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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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그네>를 통해 처음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이후 오쿠다 히데오의 여러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작품의 줄거리나 소재 등에 상관없이 작가의 이름만으로 무조건 찾아읽게 되었다. 이번 책 <<나오미와 가나코>>도 마찬가지였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주저없이 선택해서 읽게 된 책이다. 사실 이런 기대감으로 책을 읽다보면서 실망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게 되는데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서는 드문 일이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기대보다 훨씬 좋은 작품이었고,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쾌감마저 느껴진다. 책을 읽다보면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자연스레 떠오르게 되는데 옮긴이 김해용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듯 싶다. 남편으로 인해 답답한 현실에 불만을 느끼던 델마와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기만 했던 웨이트레스인 루이스가 여행을 떠나게 되지만, 여행길에서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결국 벼랑 끝으로 차를 내몰게 된다. 이 영화를 친구와 둘이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 그리고 <<나오미와 가나코>>는 여러 면에서 닮은 꼴이다. 주인공이 두 여인이라는 점, 친구,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점, 남편 그리고 결말. 사실 결말은 전혀 다르지만 '해방감'이라는 점에서 나는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 다른 결말이었지만, 두 작품 모두 쾌감을 느끼게 한 탓이다. 이 책의 결말은 또 하나의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바로 이미숙 이정재 주연의 영화 <정사>다. 두 작품의 결말은 모두 사회적 통념을 깨버렸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회적 통념으로 흔히 생각하는 결말과는 전혀 다른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색다름을 선사했다. 또한 <<나오미와 가나코>>는 두 영화에서는 찾을 수 있는 작품만의 독특함을 분명 가지고 있다.

 

아오이 백화점 외판부에서 일하는 나오미는 오늘도 물 쓰듯 돈을 쓰는 개인 고객들을 만났다. 외판부는 거의 집사나 다름없는 일을 처리해주기도 한다. 판매와 직접 연결되는 일이라서 외판부가 고객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큐레이터가 되고 싶었지만 신입사원은 모두 매장 근무를 경험해야 한다는 규칙 때문에 보석 매장에 배치 되었다가 장기적인 불황 때문에 미술관 업무를 축소한 탓에 나오미는 직장을 바꿔야 할 것 같았지만 희망을 품어도 될 만큼 마땅한 직장이 없었고, 조금만 더 참으라는 인사부의 말에 그냥 단념해버렸다. 이날 저녁, 나오미는 오랜 친구인 핫토리 가나코와 식사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헌데 오후 3시가 지나 가나코로부터 감기에 걸려 취소 문자가 왔다. 가나코는 대학 동창으로는 나오미의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였다. 성격은 정반대였지만 가치관은 일치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일 년에 몇 차례밖에 만나지 못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여전했고, 아마 평생 친구일 거라고 나오미는 생각했다. 가나코는 대형 가전업체에서 일했는데 작년 가을 은행권과 결혼하면서 퇴직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가나코의 남편은 늘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아마 혼자일거라 생각했던 나오미는 열이 있다면 저녁을 준비하기도 힘들 가나코를 위해 정시에 일을 마친 후 들러보기로 했다.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조심스러운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나코의 맨션에 들르게 된 나오미는 마스크를 쓴 가나코의 볼이 공처럼 부어 있는데다 시커먼 멍이 마스크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되고, 가나코를 추궁해 남편의 폭력 이야기를 듣게 된다. 폭력 이야기는 나오미에게는 이중의 타격이었다. 봉인 되었던 기억,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얻어맞던 폭력의 광경이 떠오른 탓이다. 가나코는 나오미에게 이혼을 권유하지만 가나코는 남편의 보복이 두려워 어쩌지 못한다. 한편 나오미는 도쿄에 사는 화교들을 위한 상담회를 개최 중 300엔이 넘는 시계에 관심을 갖던 아케미라는 부인에게 제품을 소개한 후 분실된 것을 알게 되고, 경찰의 조사결과 아케미가 시계를 가져갔음을 알게 된다. 시계는 되찾는 과정에서 나오미는 아케미와 친분을 쌓게 되고, 아케미의 직원 중 가나코의 남편과 너무도 닮은 사람을 보게 된다. 이후에도 가나코 남편의 폭력이 계속되자 나오미는 가나코에게 남편을 죽이자는 제안을 한다.

