공정하다.” 아마도 말은 자랑스러운검사 자녀를 부모들의 자위일것이다.

   안천식 변호사의 번째 <고백 그리고 고발>(이하 <고발>) 번째 <찢어진 예금통장>(이하 <예금통장>) 나왔다. <고발> 읽으면서 저자가 10 동안 18 이상의 재판에서 패소한 과정이 과연 H건설이 하급법원에서 대법원까지 법관을 매수했던 것일까 아니면 제출서류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이 관행이었을까 궁금했었다. <예금통장>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나의 궁금증은 후자였던 모양이다. 60명에 이르는 법관이 일괄적으로 매수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다 자연스러운 판단은 엄청난 양의 자료를 준비하여 제출한 순진한 변호사 간절함과 노력은 법원의 관행 앞에, 법관들의 무책임한 관행 앞에서 무용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저자는 번째 책에서 이러한 법원의 관행이야말로 반헌법적이라고 다시 고발하고 있다.

 

   1945 8,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은 직후, 일제에 부역하던 한국인 법관 경찰들은 모두 종적을 감추었다가, 김구 선생과 이승만이 귀국할 즈음인 10-11 미군사정권은 다시 이들 친일 법관 경찰들을 다시 불러들여 중용하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가장 이유이며, 이후 국내에서 벌어진 모든 대학살의 시작을 알리는 씨앗이 사건이라고 본다. 해방이후 대한민국 지식인의 지층은 또다시 친일지식인이 근간을 이루는 구도로 재편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들만의 세력을 구축하는 일이 병행되었던 . 다시말하면 능력있고, 올바른 뜻을 갖고 있던 법관 경찰들을 또다시 솎아내어 배제시키는 구조를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안타까운 대한민국 현대사의 장면이 현재 우리가 영향을 받고 있는 박정희-박근혜 정권이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임을 새삼 안타까워하며 바라본다. 다시 비판해보자면 <예금통장>에서 보이는 법원의 반헌법적 관행은 이러한 사회적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저자가 대한민국의 사법체계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법관이 갖는 절대적 권한'과 관련이 있다.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은, 적어도 우리 사법체계에 이르러서는 법관에 대한 절대적 믿음 강요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169)

신분을 보장받는 법관이 재판에 대한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사법구조는, 사법권의 남용이 가장 쉬운 구조이기도 하다.”(174)

이렇듯 법리적용에 대한 법관의 권한은 사실확정에 대한 권한과 결합하면 무지막지한 가상의 현실까지 만들어낼 있는 것이 우리의 사법 시스템인 것이다.”(185)

우리 헌법이 법관에게 재판에 대한 모든 권한을 독점시키는 구조는 법관과 법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구조라는 의미이다.”(186)

 

 

   이러한 절대권력을 가진 법원 사법시스템이 국민의 기본권을 절대적으로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누가 이일을 해낼 것인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것인지 판단하고 실행에 옮겨야할 것인가? 명의 변호사로서 사법현실을 바궈보고자 본인이 직접 출판사를 차려 책을 2차례 출간하는 현실을 과연 무엇이라 말할 있을까? <고발> <예금통장>에서 기술하는 재판은 일제강점기에 등장하는 사건이 아니라 바로 작년(2016)까지만 해도 지속되던 사건이었다.

 

   사법부가 권력자가 되어 국민의 위에 올라 군림하게 되면 국민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 돌입하게 것이라 저자는 진단한다. 이러한 사회 구조에서 구성원의 삶의 조건이 자력갱생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결국 법을 알고 이를 다룰 아는 집단만을 위한 사법시스템이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법시스템의 서비스를 구매할 있는 유전(有錢) 고객만이 살아남게 것이다. 생물학에서 이야기하던 적자생존 진화 원리가 이들 유전고객에게 정당화되어 적용될 것인지 씁쓸하기만 하다. 

 

 

(법관의 권력 분산을 위해 배심원 제도의 고려)

   저자는 국민 개인의 기본권 침해를 방지하려면 재판권의 남용을 막고 이를 견제해야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배심제도와 참심제도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법관의 권한을 제한하고 분점하는 제도로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저자는 책에 나온 사건을 배심제도로 심리했을 경우 99.99% 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 확신한다. 분별있는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사건의 취지나 상황에 대해 보다 면밀히 파악하고 재판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 인간이 만든 제도 중에 완벽한 것이 있었던가. 미국의 배심원제를 비롯한 사법체계이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이론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제도로 평가받는다고 저자는 소개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실을 미국 사법재판의 실례를 통해 접하고 있다.

