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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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황금기는 씨 뿌리는 마음들에 달려 있다


-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2024)


 




미국의 황금기가 지금 시작됩니다.’(The Golden Age of America Begins Right Now)

 

이 문구는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식 슬로건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이하 극단적 소수)를 출간할 당시(2023)만 해도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훨씬 낮아 보였을 것이다.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나 민주주의가 다시 균형을 회복했다고 믿고 싶다던 저자의 바람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복귀에 성공했고 이제 막 100일이 지났다. 한 사회가 중요한 교훈을 배우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던 탓일까? 저자가 슬며시 내비치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극단적 소수에서 저자는 헝가리 독재자 빅토르 오르반에 대해 들려준다. 오르반은 성숙한 헝가리의 민주주의를 거의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완전히 허물어뜨린 인물로 소개되어 있다. 아마도 그라면 트럼프 행정부의 귀환과 대한민국의 계엄 사태를 보고 정치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90), 우리의 상상력 부족(?)을 조롱했을 법하다. 이 책은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가 어떻게 극단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 탁월하게 분석한다. 한편 현대인이 살아가는 지배적인 환경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일러주고, 동시에 민주주의 국가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균형 있게 설명한다. 대한민국의 독자가 이 책을 펼쳐볼 이유는 바로 여기, 트럼프 행정부의 귀환과 대한민국의 계엄 사태가 교차하는 지점에 우리가 서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퇴행의 위기에 처한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어느 방향으로 향하게 할 수 있을까?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존재는 무턱대고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이 아니다. 그럼 정말 위험한 존재는 누구인가?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주류 정치인들 중에서 표면적으로’ 민주주의에 충실해 보이는 무리들이다. 이들은 권력을 지닌 소수이지만, 기득권에 대한 집요함을 드러낸다. 물론 이러한 권력에 대한 의지는 정치인이라면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이들이 소수만의 이익을 위해 기존 제도를 교묘히 비틀어 합법적으로 보이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결과는 공공의 이익에 반하고, 심지어 개인의 자유마저 심각하게 침해하거나 훼손할 여지가 있다. 이런 이유로 표면적으로 충직한민주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데 결정적으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존재들이다.


 

기득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이로 인한 위기감은, 권력을 지닌 소수가 공권력을 동원하고 때로는 폭력에 호소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한다. 이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극단주의자들(이를 테면 극우 단체)에게도 손을 내밀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정치적 패배나 기득권 상실의 두려움은 이들의 행보에 보다 근원적인 동인으로 작동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반하는 집단을 제거하기 위해 국민을 대상으로 계엄령을 선포하여 군을 동원하고, 사법 기관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집단을 두둔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대한민국만의 유별난 사례는 아니었던 것이다.


 

지난 몇 달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상황만 보아도, ‘완전무결해 보이는헌법에 본질적인 맹점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여러 민주적 제도들은 양날의 검과 같다. 동일한 헌법 조항도 당파적 이익을 위해 무리하게 사용될 때,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집단을 무너뜨리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 위해 왜곡된 법률 해석을 필요로 했던 인디라 간디의 권력 남용과 정치적 몰락은 우리에게 기시감이 들게 하는 사례다. 권력을 쥔 이들이라면 어떤 제도를 시행할 때마다 손에 든 검처럼 신중을 기해야할 일이다.


 

민주주의 제도는 가능한 한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한다.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태도다. 하지만 인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통해 소수의 의견도 소중하다는 것을 어렵게 배웠다. 다수라고 항상 합리적이거나 옳은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수의 의견을 경청하고 보존하려는 장치가 도리어 다수에게 족쇄를 채우는 경우다. 미국 내 인종 차별적인 투표법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투표권법이 대법원 5명에 의해 폐지되어 버린 사례를 떠올려 본다. 이는 권력을 지닌 소수가 민주주의의 정체, 혹은 퇴행을 불러온 사태다. 적은 표를 얻고도 승리하는 선거를 가능하게 하여 트럼프 2기의 출범을 견인한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는 어떤가. 미국 민주주의에서 다수에게 재갈을 물리고 민주주의의 구현을 가로막는 소수 권력의 문제도 있다. 헌법 수정을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게 만든 미국 상원 제도가 그렇다. 간접 선거 방식인 선거인단 제도를 직접 선거인 보통 선거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사회의 운동과 입법 과정이 상원에서 거듭 무산된 상황은 미국이 마주한 고질적 문제로 그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기로에 서있는 미국 민주주의의 현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서다.


 

극단적 소수에서 저자들은 권력을 차지한 소수가 공동체 다수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 국가가 어떤 부작용을 겪을 수 있을지 보여준다.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다시금 배우는 중이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에 그 자체의 취약성과 제도의 불완전성이 있음을 인식하는 일은 매주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재검토하고 새로 구축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제도의 잠재된 한계를 깨닫는 일에서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상상력과 인내심이 절실하다. 주류 정치인 중에서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을 가려내는 일도 필요하다. 이 책을 읽고 사회의 제도들을 직접 운용하는 각 분야의 대표들의 자질을 검증하고 이를 요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우리는 미래의 대표들에게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가짐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 같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와 그 구성원을 아끼고 살피는 마음이 없는 이들이 어떻게 다수를 대표할 수 있을까.