 

"차라리 둘이서 죽여버릴까? 네 남편."

나오미가 말했다. 물론 내친김에 한 말일 뿐이었지만 입 밖에 낸 순간 죽인다는 선택지가 불쑥 마음속에 출현했고, 그것이 또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져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다쓰로가 살아 있는 한 가나코는 계속 위협을 받는다. 그렇다면 다쓰로를 죽이는 것은 중요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된다. 중국인이었으면 그렇게 했을거라고 아케미가 말했었다. (본문 123p)

 

다음 날부터 나오미의 머릿속은 어떻게 다쓰로를 사라지게 만들까 하는 공상이 지배하게 되었고, 나오토 과장에서 인계받은 요요기의 사이토 씨가 치매임을 알게 된 나오미는 다쓰로의 제거 계획을 구체화 한다. 사이토 부인이 자신을 믿고 은행 업무까지 맡기면서, 나오미는 다쓰로가 사이토 부인의 예금을 착복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다쓰로를 제거한 후 다쓰로를 닮은 아케미의 직원 린류키를 이용해 중국으로 출국한 것처럼 보이기로 한다. 그렇게 나오미와 가나코는 계획대로 다쓰로를 제거하게 되고, 단순 가출로 본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으며 다쓰로의 착복을 알게 된 은행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기에 그들의 계획은 무사히 넘어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다쓰로의 여동생인 요코는 흥신소에게 사건을 맡기게 되고 나오미와 가나코의 헛점이 드러나면서 그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나오미 이야기와 가나코 이야기로 나누어 수록되어 있다. 나오미 이야기에서는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담아냈고, 가나코 이야기에서는 살인 후 주변 인물들의 의혹으로부터 맞서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살인은 엄연한 범죄이며 그에 따른 댓가를 꼭 처벌받아야 하는 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코와 나오미의 범행이 드러날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가나코를 옥죄는 주변 인물들과 그에 맞서는 가나코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고, 그들의 범행에 허점이 얼마나 많았는지가 드러날 때마다 긴장감은 더욱 팽배해졌다. 경찰로부터 협박을 받고 요코에게 쫓기면서 결국 모든 것들이 끝났다고 생각될 즈음 저자는 저혀 예상치못한 새로운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묘한 쾌감을 느끼게 했다. 이 작품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실 나오미이다. 절친이라고 하지만 친구를 위해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아버지의 폭력을 심어두었다. 그것이 하나의 방편이 되었고, 가나코를 돕는 일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엄마를 도와주지 못했던 자신의 자책감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나오미가 제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의 폭력보다 엄마의 작은 동물 같은 눈이었다. 저항도 못하고 울지도, 소리 내지도 못한 채 계속 맞았다. 지배당하는 인간의 표정을 나오미는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다. 어니인 히로미와 손을 잡고 2층으로 도망친다. 어린아이에게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 말고 달리 선택할 게 없었다. 도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귀를 막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본문 234p)

 

마지막 구절을 읽어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희열! 이 두 글자만이 이 결말을 표현할 수 있으리라.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폭력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여자들의 현실 앞에서 수많은 허점에도 완벽한 반격을 보여준 <<나오미와 가나코>>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다른 말은 필요없다. 꼭 읽어보시라.