 

   이미 100 전에 문학작품에서도 배심원제도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자신이 인생을 망쳐놓았던 젊은 여인 카튜샤 살인사건 재판에 배심원으로서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돈이 없던 카튜사 살인죄라는 누명을 쓰게 위기에 처해진다. 만약 특정 배심원이 배심원단의 여론을 조종하게되는 결과를 초래하게된다면? 혹은 배심원 들이 H건설과 같은 대기업으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사법체계는 배심원들의 신변과 안전을 책임지고 보장할 있을까? 현재 인권이라는 명목으로 성폭행 가해자의 편의를 돌보아주는 반면 피해자의 정신적 안정과 치료, 신변안전이라는 문제에 그대로 노출되어있는 피해자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현실에서, 수많은 사건의 배심원들의 신변 안전 독립성을 사법체계가 지켜낼 있을지 의문이다.    

 

 

(거대 관료주의의 범죄성)

   또다시 <부활>에서 톨스토이가 고발하고 있는 관료주의의 범죄성을 떠올려본다. 무더운 여름 머나면 시베리아로 죄수 호송을 맡은 관료들의 무리하고 비인간적인 일처리에 죄수들은 쓰러지고 죽어간다. 그리고 관료들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며 개선의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고발> <예금통장> 보이는 관료주의적인 사법체계와 다르지 않다. 대기업이 관여한 부동산 매매 사기 사건과 관련하여 법원에서, 법관이 어느 누구든 변호사가 준비한 문건의 대의라도 제대로 파악하고 조치를 취했더라면, 10 년의 세월 동안 사람이 자살하고, 저자에게 기대고 있는 의뢰인의 재산권이 침해를 받는 일이 일어날 있었을까? 과연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관료주의적인 구조가 이들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아무런 생각없이 규정대로자신의 일을 아이히만과도 다르지 않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서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수하에 있으면서 히틀러의 지시를 착실히 수행한 착한 공무원으로서, 인류사에 없는 대학살을 저지른 주요 인물이 있었던이다. <고발> <예금통장> 관여한 60 여명의 대한민국 엘리트 법관들은 아이히만과 뭐가 다른가? 피해자들을 직접 가스실로 보내지 않지 않았다고? 대한민국 법관들은 법의 존재이유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법은 인간 존엄을 지켜주는 보루이다. 대한민국의 사법체계는 무지한 인간들 위에 완벽한 법체계가 있다 믿음에 근거하고 있는 같다. ‘법대로라는 말처럼 과연 세상 만물의 문제를 해결할 있는 기준칙 내지는 법칙이 있는가라는 물음이 앞선다. 대한민국의 사법체계에서 법관은 사실상 이다. ‘ 말이 이라는 말이 21세기에도 진실로 통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비판한 거대 관료주의의 문제에서 나아가 관료들이 무한한 권력을 가질 , 지금 어디에선가  혹은 앞으로 이와 비슷한 일들이 계속 생겨나게 것이다. 결국 관료주의화된 사법권력이 다른 정치 세력이나 대기업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게 되면(이미 삼성을 비롯한 대한민국 대기업의 오너들은 이재용의 영장기각으로 안도하고 있을터이다), 결국 영향은 대한민국 시민 모두에게 미치게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근간이 되었던 유신헌법작성에 참여했던 김기춘은 여전히 살아서 40 넘게 처벌하지도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독재자의 딸을 또다시 대통령으로 뽑고, ‘기억상실증 걸린 김기춘을 또다시 소환하였다. 우리는 대가를 아직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과)