 

여기에 우리는 정치인들의 손에 든 민주적 제도라는 검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도 지켜봐야 한다. 침묵하지 않고 말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움직이기 위해 우리의 몸을 가볍게하면 더 좋겠다. 응원봉을 들고 시위 현장을 찾은 수많은 대한민국 시민들처럼 말이다. 노르웨이 인들이 오랜 시간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축해온 사례는 우리에게도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일은 이러한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 아닐까. 물을 주어 보살피고 어떤 열매와 만나게 될지 상상해보는 일과 함께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의 독자부터 발걸음 가볍게 씨 뿌리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책속으로]

[1] "오늘날 미국 사회가 직면한 급박한 위협은 소수의 지배다."(21) - P21

[2] "민주주의는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시스템이다."(29)

"패배를 받아들이고 권력을 평화적으로 넘겨주는 규범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간이다."(29)

"정당이 지는 법을 배울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뿌리를 내린다."(36) - P36

[3] "정치인들이 패배를 지지 기반에 대한 존재적 위협으로 느낄 때, 그들은 권력 이양에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다."(39) - P39

[4]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반민주 세력을 정당화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그들을 격려하고 심지어 더 급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독재의 평범성(banality of authoritarianism)이 의미하는 바다."(76)


"그들은 심오한 원칙을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민주주의에 무관심할 뿐이다. (...) 그러나 결국 그들은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붕괴에 반드시 필요한 조력자 역할을 맡게 된다."(76) - P76

[5] "시민들이 헌법적 강경 태도를 보고 이를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77)

"21세기의 독재 정권 대부분이 헌법적 강경 태도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89) - P89

[6] "독재 세력은 주류 정치인들이 그들을 묵인하고 보호할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182) - P182

[7] "반민주적인 극단주의자와 관계를 끊는 것은 민주주의 행동의 세 번째 원칙이다."(183) - P183

[8] "선출된 정부가 일시적으로 차지한 다수 지위를 활용해서 야당을 무력화하고, 혹은 게임의 법칙을 바꿔서 경쟁을 가로막음으로써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206) - P206

[9] "반민주적인 정당은 소수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를 이용해서 독재를 인정하고 ‘강화’하기까지 한다. (...) 반다수결적인 제도는 소수 정당을 경쟁 압박으로부터 보호함으로써 전제적인 극단주의를 강화한다."(276) - P276

[10] "미국은 2023년 이전에 전직 대통령을 기소한 적이 없었지만, 일본과 한국, 프랑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등 많은 기존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렇게 했고, 그럼에도 그들의 정치 시스템은 후퇴하지 않았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중범죄를 저지를 때, 민주주의는 그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331) - P331

[11] "투표를 더 쉽게 만들고, 게리맨더링을 없애고, 선거인단 제도를 직접적인 보통선거로 대체하고, 상원 필리버스터를 없애고, 상원을 보다 비례적으로 만들고, 대법원 종신제를 폐지하고, 헌법 수정을 좀 더 쉽게 만드는 개혁. 이 모든 변화를 통해 미국은 세상의 모든 나라를 따라잡게 될 것이다."(341, 저자들이 주문하는 미국의 개혁안 요약) - P341

[12] "더 중요한 것은 헌법 개혁을 위한 아이디어가 거대한 국가적 정치 토론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침묵이다."(342)

"변화를 고려하지 않을 때, 우리는 변화를 이룰 수 없다. 논의와 아이디어는 결코 공허한 노력이 아니다."(344) - P344

[13] "사회 운동은 개혁을 지지하는 새로운 유권자 집단을 양산하고 현상 유지를 옹호하는 이들의 입지를 약화시킴으로써 정치인의 선거적 계산을 바꾼다. (...) 대규모 사회 운동이 정치적 셈법을 바꿔놓으면서 그들은 포괄적인 개혁을 받아들였다."(353) - P353

[14] "오늘날 미국에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 개혁 의제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개혁 ‘운동’일 것이다. 이를 통해 각계각층의 시민을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사회 운동으로 집결시킴으로써 상상력을 자극하고 공적 논의의 틀을 바꿔나가야 한다."(358) - P358

[15] "미국의 민주주의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그리 민주적이지 못했던 과거를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365) - P365

[16] "민주주의 수호는 이타적인 영웅의 과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다는 말은 우리 자신을 위해 일어선다는 뜻이다."(369) -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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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물리학 - SF가 상상하고 과학이 증명한 시간여행의 모든 것
존 그리빈 지음, 김상훈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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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물리학함께 읽기

(원제: Nine Musings on Time)

존 그리빈 지음 [휴머니스트] (2024)

 



과학책 읽기 모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책은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존 그리빈의 시간의 물리학입니다. 저자의 저서는 꽤 오래 전부터 국내에 많이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과학자를 비롯하여 폭넓고 다양한 과학 주제로 글을 써온 과학저술가입니다. 부인인 메리 그리빈(Mary Gribbin)과 함께 많은 과학책을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번에 함께 읽은 책은 70대 후반의 노()과학자가 현업 작가로서 2022년에 출간한 책입니다. 시간 및 시간 여행에 관해 쓴 이 책을 함께 읽다보니 과학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호기심, 그리고 무엇보다 SF에 대한 그의 오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Nine Musings on Time입니다. 여기서 musings는 우리가 영감의 원천으로 언급하는 뮤즈(muse)라는 용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동사로는 사색하다, 골똘히 생각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musing숙고/사색을 의미하기도 하죠. 그러니까 이 책은 시간에 대한 과학자의 생각을 모은 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주목해보는 지점은, 번역서와 원서의 차이입니다. 번역서에는 다양한 그래프와 과학개념을 소개하는 그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원서에는 대부분 과학자를 비롯한 인물 사진만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원서에는 없는 그래프나 그림들을 출판사/역자가 적극적으로 배치하는데요, 이 작업은 분명히 번역자 혹은 편집자의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저자가 시간과 시간 여행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독자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는 의도보다는, SF 덕후인 그가 시간 여행을 다룬 과학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이 책을 읽는 과정이 한결 가볍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이번 읽기 모임에 오신 한 참여자분은 저자가 청년 시절 흥분하며 읽었던 SF잡지 <어스타운딩 Astounding>의 표지 사진을 스티커로 만들어 선물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본인의 SF사랑을 모임에서 한껏 나누어주셨으므로, 저자가 이 책을 쓸 때 바라던 대로 실천하신 것이 아닐까요.