 

(이미지출처: '나오미와 가나코'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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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스캔들
장현도 지음 / 새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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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읽어보게 되는 작가의 작품이라 작가의 이력을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작가는 2009년 증권사에 입사해 유가증권시장과 선물, 현물, 외환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치면서 경험을 쌓은 끝에 비합법적인 사금융업체인 '부티크'를 설립하여 젊은 나이에 큰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보았다고 한다. 이 시절에 대해 돈과 탐욕의 노예였다고 말하는 그는 금융계를 떠나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소설과 어울리지 않을 법한 그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쓴 <트레이더>로 일약 대형 신인으로 주목받았으며, 금융팩션의 귀재로 주목받게 되었다고 한다. <<골드 스캔들>>은 그가 오롯이 3년을 매달린 끝에 미국 달러와 금에 얽힌 불편한 진실에 대해 파헤친 소설이다. 책을 읽다보면 금융에 관한 그의 전문적 지식은 치밀한 구성을 돋보이게 하였고, 스토리에 화려함을 더하는 듯 했다. 무엇보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순식간에 읽게하는 놀라운 흡입력이 압권이었다.

 

미국 기업 '그린 아이언' 소속의 핏트레이더로 활약하는 스물아홉 살의 한서연은 인간을 평가하는 유일한 척도인 '수익륙과 실적'에서 이미 최상위 1퍼센트에 도달하는 정예병사이다. 그녀는 오늘도 다소 무모한 돌격 행위로 불과 8분 만에 216만 달러라는 이익을 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살의'마저 담겨진 비수처럼 날아온 적의와 경계심이 담긴 어떤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내리꽂혔다는 점이다.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공이 '켈리코'라는 헤지펀드의 트레이더인 하워드 베르너임을 알게 되는데, 이후 한서연과 그의 동료들이 본사에서 중요한 계획인 '텔타클 본즈(촉수와 뼈)'라는 4,500억 달러에 달하는 '시장 교란자' 역할을 맡게 되면서 그의 접근도 시작된다. 그는 그린 아이언이 추악한 기업이라 말하며 세상을 뒤흔들어놓기 위한 악당들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합류하여 악당의 편에 설 것인지, 자신과 한 배를 타고 정의의 편에 설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이 하워드 베르너와의 만남으로 그녀의 인생은 크게 뒤바뀌고 있었다.

 

한편, 같은 시각 인도 뭄바이 서쪽 240킬로미터 해상에서는 벌크선 라크슈미 호가 순조로운 항해중이었다. 빌 테이넘이 이끄는, 메이슨을 포함한 총 아홉 명의 전직 군인으로 구성된 사설 군사업체인 나이트핀트는 최근 아프리카 해역에서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는 해적들로부터 화물선 라크슈미 호를 경호해달라는 의뢰를 맡은 탓이다. 하지만 라크슈미 호는 해적이 아닌 미국의 주력무기인 '프레데터 MQ-1'이라는 최첨단 무인 공격기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고, 메이슨을 제외한 빌 테이넘과 동료들이 화염 속에서 잿더미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목숨을 건진 메이슨은 미국이 위협이 될 만한 요소가 아무것도 없는 화물선 라크슈미 호와 테러와는 전혀 무관한 자신들이 그들의 공격대상이 되었던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미심쩍은 폭발에 대해 생각하던 메이슨은 개죽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동료들의 죽음의 배후를 찾으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지 않은 비밀 작전인 블랙 옵스였음을 알게 될 뿐이었다.

 

-미국 정부가 무분별하게 찍어낸 달러가 이젠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 있고, 그렇게 흩뿌려진 달러가 약세를 면치 못해 거꾸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얘기 말이에요.

-그게 우리가 운반한 황금과 무슨 관련이 있소?

-혹시 '금본위제'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화폐의 가치는 일정량의 금이 가진 가치와 동일하다는 애기죠. 쉽게 말해 세상의 모든 화폐는 금을 기반으로 탄생했다는 뜻이에요. 달러 역시 예외는 아니고요. (본문 211p)

 

"모두가 달러의 팽창을 경고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달러 팽창은 시작에 불과해요. 미국 정부는 이제 본격적으로 화폐 발행을 가속화할 테니까요. 그것도, 달러의 근본가치에 해당하는 황금을 소멸시키는 수단까지 써가면서 말이죠."

"황금을…… 소멸시킨다고요?"