15 양승태 대법원장은 2016 9 6 대국민 사과문을 낭독했다고 한다(214). 낭독문 일부가 책에 담겨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방법원의 현직 부장판사가 화장품회사의 대표로부터 금품을 수수하고 재판에서 편의를 봐주었던 사실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한홍구 교수의 저서 <사법부> 보면 대한민국 사법부의 현대사가 담겨있는데, 국내 최고의 엘리트 그룹이 어떻게 독재정권 하에서 권력의 시녀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시녀 그룹의 수장은 또다시 어떻게 소신있는 판사와 변호사를 소외시키고 배제시켜 자신들만의 왕국 구축해왔는지 기록하고 있다. 검사, 변호사들도 모두 결국은 대한민국의 사람, 시민일 뿐인데 이들에게 우리는 지사(志士)인간이라는 키치 우리 스스로 내건 것은 아닌가. 양승태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법관들도 물신화 첨단을 나아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독립적일 없는 인간일 뿐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만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가 판사에게 뇌물을 회사의 대표에게 접근, 일이 해결되었으니 수고비를 내놓으라고 금품을 요구한 것은 나의 빈곤한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경악 자체였다. 내가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우수한 사피엔스 특징인 사회적 상상력 부족하기 때문일까하는 자괴감마저 정도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자료)

   민사분야의 법적 분쟁해결에서 세계1위의 평가를 받았다.’(229)

   저자가 제시한 평가과정을 보니, 각국 로펌변호사 등의 법률 전문가들이 제공한 자료에 기반한다고 하였다. 평가과정이 결국 <찢어진 예금통장>에서 H건설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물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승소한 것과 다르지 않을 같단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의 사법체계를 , 전직 부장판사 출신의 대형 로펌 변호사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여 어떠한 방식으로든승소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의 이익에 기여했다고 해도 결국 세계은행이 판단하는 자료는 문제해결 건수라는 데이터를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닌가. 아마 책에서 등장한 H건설이 승소한 사건도 자랑스럽게 세계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대한민국의 민사분야 법적 분쟁 해결에 세계1위를 하도록 기여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세계은행이 발표한 평가야말로 유용한 허구라고 생각한다.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이러한 실적을 배경에는 대한민국 사법권의 관료주의적 구조를 활용한 결과일 있다. 법관의 무제한의 권력은 앞서 언급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문과 관련한 사건에서도 보듯, 현직 부장 판사에 대한 뇌물 액수만 올려놓을 있는 부조리한 구조를 잉태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직업윤리 타락은 사회를 돌이킬 없는 지경으로 몰아가게 된다.”(231)

나는 이쯤에서 미국 어느 청소년이 집단따돌림으로 자살한 사건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어느 미국인 학생의 말을 떠올린다. 학생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다. “여러분이 어떤 문제의 해결에 참여하지 않거나 침묵한다면, 여러분은 그들(집단따돌림을 사람들, 문제의 근원) 하나일 뿐이다.”

 

 

 

 

(알베르 카뮈의 )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위의 미국 청소년이 말이나 카뮈의 말이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경험한 부조리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김기춘처럼 온갖 추악한 일을 저지른 편리하게도 치매에 걸려 자신이 저지른 일을 기억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해야한다.

 

 

 

(편집 구성에서 아쉬웠던 )

: 글의 작은 꼭지 끝날 등장하는옹두리 혜윰 존재가 눈에 띈다. 다음 글로 넘어가기 분위기를 전환하고 여백을 두어 숨을 돌릴 기회를 준다고 수도 있겠다. 답답하고 무거운 일련의 현상, 사건을 따라가노라면 분명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반면 내게는 중간 중간에 등장하여 흐름을 끊고 산만하게 만드는 인상을 받았다. ‘옹두리 혜윰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오히려 자기계발서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저자의 의도를 강조하고 싶어서였을까. 개인적으로 옹두리 혜윰 흐름을 끊는 역할을 하기에 산만하게 만드는 같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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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만들어진 성 - 뇌과학이 만든 섹시즘에 관한 환상과 거짓말
코델리아 파인 지음, 이지윤 옮김 / 휴머니스트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만들어진 사회, 그리고 인간의 가소성

                                    - <젠더, 만들어진 > 읽고

 

안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는 기억으로부터 어릴적 경험

     어렸을 우리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누나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우리 집에는 피아노 소리가 자주 들리게 되었다. 내가 6 즈음의 일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누나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바쁜생활을 하는 동안 누나를 괴롭히며 빈둥거리던 나에게 부모님의 관심이 모아졌던 모양이다. 피아노 학원에 가보라는 어머니의 권유에 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는데,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당시에 피아노는 여자들만 연주하는 악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빈둥거리는 남자아이라도 나의 생각에 피아노는 남자인 내가 연주해서는 안되는악기였던 것이다. 피아노 학원에 가서도 또래의 여자 아이들과 누나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느꼈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질문은 내가 오래도록 지닌 아마도 가장 오래된 궁금증이었으며 풀리지 않을 숙제였다. 그리고 당시 어린 내가 느꼈던 수치스러운 감정은 이후 30년이 훌쩍 지나도록 아직도 느낄 있을만큼 안에 분명히 각인되어있다.