 

한편 모임 중에 몇 가지 과학 개념들을 짚고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참여자분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바로 시간임을 알 수 있었는데요, 시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떻게 (과학적으로) 이해하면 좋을지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책을 읽고 보니 과연 시간의 정체에 대해서는 과학자들마다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견해차가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봅니다. 과학자들이 열역학적인 관점(엔트로피 관련)에서 시간의 의미를 설명하더라도, 일반인인 우리에게는 여전히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자는 몇몇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시간이 흐른다라는 설명을, 인간의 감각에 기반 한 환상이라 본다는 견해도 제시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시간의 비유는 그 역사가 깊습니다. 자연철학서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은 시간의 정체를 궁리하다가 영원히 움직이는 모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을 강의 이미지와 연결 짓는 역사가 이미 충분히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서구 기독교 교리의 토대를 마련한 성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자신의 고백록에서는 아예 작정하고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묻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내게 물어서 설명해주려고 하면,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라는 것이 스스로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지요. ‘흐르는 시간의 개념이 여기에서도 발견됩니다.


 

현대인은 우주의 기본 구성 요소로 만든 원자시계를 사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년///초의 개념은 지극히 인간적인(혹은 지구적인) 시간 개념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개념은 인류가 살아가는 지구의 조건과 떨어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주기, 지구의 자전주기, 달의 지구 공전 주기 등은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 체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지만, 이것이 유효한조건은 역시나 지구에 한해서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SF의 단골 주제인 시간 여행방식 중에서 원하는 시대(과거든 미래든)에 타이머를 맞추어 가는 방식은 분명 불가능합니다. 또 우연히 시간여행이 가능한 문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원래의 지점으로 되돌아올 수는 없다고 말해줍니다.


 

나아가 질량을 가진 존재가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 광속에 준하는 속력이 필요하다면, 이것은 상대성 이론에 의해, 태양계에 존재하는 에너지보다도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해집니다. 그럼에도 저자의 입장은 시간 여행은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과학적 조건들을 검토합니다. 실제로 물리학자들은 질량이 없는 으로 시간이동을 가능하게 한 실험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정보를 광속보다 빠르게 과거로전달함으로써 말입니다. 따라서 저자에 따르면, ‘시간여행을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대신 을 이용하여 시간이동을 할 수는 있다, 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이때 이동한 시간의 차이는 (아직까지는) 지극히 찰나에 가깝긴 하지만요.


 

이번에 읽은 책을 통해 저자가 SF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SF는 저자가 과학자가 되도록 이끈 영감과 열정의 원천임을 알 수 있었거든요. 물론 SF는 저자뿐만 아니라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준 장르이기도 합니다. 현재 실현된 과학기술 가운데 많은 것들이 과거의 SF에 이미 등장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SF를 단순히 공상과학소설이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지 않을까요? 적어도 저자 존 그리빈에게 SF는 그를 과학이라는 지적활동의 세계로 이끌어준 원동력이었으며, 읽기와 쓰기에 대한 열정을 불어 넣어 준 뮤즈였던 셈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읽은 시간의 물리학은 오늘의 그를 있게 해준 SF에 보내는 저자의 오마주이자 사랑고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한 뒤로 시간여행은 줄곧 나를 매료했다."(7) - P7

"과거와 미래의 구분은 현대 과학이 직면한 가장 거대한 수수께끼 중 하나다."(37) - P37

"몇몇 과학자(그리고 철학자)는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이 인간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50) - P50

"빛이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려면 양자 터널링으로 알려진 현상에 의존해야 한다."(71) - P71

"쾰른대학교의 귄터 니미츠 연구팀은 정보를 광속보다 빠르게 과거로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81) - P81

"아서 C. 클라크의 유명한 격언이 시사했듯이 충분히 발달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는 법이다."(126) - P126

"(프레드) 호일은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끊임없이 흐르는 강이라는 시간의 이미지는 ‘그로테스크하고 부조리한 환상‘이라고 단언한다."(136) - P136

"과거에 존재했고 미래에 존재할 모든 것은 언제나 존재하며, 우리가 역사나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감각은 오로지 우리의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137)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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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37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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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개별성을 잃는다면, 우리는/나는 누구인가?

- 우리들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지음

석영중 옮김 [열린책들] (1996/2006)

 



매일 아침 육륜(六輪)의 정확성으로 동일한 시간, 동일한 분에 우리 - 수백만의 우리는 마치 한 사람처럼 기상한다.”(18)


 

29세기의 지구를 지배하는 단일제국의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매일 오전 7시에 단일제국 찬가를 합창하며 기상한다. 이들은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집에서 살아가는 반면, ‘녹색의 벽너머에는 불투명한 고대관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있다. 이곳은 200년에 걸친 도시와 농촌 사이의 전쟁으로 삶의 공간이 파괴된 곳이다. 하지만 단일제국의 하루는 일사분란하다. 마치 여섯 개의 바퀴에 의지한 채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거대한 증기 기관차처럼 말이다. 이들의 취침 시간은 정확히 222분의 1(오후 1030)이다. 그러고 보니 이들의 생활 패턴이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군 생활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풍경을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러시아 작가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우리들>은 디스토피아의 효시가 된 작품이다. 당시 36세의 젊은 작가는 러시아 혁명 직후인 1920년에 집필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작품 전체를 통해 세계에 대한 비판의식이 전면에 등장하기에 당시 러시아 국내에서 출간은 금지되었다. 하지만 이후 등장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에 작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스탈린 집권 이전에 집필되었기에, 오웰의 <동물농장>처럼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 보다는, 경제 체제의 지배와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독해가 더 설득력이 있다. 특히 거대한 생산 라인의 부품처럼 최대의 효율성을 위해 일하도록 길들여진구성원들의 소외와 자유의 박탈 문제를 꽤나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자본을 가진 거대 기업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막강해진 지금 시대의 현실과 더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단일제국의 구성원들은 녹색의 벽 너머의 인간들처럼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거대한 유리 반구로 경계 지워져 있는 이 곳에서 이름 대신 여자는 알파벳 모음, 남자는 자음 한 자로 시작하는 번호로 불린다. 이를테면, 소설의 화자는 D-503이고, 화자와 맺어진연인은 O-90으로 불리는 식이다. 이 곳의 구성원들은 개인성 자체를 의식하도록 길들여진 듯하다. 획일적이고 평균적인 존재로 살아갈 뿐이다. 반면 단일제국을 지배하는 존재는 번호 대신 은혜로운 분으로 불린다. 이는 특정한 이름이 부여된 인간과 달리, 막연하고 불가해한 이름으로 불림으로서 스스로를 구별 짓고 있다.