"그래요. 아주 단순하면서도 손쉬운 방법이죠. 안티 달러 황금의 평가절하. 달러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서 거꾸로 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은 말이에요." (본문 295p)

 

서연은 하워드 베르너의 정체를 회사에 알리지만, 하워드 베르너가 건네 준 자신의 채용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회사의 어두운 면을 직접 확인해보기로 결심하면서 하워드 베르너를 찾아가게 되는데, 미국 정부가 안티 달러 황금의 평가절하 즉, 달러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서 거꾸로 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을 하려고 하며, 그 황금 대학살에 그린 아이언이 동참하고 있고 그 선봉에 서 있는 사람이 한서연 자신임을 알게 된다. 그녀가 맡게된 촉수와 뼈 프로젝트는 바로 5,000억 달러의 스왑거래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이에 서연은 하워드 베르너의 요구에 따라 회사의 스파이 역할을 하게 된다. 동료들의 죽음을 파헤치려던 메이슨은 빌 테이넘이 남겨놓은 비밀 문서를 통해 프로그레스에서 자신들이 맡겼던 금괴를 이송하는 다섯 건의 의뢰들 뒤에는 미국 정부가 있음을 알게 되는데, 사건을 파헤칠수록 메이슨의 목숨은 점점 위태로워진다. 서연과 메이슨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는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진 듯 시작되었지만 결국은 자신도 모르게 황금 대학살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고, 이에 맞서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하게 된다.

 

1998년 당시 한국에서 결성된 시디케이트의 공통 과제는 한국 정부가 내놓은 220톤의 금을 국제시장에 매각하고, 매각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한국 정부에 건네주는 일이었다. 실제로 신디케이트는 그 역할을 충실히 했다. 한국정부는 약속된 날짜에 매각 대금을 지급 받았고, 그 과정에서 신디케이트 구성원들은 사전에 정해둔 수임료를 챙겼다.

그런데 당시 금의 총 매각 가격이 LME(런던금속거래소) 시세에 비해 23퍼센트가 낮았다. 그 이유는 바로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된 수임료 때문이었다. 한국 정부를 포함한 대다수의 관계자들 역시 그 사실을 며왁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 (본문 252p)

 

 

 

<<골드 스캔들>>에서는 이렇게 한서연과 메디슨을 통해 금과 달러를 둘러싼 화폐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곁에는 또다른 주인공인 스탠필드와 캐서린 올리에가 있다. 저자는 아시아의 외환위기 때마다 국제경제 컨설팅이라는 명목 아래 개발도상국에들에게 어떻게 효율적으로 채무를 뒤집어씌울지, 그들 국가에 어떻게 미국와 유럽의 기업을 침투시킬지를 기획하던 '채무의 박사'라 불리던 스탠필드가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고군부투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나라 IMF의 이면과 금모으기 운동을 통해 모았던 220톤의 금 행방에 대한 의문점에 대해서도 풀어놓는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배후에서 치밀한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캐서린 올리에의 욕망을 통해 수많은 이해집단 속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미국 켄터키 주 북쪽에 위치한 포트 녹스에는 전세계에서 거둬들인 약 250조 달러로 추정되는 막대한 양의 황금이 보관되어 있는데, 매년 포트 녹스의 금괴 입출고 현황을 조사·감독해야 할 미 재부부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2001년부터 전혀 조사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포트 녹스의 금괴 보관소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는 팩트에서 시작된 <<골드 스캔들>>은 이 주인공들을 통해 배신, 음모가 벌어지는 치열한 화폐 전쟁을 선보인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 작품에 대해 작가 장현도 이름 석자를 기억하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미지출처: '골드 스캔들'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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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 블랙 로맨스 클럽
멜리사 젠슨 지음, 진희경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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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은 14살 선생님으로부터 「오만과 편견」을 받은 이후로 엘리자베스 베넷이 되기를 꿈꿔 온 작가 멜리사 젠슨의 데뷔작이다. 풋풋하고 예쁜 첫사랑을 꿈꾸던 여학생 시절, 최고의 연애소설로 꼽히는「오만과 편견」을 읽어보았다면 누구나 작가처럼 그 작품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그런 이유로 나 역시도 제인 오스틴과 샬롯 브론테 작가를 참 좋아했었다. 고전은 지루하고 고루하다는 편견에서 그녀들이 보여준 작품은 고전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고, 감성 충만한 사춘기 시절을 달뜨게 했으니까. 그런 이유로 이 책 <<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는 꼭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엘리자베스 베넷이 되길 꿈꾸었던 작가는 어떤 상상력을 풀어낼지 사뭇 궁금해졌다.