 

     실험 심리학자 코델리아 파인의 저서 <젠더, 만들어진 (Delusions of Gender)> 읽으면서, 피아노 학원에서 자신을 부끄러워하던 어린 이해할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다. 책에는 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면서 얼마나 많은 성구별적문화 코드로 둘러싸여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나아가 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 아이의 성별을 알게된 부모가 아이에게 갖는 기대의 유형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고 있다. ‘여아=분홍색’, ‘남아=파랑색 같은 전형이 이름표나 담요, 등부터 아이가 뱃속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묘사하는 언어까지 노골적으로 유형화되어있음을 알게되었다. 일단 아이가 태어나면 성구별적환경의 무차별적인 세례를 받는다. 저자의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성에 대해 상식처럼 알고 동의하게 되는 사항들 예컨대 남자와 여자의 대화법이 다르다는 일종의 모태신앙과도 같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있음을 있다. 나아가 저자는 대한 고정관념이 가장 강한 시기가 보통 5-6 때라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 이는 내가 6 즈음 피아노를 배우고 연주하는 일이 부끄러운 이라고 느꼈던 경험이 나만의 특수한 사건이 아님을 말해준다. 저자가 하나의 () 제목으로도 사용한 성평등은 집에서 시작된다 문구는 성구별적 세상에서 성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기를 있는 곳은 바로 가정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만약 내가 어려서부터 보다 주의깊게 이러한 편견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피아노를 좋아하고 즐길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사례는 피아노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인간의 삶에 평생 영향을 있는 가치관의 문제에도 연결될 있다. 성인이 지금까지 내가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린 수많은 결정들도 어쩌면 나를 둘러싸고 있던 이러한 성구별적환경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학습 견해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성차별 선진국으로서의 미국

     책에서 발견하게 사실 하나는 미국 사회가 얼마나 성차별적 문화를 만드는데 있어 선진국이었가 하는 점이다. 성차별과 관련한 편견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남자는 수학 과학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학문에 능한 반면, 여자는 상대방에 공감하는 일과 종합하는 일에 능하다 것이다. 이러한 성별 차이를 부각시키고 정형화하기위해서 미국내 최고의 지식인들이 여성의 열등한 특성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던가를 깨닫게 되어 놀랍다. 미국이라는 사회는 백인 남성에 의해, 백인 남성을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성차별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대학의 컴퓨터공학과에서 공부하는 여학생 비율을 국가별로 비교한 통계가 매우 흥미롭다. 저자가 제시한 통계자료를 보면, 3세계 국가에서 컴퓨터공학과의 여학생 비율은 50% 상회하는 반면, 유독 미국에서 15%수준에 불과했다. 사실은 미국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성구별적사회심리 구조가 얼마나 포괄적으로 남녀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단서를 제공한다. 좀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19세기 하버드 의대 교수였던 에드워드 클라크는 여성의 열등한 특성을 의학전문가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여성의) 지적 노동은 난소에서 뇌까지 위험할 정도로 맹렬하게 에너지를 보내 생식력을 위험에 빠뜨리고, 의학적으로 심각한 다른 질병들을 야기한다.그러므로 여성이 열등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리학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남성의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노력은 그나마 유식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지식인층에서 여성과 남성의 뇌크기 차이 가지고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던 사실을 알게되면 더욱 경악하게 된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국내 최고의 지식인들(백인 남성들로 구성된 집단) 의해 남녀의 성차별적인 인식이 계획적이고 정교하게 형성된 사회임을 보여준다. 나아가 책은 인간이란 존재는 모순적으로 얼마나 쉽게 사회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있는지,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형성된 행동을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남녀 사이의 생물학적인 차이를 가지고 여성의 열등함을 주장하는 충격적인 사례들은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사라진 반면, 자리를 신경과학의 뇌촬영 영상이 대신하게 되었다.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PET(양전자 단층촬영)로부터재구성 뇌의 활동부위 스냅사진들은 여성과 남성의뇌기능의 차이 분명하게 보여주는데이용되고있다. 여기서 이용이라고 이유는 과학장비로 측정된 신경과학적 결과와 실제 남녀의 행동의 차이를 연결해주는 심리적 해석이 매우주관적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측정 데이터를 해석하는 있어 수많은 가능성을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여과하고 선택하여 의미를추출하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로부터 측정한 단순한 전기적인 신호를 다시 심리적 원인으로 환원하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할 있다. 따라서 앞으로신경과학에서 보여주는 뇌활동의 남녀 차이를 제시하며그러므로 남녀가 다르게 행동한다라고 주장하는 연구가 있다면, 우리는 연구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여성과 남성의 다른 선천적인 차이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하버드 대학 인지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 있다. 핑커도 앞에서 19세기 여성의 신체적 열등함과 지적 열등함 언급했던 하버드대 교수 에드워드 클라크 견해와 크게 다를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티븐 핑커 신경과학의 결과를 언급하며 좀더 고도화된 자료와 언어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장비로부터 측정된 수치와 지표만으로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해석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가치중립적이라고 여겨지는 과학의 연구결과가 이를 다루는 ‘(백인)남자 전문가 집단 의하여 어떻게 남녀 차이를 지지하는 견해를 공고히 해주고 있는지 살펴볼 있었다.       