 

우리는 심지어 생각까지도 동일하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개인이 아닌 ‘...중의 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토록 동일한 것이다.”(12) 그러므로 각자가 자각하는 자신은 언제나 나이며 동시에 내가 아닌”(8) 상태에 머물 뿐이다.


 

수백 년 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인간들의 고대관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처럼 건물들이 불투명하다. 반면 단일제국의 건물들은 모두 투명한유리로 되어 있다. 상상이 되는가? 7시에 기상하여 눈길을 옆으로 돌리면 옆집 사람이 무엇을 하는 지 볼 수 있고, 때론 눈길도 마주친다. 말하자면 이들에게는평소에 사생활없이 살아간다. , 사랑을 나눌 때에만 국가에 신고를 하고 이를 증명하는 분홍색 감찰을 얻어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이때에야 비로소 커튼을 내릴 수 있는 허가가 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곳의 사람들은 성생활까지도 국가의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는데 익숙하다. 나아가 사랑에 있어서 희열(분모)/질투(분자)로 정의되는 행복의 공식에서, 질투를 무한히 작게 만들면 행복을 무한히 증대시킬 수 있다는, 기계적이고 우려스러운 믿음을 신봉한다. 이때 질투를 무한히 작게 만드는 방법으로서 국가는 모든 파트너의 자유로운 공유를 제도화한 것이다. 100여 년 전의 소설 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제도가 보다 구체적이고 파격적으로 설정되어 이어지는 모습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사람과 깊이 맺는 인간적인 관계가 오히려 의심스럽고 불순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작품 속 화자인 D-503은 단일제국의 수학자이면서, 건조중인 우주선 인쩨그랄의 조선 담당 기사이다. 학창 시절 친구이자 시인이기도 한 흑인 R-13은 여인 O-90와도 파트너다. 곧 이 세 사람은 삼각관계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인간들과는 달리 이 세 명 사이에는 서로에게 질투를 품지는 않는다. 화자는 오히려 자신들의 관계를 완벽한 삼각형이라고 만족하기까지 한다. 이들 각자는 단일제국의 업무를 분담하는 개미혹은 거대한 기계의 규격 부품과 같은 의무를 다하고자 할뿐이다.


 

단일제국의 철학은 테일러 주의(Tayorism)와 포드주의(Fordism)이라는 표현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메커니즘의 아름다움이란 진자와 같이 정확하고 불변하는 리듬에 있다. 그러나 사실 어려서부터 테일러 시스템에 의해 길러진 당신들은 진자처럼 정확하게 되지 않았는가? (...) 메커니즘에는 환각증이 없다.”(175) 단일제국에 스며들어 있는 공기에서는 미래와 이성에 대한 낙관을, 오차 없는 기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감지할 수 있다. 생산성과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들(그러니까 각각의 번호들)은 밤에 반드시 잠을 자야 한다. 이것은 의무이기에, 밤에 수면을 취하지 않은 것은 심지어 범죄가 된다. 이 단일제국의 번호들에게는 건강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 의무는 인간다운 생활과 행복 추구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생산 목표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개인의 개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와 달리 영혼이 내면에 형성된 번호들,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여겨지는 꿈을 꾼 이들’, 제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불순분자들환각증을 가진 사람들로 진단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단일제국은 이들에 대한 처리방법을 알고 있다. 환각증을 가진 사람들은 소위 위대한 수술을 받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위대한 수술이란, 간단하다. 엑스레이로 대뇌 하부의 뇌신경 마디를 3회에 걸쳐 태워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수술 받은 번호들은 결국 화자처럼,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만을 가진 본래의D-503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단일제국의 번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전체의 일부로서 스스로를 자각하는 데 머문다. 어쩌면 화자가 건조에 참여중인 우주선 인쩨그랄의 이름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이 명칭은 영어의 인티그럴(integral)에 해당할 텐데, 이 용어야말로 전체의 일부로서 필요불가결한’, ‘완전한이라는 의미를 지니면서, 분수(fraction)에 대항하는 정수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한편 인티그럴총체라는 의미나 적분, 혹은 적분 기호로의 의미도 함의한다는 점에서 우주선 인쩨그랄의 명칭 하나에도 소설 전반이나 화자와 관계된 다의적인 상징성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설은 다양한 상징성을 구현하는 데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수 있는 특징은, 화자 D-503의 의식 변화다. 그는 동질한 개인으로서 자신을 자각하는 데 머물지 않고, 어느 순간 점점 더 혼자됨을 자각해간다. ‘나는 혼자다.’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꽤 많이 반복된다. 그리고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내가 정말 나인지 알 수 있다면.”(69)이라고 말할 정도로 화자의 내면은 자아분열에 가까운 균열과 정처 없음을 경험한다. 결국 그는 한 개인으로서 자신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의식은 질병임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고유한 개인으로 드러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사회의 관습이라는 것이 그렇듯, 관습의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는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단일제국의 의사는 화자의 내부에 영혼이 형성된 것이 틀림없으며, 자연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린다. 따라서 이 환각증을 제거하려면 수술을 받는 길밖에 없다는 처방을 내린다. 이 수술은 앞에서 언급한 신경 마디를 태우는 수술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진단에도 화자 D-503고유하고 개별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의식하고 결국 나는 단독체”(153)라는 자각에 이르는 것이다.