 

 

 

<<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은 21세기 소녀인 16세의 캐서린(캣)의 블로그와 19세기 귀족소녀인 18세 캐서린(키티)의 일기가 중첩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18세의 딸을 둔 엄마인 탓인지 캣의 블로그 내용은 어쩐지 소통이 안되는 느낌이지만, 키티의 일기는 나의 정서와 너무 잘 맞았다.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나와는 정반대의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다. 같은 작품을 읽고도 독자층에 따라 서로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매력있는 작품인 것이다. 이야기는 200년 전에 죽은 메리 퍼시벌에 대해 조사한다는 엄마를 따라 영국으로 오게 된 캣의 지루하다는 하소연으로 시작된다. 앞으로 10주 동안 캣의 곁에는 버터 바른 오이나 여왕님 그리고 이 블로그 뿐이다. 그런 캣에서 엄마는 메리 퍼시벌의 딸이 쓴 일기장 복사본을 읽어보라 권한다. 이렇게해서 캣의 블로그와 키티의 일기가 중첩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했는데, 캐서린이라는 이름과 연령대 그리고 숨막히게 하는 엄마와 멋지지만 굉장히 바쁜 아빠가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마 시대적인 상황이 많이 반영된 탓인지 둘의 성격은 정반대였다.

 

블로그와 일기는 캣과 키티의 일상적인 이야기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키티의 일기를 읽어본 캣은 꾸역꾸역 열 페이지를 읽고는 지루해한다. 엄마와 같이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가게 된 캣은 전시실을 돌아다니다 제인 오스틴의 유명한 초상화를 보기도 하고 메리 퍼시벌의 초상화도 보게 된다. 엄마를 따라 도서관에 간 캣은 퍼시벌 양의 일기를 읽고 알게 된 바이런의 시를 읽어보기도 하는데, 메리의 없어진 편지를 찾는 걸 도와주러 온 퍼시벌 가문의 후손인 열여덟 살 정도의 윌리엄 퍼시벌을 만나게 되는 운명적 사건이 일어난다. 캣은 182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짙은 파란색의 눈 그리고 오른쪽 뺨에는 정말로 담백하게 보조개가 나 있는 그를 좋아하게 되고, 엄마의 도움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이후 윌은 캐서린과 아주 오래 전에 살았던 캐서린 둘에 대해 생각하던 중이라며 캣이 키티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에 대해 제안을 한다. 윌은 캐서린에게 일기장에서 언급했던 장소 열 군데를 찾는 도전 과제를 주게 되고, 윌이 생일 선물로 그곳에 데려가 준다고 하자 캣은 키티의 일기를 열심히 살펴보게 된다. 캣이 살펴본 일기장 속 키티 역시 시인 토마스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는 중이었다. 21세기식의 로맨스와 19세기식 로맨스의 서로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서로 다른 세대를 살지만 같은 연령대의 두 캐서린이 사랑을 찾아가면서 성장해가는 닮은 꼴의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즐거움이었다. 키티의 일기를 지루하게만 여겼던 캣이 키티의 일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바이런의 시를 인용하게 되고, 미국와 다른 영국의 문화를 수용하게 되는 과정들도 귀엽기만 하다.