 

 

     저자인 코델리아 파인은 책을 쓰게 동기를 책의 중간에서 다음과 같이 슬며시 내비친다.

뉴로섹시즘(신경과학이 만들어내는 성차별) 고정관념의 손상, 한계, 잠재적 자기 성취를 촉진한다. 3 나는 아들의 유치원 선생이 아들의 뇌가 감정과 언어를 연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책을 읽는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254)

 

     책에서는 40 자신의 아이가 성차별적 문화에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던 심리학자 부부를 언급한다. 부모는 아이가 보는 책을 보고 성차별적인 신호가 보이면 지우거나 수정하고, 가정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동일하게 나눠 하도록 노력했다. 코델리아 파인은 부부들과 같은 노력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보는 책이나 교육과정에서 평등한 성교육을 방해하는 문화적인 신호들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나는 이들 전문가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환경이 우리를 얼마나 은밀하고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가까운 예로 나의 조카를 떠올려본다. 조카는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부모들이 걱정할 정도로 변신로봇류를 좋아하던 여자 아이였다. 그런 조카가 어느 순간 로봇을 집어던지고 분홍색과 공주 코드에 집착하는 것을 보았을 , 당시에는 나도 여자 아이니까하고 인정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젠더, 만들어진 (Delusions of Gender)> 나의 이러한 고정관념을 보기좋게 깨주었다. 모든 급격한 변화가 성호르몬 영향 때문이나 생물학적-선천적으로 다르게 배선된 뇌구조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성차별적환경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여성들이 자신들은 여자라서 수학을 못한다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되면 이것은 사회에 형성된 편견의 영향을 받은 개인이 그렇게 선택한 이라는 나의 막연한 견해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당연히 어느 집단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마취 작용과 같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말은 여성과 남성사이에 해부학적/생리학적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차이는 특정 분야의 지적 성취와는 무관하다는 ,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성들이 보다 선호하는 이유는 사회심리학적인 편견의 결과라는 뜻이다. 테스토스테론이라는 성호르몬에 의해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생리학적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차이가 어느 집단의 우열을 가리는 문제와는 무관한 일이다. 이것은 어떤 근거를 선택하여 주장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일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저자가 여성과 남성에게서 보이는 차이(행동의 차이든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된 차이든 혹은 뇌구조의 차이든)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는 같다는 점이다.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아 반론의 여지가 있는 점들을 사소한 차이라고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타인의 실험과정 결과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잘못 해석될 가능성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반면 내가 저자의 연구에서도 파고들어 의문을 제기한다면 명확한 대답을 얻기 힘들만한 부분이 보인다. 저자는 부분에 시간을 따로 할애하지는 않은 것같다. 오히려 저자가 여러 연구들에서 보이는 사소한 차이 무시하기보다 여기에 주목하고, 다른 연구자들의 편견에 의해 잘못 해석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저자라면 남녀간의 사소한 차이 무시하고나 덮어두는 것보다, ‘인간의 여성과 남성은 이러한 사소한 차이에도이러한 차이가 여성과 남성의 지적 성취 우열을 구분하는 근거가 되지 못함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등 의미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 중에는 양성평등 의미를 되묻게 하는 상황을 여러 맞게 되었다. 