 

화자가 스스로를 단독체로 자각하는 분열과 고뇌의 양상은 화자가 여성 I-110과 만난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I는 단일제국의 구성원들에게 존중을 받는 인물이지만, 벽 너머 인간들의 장소인 불투명한 고대관에서 금지된 술과 담배를 하며 화자를 유혹한다. 물론 화자를 유혹한 주된 이유는 화자가 참여하는 우주선 인쩨그랄을 탈취하고자 하는 혁명 활동의 포섭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I는 혁명 세력의 일원이었다. 우주선 인쩨그랄을 탈취하여 단일제국의 우주 진출을 막으려는 계획에 참여해왔던 것이다.

 


소설에서 예기치 못한 반전을 꼽는다면, I가 참여하는 혁명 활동이 다이나믹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흐지부지 실패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I에 단단히 빠져 있던 화자는 혁명 활동에 참여하는 듯 했지만, ‘인쩨그랄탈취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며, 결국 어처구니없이 실패하고 만다. 급기야 화자 D-503은 국가로부터 수술까지 받아 마치 새로운 인격으로 거듭난다. 화자는 단일제국의 충실한 개인이 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내게는 극적인 반전도, 기대도 개의치 않는 듯한 반전이었지만 결국은 디스토피아적인 마무리다. 마치 녹색의 벽너머 인간의 세계로 넘어갈 것만 같았던 화자가 다시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갖고 은혜로운 분의 영향력 아래 복귀하는 설정. 내겐 오히려 상투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현실에 어떤 변화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지만, 현실에서 패배하는 개인의 모습을 통해 어쩌면 오히려 더 실감나는 정서를 전달하고 있지는 않은가.

 


작가 자먀찐은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전체주의적 사회 속 개인의 문제를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하나 된 전체로서의 개인을 강요하는 공동체에서 오히려 극도로 소외된 인간 존재에 대해 고찰했다. 5월의, 제국 상공의 푸른 하늘과 녹색의 벽’, 그리고 노란 꽃가루가 넘어오는 인간들의 사회, 불투명한 고대관의 모습을 상상하다보니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렸던 이탈리아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초기 작품을 떠올렸다. 특히 키리코의 그림 이탈리아 광장’(1913)처럼 고독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보이는 장면을 떠올려 볼 수 있다. 혹은 그의 그림 가운데 마찬가지로 인기척 없는 광장 풍경을 담은 그림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소설 속의 묘사처럼, ‘마졸리카 도자기를 닮은 파란 하늘 아래 누런 흙바닥이 있는 광장, 그리고 그 뒤에 보이는 원형의 성이 있는 풍경처럼 말이다. 그리고 늦은 오후인 듯 길게 들어진 동상의 그림자. 그림의 광장은 소설에서 불투명한 건물이 늘어서 있는 고대관의 모습을 닮은 듯했다. 인기척뿐만 아니라 사람이 현재 살고 있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 왠지 모르게 황량하고 고독해 보이는 세계,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이 팽배한 그림이 소설의 분위기와도 꽤나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비밀 없이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는 작품 속의 사회에서 개인은 균일한 부품으로, 전체의 일부로서만 존재한다. 투명한 다이아몬드처럼 말이다. 반면 녹색의 벽너머의 인간 거주 구역에서 모든 건물은 불투명하다. 이들의 존재 조건은 불투명한 흑연을 닮아 있다. 하지만 이로써 각자에게는 사생활이란 것이 생겨나고, 이로부터 사람들은 혼자됨의 시간과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일단 개인성을 자각하게 되면, 그는 단독체로서 다시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테다. 화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혼자됨을 자각하는 인물이었다. 인간이 인간적일 수 있는 것은 유한한 존재이자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이 불완전함에 대한 자각, 그리고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노력들이 비록 실수하고 실패하며 방황을 수반하더라도 자신을 객관화하고 타자에 보다 더 공감하고 연민할 수 있는 존재임을 다시 확인하게 해주지 않겠는가. 그런 이유로 존재의 불투명성은 타자를 바라보는 마음가짐을 보다 겸손하게 하고, 타자를 이해하고자하는 노력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극단적이고 경직된 도덕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개개인이 숨 쉴 여지를 남겨 놓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 전체와 개인성의 발현, 소외와 고립, 그리고 자유의 문제를 견주어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1] "나이며 동시에 내가 아니다."(8) - P8

[2] "‘녹색의 벽’ 너머, 보이지 않는 황량한 평원에서 달콤한 황색의 꽃가루가 바람에 실려 온다."(9) - P9

[3] "우리는 심지어 생각까지도 동일하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개인’이 아닌 ‘... 중의 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토록 동일한 것이다."(12) - P12

[4] "매일 아침 육륜의 정확성으로 동일한 시간, 동일한 분에 우리 - 수백만의 우리는 마치 한 사람처럼 기상한다."(18) - P18

[5] "국가(인류)는 한 개인의 살인은 금지했으되, 수백만을 절반 정도 죽이는 것은 금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사람을 죽이는 것, 즉 인간 생명의 합산을 50년 축소시키는 것은 범죄이지만 인간 생명의 합산을 5천만 년 축소시키는 것은 범죄가 아니었다는 얘기다."(19) - P19

[6] "다시 말해서 사랑이 조직화되고 수학화된 것이다. (...) 모든 번호에게는 다른 어떤 번호라도 성적 산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26) - P26