 

 

 

<<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은 시대는 다르지만 십 대 소녀들이 느낄 법한 사랑이라는 동일한 감정에 대해 그 시대상을 반영하여 잘 그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21세기와 19세기의 서로 다른 문장이 각각의 시대가 반영되어 너무도 잘 쓰여졌다. 한 작가가 한 작품 속에서 두 가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작가의 다음 작품까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간만에 읽은 로맨스 소설이었다. 십 대에 가졌던 사랑이라는 감정(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만 한)들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캣을 통해 십 대인 내 딸이 지금 꿈꾸고 있을 사랑에 대해서도 짐작해본다. 어쩌면 캣과 키티는 나와 내 딸을 대변하면서 둘의 간극을 좁혀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나에게 영국 신사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것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거지??

 

(이미지출처: '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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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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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를 통해서였고, 김려령 작가를 뇌리에 각인시키게 된 것은 <완득이>였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가시고백><우아한 거짓말> 등의 작품도 접했지만 김려령 작가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완득이>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일까? 김려령 작가의 책을 읽을라치면 기대를 먼저 하게 되고, 읽다보면 어느 새 <완득이>와 비교하게 되면서 조금은 야박한 평을 하게 된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인간관계와 사랑의 맨 얼굴을 생생하게 그려낸 그녀의 신간 <<트렁크>>에서 작가는  결혼과 사랑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형식과 내용을 꼬집고 비틀고 그 이면을 들춰내며 관습이 얼마나 고루한 것인지, 또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지는 현실적 욕망이 얼마나 속물스러운 것인지 이야기하고자 했다. <완득이>와는 전혀 다른 주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음에도 나는 전작과 빗대어 평한다. 그것이 그릇된 평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물론 이는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며, 그녀의 폭 넓은 사유에 대한 평이 아님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중산층으로 그럭저럭 살다가 회비가 밀리고 혼인성사자금도 없어 자동 탈퇴된 회원도 있다. 미련으로 계속 NM으로 연락하지만 NM의 답변은 간단하다. 법적 결혼을 하세요. 그게 제일 싸게 먹힙니다. 값진 조언도 잊지 않는다. 잘하면 공짜로 눌러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무조건 혼인신고를 하세요. 법적으로 큰소리 칠 수 있고, 한몫 챙기고 끝낼 수도 있습니다. (본문 73,74p)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가 아니여도 주변을 둘러봐도 30대 중반을 넘어섰음에도 결혼을 생각하지 않은 지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경제적인 불안과 어려움이 만들어낸 새로운 사회 문제이다. 집 장만을 위해 3년간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그동안 집 값을 다시 오르는 바람에 결혼을 연기해야 한다는 한 남성의 인터뷰는 지금 우리 사회의 사랑, 결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에 작가는 '기간제 배우자'라는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결혼과 사랑을 정면으로 응시하도록 하고 있다.

 

마지막 밤이다. 남편은 적당히 친절했고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이런 남편만 만나면 직장생활 참 편하겠다.

"결혼 괜찮았어?"

"생각보다. 당신은?"

"나도." (본문 7,10p)

 

스물아홉 살의 인지의 결혼생활은 트렁크 하나로 막을 내렸다. 인지는 업계에서 손꼽히는 결혼정보회사인 W&L의 VIP 전담부서인 NM(new marriage)의 소속이다. NM은 W&L의 한 부서로 위장했을 뿐, W&L이 숨겨둔 비밀 자회사로 인지는 와이프팀 FW(field wife)에서 현장근무를 하고 있는 차장이다. NM은 미혼남녀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아내(FW)와 남편(FH)를 보낸다. 회원의 희망 배우자로 선정된 FW나 FH는 납득할 만한 사유 없이 세번 이상 노가 누적되면 권고사직을 당하기도 한다. 졸업을 앞두고 안국동에 있는 출판사에서 면접을 본 후 헛헛한 마음에 인사동까지 걸어와 미술관에 들어간 인지는 우연히 NM 스카우터를 만나게 되고 취업을 권고받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4대 보험을 적용받는 고액 연봉 접대부였으며, 체계적인 변형된 성매매였다. 유명 결혼정보 회사가 알고 보니 성매매 알선책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언론사 선배한테 찔러주면 수습 하나는 얻을 것 같았지만 인지는 남자친구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결국 자신을 떠나게 만든 어머니에 대한 반감과 면접 본 회사로부터 불합격 판정을 받으면서 몰랐고, 끝까지 몰라도 됐을, 모르는 게 더 나았을 그런 세계와 손을 잡게 된다.

