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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40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이강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6년 4월
평점 :
몇 년 동안 고전 문학을 많이 읽어온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은 실로 처음 접한
듯 하다. 학창시절에는 비록 읽어본 적이 없지만, 이 고전을 읽으면서 한때 '아들(딸)'이었고 이제는 '아버지(어머니)'가 되어 읽게 된 것이
오히려 이 고전이 주는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자식이었을 때는 부모와의 세대 차이를
느꼈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과의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좋은 작품을,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을 뒤늦게 읽었을 때 보통
아쉬움을 느끼곤 하는데, 이 작품은 지금에야 읽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생명의 역사가 끝나지 않는 한 계속될 주제인 '세대 차이'에 대해 정면으로 다룬 이 고전 <<아버지와 아들>>은
러시아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이킨 작품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현직 국어 선생님의 해설에 의하면, 사회 변혁을 꿈꾸면
혁명가들과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던 귀족들의 격돌을 떠올리게 하며 나아가 귀족 계급 출신 자유주의자와 잡계급출신 민주주의자의 대립으로까지
보여지기에 많은 소란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라는 설명을 덧붙히고 있다.
세대 차이를 앞세운 작품 속 갈등의 축은 사상·계급 갈등으로까지 의미를 넓혀 나간다. (본문 346p)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키르사노프는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고 돌아올 아들 아르카디를 기다리는데, 아르카디는 친구 예브게니 바실리치 바자로프와
함께 오게 된다. 아르카디는 바자로프에 대해 자연과학 계열을 전공했으며 허무주의자라고 소개한다. 니콜라이와 함께 살고 있는 형 파벨은 그런
바자로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데, 두 사람의 격론이 펼쳐지기도 한다.
"하여튼 내가 보기에, 우리 식은 아닌 것 같다. 우리 같은 구시대 사람들은 네가 말하듯 신앙처럼 떠받드는 원칙 없이는 단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거든. 그런데 너희가 그 모든 것을 다 바꿔 버렸어. 그래도 너희 나름대로 잘 살겠지. 우린 그저 너희를 지켜볼 뿐이고……. 전에는
헤겔주의자가 납시더니만 이젠 허무주의자로구나. 바닥도 없는 텅 빈 허공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본문 40,41p)
바자로프와 아르카디는 무도회에 초대를 받고 그곳에서 시골 대지주인 미망인 오딘초바를 만나게 되는데, 아르카디는 그녀의 매력에
빠지지만 오딘초바는 바자로프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국 아르카디는 그녀의 여동생 카챠와 가까와지게 된다. 사랑의 감정을 허황된 감정이라
생각하고 오딘초바를 떠났던 바자로프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사랑을 고백하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다. 결국 바자로프는 고향 집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답답함에 또다시 부모 곁을 떠나게 되고 니콜라이의 후처인 페니치카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이를 알게된 파벨과 결투를 하다가 파벨에게 총상을 입힌
후
집으로 돌아간다. 이후 장티푸스 환자의 시체 해부에 참여했다가 감염이 되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나는 저런 애송이들보다 우리가 더 옳다고 확신하네. 말투야 좀 구식일지 몰라도, 우린 저따위 뻔뻔스런 자만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
요즘 젊은 것들은 왜 저렇게 오만불손하지 몰라." (본문 91p)
"하지만 이 나라의 곪아 터진 종기에 대해 입으로만 떠들어 대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천박한 독단으로 나아가는
것일 뿐이죠. 결국 이 나라 지성인들, 즉 소위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고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이니, 무의식적 창조니, 의회 정치니 하면서 쓸데없는 일에 사로잡혀 떠들어 대고 있다는 것을 작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따위 것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당장 먹어야 할 빵이 문제인데요. 조잡하기 짝이 없는 미신이 숨통을 조이고, 회사는 하나둘 무너져 가고, 농민들은 술값이 될 만한
것이면 뭐든지 끌고 나가 술집에 처박힌 채 정신이 빠질 때까지 마셔 대는, 이런 판국에 말입니다." (본문 85,86p)
<<아버지와 아들>>은 세대차이, 우정, 사랑, 부모와 자식의 애증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담아내고 있다. 1856년,
농노 해방의 바람이 불던 러시아의 농촌과 소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대간의 갈등은 2016년 지금의 갈등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요즘 애들은'이라는 단어를 들어왔고, 이제는 그 단어를 말하게 된 것처럼 세대간의 갈등은 오랜 끝나지 않는 숙제가 아닐까 싶다. 친구의
아버지를 '시대의 뒤처진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한다미로 건달이죠, 귀족입네 하는' 이라고 표현하는 허무주의자의 대명사인 바자노프는
'요즘 애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귀족주의적 삶에 빠져 있는 파벨은 구세대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 두 사람의 갈등이 펼쳐지는
장면은 웃픈 느낌을 준다. 더욱이 바자로프가 사랑에 빠지면서 그토록 비판했던 구시대적인 인간이 되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부모와의 세대 차이를
느끼며 비판했던 내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 부모와 닮아가는 모습을 보는 듯 하여 사상, 개념의 갈등보다는 지극히 생생한 삶의 장면을 담아낸 듯
해다. 현직 국어 선생님의 풍성한 해설이 있어 이 작품의 배경 및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젊은 세대인 내 아이가 읽는
<<아버지와 아들>>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오롯이 아들의 입장이 되어 작품을 이해하게 될까? 이처럼 이 고전문학은
세대마다 서로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영웅이 되길 자처하는 바자로프마저 시대적 모순에 속한 '광대'에 지나지 않았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 함부로 희망과 이상, 진보를
이야기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일까? 쉽게 뜨거워지고 빨리 식어버리는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투르게네프의 시선이 더없이 집요하고 섬세하게, 그래서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본문 35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