[7] "지고의 희열과 질투란 행복이라 불리는 분수의 분자와 분모라는 사실이 분명하지 않겠는가."(26) - P26

[8] "이 모든 일은 무엇 때문인가? 어째서 나는 여기 있는가?"(34) - P34

[9] "독창적이란 것은 다른 것들 가운데서 구분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따라서 독창적임은 평등을 깨뜨리는 거죠..."(35) - P35

[10] "우리는 꿈이란 심각한 정신질환임을 안다. (...) 그들(고대인)의 생이란느 것은 전체가 그토록 끔찍한 회전목마가 아니었던가."(38) - P38

[11] "나는 저 거대하고 강력한 단일체의 한 부분으로서 나 자신을 인식한다. 그토록 정확한 아름다움이 또 있을까."(38) - P38

[12] "당신도 아시다시피 당신은 건강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43)

"밤에, 번호들은 반드시 자야 한다. 그것은 의무다. 낮에 일하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낮에 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야 한다. 밤에 자지 않는 것은, 범죄다..."(63) - P63

[13] D-503: "나는 (...)앞으로도 지식을 위해 봉사할 걸세."
R-13: "자네의 그 지식이란 것이야말로 비겁함일세. (...) 그러나 벽 너머로 시선 던지기를 두려워하고 있어."(46) - P46

[14] "그래, 수학자 선생.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가장 행복한, 평균적인, 산술적인 존재들이지..."(49) - P49

[15] "아름다운 것은 오로지 이성적이고 유익한 것들이다."(54) - P54

[16] "창백한 유리 하늘, 녹색 빛이 도는 부동의 밤. 그러나 그 고요하고 서늘한 유리 밑에서 소리 없이 맹렬한 털북숭이의 무언가가, 적자색의 무언가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62) - P62

[17] "털북숭이의 야만적인 제2의 나. (...) 나는 혼자 남았다."(68)

"나는 혼자다. (...) 저 높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어떤 내가 정말 나인지 알 수 있다면."(69) - P69

[18] "그대는 안개가 자신보다 강력하기에 두려워해요. 그리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증오하지요. 또 정복할 수 없기에 사랑하지요. 사실상 우리는 정복할 수 없는 것만을 사랑할 수 있죠."(76) - P76

[19] "사실 나는 우리의 이성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유해한 고대의 세계에... 의 세계에 살고 있다."(81) - P81

[20] "인간화한 기계와 기계화한 인간은 결국 동일한 것이다."(86) - P86

[21] "그러나 나는 혼자였다. 난 파도에 떠밀려 무인도로 내팽개쳐진 인간이었다. 나는 찾고 있었다. 청회색의 파도 속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90) - P90

[22] "인간은 최초로 벽을 세웠을 때에야 비로소 야생동물의 상태에서 벗어났다. 우리가 녹색의 벽을 세웠을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야만인이 아닐 수 있게 되었다. 즉 우리가 녹색의 벽으로 우리의 기계적이고 완벽한 세계를 나무, 새, 짐승 등의 비이성적인 흉측한 세계로부터 격리하게 되었을 때."(95) - P95

[23] "인간이 호모사피엔스라는 이름의 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일 수 있는 것은 그의 문법에 의문부호가 절대로 없으며 있는 것은 다만 감탄부호, 쉼표, 그리고 마침표일 때에 한해서다."(118) - P118

[24] "나는 유쾌하고 건강하게 결박당한 느낌이었다."(121) - P121

[25] "우리는 늘 아시리아의 기념비에 그려진 투사들처럼 걷고 있었다. 천 개의 머리. 그러나 팔과 다리는 마치 한 사람의 것처럼 흔들렸다."(124) - P124

[26] "그만해요, 그만./ 그녀는 이미 더 이상 번호가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 인간이었다. 그녀는 다만 단일제국에 가해진 모욕적인 형이상학적 실체에 불과했다."(125) - P125

[27] "나는 나 자신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 스스로를 느낀다는 것, 스스로의 개인성을 의식한다는 것, 그것은 먼지가 들어간 눈, 종기가 난 손가락, 충치를 의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건강한 눈, 손가락, 이빨은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지므로. 그렇다면 개인적인 의식이란 단지 질병임이 확실하지 않은가."(127) - P127

[28] "모든 것이 특별하고 서럽고 부드럽고 장밋빛이고 축축했다."(128) - P128

[29] "(고대인들은) 어째서 그 모든 비밀이 필요했을까. (...( 우리에겐 숨길 것도 수치스러워 할 것도 아무것도 없다."(135) - P135

[30] "나는 끝없는 복도에 혼자 서 있다. 그때의 그 복도 말이다. 말 없는 콘크리트 하늘."(149) - P149

[31] "나는 나였다. 개별적인 존재, 세계, 나는 여느 때처럼 구성 분자가 아니었다. 나는 단독체였다."(153) - P153

[32] "그들의 몸은 털로 뒤덮이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 대신 털 아래에 따뜻한 붉은 피를 보존했어요. 당신의 경우는 훨씬 나빠요. 당신은 숫자로 뒤덮여 있으니까요. 숫자가 마치 이처럼 당신 위를 기어 다니고 있어요. (...) 공포와 기쁨, 불같은 노여움, 추위 때문에 전율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160) - P160

[33] "다양성만이, 체온의 다양성, 열량의 대비만이 생명을 구성한다는 걸요. 만일 우주 도처에 동일하게 차갑거나 동일하게 뜨거운 것만이 있다면 그것은 없어져야만 해요. 불과 폭발과 지옥을 위해서죠."(171) - P171

[34] "‘국가 과학’의 최신 발견에 따르면 환각증의 중심은 대뇌 하부에 있는 보잘 것 없는 뇌신경 마디라는 것이다. 엑스레이로 그 마디를 3회에 걸쳐 태우면 당신들의 환각증을 치유할 수 있다."(175) - P175