 

"접대부 렌탈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요. 회원은 섹스리스도 있고, 성생활이 불가능한 배우자도 있어요. 조금 다른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럼 그런 사람들끼리 연결해주면 되잖아요."

"마음만 맞는다고 되나요. 지불한 만큼 누려야죠." (본문 25p)

 

네번째 결혼 생활을 마치고 업무 복귀를 위한 회복 기간를 받은 인지는 친구 시정의 부탁으로 소개탕을 한 엄태성이라는 남자와 소개팅을 하게 되는데, 인지의 거절에 엄태성은 인지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이후 인지는 전 남편으로부터 재결합 신청을 받고 다섯 번째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엄태성은 그런 인지를 또 찾아온다. 인지는 남편과 함께 사는 집에 찾아온 엄태성을 NM 구조대에 신고를 하게 되고 구조대는 엄태성을 제압해 인지 몰래 격리시킨다. 다섯 번째 결혼 생활 동안 인지는 남편의 초대로 그의 이혼한 전 부인을 만나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10년 전 삼총사였던 친구 혜영의 죽음도 떠올리게 된다. 엄태성이 격리 된 것을 알게 된 인지는 남편의 도움으로 엄태성을 풀어주고, 혜영의 죽음 뒤에 숨겨진 시정과 혜영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이 혜영이 죽던 10년 전 수능 본 날 클럽에서 만나 도움을 받았던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열아홉에 그리고 스물아홉에 다시 만나게 되었던 남편은 위기 때마나 자신의 곁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출장 결혼의 계약이 끝나고 인지는 승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십대 때 원한 이십대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이제 서른이 된 인지는 삼십대를 마치고 또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십 대의 상징인 트렁크를 버리기로 한다.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인지 앞에 엄태성이 다시 나타나게 된다.

 

십대 때, 나는 어떤 이십대를 꿈꿨었나. 벌써 이십대의 마지막까지 왔는데 모든 것이 엉켜버렸다. 나의 이십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이브에 전처를 초대한 남편과 섹스를 할 줄이야. 듣지도 않은 「오리온」이 귀에 울린다. 얼핏 남자가 우는 것 같기도 했던 곳이다. 낯선 곡에 꽂혀 온종일 그 곡만 들었도 좋았던 예쁜 시절이 있었다. 괜찮아? 아파. 뚜거덕뚜거덕 멀어지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본문 99p)

내 삶을 꾸역꾸역 구겨넣고 다녔던 트렁크를 버려야 한다. 손 안에 꼭 쥘 수 있는 금장단추,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본문 201p)

 

 

 

계약결혼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소재로 한 이야기 <<트렁크>>는 사랑, 결혼에 대한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완득이>처럼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소리내어 이야기해야 하는 내용이였음에는 분명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김려령 작가를 떠올릴 때 <완득이>만을 떠올릴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양만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작가라는 점을 먼저 기억해야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 김려령 작가의 작품을 접할 때 <완득이>를 떼어놓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는 이 작품 외에도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었고,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임을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듯 싶다. 이제 그녀가 보여주는 놀라운 변신을 주목하려한다.

 

(이미지출처: '트렁크'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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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강주헌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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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1989년부터 2000년까지 민족학자 크로드 레비 스트로스가 이탈리아 일간지 『라레푸블리카』의 요청으로 프랑스어로 쓴 16편의 글을 모아, 여태껏 발간된 적 없는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시대의 관심사에 주목하며 그 시대를 논쟁거리로 다루었는데, 그는 어떤 문제를 다루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전개되는 사회현상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저서가 현대의 고전으로 불리며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인가보다. 관심있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자극적이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 제목에 마음이 동하여 읽어보게 된 책이었는데, 뜻밖에도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쟁점이 되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 생각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산타클로스의 유무가 굉장한 논쟁거리가 된다. 산타클로스의 존재 유무는 자신이 갖고 싶은 선물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직결되기 때문에 그의 존재 믿음에 대한 딜레마로 작용된다.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으면서도 갖고 싶은 선물 때문에 산타클로스를 믿는 척(?)했던 적도 분명 있으리라. 사실 우리 집 작은 아이 역시 이 딜레마에 빠져있다. 안 믿으면 선물도 없다?라는 엄마의 무언의 압박도 존재하리라. [산타클로스의 처형, 1952년]에서 참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다.