과연 평등 의미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던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평등 의미를 물을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50:50으로 역할이나 몫을 분담하는 기계적이고 산술적인 평등 의미만을 막연히 주장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잣대로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심지어는 고통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 모든 직업 분야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기회와 일자리를 배분해야한다라고 주장한다면 차체만으로도 많은 문제를 불러올 있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평등이라는 것은 기계적 산술적 평등 의미로 한정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이후, 혹는 산업혁명 이후 변화된 인간의 조건 우리가 현재 인식하고 있는 평등 의미가 연관되어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볼 있다. 예컨대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기회 주는 경제적 평등 생각해봄직하다. 오히려 경제적 관념이 반영된 평등 여성과 남성에게 대등한 기회를 부여하고 있으므로 자체로 이상적으로 보일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 모든 분야에 적용되면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생리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과연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할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볼 있겠다. 이는 분명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문제를 안고있다. 남성이 여성처럼 임신할 없는 생물학적인 문제에도 여성에게 동일한 노동의 강도를 요구하거나, 휴가없이 남성과 동일하게 일을 강요하게 된다면 이것이 공평한 문제인가 반문해볼 있다. 따라서 평등이라는 말을 우리가 사용할 , 보다 주의를 기울여 개념이 적용되는 상황을 민감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는 동등한 경쟁자로서 인식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기계적이고 산술적인 평등 신조를 서로에게 강요하게 (예컨대 명문화된 규정이나 등으로 강제력을 띠게 ), ‘평등 의미가 부여할 있는 폭력성 대해 생각해볼 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윤리적인 판단을 필요로할 , 상황을 둘러싼 환경과 이와 연관된 사람들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야하는 것처럼, 평등의 개념을 현실에서 적용할 보다 유연하고 상대적인 가치를 염두해두어야 것이다.        

 

 

  만들어진 , ‘젠더 의미에 까까워진 기회

     책을 읽게 되면서 젠더 의미에 대해 눈길을 주게 되었다. ‘젠더 단순히 여성과 남성을 나누는 대체물이 아니라 사회학적으로 의도된 결과임을 깨닫는다. 페미니즘의 방향이 앞으로 어떠해야하는가라는 문제는 너무나 근본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복잡한 문제다. 그만큼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의 전반에 이들 모든 문제가 관여되어 있으며, 해결의 실마리도 우리의 전반에서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파멜라 스톤 여성들이 경력을 단절하고 가정으로 향하는 진정한 이유는 가정 성불평등 때문이다."라고 말한 점에 공감하며 다시금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떤 문제가 우리의 전반에 배어있다면 문제는 일상에서, 좀더 구체적으로는 가정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있겠다. 나아가 새로운 방향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실천해나가는 것으로 시작해볼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과 남성이 서로에 대한 생명을 붇돋아주고 존중하기 위해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정 내의 성불평등은 부부가 설겆이를 50% 나눠하거나, 청소 구역을 절반 나눠하는 문제를 넘어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가짐을 갖는 그리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나가는 것이 더욱 근본적인 출발점이 있을 것이다. 나는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인간이 타인 주변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형성되어가는 섬세한 존재임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동기

"뉴로섹시즘은 고정관념의 손상, 한계, 잠재적 자기 성취를 촉진한다. 3년 전 나는 내 아들의 유치원 선생이 아들의 뇌가 감정과 언어를 연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책을 읽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254면)

1장 시작부분 - 성전환자 Jan Morris의 말 인용

"여자 대우를 받을수록 나는 더 여성스러워졌다. 싫든 좋든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차를 후진시키거나, 병마개를 따는 일에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나는 그 일에 서툴러졌다. 알수 없는 일이지만, 사람들이 내가 들기엔 상자가 너무 무거울 거라고 하면 실제로 상자는 무거웠다."