[35] "그러나 내게는 구원이란 게 없었다. 나는 구원을 원치 않았다..."(182) - P182

[36]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고 너무도 뜻밖이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내 안에 팽팽하게 조여 있던 용수철이 곧 망가져 버렸다. (...) 나는 그때 개인적 경험을 통해 웃음이 가장 무서운 무기임을 알게 되었다. 웃음으로 모든 걸 죽일 수 있다. 살인까지도 할 수 있다."(206) - P206

[37] "어호, 우린 행동을 개시했어요!/ 우리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215) - P215

[38] "이전에 나는 웃음에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는 걸 몰랐다. 그러나 이제 깨달았다. 웃음이란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의 먼 메아리일 뿐이다."(216) - P216

[39] "나는 미소 짓는다.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다. 내 머리에서 무슨 가시 같은 걸 뽑아냈으므로 머릿속은 가볍고 텅 비어 있다."(227) - P227

[40] "우리는 40번가의 횡단로에 고압 전류가 흐르는 임시 벽을 건축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우리가 승리하길 희망한다. 아니, 그보다 나는 우리가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 이성은 반드시 승리하기 때문이다."(228)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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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위험한 생각
대니얼 C. 데닛 지음, 신광복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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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받았습니다! 데닛의 세계에 조금씩 다가가는 중! 말로만 들었던 유명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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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지능 -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인간의 일곱 가지 수학 지능
주나이드 무빈 지음, 박선진 옮김 / 까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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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함께 살아가려면 필요한 것들

- 수학 지능

 

주나이드 무빈 지음

박선진 옮김 [까치] (2023)

 




현대 사회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매일 피부로 느낀다. 얼리 어답터가 아닌 나로서는 이런 변화에 발맞추어 가는 일이 이따금씩 일어나는 행사가 아니라 일상이 된 느낌이다. 하지만 깊은 산 속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기술의 발전은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이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AI라는 화두가 있다. 최근에 등장한 주제는 아니지만, 지난 몇 년 사이 그 변화의 조짐이 심상치 않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테다. 더 이상 뒤처지지 않으려고 해도 빠르게 다가오는 시대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한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교육자, 작가인 주나이드 무빈의 수학 지능AI시대의 핵심 분야인 수학을 중심에 놓고, 이 거대한 변화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지 말한다. 수학자는 AI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나아가 우리가 이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힌트를 준다. 무엇보다 미지의 대상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가 생겨난다면 우리는 두렵지 않게 다가올 미래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2024년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연구 분야를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물리학상과 화학상 분야에서 모두 AI관련 기술이 핵심적인 도구로 활용된 점이 눈에 띈다. 이 분야는 이미 수십 년 이상 활용되어 왔지만, 작년의 노벨 과학상 발표 소식은 AI관련 기술이 이제는 첨단 연구에서도 중요한 도구이자 파트너로 활용되고 있음을 대중에게도 알린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이 조짐은 2016년 구글의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알파고와 세계 정상급 바둑기사 이세돌의 대국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이 사건은 세계에 던진 하나의 충격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모든 사회는 새로운 발명이나 기술과 같은 변화의 조짐에 동요한 바 있다. 이 변화에 먼저 참여한 소수의 사람들과 달리, 대다수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거나 저항하기도 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오히려 이런 반응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럽다. 수학 지능의 저자 주나이드 무빈은 급격한 변화에 나처럼 당황할 것 같은 독자를 위해, 우선 수학자의 관점에서 기계(AI)와 인간의 차이에 주목한다. 인간이 할 수 있지만 기계는 (아직) 하지 못하는 지점에 주목한다. 이미 알려져 있지만 제한적인 지식으로부터 새로운 통찰을 알아내는 인간의 추정 능력, 이 지식을 압축하고 효과적으로 체계화하는 표상 능력, 파악된 대상들 혹은 지식들 사이의 연관성과 의미를 찾아내는 추론 능력, 주어진 규칙을 벗어나 새로운 창의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상력, 그리고 질문하는 지적 호기심을 언급한다. 이러한 지능들은 아직 AI가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만의 역량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이 다섯 가지 지적 능력을 특별히수학적 지능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기계가 구현하지 못하는 수학 지능의 장점을 언급하며, 관심사인 교육에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인간이 이런 역량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 듯하다. 왜냐하면 극도로 고도화되고 복잡한 인간 사회를 특출한 개인 혼자 이끌어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결코 아니기에, 저자는 여기에 조율협동의 역량을 추가한다. 특히 이 두 가지 특질은 AI가 스스로 구현하기 힘들기도 하거니와, 기술적으로 완성되었다고 해도 AI에게만 맡길 수도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무엇보다 AI에게 아직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인간의 마음이 신체를 매개로 생겨난 생명 현상이라는 데 주목한다. 신체를 지닌 존재로부터 생겨난 마음을 달리 표현하면 주체성이라 볼 수 있겠다. 저자는 수학적 지능이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은 스스로 생가하고 능동적으로 다양한 발견의 단계를 탐색할 수 있는 자유, 즉 주체성이다”(326)라고 말한다. 주체성이 결여된 AI에게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킨다한들, 결국 인간의 개입 없이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가 없다. 나아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결말을 기대할 수도 없다. AI기술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일으킨다면, 바로 이런 지점이 아닐까 싶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가 조율협동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현재 지구에는 기후 문제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80억 명이 넘는 인구가 집단 지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기계가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메타 인지이기도 하다. 끝없이 달려가기만 하는 세계를 잠시 돌아보고 멈추게 할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실수를 돌아보고 수정할 수 있는 지연의 윤리가 깃들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저자가 이야기하는 조율의 역량이라 이해한다.