 

산타클로스는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연령대(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다고 여겨지는 연령대)에게 신이다. 산타클로스와 진정한 신의 차이가 있다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를 믿으라고 부추기며 온갖 속임수를 동원해 그 믿음을 지켜가라고 애쓰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문 21p)

 

더 재미있는 것은 산타클로스의 먼 기원이 '학대받는 사람들의 수도원장','환희의 수도원장','어리석은 사람들의 수도원장' 등에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종교 역사학자와 민속학자가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논쟁이 되는 [여성 할례와 대리출산]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민족학자들의 먹이가 되는 데 지친 원주민들이 그들에게 반발했던 예전과 달리 요즘 요주민 부족들은 땅에 대한 조상의 권리를 확보하고, 과거에 자신들에게 강요된 조약이나 협정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법정에서 도움을 받으려고 봉급까지 약속하며 민족학자를 고용하며 도움을 청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는 여성 할례 관련 소송에서도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여성 할례를 법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불합리하다. 하지만 윤리적 선택은 이민하여 사는 나라 문화의 미래에 걸려 있다. 따라서 관습은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하느냐, 아니면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이민국의 감수성에 중대한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관습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것도 그들의 권리이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하느냐, 이런 두 가지 가능성에서만 윤리적 선택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본문 65p)

 

표제작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에서는 1932년까지 지구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마지막 지역이었던 뉴기니의 중앙 산악 지역을 통해 알게 된 질병인 쿠루병이 식인 풍습에서 발생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의 존재가 이 쿠루병과 닮은 데가 많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식인 풍습은 기근 시대에 식량을 보충하는 수단이나 인간의 살에 대한 욕구로서 식량과 관련 있을 수 있고, 죄인의 징벌이나 적에 대한 복수로서 정치적인 성격을 띨 수도 있다. 또 고인의 성품을 물려받거나 반대로 고인의 영혼을 멀리 보내기 위한 마법적인 성격, 혹은 종교의식, 장례와 제사, 성년식과 관련되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의 성격을 띨 수도 있다. 고대 의학의 많은 처방에서 확인되듯이, 식인 풍습은 치유적인 수단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유럽에서도 멀지 않은 과거에 그런 처방이 실제로 행해졌었다. 내가 앞에서 언급한 뇌하수체의 주입이나 뇌물질의 이식, 게다가 오늘날 흔히 시행되는 장기 이식은 치유적인 성격을 띤 식인 풍습의 범주에 속하는 게 분명하다. (본문 127p)

 

 

 

이 외에도 이 책에서 소개되는 소재들은 굉장히 흥미롭다. 시대의 관심사들에 대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20세기 후반에 쓰여진 이 시평들이 현재에도 뜨겁게 전 세계를 관통하는 쟁점이라는 점에서 시대를 꿰뚫는 위대한 인류학자의 통찰력이 21세기 문화비평의 발판이 되어줄 것이라 말한다. 우리의 관심이 되는 쟁점들이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사실 이해하기는 좀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중요한 것은 사회현상은 그 현상이 해당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이른바 복잡한 사회와 '원시적이거나 태곳적'이라고 부당하게 일컬어지는 사회 간에는 오래된 일반적인 생각처럼 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런 깨달음은 "멀리 떨어진 것이 가까운 것을 밝혀주지만, 가까운 것도 멀리 떨어진 것을 밝혀줄 수 있다."라는 식으로 일상의 현상을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려는 사유 방식에서 비롯된다. (본문 6p)

 

(이미지출처: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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