"나는 광대하다. 내 안에는 다수가 존재한다." (월트 휘트먼의 말)
- 심리학에서 개인의 다양한 자아 중에서 선택된 특정 자아를 일컫는다. 활동자아(active self)는 매 순간마다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하는 역동적인 카멜레온에 가까운 자아이다.(1장 참조)

*사회학자 파멜라 스톤의 말(7장 참조)

"여성들이 경력을 단절하고 가정으로 향하는 진정한 이유는 가정 내 성불평등 때문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말(7장 참조)

"남성도 부모이긴 마찬가지이고, 실제로 남성이 집안에서 동등해지기 전까지는 여성이 집 밖에서 동등해지는 일은 절대없다."

"당신의 딸이 여성적 방식으로 세상을 접하는 건 당신의 딸이 가진 소녀의 뇌 때문이다."(10장 참조)

*거리언 연구소에서 출판한 <It‘s a Baby Girl!>(2009)에서 인용한 문구. 이 저서는 여성과 남성이 다른 뇌 구조(생물학적, 선천적 차이)로 인하여 남녀 행동의 차이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후천적,문화적 영향에 대한 고려를 무시하고 있다.

*영장류 학자 프랜시스 버튼의 견해(11장)

"영장류의 태아기 호르몬이 그 개체가 태어나 속하게 될 특정 사회에서 자신의 성에 맞는 행동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

- 곧 이 말은 성별에 따른 다른 행동 양식은 선천적인 영향(호르몬 등의 영향)에 의한 문제에 결정적인 영향이 있는 것보다 사회심리적 영향이 매우 지대함을 암시한다. 유전자가 남녀로 하여금 수학을 좋아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인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또 다른 영장류 학자 윌리엄 메이슨의 견해(11장)

"부모 행동에 대한 설계는 유아기에 이미 존재하고, 양성에서 동일한 형태로 나타나며, 평생 계속해서 드러난다. 그러나 유아에 대한 관심은 성에 따라 나누기 시작한다."

- 여기서 엿볼 수 있는 점은 ‘부모 되기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되어 평생 영향을 주고있다는 점인 반면, ‘유아에 대한 관심‘은 호르몬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성차별적인 생물학자의 견해 - 조지 로매니스(George Romanes)

"여성의 뇌 무게가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140그램 더 적다는 점을 보면, 단순히 해부학적 기반을 가지고도 여성의 지적 능력의 열등함이 뚜렷하다는 걸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여성의 일반 체격은 남성보다 튼튼하지 않다. 따라서 심각하거나 오래 지속되는 뇌 활동에서 오는 피로를 더 견디기 힘들 것이므로, 생리적 바탕을 가지고도 유사한 에측이 가능해야 한다. 실제 사실을 가지고 보면, 여성에게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데에서 그 열등성이 가장 눈에 띄게 드러나며, 이는 특히나 더 고도의 지적 작업에서 더 확연하게 나타난다."

- 사회에 영향력을 가진 지식인이 의도한 성차별적 구조를 만드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을지 생각해볼 수 있다.

*하버드 의대 교수 에드워드 클라크의 견해(14장 참조)

"(여성의) 지적 노동은 난소에서 뇌까지 위험할 정도로 맹렬하게 에너지를 보내 생식력을 위험에 빠뜨리고, 의학적으로 심각한 다른 질병들을 야기한다."

*교육운동가 레너드 삭스의 견해(15장)

"남녀 뇌의 발달 차이를 무시한 교육 과정은 글 못쓰는 남자아이와 자신들이 ‘수학바로‘라고 생각하는 여자아이를 만든다."

-남녀의 차이를 부각시켜 교육을 성별에 따라 다르게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교육가들의 발언으로서, 남아를 ‘글 못쓰는 인간들‘, 여아를 ‘수학바보‘라고 미리 구분지어 놓고 이에 따른 차별 교육을 ‘맞춤 교육‘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범하게 되는 순환오류이다.

*남여에 따라 다르게 성유형화된 부모들의 기대(17장)

- "전 제 아들에게 농구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야구하는 법도 가르치고 싶습니다."
- "여자아이라면 예쁜 옷을 입혀 주고 인형을 사주고 무용 수업을 받게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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