여기에 집단 지성이 발휘되는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점이 생겨날 수 있다. 소수의 지도자나 선두를 맹목적으로 따를 때 집단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우리에게 지연의 윤리에 더하여, 집단의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인류가 직면한 위기에 대응하고 극복하기 위해 인지적 다양성이 높은 집단 지성의 힘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느라 홀로 7년 간 칩거한 수학자 앤드루 와일스도 있지만 현대에서는 아주 드문 사례다. 오히려 방대한 협업을 통해 수많은 논문을 펴낸 헝가리 수학자 폴 에르되시의 사례가 인상적이다. 다만 독자로서 내심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이토록 극도로 분열되고 원자화된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협동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이 문제는 현대 사회가 직면해 있는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저자는 AI가 도달하지 못한 역량, 곧 수학 활동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을 언급한다. AI가 아무리 영리해져도스스로 한 작업에 대해 감탄하고 만족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만족감의 의미가 공동체적이라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수학의 진정한 만족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그러한 배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데에서 나온다.”(308) 이는 앞서 언급한 집단 지성의 중요한 전제 조건이기도 할 테다. 그는 책 전반을 통해 인간과 기계의 차이점에 주목하지만, 우리가 단순한 기술 혐오에 빠지거나 기술에 압도되어서도 안 된다고 여긴다. 그는 우리의 자리를 확인하고자 오래 고민해왔을 터이다. 현재의 인류는 AI를 비롯한 기계에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인간의 핵심적인 협업 파트너로서, 그리고 지적 안내자로서 AI를 대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수학 지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1] "컴퓨터는 세상에 대한 모델을 구축하거나 그 해답이 타당한지 판단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역할은 각 모델의 토대가 되는 전제, 모델에 투입되는 특정 입력값의 신뢰성, 출력물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76) - P76

[2] "우리 뇌는 철학자 존 로크가 말한, 주변 환경에 의해서 그 내용이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빈 서판(Tabula rasa)’이 아니다."(105) - P105

[3] "사고와 기억은 자연적 처리 환경의 일부로서 신경세포의 연결망 전체에 분산되어 있다."(113) - P113

[4] "수학은 놀랄 만큼 압축적이다. (...) 이러한 압축에 따르는 통찰력이야말로 수학의 진정한 기쁨 중 하나이다."(118, 필즈 메달 수상자 윌리엄 서스턴의 말) - P118

[5] "돌더미를 쌓는다고 집이 되지 않듯이 사실을 축적한다고 과학이 되지는 않는다."(120,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의 말) - P120

[6] "모든 수학자는 가장 생생하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예술가이다."(128) - P128

[7] "인간 지능을 일반화하여 말하면, 단일한 기본 지식 체계 내에서 표상들 사이를 전환하고 여러 관점을 융화시키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129) - P129

[8] "데카르트는 개념과 감수성이 완전히 다른 수학의 두 분야인 대수학과 기하학 사이에 심적 다리를 놓은 인물로 간주된다."(132) - P132

[9] "수학적 증명은 우리 모두를 영원한 회의론자로 만든다."(159) - P159

[10] "인간 추론의 결함이 진화의 필연이라면 우리는 사회적 상호작용에 스며든 불완전한 논증에 수학적 증명의 무오류성으로 대항할 수 있다. 또한 패턴에 굶주린 알고리즘에서 오류를 포착하도록 스스로를 단련할 수 있다."(160) - P160

[11] "수학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다양한 표상을 활용하는 등 증명에 관한 한 다원주의적인 태도를 취한다."(163) - P163

[12] "기계는 날것 그대로의 사실을 움켜쥐지만 사실의 정수는 언제나 기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다."(175, 앙리 푸앵카레의 말) - P175

[13] "자연은 우리에게 정확한 수를 오직 한줌만 알도록 허용했다. 4를 넘는 그 외의 모든 정수는 우리가 발명한 것이다."(192) - P192

[14] "괴델은 기초 산술을 포함하는 어떠한 계도 이와 같이 입증하거나 반증할 수 없는, 즉 언제나 증명할 수 없는 상태로 남는 진술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무모순적이면서 동시에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207) - P207

[15]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복제하려면 특정 규칙이나 행동 모음에 구속되지 않는, 즉 모순을 즐길 수 있는 기계를 설계해야 한다."(210) - P210

[16] "(질문은) 지성의 엔진, 즉 호기심을 통제된 탐구로 전환하는 두뇌 기계다."(225, 역사학자 데이비드 해컷 피셔의 말) - P225

[17] "컴퓨터의 역할은 해답을 찾는 데 그칠 뿐, 어떤 질문이 가장 흥미로운지, 어떤 질문은 인간만이 풀 수 있는지, 어떤 질문은 더 확장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컴퓨터는 우리의 탐험을 돕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여정을 계획하는 것은 결국 우리 인간이다."(241) - P241

[18] "우리가 기계에 일을 맡기기 위해서는 기계의 핵심 능력에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또한 특정 수준의 계산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258) - P258

[19] "수학에 가장 심대한 공헌을 한 사람은 토끼가 아니라 거북이인 경우가 많다."
(263, 필즈상 수상 수학자 티머시 가워스) - P263

[20] "수학은 기존의 아이디어와 새 아이디어에 생명을 불어넣어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수학자들의 살아 있는 커뮤니티에서만 존재한다. 수학의 진정한 만족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그러한 배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데에서 나온다."(308, 수학자 윌리엄 서스턴의 말) - P308

[21] "문제 해결 동기는 그 자체로 경험의 공유에서 창발된 현상이다."(318) - P308

[22] "기계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목표를 진정으로 실현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에만 가능하다."(319) - P319

[23] "수학적 지능이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은 스스로 생각하고 능동적으로 다양한 발견의 단계를 탐색할 수 있는 자유, 즉 주체성이다."(326) - P326

[24] "수학 지능은 우리의 인지적 동맹, 즉 기계가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우리와 협업하도록 이끌기 위한 안내자 역할을 할 것이다."(329)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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